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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큰 욕심, 작은 욕심

어떤 여자분이 결혼식을 앞두고 결혼식 당일 날씬하게 보이기 위해 몇 개월간 다이어트를 철저히 했습니다. 그 여자분에게는 뚜렷한 목적이 있기에 그동안 실패했던 다이어트가 결혼식을 앞두고 성공적으로 이행된 것입니다. 날씬하게 보여야 한다는 큰 욕구가 음식에 대한 욕구를 잠재워 버린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진리적인 참된 큰 욕심이 발하게 되면 세상으로 향하는 작은 욕심이 잠잠해집니다. 필자도 출가한 후 진리를 알고 믿고 인생의 목적과 가치관이 바뀌었으므로 세상 것에 끌리는 마음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다음은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욕망을 극복하는 방법입니다.   한 제자 여쭙기를 무슨 방법으로 수양하여야 오욕을 다 없애고 수도에 전일 하여 부처님과 같이 한가롭고 넉넉한 생활을 하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욕심은 없앨 것이 아니라 도리어 키울 것이니, 작은 욕심을 큰 서원으로 돌려 키워서 마음이 거기에 전일 하면 작은 욕심들은 자연 잔잔할 것이요, 그러하면 저절로 한가롭고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되리라.” (수행 36)   어떤 목적지에 빨리 그리고 반드시 도달하려는 마음, 목표의식이 분명하면 이런저런 휴게소에 들리거나 그곳에서 너무 많이 시간을 보내지 않게 됩니다. 우리 인생에 진리적 목표가 뚜렷이 세워지면 우리 마음이 안정되고 삶에 중심이 잡힙니다.     원불교 2대 종법사이신 정산 종사님께서는 정신수양과 부동심 공부를 말씀하시면서 ‘내정정(內定靜)’ ‘외정정(外定靜)’ 법문을 하셨습니다. ‘내정정’은 염불 좌선 등으로 마음을 청결히 해서 안으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며, ‘외정정’은 서원과 믿음, 분심으로 마음의 중심을 잡아서 입지를 부동하게 함을 말합니다.   “외정정은 밖으로 입지가 부동하게 하는 공부인바, 첫째는 큰 원을 발함이니, 원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만 가지 세상 인연이 앞에 가로놓여도 보되 보이지 않고 조금도 마음에 걸리지 않기를 서가세존께 한 번 대도에 발심하매 왕궁의 낙과 설산의 고가 조금도 마음에 머물지 않듯 하는 것이요….”   부처님 말씀하시길 “내가 왕후의 위 보기를 과객같이 하면 금옥의 보배 보기를 자갈같이 하며 좋은 비단 보기를 헌 걸레같이 하노라.” (사십이장경42)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나는 그대들에게 희로애락의 감정을 억지로 없애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희로애락을 곳과 때에 마땅하게 써서 자유로운 마음 기틀을 걸림 없이 운용하되 중도에만 어그러지지 않게 하라고 하며, 가벼운 재주와 작은 욕심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그 재주와 발심의 크지 못함을 걱정하라 하노니, 그러므로 나의 가르치는 법은 오직 작은 것을 크게 할 뿐이며, 배우는 사람도 작은 데에 들이던 그 공력을 다시 큰 데로 돌리라는 것이니, 이것이 곧 큰 것을 성취하는 대법이니라.” (수행 37)   진리적 큰 욕심을 발하면 작은 욕심이 자연히 잠재워집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욕심을 잠재우는 좋은 방법입니다. 원불교 3대 종법사이신 대산 종사님께서는 “부처님은 욕심이 없는 분이 아니라, 우주 전체를 자기 집으로 만들려는 큰 욕심을 가지신 분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산 종사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지금 욕심을 참는 공부를 하는 것은 작은 욕심을 큰 욕심으로 키워 영생을 잘 살자는 것이니, 마치 좋은 과일을 얻기 위해 처음 몇 년간 수확하지 않고 열매를 모두 따 주는 것과 같은 이치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영생을 잘 살기로 하면 반드시 욕심을 절제하고 조절하고 중도를 잡아나가야 하나니, 만약 욕심을 참지 않고 일생을 마치게 되면 그 영이 땅에 떨어져 천만 갈래로 흩어져 보잘것없이 되고 마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대종사께서 ‘나이가 마흔이 되면 수염에 불 끄듯 공부하라.’ 하신 법문을 받들어 마흔 살부터 더욱 금욕하고 정진(精進), 적공(積功) 하였느니라.”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욕심 마음 목표의식 대종사 말씀하시기 마음 기틀

2024-09-19

[등불 아래서] 은혜의 단비

5월에 비가 내린다. 여름의 문턱에 들어선 남가주에서 비를 마중하는 일은 생소한 일이다. 밖에 내다 놓은 화분 속 꽃들이 춤추고, 막 피어나는 감꽃이 비를 피해 고개를 숙인다. 마지막 꽃을 피우던 동백은 힘을 내어 하늘을 향하고, 신이 난 선인장들도 꽃봉오리를 세운다.     우산 좀 쓰라는 잔소리를 듣겠지만, 너무나 드문 이 봄의 여흥을 함께하고 싶어 성큼 빗속으로 걸어 들었다. 싸늘하게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인데 왠지 따뜻하다. 예상하지 못한 여름 속 봄비는 뜨거운 태양 속에 숨이 막히도록 톺아 올라가야 했던 풀들에 생기가 돌게 했다.   구름은 잠시 해를 가려주고, 비를 맞으며 꽃들도 풀들도 숨을 돌린다. 비는 그래서 물이 아니다. 물이 떨어지지 않고 비가 내린다. 어떤 농부도 다 돌볼 수 없는 잎자락 하나까지 비는 어루만지고, 필요한 구석구석까지 땅속으로, 잎 속으로 스며든다.     안개비는 촉촉하게 가랑비는 가늘게 장대비는 굵고 장하게 모두를 두드리고, 적시고 흘러내린다. 심지어 먼지만 적시는 먼지잼도 있다. 갑자기 지나가는 소나기는 더위를 식히고, 비를 기다리는 농부에게는 약비가 되어 내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비가 있다. 단비는 달콤한 비가 아니라 꼭 필요할 때 알맞게 내리는 비를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래서 단비이다. 가뭄 속 단비는 약비이고, 뜨거워 숨 막힐 때 단비는 소나기이며, 두려움 속 단비는 꿀비이고, 유혹 속에 흔들릴 때 단비는 모다깃비, 바로 뭇매를 치듯이 세차게 내리는 비이다. 단비는 하나님의 시간을 우리 시간 속에 내려 준다.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의 어리석음을 덮으며 내려주신다.   선한 일을 행하다 낙심될 때마다, 우리의 논밭은 갈라진다. 불의한 세상에 깊은 상처를 입을 때마다, 곡식들은 쓰러지고 병이 든다. 내 필요 없는 고집과 욕심에 속이 썩어 들어갈 때마다, 우리는 말라간다. 하나님의 단비를 구해야 하는 시간이다.   죄와 싸울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선을 행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죄를 죽이려 한다면 죄와 죄인을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루터가 말했듯이 주님은 자신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되셨고, 박해자요 신성 모독자요 잔인했던 바울이 되셨고, 간통자인 다윗이 되셨다. 그리고 죄인의 부활과 생명이 되셨다. 신자는 이 은혜의 비를 맞아야 사는 사람이다. 단비는 땅만 적시지 않는다. 알맞을 때 내리는 비는 다가올 햇살을 준비한다. 은혜는 벅찬 생명이다.   sunghan08@gmail.com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등불 아래서 은혜 단비 우리 시간 신성 모독자 고집과 욕심

2023-05-08

[독자 마당] 회자정리

‘회자정리(會者定離)’는 불가에서 나온 말이다. 사람은 만나면 헤어진다는 뜻이다. 만남은 헤어짐의 시작이요 이별은 조우의 시작인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사랑하는 가족들과도 헤어지는 아픔을 겪게 된다. 부모, 형제, 자식들과도 생사의 갈림길에 선다. 평생을 같이 한 배우자와도 떨어져 홀로 떠나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이다.   살면서 용기와 가르침을 주었던 은사와 다정한 벗들, 그리고 따뜻한 이웃들과도 이별하는 슬픔도 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철학이란 죽음의 예행연습 같은 것이라고 말했나 보다. 사람들은 그래서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이 세상에 와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아름답게 70~80년을 함께 살다가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홀연히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혼자 떠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닥쳐올 죽음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누구나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 홀로 떠나야 하는 두려움은 종교를 가짐으로써 편안한 임종을 맞을 수 있다. 불가에서는 회자정리의 천리를 깨달으면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인생의 마무리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을 수 있다.     ‘생자필멸(生者必滅)’, 살아있는 모든 것은 반드시 한 번은 죽는다. 이것이 숙명이요 신의 섭리인 것이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그러니까 살아 있을 때 선행을 많이 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집과 욕심을 버려야 한다.     ‘공수래 공수거’라고 했다. 저승길엔 마신 공기 한 모금도 못 가지고 간다. 자기가 움켜쥔 것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어, 그들의 마음밭에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나면 그곳이 천당이요, 그곳이 바로 극락이다. 회자정리,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인생 행로이다.  이산하·노워크독자 마당 회자정리 회자정리 이것 아집과 욕심 부모 형제

2022-05-27

[김창준] 사업의 절정에서 가슴 속 뭔가가 꿈틀댔다

  ━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 6화〉 '한인 정치' 물꼬 김창준 전 연방 하원의원   〈21〉비즈니스맨에서 정치인 변신   신생도시 다이아몬드바 시의원 출마 결심 아무리 뛰어도 반응 냉랭…승리 나도 놀라 1977년에 회사 ‘제이킴 엔지니어스’를 설립했다. 상·하수처리장 등 도시개발 프로젝트 설계 회사였다. 중소기업청에서 지원 받은 10만 달러에 직장생활을 하며 번 돈을 합쳐 다이아몬드바에 사무실을 열었다.     직원은 파트타임 비서 한 명 뿐이었다. 낮에는 사업계약을 따내느라 동분서주하고 밤이면 주문받은 설계를 하느라 도면과 싸웠다. 다행히 일거리는 사방에 널려 있었다. 서부 6개 주에서 일할 수 있는 면허증을 얻은 덕이었다. 나중에는 혼자서 일감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설계 직원을 더 채용했다. 시간이 지나니 고용할 사람은 더욱 많아졌다. 어느새 150명의 직원을 둔 회사로 컸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나만의 경영 전략을 세웠다. 첫째, 미국에서 사업하는 동안 한국적 사고방식을 버린다. 둘째, 미국 사회의 관습과 불문율을 기억한다. 셋째, 어떤 경우라도 경영자와 사원의 경계선을 지킨다. 넷째, 사원 모두가 내 회사라는 자긍심을 갖도록 애를 쓴다.     제이킴 엔지니어스는 설립 10년 만에 연 매출 1000만 달러를 올릴 정도로 급성장했다. 캘리포니아 500대 설계회사 중 하나로 떠올랐다. 서부지역에만 여덟 군데에 지사를 설립했다. 도시개발 전문가로 인정받으면서 LA타임스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나를 소개했다. 여기저기 강연 요청도 쇄도했다.     그러는 동안 마음 한켠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다이아몬드바 시의원직 욕심이 생겼다. 2년 동안 이웃 도시인 샌디마스의 도시계획자문위원장으로 봉사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바로 왔다. 신흥 도시인 다이아몬드바의 두 번째 시의원 선거가 다가왔다. 초대 시의원 3명 중 한 사람이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에 출마하기 위해 사임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가슴이 뛰었다. 마치 나를 위해 문이 열리는 듯했다. 그런데 ‘내 주제에 무슨 시의원 선거 출마냐’는 생각도 바로 엄습했다. 기대와 함께 괴로운 마음이 오버랩 됐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선거 출마를 놓고 고심했다.     설계 책상 위에 A4용지를 펼쳐 놓고 펜을 들었다. 종이 반을 접어 한쪽엔 ‘유리한 점’ 다른 한쪽엔 ‘불리한 점’이라고 썼다.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경우 나의 장단점도 써내려갔다. 불리한 점보다 유리한 점이 많았다.   출마 결심을 하니까 머리가 말끔해졌다. 다이아몬드바 시에 대해 공부했다. 지역도서관에 가서 시의 역사와 주민 분포, 재정 상태 등에 대한 자료를 모조리 찾아 읽었다. 인구 8만 정도의 다이아몬드바는 독립한 지 1년밖에 안 된 신생도시였다. 도시가 새로 생기면 보통 4년 안에 도시 전체의 마스터플랜을 세운다. 마침 시의원 선거 출마 시점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으로 다이아몬드바 시를 짓고 허물고를 반복했다.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나를 알리는 게 가장 중요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주민의 85%가 백인인 이 도시가 과연 아시안을 대표로 선출할까. 속으로 여러 번 나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선거 기간 중 토론이 8차례 있었다. 최대한 쉬운 말로, 단순하게 내 생각을 말했다.     “정부와 개인기업이 공조해서 작지만, 효율 높은 정부를 만들겠습니다. 여러분의 세금 부담을 확실히 덜어드리겠습니다. 도시계획 전문가로 일해 온 저의 경험과 노하우로 가장 합리적이며 안전한 도시를 만들겠습니다.”   이민자인 내가 변호사 출신인 다른 후보들을 토론으로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방법은 오로지 하나였다. ‘단순하라.’ 그런데 주민들이 나를 주목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지역 언론 기자들도 나를 철저히 외면했다. 인터뷰 기회조차 없었다. 선거 전날까지도 그랬다.   이쯤 되니 당선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개표가 시작되니까 괜히 출마했다는 후회감마저 밀려왔다. 그런데 초반부터 충격적인 개표 결과가 나왔다. 개표 결과는 내 생각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2위보다 1000표나 많았다. 밤 11시쯤 승리가 확정됐다. 나보다 놀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높이 들었다.     당시 미 전역에서 시의원에 출마했던 한인은 3명. 이중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나만 유일하게 당선됐다. 내 신분도 순간 확 변했다. 한인 언론과 한국 특파원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어떻게 위상이 이렇게 빨리 바뀌나.’ 이튿날 한인과 한국 언론에 ‘한인·한국 이민자 최초로 미국 시의원에 당선되다’라는 제목의 보도가 잇따랐다. 그날 이후 내 이름 앞에는 ‘최초’ ‘유일’이란 수식어가 계속 따라붙었다.   캘리포니아주의 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LA나 샌프란시스코처럼 큰 도시는 풀타임으로 일하는 시장이 모든 행정을 책임진다. 하지만 대다수 작은 도시들의 시장과 시의원들은 자기 직장이 따로 있다. 이들은 시의회에서 결정권만 쥐고 있으며 시 운영은 시티 매니저에게 맡긴다. 다이아몬드바도 그랬다. 나는 제이킴 엔지니어링을 운영하면서 매주 화요일 시의회에 참석했다.   시의원 임기는 4년이다. 그런데 시의원이 된 지 1년 반 만에 시장 자리가 공석이 됐다. 다이아몬드바 시장은 2년마다 5명의 시의원 중에서 선출한다. 다이아몬드바 시장 선출은 유권자가 아닌, 시의원들 투표로 결정된다. 나는 출마를 결심했다. 이어 또 다른 시의원 3명은 물론 나와 경쟁하려던 시의원까지 설득해 만장일치로 시장에 당선됐다. 시의원에 당선된 지 2년 만이었다. 최초의 한인 시장 당선이었다.   시장이 되고 나서 바빴다. 아침 8시면 집무실로 향했다. 8시부터 9시까지 시장 업무를 본 후에 제이킴 엔지니어링으로 출근했다. 파트타임 시장으로 일하면서 받는 급료는 600달러에 불과했다. 말 그대로 봉사활동이었다.   공약대로 나는 작은 정부 만들기를 실행에 옮겼다. 시청사를 지으려던 계획을 없애고 빌딩에 세를 얻어 들어갔다. 시장실도 책상 하나 겨우 놓을 정도로 좁은 방을 빌려 썼다. 시의회도 별도 건물 없이 카운티 환경부 회의실을 임대해 사용했다. 시 공무원 채용도 중단했다. 다이아몬드바와 같은 규모의 시를 운영하려면 통상 150명 정도의 공무원이 필요하다. 나는 파트타임 직원 2명을 포함, 총 24명의 공무원만 채용했다. 이런 노력으로 연 1000만 달러의 예산을 줄였다.   다이아몬드바는 효율적인 재정관리로 흑자를 냈다. 또 경찰서를 두지 않고 매년 LA 카운티 셰리프국과 계약을 맺고 외주를 줬다. 예산 절약에 주민들은 크게 감격했다.  원용석 기자김창준 사업 절정 시의원 출마 시의원 선거 시의원직 욕심 남기고 싶은 이야기

2022-01-19

[독자 마당] 치매를 막는 ‘웃음’

 친지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건망증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해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더니 건망증이 아니라 치매 초기란다. 그래서 약을 먹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치매는 시니어들이 기피하는 병 중 하나인데 내 친구가 그렇다 하니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된다.     80이 넘으면 4명 중 하나가 치매라는 통계가 있으니 걱정이 안될 수 없다.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이 치매가 아닌가. 아직까지 치매를 고치는 약은 없지만 증상은 늦출 수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어느 날 신문에서 귀한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100세가 넘은 어느 수녀님의 일상에 대한 얘기다. 너무도 정정하고 또렷한 기억들, 젊은 사람에 비해 조금도 손색없던 수녀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궁금했던 의료진들이 뇌를 검색해 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분의 뇌사진은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임을 보여주었다. 이분의 뇌가 이 지경인데 어떻게 그렇게 현명하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수녀님을 늘 부지런했던 분으로 회고한다. 규칙적인 생활과 봉사활동을 하면서 기쁘게 생활하셨던 것이 비결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뇌만 우리의 일생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의 팔다리, 손가락도 기억을 한다. 훈련을 통해 기억된 행동은 머리가 못 따라가도 숙련된 행동으로 일상생활에 나타난다고 한다.     뇌는 바보라 진심으로 웃는지, 가짜로 웃는지 구별 못하고 웃을 때마다 엔도르핀이 솟아난다고 한다. 이 설을 기반으로 웃음치료가 생겼다고 한다. 얼마나 다행인가. 늘 웃으면서 기뻐하며 살 때 치매도 멀찌감치 달아나고 만다.     욕심, 원망, 시비는 다 내려놓고 웃으며 살 때 우리의 인생은 밝아진다. 이것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이다.  노영자 / 풋힐랜치독자 마당 치매 팔다리 손가락도 욕심 원망 주위 사람들

2021-11-07

[이 아침에] 우리 삶의 두 가지 설거지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방울은 가뭄과 산불로 속절 없이 타들어 가던 마른 땅에 잠시나마 해갈의 기쁨을 안겼다. 남가주에 내린 비는 땅만 축이지 않았다. 팬더믹 여파로 잔뜩 긴장한 채 버티느라 강퍅해진 우리의 마음도 촉촉하게 적셨다.     온종일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에 마음이 괜스레 울적해지면서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잿빛 구름으로 덮인 하늘에 제비가 낮게 날고, 꿉꿉해진 땅에 흙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집마다 장독대 닫는 소리가 들렸다. 마당에 널어 놓은 빨래며 옥상에 말리던 고추를 거둬들이는 손길도 분주히 움직였다.     비가 오려고 하거나 올 때, 비에 맞으면 안 되는 물건을 치우거나 덮는 일을 비설거지 혹은 그냥 설거지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설거지는 먹고 난 그릇을 씻어 정리하는 일을 말한다. 또, 어떤 일을 치른 다음에 하는 뒤처리도 설거지라고 한다. 때로는 잘 드러나지 않기에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뒤치다꺼리를 설거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설거지는 나중에 하는 설거지와 미리 하는 설거지가 있다. 일이 끝난 후에 하는 정리와 마무리가 나중에 하는 설거지라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비해서 치우거나 덮는 일은 미리 하는 설거지다.     세상에는 나중에 하는 설거지도 많지만 미리 해야 하는 설거지도 꽤 있다. 여름 내 입었던 가벼운 옷을 집어넣고, 두툼한 옷을 꺼내는 겨울 채비도 미리 하는 설거지다. 앞길을 가로막는 어려움을 하나하나 치우며 가는 노력도 미리 하는 설거지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이것도 미리 하는 설거지다.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보내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못다 한 일을 마무리하고, 어수선산란했던 것들을 정리하는 설거지를 한다. 주소록에 적힌 사람들의 이름을 넣고 빼면서 관계의 설거지를 하기도 한다. 그동안 오해로 서운했던 기분은 풀고, 미안한 마음은 사과와 용서로 정리하는 것은 감정의 설거지다. 한 해 동안 앞뒤 가리지 않고 쏟아부었던 말을 어느 정도 쓸어 담는 것은 언어의 설거지다. 새로운 기대와 함께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다짐과 빈틈없는 자세로 새해를 맞으며 미리 하는 설거지도 한다.     인생에는 두 가지 설거지가 모두 필요하다. 인생을 잘 정리하는 뒷설거지도 있어야 하지만, 삶의 마무리를 잘 준비하기 위해서는 미리 하는 설거지도 중요하다. 인생을 정리하는 이 두 설거지에는 차이가 있다. 세상에서는 뒷설거지나 미리 하는 설거지가 모두 내 몫이지만 인생의 설거지는 그렇지 않다. 미리 하는 설거지는 내가 할 수 있지만 나중에 하는 뒷설거지는 누군가가 나 대신 해줘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정리할 때 하기 싫은 설거지 억지로 하지 않도록 미리 하는 설거지를 통해 인생이라는 그릇을 어느 정도 깨끗하게 치워야 할 때다. 욕심, 교만, 시기, 미움, 속상함, 억울함의 흔적이 덕지덕지 묻은 그릇의 설거지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낸 생채기는 누가 아물게 할 것인가?   비가 내리기 전 덮을 것은 덮고 치울 것은 치우는 비설거지를 하듯, 인생이 저물기 전 미리 하는 설거지를 통해 뒷설거지하는 이가 민망해하지 않도록 정리할 것은 정리하며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가을비를 통해 배웠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설거지 욕심 교만 겨울 채비 잿빛 구름

202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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