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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은혜의 단비

5월에 비가 내린다. 여름의 문턱에 들어선 남가주에서 비를 마중하는 일은 생소한 일이다. 밖에 내다 놓은 화분 속 꽃들이 춤추고, 막 피어나는 감꽃이 비를 피해 고개를 숙인다. 마지막 꽃을 피우던 동백은 힘을 내어 하늘을 향하고, 신이 난 선인장들도 꽃봉오리를 세운다.  
 
우산 좀 쓰라는 잔소리를 듣겠지만, 너무나 드문 이 봄의 여흥을 함께하고 싶어 성큼 빗속으로 걸어 들었다. 싸늘하게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인데 왠지 따뜻하다. 예상하지 못한 여름 속 봄비는 뜨거운 태양 속에 숨이 막히도록 톺아 올라가야 했던 풀들에 생기가 돌게 했다.
 
구름은 잠시 해를 가려주고, 비를 맞으며 꽃들도 풀들도 숨을 돌린다. 비는 그래서 물이 아니다. 물이 떨어지지 않고 비가 내린다. 어떤 농부도 다 돌볼 수 없는 잎자락 하나까지 비는 어루만지고, 필요한 구석구석까지 땅속으로, 잎 속으로 스며든다.  
 
안개비는 촉촉하게 가랑비는 가늘게 장대비는 굵고 장하게 모두를 두드리고, 적시고 흘러내린다. 심지어 먼지만 적시는 먼지잼도 있다. 갑자기 지나가는 소나기는 더위를 식히고, 비를 기다리는 농부에게는 약비가 되어 내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비가 있다. 단비는 달콤한 비가 아니라 꼭 필요할 때 알맞게 내리는 비를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래서 단비이다. 가뭄 속 단비는 약비이고, 뜨거워 숨 막힐 때 단비는 소나기이며, 두려움 속 단비는 꿀비이고, 유혹 속에 흔들릴 때 단비는 모다깃비, 바로 뭇매를 치듯이 세차게 내리는 비이다. 단비는 하나님의 시간을 우리 시간 속에 내려 준다.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의 어리석음을 덮으며 내려주신다.
 
선한 일을 행하다 낙심될 때마다, 우리의 논밭은 갈라진다. 불의한 세상에 깊은 상처를 입을 때마다, 곡식들은 쓰러지고 병이 든다. 내 필요 없는 고집과 욕심에 속이 썩어 들어갈 때마다, 우리는 말라간다. 하나님의 단비를 구해야 하는 시간이다.
 
죄와 싸울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선을 행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죄를 죽이려 한다면 죄와 죄인을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루터가 말했듯이 주님은 자신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되셨고, 박해자요 신성 모독자요 잔인했던 바울이 되셨고, 간통자인 다윗이 되셨다. 그리고 죄인의 부활과 생명이 되셨다. 신자는 이 은혜의 비를 맞아야 사는 사람이다. 단비는 땅만 적시지 않는다. 알맞을 때 내리는 비는 다가올 햇살을 준비한다. 은혜는 벅찬 생명이다.
 
[email protected]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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