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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한자어는 어느 나라 말인가?

한자와 한자어는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 한글과 한국어가 완전히 다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문자와 언어를 구별하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한글날에 한국어가 매우 과학적이라는 말을 듣는데, 이 말은 이상한 주장입니다. 한글은 과학적일 수 있지만, 한국어는 과학적이라는 말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한자와 한자어는 문자와 어휘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쓰고 있는 이 글에도 한자어는 많지만 한자는 전혀 쓰지 않고 있습니다. 한자를 쓰는 것과 한자어를 쓰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순우리말을 쓰자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순’이 한자어라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기도 합니다. 한자어 없는 언어생활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기초어휘에도 이미 한자어가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기초어휘란 오랜 역사에도 변하지 않고 사용되는 어휘입니다.     따라서 비교언어학의 주 대상입니다. 자연이나 신체어, 색채어, 친족어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하늘, 해, 달, 별, 땅과 같은 자연어나 머리, 눈, 코, 귀, 입 등의 신체어와 검다, 희다, 푸르다, 붉다와 같은 색채어, 아들, 딸, 엄마, 아빠 등과 같은 친족어가 기초어휘에 해당합니다. 모두 순우리말이죠.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기초어휘 속에서도 한자어휘가 발견됩니다. 대표적으로 산(山)과 강(江)이 있겠네요. 또한 초록색이나 주황색, 남색은 당연히 한자어입니다. 친족어 중에도 형, 동생, 삼촌 등은 한자어입니다. 이렇듯 한자어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예전에 어린아이가 한문을 배우던 책인 소학을 한글 창제 이후 번역을 하게 됩니다. 두 가지 종류가 출간되는데, 하나는 번역소학(1518년)이고, 다른 하나는 소학언해입니다. 번역소학과 소학언해는 한문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두 태도를 보여주며, 특히 번역소학에는 의역이 많아서 우리말 속에 한자 어휘가 얼마나 널리 사용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물론 한문을 배우는 책이기 때문에 한자어가 많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자어가 얼마나 이른 시기에 우리말 속에 자리 잡았는지를 살펴보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번역소학에는 한자가 병기되어 있는 어휘가 나타나서 흥미롭습니다. 주로 고유명사인 인명이나 지명은 한자를 먼저 쓰고, 우리말을 적습니다. 공자, 안연, 맹자 같은 표현이 그 예가 됩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글에서 핵심어, 주제어로 보이는 말은 한자를 함께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덕, 학문, 강론, 쇄소응대, 선생 등의 단어는 한자에 우리말을 병기하여 쓰고 있습니다. 현재도 여전히 가독성을 위해서나 핵심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한자를 섞어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한자로 쓰지 않은 한자어입니다. 이 말들은 한자로 쓰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전제가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물론 지식인층이 주 대상일 수는 있었지만, ‘소학’이 어린아이용 학습서라는 점을 미루어 볼 때 한자어가 이미 생활 속에 널리 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재상, 례, 현인, 온공, 경계, 부모, 덕, 구하다, 후, 자제, 피하다, 흉하다, 길하다는 한자와 병기된 표기로 나타나기도 하고, 한글로만 쓰이기도 합니다. 혼동이 있음을 볼 때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이는 듯합니다.     번역소학에 한자로 쓰이지 않은 말을 보이면 다음과 같습니다.     500년 전에도 쓰이던 어휘를 보면서 한자어는 어느 나라 말인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한자어 나라 친족어가 기초어휘 한자 어휘 신체어 색채어

2024-07-14

[문장으로 읽는 책] 산책의 언어

눈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날씨 중 가장 감각적인 날씨다. 만질 수 있고 뭉칠 수 있다. 밟을 수 있고 그 위에 누울 수 있다. 냄새를 맡고 먹어볼 수도 있다. 겨우 발자국이 날 만큼 적게 내린 자국눈은 금세 사라지지만, 깊게 쌓인 길눈은 단단하게 굳어 사람이 건널 수 있는 눈다리가 된다. 싸락싸락 내린 쌀알 같은 싸라기눈은 사박사박 쉽게 밟고 걸어갈 수 있지만, 발등이 빠질 정도로 내린 발등눈은 뽀드득 소리와 함께 발이 푹푹 빠진다. 고체였다가 액체가 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쌓이기도 한다.   우숙영 『산책의 언어』   아무 데나 펼쳐진 페이지부터 읽으면 된다. 하늘과 땅, 식물과 동물, 날씨와 계절, 시간 등 자연에 대한 짧은 글이 담백하다. 매 장 뒤엔 어휘 사전도 실었다. 윗글만 해도 ‘자국눈’ ‘길눈’ ‘발등눈’ 같은 처음 들어본 우리말이 아름답다.   저자는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나무와 꽃, 초록색과 붉은색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가난한 언어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소개했다. 자연에 대해 풍부한 언어를 갖게 된다는 건, 세상에 대해 풍부한 이해를 갖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산책하다 말고 쭈그리고 앉아 꽃 사진을 찍다 ‘너도 나이 들었구나’라는 말을 들었다. 친구의 말대로 이제야 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꽃의 시점으로 바라본 세계가, 나와 인간이 중심이 아닌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라면서 잊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조각이기도 하고, 이 나이가 되어서야 발견한 새로운 세계이기도 하다. 세계의 확장이었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산책 언어 동물 날씨 계절 시간 어휘 사전도

2024-01-31

[아름다운 우리말] 수화, 수어, 손말

한자어의 사용과 한자의 사용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이 점을 혼동하기도 합니다. 종종 문자와 언어를 헷갈려 하는 겁니다. 한국어가 과학적인 언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대부분 한글을 잘못 이야기하는 경우입니다. 한자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서 뿌리가 한어(漢語)에 있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자로 쓸 수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배추, 상추 등은 한자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하지만 한자어라고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붕어, 숭어, 잉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원적으로는 ‘부어, 수어, 이어’에서 온 말이지만 한자로 쓸 수 없기에 한자어라고는 잘 하지 않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한자어를 무조건 고유어로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어는 사회적 산물이기에 사회성을 얻지 못하면 어휘 목록에 들어올 수 없고 떨어져 나가기도 합니다. 한자어를 고유어로 바꾸려는 여러 시도가 남한에서도 있었고, 북한에서도 있었습니다만 실패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어색해 하고 본래의 단어와는 차이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대학을 ‘큰 배움터’로 바꾸려는 시도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하긴 고유어라는 말도 한자어입니다. 순우리말이라는 말에도 ‘순(純)’이라는 한자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한편 새로 생겨나는 한자어에 대해서는 고민이 됩니다. 새로 생기는 말부터는 고유어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논의가 있습니다. 좋은 의견입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언중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그럼 왜 새로 생기는 말에도 한자어가 많을까요? 그건 한자어의 근본적인 장점과 관련이 있습니다.   첫째, 한자어는 단음절로 이루어져 있어서 단어의 합성이 매우 용이하고 단어의 길이가 짧습니다. 생각해 보면 한자어를 고유어로 바꿀 때 길이가 길어지는 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한자어의 특성을 경제성이 있다고 합니다. 복잡한 의미를 가진 어휘일수록 한자어는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특히 이름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자연문화유산 같은 말을 순우리말로 바꾸면 어떨까요? 아마 아주 긴 단어가 될 겁니다.   둘째, 한자어는 비교적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어휘에 적합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비단 한자어만의 특성은 아닙니다. 외래어가 고유어에 비해 개념적입니다. 전문용어의 사용에 외래어가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고유어는 주로 감성적인 표현에 장점을 보입니다. 감정을 나타내는 형용사나 의성, 의태어를 외래어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새로 말을 만들 때 고유어도 길이가 지나치게 하지 않으면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개념어가 아닌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순우리말을 써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수어(手語)와 수화(手話)라는 용어를 보면서 그냥 ‘손말’이라고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화라는 말을 수어로 바꾸어 사용하는데 이럴 때 우리말 표현인 손말이면 간단할 것 같습니다. 구어는 입말, 문어는 그냥 글말이라고 하면 충분합니다. 한자어로 만들기 위해서 힘을 쓰지 않아도 짧고 명료한 우리말이 되는 겁니다. 새 단어를 만들 때마다 한자어와 고유어는 제자리에서 잘 쓰일 수 있게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수화 개념적인 어휘 어휘 목록 의성 의태어

2023-02-26

[문장으로 읽는 책] 산책의 언어

눈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날씨 중 가장 감각적인 날씨다. 만질 수 있고 뭉칠 수 있다. 밟을 수 있고 그 위에 누울 수 있다. 냄새를 맡고 먹어볼 수도 있다. 겨우 발자국이 날 만큼 적게 내린 자국눈은 금세 사라지지만, 깊게 쌓인 길눈은 단단하게 굳어 사람이 건널 수 있는 눈다리가 된다. 싸락싸락 내린 쌀알 같은 싸라기눈은 사박사박 쉽게 밟고 걸어갈 수 있지만, 발등이 빠질 정도로 내린 발등눈은 뽀드득 소리와 함께 발이 푹푹 빠진다. 고체였다가 액체가 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쌓이기도 한다.   우숙영 『산책의 언어』   아무 데나 펼쳐진 페이지부터 읽으면 된다. 하늘과 땅, 식물과 동물, 날씨와 계절, 시간 등 자연에 대한 짧은 글이 담백하다. 매 장 뒤엔 어휘 사전도 실었다. 윗글만 해도 ‘자국눈’ ‘길눈’ ‘발등눈’ 같은 처음 들어본 우리말이 아름답다.   저자는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나무와 꽃, 초록색과 붉은색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가난한 언어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소개했다. 자연에 대해 풍부한 언어를 갖게 된다는 건, 세상에 대해 풍부한 이해를 갖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산책하다 말고 쭈그리고 앉아 꽃 사진을 찍다 ‘너도 나이 들었구나’라는 말을 들었다. 친구의 말대로 이제야 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꽃의 시점으로 바라본 세계가, 나와 인간이 중심이 아닌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라면서 잊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조각이기도 하고, 이 나이가 되어서야 발견한 새로운 세계이기도 하다. 세계의 확장이었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산책 언어 동물 날씨 계절 시간 어휘 사전도

2022-08-29

[아름다운 우리말] 심심한 사과가 심심하다

문해력이라는 어려운 말이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한국어 어휘 공부를 평생 하고 있는 저도 문해력이라는 말을 들은 지 그리 오래 안 되었고 사용해 본 적도 거의 없습니다. 굳이 보자면 학술어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도 문해력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정확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적을 겁니다. 주로 문해력의 개념을 어휘력과 혼동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해력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젊은이나 청소년이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나무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실 문해력은 나이와 그다지 상관없습니다. 요즘 청소년이라서 더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 자주 쓰던 말을 나이 어린 사람이 잘 모르고, 나이 어린 사람이 요즘 쓰는 말을 나이 많은 사람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겁니다. 자주 안 쓰는데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이해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문해력도, 어휘력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어휘를 공부하는 저는 어휘를 더 많이, 정확하게 아는 것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휘를 정확히 사용하는 게 내 생각을 깔끔하게 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말의 맛도 더 살아납니다.     저는 문해력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답답한 부분이 있습니다. 문해력이 없는 게 어찌 아이들만의 탓일까요? 아이들의 흥미를 고려하지 않은 내용, 비비 꼬아놓은 글을 읽고 답을 고르게 하는 평가, 쓰고 싶은 다양한 글감을 다루는 시간이 없는 등 교육의 문제는 없을까요? 문해력의 문제에는 많은 현상이 연결됩니다. 또한 지나치게 어려운 단어나 표현을 쓰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없을까요?     최근에 ‘심심한 사과’에 대한 이야기가 문해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예로 등장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어휘력의 문제가 아니라 심심한 사과의 진정성에서 출발하였다고 봅니다. 요즘에는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에서 깊은 사과와 진정한 사과의 마음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 표현이 변명의 말처럼 들리는 것은 저뿐일까요? 마치 유감을 표명한다는 표현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저는 종종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잘못이 드러나서 기분이 좀 그렇다는 것인가 헷갈립니다. 변명의 느낌 아닌가요?   저에게는 변명으로만 들립니다. 그러니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을 오해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솔직하게 하여야 문해력이 생깁니다. 듣는 사람이 알아들을 만한 말로 하는 게 의사소통의 시작입니다. 저에게도 유감스럽지만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은 그저 심심한 찌개를 먹듯이 별 감흥이 없습니다. 의사소통은 내가 한 말을 듣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 이해해야 완성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문해력은 상호적입니다.   어쩌면 현재의 문해력을 늘리는 지름길은 한자공부를 강화하는 것일 겁니다. 주로 모르는 어휘표현은 한자어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가능하면 책이나 신문에 한자를 병용하면 좋겠죠. 고전을 많이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겁니다. 그걸 원하는가요? 교육과정을 바꾸는 논의를 시작해 보면 어떤 결말이 나올까요? 제가 볼 때는 생산적 결말이 아니라 다툼만 일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 더 디지털 문해력이라는 말은 또 무슨 뜻인가요? 그 말이 더 어렵네요. 역시 이 말도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 디지털 문해력이 부족해서 문제라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디지털 문해력이란 말이 무슨 의미인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본인의 생각과는 많이 다른 뜻일 겁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사과 한국어 어휘 생산적 결말

2022-08-28

[시로 읽는 삶] 어휘의 의미 확장

슬픈 시를 쓰려고 배고프다, 썼는데 배곺으다라 써졌다/ 곺 뒤에 커서를 놓고 백스페이스키를 누르자 정말 배가 고팠다// (…) 그래, 슬픔은 늘 고프지/ 어딘가가 고파지면 소리 내어 울자, 종이 위에 옮겼다// 세면대 위에 틀니를 내려놓듯 덜컥, 울음 한마디 내려놓고 왔습니다// 그뿐인가 했더니/ 옆구리 어디쯤에 쭈그리고 있던 마음, 굴절되어 있네요   -이선락 시인의 ‘반려울음’ 부분       반려(伴侶)의 사전적 의미는 ‘짝이 되는 동무’이다. 가장 가까이에서 동고동락하는 사이로 인생을 함께하는 배우자를 반려자라고 하듯이 마음을 나누고 의지하는 관계에서 쓰인다.     요즈음 반려동물, 반려식물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반려동물은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지하며 가까이 두고 기르는 동물인 개, 고양이, 새 따위를 일컫는다.     애완동물이라는 말 대신 언젠가부터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빈도 높게 쓰인다. 개나 고양이를 가족의 일환으로 보는 까닭이기도 하고 애완동물에서 ‘완’이 완구처럼 유희의 대상 같은 뉘앙스를 갖는다며 대체 용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반려식물은 집안에서 키우는 식물을 아우르는 말일 것이다. 지인 한 분은 다육식물인 다육이를 키우고 있다. 다육이는 건조한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잎이나 줄기 혹은 뿌리에 물을 저장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는 선인장과의 식물이다. 실내에서 기르기가 비교적 용이하다.   팬데믹으로 집 안에서의 생활이 늘어나는 요즘 다육이를 키우는 일은 적적함을 달래주기도 하고 무료함을 해소할 수 있어 정서의 안정을 준다고 한다. 식물도 말을 알아듣는다고 믿는 그는 식물에게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고 말을 걸기도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많은 사람은 개나 고양이는 배반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을 가까이 하다 보면 이런저런 연유로 상처를 받곤 하는데 개나 고양이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으로 결코 주인을 섭섭하게 하지 않고 의리를 지킨다는 것이다.     가까이에 두고 기르는 동물이나 식물에 반려라는 명사를 앞세워 우대하게 이른 것은 동·식물의 가치적 이해가 달라진 것도 있겠고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 동일하다는 인식변화의 결과인 듯하다.    현대인들이 동물이나 식물을 키우는 행위 자체보다 더 크게 의미를 확장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을 상징적으로 보이는 것 아닌가 싶다. 사람 사이의 단절이 늘어나는 우환이 잦은 시대에 심리적으로 기대고 의지할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시 ‘반려울음’은 올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이다. 울음을 반려로 삼고 가겠다는 말인 듯하다. 이쯤 되면 시인이 지닌 내공이나 시적 중력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울음도 짝이 되고 동무가 될 수 있다면 내칠 이유가 없다. 인생을 울리는 울음이나 웃게 하는 웃음이나 동무로 삼고 보면 마음을 담아내는 감정의 다름일 뿐이다. 울음과 웃음이 불행이나 행복의 차원을 넘어선다. 시인의 정서적 담력이 남달라 보인다.   ‘반려고통’ ‘반려상처’ 뭐 이런 말들도 나올법하다. 어떤 환경에서도 마음의 윤택을 누리며 살아가는 고수들이란 누구라도 친구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울음을 꺼내 해학의 옷을 입힐 줄 아는 자들이다. 아무리 두려운 적수라도 친구가 되고 나면 내 편이 된다. 울음도 내 편이 되고 보면 예쁜 구석이 많이 보이고 한계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이정표의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조성자 / 시인시로 읽는 삶 어휘 의미 의미 확장 울음과 웃음 사전적 의미

2022-01-18

[아름다운 우리말] 우리말과 깨달음

저는 한국어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한국어 중에서도 주로 어휘와 사고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원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교육학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오늘은 제가 연구하는 분야 중에서 우리말과 깨달음에 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말 어휘 몇 개와 그 속에 담긴 우리의 생각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저는 요즘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지금 듣고 있는 수업도 처음에는 ‘우연찮게’ 듣게 되었습니다. 일본어 상급 독해 선생님이 소개해 주신 것인데,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어서 자유롭게 읽고 말할 수 있는 이 수업을 우연찮게 듣게 된 것입니다. 제가 계속 우연찮게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 말을 많은 한국 사람들은 우연히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대다수의 사람은 ‘우연찮게’를 ‘우연히’와 같은 단어로 생각합니다만 사실은 정반대의 의미입니다. 우연찮게는 ‘우연이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연찮게’라는 말을 쓰는 모든 장면은 우연이 아닌 게 됩니다. 당연히 제가 일본어 수업을 듣게 된 것도, 여기에 오랜 기간 칼럼을 쓰고 있는 것도, 여러분께 오늘 이렇게 우리말에 관해 이야기를 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닌 겁니다. 필연입니다.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그래서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만남이 그렇습니다. 모두 우연찮게 만난 것이기에 소중합니다. 저는 우리가 우연찮게라는 말을 쓸 때마다 깨달음이 있기 바랍니다.   다음으로는 ‘반갑다’라는 단어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반갑다라는 말은 다른 말로 번역하기가 어려운 우리말입니다. 영어에서는 단어가 아니라 문장으로 번역하게 됩니다. ‘Nice to meet you’ 정도가 반갑다는 의미일 겁니다. 일본어에도 마땅한 표현이 없습니다. 굳이 일본어로 번역하면 ‘aeteureshii’ 정도일 겁니다. 그렇다면 반갑다라는 말은 한국인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언어에 없는 우리말 표현에 주의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갑다는 ‘반’과 ‘갑다’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반’은 무슨 뜻일까요? 저는 반의 의미를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련이 있는 단어로는 ‘반짝반짝’이 있습니다. 빛이 나는 것을 표현하는 의태어입니다. 반짝은 모음교체를 하면 ‘번쩍’과 관련이 있습니다. 번쩍의 ‘번’도 빛의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번이 빛의 의미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어에는 ‘번개’가 있습니다. 번개는 자연현상 중 빛이 나는 현상입니다. 소리는 ‘우레’라고 합니다. 한 단어를 더 이야기하자면 빛이 나는 벌레 ‘반딧불이’가 있습니다. 반디라고도 하는 벌레인데, 이 때 ‘반’이 빛이라는 의미이고 ‘디’가 벌레라는 뜻입니다. 진물이 나는 벌레는 ‘진디’입니다.   따라서 반갑다는 빛이 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내 모습에서 빛이 난다는 겁니다. 밝아진다는 의미입니다. 기쁜 거죠. 저는 ‘반갑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얼굴이 어두우면 거짓이라고 생각합니다. 반갑습니다라고 말할 때 자신의 표정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저는 사람들을 만날 때 기쁘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갑다는 말이 진심이 되니까요.   마지막으로 ‘아름답다’라는 말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아름답다의 ‘-답다’ 앞에는 주로 사람에 해당하는 표현이 옵니다. 그런데 중세국어를 살펴보니 아름의 의미가 나(私)의 의미로 나타납니다. 아름답다는 말은 어원적으로 보자면 나답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사람을 흉내 내지 않고 나의 가치만 발견해도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우리말 깨달음 우리말 표현 우리말 어휘 한국어 교육학

202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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