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읽기] 고구마같이 생긴 달
아침저녁으로 차고 맑은 바람 불어오니 과연 시월이다. 뜨거워진 머리를 식혀주고, 몸 곳곳에 채워지는 염증도 호호 불어주는 가을바람. 그 덕에 숨 쉴 만하니 달빛 또한 진하게 느껴진다. 멀리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이지러진 달이 손톱만 해졌다. 모처럼 밤 산책 나온 사람들 사이로 한강을 걸었다. 강은 그대로인데 달빛은 유유히 흐른다. 문득 낮은 음성으로 ‘임술지추(壬戌之秋)’로 시작하는 ‘전적벽부(前赤壁賦)’를 호기롭게 인용하던 벗이 떠올라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시간을 불러 세웠다. 멈추었으나 그치지 못하고 마음이 산란하다. 아무렴 어쩌랴, 아 시원해라. 그간 거닐던 숱한 강변이 한눈에 스쳐 지나간다. 어느 나라, 어느 곳의 강이든 강바람에는 다 닮은 구석이 있다. 시원하면서도 애잔하고, 가볍다가도 금세 맘이 축축해지는. 비록 적벽은 아니지만, 계묘지추(癸卯之秋)에 거니는 한강변도 그럴싸하다. 이렇듯 한참 운치에 빠져 있는데, 지인에게서 고구마순을 볶아오겠다는 문자가 왔다. 훗훗. ‘전적벽부’를 감상하는데 고구마순 볶음이라니, 나도 모르게 귓가에 웃음이 걸렸다. 말 나온 김에 고구마 얘기나 해드려야겠다. 두어 달 전, 범어사에서 무비 큰스님을 친견하고 돌아오는 길에 용학 스님으로부터 들은 낭백(浪伯) 스님의 환생담이다. 동래관찰사 조엄(1719~1777)의 실화라 한다. 사연은 이러하다. 불교가 핍박받던 조선시대, 범어사에 낭백 스님이라는 분이 계셨다. 스님은 가난한 백성을 위해 밭을 개간하여 야채를 심어 먹게 해주고, 샘을 파 물을 마실 수 있게 해주었으며, 밤에는 짚신을 삼아 행인에게 나눠주었다. 그러나 억불정책으로 날이 갈수록 부역과 핍박이 심해지니, 스님께서 원(願)을 세워 기도하기를, “빨리 이 몸을 바꿔 다음 생에는 높은 벼슬에 올라 나쁜 제도를 없애리라” 하였다. 그리 작정한 스님은 숲속을 사흘간 헤매다가 굶주린 호랑이에게 육신을 보시하고 생을 마쳤다. 입적하기 전 스님은 대중 앞에서 세 가지 서원을 했다고 한다. 첫째, 관리들이 절에 오면 꼭 일주문 앞에서 내리는데, 스님은 아래쪽 어산교에서 내리겠다고 했다. 둘째, 입적한 뒤 쓰던 방을 봉해두면 훗날 찾아와 직접 열 것이라 했으며, 셋째, 절에 어려움은 없는지 주지에게 물어 해결할 테니, 이 세 가지를 실천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이 환생해서 온 줄 알라는 말씀이었다. 그 후 40여 년이 지나 제자들조차도 노승이 되었을 무렵, ‘조엄’이라는 한 높은 관리가 찾아왔다. 그는 상례를 깨고 어산교 앞에서 말을 내려 절까지 걸어 올라왔다. 법당을 참배한 뒤 도량 구석구석 텃밭까지 둘러보고는 자신이 쓰던 방으로 가 폐문을 뜯었다. 문을 열고 바라보니 시선이 머무는 그 자리에 ‘문을 연 자가 곧 문을 닫은 자니라(開門者是閉門人)’라고 쓰여 있었단다. 즉 문을 연 자 조엄이 바로 문을 봉한 자 낭백 스님이라는 얘기다. 전생에도 많은 이들을 구하며 생을 바친 스님은 다시 태어나서도 자신이 서원한 대로 살았다. 낭백(조엄) 스님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가 오직 백성이었다. 그분의 유산 가운데 하나가 고구마다. 통신사로 대마도에 갔다가 고구마 종자를 가져와 보급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된 사연이다. 용학 스님께 이 재미난 얘기를 들었는데, 생뚱맞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세상만사가 다 꿈이련만, 낭백 스님도 분명 알고 계셨을 텐데, 그러한 줄 알면서도 저리 생을 바꿔가면서까지 보살행을 실천하시니 그 원력이 실로 대단해서다. 특히 계급사회인 조선 땅, 굶주린 백성, 핍박받는 출가자, 어느 것 하나 흡족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현실에 맞게 구상하고, 구체적으로 자비를 실천하셨으니 말이다. 마음만 고요하면 되는 것처럼 쫑알거리던 나는, 종교가 행해야 할 깊은 뜻은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고 있었던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혜능 스님은 『육조단경』에서 “불법(佛法)이란 세간에 있는 것이며, 세간을 떠나서 불법을 찾는 것은 토끼의 뿔을 찾는 격이다”라고 했다. 고통바다인 이 사바세계가 곧 진리의 바다라는 뜻이다. 결국 우리가 각자 머무는 자리에서 지혜와 자비를 펴는 것이 곧 진리를 구하는 길이다. 앗, 고구마! 달이 고구마로 변했다. 세상은 무상하며, 그 어떤 것에도 고정된 실체가 없다. 그것을 알기에 현상계에서는 더 빠른 변화를 감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삶도 어디쯤에선 끝날 것을 생각하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하지만 기왕에 태어났으니, 어느 정도는 자비를 실천하다 떠나면 좋겠다. 거창하게 깨달음을 논하지 않고도, 보살행 운운하지 않고도 그저 따뜻한 마음 한 자락 나누면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곧 깨달음이요, 보살의 삶일 테니. 원영 스님 / 청룡암 주지마음 읽기 일본 고구마 고구마 얘기 고구마 종자 무비 큰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