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마당] 노인의 특권
수필
모처럼 한국을 방문해 친구들을 만나니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 건강 타령이 주를 이룬다. 건강에 좋다는 음식이나 약 정보 교환도 활발하다. 그중에서도 공통으로 호소하는 것은 자꾸 깜빡깜빡하는데 혹시 치매가 아닌가 겁이 난다는 거다. 아무리 병은 자랑하라고 했다지만 오랜만에 모여서 아프다는 애기만 하다 헤어지면 기분이 씁쓸하다. 한때는 패기 만만하고 자기 영역에서 한몫하던 친구들이 어쩌다 이렇게 초라한 모습이 되었단 말인가.
그런데 이건 친구들만의 처지가 아니고 바로 내 모습이 아닌가. 얼마 전 분명히 무엇이 필요해서 시장에 갔는데 그 무엇이 생각나지 않아 다른 것만 사서 온 적이 있다. 집에 와서 잡채를 무치다가 그것이 참기름이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나이 먹으면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같은 말을 자꾸 되풀이한다. 아들은 나도 모르게 한 말을 또 하면 “엄마, 한 번만 더하면 100번째예요” 라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또 필요한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이 얘기 저 얘기가 꼬리를 문다. 그러면 아들은 “용건만 간단히!”라며 핀잔을 준다. 아들에게 “너도 늙어봐라” 응수하지만 나이 탓인지 서러운 생각이 든다.
미국의 어느 시인은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라고 했다. 노인이어서 갑자기 그런 게 아니라 젊은 사람이 그대로 늙어서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평생 젊은이로 살지 못하고 늙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젊은이들은 그들의 젊음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아들이 무심코 내뱉은 말이 온종일 귓가를 맴돌았다. 노인은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성경은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나이 들면 외양은 망가져도 지혜와 판단력은 깊어진다. 아프리카에서는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도 전해진다. 노인은 지혜와 경험으로 젊은이를 인도해 주는 길잡이가 되고 그들을 받치는 기둥이라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문제는 쇠약해지는 육체적 건강이다. 아름다운 꽃도 언젠가는 시들 듯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시간이 흐르면 쇠퇴하기 마련이다.
현실이 된 100세 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생각해 봤다. 문득 오래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시청한 EBS 다큐프라임 ‘황혼의 반란’ 내용이 떠올랐다. 78~89세까지의 남녀 다섯 명이 한데 모여 30년 전과 같은 환경에서 7일 동안 생활하는 실험이었다. ‘마음 챙김의 어머니’라 불리는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엘렌 랭어가 했던 ‘시계 거꾸로 돌리기’와 같은 실험인데, 이들이 30년 전으로 돌아간 환경에서 생활할 때 심신의 건강 상태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시간여행이었다.
참가자들은 잘 걷지 못하거나, 우울 증세가 있거나, 요리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등 다양한 모습이었다. 이들은 실험 전과 후 면밀하게 건강 진단을 받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들이 30년 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변화를 보였다. 또한 체중과 체지방이 줄고,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었으며, 요리를 비롯해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늘어났다. 불과 일주일 만에 일어난 긍정적 결과에 처음에 반신반의했던 참가자들도 놀라워했다. 그 실험은 누구나 피하고 싶은 노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다.
생각 난 김에 그 실험을 나에게 적응해 봤다. 젊은 스타일의 옷을 입고, 몸의 자세나 걸음걸이에도 신경을 썼더니 “젊어 보이는데 무슨 좋은 일 있어요?” 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그래 봤자 나이는 못 속이는지 요즘 몸의 여기저기가 탈이 나서 병원을 들락거린다.
어머님은 101세에 세상을 뜨셨다. 생전 한 번도 아프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원래 건강하셔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얼마 전 집안일을 도와주시던 분을 통해 어머님이 편찮으셨다는 말을 들었다. 자식들에게 부담이 될까 봐 당신 혼자 고통을 참으며 얘기하지 않으셨다. 어머님은 죽음을 앞두고도 그렇게 의연하셨다. 나도 어머님처럼 우아하게 늙고 싶다.
친구들 얘기의 끝마무리는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는 한탄이다. 그렇다고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모진 세월 긴장하며 살아왔는데 이젠 모든 것 풀어놓고 느슨하게 살고 싶단다. 그 힘든 과정을 되풀이 하고 싶은 생각은 꿈에도 없다는 것이다. “노년의 행복감이 청·장년 보다 높다”는 김형석 교수의 말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기도 했다. 또 데카르트는 “궁핍하지 않고, 건강하고, 자식들이 효자면 인생에서 83세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어느 책에 썼다.
교회에 가기 위해 한껏 치장하고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 어떠니? 옷차림이 너무 야하지 않니?” 아들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엄마 나이면 아무도 신경 안 써요, 거리에서 물구나무를 서도 아무도 안 쳐다봐요.” 그러면서 “그것이 노인의 특권이에요” 라고 말했다.
김이 샜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노인의 특권’이라는 아들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들은 노인에게 별로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좀 주책을 떨어도 봐주고, 웬만한 흠은 눈감아준다. 다른 사람 시선에 신경 쓸 필요 없으니 자유로워서 좋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궁금할 터이지만 나이 들어 좋은 점은 예상외로 많다. 우선 시간이 넉넉해 유유자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한가롭게 여행도 다니고 평소에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도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나이 듦이 젊음보다 더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솔직히 말해 늙는 것이 뭐 그리 좋겠는가. 어찌했든 결국 나이는 먹고 마는 것, 내게 찾아온 노년의 나이를 힘껏 껴안아 주며 노인의 특권을 누리고 싶다.
배광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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