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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마당] 1.5도 마지노선

  매주 토요일 새벽이면 바다에 나갈 채비를 서두른다. 물 한잔을 마시고 사과와 바나나를 챙긴다. 두어 시간 모래 위를 걸어 다니려면 땅에서 걷는 것 보다 두 배의 힘이 필요하다. 한 주가 다르게 배구공이 파도에 휩쓸려 나갈 우려가 들 만큼, 모래사장의 폭이 아주 좁아지고 있다.   그래선가? 공놀이하는 그룹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도 해수면 높낮이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을까 싶다. 바닷가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가 하면 운동을 못 하게 될까 봐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여전히 걷고 뛰면서 젊음의 기량을 뽐내는 것은 원초적인 특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이 특권이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청지기의 특권을 남용했고 돌보는 마음을 잃어버린 탓이 아닌가 한다.   해수면 상승이 빈말이 아니다. 모래사장 가운데에 놓여있던 쓰레기통들이 파도에 휩쓸려 나가는 일들이 빈번해져 아예 걷어가 버렸다. 배구장 네트에 가까이 넘어들어온 바닷물이 저러다가 때가 되면 빠져나가겠지 하는 느긋함 또한 사람들의 마음인 것 같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그런데 빠져나갈 기미가 없이 점점 쓰레기통이 줄어들며 나머지는 해변 내려오는 입구 쪽으로 옮겨놔 버렸다. 주워 모은 쓰레기가 무거워지면 한 블록 이상을 걸어가서 버려야 한다. 크고 튼튼한 바스켓을 사용하는 것도 봉지보다는 무겁지만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편리함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어느 누가 귀찮은 짓을 자청하겠는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쓰레기를 줍기 위해 일주에 한 날은 새벽잠을 설치며 청소부 여자를 따라 운전을 해주는 한 남자는 해수면 범람으로 모래사장 폭이 좁아져 가는 현실을, 그윽한 눈빛으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바로 저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거든. 바다야~ 바다야~ 빨리빨리 덮어라~.” 헥, 무슨 심보람 “운동하고 산책하는 저 사람들은 어떡하라고.” “어떡하긴 인간들이 바다에 가까이 해봐야 쓰레기밖에 더 버려? 먼발치에서 내려다보는 게 바다를 위해서 더 좋은 거야.” “내 할 일이 없어지는 데 좋긴 뭐가 좋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내가 이렇게 따라다니는 거 좋아서 하는 줄 알아? 남의 쓰레기 치우고 다니느라 강산이 두 번 변했어.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를 계산 좀 하고나 살지.”   해수면 상승을 보고 쾌재를 부르는 그 회심의 미소에는 이유가 있다. 바닷물이 모래밭을 덮으면 여자는 청소부 노릇을 그만둘 것이고 남자는 제대로 새벽잠을 자게 된다. 남자의 각본이 임박해진 현실을 예고하듯 기후 학자들도 2050년쯤이면 캘리포니아 반경 1200마일이 바닷물에 잠길 거라는 예상과 사막화를 경고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도 기후난민 대이동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상이 그냥 기우로 끝나기를 숨죽여 기다리는 일밖에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작은 일들뿐이다. 그야말로 쓰레기를 주우며 작은 일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이루어질 수 있어서 행복을 누리는 것도 좋겠지만 자기만족과 행복감에 담긴 의미가 다르다.   때로는 만족스럽지 않아도 행복해질 수가 있다. 조건이 붙는 행복은 자기만족을 위해 원하는 것을 구하고 채우는 과정을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문제의 발단이 될 때가 있는데 기후를 상승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하며 온실효과를 가중해 지구 공동체를 희생양으로 삼아 자기만족을 꾀하는 행복은 행복이 아니다. 누구나가 이것을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좋은 일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소망이다.   나는 나에게 주워진 특권을 많이 포기했다. 아니, 지구와 자연에 반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지구와 자연이 치유될 때 우리의 후손들 또한 고통을 겪지 않고 안전한 환경 속에서 그들의 삶을 지속시키도록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조건이 붙을 때 그것이 진정한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자기만족에 갇혀있게 되면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이기심의 고질병을 앓게 된다. 지구 공동체가 피폐해지지 않도록 삶의 도덕적인 측면을 고려할 수 있는 자비심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마음을 지켜내지 못하면 우리의 삶과 지구는 더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남태평양의 가난한 섬나라들은 해수면 상승 때문에 섬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주어진 특권을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서 쓰는 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시대의 요청에 귀 막고 살기에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1. 5도의 마지노선을 꼭 붙잡아 두려면 자기만족을 반납하는 용기와 측은지심이 최선일 것이다. 최경애 / 수필가문예 마당 마지노선 수필 지구 공동체 특권 의식 기후난민 대이동

2024-05-02

[노트북을 열며] 늙는다는 특권

송편도 먹기 전인데 찬물 끼얹나 싶겠지만, 곧 연말이다. 불평등한 이 세상에서 시간만은 평등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이 글을 쓰는 기자와 읽는 당신도 곧 한 살 더 먹는다. MZ도 X세대도 늙음에선 벗어날 수 없다. 오늘로 딱 95일 남은 2023년. 추석 연휴를 보내며 잘 늙는다는 의미를 곱씹어 보면 어떠할까. 저출산 고령화라는 거대 쓰나미 속에서 한국의 명절 풍경도 조용히, 그리고 확실히 진화 중이다. 나의 늙음을 책임질 이는 나뿐인 사회는, 공과금 명세서처럼 끈질기게 우리를 찾아올 터다.   “잘 늙는다”는 건 자주 “안 늙는다”는 것과 동의어로 취급된다. “아들이 대학생인데, 엄마 아니라 여자친구로 보인대요”라는 식의 팝업 광고처럼. 한국 밖에서도 “60세는 새로운 40세”라는 말이 나온다니, 늙음은 전 지구적 혐오 대상이자 21세기 모두의 투쟁 대상인 걸까.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늙어감은 특권이었다. 2020년 영국을 울렸던 영국인 엘리엇 대런이 그랬다. 암으로 죽어가던 그는 그해 9월 9일 일간지 가디언 칼럼에서 늙어감을 찬미했다. 늙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당신이 부럽고, 서로와 지구를 위해주며 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칼럼 게재일에 숨을 거뒀다.   대런은 그토록 40대가 되고 싶어했지만 정작 40~50대라는 인생의 중간지점, 중년을 맞는 건 꽤 진지한 각오가 필요하다. 이젠 전설이 된 시리즈 ‘섹스 앤드 더 시티’에 사만다 역으로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마흔이었다는 배우 킴 캐트럴. 올해 66세인 그는 최근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한 포럼에 출연해 “마흔이었던 때는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살아보니,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일을 통해 성장하며 나이 먹는 것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잘 늙는다는 것은 자신을 더 잘 알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아 나가며 자신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의미로 들렸다.   대학생 아들의 여자친구처럼 보이는 외모를 돈으로 가꿨다고 해도, 기품과 체력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랴, 라고 쓰면서도 그 광고를 눌러봤음을 고백한다. 부끄럽다. 늙음과 싸우느라 아등바등할 시간에 중부승모근과 내전근을 단련하고 고관절을 돌보며, 공공장소에서 내 목소리가 너무 크진 않은지, 내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지를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을 키워야겠다. 나부터 명절을 계기로 가꿔보련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하는 건, 늙어간다는 것도 마찬가지일 테니. 전수진 / 한국 투데이·피플팀장노트북을 열며 특권 대학생 아들 최고경영자도 국무위원장도 칼럼 게재일

2023-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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