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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암컷 선택

문가비라는 대한민국 모델이 아이를 낳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배우 정우성이란다. 인간이나 동물이 자신의 짝을 고르는 행위는 자기 자식의 어미나 아비를 고르는 일이다. 자신의 자식이 잘 생존하려면 건강하고 생존력이 강한 상대를 골라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외모 뿐이다. 당연히 혈색이 좋고 건강하고 똑똑하게 보이는 이성에게 끌릴 수밖에 없다. 모델과 배우는 이런 면에서 탁월하다.       암수동물들은 어떻게 자신의 짝을 찾게 되는 것일까? 1871년에 찰스 다윈은 두종류의 짝짓기 선택이론을 제시했다. 하나는 암컷을 차지하려는 수컷들 사이의 경쟁이다. 사슴의 뿔은 수컷 경쟁의 산물이다. 이런 수컷의 형질은 암컷을 얻기 위해 다른 수컷과 싸울 때 도움이 된다. 인간들도 과거 남성이 여성을 차지하는 시대에는 남성의 육체적인 힘이나 조직에서의 권력이 대단히 중요했다. 이렇게 수컷이 다른 수컷과 다투어 자신의 암컷을 차지하는 짝짓기 선택을 ‘수컷 경쟁’이라고 부른다.   다윈이 제시한 또다른 종류의 선택이 ‘암컷 선택’이다. 수컷 경쟁과는 달리 이번에는 수컷이 수동적이 된다. 수컷은 암컷의 주의를 끌어서 다른 수컷보다 먼저 선택되기를 기다린다. 수컷 공작의 화려한 꼬리는 학자들에게 오랫동안 미스테리였다. 싸울 때나 도망갈 때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천적에게 자신을 쉽게 노출시키는 수컷공작의 꼬리는 왜 거추장스럽게 진화되었을까? 생명체가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만큼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은 짝짓기다. 수컷공작은 아름다운 깃털로 암컷공작에게 선택되려고 기를 쓰는 것이었던 것이다. 수컷은 목숨을 걸고 암컷에게 자신을 어필하고 선택은 암컷이 한다. 이런 종류의 짝짓기 선택이 바로 암컷 선택이다.   다윈은 진화론 연구 초기에 짝짓기에서 수컷의 역할을 더 강조했다. 때문에 두가지 선택이론 중에서 암컷선택은 수컷경쟁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윈이 암컷의 역할을 하찮게 여긴 까닭은 수컷들은 열정적으로 암컷을 얻기 위해서 서로 치열하게 싸우지만, 암컷은 짝짓기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열정이 넘치는 수컷은 매우 경쟁적인 반면에 수줍어하는 암컷은 소극적으로 주어진 상대를 받아들인다고 본 것이다. 짝짓기에서 수컷의 역할이 더 강조되다 보니 암컷선택 이론은 최근까지 많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여성의 권익이 증가한 인간사회에서 최근에 암컷선택 이론은 수컷경쟁이론 만큼 중요해졌다. 그리고 많은 짝짓기에서 한가지 선택이론보다 이 두가지 선택이론이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수컷이나 암컷이나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는 상대방의 선택을 받기 위해 기를 쓰고 서로 경쟁한다. 수컷은 수컷들 사이에서, 암컷은 다른 암컷들과의 사이에서 서로 경쟁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는 상대방을 선택한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다고 해서 반드시 짝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도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서로의 선택이 만나서 2세까지 만드는 일은 오묘하면서도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결코 술취한 하룻밤 충동으로 결정할 일은 아닌 것이다. 수컷이 자신과의 결혼을 승낙하지 않았는데도 2세를 출산한 암컷이나, 자신의 2세를 출산한 암컷은 모르겠고, 다른 이들의 눈이 두려워 자신의 2세만은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는 수컷이나, 참 많이 낯설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암컷 선택 암컷선택 이론 암컷 선택 한가지 선택이론

2024-12-05

[문예마당] 어느 황새의 순애보

  톨스토이는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 간다고 말한다. 고통스러운 삶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사랑이며, 인간은 사랑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 사랑이 얼마나 강력하고 위대한가를 알려준다.     위대한 사랑의 힘, 특히 부부간의 사랑은 동물들에게도 있는 모양이다. 최근 소셜미디어에 떠다니는 황새 부부의 동영상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크로아티아에 사는 스테판이라는 노인은 낚시를 하던 어느 날 총에 맞아 날 수 없는 암컷 황새를 발견하고 집에 데려온다. 황새에게 말레나라는 이름까지 지어주며 반려 동물로 키웠다.  8년째 되던 해, 수컷 황새가 말레나의 지붕 위 둥지로 날아와 앉는다. 스테판은 수컷 황새에게 클렙톤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그들에게 새끼가 생겼고, 지금까지 60마리나 되는 새끼가 둥지를 떠나 세상으로 향해 날아갔다.     클렙톤은 철새의 습성에 따라 가을이면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아프리카에 갔다가 봄이 되면 말레나에게 오곤 했다. 원래는 함께 이동해야 하지만 말레나가 날개를 다쳐 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를 15년째, 집으로 돌아올 때가 지났는데도 클렙톤이 오지 않자 스테판은 클렙톤을 애타게 기다리는 말레나를 보며 노심초사한다. 아프리카에서 크로아티아로 오는 여정이 너무 멀고 험난하기 때문이다. 스테판은 클렙톤의 이동경로를 살펴본다. 그리고 이동 중 레바논 상공에서 많은 황새가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테판은 레바논 대통령에게 간곡한 편지를 써서 보낸다.     ‘친애하는 레바논 미셸 아운 대통령님께,   제 이름은 스테판 보키치입니다.  25년 전, 크로아티아의 작은 마을에서 사냥꾼 총에 맞아 날개에 상처를 입은 암컷 황새를 발견했습니다. 녀석을 집으로 데려와 ’말레나‘ 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정성껏 돌봐줬지만 한쪽 날개는 영구 장애로 남아버렸습니다. 다시 날 수 없다는 것은 철새에게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임을 아실 겁니다. 매일 물고기를 잡아 말레나의 입에 넣어주었고, 외출할 때면 옆자리에 태우고 다녔지요.  지붕 위에 말레나를 위한 둥지를 짓고 밤낮으로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렇게 말레나와 함께한 시간이  8년이 되던 봄에 아프리카에서 돌아오던 수컷 황새 한 마리가 말레나의 둥지에 내려앉았습니다. 저는 ’클렙톤‘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는 말레나에게 매일 먹이를 잡아 입에 넣어주며 사랑을 듬뿍 주었습니다. 클렙톤은 날지 못하는 말레나를 보기 위하여 15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아프리카와 크로아티아를 오갔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최근 그를 기다린 열흘 간의 기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긴장된 순간이었습니다.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저를 두렵게 합니다. 이상한 직감이 들어 클렙톤의 이동경로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여행하는 동안 폭풍, 배고픔, 갈증이 그를 위협합니다. 클렙톤의 여정은 위험으로 가득합니다만, 비행 중 가장 위험한 부분은 레바논 상공을 가로지르는 200km의 비행입니다. 매년 200만 마리의 철새가 이 구간에서 죽고 있습니다. 일부는 재미로, 일부는 식용으로, 일부는 판매용으로 사냥감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15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클렙톤은 아프리카로의 여행을 시작했고 다시 한번 레바논 상공을 비행할 겁니다. 철새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둥지에서 클렙톤의 깃털을 주워 이 편지를 씁니다. 저는 깃털이 칼보다 강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특별한 깃털을 사용하여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고, 철새들을 무자비한 사냥으로부터 구할 수 있도록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스테판 보키치’   레바논 대통령은 스테판의 편지에 감동해 철새 사냥을 금지시킨다. 레바논 정부의 과감한 철새 보호 정책으로 무려 200만 마리의 철새를 구할 수 있었다. 클렙톤의 깃털로 쓴 편지가 많은 철새를 구한 것이다.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은 철새들이 사람으로 인해 살아났지만 클렙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이미 큰 변을 당했을 것이라고 낙담했지만 대다수는 이를 믿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말레나의 둥지에 카메라를 설치해 생중계를 할 정도였다.     기적이 일어났다. 상처투성이로 돌아온 클렙톤의 영상이 화면에 들어왔다. 그의 몸은 상처투성이었고 피가 묻어 있었다. 돌아오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 했는지 상상할 수 있었다. 시민들은 환호를 지르며 서로를 껴안았다. 경이로운 모습에 눈물을 훔치기까지 했다. 전 세계 미디어는 이 황새 부부의 이야기를 21세기 최고의 러브 스토리라고 칭송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국민커플’로 유명해서 홍보 영상까지 만들어졌다. 황새의 진정한 사랑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남편은 은퇴 후 한국에 계신 시어머님과 LA에 사는 나와 두 아들을 위해서 17년 간 한국과 LA를 오갔다. 지금은 남편이 비행기 탑승을 힘들어해 내가 LA와 한국을 오간다.       결코 놓을 수 없는 사랑의 힘을 보여준 동영상을 본 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조지 워싱턴은 “사랑은 우리를 더 높은 존재로 만든다”고 했고, 프레드리히 니체는 “사랑으로 행해진 일은 언제나 선악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사랑이 선과 악을 넘어서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는 사랑은 나에게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가며 사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날지 못하는 아내를 만나기 위해 15년째 이어진 수컷 황새의 순애보, 이 사랑이 가능한 건, 수컷이 없는 동안에 암컷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스테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황새는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 자신의 짝을 보살피는 독특한 새라고 한다. 수컷이 죽으면 암컷은 죽을 때까지 혼자 사는 일도 종종 있다고 한다. 부부 사랑의 핵심은 희생이다. 사랑은 배려와 희생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다.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순애보 황새 수컷 황새 암컷 황새 부부 사랑

2024-09-12

뉴욕 일원 랜턴플라이 문제 심각

뉴욕 일원 랜턴플라이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는 추세다.     주민들은 “랜턴플라이가 전철에 타고 거리를 어지럽히는 동시에 아파트 내부까지 들어온다”며 불편함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SNS에는 뉴욕시 거리에 수십 마리의 랜턴플라이가 몰려 있는 장면, 전철 내부에 랜턴플라이들이 붙어 있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이 지속적으로 업로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뉴욕시로 몰려드는 랜턴플라이 개체 수가 작년보다 훨씬 많아졌다”며, “과학자들이 개체수를 억제할 방안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랜턴플라이를 밟아 죽여야 한다”고 전했다.     아시아계 곤충으로 추정되는 랜턴플라이는 2014년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처음으로 발견됐으며, 2020년 여름부터 매년 뉴욕시로 몰려들었다. 랜턴플라이는 인간에게 유해한 곤충은 아니지만 농작물에 피해를 줄 수 있으며, 암컷 랜턴플라이 한 마리는 한번에 30~60개의 알을 낳는 것으로 알려졌다. 랜턴플라이는 10월까지 알을 낳고 활동하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성충은 모두 죽고 이듬해 여름 새로운 랜턴플라이가 부화한다.     대니얼 길레인 코넬대 곤충학자는 “내년 여름에는 더 많은 랜턴플라이 개체수가 더 넓은 지역으로 퍼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랜턴플라이는 공격받으면 앞으로 튀어 오르기 때문에 뒤에서 공격하는 것보다 정면에서 공격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윤지혜 기자랜턴플라이 뉴욕 랜턴플라이 개체수 암컷 랜턴플라이 뉴욕 일원

2023-09-05

한인 2세의 '암컷 사자' 100대 혁신기술에 선정

"여성들에게 성적인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에 대해 통념을 깨고 진지하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한인 2세 여성 기업가인 애나 김 리(31) '라이어네스 스마트' 대표는 여성 자위 기구 '라이어네스 스마트 바이브 레이터'(이하 라이어네스)를 개발.생산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유통하고 있다. 라이어네스는 '암컷 사자'를 뜻한다.   UC버클리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아마존에서 엔지니어로 2년간 근무하다 6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이 회사를 창립했다. 현재 여성 팀원 7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4일부터 서울에서 재외동포재단 주최로 열리는 '제24회 세계한인차세대대회' 참가차 방한한 그는 "그동안 남성 위주로 자위 기구를 만들어 판매해 왔는데, 여성이 어느 부분에서 오르가슴을 느끼게 되는지 등을 고려한 여성을 위한 기구는 없었다"며 창업 이유를 소개했다.   유명 과학 잡지 '파퓰러 사이언스'는 그가 개발한 라이어네스를 '2021년 100개의 유명한 혁신 기술'에 선정했다. 또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리 대표를 '주목해야 할 30세 이하 인물'(컨슈머 테크놀러지)에 뽑았다 이는 소비자 만족도가 높았음을 증명하는 척도라고 그는 설명했다.   리 대표는 "4년 전부터 라이어네스가 개당 229달러에 판매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1만5000개 이상 팔렸다"며 "대부분 20대 중후반, 30대 중후반, 50대가 사용하고 있으며, 일본과 유럽, 캐나다에서도 주문이 들어온다"고 전했다. 한국 내 여성들도 해외 직구를 통해 사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여성의 건강'까지 분류가 확장될 수 있어 시장 확대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리 대표는 진단했다. 틱톡을 마케팅 채널로 활용하고 있는데, 현재 40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LA 주재원으로 파견된 아버지 이순욱 씨와 어머니 김주미 씨 사이에서 1남 1녀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귀국으로 6살 때까지 서울에서 살았다. 이후 부친의 재파견과 정착으로 미국에서 줄곧 성장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차세대 리더'라고 선정해 초청하는 것에 아주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전 세계에서 온 비슷한 배경의 차세대들과 만나고, 네트워크 교류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2015년부터 NETKAL(Network of Korean American Leaders.재미동포 지도자 네트워크)에서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혁신기술 한인 세계한인차세대대회 참가차 암컷 사자 여성 자위

2022-09-06

[살며 생각하며] 까칠함에 대하여

친구에게 까칠한 말 한마디를 던졌다. 친구의 상황보다 내 상황을 먼저 챙기는 말이었다. 이기적인 생각이 한순간에 걷잡을 수 없는 힘으로 밖으로 나왔다. 당황한 친구는 심하게 언짢아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밤새워 뒤척였다.     무더웠던 밤이 물러가고 희뿌연 대기가 냉장고처럼 시원하다.     “카약 카약카야약….” 새 한 마리가 소프라노를 내지르면서 머리 위를 휙 날아간다. 간밤의 어지러운 생각을 좇으려고 어디 낯선 곳에 캠핑왔다고 일부러 상상한다. 덱의 우산이 텐트이고 부엌에서 내린 커피가 가스버너에서 끓인 커피인 척한다. 우연히 잠이 일찍 깨어 다른 세상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삐죽한 나무가 하늘을 가린 곳을 쳐다본다.     “삐익 삐익 삐삐 삐 삐” 새가 또 목청 질을 한다. 이번에는 다른 새인가? 문득 지난봄의 일이 떠올랐다. 그날은 아침에 나가보니 새끼 새 두어 마리가 드라이브 웨이에 축 처진 채로 죽어 있었다. 자살은 아닐 테고, 어미 새가 그랬을 리 없고, 누가 그랬을까? 치우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난감해하고 있는데, 앞집 할아버지가 나와서 말해준다. “메이트를 구하지 못한 엉큼한 수컷 짓이야.”     내가 사는 골목에는 새가 많다. 잎이 촘촘한 소나무 안에 새들이 여기저기 들어가 산다. 아직 짝짓기하지 못한 수컷은 깊숙한 가지에 알을 깔고 앉은 암컷을 호시탐탐 엿본다. 일부일처제가 아니니, 누구의 암컷이든 상관치 않는다. 음흉한 수컷은 어미 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기 새를 땅에다 떨어뜨리고 빈집으로 만들어버린다. 다음 수순은 비통해하는 암컷을 꼬여서 짝짓기하고 집까지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 골목에서 오랫동안 사는 할아버지는 봄이면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고 말해주었다.     델리아 오언스의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도 그런 비슷한 묘사가 나온다. 반딧불은 꽁무니의 불을 깜박여 짝짓기 신호를 보낸다. 불빛 언어가 종마다 다르다고 한다. 한 암컷이 점, 점, 점, 줄(dot, dot, dot, dash) 이렇게 자신의 언어로 깜박이니 수컷이 날아들었다. 메이트를 끝낸 암컷이 언제부턴가 신호를 바꾸었다. 줄, 줄, 줄, 점(dash, dash, dash, dot)으로 바꾸어 가짜 암호를 내보낸다. 다른 종의 수컷이 자기 종의 암컷인 줄 알고 다가왔다. 암컷 반딧불이는 자기 위를 배회하는 수컷을 잡아먹는다. 여섯 다리와 날개 두 쌍을 모조리. 팜므파탈이 무색할 정도의 권모술수다.   생존에는 선 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야생은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 행동으로 가득 차 있다. 새, 나무, 구름을 쪼개다 보면, 분자에서 원자로 귀결된다. 산소, 수소, 탄소 같은 원자는 미친 듯이 움직이다가 우연히 옆에 있는 원자와 찰싹 붙어서 물질을 만들어 낸다. 원자의 본성이 살고자 하는 것이니, 만물의 본성도 그렇겠지. 그러니 저 새도 새벽부터 저리 요란히 울어대는 것일 테지. 새벽 캠핑이라도 온 것 같던 좀 전의 평화로운 마음이 싹 가신다.     태곳적 동굴인들은 자신과 다르게 생긴 존재를 보면 일단 죽이고 봐야 했다. 적인가 동지인가 생각하는 동안에 화살이 날아오기 때문이다. 내가 물과 산소와 수소로 요동치고 있는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임을 기억한다면, 태생적으로 숭고한 정신적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무심코 나갔던 까칠했던 말에 너무 속을 끓일 필요도 없다. 혹은 누구에게 섭섭하더라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면 된다. 생각은 늘 나중에 오는 후발 선수이다.     “아아 아아 아아” 또 다른 새가 머리 위로 휙 지나간다.     나는 자신을 물질이 아닌 대단한 존재로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반성은 늘 뒷북을 친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암컷 반딧불이 정신적 존재 앞집 할아버지

202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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