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마당] 어느 황새의 순애보
수필
톨스토이는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 간다고 말한다. 고통스러운 삶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사랑이며, 인간은 사랑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 사랑이 얼마나 강력하고 위대한가를 알려준다.
위대한 사랑의 힘, 특히 부부간의 사랑은 동물들에게도 있는 모양이다. 최근 소셜미디어에 떠다니는 황새 부부의 동영상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크로아티아에 사는 스테판이라는 노인은 낚시를 하던 어느 날 총에 맞아 날 수 없는 암컷 황새를 발견하고 집에 데려온다. 황새에게 말레나라는 이름까지 지어주며 반려 동물로 키웠다. 8년째 되던 해, 수컷 황새가 말레나의 지붕 위 둥지로 날아와 앉는다. 스테판은 수컷 황새에게 클렙톤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그들에게 새끼가 생겼고, 지금까지 60마리나 되는 새끼가 둥지를 떠나 세상으로 향해 날아갔다.
클렙톤은 철새의 습성에 따라 가을이면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아프리카에 갔다가 봄이 되면 말레나에게 오곤 했다. 원래는 함께 이동해야 하지만 말레나가 날개를 다쳐 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를 15년째, 집으로 돌아올 때가 지났는데도 클렙톤이 오지 않자 스테판은 클렙톤을 애타게 기다리는 말레나를 보며 노심초사한다. 아프리카에서 크로아티아로 오는 여정이 너무 멀고 험난하기 때문이다. 스테판은 클렙톤의 이동경로를 살펴본다. 그리고 이동 중 레바논 상공에서 많은 황새가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테판은 레바논 대통령에게 간곡한 편지를 써서 보낸다.
‘친애하는 레바논 미셸 아운 대통령님께,
제 이름은 스테판 보키치입니다. 25년 전, 크로아티아의 작은 마을에서 사냥꾼 총에 맞아 날개에 상처를 입은 암컷 황새를 발견했습니다. 녀석을 집으로 데려와 ’말레나‘ 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정성껏 돌봐줬지만 한쪽 날개는 영구 장애로 남아버렸습니다. 다시 날 수 없다는 것은 철새에게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임을 아실 겁니다. 매일 물고기를 잡아 말레나의 입에 넣어주었고, 외출할 때면 옆자리에 태우고 다녔지요. 지붕 위에 말레나를 위한 둥지를 짓고 밤낮으로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렇게 말레나와 함께한 시간이 8년이 되던 봄에 아프리카에서 돌아오던 수컷 황새 한 마리가 말레나의 둥지에 내려앉았습니다. 저는 ’클렙톤‘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는 말레나에게 매일 먹이를 잡아 입에 넣어주며 사랑을 듬뿍 주었습니다. 클렙톤은 날지 못하는 말레나를 보기 위하여 15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아프리카와 크로아티아를 오갔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최근 그를 기다린 열흘 간의 기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긴장된 순간이었습니다.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저를 두렵게 합니다. 이상한 직감이 들어 클렙톤의 이동경로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여행하는 동안 폭풍, 배고픔, 갈증이 그를 위협합니다. 클렙톤의 여정은 위험으로 가득합니다만, 비행 중 가장 위험한 부분은 레바논 상공을 가로지르는 200km의 비행입니다. 매년 200만 마리의 철새가 이 구간에서 죽고 있습니다. 일부는 재미로, 일부는 식용으로, 일부는 판매용으로 사냥감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15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클렙톤은 아프리카로의 여행을 시작했고 다시 한번 레바논 상공을 비행할 겁니다. 철새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둥지에서 클렙톤의 깃털을 주워 이 편지를 씁니다. 저는 깃털이 칼보다 강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특별한 깃털을 사용하여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고, 철새들을 무자비한 사냥으로부터 구할 수 있도록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스테판 보키치’
레바논 대통령은 스테판의 편지에 감동해 철새 사냥을 금지시킨다. 레바논 정부의 과감한 철새 보호 정책으로 무려 200만 마리의 철새를 구할 수 있었다. 클렙톤의 깃털로 쓴 편지가 많은 철새를 구한 것이다.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은 철새들이 사람으로 인해 살아났지만 클렙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이미 큰 변을 당했을 것이라고 낙담했지만 대다수는 이를 믿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말레나의 둥지에 카메라를 설치해 생중계를 할 정도였다.
기적이 일어났다. 상처투성이로 돌아온 클렙톤의 영상이 화면에 들어왔다. 그의 몸은 상처투성이었고 피가 묻어 있었다. 돌아오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 했는지 상상할 수 있었다. 시민들은 환호를 지르며 서로를 껴안았다. 경이로운 모습에 눈물을 훔치기까지 했다. 전 세계 미디어는 이 황새 부부의 이야기를 21세기 최고의 러브 스토리라고 칭송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국민커플’로 유명해서 홍보 영상까지 만들어졌다. 황새의 진정한 사랑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남편은 은퇴 후 한국에 계신 시어머님과 LA에 사는 나와 두 아들을 위해서 17년 간 한국과 LA를 오갔다. 지금은 남편이 비행기 탑승을 힘들어해 내가 LA와 한국을 오간다.
결코 놓을 수 없는 사랑의 힘을 보여준 동영상을 본 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조지 워싱턴은 “사랑은 우리를 더 높은 존재로 만든다”고 했고, 프레드리히 니체는 “사랑으로 행해진 일은 언제나 선악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사랑이 선과 악을 넘어서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는 사랑은 나에게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가며 사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날지 못하는 아내를 만나기 위해 15년째 이어진 수컷 황새의 순애보, 이 사랑이 가능한 건, 수컷이 없는 동안에 암컷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스테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황새는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 자신의 짝을 보살피는 독특한 새라고 한다. 수컷이 죽으면 암컷은 죽을 때까지 혼자 사는 일도 종종 있다고 한다. 부부 사랑의 핵심은 희생이다. 사랑은 배려와 희생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다.
배광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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