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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까칠함에 대하여

친구에게 까칠한 말 한마디를 던졌다. 친구의 상황보다 내 상황을 먼저 챙기는 말이었다. 이기적인 생각이 한순간에 걷잡을 수 없는 힘으로 밖으로 나왔다. 당황한 친구는 심하게 언짢아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밤새워 뒤척였다.  
 
무더웠던 밤이 물러가고 희뿌연 대기가 냉장고처럼 시원하다.  
 
“카약 카약카야약….” 새 한 마리가 소프라노를 내지르면서 머리 위를 휙 날아간다. 간밤의 어지러운 생각을 좇으려고 어디 낯선 곳에 캠핑왔다고 일부러 상상한다. 덱의 우산이 텐트이고 부엌에서 내린 커피가 가스버너에서 끓인 커피인 척한다. 우연히 잠이 일찍 깨어 다른 세상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삐죽한 나무가 하늘을 가린 곳을 쳐다본다.  
 
“삐익 삐익 삐삐 삐 삐” 새가 또 목청 질을 한다. 이번에는 다른 새인가? 문득 지난봄의 일이 떠올랐다. 그날은 아침에 나가보니 새끼 새 두어 마리가 드라이브 웨이에 축 처진 채로 죽어 있었다. 자살은 아닐 테고, 어미 새가 그랬을 리 없고, 누가 그랬을까? 치우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난감해하고 있는데, 앞집 할아버지가 나와서 말해준다. “메이트를 구하지 못한 엉큼한 수컷 짓이야.”  
 
내가 사는 골목에는 새가 많다. 잎이 촘촘한 소나무 안에 새들이 여기저기 들어가 산다. 아직 짝짓기하지 못한 수컷은 깊숙한 가지에 알을 깔고 앉은 암컷을 호시탐탐 엿본다. 일부일처제가 아니니, 누구의 암컷이든 상관치 않는다. 음흉한 수컷은 어미 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기 새를 땅에다 떨어뜨리고 빈집으로 만들어버린다. 다음 수순은 비통해하는 암컷을 꼬여서 짝짓기하고 집까지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 골목에서 오랫동안 사는 할아버지는 봄이면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고 말해주었다.  
 
델리아 오언스의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도 그런 비슷한 묘사가 나온다. 반딧불은 꽁무니의 불을 깜박여 짝짓기 신호를 보낸다. 불빛 언어가 종마다 다르다고 한다. 한 암컷이 점, 점, 점, 줄(dot, dot, dot, dash) 이렇게 자신의 언어로 깜박이니 수컷이 날아들었다. 메이트를 끝낸 암컷이 언제부턴가 신호를 바꾸었다. 줄, 줄, 줄, 점(dash, dash, dash, dot)으로 바꾸어 가짜 암호를 내보낸다. 다른 종의 수컷이 자기 종의 암컷인 줄 알고 다가왔다. 암컷 반딧불이는 자기 위를 배회하는 수컷을 잡아먹는다. 여섯 다리와 날개 두 쌍을 모조리. 팜므파탈이 무색할 정도의 권모술수다.
 
생존에는 선 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야생은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 행동으로 가득 차 있다. 새, 나무, 구름을 쪼개다 보면, 분자에서 원자로 귀결된다. 산소, 수소, 탄소 같은 원자는 미친 듯이 움직이다가 우연히 옆에 있는 원자와 찰싹 붙어서 물질을 만들어 낸다. 원자의 본성이 살고자 하는 것이니, 만물의 본성도 그렇겠지. 그러니 저 새도 새벽부터 저리 요란히 울어대는 것일 테지. 새벽 캠핑이라도 온 것 같던 좀 전의 평화로운 마음이 싹 가신다.  
 
태곳적 동굴인들은 자신과 다르게 생긴 존재를 보면 일단 죽이고 봐야 했다. 적인가 동지인가 생각하는 동안에 화살이 날아오기 때문이다. 내가 물과 산소와 수소로 요동치고 있는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임을 기억한다면, 태생적으로 숭고한 정신적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무심코 나갔던 까칠했던 말에 너무 속을 끓일 필요도 없다. 혹은 누구에게 섭섭하더라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면 된다. 생각은 늘 나중에 오는 후발 선수이다.  
 
“아아 아아 아아” 또 다른 새가 머리 위로 휙 지나간다.  
 
나는 자신을 물질이 아닌 대단한 존재로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반성은 늘 뒷북을 친다.

김미연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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