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마음 읽기] 설계를 잘하려면

‘설계’는 건축과 금융 분야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다. 치수를 정확히 재 도면을 설계하고, 은퇴 후의 삶을 위해 연금을 설계하는 식이다. 건축은 내게 너무 먼 전문 영역이라 제쳐두고, 재테크는 일반인이라도 늘 염두에 두는 일이니 후자의 설계를 생각해보면 보통 투입해야 할 돈의 양과 기간을 떠올리게 된다. 어느 시점에 얼마의 돈이라는 이미지는 내 피부에 밀착되는 느낌이 없고, 먼 일 같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다. 설계는 지적 흥분을 동반한 것이어야 할테니 이런 식으로 설계를 상상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를 비슷한 뉘앙스의 ‘기획’이란 말로 바꿔보자. 기획의 핵심은 디테일에 있고, 자기 분야에서 세밀하고 세련되게 만드는 것이 승패와 재미 둘 다를 결정한다.   기획할 때 사람들이 많이 범하는 오류는 일반화다. 책 편집자들은 저자를 발굴하면서 예비 필자에게 맞는 기획서를 작성한다. 어느 날 한 편집자가 ‘30대, 여성, 해외 거주’라는 기획서를 들고 왔다. MZ 세대의 작가, 번역가, 편집자들이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나라를 오가며 일하는 추세라 세 키워드의 조합은 흥미로워 보였다. 이때 다른 편집자가 “‘퇴사하겠습니다’류의 에세이는 이미 많이 나오지 않았나요?”라는 피드백을 했다. 이 기획이 ‘퇴사’라는 용어로 압축되자 마법은 현실로 쪼그라들었고, 서사는 사라졌다. 최근 영화 ‘서울의 봄’에 대해 어떤 이는 “그냥 12·12 쿠데타가 시곗바늘의 움직임에 따라 전개돼”라고 축약했는데, 이게 주변 사람들의 영화 볼 의욕을 떨어뜨린 것과 비슷하다. 기획의 핵심은 착상에 있지 않다. 연말마다 트렌드 책을 읽어 거기서 짚어주는 내용을 머릿속에 입력해도 자기만의 트렌디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다. 기획자가 버려야 할 것은 어떤 사안을 한 단어로 요약해버리는 습관이다.   기획은 요약과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한마디로 정리될 수 없는 세밀함이 그것의 완성도를 결정짓는다. 참조 사례로 소설가의 기획을 들여다보자. 글은 구조와 문체로 이루어져 있다. 구조는 뼈대이니 중요하다는 것을 다 알지만, 가끔 문체를 장식물처럼 여기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문체는 결코 인테리어 요소가 아니며 나무 골조만큼이나 중요하다. 나보코프는 “문체란 구조가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자신의 버릇, 속임수, 특징을 모두 문체에 녹이며, 거기에 묘사나 이미지가 덧붙여져 작품은 전진한다. 즉 문체는 엔진과 같다.   이를테면 중국 소설가 츠쯔젠은 뛰어난 색채 감각을 노랫말 같은 문체로 구사하고, 그게 중국 북방의 자연을 형상화해 독자의 가슴까지 도달하게 만든다. “청포도 두 알 같은 눈두덩이” “누런 가을처럼 늙어 있는 날들” “오래된 낙엽처럼 얼굴 위를 기어다니는 검버섯”은 그가 작품 속 등장인물의 생애를 연장시키는 방법이다. 츠쯔젠의 이런 작품을 “동화처럼 순수하다”라고 표현하는 순간 그가 써온 100편의 단편소설은 색이 바래진 것처럼 보일 우려가 있다.   설계할 때 먼저 숫자를 버려보자. 내가 아는 이십대의 헤어디자이너는 부지런해서 퇴근 후에도 남아 밤 늦게까지 커트 연습을 하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독서로 하루를 연다. 하지만 책에 빠져들까봐 타이머를 켜고 딱 30분만 읽는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정해놓으면 평범함의 진창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자신의 클리셰를 없애려면 실용적인 시간 쓰기에서 벗어나는 게 첫 번째로 할 일이다.   그렇다면 기획을 하는 데도 시간을 에둘러 가는 길, 즉 우회로가 적용될 수 있을까? 내가 잘 아는 출판 분야를 예로 들면, 기획할 때 조급하면 저자를 놓칠 수 있다. 수많은 편집자가 신문, 블로그, 유튜브의 콘텐트를 보고 그 창작자에게 책을 펴내자고 제안한다. 제안받은 사람은 시간을 끌지 않고 결정하기에 서두름이 관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판에 박힌 제안서는 많은 작가와 다시 만날 기회를 놓치게도 만든다. “작가님을 평소 존경했고, 그간 펴낸 작품을 빠짐없이 읽었습니다”라는 말을 하기보다 시간을 들여 갈고닦은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 낫다. 예컨대 작가 조지 손더스처럼 단편을 사랑한다면, 그 감정을 직접적 표현으로 발설하기보다 대상 작가의 설계물을 하나하나 뜯어 분해한 뒤 그것을 역설계해보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거기에 섬세한 붓질을 가하고, 달빛의 그림자도 드리우면서 작가의 건축물 옆으로 다가가는 신작로를 내는 것이다.   설계는 고유의 구조, 리듬, 색채 등을 띠어야 한다. 이것들은 세상의 수많은 것을 재료 삼아 만들어지기에 현실과의 접촉도 중요하지만, 한편 혼자만의 기량 연마도 중요하다. 나의 붓질이 거칠면 그 캔버스의 인물들은 밖으로 튕겨 나가거나 혹은 작가의 붓질 아래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은혜 / 글항아리 편집장마음 읽기 설계 디테일 모두 문체 시간 쓰기 구조 리듬

2024-01-15

일기 쓰기가 면역력 높여…바이러스 수준 개선 가능

일기 쓰기가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국의 건강매체 코미디닷컴(kormedi.com)의 최근 기사에 따르면, 새해 다짐의 단골 아이템 중 하나인 일기쓰기가 자기 계발은 물론 시간 관리에도 도움이 되며 건강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소개했다. 글 쓰기가 스트레스 해소를 통해 정신 건강은 물론 면역력 강화에도 도움을 준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영국 심리학자 줄리아 사뮤엘은 최근 BBC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의 감정을 글로 쓰면 말할 때처럼 감정의 해방을 느낄 수 있다"면서 "일기 쓰기는 대화 치료만큼 효과적이며, 감정, 불안,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울러 면역 체계를 강화하고 기분을 나아지게 만들어 문제 해결에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사뮤엘은 "글로 감정을 누그려 뜨릴 수 있으며, 과정에서 감정이 더욱 명료하게 되면서 우리를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 의대 연구팀은 천식이나 류머티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 107명 환자들을 대상으로 사흘 연속으로 각각 20분 동안 글을 쓰게 했는데 71명은 삶에서 가장 스트레스 받는 사건에 대해 쓰도록 했고, 나머지 36명은 그 날의 계획에 대해 쓰도록 했다. 이후 이들 환자 대부분은 증상이 객관적으로도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으며, 실제로 스트레스에 대해 쓴 환자들은 다른 참여자보다 더 증상이 나아졌다.   텍사스 대학교에서 37명의 HIV(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 환자를 대상으로 한 유사한 연구도 있다. 부정적인 삶의 경험에 대해 글을 쓰도록 한 그룹과 매일 일정에 대해 글을 쓰도록 한 2개의 그룹을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됐다. 연구에서 자신의 삶의 경험에 대해 쓴 사람들은 바이러스 수준에서 큰 개선을 보였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텍사스대 심리학과의 제임스 페네베이커(James Pennebaker) 교수는 "글을 쓰면 그러한 불안한 감정에 구조와 의미를 정리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불안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글 쓰기를 통해 막연한 불안감을 구체화하고 이를 파악하면서 오히려 불안감이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일기쓰기가 글쓰기의 일종으로 당일 감정과 정신적 묶은 때를 정리할 수 있어 궁극적으로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며 코미디닷컴은 새해 다짐으로 읽기 쓰기가 매우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바이러스 면역력 바이러스 수준 일기 쓰기 면역력 강화

2024-01-14

[건강 칼럼] 추수감사절에는 명상을

올해도 어느덧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있다. 정신건강을 해치는 중요한 원인으로는 만성적 스트레스가 있다. 그것은 우리 삶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기인할 수 있다. 다양하지만 이들의 근본 구조는 동일하다. 즉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수준〉과 〈지각되는 현재의 수준〉의 거리만큼 스트레스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스트레스 감축 방법으로 마음 내려놓기가 중요한 훈련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지금 내 처지를 근본적으로 받아들임,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늘 앞으로만, 또는 위로만 나아가려는 습관적인 경향 탓에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적으로 스트레스를 발생시키고 있다.     올해 우리 모두 감사할 것들을 떠올려 보자.     먼저 우리는 지금도 살아 있다. 코비드로 떠난 많은 사람처럼 죽을 수도 있었지만 살아남은 생존자들이다.       또 지금 이 순간에 지구의 저편에는 양대 전쟁의 와중에 하루하루 생명의 위협을 안고 사는 수천만 명이 있다. 지금 이 순간, 독재정권의 압제에서 신음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또 표현의 자유를 위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현실이지만, 우리 고국이나 미국 모두 민주주의의 뿌리가 내려 자유로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날씨는 어떤가? 여기 LA는 참 좋은 날씨이다. 물론 바람이 세찬 때도 있지만, 너무 아름다운 날씨이다. 큰 도시 중심만 빠져나가면 마음껏 좋은 공기를 마시며 푸르른 식물들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공원이나 산, 바다에 얼마든지 쉽게 갈 수 있다. 정말 돈 안 드는 좋은 여건에 살고 있다.     또 완벽하지는 않지만, 저소득층이나 65세 이상이면 기본적인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다. 최소한의 보장제는 있어 생존은 보장된다. 더 가지려는 마음의 욕심만 내려 좋으면 기본적인 삶은 유지가 된다.     객관적인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주관적으로는 왜 불행하다는 느낌에 시달릴까? 많은 경우, 상대적으로 느끼는, 남과의 비교의 문제가 크다. 온갖 것들이 이런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돈, 성공, 성취도 등등. 학업, 사업, 결혼, 또는 신체적 조건, 미모에서, 남과의 상대적 비교의 감정에 시달린다. 우리가 이런 인간적 가치에 너무 집착하는 데 문제가 있다. 모든 것이 가치가 있겠지만 어떤 특정한 가치에 중독적, 습관적으로 집착, 매달리는 것이 고통의 원인이다.     불행하게 느끼는 마음 상태의 해악을 알면 감사, 만족할 관점을 찾아 긍정적으로 보려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런 훈련을 위해서 좋은 지침이 있다면 감사하는 연습, 훈련이랄 수 있겠다.     관점이 달라지면 거기에 따르는 느낌, 감정 상태도 달라진다. 이것이 인지 치료의 핵심이다.     감사의 훈련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는 감사일기 쓰기가 있다. 또 마음 매려 놓기, 하루하루 덤으로 산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 좋은 연습이다. 부정적 감정 상태를 확인하고 그것을 놓아버리는 연습, 이런 것이 명상 중에 쉬 이루어질 수 있어, 명상 수련은 궁극적으로 행복을 가져다주는 좋은 훈련이며 생존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감사절에는 이런 명상 연습을 실천해 보자.       ▶문의:(213)797-5953   김자성 전문의 / 김자성 정신과건강 칼럼 추수감사절 명상 명상 연습 명상 수련 감사일기 쓰기

2023-11-21

[기고] AI 인공지능은 인간이 쓰기 나름

요즘 단연 화제는 대화형 인공지능(Conversation A.I.)이다. 지난해 11월 출시된 오픈 AI의 챗GPT와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빙(New Bing)에 이어, 구글도 지난 10일 인공지능 챗봇 ‘바드(Bard)’를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180개국에서 오픈했다. 기존에는 검색어를 넣으면 검색 결과 수백개를 보여주는 구글, 야후 등 서치 엔진(검색 사이트)이 대세였다. 그러나 대화형AI는 채팅을 하듯이 질문을 입력하면, 서술형으로 자세히 대답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제 간단한 질문을 하면 AI가 논문 수준으로 대답을 해주는 공상과학 영화 속 편리한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AI의 발달은 한편으로 새로운 문제를 부각하고 있다. 바로 문학, 논문, 회화, 음악 등 인간들만이 창조할 수 있는 영역을 AI가 침범할 가능성이다. 챗GPT 와 바드가 쓰는 글은 학자나 변호사가 쓰는 논문이나 법률문서와 거의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또한 AI는 기존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짜깁기해 마치 실제 있었던 것 같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만들기도 한다.     서비스나우 리서치의 헥터 팔라시오스 연구원은 AI가 만들어내는 자료에 대해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전에는 글이나 그림을 딱 보면 이건 컴퓨터가 합성한 것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 수준이었다”며 “이제는 인간이 쓴 글인지, AI가 쓴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뉴욕 검찰에 의해 기소되자, 인터넷상에 그가 수갑을 차고 길거리에서 체포되거나 감옥에 갇혀 있는 사진이 유포됐다. AI에게 “트럼프가 체포된 사진을 만들어줘”라고 명령해 만든 사진과 동영상이지만 진짜처럼 감쪽같다.   정치권도 AI 활용에 동참하고 있다. 최근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방송 중인 30초짜리 TV 광고는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됐을 때’라는 문구와 함께 중국군이 대만을 침공하고, 중국인들이 미국 내에서 폭동을 일으켜 혼란에 빠지는 충격적 영상을 보여준다. 너무나 실감 나는 화면이라 진짜로 일어난 사건처럼 보일 정도다. 광고의 한 구석에 적혀있는 ‘AI가 만든 화면입니다(Built entirely with AI imagery)’라는 문구를 보기 전에는 말이다.   그러나 하버드 교육대학원 크리스토퍼 데이드 박사는 AI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표절 및 모방 문제는 이전에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이 과제물로 제출한 에세이를 보면 표절이 많다. 표절을 사람이 하느냐 AI가 하느냐 문제”라며 “반면 구직 인터뷰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사람이 30분 동안 AI보다 못한 마케팅 플랜을 면접관에게 제출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라라고 말한다.   데이드 박사는 AI를 인간의 대체물이 아니라 파트너로 생각하라고 제안한다. 그는 “예를 들어 암을 진단할 때는 암 전문의와 종양학자가 팀을 짜서 진단하지만, 이제는 AI라는 든든한 파트너가 추가됐다고 생각해보자”며“ AI는 암 전문가도 못하는 보조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를 들어 AI는 1500여개의 의학 전문지를 스캔하고 그중에서 현재 암환자에 해당하는 내용을 빨리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IBM 왓슨 AI에 참여했던 션 맥그레거 박사는 AI가 여전히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2021년 영국에서는 한 남성이 버스전용 차로에서 운전하다가 사진이 찍혀 물의를 일으켰는데, 알고 보니 AI가 그 남자 자동차의 번호판을 잘못 판독한 것으로 밝혀진 적이 있다는 것이다.   AI혁명(AI revolution)이 앞으로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앞으로 이 신문에 실리는 글도 AI가 쓸지도 모르고, 필자가 하는 일도 AI가 대체할지 모른다. 한인들도 남의 일로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다가올 AI혁명에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종원 / 변호사기고 인공지능 쓰기 대화형 인공지능 논문 수준 서비스나우 리서치

2023-05-17

[아름다운 우리말] 왜 학술 에세이인가?

우리는 왜 학술 에세이를 읽고, 배우고, 쓸까요? 이 세 가지의 순서는 종종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배우고’는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우지 않아도 우리는 학술 에세이를 읽고, 쓰기 때문입니다. 학술 에세이를 쓰는 유명인에게 ‘쓰기 방법’을 배운 적이 있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답은 ‘아니다’일 겁니다. 재미있는 추측입니다만, 학술 에세이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람에게 쓰기 방법을 배운 적이 있냐고 물어보면 그 대답도 ‘아니다’인 경우가 상당수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읽기’와 ‘쓰기’만 학술 에세이에서 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고민은 남습니다. 왜냐하면 평생토록 쓰기는 해 본 적이 없고, 해 볼 일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학술 에세이를 배울까요? 쓸 일도 없는데 말입니다. 학술 에세이 쓰기와 관해서도 재미있는 추측을 해 보자면 학술 에세이를 가르치는 사람 중에도 학술 에세이를 써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겁니다.   물론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은 써 본 적이 없다고 가르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쓰는 것과 가르치는 것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학생의 주의를 끄는 교수법을 가르치는 강의가 더 졸린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졸린 강의를 들은 사람이 나중에 훨씬 멋지게 강의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요? 이렇듯 강의와 실제는 다릅니다. 어쩌면 학술 에세이는 읽기만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술 에세이 수업은 좋은, 또는 모범적인 학술 에세이를 선별해서 읽게 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학술 에세이라는 주제를 앞에 놓으면 이렇게 고민이 많습니다. 학생들, 또는 독자에게 학술 에세이 쓰기는 도대체 필요할까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이 고민은 가르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원초적으로 교과과정을 개발한 사람들의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고, 결론적으로는 배우는 사람도 능동적인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술 에세이 쓰기는 그저 뜬구름 잡기에 불과합니다.     이 글을 쓰는 저는 학술 에세이 쓰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 역시 학술 에세이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지만, 생활 속에서 학술 에세이와 학술 논문을 쓰는 처지에서 이런 종류의 쓰기 교육은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학술 에세이를 읽게 하고, 학술 에세이를 쓸 수 있게 하는 것은 삶에서 중요한 일입니다. 물론 학술 에세이가 없어도 사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학술 에세이가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에세이’는 읽기와 쓰기라는 언어기능에만 관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듣기와 말하기에도 관계합니다. 특히 말하기에 큰 도움을 줍니다. 학술 에세이 쓰기는 달리 표현하면 학술 에세이 말하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말하는 것을 전부 글로 옮기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학술 에세이를 쓸 기회는 매우 적을지 모르지만, 학술 에세이를 말할 기회는 상상외로 잦을 겁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학술 에세이 비슷한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분야의 전문 지식이나 상대가 잘 모르는 어떤 내용을 쉽고, 재미있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대화 상대는 늘 달라집니다. 부모, 형제, 배우자, 자녀 등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친구나 직장동료, 혹은 제자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대화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경우에 그 대화는 학술 에세이와 닮아있습니다. 저는 학술 에세이를 배우면서 우선 말해 보기를 권합니다. 생각을 입 밖으로 내고 나면, 특별한 느낌도 만나게 됩니다. 생각과 말은 아주 다릅니다. 그리고 그 말을 글로 써 보면 더 특별한 느낌이 들게 될 겁니다. 그러고 나면 왜 학술 에세이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학술 에세이는 나를 한 뼘 더 자라나게 합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에세이 학술 학술 에세이 학술 논문 쓰기 방법

2023-03-05

[아름다운 우리말] 정답 없는 에세이 쓰기

에세이라는 말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수필(隨筆)이라고 합니다. 수필의 뜻은 붓 가는 대로 쓴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수필이라는 글은 붓 가는 대로, 다양한 소재를 자유롭게 쓰는 겁니다. 그러니 사실상 모든 글이 수필, 에세이가 될 수 있습니다. 굳이 수필에서 제외를 하자면 본인들이 수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글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필인 셈입니다. 시나 소설, 희곡, 논문, 신문기사 등은 주로 수필에서 빠집니다.     에세이는 어떻게 써야 할까요? 여기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자유로운 글쓰기이므로 애당초 정해진 답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답이 없다고 아무렇게나 쓸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역으로 접근해 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써야 한다가 아니라 그렇게 쓰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겁니다. 저는 지금 ‘안 된다’라고 쓰려다가 ‘좋지 않다’로 바꿨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안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에세이 쓰기의 유의점 중에서 제가 첫 번째로 드는 것은 읽는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자 읽으려고 쓰는 글이 아닌 이상 독자가 존재하고, 독자는 비교적 한정적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난해한 글쓰기는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럴 때 쓰는 말이 ‘현학적(衒學的)’이라는 표현입니다. 현학은 배운 것을 자랑하는 겁니다. 자신이 많이 안다는 것을 내세우기라도 하듯 지나치게 지식을 드러낼 필요는 없습니다. 이해하기 어렵게 쓴 수필은 읽지 말라고 쓰는 글이니 그 뜻을 존중해 주면 됩니다.   알고 보면 그 지식이라는 것도 스스로 밝혀낸 것도 아니어서 줄줄이 인용이 붙습니다. 누가 이렇게 이야기했고, 누가 저렇게 이야기했다는 것을 연달아 쓰는 것은 읽는 이를 피곤하게 합니다. 글은 지식 자랑의 장이 아닙니다. 자칫하면 현학적 태도는 궤변이 되고 맙니다. 본인의 논리가 부족하기에 이 논리 저 논리 갖다가 붙이니 이상한 논리가 되고 마는 겁니다. 인용이 많고, 무슨 말인지 논리가 불명확한 글은 역시 읽지 않으면 됩니다.   글은 쉬워야 합니다. 쉬운 글쓰기에서도 조심할 점이 있습니다. 일단 문장의 길이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영어와 같은 서양어와 달리 한국어는 문장이 길어지는 순간 의미가 모호해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인도 유럽어들은 대부분 수와 성(性)과 인칭 등이 발달하였습니다. 즉 남성이냐 여성이냐, 단수냐 복수냐, 1인칭이냐 2, 3인칭이냐에 따라 표현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일치와 호응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일치와 호응이 중요한 언어는 문장이 길어져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미덕으로 보기까지 합니다. 긴 문장을 만연체(蔓衍體)라고 하는데, 우리글에서 만연체는 모호함의 원인이 됩니다.     글쓰기에서는 인용도 중요합니다. 지나친 인용은 문제가 됩니다만, 좋은 인용은 글을 이해하기 쉽게 합니다. 그런데 인용이란 게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평소에 좋은 글을 인용할 수 있게 메모를 해 놓아야 합니다. 아예 인용 노트를 만들어 놓는 것도 권합니다. 작가라는 사람은 대부분 인용 노트의 활용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시도, 소설도, 시나리오도 모두 메모가 기본입니다. 메모 속에는 번득이는 아이디어도 있고, 좋은 문장도 있고, 재미있는 사실도 있습니다.     그리고 글쓰기에서는 맞춤법도 유의해야 할 일입니다. 저는 맞춤법을 엄격히 잘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맞춤법이 글쓰기에 방해가 된다면 오히려 맞춤법을 틀리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때는 가능하면 맞춤법은 틀리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게 글에 대한 독자들의 집중력을 높입니다.   수필 쓰기에 정답은 없지만 유의할 점은 있습니다. 가능한 한 짧은 문장을 쓰고, 좋은 인용을 미리 준비해 두세요. 그리고 남에게 보일 때는 맞춤법을 잘 살펴서 내놓는 것이 좋습니다. 이 부분만 신경 써도 글은 한결 나아집니다. 글쓰기의 마음가짐인 셈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에세이 정답 수필 에세이 에세이 쓰기 수필 쓰기

2023-02-05

[문장으로 읽는 책] 소설 만세

나는 소설을 한 사람의 삶에 들어가 그의 마음과 감정을 살피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알고 확인하는 것을 넘어 알게 된 것에 책임감을 갖고 그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그를 믿고 변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소설에 매료되고 지금도 소설을 사랑하는 핵심적인 매력이 그것이다.   정용준 『소설 만세』   그러니까 소설이란 “단 한 사람의 편에 서서 그를 설명하고 그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다. 소설가가 쓴 소설예찬, 혹은 소설가를 꿈꾸는 이들에 대한 가이드북이다. “어떤 사람이 소설을 쓰는가? 내면에 무엇인가 가득한 사람이 소설을 쓴다. 다른 사람이라면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생각들을 하며 의문과 질문을 품고 어느 것 하나 사소하고 일반적인 것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그렇게 바라볼 수 없는 사람이 소설을 쓴다.”   소설가를 꿈꾼다면 일단 써야 한다. 재능은 두 번째 문제다. “소설을 쓰면 소설가가 된다. 더 나은 소설을 쓰면 더 나은 소설가가 되는 것뿐이다.” “많은 사람이 믿고 예상하는 것처럼 재능은 소설가가 되는 데 필수적인 요건도 아닐뿐더러 막상 소설을 써 보면 크게 도움도 안 된다. 물론 소설가에게 필요한 재능이 있긴 하다. … 계속 쓰려는 마음과 그 마음을 지켜내는 능력과 그 능력에 의지해 소설 쓰기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여러 어려움과 실패의 두려움을 이겨내면서 계속 소설을 써 나가는 행동력, 그것이 바로 재능이다. 용기를 내는 작가가 되자. 용감하게 쓰자.” “소설을 쓸 때 글쓰기를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소설 만세 소설 만세 소설 쓰기 행동력 그것

2022-08-22

[우리말 바루기] ‘앙꼬’

어떤 일이나 생각 등에서 중요한 것이 빠졌을 때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관용구를 쓴다.     이 말을 자주 사용하다 보니 ‘앙꼬’를 순우리말로 알고 있는 이가 꽤 많다. 그러나 ‘앙꼬’는 일본어 ‘?子(あんこ)’에서 온 말이다. 따라서 우리말인 ‘팥소’로 바꾸어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팥소’는 떡이나 빵 등의 속으로 넣는, 팥을 삶아서 으깨거나 갈아서 만든 것을 의미하는 단어다. 하지만 ‘팥소’라는 낱말이 조금은 낯설다 보니 ‘앙꼬’라는 말을 쓰게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소’는 송편이나 만두 등을 만들 때 맛을 내기 위해 익히기 전에 속에 넣는 재료를 뜻한다.    ‘소’는 팥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송편에는 콩·깨·밤 등을 소로 사용하기도 한다. 만두에는 고기·두부·채소 등을 소로 쓰기도 한다. 만두에 넣는 재료를 ‘만두소’, 김치에 넣는 재료를 ‘김치소’라 고 한다.   ‘앙꼬 없는 찐빵’ 대신 ‘팥소 없는 찐빵’이라고 하면 말맛이 살아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주 쓰다 보면 익숙해진다. ‘앙꼬’가 일본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팥소’로 써야 할 동기가 생긴다. 올겨울부터는 ‘앙꼬 없는 찐빵’이 아니라 ‘팥소 없는 찐빵’이라고 해보면 어떨까.우리말 바루기 앙꼬 소로 사용하기 소로 쓰기

2022-08-04

'한국어 대회' 입상자들 한국 간다

어바인 세종학당 수강생 3명이 한국어 '열공(열심히 공부하다를 줄인 인터넷 신조어)' 덕분에 한국 방문 기회를 잡았다.   주인공은 초급 5반 사라 밀러, 중급 3반 일레인 김, 헤일리 콜이다. 이들은 어바인 세종학당(학당장 태미 김)이 지난 15일 개최한 ‘2022 한국어 말하기, 쓰기 대회’에서 입상,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   어바인 세종학당 이미경 교사는 “이들은 10월 초 한글날을 기념해 열리는 세종학당재단 행사에 참가할 예정”이라며 “항공료와 최소 7박8일 동안의 숙식비, 문화 체험 비용을 모두 재단에서 부담하는 파격적 혜택의 부상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듯, 다른 듯 한국어와 한국 문화’, ‘10년 후 나의 모습, 나의 미래’란 주제로 지난 4일 온라인에서 진행된 대회엔 전국 각지 수강생 16명이 참가했다. 9명은 말하기 대회에, 7명은 쓰기 대회에 참가, 열띤 경연을 벌였다.   밀러는 말하기 대회 최우수상, 김양은 우수상을 받았다. 콜은 쓰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밀러는 “어릴 적 마법의 세계를 동경한 내 꿈이 점점 자라 영화와 광고 제작을 하게 됐다”며 “말하기 대회에 참가한 지금 이 순간이 10년 후 자신에게 ‘청춘의 연애 편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콜은 한국의 설악산 등반 중 만난 엄청난 규모의 시니어 등산 모임이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자신도 한국의 어르신들처럼 적극적으로 살고 싶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초급 2반 마이크 시몬스, 초급 1반 제시카 반스는 각각 말하기, 쓰기 대회 신인상을 받았다.   수상자들은 어바인 시의원인 태미 김 학당장이 준비한 어바인 시 표창장과 미주민화협회 이사인 신혜정 어바인 세종학당 문화 강사가 그린 민화를 부상으로 받았다.   모든 참가자는 서울셀렉션 출판사가 후원한 한국 관용어 책자와 한국 문화 관련 영문 서적을 받았다.   어바인 세종학당은 지난 18일부터 10주 과정의 여름 학기를 시작했다. 문의는 전화(949-535-3338)로 하면 된다. 임상환 기자세종학당 한국어 세종학당 한국어 쓰기 대회

2022-06-22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