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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사고 사망-실종자 6명 모두 다 '히스패닉 불체자'

      볼티모어 다리 붕괴사고를 계기로 워싱턴 지역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히스패닉 이민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 사고로 인한 사망-실종자 8명은 모두 사고 당시 다리 위에서 도로를 보수하던 히스패닉 근로자였기 때문이다.       히스패닉 옹호단체 카사에 의하면 워싱턴-볼티모어 지역의 전체 건설현장 근로자의 45%인  13만명이 히스패닉이다. 히스패닉 건설 노동자가 없다면 당장 건설현장이 멈춰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방센서스국 자료에 의하면 볼티모어 지역의 최근 10년새 히스패닉 인구 증가율은 77%에 달한다. 건설현장 근로자는 또한 히스패닉 중에서도 초기 이민계층이 집중돼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합법신분을 갖추지 못한 상태로 일하고 있는데, 건설회사들이 인력 부족으로 인해 근로자격 여부를 잘 따지지 않고 있으며, 가짜 신분증명 서류를 고의로 받아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 사망-실종자가 소속된 건설회사도 사망-실종자의 신원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번 사고-실종자 중 최소 6명이 불법체류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민세관단속국(ICE)도 이같은 사정을 감안해 건설현장 단속은 잘하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었으나 최근 수년 사이 당국의 태도 변화로 인해 현장에서 체포 작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건설현장 중에서도 특히 도로보수 현장은 가장 위험한 일터로 평가받는다. 과속과 부주의 운전으로 인해 도로보수 근로자 사망건수가 줄지 않고 있다. CASA는 “ 불법이민 단속에 대한 두려움은 과속-부주의 운전만큼 공포스러운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실종상태인 매노 사우조 샌도발(온두라스 출신)의 조카 헥터 구와다도는 “삼촌같은 사람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하지 않는 위험한 일을 도맡아왔다”고 말했다.     볼티모어에서 히스패닉 카톨릭 교구의 아코 워커 신부는 “숨지거나 실종된 건설인부들이 모두 미국과 모국의 가족을 부양하던 가장”이라며 “이들의 체류신분 때문에 남겨진 가족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전체 이민 커뮤니티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방노동부 통계에 의하면 히스패닉은 미국 전체 노동인력의 8.2%를 차지하지만,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4%에 달했다. 히스패닉 산재 사망자는 2011년 512명에서 2021년 727명으로 증가했다.     박세용 기자 spark.jdaily@gmail.com히스패닉 실종자 히스패닉 이민자 히스패닉 건설 히스패닉 옹호단체

2024-04-03

볼티모어 교량 붕괴 실종자 “6명 모두 사망 추정”

26일 볼티모어 교량 붕괴 사고로 실종된 6명이 모두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섀넌 길레스 해안경비대 소장은 26일 오후 수색을 종료하며 “수색에 투입한 노력과 시간, 낮은 수온을 고려했을 때 생존자 발견은 어렵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에 당국은 구조 작업을 중단하고 시신 수습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27일 시신 수습을 위해 잠수부들이 동원됐다.     이날 사고로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 위에서 작업 중이던 인부 8명 중 6명이 실종, 2명은 구조됐다. 당시 교량 위에서 8명의 인부들은 포트홀(도로 파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실종자들은 엘살바도르·과테말라·온두라스·멕시코 등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로, 이중 한 명은 세 아이의 아빠인 것으로 알려졌다. 19년 동안 메릴랜드에 거주하며 세 아이를 둔 엘살바도르 출신 이주노동자 미구엘 루나는 사고 전날 저녁 일을 하러 집을 나섰으나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국무부는 실종자들의 출신 국가에 연락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고에 대한 조사를 주도하고 있는 연방 교통안전위원회(NTSB)는 27일 교량과 충돌한 선박의 블랙박스와 데이터 기록장치를 확보했다고 전했으며, 이를 통해 충돌 원인에 대해 파악할 것으로 보인다. 전날 교량과 충돌 전 선박 내 정전이 발생한 것이 사고 원인으로 꼽히기도 했으나, 자세한 원인은 추가 조사 후 파악될 전망이다.     한편 사고 직전 선원들의 조난 신호가 더 큰 참사를 막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직전 응급 구조대원들은 충돌 선박 ‘달리(Dali)’로부터 무전 조난 신호 ‘메이데이’ 호출을 받았고, 이를 통해 경찰은 하루 약 3만 대 넘는 차량이 운행되는 교량의 교통을 통제할 수 있었다. 이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선원들의 경고를 통해 당국이 출동 전 교량 출입을 차단할 수 있었다”고 전했고, 웨스 무어 메릴랜드 주지사는 “충돌 직전 신호를 보낸 선원들이 생명을 구한 영웅”이라고 말했다. 충돌 전 선박이 동력을 상실하고 조종이 되지 않자 선원들은 조난 신호를 보내고 닻을 내리는 비상 조치를 취한 것이다.     사고 발생 이후 메릴랜드주 당국이 항구 운영을 무기한 중단함에 따라, 메릴랜드를 통해 물품을 운송했던 많은 선박이 뉴욕·뉴저지 항구에 정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볼티모어항이 동부 지역 주요 수출입항인 만큼 바이든 대통령은 “교량 재건을 위해 관료적·재정적 장벽을 허물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피트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은 “매일 1억~2억 달러 상당의 물품이 볼티모어항을 통해 이동하며, 일평균 200만 달러의 임금이 이 항구에 달려 있다”며 “향후 몇 주 동안 항만 노동자들의 생계에 위협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지혜 기자 yoon.jihye@koreadailyny.com볼티모어 실종자 볼티모어 교량 전날 교량과 당시 교량

2024-03-27

볼티모어 대교 선박충돌에 붕괴…다리 위 인부 8명 중 6명 실종

동부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항구 입구에 있는 약 1.6마일 길이의 대규모 교량이 26일 새벽 대형 컨테이너선박과의 충돌로 거의 대부분이 붕괴했다.   대형 선박이 교각에 부딪히면서 순식간에 발생한 이 사고로 다리 위에서 작업 중이던 인부 8명이 추락했으며 이 가운데 6명이 실종됐다. 관계기사 6면   사고 발생 직후 실종자 규모가 최대 20명이 될 것이란 예측이 나왔으나 교통량이 적은 새벽 시간대에 발생한데다 선박이 충돌 전 조난 신고를 하고, 차량 출입 통제가 이뤄지면서 대형 참사를 피한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수중 구조 작업을 진행하면서 구체적인 사고 원인을 계속 파악하고 있다. 다만 테러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일단 결론을 내린 상태다.   로이터·AP·AFP통신, 뉴욕타임스(NYT), NBC 방송 등에 따르면 동부시간으로 이날 오전 1시27분께 볼티모어 항만을 가로지르는 다리인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이하 키 브리지)의 교각에 대형 화물선 한 대가 충돌했다는 보고가 해안경비대에 들어왔다.   첫 보고는 ‘모터 선박이 다리와 충돌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충돌로 교량이 가운데 부분을 시작으로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사고 당시에는 교량의 도로 보수 작업도 진행되고 있었으며 사고 발생 초기에는 다리 위를 지나던 일반 차량 여러 대도 강물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됐다.   사고 영상을 보면 대형 컨테이너선이 영상에 기록된 시간상으로 오전 1시28분께 주 교각 두 개 중 하나와 충돌한다. 키 브리지 다리는 그 직후 중간 상판부터 주저앉듯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NYT는 사고 선박이 교각과 충돌 직전 방향을 돌리려 하는 모습이 보이며, 영상에서 보이는 교량 대부분이 약 20초 안에 붕괴했다고 전했다.   브랜던 스콧 볼티모어 시장은 “키 브리지가 저렇게 무너지는 것을 실제 볼 것으로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액션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보였다”면서 “생각할 수 없는 비극”이라고 말했다.   현재까리 교량 붕괴로 강물로 추락한 사람은 모두 8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모두 사고 당시 교량 위에서 포트홀(도로 파임) 작업을 하던 인부라고 폴 위드펠트 메릴랜드주 교통부 장관은 밝혔다. 이 가운데 현재 2명이 구조됐으며 이 중 한 명은 심각한 부상을 입고 외상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위드펠트 주 교통부장관은 다리 위를 지나던 차량의 운전자가 강물에 빠지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공사 인부만 있었던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교각과 충돌하면서 선박에도 한때 화재가 발생했으나 곧바로 진화돼 22명의 선원은 모두 무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웨스 무어 메릴랜드 주지사는 다리 붕괴와 관련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소방당국 등은 수중 드론, 음파 및 적외선 장비 등을 통해 물속에 여러 대의 차량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구조 작업을 진행 중이다.     당국은 현재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나 테러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무어 주지사는 “교량 붕괴의 예비 조사 결과 사고로 보이며 테러 공격이라고 믿을 만한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어 주지사는 “선원들이 당국에 동력 문제(power issue)를 알렸다고 확인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선박이 충돌 전에 동력을 잃었는지를 묻는 말에 “그렇다”라고 답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또 선박이 사고 전에 조난 신호(Mayday call)를 보냈으며 이 때문에 당국이 교량의 차량 통행을 제한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무어 주지사는 “이 사람들(선원)은 영웅이다. 그들은 어젯밤 생명을 구했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사고에 대해 보고 받았으며 사고 대응에 가용한 연방 자원을 투입할 것을 지시했다고 백악관은 밝혔다.볼티모어 선박충돌 볼티모어 항만 대규모 교량 실종자 규모

2024-03-26

스마트 가로등 효과…실종자 하루 새 발견

샌디에이고시 전역에 설치돼 있는 '스마트 가로등'(Smart Streetlights) 덕분에 치매에 걸린 가족을 실종된 지 단 하루 만에 무사하게 찾을 수 있었던 사실이 널리 알려지며 화제가 되고 있다.   로컬 KGTV(채널 10)의 보도에 따르면 치매를 앓고 있는 로드니 앵거스씨는 지난 6일 집을 나갔지만 돌아오지 않아 가족들을 불안케 만들었다.     특히 펜실베이니아에 살고 있는 딸 매러디스 그로프씨는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망연자실한 채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수천 마일 떨어진 샌디에이고를 직접 찾아 나서기보다는 일단 경찰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다음 날인 지난 7일 샌디에이고 시경찰국(SDPD)에 전화를 걸어 아버지의 실종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신고를 받은 SDPD 상황실은 시 전역에 설치돼 있는 4000여개의 스마트 가로등에 설치돼 있는 카메라를 통해 6일과 7일 이틀 동안 수집한 자동차 번호판 데이터를 면밀하게 분석, 앵거스씨가 몰고 나간 자동차 위치를 파악하고 앵거스씨도 찾아내는 데 성공해 그가 무사히 가족의 품에 안기게 했다.   스마트 가로등이란 CC 카메라가 부착된 가로등으로 가로등 인근을 지나는 차량의 모습뿐 아니라 각 차량에 부착돼 있는 번호판의 식별이 가능해 각종 범죄의 예방이나 발생 직후 신속한 대응이 가능해 대도시를 중심으로 그 활용도가 점차 늘고 있는 첨단 방범 시스템이다.   SDPD의 찰스 라라 루테넌트는 "이번 케이스를 통해 스마트 가로등 시스템이 각종 범죄에 대처하는 것뿐 아니라 위험에 처한 시민들을 구조하는 데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밝혔다. 김영민 기자스마트 가로등 스마트 가로등 가로등 인근 실종자 하루

2024-03-26

5살에 실종돼 미국 입양된 한인, 40년 만에 가족 상봉

“친가족과 재회하게 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미국으로 입양된 지 40여년 만에 친어머니를 화상으로 만나게 된 벤저민 박(한국이름 박동수·45)씨는 18일 한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감사 표시를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일리노이주에서 사는 박씨는 이날 화상으로 어머니 이애연(83)씨와 친형 박진수 씨를 만났다.     친척집에 맡겨졌던 박씨가 1984년 5살의 나이로 엄마를 찾겠다며 집을 나가 실종된 지 40여년 만이었다. 그는 고아원에 머물다가 입양기관인 대한사회복지회를 거쳐 미국으로 입양돼 살아왔다.     박씨가 친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재외동포청과 경찰청, 아동권리보장원이 합동으로 진행한 ‘무연고 해외입양인 유전자 검사 제도’ 덕분이었다. 한국 정부는 2020년부터 34개 재외공관을 통해 무연고 해외 입양한인의 유전자를 채취해 한국 실종자 가족과 대조하는 유전자 검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를 통해 가족을 찾은 사례는 이번이 5번째다.   재외동포청에 따르면, 어머니 이씨는 1980년 박씨를 포함한 4남매를 경남 김해의 큰집에 잠시 맡겼다. 남매들은 1984년 어머니를 찾겠다며 집을 나갔다가 실종됐고, 박씨는 보호 시설과 입양 기관인 대한사회복지회를 거쳐 이듬해 미국으로 입양됐다.   미국의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박씨는 2001년 모국 땅을 처음 밟았다. 헤어진 가족을 찾고자 입양 기관을 찾았지만, 가족을 찾을 수 있는 단서는 없었다. 2012년 재입국한 박씨는 계명대 어학당을 다니던 중 경찰서를 방문해 유전자를 등록한 뒤 2016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경찰에 유전자 정보를 남겨두면 언젠가 가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거주하던 박 씨의 큰형 박진수씨가 ‘실종된 두 남매를 찾고 싶다’며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 것은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21년 10월 무렵이었다. 당시 큰형 박씨는 실종신고를 하면서 함께 거주하고 있던 어머니의 유전자를 채취해 경찰서에 등록했다. 이듬해 8월에는 박씨와 어머니가 친자 관계일 가능성이 크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이 나오자 가족 상봉에 대한 희망이 커졌다.   경찰은 이때부터 미국에 거주 중인 박 씨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집중 수사에 나섰다. 출입국외국인청 협조를 통해 박씨의 미국 내 과거 주소지를 확인했고, 주시카고대한민국총영사관의 협조를 거쳐 박 씨의 주소를 파악했다.    이기철 재외동포청장은 “경찰청, 재외공관과 더욱 협력해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어하는 모든 해외 입양동포가 가족 찾기를 통해 정체성을 회복하고, 한국이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여전히 기억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은별 기자 kim.eb@koreadailyny.com미국 가족 유전자 검사제도 가족 상봉 한국 실종자

2024-03-18

5살에 실종 미국 입양 한인, 40년 만에 가족 상봉

“친가족과 재회하게 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미국으로 입양된 지 40여년 만에 친어머니를 화상으로 만나게 된 벤저민 박(한국이름 박동수·45)씨는 18일 한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감사 표시를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일리노이주에서 사는 박씨는 이날 화상으로 어머니 이애연(83)씨와 친형 박진수 씨를 만났다. 친척집에 맡겨졌던 박씨가 1984년 5살의 나이로 엄마를 찾겠다며 집을 나가 실종된 지 40여년 만이었다. 그는 고아원에 머물다가 입양기관인 대한사회복지회를 거쳐 미국으로 입양돼 살아왔다.     박씨가 친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재외동포청과 경찰청, 아동권리보장원이 합동으로 진행한 ‘무연고 해외입양인 유전자 검사 제도’ 덕분이었다. 한국 정부는 2020년부터 34개 재외공관을 통해 무연고 해외 입양한인의 유전자를 채취해 한국 실종자 가족과 대조하는 유전자 검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를 통해 가족을 찾은 사례는 이번이 5번째다.   재외동포청에 따르면, 어머니 이씨는 1980년 박씨를 포함한 4남매를 경남 김해의 큰집에 잠시 맡겼다. 남매들은 1984년 어머니를 찾겠다며 집을 나갔다가 실종됐고, 박씨는 보호 시설과 입양 기관인 대한사회복지회를 거쳐 이듬해 미국으로 입양됐다.   미국의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박씨는 2001년 모국 땅을 처음 밟았다. 헤어진 가족을 찾고자 입양 기관을 찾았지만, 가족을 찾을 수 있는 단서는 없었다. 2012년 재입국한 박씨는 계명대 어학당을 다니던 중 경찰서를 방문해 유전자를 등록한 뒤 2016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경찰에 유전자 정보를 남겨두면 언젠가 가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거주하던 박 씨의 큰형 박진수씨가 ‘실종된 두 남매를 찾고 싶다’며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 것은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21년 10월 무렵이었다. 당시 큰형 박씨는 실종신고를 하면서 함께 거주하고 있던 어머니의 유전자를 채취해 경찰서에 등록했다. 이듬해 8월에는 박씨와 어머니가 친자 관계일 가능성이 크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이 나오자 가족 상봉에 대한 희망이 커졌다.   경찰은 이때부터 미국에 거주 중인 박 씨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집중 수사에 나섰다. 출입국외국인청 협조를 통해 박씨의 미국 내 과거 주소지를 확인했고, 주시카고대한민국총영사관의 협조를 거쳐 박 씨의 주소를 파악했다.    이기철 재외동포청장은 “경찰청, 재외공관과 더욱 협력해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어하는 모든 해외 입양동포가 가족 찾기를 통해 정체성을 회복하고, 한국이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여전히 기억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은별 기자미국 실종 유전자 검사제도 가족 상봉 한국 실종자

2024-03-18

22년 만에 가족 찾은 9·11 희생자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한 지 22년 만에 희생자 2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9·11 테러 희생자 유해의 신원의 새롭게 확인된 것은 지난 2021년 9월 이후 처음이다.   CNN 등 주요 언론매체들은 8일 뉴욕시 검시관실에서 테러 발생 22주년을 앞두고 9·11 테러 희생자 가운데 1648번째 남성과 1649번째 여성의 신원을 확인해 유족에게 통보했다고 밝혔다. 희생자 이름은 유족들의 요청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검시관실은 사고현장에서 수습된 유해의 일부를 첨단 DNA 분석 기술로 조사, 이들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이번에 밝혀진 소식이 해당 희생자들의 가족에게 위로가 됐으면 한다”며 “앞으로도 검시관실은 세계무역센터(WTC) 희생자들과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시 만날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기록에 따르면 9·11 테러 당시 WTC에서 숨진 희생자는 2753명이나 이 중 1000여명은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현재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9·11 추모박물관에는 당시 사건 현장에서 수거한 뼛조각 등 부분 유해 2만2000여 개가 안치돼 있으며, 검시관실은 지금까지도 이들의 신원 확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검시관실은 남은 유해에서 DNA를 추출해 희생자 신원과 대조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당시 비행기가 건물에 충돌하면서 발생한 거대한 폭발과 화재에다 현장 수습 작업도 오래 걸려 수거한 유해에서 DNA 정보를 뽑아내는 게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동안 신원 확인 작업을 중단하기도 했으나 최근 새로운 염기서열분석 기술이 나오면서 재개했다.   한편 뉴욕소방국(FDNY)은 9·11테러 현장에 파견됐다가 구조 현장에서 얻은 각종 질환과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은 소방관과 구조대원 및 스태프 43명의 이름을 추모의 벽에 추가했다고 발표했다.   FDNY에 따르면 이번에 추가된 43명을 포함하면 테러 후유증으로 숨진 뉴욕 소방관 소속 공무원들은 331명이다. 9·11 테러 당시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소방관은 343명이다. 장연화 기자 chang.nicole@koreadaily.com월요일자 실종자 유해 신원확인 테러 희생자 통보테러 후유증

2023-09-10

마우이, 산불 실종자 388명 명단 공개

    하와이 마우이 카운티 정부는 25일 최근 발생한 최악의 산불과 관련해 여전히 388명이 실종됐다며 실종자 명단을 공개했다.   카운티 당국은 어느 누구라도 이들 실종자 가운데 안전한 곳에 생존해 있는 사실을 안다면 관계 당국에 바로 알려줄 것을 당부했다.   400명에 육박하는 실종자 가운데 한인이 포함됐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성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현씨와 이씨 등을 포함해 2~3명 정도가 한인일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마우이 산불로 인한 사망자 수는 지금까지 115명으로 집계됐다. 당국은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당국은 실종으로 분류됐던 1732명은 24일 오후까지 모두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당국은 이보다 하루 앞선 23일, 연방수사국(FBI)이 1000명에서 1100명 정도의 잠정적이고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 명단을 갖고 있으며 단지 104 가구의 DNA를 수집하는데 그쳤다고 말했다. 이는 전국적으로 이전에 발생했던 자연재해의 생존자 확인 비율보다 훨씬 낮은 것이다.   한편 마우이 카운티는 산불 발생 원인과 관련해 하와이안 전기 측에 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하와이안 전기는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마우이 카운티가 법적인 절차를 밟았다는 것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병일 기자마우이 실종자 실종자 명단 마우이 산불 마우이 카운티

2023-08-25

유튜버가 실종자 유해와 차량 발견

전업 유튜버가 미제사건을 해결해 나가고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테네시주 중부 지역의 작은 도시  스타르타에 거주하는 로니 베첼은 2000년 4월3일 아들 제레미 베첼(실종 당시 17세)이 전화로 다음날 라이드를 해달하는 부탁을 받고서 집에 도착했으나 제레미는 그날로 실종됐다.   에린 포스터(실종 당시 18세)도 함께 실종됐다.     둘이 마약사건에 연루돼 살해당하거나 플로리다로 도주했다는 소문이 타운을 휩쓸었다.   놀랍게도 이 사건을 해결한 사람은 조지아주 애틀란타 지역에 거주하는 유튜버 제레미 사이드(42세)였다.   그는 현재  13만명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브 사이트 Exploring with Nug(https://www.youtube.com/c/ExploringwiththeNug/videos)을 운영하고 있다.     원래 금속탐지기를 이용해 금붙이와 골동품 동전 등을 찾아내는 일을 했으나 스킨 스쿠버 기술로 실종된 차량과 사람을 찾는 일에 도전했다. 그는 “사람은 항상 차와 함께 사라는데, 차량은 덩치가 크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면 물에 가라앉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의 거주지 근처의 미제사건을 들여다보면서 하나씩 해결해나가기 시작했다.     실종자의 마지막 행방을 쫓아 사이드 스캔 음파탐지기를 동원해 근처의 강과 호수 등을 수색해 나갔다.   베첼과 포스터 실종사건도 지난 11월 중순부터 찾기 시작해 2주만에 개가를 올렸다.   11월30일 카프킬러 강에서 사이드 스캔 음파 탐지기를 운영하다가  폰티악 그랜드 암 차량을 발견했다.   번호판을 복원했는데, 실종 당시 사라졌던 자동차와 일치했다.     그는 경찰에 연락해 20년 넘게 수장됐던 차량을 인양할 수 있었다.   2000년 당시에는 강변 도로에 가드레일이 없었다.   주정부 검시관은 아직 두 실종자의 유해를 확인하지 못했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부패가 너무 심하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베첼과 포스터는 실종당시 파티에 가던 길이었다.   두 청소년의 부모들은 차량 안에서 발견된 유해의 유전자 감식에 실패하더라도 이 유해를 이용해 장례식을 치를 예정이다.   장례식은 따로 치르더라도 추모 예배는 함께 연다. 유족과 친구들은 고우펀드미 웹페이지(https://www.gofundme.com/f/erin-foster-memorial-services)를 열고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옥채 기자 kimokchae04@gmail.com실종자 유해 실종자 유해 차량 발견 포스터 실종사건

2021-12-12

어번대학생 실종 미스터리 45년만에 풀렸다

1976년 조지아주 어번대학으로 가던 중 실종된 대학생의 유해와 자동차가 45년만에 발견됐다고 조지아 수사국(GBI)이 8일 발표했다.     당시 22세로 어번대학에 다니고 있던 카일 클링크스케일스는 1976년 1월 라그랜지에서 바텐더 알바를 마치고 35마일 떨어진 대학으로 출발했으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30년 가까이 지나 관할 경찰은 제보를 바탕으로 클링크스케일스 살해 용의자 2명을 체포했다. 그 중 한 명은 수년 후 죽었고, 또다른 1명은 경찰에 위증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은 수차례 수색에 나섰지만 클링크스케일스의 시신과 74년형 포드 핀토 차량을 찾지 못했다.     젊은이의 부모 역시10여년이 넘도록 독자인 아들의 흔적을 찾아 다녔고, 실종자 찾기를 돕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어머니 루이스는 올 1월 라그랜지의 한 호스피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마침내 지난 7일 트룹 카운티 셰리프국은 앨라배마주의 한 시내 바닥에서 녹이 슨 차량을 끌어냈고 차량 안에 있던 유해가 클링크스케일스임을 확인했다. 이날 셰리프는 라그랜지와 어번대학의 중간 길인 83번도로의 외진 곳에서 한 차량이 떠올랐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제임스 우드러프 트룹카운티 셰리프는 기자회견에서 "45년동안 이 젊은이와 차량을 찾아 다녔다"며 "호수의 물을 빼기도 하고, 이곳 저곳을 수색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런데 갑자기 차량과 유해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어번대학생 미스터리 어번대학생 실종 실종자 찾기 조지아주 어번대학

2021-12-09

[스토리 In] 침묵의 대재앙 II

 검색만해도 찾을 수 있었다. 잊혀진 이름들은 기다렸다는 듯 쏟아졌다.   2018년 연중기획물로 한인 실종자 찾기 프로젝트를 연재했다. 당시 전국 실종자 데이터베이스를 샅샅이 뒤졌다. 연방법무부 산하 사법연구원(NIJ)이 만든 전국 실종자 통합 데이터베이스 ‘네임어스(NamUs)’를 비롯해 3개 데이터베이스를 찾아 검색했다. 등록된 한인 실종자는 14개주에 걸쳐 34명으로 집계됐다. 어쩌면 어딘가에 아직 살아있을지 모르는 그들의 사연을 기사화했다. ‘침묵의 대재앙’이라는 제목의 칼럼도 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다면 가족들에게 안식을 찾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3년 전 한인 실종사건 프로젝트를 떠올린 이유는 요즘 거의 모든 주류언론들이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는 백인 여성 실종 사망사건 때문이다. 약혼자와 함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가 실종됐다가 지난달 19일 숨진 채 발견된 개비 퍼티토(22) 사건이다.     한달 넘도록 대서특필되고 있으니 ‘실종 백인 여성 증후군’이라는 지적이 나올만도 했다. 언론이 ‘푸른 눈에 금발 여성’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비판이다. 이 덕분에 지난 6월28일 캘리포니아 유카밸리에서 실종된 한인 여성 로렌 조(30)씨 사건이 주목을 받게됐다.   언론의 압박을 받은 수사당국은 수색 작업을 재개했고 지난 11일 실종 지역 인근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유해를 찾아냈다. 아직 그녀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가족들은 생사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붙잡을 수 있게됐다.   2건의 실종사건을 지켜보면서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안타까움이 더 컸다. 주목받지 못한 수많은 사라짐 때문이다.   3년전 취재 당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한인은 최연소 실종자인 형제다. 당시 4살 이지호군과 6살 형 지수군은 2009년 7월11일 오리건에서 실종됐다. 벌써 12년이 지났으니 만약 살아있다면 형제는 16살, 18살이 된다.   이들 형제만큼이나 딱한 사연은 46년된 최장기 실종자다. 1975년 6월8일 델라웨어주 휴양도시 레호보스 비치(Rehoboth Beach)에 살던 송 임 조셉(Song Im Joseph)씨다. 당시 21세였던 조셉씨는 실종 7개월 전 한국에서 주한미군인 남편 앨톤 조셉(당시 24세)과 결혼해 낯선 땅에 왔다. 친척, 친구 한명 없는 그녀는 이날 집에서 ‘증발’했다. 당시 경찰 조서에 따르면 부엌 스토브 위에는 그녀가 조리 중이던 음식이 있었고, 지갑과 여권, 신분증도 집에 그대로 있었다.   임씨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델라웨어주경찰국 미제사건 책임자인 마크 라이드 수사관과 인터뷰해 기사화했다. 그는 그녀의 수사파일을 여전히 보관하고 있었다. 라이드 수사관은 그녀의 남편 앨톤을 용의자로 보고 여러차례 보강수사를 했지만 아직까지도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칼럼을 쓰기 위해 3년 만에 다시 같은 작업을 했다. 네임어스 등 3개 데이터베이스를 뒤졌다. 그새 한인 실종자는 10명이 늘었다. 현재 20개주에서 44명의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40여년 동안이나 조셉씨를 찾지 못하는 이유를 라이드 수사관은 ‘침묵’ 때문이라고 했다. “분명히 누군가는 그녀의 실종에 대해 알고 있다. 보복이 두려워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관심이 없어서다.”   요즘은 조셉 씨가 사라진 1970년대에 비해 실종자를 찾기가 훨씬 쉽다. 과학기법과 첨단 기기들도 도움이 되지만 인터넷이라는 실시간 공유 게시판 덕분이다. 정구현 / LA 선임기자·부장

2021-10-18

장진호 전투 미군 70년 만 부모 곁 안장

미시간 지역 언론은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기관(DPAA) 발표를 인용, 한국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에서 행방불명된 육군 소속 윌리엄 E.캐벤더 병장의 유해가 고향 미시간주로 돌아와 가족 품에 안겼다고 지난 14일 전했다.   캐벤더 병장은 이날 오후 어릴 적 살던 동네인 미시간 중부 소도시 레슬리에 있는 공원묘지의 부모님 곁에 안장됐다.   안장식에는 육군 소속 현역 및 예비역 장병들이 다수 참석했고, 예포로 애도와 조의를 표했다.   캐벤더 병장은 1950년 11월 28일 함경남도 개마고원 장진호 인근에서 소속 부대원들과 함께 중국군의 공격을 받은 후 실종된 것으로 보고됐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평생 기다리던 부모님은 오래전 세상을 떠났고, 이미 팔순이 다 된 두 여동생이 오빠의 유해를 맞았다.   이들은 “오빠와 나이 차이가 10살 이상 나기 때문에 많은 기억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오빠가 해외로 파병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은 알고 있다”며 “오빠의 실종은 가족 모두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남겼다”고 전했다.   이어 “오빠가 하늘나라에서 부모님과 다시 만나는 생각을 하며 위로로 삼는다”면서 “유해로나마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준 정부의 노력에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2021-10-17

[스토리 In] 침묵의 대재앙 II

검색만해도 찾을 수 있었다. 잊혀진 이름들은 기다렸다는 듯 쏟아졌다.   2018년 연중기획물로 한인 실종자 찾기 프로젝트를 연재했다. 당시 전국 실종자 데이터베이스를 샅샅이 뒤졌다. 연방법무부 산하 사법연구원(NIJ)이 만든 전국 실종자 통합 데이터베이스 ‘네임어스(NamUs)’를 비롯해 3개 데이터베이스를 찾아 검색했다. 등록된 한인 실종자는 14개주에 걸쳐 34명으로 집계됐다. 어쩌면 어딘가에 아직 살아있을지 모르는 그들의 사연을 기사화했다. ‘침묵의 대재앙’이라는 제목의 칼럼도 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다면 가족들에게 안식을 찾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3년 전 한인 실종사건 프로젝트를 떠올린 이유는 요즘 거의 모든 주류언론들이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는 백인 여성 실종 사망사건 때문이다. 약혼자와 함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가 실종됐다가 지난달 19일 숨진 채 발견된 개비 퍼티토(22) 사건이다.     한달 넘도록 대서특필되고 있으니 ‘실종 백인 여성 증후군’이라는 지적이 나올만도 했다. 언론이 ‘푸른 눈에 금발 여성’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비판이다. 이 덕분에 지난 6월28일 캘리포니아 유카밸리에서 실종된 한인 여성 로렌 조(30)씨 사건이 주목을 받게됐다.   언론의 압박을 받은 수사당국은 수색 작업을 재개했고 지난 11일 실종 지역 인근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유해를 찾아냈다. 아직 그녀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가족들은 생사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붙잡을 수 있게됐다.   2건의 실종사건을 지켜보면서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안타까움이 더 컸다. 주목받지 못한 수많은 사라짐 때문이다.   3년전 취재 당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한인은 최연소 실종자인 형제다. 당시 4살 이지호군과 6살 형 지수군은 2009년 7월11일 오리건에서 실종됐다. 벌써 12년이 지났으니 만약 살아있다면 형제는 16살, 18살이 된다.   이들 형제만큼이나 딱한 사연은 46년된 최장기 실종자다. 1975년 6월8일 델라웨어주 휴양도시 레호보스 비치(Rehoboth Beach)에 살던 송 임 조셉(Song Im Joseph)씨다. 당시 21세였던 조셉씨는 실종 7개월 전 한국에서 주한미군인 남편 앨톤 조셉(당시 24세)과 결혼해 낯선 땅에 왔다. 친척, 친구 한명 없는 그녀는 이날 집에서 ‘증발’했다. 당시 경찰 조서에 따르면 부엌 스토브 위에는 그녀가 조리 중이던 음식이 있었고, 지갑과 여권, 신분증도 집에 그대로 있었다.   임씨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델라웨어주경찰국 미제사건 책임자인 마크 라이드 수사관과 인터뷰해 기사화했다. 그는 그녀의 수사파일을 여전히 보관하고 있었다. 라이드 수사관은 그녀의 남편 앨톤을 용의자로 보고 여러차례 보강수사를 했지만 아직까지도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칼럼을 쓰기 위해 3년 만에 다시 같은 작업을 했다. 네임어스 등 3개 데이터베이스를 뒤졌다. 그새 한인 실종자는 10명이 늘었다. 현재 20개주에서 44명의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사라지고, 퇴근길에 증발하고, 친구와 여행간뒤 소식이 끊어지고, 마켓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집에 돌아오지 않은 한인들이다.   40여년 동안이나 조셉씨를 찾지 못하는 이유를 라이드 수사관은 ‘침묵’ 때문이라고 했다. “분명히 누군가는 그녀의 실종에 대해 알고 있다. 보복이 두려워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관심이 없어서다.”   요즘은 조셉 씨가 사라진 1970년대에 비해 실종자를 찾기가 훨씬 쉽다. 과학기법과 첨단 기기들도 도움이 되지만 인터넷이라는 실시간 공유 게시판 덕분이다.   SNS는 잊혀진 사람들을 찾는데 최고의 도구이지만 정작 그들의 사진보다는 무생물들로만 가득하다. 어제 구입한 명품, 방금 뽑은 고급차, 별 다섯 개 레스토랑의 음식, 럭셔리 호텔방, 비싼 휴양지의 절경, 마스크를 쓰네마네, 백신을 맞네안맞네 등 다들 ‘나’를 알리기에 바쁘다.     팔로워수가 많은 분들께 부탁하고 싶다. 실종자들의 사진을 한번이라도 공유해주길 바란다.     실종자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검색만해도 찾을 수 있다. 정구현 / 선임기자·부장

2021-10-13

"맥잡·깜둥이·튀기…" 비수가 된 말들

"멕시칸은 게으르고 돈 낭비" 일부 한인들 예사로 비하 발언 한국어 욕설 그들도 알아들어 "아이들에 인식 대물림 겁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는 나의 4명의 자녀들이 언젠가는 그들의 피부색으로 판단 받지 않고 그들의 인품에 의해 판단 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마틴 루터 킹 1963년 8월 28일 인품은 각양각색이다. 성장기 경험과 지식습득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향기다. 삐딱하게 바라보는 부끄럼 모르는 한인사회 민족과 인종을 바라보는 한인사회의 향내를 맡아봤다. 몸에 밴 편견과 차별 미국은 다인종사회인 '멜팅팟(melting pot)'이다. 비빔밥처럼 '섞인 것이 좋은 것'이란 철학을 공유한다. 하지만 일부 한인이 내뱉는 민족과 인종 관련 단어는 비수를 담고 있다. 토런스 물류회사에 다니는 인턴 송모(23)씨는 회사 운전사와 말을 섞는 것이 거북하다. 송씨는 "한인 운전사가 멕시코 등 남미 사람은 게으르고 돈을 모으지 않는다며 폄하하는 발언을 너무 자주한다"며 불쾌함을 표현했다. 미국에 온 지 10년째인 숀 김(38)씨는 한인과 이야기하다 '깜둥이 튀기' 발언이 나오면 이제 오기가 발동한다. 김씨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동의를 얻고 싶은 듯 인종차별 단어를 사용하곤 한다"면서 "그런 발언이 나오면 아무렇지 않은 듯 사촌 누나가 한.흑 혼혈 간호사라고 이야기한다. 반응을 지켜볼 뿐이다"라고 말했다. 한인은 우월하다? 미국 이민은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외친다. 반면 일부 한인은 다인종과 다함께 가자는 태도는 등한시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 말을 빌려 인품으로 판단해보면 낙제점인 셈이다. 타민족이나 인종을 향한 차별 발언은 무의식에 기인한다. 그렇게 살아와서다. 생각 없이 내뱉는 말 한마디가 타인에게 큰 상처가 된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LA한인타운 사무직인 정은정(50대.여)씨는 "맥잡"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몸서리친다. 정씨는 "한인타운에서 그분들이 허드렛일을 하는 모습을 자주 봐서인지 비하 발언이 일상적이다"라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내재한 우월의식을 보인다. 따지고 보면 우월한 것도 없다"고 꼬집었다. 이벤트 대행업체에 다니는 오모(33)씨는 "사장은 남미 직원에게 듣기 민망할 정도의 한국어 욕을 한다. 20~30대인 남미 직원들도 다 안다. 주먹을 쥐고 한 대 때릴 기세지만 60대 사장을 측은하게 보고 참는 모습이다"고 전했다. 생김새보다 인품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면 '비열하다'는 평을 듣는다. 인품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일부 한인은 백인 우월주의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아시아계 한인 사이 차별은 당연시한다. 한인타운에서 생계를 꾸리는 중국동포와 탈북동포가 남한 출신 한인의 차별적 시선이 더 무섭다고 호소한 지 오래다. 브라이언 장(40)씨는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짱개' '쭝땅'이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많이 썼다"며 "생각해보면 유치했다. 태국.베트남.필리핀계는 우리보다 한 수 아래라는 우월적 태도도 결국 인격이 덜 형성됐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정은정씨는 "인종차별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을 볼 때면 한인 아이들이 들을까 봐 무섭다. 아이들이 그런 인식을 대물림하는 모습은 생각하기도 싫다"고 말했다. '우리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음을 자명한 진리로 삼자'는 미국의 건국이념이다.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

2018-04-09

"아내 실종 직후 남편은 재입대했다"…Missing File #2 송 임 조셉

'43년째 행방불명' 최장기 1975년 주한미군과 결혼 미국온지 7개월 만에 실종 사실상 살인사건으로 수사 용의자로 남편 지목됐지만 알리바이 확인돼 혐의 벗어 1975년 6월8일. 델라웨어주경찰국에 실종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인은 대서양의 해변가 작은마을 리호보스비치(Rehoboth Beach)에 사는 백인 남성 앨튼 에드워드 조셉(당시 24세)이다. 그는 "퇴근 후 귀가하니 아내가 집에 없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사라진 아내는 한인 송 임 조셉(Song Im Joseph·당시 20세)씨다. 부부의 집으로 출동한 경찰은 정황상 단순 가출일 가능성을 배제했다. 당시 경찰 조서에 따르면 부엌 스토브 위에는 그녀가 조리 중이던 음식이 있었고, 지갑과 여권, 신분증도 집에 그대로 있었다. 또 지역적 특성상 그녀가 어디론가 떠났다면 쉽게 목격됐어야 했다. 그녀가 남편과 함께 살았던 리호보스비치는 인구 1400여 명이 사는, 한집 건너 모두 알고 지내는 작은 마을이었다. 1970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당시 거주인구의 98%는 백인이다. 한인 여성인 그녀는 어디서든 눈에 띄였을 터였다. 그러나 경찰은 그녀의 소재를 찾아낼 뚜렷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그 후 43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녀는 델라웨어주경찰국 미제사건 리스트에서 '실종상태'로 남아있다. 송 임씨는 본지가 지난 1월 연중기획으로 첫 보도한 전국 한인 실종자 43명 중 최장기 실종자다. 오랜 기간 잊혀졌던 그녀를 다시 세상에 불러오기 위해 델라웨어주경찰국과 연락했다. 미제사건 책임자인 마크 라이드 수사관은 여전히 그녀의 사건파일을 보관 중이다. 그녀는 공식적으로는 실종상태지만, 경찰은 살해됐을거라고 보고 있다. 당시 후속 수사에서 유력 용의자로 남편 조셉이 지목됐다. 라이드 수사관은 "남편이 실종 신고를 한 정황 자체가 매우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조셉은 아내 송임씨가 실종된 지 이틀이 지나서야 신고했다. 당시 조셉은 경찰이 그 이유를 캐묻자 "가정 불화가 있어 이틀 전 아내가 집을 나갔고 친구집에서 지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라이드 수사관은 "더욱 수상한 점은 실종 신고 나흘 뒤 조셉의 행적"이라며 "돌연 군에 재입대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아내의 실종 신고를 한 남편이 아내를 찾지 않고 군에 재입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더우기 둘은 갓 결혼한 신혼부부였다. 송 임씨는 한국에서 주한미군이었던 조셉과 만나 결혼한 뒤 실종 7개월 전 남편을 따라 남편의 고향인 리호보스비치로 왔다. 라이드 수사관은 "백인 일색인 리호보스비치에서 한국인 그녀로선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운전도 할 줄 몰랐고 친구도 1명 뿐이었다"고 말했다. 남편 조셉은 그후에도 아내가 사라진 정황에 대해 여러 번 진술을 번복했다. 날짜를 헛갈리는가 하면, "아내가 30달러를 가지고 나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조셉이 혐의를 벗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알리바이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범행 발생이 가능한 시간대에 직장동료가 조셉과 함께 있었다고 진술했다. 라이드 수사관은 "당시는 지금처럼 DNA를 채취할 수 없었고 감시카메라 등 과학 수사를 벌일 수 없던 시절"이라며 "진술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수사상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델라웨어주 경찰은 그녀를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사건파일에 따르면 인근지역 경찰국, 연방수사국(FBI)이 합동수사를 벌였다. 그녀의 소셜번호 사용여부나, 출입국 기록을 조회해 추적했다. 그러나 그녀는 소셜번호를 다시 사용하지도, 출국하지도 않았다. 당시 수사관들은 송 임씨의 한국 가족과 국제통화도 했다. 라이드 수사관은 "가족들에 따르면 그녀는 서울에서 남쪽으로 6시간 운전해야 하는 시골에 살았다"면서 "통화 상태가 좋지 않았고 통역도 엉망이어서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라이드 수사관은 여전히 송 임씨의 남편을 주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재입대를 신청한 조셉은 주한미군으로 다시 한국에 나갔다가 몇 년 뒤 돌아왔다. 그후 그는 전과 기록들을 쌓아갔다. 매사추세츠, 뉴햄프셔 등에서 형사처벌을 받았다. 2001년에는 군부대에서 C4폭탄 20파운드를 빼돌렸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라이드 수사관은 송 임씨의 실종은 누군가가 침묵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스무살의 신부는 동네 작은 모텔에서 객실청소부로 일했다"면서 "낯선 땅에서 힘들었지만 행복한 삶을 꿈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분명히 그녀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발설했을 경우 생명의 위협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라며 "43년이나 침묵했으니 이젠 털어놓을 때도 됐다. 그녀를 찾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송 임 조셉씨는 1954년 7월8일생이다. 키 5피트 2인치, 몸무게 100파운드의 작은 체구다. 실종 당시 상의는 목뒤로 끈을 묶어 입는 빨간색 홀터 탑을 입었다. 느슨한 바지에 샌들을 신었다. 손가락에는 결혼반지를 끼고 있었다. ▶제보:(302) 741-2730 마크 라이드 수사관 정구현 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201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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