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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그대’ 없이는 못 살아

나는 한글과 영자 종이 신문을 애독하고 있다. 그런데 영자 신문사에서 걸핏하면 전자 신문으로 바꾸라는 엽서가 날아온다. 그런데 전자 신문을 읽으면 짜증이 난다. 한 면을 다 읽어도 자동으로 다른 면이 나오지 않는다. 글씨도 작다 커지고, 커지다 작아지고, 스크린이 올라갔다 내려왔다 정신이 없다.     평생 종이 신문을 읽으며 살았는데, 전자 신문으로 바꾸라니 당혹스럽다. 좋든 싫든 아날로그 세대는 디지털 세대에 밀려나고 있다. 모든 사무 업무는 온라인으로 처리되고 있고 비행기 탑승권을 받거나, 운전면허 갱신 신청도 컴퓨터를 사용해야 한다.   인류 문명은 종이와 함께 발전했다. 우리는 태어나면 한장의 출생신고로 시작해 숨지면 한장의 사망 신고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매일 화장지, 종이 타월, 휴지, 신문, 포장지, 봉투 등 많은 양의 종이를 소비한다. 미국은 풍부한 생산량 덕이 종이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국가다.         요즘 종이 책이 잘 팔리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페이퍼리스(paperless)’ 트렌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서재에는 그동안 수집한 약 600 여권의 책이 있다. 아직 읽지 못한 책도 많다. 아이들은 그 책을 버리라고 하지만 나는 그들을 자식처럼 끼고 있다. 내가 떠나면 도서관에 기증하거나 쓰레기통에 집어넣으면 된다.     책상 서랍에는 여러 가지 서류가 보관되어 있다. 의료 기록이 가장 많다. 아내와 나의 메디케어 서류는 받는 대로 쌓아두었다. 종일 앉아서 서류를 읽고, 분류하고, 중요한 기록만 남기고 모두 버렸다. 버릴 때는 분쇄하지 않고 물을 축여 버렸다.     내가 왜 종이 기록에 애착을 갖게 되었는가. 내 인생은 ‘페이퍼 워크(paper work)’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을 떠나면서 서류를 한 보따리 가져왔다. 그 가운데 아내의 초등학교 교사 자격증도 있었다. 이 자격증을 번역하여 보험회사에 제출했더니, 전문인 자격으로 자동차 보험료를 매년 15% 할인해 주었다. 2년 전에 보청기 환불을 신청했는데, 보험회사는 환불금 1000달러에 처리 기간이 1년이나 소요됐다며 이자 181달러를 더 줬다.     가장 효자 노릇을 한 종이 기록은 내가 주한 미군 부대에서 21년간 받은 봉급 명세서의 하단 절취 부분이다. 은퇴 당시 인사처(OPM)에서는 한국 근무 기간을 연방 공무원 연금에 합산하려면 한국에서 받았던 급여 총액을 미화로 환산해 제출하라고 했다. 다행히 봉급 명세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서류를 미국까지 가져오기 잘한 것이다. 반백 년 전, 연방 정부 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품고 한국을 떠났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도왔다고 생각한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종이 기록 영자 신문사 전자 신문

2024-01-29

[송년기획] 한인 커뮤니티와 함께한 주간포커스 2023

   콜로라도 대표 한인 언론사인 주간포커스는 2023년에도 변함없이 한인사회의 발전과 화합에 기여했다. 차세대 간담회, 한인 골프대회, 동요대회 등을 주최해 한인커뮤니티에 활력을 불어넣었는가 하면, 4년 만에 어린이 동요대회를 재개해 콜로라도 한인 2세들에게 꿈과 희망의 무대를 선사하기도 했다. 한인 커뮤니티와 함께 한 주간포커스의 2023년을 다시한번 되돌아본다.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피해 성금모금 캠페인 벌여 … 유니세프에 7,540달러 전달   지난 2월6일 발생한 튀르키예 시리아 대지진으로 인해 5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발생 첫날에는 수백 명의 희생자를 예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피해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늘어갔다. 이에 주간포커스 신문사는 지난 2월 16일부터 3월 6일까지 튀르키예 지진 피해 돕기 캠페인을 실시했다. 그 결과 덴버 성로렌스 한인성당(주임신부 김정훈 라파엘)에서 성금 4천달러, 콜로라도 한인요식업협회 이종욱 서울바베큐 사장, 대광고등학교 동문회, 마이클 오 외 4명, 가동빌딩, 김지은, 정림횡, 정영철, 윤흥 그리고 익명을 요청한 4명 등이 주간포커스에 성금을 전달했다. 약 3주간 진행된 캠페인에서 모인 성금 총7,540달러를 유니세프 USA로 보냈다. 한편, 캠페인을 주관한 주간포커스 김현주 사장은 “이번 튀르키예 시리아 지진 피해돕기 캠페인에 동참해 주셔서 감사했다. 많은 한인들이 지진 피해 돕기에 동참한 것은 참으로 뿌듯한 일이다. 먼 나라의 국민들까지 보살필 수 있는 여유가 한인사회에서 생겼다는 것은 대견한 일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한인들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관심 가져 준 동포분들께 감사드린다.”라고 밝혔다.             ◈이낙연 대한민국 전 국무총리 방문 … 동포 간담회 및 차세대 리더 간담회 등 주관   주간포커스와 덴버 중앙일보는 이낙연 대한민국 전 국무총리의 방문을 주관해, 이 총리의 덴버 일정을 조율하고, 여러 행사를 주최했다. 5월 10일부터 13일까지 덴버를 방문한  이 전 총리는 덴버국제공항에 도착해 김현주 사장 자택에서 디너모임을 갖고, 11일 오전 7시에 지역 인사들과 조찬(더블트리호텔), 9시에는 오로라시 청사에서 마이크 코프만 시장과 간담,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콜로라도 대학교 덴버에서 강연,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콜로라도 한인 교수들과의 간담, 5시부터 7시까지 교민대상 특별강연회(세컨홈), 7시부터 9시까지는 한인 교민들과 신명관에서 저녁식사 시간을 가졌다. 12일에는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소재한 콜로라도 칼리지에서 총장과 면담 후 학생들과의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당일 오후 7시에는 주간포커스가 선정한 콜로라도 차세대 리더들과의 간담회(사진)를 주간포커스 문화센터에서 가지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3박 4일간의 짧은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 전 총리는 2번의 대학강연과 한인교민 대상 강연회, 저녁 만찬, 차세대 리더들과의 간담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제 3회 콜로라도 한인 골프대회 개최 … 한인 청소년 문화재단 기금마련 목적   콜로라도 한인 청소년 문화재단 기금마련을 위한 주간포커스 주최 제3회 콜로라도 한인 골프대회가 지난 8월 21일 오후 12시에 오로라에 소재한 밸리 컨트리 클럽(사설)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대회에는 120명이 전원 참가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지난 2회 때와 마찬가지로 일찌감치 등록이 마감되어 한인 참가자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챔피언에게 주어지는 상금 2천 달러와 각종 상금을 비롯해, 75인치 삼성 TV부터 LG 65인치 TV,  프라이팬 6종 세트, 고급 골프백,  바비큐 그릴, 조니워커 블루, 인스턴트 팟 등 다양하고 푸짐한 상품들이 마련되어 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아름다운 컨트리 클럽의 풍경과 클럽하우스에서의 디너 시간은 참가자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대회 챔피언은 76타를 친 정동, 최용성씨가 공동 우승했으며, 일반부 1위는 박 제임스, 시니어 1위는 박문성, 여성부 1위는 추제니씨가 각각 차지했다. 주간포커스 주최 한인 골프대회는 전례없이 쟁쟁한 스폰서들, 참가를 원하는 교민들의 참가신청 쇄도, 푸짐한 상품과 고급스러운 식사에 쾌청한 날씨까지 완벽하게 받쳐준 성공적인 대회로 평가됐다.       ◈제 6회 콜로라도 어린이 동요대회 성료 … 4년 만에 재개   주간포커스가 주최하고 콜로라도 한인 청소년 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제6회 콜로라도 한인 어린이 동요대회가 11월 4일 주간포커스 문화센터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4년 만에 열리면서 참가팀,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응원을 하러 오면서 주간포커스 문화센터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대상은 연어야연어야를 부른 허주희(6) 양이 차지해 상금 500달러와 트로피를 수상했다. 금상은 섬마을을 부른 정윤슬(9), 은상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부른 유진(10), 동상은 다섯 가지 예쁜말을 부른 임지민(7), 인기상은 작은 동물원을 부른 전설(5), 독도는 우리땅을 부른 스프링스 통합한국학교 소속 라온팀(9명) 이 차지했다. 한편, 2012년10월 20일에 시작된 동요대회는 한국 동요의 보급과 어린이들의 재능 계발을 위해 기획된 행사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하는 유일한 어린이를 위한 행사로 자리 잡았다.       ◈주간포커스ㆍ덴버중앙일보, 목회 칼럼니스트들과 오찬   주간포커스는 136면을 매주 발행하고 있는데, 이 중 목회칼럼은 지난 16년 동안 한 주도 빠진 적 없는 주간포커스의 대표 지정 칼럼이다. 그래서 주간포커스는 이렇게까지 성실히 지면을 채워주신 목회칼럼니스트들과의 모임을 매년 초에 가지고 있다. 올해도 주간포커스와 덴버중앙일보는 목회 칼럼니스트들과 한자리에 모여 신년모임을 가졌다. 1월 20일 오후 12시, 오로라 소재 서울바베큐에서 가진 모임에는 임동섭 에콰도르 선교사, 이동훈 더비전교회 담임, 김교철 세계선교교회 담임, 조완길 홍해선교회 대표, 유지훈 참빛교회 담임, 이두화 풍성한 교회 담임, 김병수 믿음장로교회 담임, 윤우식 더비전교회 담임 겸 덴버교역자회장 등이 참석해 새해 덕담과 함께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김현주 사장은“두 달에 한 번 정도 쓰는 칼럼이지만, 모두들 매번 고심해서 좋을 글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히 마감시간을 항상 지켜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덴버 중앙일보 킴보장학금 수여식 … 총 5명에게 2천달러씩 전달 덴버 중앙일보사(대표 김현주)가 지난 8월 5일 주간포커스 문화센터에서 2023년 킴보장학금 수여식을 진행했다. 중앙일보 산하 비영리 단체인 해피 빌리지와 중앙일보가 킴보 장학재단의 후원으로 실시하는 2023년 덴버지역 킴보장학생에는 5명이 최종 선발되었다. 올해는 5명 전원이 대학입학 예정자로 선발되었다. 한편, 올해 제36회를 맞는 킴보장학생 선발은 한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장학사업으로는 미국 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중앙일보는 지난 2008년부터 장학생 선발지역을 미 전역으로 확대해 중앙일보의 전 지사를 통해 장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킴보장학생은 한국계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장학사업으로, 2023년에는 미 전역에서 총 215명을 선발해 1인당 2000달러씩, 총 43만달러를 지급했다. 올해 덴버 장학생은 김도윤(Dartmouth College), 제이니 신(Vanderbilt University), 라이언 리(Harvey Mudd College), 박서현(CU Boulder), 정지나(Yale) 등이다.       ◈주간포커스 김현주 사장, 3년 연속으로 한국학교협의회에 2천 달러 후원   주간 포커스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재미한국학교 콜로라도 지역협의회(회장 유미순)에 2,000달러를 쾌척했다. 지난 9월 9일에 열린 2023 가을학기 교사연수회 자리에서 후원금을 전달한 본지 김현주 사장은 “콜로라도 한인청소년 문화재단의 기금 마련을 위한 골프대회를 성황리에 잘 마쳤다. 그때 모금한 후원금 중 일부를 콜로라도 한국학교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올해에도 후원을 결정했다. 특별히 우리 한인 2세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국학교 선생님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아이를 한국학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의 한사람으로서, 이 후원금이 한국학교를 위해 유용하게 사용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후원금을 전달받은 유미순 재미한국학교 콜로라도 지역협의회 회장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렇게 큰돈을 쾌척해 주신 김현주 사장님과 콜로라도 한인청소년 문화재단 측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는 2000달러가 20,000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만큼 귀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김경진 기자송년기획 주간포커스 커뮤니티 콜로라도 한인요식업협회 주간포커스 김현주 주간포커스 신문사

2023-12-29

기자·경찰·공무원 거쳐 방송 진행자로

걸어온 삶 자체가 다양성과 포용성을 담아낸다.   이러한 배경이 한인 여성을 TV쇼 진행자의 자리로 이끌었다.   온라인 뉴스 매체 패치닷컴은 현재 라구나힐스, 다나포인트 지역 등의 수도 시스템을 관리하는 몰턴니구엘수도국 최고경영자(CEO)인 한인 준 김 로페즈씨가 오렌지카운티 지역 비영리 방송사인 ‘OC월드’의 프로듀서이자 진행자로 선임됐다고 14일 보도했다.   김 로페즈씨의 이력은 화려하다. 신문 기자, 공무원, 경찰관 등으로도 활동했다. 이민자의 딸로서 LA 폭동을 경험했고, 경관으로 활동하면서 마약 단속반에서 훈장까지 받았다.   김 로페즈씨는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성장기에 겪은 많은 어려움 때문에 연민을 느끼고 어떤 일에 공감하기를 좋아했다”며 “나, 타인, 그리고 주변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면서 사람들을 돕는 것을 즐거워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인 1979년에 가족과 함께 미국에 왔다. 영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라서 학교에서 괴롭힘도 당했다.     김 로페즈씨는 “그때는 ESL 수업도, K팝도 없었기 때문에 언어와 미국 문화를 모른 채 학교에 다니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며 “그때 부모님이 LA에서 히스패닉 거주 지역에 신발 가게를 운영했는데 그때부터 어린 나이에 신발을 팔며 영어와 스패니시를 익혔다”고 말했다.   그는 본래 꿈이 언론인이었다. UC샌디에이고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스페인 문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했다.   결국 희망대로 졸업 후 한 지역 신문사에서 기자로 채용돼 펜을 잡았다. 현장을 누비고 싶어했던 그는 곧 펜을 내려놓아야 했다.   김 로페즈씨는 “부모님이 LA 폭동으로 신발 가게를 잃게 됐고 나는 순식간에 가족을 부양해야 하기 위해 돈을 더 벌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며 “그때 패서디나시의 정부 보조금 관리자로 채용돼 공무원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 가게에서 일했던 경험 때문에 친절하고 근면했다. 당시 보조금 지원 부서 옆에서 함께 근무하던 경찰관들이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던 김 로페즈씨를 눈여겨보다가 경관직을 권유했다.   그는 또 한 번 길을 바꾸기로 했다. 경찰학교로 진학한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경관이 됐다.     김 로페즈씨는 짧은 경력에도 곧바로 현장 훈련 교관으로 선임됐고 이후 패서디나 경찰국 최초의 여성 총기 교관을 역임한 뒤 마약단속반에서 수사관으로 활동했다. 그 당시 마약밀매 조직원들과 총격전 도중 총상을 입으면서도 용의자를 체포, 은성용맹훈장까지 받았다.   경관 생활은 7년 만에 마무리됐다. 당시 결혼 때문에 경관을 그만두고 수도국에 입사했다. 센트럴 시립수도국(매니저), 애플밸리랜초스수도국(부국장), 칼라베라스카운티수도국(국장)을 거친 뒤 현재까지 몰턴니구엘수도국 최고경영자로 활동 중이다.   OC월드의 TV쇼 진행자를 맡게 된 건 우연이었다.     친구들과 함께한 레스토랑에서 예약 좌석을 기다리던 중 팟캐스트에 대해 한 낯선 남성과 대화를 나누게 됐다. OC월드의 총괄 프로듀서이자 설립자인 스콧 헤이스였다.   스콧 헤이스 프로듀서는 “수도국에서 일해서 그런지 물에 대한 이야기도 너무 재미있었고 정말 흥미진진하며 역동적인 사람이었다”며 “이후 점심에 김 로페즈씨를 초대했고 방송 진행자 자리를 제의했다”고 말했다.   김 로페즈씨는 “방송을 통해 오렌지카운티의 가치를 다시 한번 일깨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재 그는 정치인, 기업가, 자선사업가 등 할 것 없이 다양한 이들을 인터뷰하며 의료 문제, 수질 문제, 가정 폭력 등 지역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논한다. 김 로페즈씨의 방송은 벌써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한 가운데 최근에는 ‘제73회 골든 마이크 어워드’에서 최우수 프로그램 상도 받았다. 장열 기자ㆍjang.yeol@koreadaily.com로페즈 오렌지카운티 지역 tv쇼 진행자 지역 신문사

2023-09-17

신문사 200곳, 구글 제소…"디지털 광고시장 독점"

최대 신문 출판그룹인 가넷을 포함한 200여개 언론사가 구글의 디지털 광고 독점에 관한 소송을 제기했다.   가넷의 자회사인 USA투데이는 20일 전국 신문·잡지사들이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언론사는 “구글이 기만적인 광고 관행으로 반독점법과 소비자보호법을 위반함으로써 광고 기술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구체적으로 언론사들이 온라인 광고 공간을 파는 ‘광고 서버’ 시장의 90%를 구글이 지배하고 있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이러한 구글의 독점은 디지털 광고 매출에 의존하는 언론사들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마이크 리드 가넷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을 내고 “뉴스 출판사들은 적시에 최신 보도와 필수 콘텐츠를 지역사회에 제공하기 위해 디지털 광고 매출에 의존하고 있다”며 “그러나 구글의 광고 관행은 (언론사) 매출은 물론 지역 뉴스 자체를 줄어들게 만드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리드 CEO는 “디지털 광고 공간을 위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없다면 언론사들은 편집국에 투자할 수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구글이 지난해 언론사 웹사이트 내 광고 공간 판매로 거둔 매출은 300억달러로, 이는 모든 언론사의 디지털 광고 매출을 합친 것의 6배에 이른다.   언론사들에 앞서 각 주 정부와 연방정부도 비슷한 내용의 반독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지난 2020년 여러 주의 법무장관이 공동으로 소송을 낸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연방 법무부도 소송에 동참했다.   유럽연합(EU)도 비슷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구글의 광고영업 분할을 압박하고 나섰다.광고시장 신문사 디지털 광고시장 반독점 소송 광고영업 분할

2023-06-20

[삶의 향기] 포기의 미덕

치과에 갈 때마다 치과 선생님은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세요” 하신다.     당연히 치아의 건강과 스트레스는 상관관계가 있겠지만, 문제는 마치 “그 쉬운 걸 왜 못하세요”라는 듯한 뉘앙스다. 가벼운 인사 겸해서 하시는 말인 줄 알기 때문에 불쾌한 정도는 아니지만, “누군들 스트레스받고 싶어 받나요”라며 속으로 볼멘소리가 올라오곤 한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행복의 첩경임을 늘 강조해 오면서도 어떻게 마음을 비우는가에 대한 안내가 없다면, “비워야 하는 건 알겠는데, 그게 쉬운 게 아니잖아요” 하는 독자들의 볼멘소리를 필자 역시 듣게 될지 모를 일이다. 명상이나 염불 외에 보다 현실적인 방법들을 소개해본다.   첫째,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한다. 불가에 ‘무관사(無關事)에 동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나의 능력 밖의 일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갖지 말라는 의미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걱정이 실제로는 별 의미가 없다고 한다. 응원하는 팀이 지면 그날은 분해서 잠을 못 잘 만큼 학창시절에 농구를 좋아했다. 속을 끓인다고 승부가 바뀔 리가 없다. 5년 전 동남아시아 불교 유적 답사 중 소매치기를 당했다. 분하고 억울했지만, 해외에서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현지 경찰에 신고하는 것뿐이었다. 마음을 끓인다고 소매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돌아보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로 인해 고민하고 걱정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포기할 건 포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둘째, 대치(代置) 공부다. 작년에 원불교 신문사에서 교리 관련 칼럼 요청이 있었다. 현재 맡고 있는 훈련원 건축이 어려움에 부닥쳐 있어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거절할 명분이 없어 수락했다. 최소한 칼럼을 준비하고 쓰는 동안만큼은 훈련원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러한 정신의 휴식은 어려운 시기를 버티고 맑은 정신으로 훈련원 일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어떤 일에 집중하는 것은 명상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아 잡념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셋째, 내가 하는 일은 ‘베푸는’ 것이 아니라 ‘갚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훈련원 건축을 하다 보면 사업 허가나 도로포장 등을 위해 이웃의 허락을 받아야 할 일이 종종 생긴다. 평소 왕래가 없던 이웃에겐 거절을 당해도 서운한 마음이 덜하지만, 작년 추수감사절에 와인을 선물했던 이웃이 거절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와인까지 선물했는데도 불구하고 허락을 안 해주다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작은 선행이 오히려 큰 죄업을 짓게 되는 경우’이고, 불가에서 무상보시(無相布施·베풀었다는 관념과 상이 없는 것)를 강조하는 이유이다.     모두가 은혜이니 보은하는 것은 당연하고, 인과로 보면 베푸는 것과 갚는 것이 둘이 아니다. 필자같이 가진 것이 없는 사람도 때로는 정신, 육신, 물질로 보시할 경우가 생긴다. 보시할 때, 은혜를 베푼 후에 관념과 상을 놓으려 하기보다 은혜에 보답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마음은 비우면 편안해지고 밝아진다. 불교 공부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결코 과언이 아니다.   drongiandy@gmail.com 양은철 / 교무·원불교미주서부훈련원삶의 향기 미덕 훈련원 걱정 훈련원 건축 원불교 신문사

2022-08-29

[중앙 칼럼] 한인사회 ‘인턴제도’ 바르게 정착돼야

한인사회에서도 더 많은 인턴이 일했으면 좋겠다. 인턴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메디컬 드라마에서였다. 의사 인턴은 의대를 졸업하고 일반의로서, 전공의 과정인 레지던트에 들어가기 직전의 자리다. 시스템이 조금 다른 미국의 경우도 레지던트 1년차를 인턴이라고 부른다.     신문사 인턴 기자는 예전의 수습기자쯤으로 보면 되겠다.     한 예를 소개한다. 한국에서 최근에 소송이 끝난 경우다. 하지도 않은 인턴을 경험한 것으로 가짜 증명서를 만들었고 이를 상급학교 진학에 사용했다. 벼슬은 하루를 해도 벼슬이라지만 어디 인턴도 그런가. 그런 점에서 인턴 기간 조작은 경험의 위조이며 받아준 곳을 심하게 모욕한 것으로 소송감이다.     뒷얘기로는 그런 일이 한국 곳곳에서 만연하다는 것이다. 부모가 나서서 자녀의 경력을 부풀려 주기 위해서 서로 티 나지 않게 상대방의 자녀에게 후한 경력을 제공한다고 전한다. 마치 농촌에서 농사에 일손이 부족할 때 하는 품앗이 같다. 그리고 이런 얘기가 떠돌다 보니 인턴을 위조해서라도 좋은 상급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마치 정당한 것처럼 들린다. 최소한 잘못이 발각될 경우 창피해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은데 이조차 모르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 결국 커져서 부정부패한 정치인이 발각돼도 창피한 줄 모르고 자기 아랫사람 탓하는 것의 과거형처럼 보인다.     지금은 겨우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잘못에 불과하지만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100년 전 조선을 일본 제국에 팔아먹은 사람들도 처음에는 매관매직이나 백성의 등골을 빼먹는 단순한 부정부패를 큰 죄책감 없이 했고 나중에는 국권이 넘어가는데도 눈감았을 것이다.       또 다른  예를 소개한다. 수년 전 학부생 하나가 스타트업 인턴 자리에 출근한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출근하는 회사의 젊은 CEO가 하버드 출신이어서 전망이 무척 밝아 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음 소식이 이해가 어려웠다. 인턴으로 실제 출근하려고 하니 무급직이었다는 것이다.     인턴은 여름방학에 자기 시간을 투자해서 ‘리얼 월드’를 배우려고 지원했던 것인데 싸게 막일을 시키려고 채용하는 것은 아닌지 의도가 의심스러웠다. 그 스타트업은 당시에 투자 유치가 성공적으로 이뤄져 경영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자신들은 투자를 받으면서 인턴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으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모든 인턴은 누군가가 정성을 다해서 키운 미래다. 이들에게 실무는 물론, 기업문화나 전통을 가르쳐 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 유무급을 떠나 남의 시간을 쓴다면 제공해야 하는 기본적인 배려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여서 아쉬웠다.     특히 CEO가 한국 최고 명문대와 하버드 출신이어서 주위의 기대가 컸기에 더욱 그렇다. 생활비를 마련하지 못한 인턴은 다른 곳에는 늦어서 못 가고 부랴부랴 학교로 돌아가 여름방학 수업을 들었다고 전한다.     인턴제가 인재를 키우고 전체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무조건 해보자는 생각은 갖지 말자. 그런 기회라도 주는 것이 아주 없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너무 준비 없이 인턴을 받았다가 서로 시간 낭비하는 경우를 봤다. 인턴은 급여가 적은 비정규직 직원이 아니라 기업의 사회 기여의 한 방법이다. 그래서 무급으로 기본 숙식비조차 해결해주지 못하겠다는 젊은 CEO의 스타트업이 안타깝다. 지금 투자 받은 돈으로 버티고 있다는데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장병희 / 사회부 부국장중앙 칼럼 한인사회 인턴제도 스타트업 인턴 신문사 인턴 인턴 기간

2022-02-08

[김창준] 하수처리 전문 업체 창업 주류사회 진입 느낌

  ━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 6화〉 '한인 정치' 물꼬 김창준 전 연방 하원의원     〈20〉사업가로 성공하며 미국 정착   신문 배달하며 USC서 토목공학 전공 한인정치협(KAPA) 조직 정치 눈 떠   유학생들이 모이는 동아리에 가입했다. 국제관계 연구 동아리였다. 그런데 모임에 가는 게 큰 부담이었다. 영어가 안되니까 그들의 토론내용을 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학생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고 토론을 벌이며 무언가 개선하려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한국 교육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학생들은 각 나라 외교정책을 두고 토론을 벌였다. 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한 주제였다. 때때로 토론에서 코리아도 나왔다. ‘세계 속에 한국이 있구나.’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나는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나 식민지 교육을 받았고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도 겪었다. 당시 한국 역사와 나의 존재를 놓고 고민한 적은 없었다. 부정선거에 항거해 목숨을 내걸고 구름 떼처럼 경무대(현 청와대)로 치닫던 학생들 무리를 보고서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먼 미국에 오니까 한국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동아리 회장을 새로 뽑는다고 했다. ‘내가 나가봐야지.’ 새로 들어온 신입 회원의 출마 선언에 다들 생뚱맞은 표정이었다. 정견발표를 준비해야 했는데 영어 소통이 잘 안 됐던 나로서는 도움이 필요했다.   친절하게 대해주던 한 백인 여학생을 찾아갔다. 정견발표를 대신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흔쾌히 승낙했다. 며칠 뒤 학교 신문에 나와 그녀 사진이 크게 실렸다. 우리 팀은 교내에 화제를 불러 모았다. 결국 동아리 회장으로 덜컥 당선됐다. 그 여학생은 동아리 행사마다 나와 함께 늘 같이했다.     우리 파트너십은 이런저런 이유로 2년 임기 중 7개월 만에 깨졌다. 나로서는 영어가 더 절실해졌다. 여긴 미국이었다. 영어를 제대로 해야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늦은 밤 집에 돌아오면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V와 F, TH, Z 발음이 가장 어려웠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어느 날 신문을 소리 내 읽었다. 신문에 실린 주요 기사를 몇 번씩 소리 내 읽었다. 그렇게 영어 공부에 매달리자 유학생활 1년 만에 영어 실력이 부쩍 늘었다. 하루가 다르게 귀가 열리고 말문이 터졌다. 그래도 특유의 악센트는 여전히 남아 있고 아직도 서툰 부분이 있다.   그 무렵 지역 신문사 보급소에 새 일자리를 얻었다. 새벽 시간에 일해 낮에 공부하기 좋았다. 수입도 좋은 편이었다. 신문 배달을 하는 동안 단 하루도 시간을 어긴 적이 없었다. 그걸 좋게 봤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역 책임자가 됐다.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수입이 늘었다. 병원 청소도 그만뒀다.     신문 보급소 일을 하면서 내가 가고 싶었던 USC 토목공학과 2학년에 편입했다. 꿈이 실현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려서부터 원대한 꿈을 가져야 한다고들 한다. 그때 내 삶은 원대한 꿈을 갖고 살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코앞에 닥친 현실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학부 공부를 하면서 미국과 미국 사회가 이해됐다. 그러다 보니 미국 친구도 사귀게 됐다.     토목공학은 적성에 맞았다. 이 분야를 공부하기 전까지는 내 성격이 엔지니어에 적합하다는 걸 몰랐다. 공학은 기준을 세우고 표준을 만드는 일이다. 모든 작업은 기준에 맞아야 했다. 그런 일이 내 성격과 잘 맞았다. 덕분에 좋은 성적으로 USC 졸업 뒤 곧바로 USC 대학원에 진학했다.   전공은 환경공학으로, 상하수도 물 정화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주경야독으로 조교까지 하면서 1969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에 온 지 8년 만이었다. 학교에서는 박사과정을 권했지만, 연구직은 내게 맞지 않았다. 주류사회에 나가 사업가로 성공하고 싶었다.   마침 대학원을 마칠 무렵 미 전역에서 하수처리장 설치로 바쁠 때였다. 전공 분야라 좋은 직장에 금방 취직됐다. 신문사 아르바이트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던 빡빡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하수처리 컨설팅 업체인 ‘제임스 몽고메리’에서 경험을 쌓은 뒤 직접 회사를 차렸다.   하수처리장 짓는 일은 주정부에서 발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으면서 업무상 정부 관계자들을 자주 만났다. 하수처리장 수주를 잘 따기 위해 신문·잡지를 꼼꼼히 읽으며 정부에 관한 지식을 키워나갔다.   미 전역에서 동시다발로 폐수처리 사업이 이어지다 보니 일거리가 쏟아졌다. 하루가 멀다하고 비행기를 타고 서부 지역을 날아다녔다. 미국으로 건너와 처음으로 내가 뭔가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더는 이방인이 아니고 미국 주류사회 일원이 된 기분이었다.     엔지니어로 왕성하게 일하면서 일본계가 만든 아시아기업가협회(AAA)에 나가 활동했다. 얼마 뒤 일본계를 제치고 내가 AAA 회장이 됐다. 그러면서 일본계가 어떻게 미국의 주류사회와 소통하는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한인들과의 교분도 이어갔다. 한인이 늘면서 한인들을 위한 이익단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무역업을 하던 배기성씨와 함께 1972년 한미정치협회(KAPA·카파)를 조직했다. 나는 2대 회장이 됐다. 우리는 카파의 첫 번째 사업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출마한 제리 브라운 당시 후보의 정치모금 파티를 열어 후원금을 걷어줬다. 브라운은 8년 동안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했다. 당시 최연소 주지사였던 그가 40년 뒤 다시 주지사직에 당선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카파 회원들은 정치 후원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알게 됐다. 앞으로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야 할 2세들을 위해서라도 한인들이 더는 먹고사는 일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미국은 거대한 나라지만 그 거대한 나라를 움직이는 것은 지역구민들이 뽑는 주 의원, 시의원이라는 걸 실감했다.     정치 모금은 한인사회 의견을 주지사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길이었다. 풀뿌리 민주주의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원용석 기자김창준 하수처리 주류사회 영어 공부 지역 신문사 동아리 회장 남기고 싶은 이야기

202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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