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셀폰
76 아직은 이른데, 더 있다 가도 되는데, 셀폰이 울렸다 이 한밤중, 잘 못 누른 것이겠지, 내일, 그러자 벨은 끊어졌고 까무룩 더 깊은 잠이 새까맣게 밀려왔다 내가? 아냐, 전화하지 않았어 오늘이라도 찾아뵐까요? 추레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아침 통화 후 나는 생각한다 무엇이 한밤중 그로 하여금 나에게 전화하도록 했던 걸까? 그의 천국환송 예배 중, 그가 한 줌의 재로 바다에 뿌려진 후, 나는 또 생각한다 한밤중 무엇이 그로 하여금 셀폰을 집어 들게 했을까? 자신조차 알지 못한 누구로부터 무슨 예감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떤 보이지 않는, 바로 그 순간, 누구보다 더 가까이 그의 곁에 있던 존재로부터 밤의 어두운 영역을 지나온 울림 붙잡지 못한 어떤 의미 어쩌면 마지막 한 마디가 담겼을, ‘잠결’, 그리고 ‘내일’에 놓쳐버린, 그 짧게 울린 신호음... 하나의 회한이, 하나의 슬픔이, 마음을 휘젓는다 정말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한밤중, 눌렀으나 말하지 못했고, 듣지 못한 말, 셀폰은 울렸으나 서로 주고받지 못한 그 말, 어둠 속 소설가는 밤새도록 무엇을 생각했을까, 죽음이 그를 데려갈 때까지 이제 나는 생각한다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그가 하고 싶어 했던 한마디는 들어야 한다고 찾아가 함께 걸으며 제일 먼저 물어야 한다고 그러나, 나는 다시 생각한다, 묻지 않겠다고, 묻지 않겠다고, 한밤중 걸려온 셀폰, 그 신호음만으로, 우리는 이미 서로 충분했으므로 이윤홍 / 시인시 최문항 소설가 한밤중 무엇 천국환송 예배 아침 통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