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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노벨문학상 수상에 즈음하여

불이 났다. 전화기를 열어보니 카톡 대화창에 빨간 신호들이 즐비했다. 깜짝 놀라게 한 문구는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아시아 여성 최초, 국문학의 쾌거, 경사! 새 역사 쓰다!’였다. 신문, 유튜브까지 한강 작가의 인터뷰 기사가 계속 올라왔다. 그동안 얼마나 기다렸던 소식인가!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강렬했다. 육식에 트라우마를 가진 주인공은 폭력을 거부하는 갈등, 아니 죽음을 사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책장을 덮은 후, 너무나 처절한 탓에 나는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을 접었다. ‘채식주의자(Vegetarian)’는  2016년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으로 영국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모름지기 한국 문학의 국제상 수상 어려움을 한글 번역에 두었던 터. 한강 작가는  ‘Vegetarian’을 통해 국제적인 관심을 받았고 인지도도 쌓이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소년이 온다(Human acts)’를 통해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의 폭력과 존엄,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독특한 인식으로 ‘너’를 불러서 살아있게 한다.     한강 작가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 부서지기 쉬운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그녀는 “죽지 말아요”라며 아파하면서 썼고 한동안 그 속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고 했다. 2021년 ‘작별하지 않는다(Impossibles adieux)’는 제주 4·3 사건의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이 소설은 내면을 드러내는 현실적인 글로 프랑스 메디치상 문학상을 받는다. 강렬한 시적 산문으로 강인함을 드러냈다.     두 작품은 한국 역사를 배경으로 했기에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일부 있다. 하지만 정치적 이념을 넘어서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속을 깊게 들여다보고, 같이 아파하며 인류의 보편적 주제를 다루었다는 것에 뜻을 두면 어떨까. 언어 미학, 함축적 문학 자체로의 맛으로 말이다.     미주 문인협회, 수필가, 소설가, 시인협회는 지난 토요일 모임을 갖고 한강의 작품 세계를 조명했다. 한강의 시와 소설을 함께 읽고, 작가와 관련된 추억이나 미담을 나누며 그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했다. 통쾌한 소식은 타국에서 한글로 글을 쓰는 문인들에게 각별한 값어치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금상첨화(錦上添花)라고 할까? 한인 1.5세인 김주혜 작가가 ‘작은 땅의 야수들’이라는 소설로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았다. 독립운동가였던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다. 우리 선조들은 생존이 보장되지 않던 상황에서도 이타심과 용기를 잃지 않고 독립을 쟁취했다는 서사다. 우리 문학 역시 K 문화 시대에 한 자리를 차지했다. 문학이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것도 실감케 한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영상 중심에서 활자 문화로 귀환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어둡고 무거운 사회 속에서 같이 느끼며 아파했지만, 작가 역시 밝은 글로 행복할 수 있길…. “아프지 마세요!” 이희숙 / 수필가이 아침에 노벨문학상 수상 국제상 수상 소설가 시인협회 한국 문학

2024-10-15

한인 서점에 한강 작품 문의 쏟아져

반스앤노블 서점서도 이미 품절 한국 서점 해외배송도 예약판매 중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53)의 작품에 대한 문의가 한인 서점에 쏟아지고 있다.   스와니에 있는 기독백화점 관계자는 “전에 있던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의 작품은 이미 다 나갔다”며 수상 소식이 발표되고 한강의 책을 찾는 문의 전화가 많았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이어 찾고 있는 책이 있다면 주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한국에서도 큰 인기라 지금 주문하면 이번달 말일까지는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둘루스 H 마트 몰 내 말씀사 관계자는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며 “있던 책은 다 나가고, 찾는 분들이 많아 이미 주문을 다 해놓은 상태”라고 전했다.   피치트리코너스에 있는 반스앤노블 서점에도 한강의 책은 이미 품절이다. 서점 관계자는 "오늘 아침 문을 열자마자 한강의 책을 찾는 고객이 왔다"며 한꺼번에 두 권을 사서 갔다고 전했다. 이후 남아있던 마지막 '채식주의자' 책도 팔려 곧 새 주문을 넣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새 책은 약 1주일 후 들어올 예정이다.   미국에서 한강의 책을 사려면 한인 서점에 주문해놓거나, 온라인 서점에서 전자책(eBook)으로 빠르게 만나볼 수 있다.   교보문고는 한강의 대표작을 모아 놓은 페이지를 만들었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희랍어 시간,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등 대표작 10권을 이북으로 구매해 바로 다운받을 수 있다. 예스24, 알라딘 등에서도 e북을 구할 수 있다.   실물 책을 구하고 싶다면 예스24, 알라딘 등에서 해외배송 받을 수 있다. 알라딘 홈페이지에 따르면 구매자가 3가지 배송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며, 중량에 따라 배송료가 정해진다. 재고가 있다면 약 3~5일 이내 배송받을 수 있다. 현재 한강의 주요 작품은 모두 예약 판매되고 있다.   소설가 한강의 영어 번역본은 아마존에서 구입할 수 있다. 한강의 책 중 아마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작품은 '채식주의자'로, 일반 책뿐 아니라 킨들(이북), 오디오로 읽어주는 버전까지 살 수 있다.   윤지아 기자애틀랜타 한강 애틀랜타 한인사회 소설가 한강 온라인 서점

2024-10-11

뉴욕 한인들도 들썩…한국 서점서 한강 작품 매진

소설가 한강(54)의 한국 작가 최초 노벨 문학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뉴욕 일원 한인들도 들뜬 하루를 보냈다.   뉴욕시간 10일 오전 7시,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자마자 한인들은 뉴스 앱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전해진 소식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맨해튼 코리아타운에 위치한 한국 서점은 문을 열기 무섭게 전화가 빗발쳤다. 고려서적 매니저는 "뉴욕·뉴저지 한인은 물론이고 타주에서도 당장 결제할테니 한강 작가의 책을 살 수 있냐는 문의가 이어졌다"며 "한국어 서적은 모두 팔려 다음주에 재입고될 예정이며, 영문판만 한두권 남았다"고 밝혔다. 그는 "한강 작가가 맨부커 국제상을 받았을 때도 열기가 대단했고 특히 타민족들의 관심이 많다"며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뉴욕한국문화원에도 한강 작가의 책을 대여할 수 있는지 묻는 전화가 빗발쳤다. 김천수 뉴욕한국문화원장은 "소셜미디어에 문화원이 보유한 한강 작가의 서적 사진을 올리자마자 전화가 이어져 깜짝 놀랐다"며 "작품 자체도 대단하지만, 훌륭한 작품을 잘 번역해 전달할 수 있는 한인 2·3세 번역가의 힘도 매우 중요하다고 느꼈고 자랑스러운 한글을 더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한인·한국계 작가들도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다. 뉴저지에 거주하는 이수정 작가(재외동포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대상 수상·2024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는 "한강 작가에게 무한한 축하를 보내고 한국 문학이 세계화하는 고속도로를 뚫어줘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어제는 578돌 한글날이었는데, 우리만의 언어를 가진 자긍심을 지키면서도 세계와의 소통 방안도 더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재미 번역작가로도 일하는 그는 "훌륭한 한국 문학 작품이 많은데 묻혀 있어 속이 상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소설 '파친코'를 쓴 한인 이민진 작가는 본지에 보낸 성명에서 "한강은 용기·상상력·지성으로 현대 상황을 반영하는 뛰어난 소설가"라며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하다"고 밝혔다.     한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메신저 등에서도 종일 한강 작가의 소식이 전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공립도서관에 한강 작가의 책을 더 주문하자'는 독려가 이어지기도 했다. 젊은 한인들은 "언어의 장벽을 깨고 한국어 작품이 세계에서 통한 것을 보니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소설가 한강은 1970년 11월 광주에 있는 기찻길 옆 셋집에서 태어났다. 그는 2016년 열린 한 문학회에서 자신의 소설 쓰기에 대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했다. 30년 넘게 일관되게 다뤄 온 주제는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비극이다.     ━   한강 작가는 누구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거머쥔 작가 한강(54)은 1970년 11월 전라남도 광주(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저명한 소설가 한승원이다.     1993년 연세대 국어국문과 졸업 뒤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한강은 이후 ‘여수의 사랑’, ‘희랍어 시간’ 등 다양한 소설집과 장편소설들을 발표하며 한국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소설 외에도 시와 아동문학 등 전방위 작품 활동을 했다.     국내외 수상 내역도 화려하다.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김유정 문학상을 받았으며, 영국 인터내셔널 맨부커상,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과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 등을 받았다.   그는 2016년 열린 한 문학회에서 자기의 소설 쓰기에 대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김은별 기자 kim.eb@koreadailyny.com한인 한국 김천수 뉴욕한국문화원장 소설가 한강 재외동포문학상 단편소설

2024-10-10

[문예 마당] 사막에 내린 비

뜨거웠다. 문학을 사랑하는 열정은 날씨 못지않게 더웠다. 일 년 만에 개최하는 미 전 지역 문인들 모임이랄까? 미주 문인협회 주최로 여름 문학 캠프가 팜 스프링스에서 열렸다. 수개월 전부터 임원진은 강사와 장소 선정, 프로그램 구상, 진행 계획을 세웠다. 앞에서 추진하는 회장단과 뒤에서 조용히 협력하는 임원들이 있었다. 회장단은 자기 일을 뒤로 제쳐놓은 채 협회 일을 우선으로 솔선수범했다. 또한 스스로 뒷전에서 앞장서는 회장을 도우며 행사를 위해 못자리를 마련하는 임원도 있었다.     수레는 앞뒤 균형 잡힌 바퀴에 의해 움직이지 않던가. 행사 며칠 전부터 한국 강사진과 텍사스, 시카고, 알래스카,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참여하는 회원들을 맞이하기 위한 발걸음은 바빴다. 이렇게 넓은 지역을 아우를 수 있는 문학 한마당이 펼쳐지다니 놀라웠다. 시, 수필, 소설, 아동 문학 장르라는 합집합 속에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통집합이 꽃을 피워 낸 게다. 신인상 수여를 통해 참신한 인재를 발굴하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어 의미가 깊었다. 이어 미주 문학상 수여가 있었다. 특별히 “30회가 되도록 수필가가 선정된 것이 처음이라니, 참으로 미주 문학사에 뜻깊고 귀중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수필은 얌전하고 순진한 글이지만, 그 속에 정서적 깊이가 깃든 독특한 미학을 가지고 있어 그 작가마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손홍규 소설가는 심사평을 했다.     수필은 수수하고 오염되지 않은 일상의 정겨운 이야기를 품은 글이다.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는 것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아름답게 재조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슬기로 이끌어 친밀감을 빚어낼 수 있는 문학이 아니던가.     안도현 시인의 ‘시가 생기는 시점을 찾아서’, 손홍규 소설가의 ‘사연과 진심을 담아 소설 쓰기’라는 주제로 강의가 있었다.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 연세에도 돋보기 너머의 글을 읽으며 열공하는 모습은 진지했다. 회원 모두 표정이 밝았다. 명절을 기다렸다는 듯 곱게 차려입으신 선배들의 모습에 덩달아 내 마음도 화사해졌다. 그동안 안부를 묻고 안녕을 확인하며 서로에게 위로를 건넸다. 이어지는 교제의 시간은 흥겨웠다. 뜨거운 불 곁을 마다치 않고 갈비를 굽는 임원의 수고 덕분에 모임은 한결 맛깔스러워졌다. 게다가 그 뜨거운 자리를 교대하며 배려하는 회원도 있었다. 뒷정리까지 옷소매를 걷고 도왔다. 남은 갈비를 지혜롭게 처리해 준 옛 임원 덕분에 귀갓길 버스에서 배고플 회원들에게 전달되어 따뜻한 마무리가 되었다. 진행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사소한 문제가 생겼지만, 물이 빈자리를 메꾸듯 서로 자연스레 협력하여 흘러갔다. 폭염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던 요즘, 한줄기 소나기를 맞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이희숙 / 수필가문예 마당 사막 수필 미주 문학상 미주 문학사 손홍규 소설가

2024-08-29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장편소설 ‘바람벽’을 집필하며

때(時)는 오고 간다. 애타게 그리워해도 지워진 사랑이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마음 떠난 사람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때(時)는 시간의 어떤 순간이나 부분이다. 어떤 일을 하기에 좋은 기회나 알맞은 시기를 말한다.     베스비오 화산의 대폭발로 멸망한 폼페이에는 화산재가 덮칠 당시 그 모습 그대로, 살아있는 듯 죽은 사람들이 엉겨 붙어 있다. 연인들은 서로 껴안고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마주하고, 만삭의 어머니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바닥에 배를 깔고 웅크리고 있다. 너무 생생해서 금방이라도 화산재를 뚫고 걸어나올 것 같다.     참고 기다리면 때(Time)가 온다. 썰물처럼 떠내려 간 생의 편린들이 무채색의 바다를 거슬러 밀물처럼 몰려온다. 바다는 원래 푸른 빛이었을까? 자음과 모음이 엉겨 붙은 파도는 저녁 노을에 활화산처럼 타오른다.     마지막은 찬연하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은 순간의 불꽃놀이다. 성냥개비나 불쏘시개로 사라진다 해도, 스러지고 다시 일어나, 길 위에서 길이 되는 사람들의 언어를 진솔하게 적고 싶었다.     오래 전 자전소설 두 권과 자전에세이를 출간했다. 자전소설 ‘찔레꽃’은 소설의 형식을 갖추지 못해 서술에 가깝다. 자전에세이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은 이기희 삶을 그린 투영도(投影圖)다.   장편소설 두 권을 정말 쓰고 싶었다. 절망의 늪에서 희망의 불꽃으로 타오르고, 나락으로 꼬꾸라져도 목숨줄 놓지 않는 사람들의 싱싱한 언어를 담고 싶었다.   20년 가까이 한 주도 빠짐없이 미주중앙일보에 칼럼을 썼다. 사업하며 아이들 키우면서 밤잠 설치며 글쓰기 연습을 했다. 마감 시간 안 놓치려고 수술 받은 날은 가슴을 동여매고 글을 쓰고 어머니 장례식 날은 눈물로 자판기를 두드렸다.     인생의 반을 지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쓰고 싶은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문제는 구성 즉 플롯이다. E.M 포스트는 ‘소설의 이론’에서 플롯은 사건들 간의 필연적 연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스토리와 구분된다고 설명한다.     무식은 실력 부족으로 유식을 이기지 못한다. 소설다운 소설을 한 편도 쓴 경험이 없어 맨 땅에 헤딩하다 지렁이 잡는 실수를 범하게 될까 두렵다.   작가는 실제 있는 것들을 쓰지 않는다. 입히고 꾸미고 각색하고 분탕질하며 창작의 꽃을 피운다. 백마 탄 왕자와 결혼해 무명시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시나리오는 유명 영화감독 신춘문예 당선작의 소재로 비난의 대상이 됐다. 베스트셀러 소설가 작품들 속에도 사랑을 버린 여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텃밭에 뿌린 씨는 싹이 트면 푸릇푸릇 잎이 돋아난다. 이방인으로 남의 땅을 떠돌아도 그리움이 얼룩진 씨앗 한 톨 땅 속 깊이 묻으면 수만 수천개로 번져나간다. 디아스포라는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을 의미한다. 의학적으로 파종은 다른 장기로 전이된 것으로 족보에서 종통이 바뀌는 것을 말한다.     꿈 속에서 ‘바람벽(Wind wall)’이 소설 제목으로 떠올랐다. 바람벽은 집의 둘레나 방의 칸막이를 위해 흙을 발라 만든 벽이다. 진흙을 뭉개 바른 벽이라도 얼어붙은 몸 녹일, 따스한 구들목이 있는 땅을 찿아 얼마나 헤매였던가.     바람은 동에서 서로 서쪽에서 다시 동쪽으로 분다. 그대와 나,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벽을 허물 수 없다 해도, 바람은 수시로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장편소설 바람벽 베스트셀러 소설가 소설 제목 어머니 장례식

2024-06-04

[문장으로 읽는 책]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바쵸프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고,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그는 전차에 대해서, 빵가게에 대해서, 넵스키 대로에 내리는 소나기에 대해서, 여자들의 구두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요. 무엇이든지, 정말로 뭐든지 다 이야기로 만들 수 있었어요.” 아무리 소소한 소재라도 이바쵸프의 입을 거치면 듣는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재미있고 매혹적인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전차에 무임승차하려는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 빵 속에서 발견된 외화 때문에 체포됐지만 같은 빵 속에서 발견한 다이아몬드를 뇌물로 주고 풀려난 사람의 이야기, 넵스키 대로에 소나기가 내릴 때 갑자기 비를 맞고 홀딱 젖은 채로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들, 새로 구두를 사서 뽐내며 신고 다니다가 전차 안에서 건설 노동자의 흙투성이 발에 밟혀 울상이 된 멋쟁이 아가씨에 대한 이야기…     정보라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저주토끼』로 영국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의 초기 단편 모음집이다. 인용문은 러시아 배경의 ‘Nessun sapra(네순 사프라)’. 종전 후 숙청당해 정신병원에서 죽어간 전설적 소설가 이바쵸프와 그가 죽자 시체를 잘라 먹으며 사랑을 지켰다는 간호사 류보프의 얘기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상적인 생활, 내 어린 날의 생활이 문만 열고 나가면 바로 바깥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어요.” 이바쵸프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류보프의 회고인데, 한편으론 왜 사람들이 이야기의 마법을 필요로 하는지도 말해 준다.   나무가 돼버린 친구를 위해 복수하는 ‘나무’ 등 기이하고 비현실적 세계에 냉엄한 현실과 잔혹한 복수를 뒤섞는 정보라 환상문학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전설적 소설가 멋쟁이 아가씨 비현실적 세계

2024-04-24

한인 작가, 아픈 세상을 보듬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배우 겸 래퍼인 한인 아콰피나의 연기력과 존재감을 세상에 알렸던 영화 ‘페어웰’(2019)로 주목받았던 룰루 왕 감독 연출의 미니시리즈 ‘엑스팻츠’는 한인 소설가 재니스 리가 4명의 자녀를 기르면서 체험한 모성애를 바탕으로 5년에 걸쳐 집필한 소설 ‘The Expatriates’(2016)가 원작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교포 또는 주재원을 뜻하는 ‘Expats’는 홍콩에 거주하는 3명의 미국 여성에 관한 6부작 드라마다.     역사의 전환점인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2014년경의 홍콩. 아메리칸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신분, 가정환경, 성장 배경, 경제적인 여건 등이 판이한 세 명의 여성이 우연히 만나 서로 교류하며 각자 삶에 영향을 미치면서 극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그린다.     뉴욕 퀸스 출신의 한인 2세인 머시(유지영)는 컬럼비아대 출신임에도 임시직을 전전하다 새 출발을 다짐하며 홍콩으로 건너온 24살의 싱글 여성이다. 우아한 중년의 백인 여성 마거릿(니콜 키드먼)은 배려심 많은 한국인 남편과의 사이에 3명의 아이를 두고 있다. 마거릿의 이웃인 힐러리(사라유 블루)는 상속받은 유산으로 부를 누리고 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해 고여있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마거릿의 남편은 머시에게 육아 도우미를 부탁하고 머시는 힐러리의 남편과 관계를 맺는다. 그러던 중 마거릿의 막내아들이 실종된다. 마거릿 부부와 머시는 일생일대의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함께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그토록 아기를 갖고 싶어하지만 임신이 불가능한 힐러리, 그녀의 남편과의 관계로 원치 임신을 하게 되는 머시,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려 일상이 뒤엉켜 버린 마거릿, 이들은 씨줄과 날줄이 서로 교직하듯 한동안 서로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만남을 이어간다.   세 여성의 각기 다른 정체성과 관점, 그리고 가족 간의 깨어진 관계들. 모성애의 슬픈 한 구석, 그들의 지친 영혼과 비극 뒤에 찾아오는 용서와 화해. 그러나 이 모든 걸 이전 상태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면.   “내 새끼가 애를 낳는다고. 다 괜찮을 거야, 엄마가 있잖아. 이제 애 생각해서 밥도 잘 먹어야 해.”     어머니의 이 한마디에 부서지고 깨어진 머시의 영혼이 위로받는다. 드라마는 그 모든 답 없는 상태의 모성의 오류들에 한국적인 정서로 답을 제시한다. 머시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임신한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러나 태어날 생명을 축복으로 안아줄 준비에 분주하다.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한인 엄마 한인 소설가 여성 마거릿 한인 작가

2024-01-26

[글마당] 개고생

서울에서 온 화가 전시회였다. 화가 부인을 소개받았다. 훤칠한 미모의 지적이며 단아하고 선한 인상이다. 그녀는 사려 깊은 모습으로 조용히 사람들 말에 경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요 방정맞은  입에서 “저도 화가 와이프이지만 화가 부인하느라 개고생 많이 하셨지요?”   눈물이 핑 돌아 글썽이는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그녀가 말했다.   “개고생‘이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 편히 터놓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직장 다니며 남편 서포트한 그녀의 사연이 쏟아져 나왔다.   정말이지 화가 와이프 하기 쉽지 않다. 화가라는 직업은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일단 없다. 꼴에 풀타임으로 작업하고 싶어 한다. 큰 작업 공간이 있어야 한다. 재료비는 말하면 잔소리다. 차라리 컴퓨터 하나만 들고 작은 공간에서 글 쓰는 소설가 부인이 훨씬 낫지 않을까?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커다란 작업 공간에서 수많은 작품을 만들고 없애고를 반복해서 겨우 만들어 낸 괜찮다는 작품도 팔린다는 보장이 없다.     전시를 위해 사진 찍어야 하고 팸플릿 만들기 위해서는 글을 받아야 하고 운반해야 하고 오프닝 준비해야 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엄청나게 깨진다. 뭐 유명해지면 갤러리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그전까지 뒤에서 물심양면 지원하는 부인들이야말로 개고생이다. 유명해지는 것은 로또 맞을 확률이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화가가 되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그중에서 많은 이들이 중간에 떨어져 나가고, 또, 또 떨어져 나간다. 골인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부부가 합심해서 달려도 골인 언저리에 도달하기가 무척 힘들다.     요행히 화가로 이름이 조금  날리면 혼자 노력해서 달려간 양 거들던 부인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기 일쑤다. 그나마 조금 성공한 화가의 말이 생각난다.   “마누라 얼굴만 봐도 개고생하던 시절이 떠올라서 싫어.”   싫은 마누라 피해 밖으로 나돌다가 젊은 여자와 그렇고 그런 관계로 이어진다. 결국엔 조강지처는 버림을 받는다. 다행히 옆에서 후원한 와이프를 불쌍히 고맙게 여기는 화가도 있지만, 많은 남자가 그렇듯 성공하면 주위에 젊은 여자들이 달라붙는다. 젊은 여자가 좋지, 늙은 마누라가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조강지처 버리고 잘된 화가를 못 본 것 같다. 게다가 화가는 자기는 재능을 선택받아 남과 다른 일을 하는 양 잘났다고 타협하지 않는다. 예민한 성질 또한 부인이 개고생하는 데 한몫 거든다. 글쎄 다른 화가들은 모르겠지만, 내 남편의 아주 작은 예를 들어보겠다. 모처럼 식당에 갔다. 밑반찬이 주르르 나왔다.     “이 반찬들 들락날락했던 것 아니야?”   “맛있어 보이는데 왜 또~ 밑반찬이 무슨 잘못이라고.”   조용히 깍두기만 우적우적 씹는 찌그러진 얼굴색이 좋지 않다.     “항상 당신이 가자는 식당에 가다가 처음 내가 오자고 한 식당이잖아. 밑반찬 많이 나오는 식당이 싫다고 성질 내는 인간도 있을까? 먹지 마. 내가 다 먹을게.” 나는 반찬 접시마다 다 가져다 싹싹 먹어 치웠다. 남편이 가고 싶어 하는 김치 한 가지 나오는 설렁탕집으로 가지 않았다고 트집 잡기 시작하더니 짜증 내며 하루를 망친다.     ’아이고 내 팔자야. 차라리 산에 들어가 도를 닦아도 내 신세보다는 낫겠다. 내 나이도 절에서 받아줄까? 금전 두둑이 가져가면 받아줄까?‘     항상 어딘가 튈 곳이 없나 두리번거리며 푼수처럼 ’개고생‘이라는 헛소리나 하고. 헛소리하며 스트레스 풀지 않으면 화가 부인으로 살아남기 정말 힘들어서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개고생 화가 부인 소설가 부인 작업 공간

2023-12-29

‘한 여자를 사랑하였다’ 출간…박경숙 소설가 7번째 신작 출간

원로작가 박경숙(사진) 소설가가 장편소설 ‘한 여자를 사랑하였다(문이당)’를 출간했다.     작가의 7번째 신작 ‘한 여자를 사랑하였다’는 2003년에 출간한 첫 장편소설 ‘구부러진 길(푸른사상)’에 이어지는 뒷이야기다.     ‘구부러진 길’에서 작가는 작품을 통해 조국을 떠나 먼 타향인 미국에서 곤고했던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현재의 자신을 돌아봤다.     박 작가는 “가톨릭 사제의 사랑에서 모티브를 얻어 영혼의 갈등을 통해 진정한 사랑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며 “이번 출간으로 이야기가 완성됐다”고 밝혔다.     시인이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이승하 교수는 “이 작품은 작가의 인간운명론에 대한 진지한 탐구”라고 평했다.       박 작가는 미주 문단의 대표적인 원로작가다. 지난 30년 동안 끊임없이 작품을 발표해왔다. 2001~2008년 본지 ‘이 아침에’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국문학을 전공한 박 작가는 1992년 미국에 이민 와 미주한국일보를 통해 등단했다.     출간 작품은 장편소설 ‘구부러진 길’, ‘약방집 예배당’, ‘바람의 노래’가 있으며 소설집 ‘안개의 칼날’, ‘빛나는 눈물’, ‘의미있는 생’이 있다.     장편소설 ‘바람의 노래’는 이민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박 작가는 “누군가는 100년 한인 이민사를 소설로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도했다”며 “문학적 꿈은 이민 대하소설을 출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 작가의 작품들은 한국 문단에서 여러 차례 수상되며 주목받았다. 2015년 장편소설 ‘바람의 노래’로 제8회 노근리 평화상문학상, 올해는 소설집 ‘의미있는 생’으로 고원문학상을 받았다. 이은영 기자박경숙 소설가 박경숙 소설가 원로작가 박경숙 신작 출간

2023-10-08

[문화산책] 끝없이 고치고 손보고 다듬고

글쓰기에서 추고 또는 퇴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것이다. 쓰기에 못지않게 중요한 작업이다. 다듬고 고치고 손볼수록 작품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문호, 대작가들의 명작, 명문장도 그런 노력의 결실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대표작인 ‘노인과 바다’는 군더더기나 수식어 없는 간결하고 힘찬 문체(文體)로 유명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1953년엔 퓰리처상을, 이듬해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헤밍웨이는 이 소설을 발표하기 전에 87차례 원고를 뜯어고쳤다고 한다. 2만6571개 단어로 된 짧은 소설을 무려 87차례나 뜯어고쳤다는 것이다. 명작은 그렇게 태어난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고치기에 공을 많이 들이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초고는 생각나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써놓고, 그것을 뜯어고치고 다듬는 과정을 수없이 거듭하면서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퇴고에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10차례 이상 뜯어고치는 것은 기본이고, 깎아내고 다듬고 넣고 빼는 작업은 셀 수 없이 많이 한다고 한다. 이어서 출판사 편집자와의 교정작업이 지겨울 정도로 되풀이된다. 독자들의 반응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데. 특히 첫 독자인 부인이 읽고 지적한 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고친다고 한다. 글이란 다듬을수록 좋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문장이든 반드시 개량의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아무리 ‘잘 썼다’‘완벽하다’라고 생각해도 거기에는 좀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퇴고 단계에서는 자존심이나 자부심 따위는 최대한 던져버리고 달아오른 머리를 적정하게 식히려 노력합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미국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1938-1988)가 한 말도 의미심장하다.   “한 편의 단편소설을 써내고 그것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고 쉼표 몇 개를 삭제하고, 그러고는 다시 한번 읽어보고 똑같은 자리에 다시 쉼표를 찍어 넣을 때 나는 그 단편소설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떤 작가는 이미 책으로 나와 있는 작품을 끈질기게 수정하기도 한다. 최인훈의 대표작 ‘광장’이 그런 작품이다. 평생에 걸쳐 여러 번 고치고 다듬어 교정판을 발간했다.   물론, 도스토예프스키처럼 퇴고와 수정을 전혀 안 하는 작가들도 있는데, 이는 매우 특이한 경우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빼고는 장편과 단편 대부분을 퇴고를 안 하고 말 그대로 펜이 가는 대로 썼다고 전한다. 도박과 낭비벽이 심해서 다작을 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퇴고를 할 여유가 아예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 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유 있게 퇴고를 하고 작품의 질을 높일 수 있던 투르게네프나 톨스토이 같은 작가들을 굉장히 부러워하며, 스스로의 처지를 지독히 한탄했다고 한다. 만약에 도스토예프스키가 여유를 가지고 마음에 들 때까지 글을 고치고 다듬었다면, 엄청난 명작이 나왔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아무튼 고치기 다듬기는 작가의 필수 작업이다. 허구헌날 원고 마감에 쫓겨 허겁지겁 날치기로 써대야 하는 생계형 글쟁이가 아니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즐거운 고통이다. 그래서 퇴고를 산통(産痛)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다익선, 많이 할수록 좋다. 이런 고통이 있기 때문에 꾸준히 좋은 작품이 나오고 명작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소설책은 드디어 나왔는데, 댄 브라운의 책은 언제나 나오려나….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소설가 레이먼드 명작 명문장도 퇴고 단계

2023-09-07

[문화산책] 소설가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

소설가 로맹 가리는 1956년 소설 ‘하늘의 뿌리’로 세계 3대 문학상이며, 프랑스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에밀 아자르는 1975년 소설 ‘자기 앞의 생’으로 프랑스 공쿠르상을 받았다. 두 사람은 동일인이었다. 로맹 가리가 죽기 직전에 밝혀, 세상이 깜짝 놀랐고, 널리 알려졌다. 그렇게, 중복수상 금지로 유명한 공쿠르상을 두 번 받은 역대 유일의 작가가 된 것이다,   러시아계 프랑스인 로맹 가리(1914~1980)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는 바람에 어머니와 함께 3세 때부터 리투아니아, 폴란드를 거쳐 18세에 프랑스의 니스에 정착한 유대인이었다.   그의 삶은 소설이나 영화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고 치열했다. 전투기 조종사, 제2차 세계대전 영웅, 외교관, 소설가,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며 격정적으로 살았다. 여배우 진 세버그와 결혼한 화려한 삶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진 세버그는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의 대표작인 ‘네 멋대로 살아라’의 주인공으로 세기적 영화 아이콘이었다.   이처럼 비현실적일 정도로 화려한 삶을 살았던 그가 정작 가장 괴로워했던 것은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는 삶이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었으나, 대중의 환상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평생 온갖 헛소문에 시달리며 살았다.   “난 내가 삶을 산 거라는 확신이 그다지 서지 않는다. 오히려 삶이 우리를 갖고 소유하는 게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나는 살면서 선택권을 거의 갖지 못했다.”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새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것도 세상에서 다시 한번 자신으로 살기 위한 절실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로맹 가리를 퇴물 취급하던 사람들은 혜성 같이 나타난 천재작가 에밀 아자르를 찬양했다. 둘이 동일인물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런 세상에 보기 좋게 한 방 먹인 것이다.   그리고, 1980년 겨울, 그는 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향년 66세.   로맹 가리를 생각할 때마다 감동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그의 어머니다. 억척스러운 홀어머니의 지대한 관심은 오로지 그가 성공해 행복한 프랑스인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 바람대로 로맹 가리는 법학을 공부했고, 2차 세계대전에 항공 대위로 참전한 공로로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중복 수상이 금지된 공쿠르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소설가로도 성공했다.   로맹 가리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공군에서 복무할 당시, 어머니의 편지를 계속해서 받았다. 편지에는 사랑하는 아들이 전쟁 위험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마음의 평온을 찾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들은 오랜 시간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지만, 사랑이 듬뿍 담긴 어머니의 편지를 계속 받아 읽으면서,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편지들은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낸 편지들이었다. 위암에 걸린 어머니가 전쟁터에 있는 아들을 위해서 200여 통의 편지를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어머니란 그런 존재다.   로맹 가리는 그 사실을 3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이런 어머니 사랑 덕에 천재작가 로맹 가리가 있었다.    1980년 12월 2일 ‘결전의 날’이라는 제목의 짧은 유서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한바탕 잘 놀았소. 고마웠소. 그럼 안녕히.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소설가 아자르 소설가 영화감독 에밀 아자르 러시아계 프랑스인

2023-08-31

[시] 셀폰

76   아직은 이른데, 더 있다 가도 되는데,       셀폰이 울렸다   이 한밤중, 잘 못 누른 것이겠지,     내일,   그러자 벨은 끊어졌고 까무룩 더 깊은 잠이 새까맣게     밀려왔다         내가? 아냐, 전화하지 않았어   오늘이라도 찾아뵐까요?   추레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아침 통화 후 나는 생각한다   무엇이 한밤중 그로 하여금 나에게 전화하도록 했던 걸까?   그의 천국환송 예배 중,     그가 한 줌의 재로 바다에 뿌려진 후, 나는 또 생각한다       한밤중 무엇이 그로 하여금 셀폰을 집어 들게 했을까?     자신조차 알지 못한 누구로부터 무슨 예감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떤 보이지 않는,     바로 그 순간, 누구보다 더 가까이 그의 곁에 있던     존재로부터       밤의 어두운 영역을 지나온 울림     붙잡지 못한 어떤 의미   어쩌면 마지막 한 마디가 담겼을,   ‘잠결’, 그리고 ‘내일’에 놓쳐버린, 그 짧게 울린 신호음...   하나의 회한이, 하나의 슬픔이, 마음을 휘젓는다       정말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한밤중, 눌렀으나 말하지 못했고, 듣지 못한 말,     셀폰은 울렸으나 서로 주고받지 못한 그 말,   어둠 속 소설가는 밤새도록 무엇을 생각했을까,   죽음이 그를 데려갈 때까지         이제 나는 생각한다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그가 하고 싶어 했던 한마디는 들어야 한다고   찾아가 함께 걸으며 제일 먼저 물어야 한다고   그러나, 나는 다시 생각한다,     묻지 않겠다고,   묻지 않겠다고,         한밤중 걸려온 셀폰,     그 신호음만으로,     우리는 이미 서로 충분했으므로   이윤홍 / 시인시 최문항 소설가 한밤중 무엇 천국환송 예배 아침 통화

2023-07-20

소설로 풀어낸 현대미술의 본모습…장소현 ‘그림 그림자’ 출간

시인 겸 미술평론가 장소현씨가 신간 ‘그림 그림자(출판 문학나무·사진)’를 출간했다.     ‘이야기로 엮은 미술의 본디’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에는 오늘날 미술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과 여러 가지 근본 문제들을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낸 미술의 겉모습들 14편, 미술의 속내 14편 등 총 28편의 글이 수록됐다.     작품은 미술의 본질과 존재 이유, 미술가의 정신적 자세, 현실적 삶과 미술의 관계, 감상자의 눈길, 미술시장과 문화권력 등의 근본적 문제들을 다각적 시선으로 꼼꼼하게 살피며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장소현 작가는 “여러 가지 복잡한 현대 미술 문제에 직면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노력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며 “그 결과 미술은 점점 더 난해해지고, 대중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고, 본모습을 되살피는 일”이라며 “이 이야기들은 해답이 아니라, 본질적 질문이면서 함께 고민해보자는 제언”이라고 강조했다.     황충상 소설가는 추천사에서 “이 28편의 소설은 문장으로 그린 문장의 그림자로 읽혀 문장이 그림에게, 그림이 문장에게 하는 말이 장소현의 빛깔, 냄새로 신선하다”고 평했다.     LA를 기반으로 시인, 극작가, 언론인,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장소현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대와 일본 와세다대학교 대학원 문학부를 졸업했다. 시집, 희곡집, 소설집, 칼럼집, 미술책 등 27권의 책을 펴냈고, ‘서울말뚝이’, ‘김치국씨 환장하다’, ‘민들레 아리랑’ 등 50편의 희곡을 한국과 미국에서 공연 및 발표했다. 고원문학상, 미주가톨릭문학상을 받았다.     ▶문의: sochangusa@gmail.com 이은영 기자현대미술 장소현 미술평론가 장소현씨 장소현 작가 황충상 소설가

2023-06-25

소설집 ‘LA 이방인’ 출간…신재동 작가 두 번째 소설집

신재동 소설가가 두 번째 소설집 ‘LA 이방인(도서출판 북랩·사진)’을 출간했다.     첫 번째 소설집 ‘유학’에 이은 두 번째 소설집으로 한국예총 ‘예술세계’ 문학 공모전 당선작 ‘소년은 알고 싶다’에 이어 2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소설집에는 ‘생일선물’, ‘인형의 비밀’, ‘소녀 노숙자’, ‘검은 마스크’, ‘고백’, ‘LA 이방인’ 등 총 10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됐다.     작가는 2014년 본지에 게재된 ‘그 여자아이는 왜 쉬지 않고 걸을까'라는 기사를 읽고 단편 '소녀 노숙자'의 글 소재를 얻었다. '인형의 비밀'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사진 신부 등 선조들의 미국 행을 그린 이야기다. 'LA 이방인'은 교포 사회의 숨겨진 면을 다루면서 사랑과 애환에 초점을 맞췄다.     신재동 작가는 "코로나 팬데믹에 관해 써놓은 소설 중 10편을 추렸다"며 "삶의 현장에는 소설의 소재가 있고 작가는 밭에서 고구마를 캐듯 소재를 발굴하는 농부"라고 밝혔다.     신재동 작가는 1970년 샌프란시스코에 이민 온 후 40년 동안 '컨슈머 셰이드'라는 창문 인테리어 전문점을 여러 개 지점으로 확장하며 헌터 더글라스 본사로부터 '아웃스탠딩 세일즈 어워드'에 매년 선정됐다. 2010년 은퇴 후에는 글쓰기에 입문하며 경희사이버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미주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단편소설 최우수상, 제3회 재외동포 사진 공모전 대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미국 문화의 충격적인 진실 35가지', '크루즈 여행 꼭 알아야 할 팁 28가지' 등 여행 전문서적 외 '첫 시련', '작지만 확실한 사랑', '참기 어려운 하고 싶은 말’ 등을 출간했다.   이은영 기자소설집 이방인 신재동 소설가 신재동 작가 la 이방인

2023-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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