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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서양 악기와 만나다…퓨전밴드 ‘두 번째 달’ 공연

한국 퓨전 밴드 ‘두번째 달’이 LA를 찾아온다.     LA한국문화원(원장 정상원)은 5월 아시안문화유산의 달(AAPI)을 기념해 오는 15일 오후 7시 문화원에서 두번째 달 콘서트(A Pansori Night with Second Moon)를 개최한다.     이번 콘서트는 다양한 한국 드라마 삽입곡을 연주해 인기를 얻고 있는 퓨전 밴드 ‘두번째 달’의 미국 서부 순회공연이다.     ‘두번째 달’은 기타, 아이리시 휘슬, 만돌린, 일리언 파이프, 멜로디언, 아코디언 등 세계 각국의 다양한 민속악기를 사용해 탱고, 왈츠, 라틴, 팝, 뉴에이지, 재즈, 국악 등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을 시도하며 크로스오버 연주를 선보여 온 에스닉 퓨전 음악 밴드다.     현재 김현보(기타, 만돌린), 최진경(건반, 아코디언), 조윤정(바이올린), 박종선(드럼), 이영훈(기타), 박진우(베이스) 등이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인기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삽입곡 ‘달빛이 흐른다’를 비롯해 ‘두번째 달’이 참여했던 다양한 드라마 OST 히트곡과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선보였던 ‘쾌지나 칭칭 나네’ 등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특히, 판소리 ‘심청가’의 이수자이자 2007년 국립창극단 차세대 명창으로 선정된 소리꾼 오단해 씨가 함께 무대에 올라 ‘적성가’, ‘사랑가’, ‘이별가’ 등 판소리 대목을 새로운 해석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정상원 LA한국문화원장은 “이번 공연을 통해 국악이 현대 음악이나 서양 악기와의 협연을 통해 새로운 관객층을 창출해 내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문화원 2층에서 전시 중인 ‘민주공화정의 시작,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날 공연 시작 전까지 관람할 수 있도록 관람 시간을 연장한다.     이번 상영은 무료이나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사전 예약은 KCCLA 웹사이트(kccla.org)에서 가능하다.     ▶주소:5505 Wilshire Blvd. LA   ▶문의:(323)936-7141 이은영 기자퓨전밴드 판소리 정상원 la한국문화원장 서양 악기 판소리 대목

2024-04-07

[음악으로 읽는 세상] 나비부인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은 음악적으로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편안하게 즐길 만한 것이 못 된다. ‘나비부인’은 일본의 나가사키 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핑커톤이라는 미군 장교와 일본인 게이샤 초초상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오페라다. 동양 여자가 자신을 희생하며 맹목적으로 서양 남자를 사랑하는 이야기는 서양 사람들에게는 판타지일 수 있지만, 우리 같은 동양인에게는 별로 유쾌한 이야기가 못 된다.   미군 장교 핑커톤은 백인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전형적인 서양 남자다. 나가사키 항에 내린 그는 배가 새로운 도시에 닿을 때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데리고 놀’ 여자를 구한다. 일본인 포주는 그에게 어떤 여자든지 마음에 드는 여자를 단돈 100엔에 살 수 있다고 장담한다. 이 음흉한 남자들의 행각에 걸려든 것이 바로 초초상이라는 게이샤다. 핑커톤은 그녀와 장난삼아 결혼하지만 초초상의 사랑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녀는 핑커톤과의 사랑에 목숨을 걸었다.   핑커톤은 잠시 초초상을 데리고 놀다가 다시 배를 타고 나가사키 항을 떠났다. 그 후 핑커톤의 아들을 낳은 초초상은 하염없이 그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기다림이었다. 핑커톤은 본국으로 돌아가 다른 여자와 정식으로 결혼을 한다. 핑커톤이 본부인을 대동하고 자기 앞에 나타났을 때, 초초상은 진실을 알게 된다. 삶의 희망을 잃은 그녀는 어린 아들을 남겨둔 채 단도로 자기 가슴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초초상은 아리아 ‘어떤 갠 날’에서 핑커톤이 “나의 버터플라이!”라고 부르며 자기에게 돌아오는 날을 상상한다. 그렇게 한동안 달콤한 꿈을 꾼 다음 그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외치며 노래를 끝낸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외침이 처절한 절규처럼 들린다, 그 사랑이 곧 파국으로 끝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나비부인 게이샤 초초상 서양 남자 동양 여자

2024-03-18

[열린광장] 무기 대신 책이나 악기를 잡았으면

지난여름 한국을 방문했던 딸 내외가 ‘추억의 히트가요’라는 한국가요집을 선물로 가져왔다. 제1집 ‘눈물 젖은 두만강’에서 부터 10집에 이르기까지 ‘목포의 눈물’, ‘타향살이’,‘황성 옛터’,   ‘이별의 부산정거장’, ‘홍도야 울지마라’ 등 시니어들에도 익숙한 노래 100여 곡이 들어있다.   음악에 대한 나의 열정은 서양의 클래식 음악에서 시작됐지만 그 이전부터 들었던 대중가요의 영향도 어느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현역 교사 시절 한 칼럼에서 대중가요를 즐겨 듣고 또 부른다고 썼다가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았던 기억도 있다.     실제로 음악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다섯 살쯤 집에 있던 유성기에서 흘러나온 노래에서 시작된 것 같다. ‘물결은 출렁출렁, 연락선은 떠난다. 잘있오, 잘가오, 눈물 젖은 손수건’으로 시작되는 노래다. 아직도 가사와 멜로디를 기억해서 가끔 혼자 불러보는 노래중의 하나다.   고등학생 때는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서양 클래식 음악에 심취했던 시절이었다. 바흐에서부터 헨델, 모차르트, 슈베르트, 베토벤 등 서양 고전음악 천재 작곡가들의 명곡이 공부에 시달려 피곤한 내 정신을 위로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큰 원천이었다. 서양 클래식 음악은 아직도 시간이 있으면 즐겨 듣고 사랑하는 열정의 대상이다.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들어 “취미가 무엇이세요?”  라는 질문을 해오는 사람도 드물지만,  젊었을 때는 자주 받았던 질문이었다. 은퇴한 지 벌써 수년이 지났고, 여가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나의 취미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읽는 것이다. ‘독서가 취미’라는 게 쉽게  나오는 대답이다. 사실 독서는 어렸을 때부터 즐겼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독서가 취미” 라는 나의 대답이 이제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요즘 도서관에서 빌려온  400 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읽고 있는데, 예전에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1주일 내지 10일이면 완독할 수 있었던 것을 지금은 3주가 지났는데도 다 읽으려면 아직 2주는 더 걸려야 할 것 같다. 책 내용에 따라 읽는 속도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많은 독자도 잘 알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중학교 다닐 때 밥숟가락 떨어지지 마자 김래성 작가의  탐정 소설을 들고 이리저리 숨어다니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책도 재미가 있었지만 당시 나의 독서습관도 학생으로서 지나쳤던 것 같다. 고등학교 2, 3학년이면 대학입시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인데,  그때도 한글로 번역된 나타니엘 호손의 ‘주홍글씨’를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너에게 주어진 시간은 모두 네 것이니까,  의무적으로 읽기 싫은 책을 읽을 필요도 없고,  그저 편안하게 지내라” 는 친구의 조언을  흔쾌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나저나 지금 지구의 저쪽 한 편에서는 책이나 악기 대신 총을 들고 귀중한 생명을 파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체 누구의 잘못입니까?” 라는 질문에 누가 적절하고 합리적인 답을 줄 수 있을까?   김순진 / 교육학 박사열린광장 무기 악기 서양 고전음악 클래식 음악 서양 클래식

2023-11-16

[아메리카 편지]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서양 고등교육의 시초라 하면 보통 11세기에 창시된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이나 영국 옥스퍼드 대학을 언급하지만, 그 근원은 훨씬 더 오래전인 고대 그리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BC 387년 플라톤이 창설한 학교 ‘아카데미아’가 바로 서구 최초의 대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학계를 총칭하는 용어인 ‘아카데미’도 플라톤의 학교 이름에서 유래한다. 여기서 그의 가장 유명한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17세 때부터 플라톤이 사망할 때까지 근 20년을 공부했다.   기원전 5세기 말까지 고대 그리스의 교육은 사춘기 이전 신체와 지능을 복합적으로 훈련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한편으로는 군사적 기량이 뛰어난 인물을 배출하고, 한편으로는 시·음악·문학에 조예가 있는 지적인 바탕을 키우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신체 단련을 마음 단련만큼 중요시하는 것이 그리스 전통 교육 사상의 특징이다. 그런데 기원전 420년께부터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소피스트 철학자들이 활동하면서 사춘기 이후에도 계속되는 고등교육이 유행했다. 이때부터 지적인 교육이 신체적 교육보다 중요시되었고 수학과 천문학, 그리고 논리와 윤리를 포함한 철학이 주된 관심거리가 되었다.   특히 소피스트라고 불리는 철학자들은 비싼 교육비를 받아가며 정치가에게 필수인 레토릭, 혹은 웅변술과 같은 현실적·실용적인 기술을 즐겨 가르쳤다. 그 이유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순수철학을 고집하는 사상가들에게서 미움을 사고 ‘궤변가’라는 악명을 얻었다.   소크라테스 사망 이후 정치에 회의를 느끼고 아테네를 떠난 플라톤이 10년 후에 돌아와 세운 아카데미아는 이와 달리 교육비를 받지 않았고 수학·천문학·기하학, 그리고 다양한 주제의 철학 교육을 실행해 이상적인 지식인을 양성했다. 플라톤의 고등 교육이념은 그 사회를 이끌어 갈 지도자를 기르는 엘리트주의의 산물이었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아카데미아 플라톤 서양 고등교육 소피스트 철학자들 고등 교육이념

2023-07-21

[아메리카 편지] 서양의 나쁜 엄마

북미에서 기념하는 어머니날(5월 14일)을 보내며 동양과 서양의 어머니상에 대한 차이점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오랫동안 고민해온 주제다. 어버이날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라는 노래 구절을 떠올리니 한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인정·찬양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내 몸에 배어있는 것이다. 반면 외국 생활을 하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가끔 만난다. 나로선 이질감이 느껴진다.   어머니의 사랑을 절대적으로 여기는 우리와 상반되는 서구 전통이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되는, 비참하고 앙심으로 가득 찬 어머니상이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바로 메데이아다. 남편 이아손의 배신을 참지 못해 복수의 결심을 하고, 이아손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을 살해한다. 이아손의 씨를 말린다는 이유로 자기 자식을 직접 살해한 것이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 등장하는 메데이아는 그러한 잔인한 결심에 대해 번뇌를 느끼기도 하지만 모성애는 복수심을 초월하지 못했다. 태양신 헬리오스를 할아버지로 둔 덕에 영웅의 자격 조건을 갖췄던 메데이아는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도 벌을 받기는커녕 할아버지가 보낸 금빛 마차를 타고 그 자리를 탈출해 재혼까지 한다.   황당하기는 두 자매 프로크네와 필로멜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프로크네는 남편인 테레우스가 필로멜라를 범하고 말을 못하게 혀를 잘라버리자, 필로멜라와 힘을 합쳐 자신과 테레우스의 아들인 이티스를 죽인다. 그리고 이를 요리해 테레우스에게 먹였다.   아무리 과장된 이야기라 해도 종종 이렇게 잔인한 엄마들이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를 뿌리로 둔 서양의 문화에서 모성애를 운운하는 맥락은 우리의 정서와 좀 다른 것 같다. 어머니의 사랑을 체계적으로 예찬하는 동양의 문화적인 슬기가 더더욱 마음에 다가온다.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서양 엄마 그리스 신화 고대 그리스 태양신 헬리오스

2023-05-26

[건강 칼럼] 서양 식습관 궤양성 장염 주의

서구화된 식사습관과 진단방법의 발달로 한국인의 질병 양상이 서양인과 비슷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한국인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던 궤양성 장염(Ulcerative colitis)이나 크론씨 병(Crohn's disease) 같은 염증성 장 질환(inflammatory bowel disease)도 드물지 않게 진단되고 있다.     미국에 이민 온 일본계 미국인을 보면 이민 1세 일본인과 비교했을 때 이민 2세, 3세로 내려갈수록 질병의 양상이 미국인과 유사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모든 것이 환경이 질병의 발병에 미치는 영향을 말해주고 있다.   20대 초반의 대학 2학년생인 임 모 씨는 2개월 전부터 대변을 볼 때마다 붉은 피가 섞여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화장지에 피가 묻어나와서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변비 때문에 피가 나올 수 있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는 계속 나오고 2주 전부터는 설사와 함께 복통도 있었다.     학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있는 임 씨는학기 말 시험준비로 스트레스가 매우 심한 상태였고 식사도 제대로 못 했다. 임 씨는 힘들게 시험을 모두 마치고 의사를 찾아왔다.     임 씨는 LA에서 나고 자랐고 대학 진학을 위해서 동부로 진학을 했다. 처음 겪는 동부의 춥고 어두운 날씨 때문에 첫 한해는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지만 잘 이겨내었고 지금은 잘 적응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고등학교 때 시험만 칠 때면 설사와 변비를 번갈아가면서 하는 '과민성 대장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의사에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담배나 술은 전혀 마시지 않고 주말이면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있다.   임 씨의 이학적 검진 상 특별한 이상이 없었고 직장 수지 검사상 혈변이 묻어나왔고 치질의 소견은 보이지 않았다. 혈액검사는 정상이었고 좀 더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임 씨는 대장 내시경 검사를 했는데 내시경 검사와 조직검사, 임상 증상을 종합해서 궤양성 장염을 진단받았다.   궤양성 장염은 크론씨 병과 함께 염증성 장 질환의 일종으로 주로 북유럽이나 영국계 미국인에서 많이 발견된다. 하지만 서구화된 식생활 변화와 육류 위주의 식사,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환경 등으로 인해서 한국계 미국인이나 한국인에서도 궤양성 장염의 진단이 늘고 있다. 궤양성 장염의 원인은 유전과 환경 모두가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고 정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고 있다.     주로 15~30세에 가장 흔하지만, 중년 이후에도 발병할 수 있다. 아직 한국인에서는 염증성 장염이 상대적으로 드물기 때문에 세균성이나 바이러스성, 결핵성 장염, 허혈성 장염이나 방사선 치료 후에 오는 장염 등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과한 육류 섭취보다는 균형 잡힌 영양 식단으로 서구화된 식습관을 바꾸는 것도 장 질환 예방에 첫걸음이다. 또한 궤양성 대장염이나 크론씨 질환과 같은 염증성 장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대장암 발병률이 10배 이상 높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서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게 바람직하다.   ▶문의: (213)383-9388 이영직 원장 / 이영직 내과건강 칼럼 식습관 궤양성 궤양성 장염 염증성 장염 서양 식습관

2023-01-03

[김형석의 100년 산책] 철학과 함께한 70년, 지금도 희망을 찾는다

중학생 때 ‘인간 문제와 그 해결’ 같은 생각을 정리해 보면서 문학·종교·철학책을 많이 읽은 것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철학과를 선택했던 것 같다. 그 시대에는 인문학적으로 융합된 사고나 학과가 없었기 때문에 철학은 독립된 학문이었다. 우선 서양 철학자 중에서 관심과 문제의식을 같이하는 개인들에 관한 강의와 연구가 중요했다. 그때는 칸트와 헤겔은 누구나 한번은 연구해야 하는 철학자로 꼽혔다.   학위논문을 쓰는 사람은 한 개인 중에서도 한 가지 주제를 택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일본의 철학교수 대부분이 그랬다. 어떤 교수는 헤겔을 연구하다가 헤겔의 우물에 빠져나오지 못했고, 또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독일에서도 헤겔학파가 생겼고,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는 칸트·헤겔·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를 전공하는 학자가 있다. 그러는 중에 영국·프랑스·독일철학사를 비교하게 되면서 개인 연구 영역에서 탈피하여 우리 사회와 시대에 어떤 철학이 요청되는가를 문제 삼게 되었다.       나는 왜 철학을 전공하게 됐나   그뿐만 아니라 철학은 상아탑의 고립된 학문이 아니고 사회와 역사를 포괄하는 성격의 학문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역사학자는 역사를 연구하다가 역사철학의 영역을 발견하게 된다. 철학과 관련이 없이 출발한 법학은 연구가 깊어질수록 법철학의 문제에 직면한다. 법철학 기반 위에 법학이 존재한다는 견해에 이르기도 한다. 법과 선악의 문제는 불가분리의 관련성을 가지며 그 배후에는 윤리문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으로 출발한 철학이 사회철학으로 발전하면서 정치 사회문제에까지 관여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독립된 학문으로서의 철학보다 철학적 사유와 해석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철학적 사유가 있는 학문은 뿌리를 갖춘 학문이 될 수 있으나, 철학적 사유가 없는 학문은 기반이 없는 시대적 건축물 같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를 가진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면 역사철학의 필연성을 암시해 준다. 마르크스 유물사관은 이미 과학의 영역을 넘어 철학적 세계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철학적 사유란 어떤 것인가. 두 가지 성격은 뚜렷하다. 모든 사물을 전체적으로 관찰하는 자세이며, 어떤 현실에 접하든지 근원적인 실체를 찾으려는 노력이다. 특정 사회나 국가의 역사를 연구하던 학자가 세계사 전체를 탐구하게 되면 자연히 과학적 관찰에서 철학적 사유로 옮아가게 된다. 영국의 A 토인비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문학·회화·음악의 본질을 추구하던 예술가가 예술세계 전체를 문제 삼게 되면 예술철학, 즉 미학에 관심을 갖는다.       철학 없으면 지도자 될 수 없어   각자의 인생관이 자라 가치관이나 세계관으로 발전하는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때는 철학은 세계관 추구의 학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신의 철학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당신이 가진 정치관·사회관·역사관을 포함한 세계관은 무엇인가와 맥을 같이한다. 철학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자. 그의 주변에서는 물론 생각 있는 국민은 대통령의 철학 운운한다. 철학을 갖춘 사람은 지도자 자격이 있으나 아무런 이념, 즉 철학이 없는 사람은 지도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 철학도 없는 지도자는 목표가 없는 운전자와 같아지기 때문이다.   사물의 근원을 찾는 철학자는 ‘존재’에 관한 이론적 연구를 계속해 왔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존재는 논리의 대상이 아니고 팩트(Fact), 사물과 사건에 관한 연구로 바뀌고 있다. 그러는 동안 철학의 초창기부터의 과제였던 형이상학(Metaphysics)은 점차 철학 무대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현실성과 삶의 실용성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또 과학이 계속 진화하면서 철학의 무대가 점차 축소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철학은 “집을 하늘에서 지어 내려온다”고 비판한다. 그래도 철학자는 “과학자는 집을 어디에 왜 지어야 할지 모른다”고 반론하는 상황이 되었다. 철학이 리어왕으로 있을 과거에는, 과학의 딸들이 부왕의 뜻을 따랐으나 노쇠한 후에는 부왕이 딸들의 집에 의존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현대인은 생각한다.   나도 70여 년 동안 철학계에 머물렀다. 그렇다고 철학이 학문계에서 밀려났거나 역사무대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겪어 온 과정과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그 해결은 철학에 주어진 과제이며 책임이다. 철학과 내 친구들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위기는 ‘가치관의 상실’이라고 걱정한다. 정치, 경제, 과학문명, 기계과학의 미래 등 문제는 산적해 오는데 건설적이고 영구한 가치관은 보이지 않는다는 호소다. 바로 그것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철학 부재에서 오는 결과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나(고딕 처리)   과거에는 종교적 가치관이 있었고, 동양에는 인간존중의 윤리관이 있었다. 과학만능 사회가 되면서 인간 스스로가 인간의 가치를 소외시키거나 불신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사람이 사람을 믿는 시대가 끝났다는 탄식이다. 나도 70여년 철학과 더불어 살아왔으나 아직도 ‘인간 문제와 그 해결’은 새로운 과제로 남아있다. 지금과 같은 역사와 사회의 현실 속에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대한 3000년의 철학적 사유와 가치관은 무엇인가. 가장 소중한 것은 휴머니즘(인간애)의 정신이다. 선으로 향하는 자유의 창조력이며 인간성 회복과 주어진 목적을 채워가는 사랑의 구현이다. 모든 문화의 출발과 목표도 거기에 있었고, 철학은 그 중추세력이 되어 왔다. 그것이 역사의 희망과 생명력이 되어야 한다. 김형석 /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의 100년 산책 철학과 희망 동안 철학계 철학과 관련 서양 철학자

2022-11-11

[역지사지(歷知思志)] 시계

조선 숙종은 외국에서 들어온 시계에 관심이 많았다. 청나라에서 들여온 서양 자명종을 보고는 ‘네 형상은 어찌 그리 기묘한가/ 그 만듦새 또한 기묘하다 할 만하네/ 조금의 착오도 착오도 없으니/ 오직 쉬지 않는다고 말하리’라는 시를 남기며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숙종은 국내 생산을 지시했지만 조선 기술자들은 만들지 못했다. 이후 일본에서 서양 것을 본떠 만든 자명종을 들여오자 그 원리를 이해했다고 한다. 이때도 숙종은 시를 남겼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일본 시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모두 갖추어져 있어 부족함이 없네/ 해와 달을 따라 운행하고/ 두 개의 추가 도우며 움직이네/ 쇠종이 시각에 따라 울리니/ 대궐에 시각을 알려주네/ 물시계를 기다리지 않아도/ 주야의 열두 시각을 알 수 있네.’   조선이 실패한 자명종 제작을 일본은 성공했던 것이다. 이것은 양국 과학 기술의 격차를 의미했다. 하지만 조선 집권층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일본 자명종에 깊은 인상을 받은 숙종도 시를 남겼을 뿐,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는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인력 양성을 강조하며, 후속 움직임이 뒤따르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생산능력은 세계 수위이며, 우리의 주요 자산 중 하나다. 하지만 세계는 끊임없이 변한다. 멍하니 일본의 자명종만 바라보던 조선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유성운 / 문화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시계 서양 자명종 조선 숙종 조선 기술자들

2022-07-06

[독자 마당] 말의 힘

사람의 행복은 말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슬픔을 겪는 사람에게 하는 따뜻한 위로의 말, 실패한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격려의 말, 기쁜 일에 건네는 축하의 말 등은 듣는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끼게 만든다.     서로 오가는 친절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사람들 기분을 좋게 한다. 아침에 들은 기분 좋은 말 한 마디로 하루 일정을 힘차게 시작할 수 있다. 이런 말들은 청량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남에게서 듣는 모욕적인 말 한 마디는 사람의 마음을 분노하게 만든다. 증오를 유발시키는 무서운 칼날 같은 것이다.     옛 속담에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가히 말의 마법이다. 사람은 말을 사용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런 만큼 말은 중요하다.     말 한 마디로 싸움이 시작되고 살인까지도 벌어진다. 국가간의 전쟁도 말 한 마디로 시작되기도 한다. 이런 전쟁의 참화는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요,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요, 사물을 표현하는 부호이다. 서양 격언에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다’라는 말이 있다. 말을 신중하게 하라는 깊은 뜻을 가진 훌륭한 가르침이다.     말은 곧 인격이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의 표현이다. 논어에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이라는 말이 나온다. 교묘하게 꾸미는 말을 하는 사람은 진실성이 없다는 뜻이다. ‘믿음의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미덥지 않다’라는 말도 있다. 진실하지 못한 말은 상대방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     ‘군자는 말은 굼뜨나 행동은 빨라야 한다’라는 말도 있다. 항상 말에 신중하고 허언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가르침이다.     새해가 밝았다. 올해 임인년에는 좋은 생각과 좋은 말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데 일조하며 살아야겠다.   이산하·노워크독자 마당 상대방게 믿음 서양 격언 하루 일정

2022-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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