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사회 일으킨 산업 일꾼들 사라진다
‘이민와서 갖게 되는 직업은, 공항에 누가 마중 나오는지에 따라 정해진다’ 한인 이민사회에서 전해지는 유명한 말이다. 언어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어떻게든 경제생활을 해야 했던 ‘생계형 한인 이민자’의 삶을 압축해놓은 것이기도 하다. 먼저 미국에 도착한 지인이 도움을 주고, 그 지인을 곁눈질하며 열심히 일한 돈으로 결국은 마중 나왔던 사람의 직업세계에 깊숙이 발을 디디게 된다는 뜻이다. 1970~1980년대 이후 뉴욕으로 건너와 30~40년 이상 살아남은 한인들은 특히 여기에 공감한다. 그렇게 형성된 뉴욕 한인사회의 대표적 산업이 봉제·식품·식당·미용·네일·세탁 등의 산업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인 이민사회의 근간이 된 주요 산업에서 한인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민 1세대가 줄줄이 은퇴하고 있는 데다, 2·3세 한인은 물론 새롭게 유입된 이민자들이 주로 종사하는 업종도 크게 바뀐 탓이다. 센서스국에 따르면, 뉴욕주 한인(혼혈포함)의 자영업 종사자 비율은 2012년 9.0%에서 작년 7.7%까지 줄었다. 리테일업계 한인 종사자 비율은 15.5%에서 11.7%로, 홀세일 종사비율은 6.5%에서 3.0%로 하락했다. 과거 많은 비율을 차지했던 업종 대신, 최근 한인들은 교육·헬스(26.4%)·금융(9.5%)·전문직(15.2%) 분야로 눈을 돌렸다. 박광민 뉴욕한인식품협회장은 “한때 뉴욕시 한인 델리·그로서리는 5000개에 달했던 반면 현재 1000개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 중에서도 한인커뮤니티, 협회 등과 소통하는 업체는 100여개 수준”이라고 밝혔다. 알고 지내던 한인 업체에 전화를 걸면 이미 주인이 타민족으로 바뀐 경우도 허다하다. 박 회장은 “뉴욕 델리·그로서리에서 타민족 비율이 30%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한인 비율이 30%로 급감했다”며 “손님으로 온 한인들과 대화해보면, 신규 이민자들은 생계형보다는 유학·취업·자녀교육을 위해 미국에 온 경우가 많은 것을 체감한다”고 전했다. 이렇게 자영업 인구가 급감하는 가운데, 명맥을 유지하는 한인 업체에서 일할 한인도 부족한 모습이다. 통상 1세대 이민자들은 사업체 직원으로 한인 직원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업주와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으면서도 기술도 좋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영환 북미주한식세계화총연합회 회장은 “식당 서빙이나 음식 조리 등의 경우, 한인 직원이 점점 줄어 빠른 속도로 히스패닉으로 대체되고 있다”며 “히스패닉은 고르고 골라 채용한다면, 한인 직원의 경우 선택의 여지 없이 채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인 업계의 대표적 산업인 네일업계도 마찬가지다. 과거 뉴욕주에만 5000개 한인 업체, 관련 인구는 3만명으로 추산됐었지만, 이제는 업체 2000개, 네일 종사인구는 1만명 수준으로 줄었다. 중국계와 타민족들이 네일살롱 매물을 빠르게 사들이고 있는 데다, 가격경쟁에도 밀리는 상황이다. 뉴욕 일원의 많은 한인 여성들이 종사했던 봉제산업도 쪼그라든지 오래다. 봉제산업은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특히 한인 사회의 근간이 된 산업이기도 하다. 맨해튼 34~42스트리트, 5~9애비뉴 사이 블록에 집중됐던 봉제산업은 공장이 자동화하면서 빠르게 축소됐다. 90년대 초까지 봉제산업을 운영하는 한인은 400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40~50명으로 줄었고, 1세대 이민자는 거의 남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대해 많은 한인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면서도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세대의 은퇴 러시가 이어지고 있고, 젊은 층은 주류사회로 편입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지만, 과거 한인사회를 단단히 쌓아 올린 역사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인사회의 근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한인들이 단단하게 뭉치면서도, 특유의 폐쇄적 문화는 개선해 타민족과 함께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은별 기자 [email protected]이민사회 산업 박광민 뉴욕한인식품협회장 한인 이민사회 뉴욕 한인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