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등대지기
얼어붙은 달 그림자 물결 위에 비치면/ 한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별/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거의 50년 전, 서울에서 결혼했을 때 아내와 함께 이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친구들이 이 기쁜 날 왜 이런 슬픈 노래를 부르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오랜 세월이 지났다. 춥고 긴 겨울밤, 우연히 유튜버를 보다가 그 시대의 가수, 은희가 부른 ‘등대지기’를 발견하고 가끔 즐기고 있다. 등대와 외로운 등대지기는 문학작품에 많이 등장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To the Lighthouse’를 읽었다. 스코틀랜드의 람지 가족은 여름이면 북해의 외딴 섬에 있는 등대를 찾는다. 어느 날 아이들을 데리고 배를 빌려 험한 파도를 헤치며 가는데 아이들이 왜 이런 곳을 데리고가느냐며 불평이 대단했다. 배가 등대 근처에 다가가자 아이들은 그 아름다움에 놀라 환호성을 질렸다. 이 소설은 단순한 등대 이야기가 아니고 가족 구성원들의 복잡한 심리를 묘사한 작품이다. 미국 작가, Patricia Majher의 ‘Ladies of the Lighthouse’는 미시간주 등대지기 여인 50명의 스토리를 들려준다. 그들이 날마다 부딪친 도전, 외로움, 성취감, 항해의 기여를 다루었다. 롱아일랜드 끄트머리 몬탁에 등대가 있다. 몇 년 전 올라가 봤는데 높지 않았다. 지금은 등대지기는 없고 안개가 짙은 날이면 멀리까지 들리는 경고음(Fog Sound)을 들려준다. 8월첫째 주 파이어아일랜드에 있는 등대를 찾았다. 로버트 모세스 주립공원에 차를 두고 잘 만들어진 나무 산책로를 따라 등대를 돌아본 후 페어 하버까지 왕복 6마일을 걸었다. 인구 500여 명의 이 작은 모래 섬에는 자동차, 배터리 자전거는 이용할 수 없고 보통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야 한다. 파이어아일랜드 등대는 롱아일랜드의 가장 높은 등대, 1825~1826년에 처음 건설돼 증축과 보수를 거듭했다. 높이 168피트, 계단이 182개로 24마일까지 빛이 도달한다. 이 등대는 건축 초기, 고래 기름으로 불을 밝혔다. 당시 매사추세츠주를 중심으로 고래 산업이 번창했다. 석유가 발견되기 전 가정은 고래 기름으로 등불을 밝혔고, 중동 모래밭에서 기름이 쏟아져 나오면서 고래산업은 끝났다. 곧이어 고래잡이를 금지하는 국제협약이 체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파이어아일랜드 등대는 원래 섬 끝에 건설되었는데 그 후 파도가 모래를 싣고 와 동쪽으로 섬이 확장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국립공원의 일부로 지정돼 연중 오픈하며 입장료도 없다. GPS가 발달한 요즘은 옛날처럼 등대가 소중하지 않겠지만 아직도 유인등대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가 보지 못했지만 지구의 최남단, 파타고니아에 유인 등대가 여러 개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케이프혼 등대, 꽁꽁 언 바다를 항해하는 화물선들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 등대지기는 가족을 데리고 상주하며 공원 레인저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등대지기는 험한 물결, 고립으로 인한 지독한 외로움, 그러면서도 혹시 있을지 모르는 조난사고에 대비해 항상 긴장해야 하는 의로운 직업이다. 내비게이터가 세상을 변화시켜 사람이 하던 일을 대신하고 있으나 등대지기의 아름다운 사랑을 대신 줄 수는 없다. 망망대해, 긴 외로운 항해 끝에 만나는 아름다운 희망의 불빛, 등댓불은 진정한 사랑의 빛이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등대지기 미시간주 등대지기 파이어아일랜드 등대 케이프혼 등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