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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목숨과 바꾼 자존심

사람이 명예나 지위, 자존심, 그리고 돈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죄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의 목숨은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다. 우리에게는 목숨이 하나밖에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무너진 자존심과 수치심 때문에 교사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너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나중에 진상이 밝혀져 교사들의 무고함이 밝혀졌다니 이처럼 황당한 일이 어디 있겠나. 사후에 명예를 회복하고 표창장을 받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 남아있는 가족의 슬픔은 어찌하라고. 자존심이나 명예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근거 없는 비난쯤은 한쪽 귀로 흘리고, 조금만 더 인내하며 견뎠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터무니없는 비방으로 마지막 궁지까지 몰고 간 사람들에게도 큰 잘못이 있다.   옛날 중국의 한 고조 유방은 자존심을 버리고 항우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갔지만 끝내는 승자가 됐다. 자존심을 잠시 내려놓고 실리를 택했고, 결국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학교 성적에 낙담하거나 친구 문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또 취업이나 결혼 문제로 인생을 포기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이런 잘못된 선택은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에게는 차마 해서는 안 될 죄를 짓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세상에 사람의 목숨보다도 중요한 것은 없다. 사람이 한평생 살다 보면 성공도 있지만 실패하는 일도 생기게 마련이다. 무슨 큰일이 생길 때마다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을 길게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매 순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살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아무리 자존심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극단적 선택은 하지 말아야 한다.    김영훈독자 마당 자존심 목숨 지위 자존심 극단적 선택 친구 문제

2024-10-01

홈리스 사망 22% 감소…약물 남용 많아

지난해 LA에서 사망한 홈리스 수가 전년과 비교해 22% 줄었지만, 마약 등 약물 중독으로 목숨을 잃는 홈리스 비중은 높게 나타났다.     지난 28일 LA시 케네스 메지아 회계감사관은 ‘2023 홈리스 사망 현황’ 통계 보고서를 발표하며 홈리스 90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지난해 홈리스 사망자가 전년 1167명과 비교해 눈에 띄게 줄어든 수치라고 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통계는 LA 관할지 내 거리, 셸터, 프리웨이 등에서 숨진 홈리스를 집계했다. 감사관 측은 LA카운티검시국 통계를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홈리스 사망 원인은 사고사(accident)가 75%(678명)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자연사 18%(160명), 살인 4%(40명), 자살 2%(16명), 사인불명 1%(6명) 순이다.   이와 관련 LA타임스는 홈리스 사망 원인 자체 분석을 통해 65%(545명)가 마약 등 약물과 연관됐다고 보도했다. 이들 사망자는 펜타닐, 메스암페타민(필로폰) 등을 남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은 약물 관련 홈리스 사망 증가는 거리의 위기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홈리스 사망자의 73%는 거리, 텐트, 주차장, 공원, RV, 빈 건물 등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홈리스 인종별 사망자는 라틴계가 32%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흑인이 31%로 나타났다. 흑인은 LA시 전체 인구의 8%지만 홈리스의 33%를 차지하고 있다. 백인 사망자는 30%로 집계됐다.   지역구별 홈리스 사망자는 14지구가 30%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다음으로 1지구 12%, 13지구 9% 순이다. LA카운티홈리스서비스관리국(LAHS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홈리스가 가장 많은 지역구는 1·9·14지구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LA카운티 전역 홈리스 사망자는 1467명으로 집계됐다.     한편 LA 캐런 배스 시장과 시의원들은 홈리스 문제 해결을 거듭 약속했다.     홈리스 사망자 보고서 발표 이후 배스 시장은 성명을 통해 “홈리스 위기상황 속에서 벌어진 모든 죽음은 비극”이라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과 친구 모든 분께 애도를 표한다. 홈리스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긴급대책 마련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홈리스 사망자가 가장 많았던 14지구 유니스 헤르난데스 시의원은 “보고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보여주는 비극”이라며 “홈리스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주거시설 마련에 더 힘쓰고 거리 의료지원팀 활동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홈리스 목숨 홈리스 사망자 홈리스 위기상황 지역구별 홈리스

2024-03-31

[등불 아래서] 너는 행복자로다

남가주 지역의 산들이 눈으로 덮였다.     차가운 빗줄기를 뚫고 목련은 꽃을 피웠다. 올해도 겨울은 봄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도 봄은 소매를 붙잡는 겨울을 뿌리치고 오지 않는다. 봄은 겨울의 손을 잡고 온다. 단단해진 땅도 앙상해진 가지들도 모두 잡고 온다. 차가운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고통과 함께 황홀한 봄은 온다. 봄은 행복하다.   지치고 메마른 앙상한 가지를 품었기에 봄은 행복하다. 그리고 여기 아픈 가시가 돋아나 자신마저도 찌르는 우리를 뿌리치지 않고 가슴에 안아 따스한 싹을 틔운 우리의 봄이 있다. 이 봄은 아픈 우리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행복한 봄이다. 행복한 봄, 행복한 사람, 예수님이다.   윤동주의 시처럼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다. 예수님은 행복한 사람이고 행복한 하나님이시다. 이 행복한 아들로 아버지는 행복한 하나님이시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가시가 돋아난 우리를 안으셨기에 행복하시다. 성령님은 앙상한 우리를 위해 지금도 말할 수 없이 탄식하시기에 행복한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밖에 모르는 나를 위해 생명을 내어놓으시고, 바늘도 꽂히지 않는 단단한 내 영혼을 위해 눈물을 흘리시기에 괴롭지만 행복한 하나님이시다.   겨울을 뿌리치지 않으셨던 예수님은 홀로 영광과 존귀를 모두 받으시며 행복하실 분이지만, 십자가 위에서 영광이 아니라 우리의 수치를 품으셨다. 존귀가 아니라 우리의 불의를 품으셨다. 그리고 그의 모든 의를, 그의 모든 지혜를,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그의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니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행복을 가졌으니 말이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아야 하기에 아프고, 진리와 함께 기뻐해야 하기에 힘들다. 무례하지 않아야 하기에 고통이고, 시간의 터널을 버텨야 하기에 고독하다. 무시당하기도 하기에 억울하다.     그래도 우리는 겨울을 뿌리치지 않는다. 아파하는 가시들을 예수님과 함께 품는다. 바람이 불 때마다 소리 지르는 추운 가지들을 싸맨다. 끝나지 않는 것 같고, 세상이 이길 것 같다. 불의는 배부르고, 거짓은 칭송을 받는다. 그래도 우리는 예수님이 행복하셨던 그 길을 간다. 자신에게 말해 본다. 그래, 행복하게 가자.   우리 안에 행복한 하나님이 계신다. 홀로 계셔서가 아니라 우리를 품으셔서 행복한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주의 구원을 너와 같이 얻은 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이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로다 (신 33:29)."   sunghan08@gmail.com 한성윤 / 목사ㆍ나성남포교회등불 아래서 행복자 남가주 지역 주의 구원 자기 목숨

2024-03-04

마운틴볼디 겨울산행 “목숨 잃을 수 있어”

한인도 자주 찾는 마운틴볼디 관리당국이 겨울산행 자제를 당부했다. 최근 기록적인 겨울폭우로 남가주 산간지역 해발 4000피트 이상에는 최고 20인치까지 눈이 쌓여 겨울산행을 강행할 경우 자칫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   7일 샌버나디노 카운티 셰리프국은 마운틴볼디 단독산행에 나섰던 리세이 후앙(22)이 나흘째 실종 상태라고 밝혔다. 셰리프국과 산악구조대는 겨울폭우가 한창이던 5일부터 후앙을 찾고 있지만, 기상악화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구조대는 기상상태가 좋아지는 대로 다시 수색을 재개할 예정이다.   셰리프국에 따르면 후앙은 지난 4일 오후 2시쯤 마운틴볼디 단독산행에 나섰다. 하지만 산행에 나선 지 2시간 뒤부터 후앙의 연락이 끊겼고, 그의 연인이 오후 11시14분쯤 실종신고를 접수했다.   또한 셰리프국 측은 같은 기간 마운틴 볼디 베어 캐년 등산로에서 길을 잃은 등산객 3명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해발 8400피트 지점에서 길을 잃었고 수색 4시간 만에 발견됐다. 구조된 이들의 건강은 이상 없다고 한다.   셰리프국은 마운틴볼디 겨울산행은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며 등산객이 집에 머물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셰리프국 측은 “현재 마운틴볼디는 너무 많은 눈이 내린 상태”라며 “등산객이 산행 중 길을 잃을 경우 구조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전문 산악인도 어려움에 부닥칠 정도”라고 경고했다.   마운틴볼디는 눈이 올 때면 설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해 한인도 자주 찾는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는 등산로 우측은 급경사로 눈이 쌓일 경우 길을 잃거나 추락할 수 있다. 지난해 겨울철 마운틴볼디에서는 영국 배우 줄리언 샌즈 사망 등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1월에도 70대 한인 정진택씨가 단독산행에 나섰다가 58시간 만에 구조됐다.     한편 당국은 등산객 안전한 산행 수칙으로 ▶가는 지역의 기상 조건을 확인하고 ▶고산 환경(alpine condition)에 대비해 등산용 아이젠, 얼음도끼, 적절한 복장 등으로 철저히 준비하며 ▶파트너와 함께 산행하고 ▶스팟(SPOT) 또는 인리치(INREACH) 등 GPS 장치를 구비하며 ▶휴대폰 완전 충전 후 추가 배터리 기기를 챙기고 ▶행선지와 출발 및 예상 귀가 시간 등을 주변 사람에게 알리며 ▶모르는 곳은 가지 말 것을 강조했다.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겨울산행 마운틴 겨울산행 목숨 겨울산행 자제 기간 마운틴

2024-02-07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발상의 전환은 창조의 불꽃

바꿔야 산다. 정체(停滯)되면 늘 그 자리에 머문다. 세월은 앞으로 가는데 발전하거나 나아가지 못하면 도태된다. 경제가 정체되면 불황이 계속된다. 교통이 정체되면 정해진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른다. 한자리에 오래 머물게 되면 고장 난 시계바늘처럼 작동하지 않고 멈춘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란 말이 요즘 회자된다. 무엇이든 너무 늦어지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 할 수 없다. 소기(所期)는 ‘기대한 바’란 뜻이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시간의 나침반을 잘 활용해야 한다.     사랑, 성공, 행복, 재물, 인간 관계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타이밍은 주변 상황을 고려해 좋은 시기를 결정하는 때를 말한다. 울고불고 매달리던 사랑도 타이밍을 놓치면 물거품이 된다. 사랑도 정체되면 밀려나거나 떠밀려간다.     발상(發想)은 어떤 생각을 해내는 것을 말한다. 영어로 ‘Thinking’ 혹은 ‘Idea’로 적는데 적절한 단어가 아니다. 발상은 혜성처럼 스쳐가는 ‘In a flash of inspiration’ 이다. 발상은 번개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발상은 창조의 밑거름이다. 실체가 없지만 발상은 생의 밀고 나가는 힘의 근원이 된다.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탐구하면 발상은 동기부여의 돌파구가 된다. 실체로 구현되지 않는 발상은 무효다. 허깨비처럼 날아가 버린다. 발상의 전환은 부단한 노력과 집념으로 성취된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은 정설이다. 발상은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한다. 발상은 창조의 무한한 동력이다.     오래 갇혀 살면 모든 것이 벽처럼 느껴진다. 문이 있는데도 그 문을 박차고 나갈 용기를 잃어버린다. 새롭고 가슴 떨리는 것들을 외면하고 결국 보이는 것만 보는 일상의 무료함에 젖어 피곤한 반복으로 생을 낭비한다.     1879년 10월 22일, 에디슨이 백열전구로 열세 시간 반 동안 불을 밝히는, 새로운 빛의 세계로 인류를 초대한다. 어둡고 긴 밤의 세계, 횃불 시대를 마감한 날이다. 에디슨의 3대 발명품은 축음기, 백열전구, 영사기인데 전문가들은 에디슨을 ‘발명하는 방법’을 발명한 것이라고 칭송한다. 특허수가 1000종을 넘어 ‘발명왕’이란 칭호로 불리지만 초등학교 때는 ‘산만한 아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어머니는 집에서 직접 에디슨을 가르쳤다.     파리 시립현대마술관 4층과 5층에 전시된 ‘전기의 요정’(1937, 페널에 유채)은 전기의 위대한 역사를 담은 라울 뒤피의 대형벽화다. 가로 60m 세로 10m로 세계에서 가장 큰 작품으로 꼽힌다. 뒤피는 전기의 역할을 고대부터 20세기 과학까지 작품에 담아낸다.     ‘기쁨의 화가’로 불리는 그의 작품은 밝고 화려한 색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움, 춤추는 듯한 붓질, 경쾌함과 리듬감이 살아 생동한다. 중앙에는 제우스의 벼락과 함께 전기를 상징하는 이브리쉬르센 발전기가 그려져 있다. 에디슨, 벨, 퀴리부인, 레오나르드 다빈치를 비롯해 전기와 관련된 110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두 번째 ‘전기의 요정’ 석판화를 만든 뒤 뒤피는 극한 관절염에 시달리다가 대규모 회고전을 석달 앞두고 영면한다. 전기의 요정은 뒤피의 목숨과 맞바꾼 걸작이자 위대한 결실이다. 목숨과 바꿀 만큼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 사람의 죽음은 슬프지 않다.   회오리 바람처럼, 폭풍과 번개로, 발상의 소용돌이는 생의 곳곳에서 괴력으로 다가온다. 사는 것이 시들하고 힘들어서, 빛과 같은 속도로 지나가는 생각의 실마리를 놓친다. 발상의 전환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의 미래는 창조의 불꽃이 타오른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발상 전환 번개로 발상 축음기 백열전구 뒤피의 목숨

2023-08-31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무엇을 위해 목숨 걸 건가

누구도 믿지 마라. 나도 못 믿는다. 불타던 사랑도 시들해지고 죽자 사자 우정을 다짐하던 친구도 헤어지면 소식이 까마득해진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자주 찍히고 함께 잘 나가다 돌아서면 웬수가 된다. 영원은 없다. 한결같은 믿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은 어차피 각자도생(各自圖生), 스스로 제 살길을 찿는다.       ‘각자도생’은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등장하는 한국판 고사성어다. 대기근이나 전쟁, 국운이 위기에 달했을 때 백성들이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유래된 말이다. 실록에 따르면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등 두 차례의 큰 전란과 대흉년으로 백성들이 처참한 고통을 받던 때가 ‘각자도생’의 시기라고 적고 있다. 어떤 훌륭한 이념과 사상도 목숨줄만큼 지켜낼 소중한 가치는 없다.   한(漢)나라 말, 위, 한, 오 삼국으로 나눠져 서로 황금권좌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짚신 짜던 유비는 푸줏간 하던 장비(張飛)와 관료의 목을 베고 떠돌던 관우(關羽)와 더불어 도원(桃園)에서 의형제 결의(結義)를 맺는다.   ‘의를 맺어 형제가 되니 천하사람을 도와 백성을 편안케 하려 함이다. (중략) 의리를 저버리고 은혜를 잊는 자는 천벌을 내려 죽이소서’라고 뜻을 모으고 복숭아 밭에서 소를 잡아 제사 지내며 하늘에 맹세한다. 서로 형제처럼 여기고 함께 잠자며 수족과 같이 여겼는데 장비는 관우가 연장이어서 극진하게 형으로 모셨다고 촉서에 전해진다.     대장동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속속들이 안다. 멀리 있는 사람은 짐작만 할 뿐 상세한 내용을 잘 모른다. 한푼 두푼 절약하며 먹고 살기에 급급한 민초들은 민간업체가 부정한 방법으로 감이 안 잡히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누렸다는 보도로 자괴감에 빠진다. 불나비가 불을 쫓듯 죽기살기로 돈에 목숨을 걸었던 대장동 도원결의 형제(?)들이 벌이는 기막힌 난타전은 차후 영화의 소재로 재생산 될 여지가 충분하다.     도원결의(桃園結義)는 뜻이 맞는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같이 행동하기로 약속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돈은 애물단지다. 화를 불러오고 불화의 근원이 된다. 애당초 이들이 맺은 의리는 대의명분이 아니라 자기 주머니 챙기기였으니 파토 날 소지가 다분했다. 결론은 패가망신 개망신 몰락으로 종착된다.   요즘 나는 머리 흔들며 자신을 부정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 동안 믿고, 알고 있었던 것들, 추종하고 따르던 것들이 편견과 아류의 집합이 아니였는지 의심한다. 이념의 틀에 자신을 가두고 한쪽 방향으로 편향된 사고에 골몰한 것은 아닌지. 배신과 증오, 진실과 거짓이 난무하고 ‘좌’ 아니면 ‘우’로 낙인 찍히는 시대의 비극에 양다리 걸치고 힘없는 소시민으로 사는 것이 슬프고 부끄럽다.     각자도생의 반대말은 공생이다. 너도 살고 나도 사는 함께 만드는 세상이다     한겨울 삭풍에 흔들려도 뿌리만 살아있으면 나무는 봄꽃을 피운다. 누구를 위해서도, 무엇을 위해서 목숨 걸지 않고, 어떤 것에도 충성맹세 하지 말고, 평탄하고 분명한 길 따라 가면 돌부리에 채여 실족할 일 없을 것이다.     아무도 내 삶을 살아주지 않는다. 지금은 끝이 안 보이는 아수라장이지만 곧 종착역에 도착하리라. 종점에서 흔들려도 뿌리 뽑히지 않는 튼실한 나무로 서리라. 그 때까지 부디 이념에 갇혀 괴물이 되지 않기를.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목숨 대장동 도원결의 사상도 목숨줄 의형제 결의

2022-11-29

"공산주의 희생자 추모, 대한민국은 외면했다" 주미 대사관, 공산주의 희생자 추모행사 불참 논란

    공산주의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헌화 행사가 16개국 대사관들이 참여한 가운데 지난 10일 워싱턴서 열렸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부터 행사 참여를 중단한 주미대사관은 올해도 불참했다. 올해 15회를 맞은 행사는 워싱턴 의사당 인근 '공산주의 희생자 추모공원'에서 매년 열린다. 이번 행사에는 공산주의 국가 종주국 러시아와 전쟁중인 주미 우크라이나 대사관을 비롯, 독일, 캐나다, 체코, 헝가리, 에스토니아,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등 공산주의로 인한 아픈 현대사를 경험한 국가 대사관들이 주로 참석했다.   행사에 참석한 북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전대미문의 방식으로 국민들을 억압하고 있는 북한 김정은 정권에 맞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점에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주미대사관 측은 이 단체가 수차례 행사 참여 의사를 타진했으나 답변이 없었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추모행사를 매년 주최하는 '공산주의 희생자 추모재단(Victims of Communism)'은 지난 1994년 설립됐다. 공산주의 하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운동가들, 인권탄압으로 핍박 받은 공산주의 국가 국민들을  위한 추모와 연구, 홍보에 주력하는 단체다.   이런가운데, 행사에는 원코리안네트워크(OKN), 한인보수연합(KCPAC) 등이 공산주의로 인한 남북한 희생자 2백만 명을 추모하기 위한 화환을 증정했다. 또한 자유통일문화원(이애란 박사), 북한인권단체총연합(허강일 상임대표), 자유북한운동연합(박상학 대표), 큰샘 학교(박정오 대표), '북한주민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쌀과 정보 보내기 프로젝트(박정오 대표), 피랍탈북인권연대(도희윤 대표) 등도 헌화했다.  헨리 송 OKN 대외연락국장은 "워싱턴 한인사회가 지난 수십년간 공산주의로 목숨잃은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북한이 가하고 있는 실질적인 한반도 전쟁 위협에 더욱 관심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단체는 워싱턴 DC에 '공산주의 희생자 기념 박물관'을  지난달 13일 공식 공개 개장 했다. 박물관은 북한을 포함해 세계 각 국가 1억 명 이상의 공산주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전체주의 정권으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는 세계인들의 열정과 용기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됐다. 박세용 기자 spark.jdaily@gmail.com공산주의 희생자 공산주의 희생자 공산주의로 목숨 수십년간 공산주의로

2022-06-13

목숨 담보하고 걸어가는 광야…영성 다듬어지는 곳

최근 고고학자 성경학자 사이에서는 '시내산'이 이집트에 있는것이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있다는 학설이 대두하고 있다.   현장 답사를 위해 미주 지역에서 세마포 호도스 선교회(대표 켄 안 선교사)가 처음으로 순례단을 모집했다.     미주성시화운동본부 공동대표 송정명 목사는 지난 2월21일~3월5일까지 사우디아라비아 지역 순례 일정에 참여했다. 시애틀 형제교회 권준 목사 뉴욕 시라큐스한인교회 지용주 목사가 동행했다.   특히 이번 답사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에서 한방 주치의로 일했던 김승학 박사가 현장에서 직접 세미나까지 진행했다. 송정명 목사의 답사기를 게재한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간 길 방향 감각조차 잃을 황량한 지역 백성들의 원망과 아우성 있었던 곳 성경의 흔적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한마디로 말하면 감격과 흥분의 시간이었다.     모세와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걸었던 광야 길을 직접 눈으로 보았고 걸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광야가 어떤 곳인지는 현장에 직접 서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그야말로 놀라운 영적 도전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모세가 이집트 바로의 왕궁에서 차세대 왕자로 이집트의 역사 문화 정치 리더십 등의 훈련을 40년간 받아 왔지만 그의 영성은 오히려 미디안 광야에서 다듬어 졌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장소다.   광야는 길도 없고 물도 없다. 식량도 구하기 어려운 곳이다. 방향 감각조차 찾기 어려운 곳인데 때로는 세찬 모래 바람이 불어 앞뒤를 구별할 수도 없었다.   이런 길을 40년간 걸어 간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고행길이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 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곳이다. 영성이 절로 다듬어 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는 성경에 기록된대로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집트에서 실수로 애굽 사람을 주먹으로 때려 죽이고  바로왕의 눈길을 피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나와 피곤함에 지쳐 앉아 있던 모세의 우물도 있었다.     그 근처에는 장인이 될 미디안 지방의 제사장 이드르가 살고 있던 집터도 남아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모세가 이드로의 양떼를 치면서 양들을 몰고 올라 갔다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셨던 하나님을 만나 애굽에서 종 살이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라는 특별한 명령을 받았던 호렙산(시내산)의 흔적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시내산은 산세가 험하고 그 높이가 2285미터가 넘기 때문에 우리 일행이 함께 정상에 오르기에는 무리한 일정이었다.   사우디 사람들은 그 산을 '라오즈' 산으로 불렀다.     산 정상은 불로 그을린 검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불 가운데 강림하셨던 하나님의 흔적이라고 믿고 있다. 만약 산 정상에 오르겠다면 4~5명이 텐트를 준비해서 야영하는 일정을 잡아야 할 것 같다.   그 바로 아래는 엘리야 선지가 아합왕의 부인 이세벨의 복수를 피해 도망친 뒤 기도하던 엘리야의 동굴도 있었다.   당시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40일 동안 기도하고 십계명이 새겨진 돌 판을 받느라고 일정이 늦어졌다. 그러자 산 아래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을 충동질해서 자기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자고 금 송아지 우상을 놓고 경배하며 춤을 추었다. 놀라운 것은 그 제단의 흔적이 지금도 있다.     주변에는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이 장막을 치고 거할 수 있는 넓은 평지도 있다.   금 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서 춤을 추던 모습을 보았던 모세가 우상을 불살라 가루를 만들고 물에 뿌려 백성들에게 마시라고 명령했던(출 32:15-20) 그 냇가의 흔적도 그대로 있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건기라서 물은 말라 있었지만 흔적은 여전하다. 그 아래 지역에는 맷돌 모양의 돌이 많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동행한 김승학 박사는 그 절구 같이 생긴 돌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를 갈아 먹었던 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애굽기 17장에 기록된 르비딤 광야를 갔을 때의 감동도 잊을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지냈기 때문에 모세에게 물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며 원망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을 보고 바위를 갈라 물을 공급해 주셨다. 그때 물을 내었던 큰 바위가 갈라진 채 아직도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그 높이가 웬만한 아파트 7~8층 높이는 되는 것 같다. 누구나 압도당할 수밖에 없고 성경을 믿는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바로 그 들판에서 갑자기 아말렉 군대의 기습을 받게 된다. 모세는 아론과 홀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고 지상 전투는 여호수아에게 부탁했다. 산에 올라간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 군대가 승리하고 모세의 팔에 힘이 빠져 손을     잠깐 내리면 아말렉 군대가 역습을 해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았던 아론과 홀이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받쳐주었던 그 곳이다.   결국 이스라엘 군대가 아말렉 군대를 무찌르고 모세는 그곳에 기념 돌을 세웠다. 그곳을 '여호와 닛시(출 17:15)' 라고 불렀다. 승리의 현장이다.   그 근처  평평한 들판에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거했던 터전들이 여기 저기 남아 있었다.     그 지역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모랫길을 약 3마일 이상 걸어 카메라에 담았다.   아직은 관광객이 갈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도로 사정이나 교통편도 불편했다. 특히 광야는 관광 버스 운행이 어렵기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곳 사람들은 미국에서 한인이 이렇게 많이 들어온 것을 보고 깜짝 놀라 했다. 지금까지 유럽 지역에서 소수의 그룹이 간혹 방문한 경우는 있다고 했다.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다. 앞으로 관광지로 개발이 되면 여행자에게는 편안할 수 있겠지만 원형 그대로의 보존이 어려울 것 같다는 걱정도 든다. 아무래도 관광지로 개발이 되면 그 주변에 선물 가게 식당 커피숍 같은 상점이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지역이 원형대로 보존되기보다는 상술에 의해 운영될 것 같다.   사우디 일정을 끝내고 출애굽의 일정을 따라서 요르단으로 들어가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모세를 불렀던 느보산에도 올라 가보았다  바로 눈 앞에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갈 가나안 땅을 보여 주셨던 그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그곳으로 건너가지 못할 것"이라는 섭섭한 말씀을 주셨던 바로 그 곳이다.   40년간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많은 원망과 삿대질 심지어는 돌팔매질을 당하면서 이곳까지 전심의 힘으로 인도해왔던 모세 아닌가. 꿈에도 그리던 그 가나안 땅에 본인은 들어갈 수 없다는 소리를 들었던 심경이 어떠했을까 하는 깊은 생각을 해봤다.   이번 순례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지만 물질 문명의 첨단을 과시하고 있는 두바이를 돌아볼 수 있었던 것도 유익했다.     앞으로 세마포 선교회는 미주 한인 교인들에게 이런 사실을 바로 알리기 위해 대대적인 세미나도 진행할 계획이다. 김승학 장로와 미국의 저명한 학자도 초빙할 예정이다.   동시에 오는 11월에 두 번째 순례단을 보낼 계획이 있다. 목회자들과 관심 있는 교인들이 직접 현장을 한 번 다녀 오기를 강력히 권한다.  목숨 담보 이스라엘 백성 사우디아라비아 지역 미디안 광야

2022-03-21

[이 아침에] 한 해의 마지막에 전하는 ‘감사’

선생님. 안부조차 드리기 민망한 한 해였습니다. 세월의 끝자락 붙잡고 새해 인사 올립니다. 올해 올리는 마지막 글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올해는 성탄절 카드도 부치지 않았습니다. 암담한 것들 뿐이어서 백지에 동그라미 하나 그려 인사말 대신합니다. 지난 2년 동안 팬데믹으로 겪은 고통과 참담한 이별은 익숙하지 않는 상흔으로 남았습니다.   사는 게 여전히 무겁고 힘이 듭니다. 그래도 하얗게 웃는 이웃을 만나면 ‘해피 할러데이’라고 인사말을 건넵니다. 새해에는 사랑하는 사람 껴안으며 다시 행복하고 싶어 ‘그리움’ 대신 ‘행복’이란 단어를 일기장에 적습니다.     팬데믹이 시작될 때만 해도 좀 참고 견디면 끝이 나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운전에 젬병인 저는 터널 속을 달리면 반대편 오는 차에 부딪힐까봐 불안에 떨고 좁은 2차선 도로를 잘못 짚어 콘크리트 벽에 부딪힐까봐 손에 땀을 쥐며 운전을 합니다. 하지만 그 공포의 순간을 견디고 터널 속을 빠져 나오면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터널이 끝나는 곳에서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인생은 어둠과 빛이 교차되는 여정인데도 계속 어둡기만 합니다. 끝이 안 보이는 터널 속을 너무 오래 헤맨 탓일까요. 희망은 빛바랜 마른 꽃잎처럼 부서져 가루로 흩날립니다.     가족과 부모, 자식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이 작별 인사도 못하고 생이별 했습니다. 직장과 집을 잃었고 사업체와 가게를 문 닫고 학교를 못간 아이들은 친구 없이 외톨이가 됐습니다. 교회도 못나가고 한국 사람 안 만나고 이웃과 대화도 없어 반벙어리가 됐습니다. 가뜩이나 못하는 영어는 단어가 줄고 한국말로 떠들던 수다도 맞장구쳐 줄 친구 없어 나홀로 외롭게 지냅니다.     ‘산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어머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제가 두 살 때 홀로 되신 어머니는 고된 밭일로 몸살이 나면 하얀 수건으로 머리 싸매고 아스피린 두 알로 사투를 벌였습니다. 아파도 끙끙대지 않으셨고 슬퍼도 울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목숨은 어머니 것이 아니라 두 생명의 목숨줄이었으니까요.     요즘은 사는 게 두렵습니다. 나이 탓인가요. 사는 것이 죽는 것만큼 두렵습니다. 성경 읽고 찬송가 부르고 설교 듣고 철학자의 깨달음을 갈구해도 구멍난 마음의 바닥에는 어둠이 깔립니다.     어릴 적 우리집 우물은 부엌 안에 있었습니다. 6.25전쟁으로 아버지는 새로 지은 본채에 하루도 못살고 피란 가고 그 집은 공산당 사무실로 쓰다가 중공군이 후퇴하며 집을 불살랐습니다. 아버지는 그 땅에 새집을 짓기 위해 불탄 집터 비워두고 임시 거처를 지은 탓에 우물이 부엌 속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는 전쟁 후 뇌일혈로 쓰러져 새집을 영영 짓지 못했습니다.     죽기까지는 죽지 않습니다. 사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실낱 같은 희망만 있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기쁨은 용솟음칩니다. 희망은 깊은 샘물처럼 바닥을 뚫고 차오릅니다. 생의 바닥이 갈라져 맑은 물이 흘러내리지 않는다 해도 ‘희망’이란 단어는 심장의 박동을 뛰게 합니다. 살아있다는 이 찬란한 축복! 슬픔은 뼈를 이지러뜨리고 절망은 살을 깎아내립니다. 아무도 행복을 앗아가지 못합니다. 스스로 행복의 끄나풀 놓을 때까지.     하찮은 일도 소중하게 붙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 버리고 새 날을 기쁨으로 맞길 바랍니다. 절망과 싸우며 견디기 위해, 사랑한다 그리웠다 말해주세요.   이기희 / Q7파인아트 대표·작가이 아침에 감사 어머니 목숨 새해 인사 우리집 우물

2021-12-30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랑한다 그리웠다 말해주세요

선생님. 그간 평강하세요. 안부 조차 드리기 민망한 한 해였습니다. 세월의 끝자락 붙잡고 새해 인사 올립니다. 올해 올리는 마지막 글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올해는 성탄절 카드도 부치지 않았습니다. 암담한 것들 뿐이여서 백지에 동그라미 하나 그려 인삿말 대신합니다. 지난 이년 동안 팬데믹으로 겪은 고통과 참담한 이별은 익숙하지 않는 상흔으로 남았습니다.   사는 게 여전히 무겁고 힘이 듭니다. 그래도 하얗게 웃는 이웃을 만나면 ‘해피 할러 데이즈’라고 인삿말 건넵니다. 새해에는 사랑하는 사람 껴안으며 다시 행복하고 싶어 ‘그리움’ 대신 ‘행복’이란 단어를 일기장에 적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될 때만 해도 좀 참고 견디면 끝이 나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운전에 젬병인 저는 터널 속을 달리면 반대편 오는 차에 부딪힐까봐 불안에 떨고 좁은 이차선 도로를 잘못 짚어 콘크리트 벽에 부딪힐까봐 손에 땀을 쥐며 운전을 합니다. 하지만 그 공포의 순간을 견디고 터널 속을 빠져 나오면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터널이 끝나는 곳에서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인생은 어둠과 빛이 교차되는 여정인대도 계속 어둡기만 합니다. 끝이 안 보이는 터널 속을 너무 오래 헤맨 탓일까요. 희망은 빛바랜 마른 꽃잎처럼 부서져 가루로 흩날립니다. 가족과 부모, 자식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이 작별인사도 못하고 생이별 했습니다. 직장과 집을 잃었고 사업체와 가게를 문닫고 학교를 못간 아이들은 친구 없이 외톨이가 됐습니다. 교회도 못나가고 한국사람 안 만나고 이웃과 대화도 없어 반벙어리가 됐습니다. 가뜩이나 못하는 영어는 단어가 줄고 한국말로 떠들던 수다도 맞장구 쳐 줄 친구 없어 나 홀로 외롭게 지냅니다.   ‘산사람은 어떻게던 살아야 한다’는 어머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제가 두 살 때 홀로 되신 어머니는 고된 밭일로 몸살이 나면 하얀 수건으로 머리 싸매고 아스피린 두 알로 사투를 벌였습니다. 아파도 끙끙대지 않으셨고 슬퍼도 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목숨은 어머니 것이 아니라 두 생명의 목숨줄이였으니까요.   요즘은 사는 게 두렵습니다. 나이 탓인가요. 사는 것이 죽는 것만큼 두렵습니다. 성경 읽고 찬송가 부르고 설교 듣고 철학자의 깨달음을 갈구해도 구멍 난 마음의 바닥에는 어둠이 깔립니다.     어릴 적 우리집 우물은 부엌 안에 있었습니다. 육이오 전쟁으로 아버지는 새로 지은 본채에 하루도 못살고 피난 가고 그 집은 공산당 사무실로 쓰다가 중공군이 후퇴하며 집을 불살랐습니다. 아버지는 그 땅에 새집을 짓기 위해 불탄 집터 비워두고 임시 거처를 지은 탓에 우물이 부엌 속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는 전쟁 후 뇌일혈로 쓰러져 새집을 영영 짓지 못했습니다.   죽기까지는 죽지 않습니다. 사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실낱 같은 희망만 있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기쁨은 용솟음칩니다. 희망은 깊은 샘물처럼 바닥을 뚫고 차오릅니다. 생의 바닥이 갈라져 맑은 물이 흘러내리지 않는다 해도 ‘희망’이란 단어는 심장의 박동을 뛰게 합니다. 살아있다는 이 찬란한 축복! 슬픔은 뼈를 이지러뜨리고 절망은 살을 깎아내립니다. 아무도 행복을 앗아가지 못합니다. 스스로 행복의 끄나풀 놓을 때까지. 하찮은 일도 소중하게 붙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 버리고 새해 새 날을 기쁨으로 맞으시길 바랍니다. 절망과 싸우며 견디기 위해, 사랑한다 그리웠다 말해주세요.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랑 어머니 목숨 새해 인사 우리집 우물

2021-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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