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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무엇을 위해 목숨 걸 건가

이기희

이기희

누구도 믿지 마라. 나도 못 믿는다. 불타던 사랑도 시들해지고 죽자 사자 우정을 다짐하던 친구도 헤어지면 소식이 까마득해진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자주 찍히고 함께 잘 나가다 돌아서면 웬수가 된다. 영원은 없다. 한결같은 믿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은 어차피 각자도생(各自圖生), 스스로 제 살길을 찿는다.  
 
 
‘각자도생’은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등장하는 한국판 고사성어다. 대기근이나 전쟁, 국운이 위기에 달했을 때 백성들이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유래된 말이다. 실록에 따르면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등 두 차례의 큰 전란과 대흉년으로 백성들이 처참한 고통을 받던 때가 ‘각자도생’의 시기라고 적고 있다. 어떤 훌륭한 이념과 사상도 목숨줄만큼 지켜낼 소중한 가치는 없다.
 
한(漢)나라 말, 위, 한, 오 삼국으로 나눠져 서로 황금권좌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짚신 짜던 유비는 푸줏간 하던 장비(張飛)와 관료의 목을 베고 떠돌던 관우(關羽)와 더불어 도원(桃園)에서 의형제 결의(結義)를 맺는다.
 
‘의를 맺어 형제가 되니 천하사람을 도와 백성을 편안케 하려 함이다. (중략) 의리를 저버리고 은혜를 잊는 자는 천벌을 내려 죽이소서’라고 뜻을 모으고 복숭아 밭에서 소를 잡아 제사 지내며 하늘에 맹세한다. 서로 형제처럼 여기고 함께 잠자며 수족과 같이 여겼는데 장비는 관우가 연장이어서 극진하게 형으로 모셨다고 촉서에 전해진다.  
 
대장동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속속들이 안다. 멀리 있는 사람은 짐작만 할 뿐 상세한 내용을 잘 모른다. 한푼 두푼 절약하며 먹고 살기에 급급한 민초들은 민간업체가 부정한 방법으로 감이 안 잡히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누렸다는 보도로 자괴감에 빠진다. 불나비가 불을 쫓듯 죽기살기로 돈에 목숨을 걸었던 대장동 도원결의 형제(?)들이 벌이는 기막힌 난타전은 차후 영화의 소재로 재생산 될 여지가 충분하다.  
 
도원결의(桃園結義)는 뜻이 맞는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같이 행동하기로 약속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돈은 애물단지다. 화를 불러오고 불화의 근원이 된다. 애당초 이들이 맺은 의리는 대의명분이 아니라 자기 주머니 챙기기였으니 파토 날 소지가 다분했다. 결론은 패가망신 개망신 몰락으로 종착된다.
 
요즘 나는 머리 흔들며 자신을 부정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 동안 믿고, 알고 있었던 것들, 추종하고 따르던 것들이 편견과 아류의 집합이 아니였는지 의심한다. 이념의 틀에 자신을 가두고 한쪽 방향으로 편향된 사고에 골몰한 것은 아닌지. 배신과 증오, 진실과 거짓이 난무하고 ‘좌’ 아니면 ‘우’로 낙인 찍히는 시대의 비극에 양다리 걸치고 힘없는 소시민으로 사는 것이 슬프고 부끄럽다.  
 
각자도생의 반대말은 공생이다. 너도 살고 나도 사는 함께 만드는 세상이다  
 
한겨울 삭풍에 흔들려도 뿌리만 살아있으면 나무는 봄꽃을 피운다. 누구를 위해서도, 무엇을 위해서 목숨 걸지 않고, 어떤 것에도 충성맹세 하지 말고, 평탄하고 분명한 길 따라 가면 돌부리에 채여 실족할 일 없을 것이다.  
 
아무도 내 삶을 살아주지 않는다. 지금은 끝이 안 보이는 아수라장이지만 곧 종착역에 도착하리라. 종점에서 흔들려도 뿌리 뽑히지 않는 튼실한 나무로 서리라. 그 때까지 부디 이념에 갇혀 괴물이 되지 않기를.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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