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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

한국어의 세계화가 눈부시다. 세종대왕께서 얼마나 기뻐하실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세계 여러 곳에서 대접을 받는다고 하니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엄청난 K-팝 열풍 덕분에 한국어를 배우는 젊은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유네스코가 제정한 문맹 퇴치 공로상 이름이 ‘세종대왕 문해상’이고,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모국어로 채택했고 등등…. 이런 예를 들자면 정말 많다. 자랑스럽다.   하지만, 내가 지금 말하려는 한글의 세계화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어에 들어와 세력을 펼치고 있는 외래어에 관한 것이다. 영어가 우리말처럼 천연덕스럽게 쓰인 지는 벌써 오래되었고, 지금은 불어나 이태리말, 스페인어 등도 많이 쓰이는 모양이다. 게다가 일본말 찌꺼기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야말로 국제적으로 화려하다.   이상야릇한 콩글리시에, 홍수처럼 발명되는 신조어에, 한없이 밀려오는 외래어…. 정말 복잡다단하다. 상업 제품 이름, 가게 상호, 고급 아파트 이름에 사용되고, 언론이 거르지 않고 마구 쓰고, 드디어는 보통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도 저항 없이 사용된다. 그중에는 미국에 사는 나도 모르는 영어도 적지 않다.   죽은 언어(死語)인 라틴어도 있다. 흔히 쓰이는 말 중에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 같은 멋쟁이(?) 말은 라틴어다. 이제 한국 사람들은 라틴어까지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그야말로 세계인이 된 것이다. 라틴어는 소멸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오래전 죽은 언어다. 라틴어를 모국어로 삼은 나라는 이제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부활할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얄궂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로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지은 시에 나오는 명언으로 유명하고, 이어령 선생이 생전에 강조하던 생명의 진실이기도 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현재를 즐겨라’ 또는 ‘이 순간에 충실해라’로 번역되는데,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으로 열연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덕분에 널리 알려졌다.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운명을 사랑하라(運命愛)’로 흔히 번역되는데, 철학자 니체의 책 ‘즐거운 학문’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가수 김연자의 노래 덕에 널리 알려졌다.   하나같이 심오한 뜻의 말씀들이다. 라틴어로 말하면 한결 멋있고 의미심장하고, 뭔가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즐겨 사용하는 모양이다.   라틴어를 아는 분에 따르면, 이것 말고도 상당히 많은 라틴어가 우리말처럼 쓰이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왕관), 아쿠아(물), 아모르(사랑), 디바(여신), 페르소나, 호모 사피엔스, 보너스, 유비쿼터스, 무시카 등등….   그런데, 이걸 꼭 라틴어로 해야 하는 건지 의심스럽다. 메멘토 모리나 생자필멸(生者必滅)이나 그게 그거고,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 운명을 사랑하라는 우리말로도 충분히 통하는데 구태여 라틴말을 써야 하나?   언어는 우선 의사소통의 수단이지만, 생각과 영혼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나 나라의 품격을 상징하기도 한다. 말이 곧 정신이다. 그러니까, 민족정신을 올곧게 지키려면 지나친 외국어 사용을 절제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세종대왕께 아부하자는 게 아니다.   어디선가 근엄한 꾸짖음 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슈, 그런 걱정할 시간 있으면 영어공부나 하슈. 재미동포 주제에!”   “아, 소생은 영포중생이 올시다.”   “영포중생? 그건 또 뭐요?”   “영어를 포기한 중생!”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메멘토 카르페 아모르 파티 메멘토 모리 디엠 아모르

2023-03-20

[문화산책]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

한국어의 세계화가 눈부시다. 세종대왕께서 얼마나 기뻐하실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세계 여러 곳에서 대접을 받는다고 하니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엄청난 K-팝 열풍 덕분에 한국어를 배우는 젊은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유네스코가 제정한 문맹 퇴치 공로상 이름이 ‘세종대왕 문해상’이고,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모국어로 채택했고 등등…. 이런 예를 들자면 정말 많다. 자랑스럽다.   하지만, 내가 지금 말하려는 한글의 세계화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어에 들어와 세력을 펼치고 있는 외래어에 관한 것이다. 영어가 우리말처럼 천연덕스럽게 쓰인 지는 벌써 오래되었고, 지금은 불어나 이태리말, 스페인어 등도 많이 쓰이는 모양이다. 게다가 일본말 찌꺼기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야말로 국제적으로 화려하다.   이상야릇한 콩글리시에, 홍수처럼 발명되는 신조어에, 한없이 밀려오는 외래어…. 정말 복잡다단하다. 상업 제품 이름, 가게 상호, 고급 아파트 이름에 사용되고, 언론이 거르지 않고 마구 쓰고, 드디어는 보통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도 저항 없이 사용된다. 그중에는 미국에 사는 나도 모르는 영어도 적지 않다.   죽은 언어(死語)인 라틴어도 있다. 흔히 쓰이는 말 중에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 같은 멋쟁이(?) 말은 라틴어다. 이제 한국 사람들은 라틴어까지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그야말로 세계인이 된 것이다. 라틴어는 소멸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오래전 죽은 언어다. 라틴어를 모국어로 삼은 나라는 이제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부활할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얄궂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로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지은 시에 나오는 명언으로 유명하고, 이어령 선생이 생전에 강조하던 생명의 진실이기도 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현재를 즐겨라’ 또는 ‘이 순간에 충실해라’로 번역되는데,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으로 열연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덕분에 널리 알려졌다.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운명을 사랑하라(運命愛)’로 흔히 번역되는데, 철학자 니체의 책 ‘즐거운 학문’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가수 김연자의 노래 덕에 널리 알려졌다.   하나같이 심오한 뜻의 말씀들이다. 라틴어로 말하면 한결 멋있고 의미심장하고, 뭔가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즐겨 사용하는 모양이다.   라틴어를 아는 분에 따르면, 이것 말고도 상당히 많은 라틴어가 우리말처럼 쓰이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왕관), 아쿠아(물), 아모르(사랑), 디바(여신), 페르소나, 호모 사피엔스, 보너스, 유비쿼터스, 무시카 등등….   그런데, 이걸 꼭 라틴어로 해야 하는 건지 의심스럽다. 메멘토 모리나 생자필멸(生者必滅)이나 그게 그거고,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 운명을 사랑하라는 우리말로도 충분히 통하는데 구태여 라틴말을 써야 하나?   언어는 우선 의사소통의 수단이지만, 생각과 영혼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나 나라의 품격을 상징하기도 한다. 말이 곧 정신이다. 그러니까, 민족정신을 올곧게 지키려면 지나친 외국어 사용을 절제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세종대왕께 아부하자는 게 아니다.   어디선가 근엄한 꾸짖음 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슈, 그런 걱정할 시간 있으면 영어공부나 하슈. 재미동포 주제에!”   “아, 소생은 영포중생이 올시다.”   “영포중생? 그건 또 뭐요?”   “영어를 포기한 중생!”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메멘토 카르페 아모르 파티 메멘토 모리 디엠 아모르

2023-03-16

[이 아침에] 메멘토, 바다

이따금 바다를 찾는다. 발길 이끄는 대로 오다 보면 매번 이곳이다. 태평양 바라보이는 언덕. 바람이 거세다. 검푸른 바다 저만치 파도가 어깨동무하고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험하고 먼 길 달려와 모래사장에 철석 온몸을 부려놓는다. 저 모습이 좋다. 언젠가 이곳을 떠난 파도 한 자락이 긴 세월 돌도 돌아 자식 손자 거느리고 돌아오는 귀향 행렬이 아닐까.     저 파도를 따라가고 또 가면 고향 땅에 닿을 것이다. 우리 동네 뒷산 ‘쌍코뺑이 언덕’에 이를 터이다. 영산강이 내려다보이는 그곳, 거기 서서 어린 나는 물과 함께 흘러 바다로 가고 싶었다. 작은 시골 마을을 벗어나 넓은 세상에 풍덩 뛰어들고 싶었던 것이다. 바다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던 철부지 시절이었다.       날이 저물어간다. 파도는 끝없이 밀려오고 바다는 말이 없다. 말 없는 것들은 무섭다. 바다는 수만 가지 물고기와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을 제 품에 키운다. 먹고 먹히는 저들의 생존투쟁과 암투를 환히 알면서도 조용히 출렁일 뿐이다. 바다는 나에게 늘 수수께끼다. 고작 눈에 보이는 풍경이나 물놀이하며 툼벙거렸던 그만큼의 바다. 그것이 내가 아는 바다의 전부다. 그러니 어찌 바다가 두렵지 않겠는가. 선들바람에도 출렁거리는 바다. 세월호 아이들을 한 번에 삼켜버린 바다. 그 인자하고 무섭고도 잔인한 바다가 저렇게 질펀하게 저렇게도 얌전하고 아득히 시치미를 뚝 떼고 앉아있다. 천의 얼굴을 가진 바다. 그러니 어찌 바다 앞에 몸을 사리지 않겠는가. 모르면 두렵기 마련이다. 누구나 그 앞에 옷깃을 여미고 긴장할밖에.     세상이란 바다도 마찬가지다. 어린아이가 어른이 된 지금도 세상은 풀 수 없는 방정식이다. 내가 헤엄쳐 왔던 고작 그 정도의 바다가 내가 이해하는 세상의 한계다. 인간의 온갖 본성과 본능이 활개 치는 그 오묘하고 비루한 세상의 한 귀퉁이를 스쳐 지나왔을 뿐이다. 서로 배척하고 대립하면서도 때로 끌어안고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사람들. 사람의 깊은 곳을, 깊은 곳의 그 상처를 나는 헤아릴 수가 없다. 사람 사는 세상인데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니. 세상이란 바다는 여전히 나에게 안개에 싸인 그 무엇이다.     달이 뜬다. 달빛이 바람을, 바람이 파도를 잠재운 모양이다. 파도가 잔잔해졌다. 일렁이는 파도 따라 달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윤슬이 아름답다. 바다가 달을 비춘다. 달이 바다를 비추기도 한다. 저런 풍경을 보면 삶과 죽음이 하나, 라는 말이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죽음이 삶을 비추고 삶 또한 죽음을 비춘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메멘토, 바다! 바다를 보면서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 바다를 기억하라. 넓고 넓은 저 바다를 보아라. 깊고 깊은 바다의 마음을 헤아려보라. 말없이 출렁이는 바다를 닮아라. 달을 비추는 바다를 배워라. 깊어가는 밤, 거센 바람 소리를 들으며 내가 나에게 소곤거리는 말이다.  정찬열 / 시인이 아침에 메멘토 바다 메멘토 바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2023-01-25

[이 아침에] 메멘토 모리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함축하는 라틴어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당신이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이라고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정의 한다. 로마의 개선 장군들이 마음에 새겼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메멘토 모리는, 너무 늦기 전에 미리 행동에 옮김으로써 제한된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라는 일종의 경구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가족 친지를 잃거나 존경하던 분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되면 보통 사람들은 밀려오는 허무감과 함께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숙명성에 앞에 스스로 무기력해진다. 메멘토 모리가 함축하는 바는 대부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진다고 보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심리적인 불안·초조를 불러오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고도 한다. 그 말의 개념은 최선을 다해서 제한된 시간을 보다 유효하게 이용하는데 주안이 있으므로, 하찮은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다.     메멘토 모리라는 단어는, 죽음을 의식하고 암시하는 모탈리티 큐(Mortality Cue)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저승사자(Grim Reaper)의 그림, 죽음을 앞둔 사람의 영상, 죽음을 상기시키는 목걸이, 반지, 주화, 문신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만일 메멘토 모리의 개념에서 얻는 것이 득보다 해가 더 크다면 그 사용을 피해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에 우회적으로 말하는 편이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 대신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고 에둘러 표현하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 이 순간을 즐기자는 뜻의 카르피 다이엠(Carpe Diem)이나 욜로(Yolo)의 개념을 병용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예부터 수많은 철학자가 메멘토 모리에 대하여 설파해 왔다. 그들의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사람의 생명은 덧없고 하찮은 것이다(Human lives are brief and trivial)’이다. 철학자이며 로마 황제이기도 한 마커스 오릴리어스(Marcus Aurelius,121-180)가 명상록(Meditations)에서 한 말이기도 하다. 누구든지 죽어서 6피트 지하에 잠들게 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또 다른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L.A. Seneca)는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매일 균형 잡힌 삶을 살라고 했다. 삶의 가장 큰 실수는 오늘의 미완 상태를 내일로 미루는 것이다. 오늘의 일을 마무리 짓는 삶을 매일 계속한다면 불필요한 시간이란 없을 것이라고 그는 갈파한다.     메멘토 모리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문학작품에 사용한 사람은 셰익스피어라고 한다. 톨스토이는 메멘토 모리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내가 30분 후에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의 삶에 대한 태도는, 50년 후에 죽는다고 할 때의 그것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런데 30분 후의 죽음과 반세기 후의 죽음은 본질에서 다른 것일까.     기독교의 구약 성서 전도서(Ecclesiastes 1장)에서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될 뿐이라며 인생의 허무함을 일러준다. 불교에서도 마음 챙김으로써 죽음을 깨닫게 된다는 개념의 마라나사티(Maranasati)를 가르친다. 종교에 따라서 표현은 다를 수 있어도 본질에서 죽음에 대한 기본 개념은 대동소이하다고 하겠다.     죽음을 기억하라(메멘토 모리)!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라만섭 / 전 회계사이 아침에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만일 메멘토 그림 죽음

2022-11-24

[이 아침에] 메멘토 모리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함축하는 라틴어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당신이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이라고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정의 한다. 로마의 개선 장군들이 마음에 새겼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메멘토 모리는, 너무 늦기 전에 미리 행동에 옮김으로써 제한된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라는 일종의 경구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가족 친지를 잃거나 존경하던 분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되면 보통 사람들은 밀려오는 허무감과 함께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숙명성에 앞에 스스로 무기력해진다. 메멘토 모리가 함축하는 바는 대부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진다고 보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심리적인 불안·초조를 불러오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고도 한다. 그 말의 개념은 최선을 다해서 제한된 시간을 보다 유효하게 이용하는데 주안이 있으므로, 하찮은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다.     메멘토 모리라는 단어는, 죽음을 의식하고 암시하는 모탈리티 큐(Mortality Cue)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저승사자(Grim Reaper)의 그림, 죽음을 앞둔 사람의 영상, 죽음을 상기시키는 목걸이, 반지, 주화, 문신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만일 메멘토 모리의 개념에서 얻는 것이 득보다 해가 더 크다면 그 사용을 피해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에 우회적으로 말하는 편이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 대신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고 에둘러 표현하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 이 순간을 즐기자는 뜻의 카르피 다이엠(Carpe Diem)이나 욜로(Yolo)의 개념을 병용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예부터 수많은 철학자가 메멘토 모리에 대하여 설파해 왔다. 그들의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사람의 생명은 덧없고 하찮은 것이다(Human lives are brief and trivial)’이다. 철학자이며 로마 황제이기도 한 마커스 오릴리어스(Marcus Aurelius,121-180)가 명상록(Meditations)에서 한 말이기도 하다. 누구든지 죽어서 6피트 지하에 잠들게 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또 다른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L.A. Seneca)는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매일 균형 잡힌 삶을 살라고 했다. 삶의 가장 큰 실수는 오늘의 미완 상태를 내일로 미루는 것이다. 오늘의 일을 마무리 짓는 삶을 매일 계속한다면 불필요한 시간이란 없을 것이라고 그는 갈파한다.     메멘토 모리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문학작품에 사용한 사람은 셰익스피어라고 한다. 톨스토이는 메멘토 모리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내가 30분 후에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의 삶에 대한 태도는, 50년 후에 죽는다고 할 때의 그것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런데 30분 후의 죽음과 반세기 후의 죽음은 본질에서 다른 것일까.     기독교의 구약 성서 전도서(Ecclesiastes 1장)에서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될 뿐이라며 인생의 허무함을 일러준다. 불교에서도 마음 챙김으로써 죽음을 깨닫게 된다는 개념의 마라나사티(Maranasati)를 가르친다. 종교에 따라서 표현은 다를 수 있어도 본질에서 죽음에 대한 기본 개념은 대동소이하다고 하겠다.     죽음을 기억하라(메멘토 모리)!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라만섭 / 전 회계사이 아침에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만일 메멘토 그림 죽음

2022-11-15

[독자 마당] '메멘토 모리'

팬데믹으로 참담했던 신축년 2021년이 막을 내렸다.     용기와 강인함을 자랑한다는 검은 호랑이 해인 임인년 2022년을 맞았다.     새해를 맞이할 때는 빠트리지 않고 새 결심을 한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늘 작심삼일로 끝났다. 이제 9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또 한번 새해 결심을 적어 본다. 결심을 적으면서 올해의 결심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지켜지지도 않을 거창한 결심은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남 보기엔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을 나만의 약속을 해봤다. 긴 여행 끝에 다가온 삶의 종착지를 생각하며 죽음의 준비를 빠트릴 수가 없다. 라틴어의 ‘Memento Mori(메멘토 모리)’라는 말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죽음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기억할 때 삶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지금을 더 열심히 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나만을 위한 삶,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렸던 삶에서 벗어나 주변 정리부터 시작해 품 안에  움켜쥔  많은 것들을 내려 놓으려 한다. 소유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겠다. 내려 놓아야 행복해지고 버리지 않고서는 떠날 수 없다는 지혜를 늦게나마 터득했으니 후회없이 살고 싶다.     교만의 착각을 버리고 스스로 절제하고 미움, 원망, 불신, 탐욕, 분노 등은 멀리할 것이다. 매사에 감사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나누고 손을 내밀어 주려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나를 찾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가는 그날까지 열정과 의욕은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새해엔 중국어와 마작을 배우기로 했다. 매사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때라 하지 않았던가.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은 뒤로 하고 오로지 내 인생의 행복한 그림을 그리며 2022년 임인년을 보람있고 알차게 보내겠다. 임순·토런스독자 마당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새해 결심 memento mori

2022-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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