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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메멘토, 바다

이따금 바다를 찾는다. 발길 이끄는 대로 오다 보면 매번 이곳이다. 태평양 바라보이는 언덕. 바람이 거세다. 검푸른 바다 저만치 파도가 어깨동무하고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험하고 먼 길 달려와 모래사장에 철석 온몸을 부려놓는다. 저 모습이 좋다. 언젠가 이곳을 떠난 파도 한 자락이 긴 세월 돌도 돌아 자식 손자 거느리고 돌아오는 귀향 행렬이 아닐까.  
 
저 파도를 따라가고 또 가면 고향 땅에 닿을 것이다. 우리 동네 뒷산 ‘쌍코뺑이 언덕’에 이를 터이다. 영산강이 내려다보이는 그곳, 거기 서서 어린 나는 물과 함께 흘러 바다로 가고 싶었다. 작은 시골 마을을 벗어나 넓은 세상에 풍덩 뛰어들고 싶었던 것이다. 바다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던 철부지 시절이었다.    
 
날이 저물어간다. 파도는 끝없이 밀려오고 바다는 말이 없다. 말 없는 것들은 무섭다. 바다는 수만 가지 물고기와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을 제 품에 키운다. 먹고 먹히는 저들의 생존투쟁과 암투를 환히 알면서도 조용히 출렁일 뿐이다. 바다는 나에게 늘 수수께끼다. 고작 눈에 보이는 풍경이나 물놀이하며 툼벙거렸던 그만큼의 바다. 그것이 내가 아는 바다의 전부다. 그러니 어찌 바다가 두렵지 않겠는가. 선들바람에도 출렁거리는 바다. 세월호 아이들을 한 번에 삼켜버린 바다. 그 인자하고 무섭고도 잔인한 바다가 저렇게 질펀하게 저렇게도 얌전하고 아득히 시치미를 뚝 떼고 앉아있다. 천의 얼굴을 가진 바다. 그러니 어찌 바다 앞에 몸을 사리지 않겠는가. 모르면 두렵기 마련이다. 누구나 그 앞에 옷깃을 여미고 긴장할밖에.  
 
세상이란 바다도 마찬가지다. 어린아이가 어른이 된 지금도 세상은 풀 수 없는 방정식이다. 내가 헤엄쳐 왔던 고작 그 정도의 바다가 내가 이해하는 세상의 한계다. 인간의 온갖 본성과 본능이 활개 치는 그 오묘하고 비루한 세상의 한 귀퉁이를 스쳐 지나왔을 뿐이다. 서로 배척하고 대립하면서도 때로 끌어안고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사람들. 사람의 깊은 곳을, 깊은 곳의 그 상처를 나는 헤아릴 수가 없다. 사람 사는 세상인데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니. 세상이란 바다는 여전히 나에게 안개에 싸인 그 무엇이다.  
 


달이 뜬다. 달빛이 바람을, 바람이 파도를 잠재운 모양이다. 파도가 잔잔해졌다. 일렁이는 파도 따라 달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윤슬이 아름답다. 바다가 달을 비춘다. 달이 바다를 비추기도 한다. 저런 풍경을 보면 삶과 죽음이 하나, 라는 말이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죽음이 삶을 비추고 삶 또한 죽음을 비춘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메멘토, 바다! 바다를 보면서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 바다를 기억하라. 넓고 넓은 저 바다를 보아라. 깊고 깊은 바다의 마음을 헤아려보라. 말없이 출렁이는 바다를 닮아라. 달을 비추는 바다를 배워라. 깊어가는 밤, 거센 바람 소리를 들으며 내가 나에게 소곤거리는 말이다. 

정찬열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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