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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행복통신문] 가정상담소에서 15년, 기쁨과 보람

15년이다. 내가 비영리 단체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흐른 시간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 분야에서 일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어렸을 때 나는 자원봉사에 큰 기쁨을 느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자선 행사나 마라톤 준비를 돕고, 자동차 세차 봉사로 후원기금을 마련하고, 식사를 제공하며, 다양한 지역사회 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그것을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2009년 나는 LA로 이사 왔다. 갓 대학을 졸업한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당시 취업은 쉽지 않았고 당장 일자리가 필요한 상황에 처했다. 그러던 중 구인 광고를 보다가 ‘한국어-영어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CCFP(아동 급식 프로그램) 담당자’를 찾는 공고를 발견했다.     “한국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으니, 내게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이 일을 통해 소중한 실무 경험을 쌓고, LA에서 전문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다양한 경력을 선택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줄 기회가 될 것이라 믿었다.     당시만 해도 그 일을 단순히 경력을 쌓기 위한 또 다른 발판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평범해 보이는 직장이 이후 비영리 활동의 여정을 시작하는 첫걸음이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연방농무부(USDA)와 가주교육부(CDE)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한국어로 번역해 제공자들에게 나눠주고, 미국의 시스템과 구조에 대해 원장들과 교사들에게 교육했다. 또 두부나 멸치 같은 문화적 음식을 급식 프로그램에 포함시키기 위해 옹호하는 일을 즐겼다. 유치원과 방과 후 프로그램을 방문해 아이들이 미소를 지으며 한국 음식을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것도 큰 기쁨이었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배우면서 집밥 같은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얼마나 위로가 될까. 아이들이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동안 큰 안정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시절 내가 다녔던 미국의 유치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이 한국어를 쓰고, 한국 동요를 부르며, 한국 음식을 먹었다면, 아마 그때 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적 집에서 부모님은 내 영어 이름을 반복해서 외우게 하고, 매일 연습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한국 이름, 한국 음식, 한국 동요, 한국어만 알았고 영어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한국어만 사용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자랐고, 부모님도 집에서는 한국어로만 대화하셨다. 그러니 내 첫 언어는 한국어였고, 초등학교 4학년까지 ESL(영어를 제2언어로 배우는 프로그램) 수업을 들어야 했다.   일을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나 “만약 KFAM 같은 단체가 전국 곳곳에 있었다면, 많은 한인과 한인 미국인들에게 삶이 훨씬 쉬워졌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단체의 지원이 있었다면 우리 가족조차도 문화적 적응 스트레스와 장애물들을 훨씬 수월하게 헤쳐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KFAM에서의 여정을 돌아보면 이 단체가 한인과 가족들에게, 그리고 내 자신에게도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비영리 활동은 종종 오해받기 쉽다. 화려한 브로슈어, 소셜 미디어 게시물, 기금 모금 갈라 행사만을 보고 변화가 단순히 기부나 행사 참석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고, 도전적이며, 그만큼 더 보람차다. 캐서린 염 / 한인가정상담소 소장가정 행복통신문 가정상담소 기쁨 동요 한국어 한국 음식 한국 동요

2025-01-12

[잠망경] 꿈속의 대화

환자 열 대여섯을 앉혀 놓고 담론을 펼친다. 오늘은 ‘agitation, 동요(動搖)’에 대하여 얘기할까 하는데, 이 어려운 라틴어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아느냐. 이탈리아계 젊은이가 자신 있게 말한다. ‘acid indigestion, 위산과다’에서 왔습니다.   1980년대 뉴욕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agita’라는 슬랭을 쓰기 시작했다. 산(acid)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acido’의 사투리. 1990년 중반쯤 정신적 동요까지 포함해서 누구나 알아듣는 슬랭이 됐다 한다. 그러나 ‘agita’와 ‘agitation’는 스펠링이며 발음이 비슷하다는 데서 그치고 만다. ‘agitation’는 워낙 ‘흔들림’이라는 뜻이었단다.   ‘agitation’의 뜻은 현대어에서 크게 셋으로 나뉜다. ①정신적으로 불안하거나 흥분한 상태 ②정치적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행동 ③액체를 섞어서 심하게 흔드는 행동.   일단 ‘agitation’을 동요라고 했지만  요동(搖動) 혹은 요동질이라 번역하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병동에서 환자와 직원이 겪는 요동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①육체적 요동 - 다른 환자나 직원을 때리거나, 이물질을 삼키거나, 팔목에 상처를 내고 벽에 머리를 부딪치는 자해행위, 기물파손 등 소란을 일으키는 경우.   ②언어적 요동 - 질문이 있다며 손을 든 후 질문은 하지 않고 일장연설을 하는 행동. 그만하라고 종용하면 금방 끝내겠다 해 놓고 그러지 않는 작태. 다른 환자는 또 다른 수법을 쓴다. 기차 화통(火筒)을 삶아 먹었는지 견딜 수 없이 큰 목소리로 영화, ‘스타 워즈, 별들의 전쟁’에 나오는 짧은 대사를 주절댄다. 결과? 물리적 고통이 아닌 감각적 고통.   ③두뇌적 요동 -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으로 두뇌가 부글부글 작동하는 상태. 직접 남을 괴롭히지는 않는다. 이 부류에 속하는 환자는 왕성한 환상과 환각 상태를 애써 감추면서 겉으로는 시치미를 뚝 떼고 처신하려 노력한다. 이들의 특징은 남들 앞에서 독백을 가끔 혹은 자주 하는 데 있다. 여차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상대와 심한 논쟁이 터지기도 한다.     ③은 ‘Internal world, 내면세계’와 ‘external reality, 외부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 큰 이유라고 해석한다. 꿈속에서 누구와 격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잠꼬대하는 것이 좋은 예라고 덧붙인다.   그룹테라피가 끝난 후 내게 두뇌적 요동현상이 일어난다. 우리의 모든 대화가 꿈속의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아닐까. 나는 내 내면세계를 서술하는 독백을 삼가는 데 익숙할 뿐, 다른 사람 앞에서 잠꼬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꿈속 대화 두뇌적 요동현상 agitation 동요 육체적 요동

2024-05-20

[잠망경] 꿈속의 대화

나와 크게 다름없어 보이는 환자 열 대여섯을 앉혀 놓고 담론을 펼친다. 오늘은 ‘agitation, 동요(動搖)’에 대하여 얘기할까 하는데, 이 어려운 라틴어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아느냐. 이태리 태생 젊은이가 자신 있게 말한다. ‘acid indigestion, 위산과다’에서 왔습니다.   1980년대 뉴욕 이태리 이민자들이 ‘agita’라는 슬랭을 쓰기 시작했다. 산(acid)을 뜻하는 이태리어 ‘acido’의 사투리. 1990년 중반쯤 정신적 동요까지 포함해서 누구나 알아듣는 슬랭이 됐다 한다. 그러나 ‘agita’와 ‘agitation’는 스펠링이며 발음이 비슷하다는 데서 그치고 만다. ‘agitation’는 워낙 ‘흔들림’이라는 뜻이었단다.   ‘agitation’의 뜻은 현대어에서 크게 셋으로 나뉜다. ①정신적으로 불안하거나 흥분한 상태 ②정치적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행동(예: 유튜브로 느끼는 요즘 한국 정치 판국) ③액체를 섞어서 심하게 흔드는 행동(예: 바텐더가 손님 앞에서 폼나게 과시하는 칵테일 셰이킹).   일단 ‘agitation’을 동요(動搖)라 처음에 옮겼지만 요동(搖動) 혹은 요동질이라 번역하면 어떨까 싶은데. 아니면 눈 감고 아웅 하는 식으로, ‘지x’이라 할까나. 어쨌거나 위에 열거한 ①②는 올데갈데없이 ‘지엑스’스럽지만③은 절대 그렇지 않다.   병동에서 환자와 직원이 한결같이 겪는 요동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①육체적 요동 - 다른 환자나 직원을 애매한 이유로 때리거나, 못이나 배터리 같은 이물질을 삼키거나, 모종의 수법으로 팔목에 상처를 내는, 또는 벽에 머리를 쾅쾅 부딪치는 자해행위, 몸을 날려 ‘exit’ 사인, CCTV 카메라를 떼어내거나 공중전화를 부수는 기물파손 등등 육체를 사용해서 물리적 소란을 일으키는 경우.   ②언어적 요동 - 아침 조회 시간에 질문이 있다며 손을 든 후 질문은 하지 않고 일장연설을 하는 행동. 모두 고만하라고 거듭거듭 종용하면 금방 끝내겠다 해 놓고 그러지 않는 작태. 다른 환자는 또 다른 수법을 쓴다. 옛날 우리 슬랭으로, 기차 화통(火筒)을 삶아 먹었는지견딜 수 없이 큰 목소리로 영화, ‘Star Wars, 별들의 전쟁’에 나오는 짧은 대사를 주절대는 본때를 보여준다. 결과? 물리적 고통이 아닌 감각적 고통.   ③두뇌적 요동 -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으로 두뇌가 부글부글 작동하는 상태. ①②처럼 직접적으로 남들을 괴롭히지는 않는다. 이 부류에 속하는 환자는 왕성한 환상과 환각 상태를 애써 감추면서 겉으로는 시치미를 뚝 떼고 처신하려 노력한다. 이들의 특징은 남들 앞에서 독백을 가끔 혹은 자주 하는 데 있다. 여차직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상대와 심한 논쟁이 터지기도 한다. 관광객티를 내며 맨해튼에 가보시라. 당신은 혼잣말을 크게 뇌까리며 걸어가는 노숙자를 여럿 만날 것이다.   ③을 좀 공들여 설명한다. ‘Internal world, 내면세계’와 ‘external reality, 외부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 큰 이유라고 해석한다. 꿈속에서 누구와 격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잠꼬대하는 것이 좋은 예라고 덧붙인다.   그룹테러피가 끝난 후 내게 두뇌적 요동현상이 일어난다. 우리의 모든 대화가 꿈속의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아닐까. 나는 남에게 내 내면세계를 서술하는 독백을 삼가는 데 익숙할 뿐, 다른 사람 앞에서 잠꼬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꿈속 대화 두뇌적 요동현상 agitation 동요 육체적 요동

202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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