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시방 그곳이 바로 꽃밭이니라
우리말에 ‘꽃’으로 시작하는 말이 여럿 있다. ‘꽃향기, 꽃가루, 꽃다발’처럼 꽃과 직접 연관된 말도 있지만, ‘꽃길, 꽃동네, 꽃노을’과 같은 말에 붙는 ‘꽃’은 ‘좋고 아름답다’라는 뜻이다. 평탄하게 걸어온 인생길을 ‘꽃길’이라고 하고, 정겹고 화목한 동네를 ‘꽃동네’, 고운 색으로 아름답게 물든 노을을 ‘꽃노을’이라고 부른다. 시인 구상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진 ‘자리’ 앞에 ‘꽃’을 붙여 누구나 바라는 평안한 삶의 자리라는 뜻의 ‘꽃자리’라는 말을 만들고는 같은 제목의 시를 썼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 앉은 자리가 꽃자리이니라 /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 너의 앉은 그 자리가 / 바로 꽃자리니라’. ‘꽃’이 앞에 붙는 말이 좋고, 아름답고, 순탄한 형편을 말한다면, ‘가시’라는 말은 어렵고, 힘들고, 험한 처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그 자리야말로 향긋한 꽃내음이 복욱한 ‘꽃자리’라고 시인은 단언했다. ‘가시방석’이 ‘꽃자리’가 될 수 있다는 시인의 상상력을 거울삼아 우리의 삶을 비추자, 이런저런 일로 험하디험한 인생의 ‘가시밭길’도 ‘꽃길’이 되리라는 희망이 생겼다. 내친김에 ‘꽃자리’라는 시의 2절을 만들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 가는 길이 꽃길이니라 / 네가 시방 가시밭길처럼 여기는 / 네가 가는 그 길이 / 바로 꽃길이니라’. 사람은 누구나 ‘꽃길’만 걷길 원하고, 삶의 자리는 항상 ‘꽃자리’가 되길 기대한다. 미국에 오면 ‘꽃길’만 걸어 ‘꽃자리’에 이를 줄 알았다. 그런데 이민자의 삶은 ‘꽃길’보다는 ‘가시밭길’일 때가 더 많았고, ‘꽃자리’보다는 ‘가시방석’에 앉을 때가 더 잦았다. 구상 시인의 ‘꽃자리’라는 시에서 시작된 ‘가시방석’이 ‘꽃자리’가 된다는 문학적 상상이 나래를 펴 ‘가시밭길’이 ‘꽃길’이 될 때쯤, 이번에는 ‘가시덤불’이 떠올랐다. ‘가시덤불’은 가시나무의 넝쿨이 어수선하게 엉클어진 수풀로, 일이나 삶에 어려움을 주는 역경을 비유해서 쓰는 말이다. 가시밭길을 걷는 사람과 가시방석에 앉은 이들이 뭉쳐 신세 한탄을 하면 그 자리는 순식간에 가시덤불로 바뀐다. 그뿐이랴 세상에서 받은 상처가 독설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가시로 돋아 가시덤불을 만든다. ‘가시방석’이 ‘꽃자리’가 된다는 구상 시인의 시에 덧붙여 ‘가시밭길’이 ‘꽃길’이 된다는 ‘꽃자리’ 2절을 외람되게 쓴 김에 이번에는 ‘가시덤불’을 주제로 ‘꽃자리’의 3절마저 써 보았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 서 있는 곳이 꽃밭이니라 / 네가 시방 가시덤불처럼 여기는 / 네가 서 있는 그곳이 / 바로 꽃밭이니라’. 가시방석처럼 거칠고 낯선 땅을 꽃자리로 여기며, 이민자의 삶이라는 쉽지 않은 가시밭길을 꽃길인 양 달려왔다. 그렇게 괜찮은 척하던 마음이 속으로는 엉겨 붙었고, 겉으로는 얽히고설켜 가시덤불이 되었다. 그렇다고 인생을 홀로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전히 가시덤불 같은 세상이지만 서로의 꽃내음을 맡으며 살 때 ‘시방 그곳이 바로 꽃밭’이 될 것이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꽃밭 하나 정도는 만들어 놓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꽃밭 꽃길 꽃동네 꽃밭 하나 구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