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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상처 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

글쓰기의 치유적 힘을 고민하면서부터 나는, 일류와 삼류는 바로 필자와 독자가 글을 통해서 얼마나 자신을 성찰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게 됐다. 글을 쓰면서 얼마나 위로받고 변화했는가.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무엇을 발견했는가. 삼류에 냉소적인 나, 징징거리는 문체에 치를 떠는 나, 지적인 정보에 압도당하는 나, 평가나 판단에 급급해 글에 몰입하지 못하는 내가 보이는가. 신파에 눈물짓는 나,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남몰래 짜릿함을 느끼는 내가 보이는가. 그 외에 어떤 것들이 보이는가.     박미라 『상처 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   ‘치유하는 글쓰기 연구소’를 이끄는 저자의 치유적 글쓰기 안내서다.   “1. 초등학교 3학년 때 사회과목을 좋아하던 나는 학교에서 백지도 책을 산다고 300원을 가져오라그랬느데 엄마는 주지않았다. 엄마에게 처음으로 욕을 했었다. 물론 마음으로. 반 아이가 미술시간 준비물로 풀을 대신해서 흰쌀밥을 가져왔다. 난 그 밥이 먹고 싶었다.” 글쓰기 워크숍 참가자가 쓴  ‘내 인생이 서러운 100가지 이유’ 중 1번이다. 지금은 회사의 고위 간부가 된 그는 텅 빈 사무실에서 이 글을 썼다. “7. 20대 중반 정도에 나는 이를 해 넣었다. 오로지 나의 힘으로. 그 이가 지금까지 있다. 참 힘든 세월이었다.”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엉망이지만, 오롯이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는 힘을 가진 글. 낭독이 끝났을 때 참가자들은 함께 울었다. 저자는 “이 글이 그날 밤, 그녀와 우리 모두를 구원했다”고 썼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상처 치유적 글쓰기 글쓰기 워크숍 글쓰기 연구소

2024-11-13

[아름다운 우리말] 글쓰기 수업을 시작하며

글쓰기는 쉬운 수업이 아닙니다. 예전 중고등학교의 작문 수업은 휙 지나가는 수업이었습니다. 시험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기에 학생들은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과목이었습니다. 지금 작문이 그래도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는 논술 시험 때문일 겁니다. 시험이 있어야 중요해지는 게 공부라는 점이 서글프지만, 그래도 시험 때문이라도 글쓰기를 연습한다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도 글쓰기 수업을 제대로 들은 경험이 적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그림일기를 쓰면서 작문을 했습니다. 일기의 글쓰기 효과는 늘 의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를 보여주기 위해서 글을 쓰는데, 자기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그림까지 그려야 할 때는 죄책감이 가득하기도 했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해수욕장을 그리고 일기를 쓴 기억이 납니다. 거짓이었기에 오랫동안 부끄러웠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 이후 글쓰기 수업은 기억이 없습니다. 국어 시간에 작문은 그저 지나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떻게 쓰는 게 좋은지 첨삭지도를 받은 기억도 없습니다. 아마 저뿐 아니라 대부분이 그랬을 겁니다. 국어가 읽기 위주의 수업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좋은 글을 읽었던 것이, 좋은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맞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글을 많이 읽지 않은 사람이 글쓰기를 아무리 노력해도 효과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행이라고 할까요? 제가 글쓰기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재수 시절이었습니다. 고3 때는 논술고사가 없었는데, 재수할 때 논술고사가 처음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시험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던 기억입니다. 그때 대입 시험을 마치고 한 달 정도 집중적으로 글쓰기를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글 쓰는 요령을 배웠다기보다는 내 글쓰기에 어느 부분이 문제가 있는지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대학 2학년 때는 소나기를 쓰신 황순원 선생님께 문장론이라는 수업을 들었습니다. 역시 글 쓰는 기술보다는 글쓰기의 태도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간명하고, 쉬운 글쓰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지도교수였던 서정범 선생님께 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좋았습니다. 국어학자이면서 수필가였던 선생님은 제게도 국어학자와 수필가의 길을 권하셨습니다. 지금 제가 글을 쓰는 시작점이 그때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글쓰기는 자기를 표현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거짓을 없애고 자신을 마주하여야 합니다. 저는 제 글 속에 남은 거짓을 지우려 노력합니다. 또한 글쓰기는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나를 남처럼 바라보면서, 남을 나처럼 바라보는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글쓰기는 그대로 나를 치유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제가 제자에게 글쓰기를 권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음속의 불안이나 우울, 답답함을 글로 풀어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언어화라고 하는 데, 말과 글로 자기를 치유하는 과정입니다.   무엇보다도 글쓰기는 힘입니다. 대학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적인 힘이며, 사회적인 힘입니다. 글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회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끝내 글쓰기는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정신적인 힘입니다. 저와 글쓰기를 공부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글 쓰는 시간이 치유와 행복, 깨달음의 시간이기 바랍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수업 시작 글쓰기 수업 작문 수업 이후 글쓰기

2024-09-22

[마음 읽기] 루틴은 상승

뭔가를 이루려면 루틴을 만들라는 조언들을 한다. 최근 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것은 달리기와 벽돌책 읽기다. 이외에도 매달 철학 공부하기, 매년 음악제 참석이나 친구들과의 여행이 있다. 이 중 뚜렷한 목표나 의지를 가지고 하는 일은 없다. 눈뜨면 달리고 있고, 퇴근해 집에 오면 책을 읽고 있다. 더욱이 가만 살펴보면 루틴을 만들어주는 것은 오히려 자원, 시스템, 주위 사람들의 권유와 배려다.   우선 읽는 직업을 갖고 있는 나는 두꺼운 책을 보기 위해 따로 독서 근육을 키울 필요가 없고, 저자들을 좇아 읽으니 목록의 체계도 쉽게 갖춰진다. 매일 달리는 게 힘들지 않은 이유는 폐활량과 견고한 무릎을 타고난 이유도 있지만, 문을 열고 나서면 바로 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철학 공부와 여행은 우정이 자연스레 만들어주었다. 즉 주변을 둘러보면 누구든 일상을 탄탄히 해줄 자원이 얼마쯤은 있을 것이고, 자신이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여부에 따라 삶의 결도 달라진다.   하지만 루틴 만들기가 이렇게 쉬울 리 없다. 루틴은 틀에 박힌 반복 같지만, 해보면 이건 반드시 속도를 내기 마련이고 곧 도약을 일으킨다. 지루한 반복이 차이를 만든다. 그 차이에서 바로 위 혹은 다음 단계로 튀어 오르는 에너지가 생긴다. 즉 루틴은 뭔가를 ‘키워가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육체든 정신이든 마음이든 모두 루틴을 통해 커진다.   30년 경력의 대만 소설가 천쉐는 오로지 글을 쓸 때만 자기 자신이 된다고 느꼈다. 문제는 그가 가족 부양이라는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부모의 투자 실패로 인한 채무 대납, 생활비 독촉, 애인의 경제적 의존까지 현실을 채우고 있는 불행의 서사 탓에 소설의 서사를 만들어낼 정신머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때 그는 필사적으로 루틴에 매달렸다. 옷 장사를 마치고 와 일주일에 2~3일은 2시간씩 글쓰기, 야시장 노점에서 끄적이기, 배송 트럭에서 작품 구상하기, 지방 배달 갈 때 잠자는 모텔에서 스토리를 이어가기. 이것은 특히 젊은 시절의 루틴이었다. 삶에서 단련된 근육이 글쓰기에서 성과를 내니 이를 밑천 삼아 작가로서 좀 더 건강하고 안전한 루틴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즉 40대가 되어서는 수영과 요가를 하고 건강식을 하며, 영감이 넘쳐도 정해진 분량만 쓰는 패턴으로 바뀐 것이다. 천쉐의 사례를 보면 부존자원이 없는 사람이 오직 노동력의 루틴만으로 가용 자원을 만들어내고, 거기서 도움닫기를 해 더 높은 이상을 향해 가는 곡선이 그려진다.   루틴이 없으면 길이 사라진다. 걷지 않는 길에는 덤불이 자라고, 자신이 닦아온 기량을 바탕으로 쌓은 경험들도 길을 잃는다. 정확히 경험에 의지해 걸을 때라야만 축적이 이뤄지는 이유는,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뉠 때 방향이 보일 뿐 아니라 갈래길이 찢어지지 않고 서로 이어지도록 다잡는 힘도 거기서 솟기 때문이다.   나 개인적으로 계속 실패하는 루틴은 ‘매일’ 글을 쓰는 것이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쓰는 것’이라는 말을 수없이 듣지만 늘 읽기에 안주하고 있다. 이번 작가만 다 읽으면 쓸 수 있을 거라는 미루기는 악순환을 불러오고, 쓰지 않는 자의 무능력만 마주하게 된다. 이를 위해 몇 개월 전부터 내가 내린 극약 처방은 보도자료 쓰기다. 주변의 많은 편집자가 인쇄소에 자료를 넘기고 책이 나올 때까지 비는 일주일 사이에 보도자료를 쓴다. 나는 무엇이라도 쓰자는 심정에 원고의 줄거리와 감상이 가장 생생할 때인 2교 과정에서 보도자료를 쓰기 시작했다. 소재와 주제가 정해져 있고 규격마저 융통성 없는 이런 안내문을 글쓰기라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나를 다그치는 데 효과적이고, 자책과 자학의 느낌도 좀 가라앉는다. 어쩌면 강조와 재배치, 요약도 나름 쓰기라 할 수 있을지 모르고. 게다가 이 루틴이 좋은 이유는 기억이 살아 있어 원고를 되짚어갈 필요가 없기에 하루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만들고 싶은 루틴은 말하기다. 48년 동안 전혀 중시하지 않던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싶다는 의지가 새로 생겼다. 말은 생각을 정교하게 다듬는 글과는 달리 현장의 임기응변을 높여준다. 쓰기와는 다른 차원의 깊이를 지닌다. 나에게 말하기의 루틴은 새로운 분야로의 진입이라기보다 읽고 쓰는 것을 확장하는 성격이다. 말하기가 다시 쓰기로의 되먹임이 되길 바라면서.   루틴은 매일 반복되는 짧은 행위를 이어 붙여 하나의 긴 것을 만들어낸다. 그런 연속선상에서 정신은 이론을 일궈내고, 행동은 체질을 바꿔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가게도 한다. 이를테면 책 읽기라는 루틴으로 손에 들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그다음에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으로 옮겨가게 했다. 오래 미뤄왔던 들뢰즈 읽기는 이런 예상치 못한 경로를 통해 필연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은혜 / 글항아리 편집장마음 읽기 루틴 상승 모두 루틴 루틴 만들기 2시간씩 글쓰기

2024-08-28

[문화산책] 말하기와 글쓰기

명랑한 아주머니들의 수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참으로 볼만하다. '만화방창 화란춘성' 거침이 없어서 도무지 막을 재간이 없다. 아주머니들의 수다는 일단 재미있다. 잘 들어보면, 어떤 주제를 가지고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 말만 줄기차게 하는데도 신통하게 잘 통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신기한 것이 또 있다. 그 수다의 달인 아주머니들에게 “그 재미있는 이야기를 그냥 날려버리지 말고, 글로 써서 남기면 좋겠다”고 권하면, 펄쩍 뛰며 손사래를 친다. 말과 글은 전혀 다른 분야라고 삼팔선보다도 진한 선을 긋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말과 글은 하나이고, 말을 글자로 적어놓으면 글이 된다고 믿는다. 내가 주로 연극판에서 대사(말) 중심의 공연 대본을 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말과 글은 별개일 수 없다. 말을 청산유수로 잘하는 사람이 왜 글쓰기는 어렵고 거북하게 여기는 걸까?   “내 이야기를 글로 쓰면 장편 소설 몇 권은 되고도 남을 것이다”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하지만, 보통사람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은 별로 많지 않다. 말과 글은 전혀 다른 것이고, 나와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잘못된 생각이다. 깨버렸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에는 역사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 지배계층의 권력자들은 글공부를 독점했다. 일반 백성들이 글을 배워서 똑똑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글쓰기는 따로 공부해야 하는 특별한 분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말과 글은 다르다고 여긴다. 물론, 문법이나 맞춤법 같은 기초적 공부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크게 어렵거나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글은 배워야 잘 쓰는 것이 아니다. 공부가 오히려 방해되는 경우도 많다.   내가 보기에는 글쓰기의 형식에서 자유로운 보통사람들이 진솔하게 쓴 시나 글이 어설픈 문인의 작품보다 한결 감동적이고 울림이 크다. 거추장스러운 제약에 얽매이지 않기에 순수하다. 철들기 전의 어린아이 그림이 놀라울 정도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과 이치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글을 쓸 수 있다. 이를 증명할 예들도 많다. 가령, 한국 경상북도 칠곡군 할매시인들도 좋은 예다. 평균 연령 78세의 할매시인들은 마을학당에 모여 가슴 속 깊이 숨겨두었던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그림도 그리는데, 주옥같은 글들이 참 많이 탄생했다. 김용택 시인이 100여명의 어머니가 쓴 감동적 시를 모아 엮은 시집 ‘엄마의 꽃씨’도 좋은 예다.   일본의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1911-2013)가 98세 때 펴낸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읽어봐도, 일상의 말을 그대로 글로 적은 것처럼 편안하다. 쉽고 편하지만 감동의 울림이 크고, 시에 담긴 유머 감각과 긍정적인 태도가 호평을 받으면서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어, 일본열도를 감동하게 했다.   말과 글은 본디 하나다. 역사적으로 보면, 태초에 먼저 말이 있었고, 한참 지나서 글자가 만들어졌다. 그 후에도 말의 힘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구비문학, 신화와 전설, 노래, 민요, 민화 등의 서사구조와 정신세계는 오래 전승되었고, 지금도 존재한다. 가령 어린 시절 들었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어머니의 자장가 같은 것의 영향은 평생 간다.   많은 이들이 자기의 삶과 생각을 글로 썼으면 좋겠다. 글쓰기는 해보면 생각보다 쉽고 재미도 있다. 실제로는 이미 전 국민이 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심각한 표정으로 노려보면서 꾹꾹 누르는 글자들이 곧 글이다. 금방이라도 세계 명작이 나올 것 같은 진지한 표정이다. 그 글에다 자기만의 생각을 꾹꾹 눌러 담고, 좀 길게 쓰면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바야흐로 '모든 사람은 시인이요, 작가'인 시대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글쓰기 옛날이야기 어머니 할머니 시인 달인 아주머니들

2024-06-27

“수준 높은 작품 글쓰기 정진하겠다”…고원문학상 문영애 수필가 선정

고원기념사업회(회장 정찬열)가 주최하는 제12회 고원 문학상 공모전에 문영애 수필가의 ‘지금 여기서 춤추며 살기’가 선정됐다.     올해 문학상 최종심은 단독 후보작이었다.     심사를 맡은 김종완 평론가는 “한국 디아스포라 문학의 한계로 남아 있던 마지막 선을 넘은 작품”이라며 “지성 수필이라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미개척의 수필세계를 여는 마중물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평했다. 또 “디아스포라 문학이 갖는 중요한 가치는 낯섦에서 오는 새로운 시선이다. 디아스포라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만민동포, 만민형제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음으로써 존재와 타자에 대한 새로운 깊이의 해석이 가능해졌다”고 덧붙였다.     고원문학상에 선정된 문영애 수필가는 한국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1973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2008년 ‘한국신문’을 통해 등단하고 제14회 한국 산문문학상을 받았다.     2022년 첫 수필집 ‘지금 여기서 춤추며 살기’를 출간했다. 워싱턴문인회 수필문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문영애 수필가는 “예술은 삶을 더 견딜만하게 하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고 한 미국 작가 커트 보니것(1922~2007)의 말을 실천하듯, 미주지역에 삶의 스트레스를 모국어로 녹여 문학으로 승화하려 애쓰는 작가들이 많다”며 “고원 선생님의 문학정신에 맞는 수준 높은 작품을 위해 더욱더 글쓰기에 정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원 문학상은 고원 시인의 문학적 업적과 정신을 기리고 이를 후세에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수상자에게 상금 3000달러와 상패를 수여한다.  이은영 기자 lee.eunyoung6@koreadaily.com고원문학상 글쓰기 고원문학상 문영애 문영애 수필가 작품 글쓰기

2024-02-18

[열린광장] 챗GPT와 글쓰기

새롭게 맞이한 해의 그림자가 훌쩍 반을 드리운다. 칠십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 문명의 기기를 손에서 다루며 따라가기에 숨차다. 그 거리를 좁혀보고자 ‘챗(Chat)GPT와 글쓰기’라는 책을 관심 있게 읽었다. 컴퓨터 링크에 접속하여 회원가입을 했다. 챗GPT가 나타나자,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큰 충격을 받았다. 2022년 11월 30일에 챗GPT가 웹으로 무료 서비스를 시작했다. 불과 두 달 만에 사용자가 1억 명이 넘었다. 책을 읽으며 그의 정체 앞에 놀란 가슴을 다잡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챗GPT와 같은 AI가 어떻게 글을 쓰는지,  AI(인공지능) 최초의 챗봇부터 지금 챗GPT까지 AI의 글쓰기 원리와 전문 기술을 글쓰기와 연계해서 알려 주었다. 챗GPT는 인공지능으로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학습해서 사람의 질문에 대한 답을 글로 쓰는 대화형 언어모델이다. 이를 만든 OpenAI는 미국의 인공지능 기업이자 비영리 단체로 2015년 일론 머스크, 샘 알트만, 리드 호프만, 피터 틸이 설립했다. 2021년까지 데이터로 학습했으므로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이나 지식은 모른다. 가끔 부정확한 정보로 대답할 수 있고, 유해한 지시나 편향된 내용으로 대답할 수 있다는게 지금의 한계다.     웹에 들어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질문을 시작했다.  “AI가 글쓰기를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더니 “저는 AI이기 때문에 글쓰기에 대해서는 개념적인 이해만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AI가 글쓰기를 통해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전달하거나,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실에 기반을 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독창적이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면, 그 글의 가치는 높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어 챗GPT가 작성한 기사들을 읽어보았다. 챗GPT가 나오기 전부터 딥러닝으로 무장한 AI를 통해 스포츠나 증시 소식, 경제 지표 발표 등과 같은 기사는 사람이 아닌 AI를 활용해 내보내는 언론사도 있다고 했다. 챗GPT 플러스라는 새 버전이 나와 이제는 최신 소식까지 모두 활용할 수 있다. 최근에 나온 버전 챗GPT 4는 인터넷과 연결돼 있고 처리 속도도 훨씬 빠르다. 세상은 지금 엄청난 대 격변기에 진입했다 변화에 속도가 붙으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까? 두려움이 생긴다. 챗GPT가 몰고 올 엄청난 파장과 충격은 놀랍다. 그동안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글을 써왔던 작가는 앞으로 어떻게 좋은 글을 써야 할까?     “봄에 대한 시를 써 보세요”라고 해보았다. 물 흐르듯 생각할 여지 없이 술술 시가 적혔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영혼이 없다고 할까? 작품의 주제와 작가의 의도같은것은 없이 이미지만 서술되어 있다. 인공지능은 수사는 하지만 설득은 못 한다. 다양한 스타일로 생각을 표현할 수 있지만 그것이 상대를 감동시키거나 설득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데이터를 정리해서 보여줄 뿐이다. 우리는 내용의 정보력과 글의 구성력에서는 승부를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람다운 생각과 경험에 차별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나는 글을 쓰며 인터넷을 이용해 정확한 정보와 단어의 의미와 관련된 글을 찾곤 했다. 단순한 조사, 정리나 분석, 요약이나 발췌, 수사법이나 문법 적용 같은 것은 AI가 훨씬 잘한다. 이제 챗GPT에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 해결을 얻고자 한다. 퇴고할 때 신경을 쓰던 문장 표현의 반복 등 여러 요소를 입력하여 질문해 보려 한다. 동화와 소설의 서사 구성(Plot)인 ‘기, 승, 전, 결’도 시험해보고자 한다. 시간 절약과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것 같다.     AI는 글쓰기 경쟁 상대가 아니라 사람의 도구일 뿐이다. 그를 받아들이고 활용하고, 나의 경험에서 온 깊은 사고와 철학을 펴나가는 것이 내가 앞으로 할 글쓰기의 방향이라고 깨닫는다. 여기에서 AI와 사람의 글쓰기 차이를 규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고차원적인 글 즉 사람만의 경험과 생각, 관념이 들어간 글을 써야 한다. AI보다 더 좋은 글을.   이희숙 / 수필가열린광장 글쓰기 생각 관념 증시 소식 예술 작품

2023-06-16

[이 아침에] 마음 문 여는 글쓰기와 말하기

소설 같지 않은 인생이 있을까. 누구나 자신의 삶이 소설 한권 쓸 만큼 파란만장하다고 생각한다. ‘파란만장(波瀾萬丈)’은 파도와 물결의 높이가 만장에 이른다는 뜻이다. 한장은 3미터인데 만장이면 파도의 높이가 30킬로미터 정도라는 말이다. 인생살이가 굴곡이 심하고 평탄하지 못해 수많은 곡절과 시련을 겪으며 기복이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설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어떤 사물이나 사실, 현상에 대하여 일정한 줄거리를 가지고 하는 말이나 글로 자신이 경험한 일이나 마음 속 생각을 남에게 전달한다.  소설과 이야기가 다른 점은 소설은 작가가 있다는 점이다. 소설은 작가 자신의 인생을 구성적으로 서술한 창조적이면서 현실적인 이야기다. 창조적이란 ‘사실이 아닌 상상의 산물’이란 뜻이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중략)  영혼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은 별들이 내뿜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게오르크 루카치 ’소설의 이론‘ 서문 중에서   칼럼을 쓴지 19년이 됐다. 기쁠 때도, 슬프거나 아플 때도 칼럼을 썼다. 자전 에세이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을 출간하고 신문사로부터 칼럼 제안을 받았다. 학점 받으려고 논문 몇 편 쓴 경력밖에 없어 긴장했다.     평소 절친(?)이던 유명 작가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일언지하 만류했다. 칼럼 쓴  경험  미숙, 긴 타국생할로 인한 언어 및 현실감각 부족, 작가들도 매주 쓰는 것이 고역이라며 고작 몇 달 버티기도 힘들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태어날 때부터 펜 들고나온 사람 있냐‘는 비장한 각오로 시작했다. 나는 운동은 못 해도 축구공 체질이다. 그냥 두면 때굴때굴 굴러가지만 발로 차면 멀리 간다.     시작도 못 해 보고 퇴짜 맞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담당자에게 심사받듯 원고 3편을 보냈다. ’글은 괜찮은데 A4용지 한장 기준으로 반으로 줄여서 보내주세요‘라는 답신이 왔다. 초보자는 무엇을 덜어내고 어디서 멈출지 모른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백지 한장에 삶의 맺히고 설킨 한을 매주 토설하는 것은 내게는 죽음의 강을 건너는 환희다.     글쓰기는 행동이다. 생각을 늘어놓는 건 글쓰기가 아니다. 글쓰기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맺힌 말들을 가장 쉽고 익숙한 말들로 적는 일이다. 주접떨지 말고,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가르치려 하지 말고, 내세우지 말고, 간결하고 침착하게 정곡을 찌르는 언어 선택이 중요하다. 글쓰기의 준비 운동은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소설은 사건의 실마리가 되는 발단과 전개를 펼치며 반전의 위기를 거쳐 절정에 도달해 결말로 치닫는다. 갈등과 위기가 반복될수록 긴장감이 높아진다. 글쓰기는 서론은 짧게 풍부한 자료로 본론으로 치고 들어가야 문맥이 단단해진다.     말을 할 때 소설 쓰듯 길고 장황하게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은 지루하다. 대화의 공통분모를 찾고 서로 공감하며 가슴을 터는 언어 선택이 중요하다.     나이 들면 모든 것을 줄이는 게 상책이다. 부피와 무게를 줄이고 넓이와 폭은 넓히는 게 좋다. 타인은 내 과거지사에 관심 없다. 말을 할 때는 소설 쓰듯 길게 나열하지 말고, 재밌고 달달하게 대화를 주고받아야 마음의 문이 열린다.     마음 밭을 넓게 가꾸면 영혼의 곡식이 여기저기 주렁주렁 열린다.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작가이 아침에 글쓰기 마음 자기 이야기 언어 선택 칼럼 제안

2023-02-19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마음 문 여는 글쓰기와 말하기

소설 같지 않는 인생이 있을까. 누구나 자신의 삶이 소설 한 권 쓸만큼 파란만장하다고 생각한다. ‘파란만장(波瀾萬丈)’은 파도와 물결의 높이가 만 장에 이른다는 뜻이다. 한 장은 3미터인데 만장이면 파도의 높이가 30킬로미터 정도라는 말이다. 인생살이가 굴곡이 심하고 평탄하지 못하며 수 없는 곡절과 시련을 겪으며 기복이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설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어떤 사물이나 사실, 현상에 대하여 일정한 줄거리를 가지고 하는 말이나 글로 자신이 경험한 일이나 마음 속 생각을 남에게 전달한다.     소설과 이야기가 다른 점은 소설은 작가가 있다는 점이다. 소설은 작가 자신의 인생을 구성적으로 서술한 창조적이면서 현실적인 이야기다. 창조적이란 ‘사실이 아닌 상상의 산물’이란 뜻이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중략) 영혼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은 별들이 내뿜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게오르크 루카치 ‘소설의 이론’ 서문 중에서   그럭저럭 매주 칼럼을 쓰게 된 지 19년이 됐다. 기쁠 때도, 슬프거나 아플 때도 칼럼을 썼다. 자전에세이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 출간되고 신문사로부터 칼럼 제안을 받았다. 학점 받으려고 논문 몇 편 쓴 경력 밖에 없어 긴장했다.     평소 절친(?)이던 유명 작가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일언지하 만류했다. 칼럼 쓴 경험 미숙, 긴 타국 생활로 언어 및 현실 감각 부족, 작가들도 매주 쓰는 것이 고역이라며 고작 몇 달 버티기도 힘들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태어날 때부터 펜 들고 나온 사람 있냐’는 비장한 각오로 시작했다. 나는 운동을 못해도 축구공 체질이다. 그냥 두면 때굴때굴 굴러가지만 발로 차면 멀리 간다.     시작도 못해 보고 퇴짜 맞을까 노심초사, 담당자에게 심사 받듯 원고 3편을 보냈다. ‘글은 괜찮은데 A4용지 한 장 기준으로 반으로 줄여서 보내주세요’라는 답신이 왔다. 초보자는 무엇을 덜어내고 어디서 멈출 지 모른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백지 한 장에 삶의 맺히고 설킨 한을 매주 토설 하는 것은 내게는 죽음의 강을 건너는 환희다.     글쓰기는 행동이다. 생각을 늘어 놓는 건 글쓰기가 아니다. 글쓰기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맺힌 말들을 가장 쉽고 익숙한 말들로 적는 일이다. 주접 떨지 말고,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가르치려 하지 말고, 내세우지 말고, 간결하고 침착하게 정곡을 찌르는 언어 선택이 중요하다. 글쓰기의 준비 운동은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소설은 사건의 실마리가 되는 발단과 전개를 펼치며 반전의 위기를 거쳐 절정에 도달해 결말로 치닫는다. 갈등과 위기가 반복될수록 긴장감이 높아진다. 글쓰기는 서론은 짧게 풍부한 자료로 본론으로 치고 들어가야 문맥이 단단해진다.     말을 할 때 소설 쓰듯 길고 장황하게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은 지루하다. 대화의 공통분모 찿고 서로 공감하며 가슴을 터는 언어 선택이 중요하다.     나이 들면 모든 것을 줄이는 게 상책이다. 부피와 무게를 줄이고 넓이와 폭은 넓히는 게 좋다. 타인은 내 과거지사에 관심 없다. 말을 할 때는 소설 쓰듯 길게 나열하지 말고, 재밌고 달달하게 대화를 주고 받아야 마음의 문이 열린다.     마음 밭을 넓게 가꾸면 영혼의 곡식이 여기저기 주렁주렁 열린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글쓰기 마음 자기 이야기 언어 선택 칼럼 제안

2023-02-07

[인공지능개척시대] 챗GPT의 충격, 새해 AI에 거는 미래

일전에 한 소송 전문 변호사에게 일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그는 의뢰인이 적절한 기대 수준을 갖게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의뢰인은 다들 자기가 꼭 승소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변호사가 승소 가능성이 작다고 하면 무능한 것처럼 보이기에 십상이다. 사건 수임이 어렵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소송에서 패소할 수도 있는데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 변호사의 답변을 듣고서 미래를 예상하고 합리적으로 기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실감하였다.   세상 많은 일이 그렇다. 올해는 시험에 합격하겠지, 승진하겠지, 투자 실적이 좋겠지 등등 우리가 했던 많은 기대가 쉬이 좌절되곤 한다. 하지만 비관적 전망에 빠지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미래를 위해 노력할 유인도 잃게 된다. 그러니 일단 높은 기대치를 갖고 힘닿는 한 노력해 보는 편이 바람직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노력이 헛되지 않으려면 그 기대치가 합리적이어야 한다.   최근 놀라운 성능의 인공지능이 거듭 발표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그 발전을 예측하고 합리적 기대 수준을 갖는 일은 적잖게 어려운 문제다. 30여 년 전 인터넷이 등장하여 세상을 바꾼 것만큼이나 인공지능이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초래하리라 전망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이러한 전망의 중심에는 글쓰기 인공지능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2월 발표된 챗GPT(Chat GPT) 기술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챗GPT가 세상을 놀라게 한 이유는 그 성능이 기대보다 훨씬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단순히 작문 기능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인간의 사고 능력을 모방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수학 문제를 풀라고 하면 풀이 과정까지 상세히 보여준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지시하면 소스 코드를 직접 짜낸다.   이러한 글쓰기 인공지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 인공지능이 다양한 작업을 수행해 내는 것에 사뭇 놀라게 된다. 글쓰기 인공지능의 구조에 대단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방대한 양의 문장을 학습해서 사람이 쓴 것과 비슷한 문장을 생성해 낼 뿐이다. 그런데도 글쓰기 인공지능은 여러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어쩌면 글을 쓰는 능력을 가르치는 일이 인간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열쇠인지도 모른다.   지나친 기대에 우려를 제기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현재의 글쓰기 인공지능이 아무리 똑똑해 보여도 근본적으로는 앵무새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글쓰기 인공지능은 학습 데이터의 통계 패턴을 익혀 가장 그럴듯한 말을 지어낼 뿐이니,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한다. 거짓 내용을 자연스럽게 생성해서 사람을 속일 위험이 적지 않다. 이 위험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는 아직 뚜렷한 답이 없다. 그러니 이런 인공지능이 사회 각 분야에서 활발히 사용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릴 수도 있다.   인공지능 기술들이 앞으로 얼마나,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 것인지는 쉽사리 예측하기 어렵다. 어떤 이들은 머지않아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이라 주장한다. 다른 이들은 현재의 기술 수준은 인간 지능과 도저히 비교할 바가 못 된다고도 한다. 여러 엇갈린 주장 사이에서 갈피를 잡기 어렵다.   그럴수록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미래 전망을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발전사에는 ‘인공지능 겨울’이라 불리는 시기가 있었다. 사람들이 크게 기대했다가 그 결과에 실망한 나머지 투자나 관심도가 크게 떨어진 때를 일컫는다. 아직 인공지능 겨울을 걱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이런 시기가 다시 닥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반대로 인공지능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여 투자나 연구 노력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보장할 필요도 있다. 그러니 인공지능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기대 수준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3년 새해가 밝았다. 과연 100년 후 후손은 올해를 어떻게 평가할까 상상해 본다. 인공지능 기술 발전과 확산의 원년으로 평가될 수도 있고, 우리가 가진 기대나 우려가 찻잔 속 폭풍에 그쳤다고 평가될 수도 있겠다. 인공지능의 미래에 어떤 기대를 하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일지 고민하며 한 해를 연다. 김병필 /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인공지능개척시대 충격 새해 글쓰기 인공지능 인공지능 기술들 합리적 기대

2023-01-22

진정한 프로 되려면 글을 잘 써야…온라인 강좌로도 배울 방법 많아

예전에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문학을 전공하고 글쓰기를 전문 직업으로 선택하고 수련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블로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좋은 정보를 주고, 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으며 남들과 다른 깨달음을 공유하는 글을 쓰는 행위가 작가가 되는 길이 되었다.     하버드대를 비롯한 명문 대학들은 공대, 사회대를 막론하고 1학년 과정으로 ‘학술적 글쓰기’ 능력을 체득하도록 되어 있다. “강의 듣고 시험 잘 쳐서 대학 졸업할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평생 ‘학생’ ‘관찰자’ 위치를 벗어날 수 없다”면서 “졸업 후 자기 분야에서 진정한 프로가 되려면 글쓰기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낸시 소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강조한다. 실제 사회에 진출한 졸업생 1600명을 대상으로 ‘현재 직장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인가’ 물었는데 90% 이상이 ‘글쓰기’라고 답변했다. 소머스 교수는 “글을 잘 써야 ‘새로운 문제’를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예일, 컬럼비아대 역시 학부생에게 1대1 글쓰기 교습을 해준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은 더 논리 정연한 사상가가 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단순히 이메일을 보내거나 페이스북 상태를 업데이트하는 것이라도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기술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글쓰기 능력을 개발시킬 수 있을까?     1) 더 나은 독서가 되기   최고의 작가들도 모두 책 읽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좋은 다양한 아이디어가 생기게 되며 떠오르는 수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글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데 자유롭게 되면서 서서히 자신만의 글을 구현할 수 있게 된다.     학생들에게는 새로운 방법으로 독서 소셜네트워크를 활용해 볼 것을 추천한다. 굿리즈(Goodreads)는 읽고 싶은 책을 찾고 리뷰를 보고, 친구들이 무엇을 읽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책을 선택하기도 쉽다. 아이폰앱, 안드로이드폰 앱, 컴퓨터 웹사이트를 통해 도서 목록을 관리하고 나만의 책꽂이에 내가 읽고 싶은 책, 이미 읽은 책 등을 모아 정리할 수 있다. 책을 읽은 후 리뷰 창에 소감도 쓰고 평점도 줄 수 있으며 자신만의 독서 기록 통계를 낼 수도 있다.     2) 매일 쓰기   연습은 어떤 일이든 익숙하게 하고 잘하게 만든다. 매일 글쓰기를 하면 글을 쓰는 과정이 더 쉬워지고 생각이 점점 명확해지며 점점 더 글쓰기를 즐기게 된다. 일기를 써도 좋고 트윗을 해도 좋다.  무엇을 하든 한 달에 3개쯤 쓰는 것보다 매일 쓰면 글을 쓰는 과정이 더 쉬워지고 글 쓰는 것이 점점 더 재미있어진다. 누구든 잘하는 일을 하는 것이 즐겁게 느껴지는데 글쓰기도 다르지 않다.     3) 블로그 시작   작가가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블로그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어떤 온라인 사업을 시작하든 간에 추천하는 첫 번째 단계이기도 하다. 많은 젊은 블로그 작가들은 처음 시작했을 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고 긍정적인 변화들이 일어났으며 심지어는 블로그 글쓰기가 그들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이야기한다. 처음엔 자신이 관심 있거나 생각하는 어떤 것에 관해 썼고 시간이 흐르면서 무엇을 써야 할지 분야와 주제가 명확해지기 시작했으며 칼럼니스트로 일해 달라는 제안도 받게 되고 책을 쓰자는 제안도 받았다고 한다.     4) 글 쓰는 법 배우고 비평받기   가벼우면서도 편하게 읽을 ‘글 잘 쓰는 법’에 대한 책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온라인 글쓰기 수업도 적지 않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점점 조금 더 잘 쓰고 싶어지고, 자연스럽게 더 나은 글쓰기 기술이 배우고 싶다.     온라인에는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강좌가 있다. 카피아워(copyhour)를 통해 카피라이터가 된 젊은이들의 경험담도 종종 듣게 된다. 또 가까운 사람에게는 듣기 불편한 글에 대한 비평을 편안하게 접할 수 있는 로케이션 레벨 아카데미(Location Rebel Academy)를 통해 회원 간의 콘텐츠 작성, 웹 사이트 및 고객 발굴 방식에 대한 피드백을 서로 지속해서 제공하는 사이트도 활용해 보면 좋다.     ▶문의: (323)938-0300   www.a1collegeprep.com 새라 박 원장 / A1칼리지프렙온라인 강좌 온라인 글쓰기 블로그 글쓰기 글쓰기 능력

2022-01-30

문장으로 읽는 책

 글쓰기의 치유적 힘을 고민하면서부터 나는, 일류와 삼류는 바로 필자와 독자가 글을 통해서 얼마나 자신을 성찰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게 됐다. 글을 쓰면서 얼마나 위로받고 변화했는가.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무엇을 발견했는가. 삼류에 냉소적인 나, 징징거리는 문체에 치를 떠는 나, 지적인 정보에 압도당하는 나, 평가나 판단에 급급해 글에 몰입하지 못하는 내가 보이는가. 신파에 눈물짓는 나,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남몰래 짜릿함을 느끼는 내가 보이는가. 그 외에 어떤 것들이 보이는가.     박미라 『상처 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   ‘치유하는 글쓰기 연구소’를 이끄는 저자의 치유적 글쓰기 안내서다.   “1. 초등학교 3학년 때 사회과목을 좋아하던 나는 학교에서 백지도 책을 산다고 300원을 가져오라그랬느데 엄마는 주지않았다. 엄마에게 처음으로 욕을 했었다. 물론 마음으로. 반 아이가 미술시간 준비물로 풀을 대신해서 흰쌀밥을 가져왔다. 난 그 밥이 먹고 싶었다.” 글쓰기 워크숍 참가자가 쓴  ‘내 인생이 서러운 100가지 이유’ 중 1번이다. 지금은 회사의 고위 간부가 된 그는 텅 빈 사무실에서 이 글을 썼다. “7. 20대 중반 정도에 나는 이를 해 넣었다. 오로지 나의 힘으로. 그 이가 지금까지 있다. 참 힘든 세월이었다.” 오롯이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는 힘을 가진 글. 저자는 “이 글이 그날 밤, 그녀와 우리 모두를 구원했다”고 썼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 치유적 글쓰기 글쓰기 워크숍 글쓰기 연구소

202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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