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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마추픽추에 다녀와서

수영장 친구 애나씨의 권유로 페루를 다녀왔다. 몇 해 전 친구들이 잉카 트레일을 백패킹할 때 못 가서 아쉬웠던 터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고된 트레킹 대신 기차와 버스를 이용한 관광객 입장이지만 세계 여행자의 로망이라는 마추픽추에 간다고 생각하니 설렜다. 유튜브 몇 개 보고 고산증약만 처방받았다.   페루의 수도 리마를 거쳐 쿠스코로 향했다. 고대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는 스페인 침략의 영향으로 유럽의 중세도시가 연상된다. 자갈길 골목마다 화려한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잉카의 후예들이 공예품을 파는 아기자기한 가게가 즐비하다. 진홍색 제라늄과 흐드러진 넝쿨 백장미, 연보라의 자카란다, 새빨간 부겐빌레아는 살림이 넉넉하지 못해도 꽃을 사랑하는 이 도시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태양신의 직계 후손이라는 자부심은 어디로 갔을까.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호객행위를 하는 인디오를 보면 씁쓸한 기분이 든다. 귀여운 알파카를 안고 사진을 찍는 행위는 동물 학대이니 원주민에 응대하지 말라며 청년 가이드가 말한다. 힘든 농사를 짓기보다 관광객을 상대로 손쉬운 돈벌이에 급급한 것이 부끄럽다고 한다. 페루의 문제는 부정부패라며 이전 다섯 대통령이 모두 감옥에 있단다. 교육으로 의식을 개혁해서 잉카제국의 명예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애국청년이다.   안데스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우루밤바 강을 끼고 달리는 기차를 타고 한참을 왔으나 다시 가파른 절벽의 산비탈 길을 굽이굽이 버스로 가야 한다. 잉카의 위대한 유산인 ‘마추픽추’로 가는 길은 멀기도 멀다. 안데스의 높은 봉우리로 겹겹이 둘러싸여 하늘 위에서만 도시 전체를 볼 수 있어 ‘공중 도시’라고 불린단다. 안개에 싸인 공중 도시는 몽환적이다. 골이 깊어 구름이 산 중턱에 걸려있다. 오랜 세월만큼 바위에는 이끼가 가득하고 돌 틈에 피어난 이름 모를 야생화가 운무 속에서 돋보인다.   수레도 기중기도 없이 무거운 돌을 어떻게 옮겼을까. 철기를 사용하지 않고 거대한 돌을 깎고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쌓아 올린 정교한 건축술이 신비롭다. 태양신을 섬기는 신전, 귀족과 사제들의 거주지역, 일반인 거주지역, 농작지로 나뉜다. 산악지대라 부족한 농업용지 해결을 위해 계단식 밭이다. 우루밤바 강물을 이용, 수로를 만들어 도시 전체로 물이 흐르게 한 것도 놀랍다. 무력에 파괴된 잉카의 흔적을 보면 애잔함과 분노가 치민다. 우루밤바 강물은 잉카인의 가슴 아픈 사연을 싣고 바다로 흘러갔을까.   한가롭게 풀을 뜯는 라마와 알파카를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여행을 온 듯싶다. 알파카와 양, 라마의 털로 실을 뽑아 천연 재료인 곤충과 식물을 이용해 염색하고 전통 방식으로 옷을 짓는 여인들을 보았다. 때 묻지 않은 자연, 그 자연만큼이나 순박한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고산증에 좋다는 코카 차를 권한다.   유럽의 침략자들이 잉카문명을 짓밟고 황금을 약탈해 간 슬픈 역사를 들어서일까. 남미 특유의 경쾌한 음악도 애잔하게 들린다. 잉카의 역사와 경이로운 문화유산을 간직한 채 여행자들의 발길과 마음을 붙잡는 도시, 화려하고 정교한 석조문화가 돋보이는 마추픽추에 올라 잉카인들 삶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기회가 온다면 다음에는 관광객이 아니라 배낭 짊어지고 잉카 트레일을 걷고 싶다. 최숙희 / 수필가이 아침에 마추픽추 고대 잉카제국 잉카 트레일 공중 도시

2024-06-26

[신 영웅전] 키케로의 삶과 죽음

재능만 따진다면 고대 로마사에서 가장 출중한 인물은 키케로(BC 106~BC 43)였다. 수재로 만권 서적을 읽었다. 수재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한 학부모들이 학교에 찾아가 그를 지켜봤다. 키케로는 역사학자가 되어 『로마사』를 집대성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수사학에 빠진 그는 자기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겨 그리스에 유학한 뒤 변호사가 됐다. 로마 시민들의 이름과 규모가 큰 토지의 시세와 물주를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그는 변호사가 되든, 정치가가 되든 부동산 큰 손이 되는 것이 제일이라 확신했다.   송사는 되도록 위험하고 큰 사건을 맡았다. 피고를 변론하다가 원고가 변호비를 더 주면 거침없이 갈아탔다. 많은 돈을 벌자 집정관에 거뜬히 당선돼 ‘로마의 국부(Pater Patriae)’라는 칭호를 들었다. 위증과 매수에 거리낌이 없었다. 선거에서는 정의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돈다발을 흔들며 더럽게 대드는 쪽이 이긴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키케로가 정적을 공격하는 연설에는 독이 묻어 있었다. 정적을 공격하는 연설문의 몇 가지 매뉴얼을 만들어 이름만 바꿔 넣었다. 변호사인 그가 살린 사람보다 그의 독설에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 “감형해 주면 고맙게 여기기보다 원한만 더 깊어진다.” 주변에서 어제와 오늘의 말이 왜 다르냐고 물으면 “내 화술은 로마 시민을 설득할 능력이 있다”고 장담했다. 그의 아내 테렌티아가 더 설쳤다.   그러나 키케로는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를 변론한 것이 실수였다. 그가 살려준 노예의 밀고로 은신처가 드러나 안토니우스가 보낸 백인대장의 도끼에 목과 손이 함께 잘렸다. ‘부동산업자는 원수진 사람의 손에 죽지 않고 자신의 손에 죽는다’(크라수스). 정권에 붙은 그의 아내는 밀고한 노예에게 “자기 살을 베어먹는 것으로 연명하라”는 형벌을 내렸다. 2000여 년 전 남의 나라 이야기인데 낯설지 않다.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신 영웅전 키케로 죽음 고대 로마사 로마 시민들 밀고로 은신처

2024-04-14

[중앙시론] “잔소리와 충고가 어떻게 다르지요?”

‘타이르는 말을 기꺼이 듣는 사람은 지식을 사랑하는 자이나, 책망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이다.’ 고대 지혜문학 중 하나인 ‘솔로몬의 잠언’ 중 한 구절(12:1)이다. 영문을 찾아보니 타이르는 말(라틴어 disciplina)은 규율(discipline)이나 훈육(instruction)으로, 책망(라틴어 Increpatio)은 질책(reproof) 또는 교정(correction)으로 씌어 있다. 우리말과 영문 번역본을 여럿 비교한 끝에 ‘타이르는 말을 귀담아듣고 그것이 옳다면 싫더라도 따르라’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한고조(漢高祖) 유방에게 장량이 공자의 말씀을 빌려 이렇게 말했던 것처럼.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고(忠言逆耳利於行), 독한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습니다(毒藥苦口利於病).”     꽤 오래전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길 가던 여고생에게 던진 질문과 대답. “잔소리와 충고가 어떻게 다르지요?” “잔소리는 듣기 싫은 말이고, 충고는 기분 나쁜 말이에요.” 몇 해 전 같은 질문에 두 초등학생은 이렇게 답했다.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빠요.” 뒤이어 이런 자막이 등장했다. ‘노터치, 난 나야, 넌 너고….’   으레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다 너를 위해 하는 말이니까’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만 보아도 듣는 이 입장에서 타이름은 잔소리이고 충고는 참견이고 조언은 오지랖이다. 좋은 얘기도, 재미있는 얘기도, 무엇보다도 별 도움 되는 얘기도 아니면서 내 의지에 반하는 그 무엇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듣고 기분 좋을 리 없다. 가치관을 달리하는 사람의 시선은 불편하고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조언은 거북하고 우월한 지위나 우월감에 근거한 충고는 자존감에 생채기를 낸다. 무엇보다도, 결정에 대한 궁극적 책임의 주체는 ‘나’이니 제발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게 듣는 이의 솔직한 심정이다.   잔소리와 충고를 기분 나쁘다고 했던 그 초등학생들이 사춘기 소녀가 되어 다시 등장했다. “젊은 세대와 잘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 질문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당찬 대답이 돌아온다. “그냥 세대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요?” 덧붙여 “어른이 되면 꼰대가 된다”라며 일침을 가한다. 그야말로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 모든 간섭을 거부한다는 선전포고다.   경험이 곧 삶의 지혜였던 시절, 세태의 변화가 한가한 소걸음처럼 느릿느릿하던 시절, 어른의 말씀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고 마을이나 집안의 뜻을 한데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하던 시절과 달리, 오늘의 어른은 온갖 자동화기기 앞에서 절절매고 말 한마디 하기에 앞서 그것이 ‘라떼’(나 때)나 ‘꼰대’ 소리 들을 이야기는 아닌지 눈치를 살핀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이 경험과 연륜에 의한 지식과 생각을 경직된 가치관과 아집으로 격하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니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린다.   ‘아! 세월이여, 아! 세태여’(O, tempora! O, mores!)라는 키케로(BC 106~BC 43)의 탄식은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늘 있었던 말이지만, 이 세상은 늘 더 나은 곳으로 변해 왔으니 그 말은 언제나 구세대의 푸념이었을 뿐이라며 외면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어른으로서, 아니 이 사회 구성원으로 해야 할 도리가 아니다. 보기에 불편한 것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고, 염려하는 것은 세상사의 흐름을 미처 좇지 못하기 때문이고, 언짢은 것은 내 뜻과 저들의 뜻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들과 함께해야 마땅하다.   성공한 30대 여성 사업가 줄스와 퇴직 후 회사를 다시 찾은 70대 시니어 인턴 벤의 이야기 ‘인턴’(2015). 모든 사람이 무시하고 아무런 일도 주지 않으니 벤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 나선다. 친근함과 배려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얻고 경험과 연륜으로 그들의 온갖 고민과 어려움을 해결하며 어느새 그들에게 꼭 있어야 할 사람으로 자리매김한다.   『오베라는 남자』(프레드릭 배크만)를 원작으로 한 영화 ‘오토라는 남자’(2022)의 오토는 퇴직 후 아내를 따라 세상을 뜨려 하지만, 본의 아니게 이웃을 돕느라 번번이 기회(?)를 놓친다. 운전이 서툰 이를 대신해 주차하느라고, 이웃의 난방시설을 수리하느라고, 이웃의 아이를 대신 보고 얼어 죽을 위험에 처한 길고양이를 돌보느라고,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지려다 말고 철로에 추락한 사람을 구하느라고…. 이렇게 급한 일(?)부터 처리하느라 죽음을 하루하루 미루다가 어느새 그는 가장 소중한 이웃이 되어버렸다. “이게 사는 거지….”라는 그의 독백이 귓가에 맴돈다. 그리고 “심장이 너무 크다”라는 의사의 말이 그의 사인(死因)이 아니라 그의 따뜻하고 어른스러운 행실에 대한 은유로 들린다. 전상직 / 서울대 음대 교수중앙시론 잔소리 충고 고대 지혜문학 시니어 인턴 시절 어른

2023-07-09

[아메리카 편지] 인류세

21세기 들어서 처음으로 사용된 인류세(Anthropocene·人類世)라는 용어는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지구 환경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친 지질시대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인류의 환경은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가 돼 왔다. 고대 그리스의 예를 들면, 식민지 개척을 위한 군함 및 배 건조에 들어가는 목재만 해도 엄청났다. 100년마다 자그마치 5000만 헥타르(현 그리스 땅의 3배 면적)의 산림이 필요했다. 도시의 오염 문제도 심상치 않았다.   환경생태학(Ecology)이라는 용어 자체가 고대 그리스에 어원을 두고 있다. 오이코스(가정 또는 집)와 로고스(배움)가 결합한 용어로, 인구 집단과 그 환경에 관한 연구라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도 그 핵심 요소가 바로 생태학적인 환경 문제다. 플라톤이 『국가(Politeia)』에서 논하는 ‘건강한 도시’와 ‘열이 난 도시’, 이 두 개의 가상 도시국가의 차이점이 바로 지속가능성이다. 열이 난 도시는 사치에 따른 자원 고갈이 심각하고, 사치를 충족시키기 위한 전쟁이 빈번하다. 반면에 건강한 도시는 모든 일에 중용과 적도(適度)를 따르며, 알맞은 인구를 유지하고 협조하는 사회다.   고대 그리스인에게 자연은 신들의 영역이기에 경외심과 보호의 대상이었다. 환경정책이 철저했기에 그들은 서양 최초의 환경보호주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리브 나무는 가구당 1년에 두 그루 이상 베지 못하게 했고, 늑대 사냥도 새끼는 죽이지 못하게 했다. 낙농장, 무두질 공장과 금속제련소 등 오염 가능성이 큰 시설들은 바람의 방향과 거리 등을 고려해 세웠다.   핵폐기물 오염수 처리 문제와 관련해 인류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오늘날의 현실은 인류세의 가장 심각한 부작용이라 말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용의 덕목을 중시한 고대인에게서 그 근원적인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인류세 고대 그리스인 가상 도시국가 핵폐기물 오염수

2023-06-30

[아메리카 편지] 아름다움이 ‘계산’ 될까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이 만든 조각상이 스웨덴에서 전시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미켈란젤로·로댕·케테 콜비츠·다카무라 코타로·오거스타 세비지. 이 다섯 명의 유명한 조각가들의 스타일을 AI에게 학습시켜 그중 가장 바람직한 특징을 복합해 만들어낸 작품이라 한다. 사람 모양의 중성적인 모습을 한 이 조각상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조각했다는 것 외에는 별로 특별한 것이 없어 심심하기 그지없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 인류의 미적 감각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서양 예술사의 근본을 이루는 미의 사상은 고대 그리스에서 비롯된다. 기원전 5세기 중반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는 그의 대표작 ‘도리포로스(Doryphoros, 창을 든 자)’로 그리스 미의 철학을 집대성했다. 그리고 이 동상을 사례로 들어 『카논(Canon)』을 집필했다. 가장 이상적인 남성의 신체 비율을 모든 인체 부위별로 상세하게 적어 놓은 설명서다. 현대 용어로 ‘카논’이라는 말이 ‘규범’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도 바로 폴리클레이토스가 쓴 이 책에서 비롯됐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남성상, 그 멋진 ‘콘트라포스토(한쪽 다리에 체중을 싣고 상체를 살짝 비튼 자세)’로 삐딱하게 서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도 실은 폴리클레이토스의 카논을 따라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렇듯 서양의 미 개념은 극히 수학적이다. 로마 시대의 유명한 의학자이자 철학자인 갈레노스가 설명하기를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는 항상 각 대상의 수학적 평균을 내어 만들어진다고 한다. 플라톤 또한 이데아론에서 아름다운 수학적 비율을 찬양하고 그것을 도덕성과 관련지어 윤리학을 만들었다. 이러한 그리스의 미학적인 바탕이 바로 최근 AI 아트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운생동(氣韻生動)을 높이 사는 동양의 심미적 감각에는 결코 위대한 진로가 아닐 것이다.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아름다움 계산 중반 조각가 수학적 비율 고대 그리스

2023-06-09

[아메리카 편지] 아름다움이 ‘계산’ 될까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이 만든 조각상이 스웨덴에서 전시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미켈란젤로·로댕·케테 콜비츠·다카무라 코타로·오거스타 세비지. 이 다섯 명의 유명한 조각가들의 스타일을 AI에게 학습시켜 그중 가장 바람직한 특징을 복합해 만들어낸 작품이라 한다. 사람 모양의 중성적인 모습을 한 이 조각상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조각했다는 것 외에는 별로 특별한 것이 없어 심심하기 그지없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 인류의 미적 감각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서양 예술사의 근본을 이루는 미의 사상은 고대 그리스에서 비롯된다. 기원전 5세기 중반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는 그의 대표작 ‘도리포로스(Doryphoros, 창을 든 자)’로 그리스 미의 철학을 집대성했다. 그리고 이 동상을 사례로 들어 『카논(Canon)』을 집필했다. 가장 이상적인 남성의 신체 비율을 모든 인체 부위별로 상세하게 적어 놓은 설명서다. 현대 용어로 ‘카논’이라는 말이 ‘규범’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도 바로 폴리클레이토스가 쓴 이 책에서 비롯됐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남성상, 그 멋진 ‘콘트라포스토(한쪽 다리에 체중을 싣고 상체를 살짝 비튼 자세)’로 삐딱하게 서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도 실은 폴리클레이토스의 카논을 따라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렇듯 서양의 미 개념은 극히 수학적이다. 로마 시대의 유명한 의학자이자 철학자인 갈레노스가 설명하기를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는 항상 각 대상의 수학적 평균을 내어 만들어진다고 한다. 플라톤 또한 이데아론에서 아름다운 수학적 비율을 찬양하고 그것을 도덕성과 관련지어 윤리학을 만들었다. 이러한 그리스의 미학적인 바탕이 바로 최근 AI 아트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운생동(氣韻生動)을 높이 사는 동양의 심미적 감각에는 결코 위대한 진로가 아닐 것이다.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아름다움 계산 중반 조각가 수학적 비율 고대 그리스

2023-06-05

[아메리카 편지] 간다라 ‘아폴로-불상’

부처님오신날엔 북미에서도 연등회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불교 행사를 치른다. 특히 아시안이 많은 하와이주는 1963년에 4월 8일을 부처의 날(Buddha Day)로 공식 지정하였다.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대만 선불교를 따르는 불광산사(Fo Guang Shan)에서 주관하는 대규모 축제(Vesak Festival)가 열린다.   불교미술의 근원은 무엇일까. 고대 간다라에서 출토된 석가모니 탄생에 관련된 작품이 있다. 간다라의 특징적인 미술양식은 기원후 1세기부터 4세기경까지, 특히 쿠샨 왕조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간다라 불교미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형상이 이른바 ‘아폴로-불상’이다. 출렁거리는 물결 모양의 머리카락,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콧대가 우뚝하며 로마의 토가(toga) 같이 깊게 주름진 가운을 입은 모습이 꼭 그리스 미술에서 보는 아폴로 신과 모습이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인도의 원시 불교미술에서는 육화된 부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신이 인간화하는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미술이 불상 숭배의 원천이다.   특히 스투파(사리탑) 주위를 장식하는 패널 조각들이 간다라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부처의 일생을 비롯해서 전생 499개의 이야기인 자타카 설화가 새겨져 있다. 초기 불교사의 중요한 자료다. 이 중 석가 탄신에 관련된 마야 왕비의 태몽 장면이 특별히 재미있다. 6개의 엄니를 지닌 하얀 코끼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왕비의 옆구리로 들어간다. 이 작품도 로마시대 석관에 자주 등장하는 원형 문양의 초상화를 상기시킨다. 그렇다고 간다라 미술을 서구의 영향을 받았다는 관점만으로 규정할 수 없다.     “모든 아트는 도둑질이다”라고 피카소가 말했듯, 간다라의 불교미술은 동·서양 문화 교류의 복합적 산물로 이해해야 한다.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간다라 아폴로 간다라 미술사 간다라 불교미술 고대 간다라

2023-06-02

[아메리카 편지] 서양의 나쁜 엄마

북미에서 기념하는 어머니날(5월 14일)을 보내며 동양과 서양의 어머니상에 대한 차이점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오랫동안 고민해온 주제다. 어버이날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라는 노래 구절을 떠올리니 한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인정·찬양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내 몸에 배어있는 것이다. 반면 외국 생활을 하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가끔 만난다. 나로선 이질감이 느껴진다.   어머니의 사랑을 절대적으로 여기는 우리와 상반되는 서구 전통이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되는, 비참하고 앙심으로 가득 찬 어머니상이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바로 메데이아다. 남편 이아손의 배신을 참지 못해 복수의 결심을 하고, 이아손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을 살해한다. 이아손의 씨를 말린다는 이유로 자기 자식을 직접 살해한 것이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 등장하는 메데이아는 그러한 잔인한 결심에 대해 번뇌를 느끼기도 하지만 모성애는 복수심을 초월하지 못했다. 태양신 헬리오스를 할아버지로 둔 덕에 영웅의 자격 조건을 갖췄던 메데이아는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도 벌을 받기는커녕 할아버지가 보낸 금빛 마차를 타고 그 자리를 탈출해 재혼까지 한다.   황당하기는 두 자매 프로크네와 필로멜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프로크네는 남편인 테레우스가 필로멜라를 범하고 말을 못하게 혀를 잘라버리자, 필로멜라와 힘을 합쳐 자신과 테레우스의 아들인 이티스를 죽인다. 그리고 이를 요리해 테레우스에게 먹였다.   아무리 과장된 이야기라 해도 종종 이렇게 잔인한 엄마들이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를 뿌리로 둔 서양의 문화에서 모성애를 운운하는 맥락은 우리의 정서와 좀 다른 것 같다. 어머니의 사랑을 체계적으로 예찬하는 동양의 문화적인 슬기가 더더욱 마음에 다가온다.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서양 엄마 그리스 신화 고대 그리스 태양신 헬리오스

2023-05-26

[아메리카 편지] 강남 갔다 돌아온 제비

봄이 되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제비는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철새로, 한국의 기상청은 1923년부터 공식적인 봄 도래의 지표로 삼아왔다. 흥부놀부전 같은 전래동화에도 자주 등장하기에 우리 마음속에는 늘 한반도의 봄을 상징하는 새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제비는 유럽의 고대 문화에서도 한몫한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드가 기원전 700년경 쓴 시 ‘일과 날’은 제비를 봄의 화신으로 부르고 있고, 로마 시대의 농경 전문가 콜루멜라(AD 4∼70년)는 제비가 보이면 봄 파종을 준비하라고 조언한다. 제비 오는 날을 기념하는 봄 페스티벌 또한 많은 고대문명에서 행해졌고,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 유럽 각 지역에서 이어지고 있다.   기원전 6세기 말 고대 그리스 도기화도 그 사회에서 차지하는 제비의 문화적 중요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젊은 청년과 중년의 남자, 그리고 어린 소년, 이렇게 세 명이 팔라이스티라 (palaestra·레슬링 수련을 하는 연습장)에 모여있다. 날아오르는 새를 향해 손짓하며 청년이 먼저 외친다. “앗 저기, 제비다!” 그 옆에 앉아있는 남자가 고개를 확 돌리며 감탄하기를 “아, 헤라클레스여, 정말 그렇네!” 어린 소년도 손을 쭉 뻗으며 한마디 던진다. “정말 제비네요!” 마지막으로 소년과 남자 사이에 쓰인 구절이 이렇다. “이제 벌써 봄이 왔어요.” 각각 다른 세대를 상징하는 이들이 계절의 바뀜을 목격하는 깜찍한 장면이다. 이 도기는 와인을 보관하는 용기로 무덤에 매장된 부장품이다. 그래서 죽음을 초월하는 영원한 봄의 도래를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이렇게 계절의 부활을 상징하는 보편적 봄의 전령이 서울에서 15년째 공식 관측이 안 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남쪽에서 한반도로 귀향하는 때가 과거보다 근 두 달이나 늦춰졌다는 사실도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강남 제비 고대 그리스 고대 문화 상징적 의미

2023-05-05

[이 아침에] 소년 왕, 투탕카멘

학창시절 세계역사 시간에 배웠던 이집트의 어린 왕에 대한 이야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데, 딸이 이 왕과 관련된 특별전시회가 4월말까지 있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돌아보니 딸이 중학생일때 역사 발표 시간에 사용할 것이라며 투탕카멘의 화려한 마스크를 만들었던 일이 떠오른다. 진흙으로 만들어 사진과 똑같은 색을 칠한 금빛 마스크. 딸은 신주단지처럼 모시며 내가 만지지도 못하게 했었다. 그 후, 딸이 고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창고 선반에 슬그머니 옮겨 놓았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 쪽에 재주를 보였던 딸의 작품 중 하나였다.     바람도 쐴 겸 전시회가 열리는 델마 경기장으로 향했다. 조용한 주중에 시니어 활인까지 받아 입장료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영상에서 나오 소리가 웅장해 조금 시끄럽지만 약 3시간 동안 차분히 보기로 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마련한 순회 전시회다. 1922년 이집트 ‘왕가의 계곡’에서 영국의 인류학자인 하워드 카터가 발견해 세상에 알려진 무덤 속의 젊은 시신, 투탕카멘. 기원전 1300년 전에 매장 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두어 번 도굴범들이 다녀갔지만 무슨 까닭인지 땅속의 물건들은 그대로 보존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발굴 작업에 관여했던 사람이 21명이나 뚜렷한 이유 없이 숨져 지금도 파라오의 저주에 관한 추리는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당시 왕족은 근친혼이 많아 어린 왕 부모의 가족관계도 복잡한 것 같다. 전시회 배경이 온통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로 새겨진 천막 벽들이어서 이채롭다. 시작과 마지막에서 삶과 죽음을 연결하며 어린 아이들도 이집트 고대 역사를 잠시 배울 수 있고, 만화로 제작된 영상도 있어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한 시간 훌쩍 돌아보고 떠나는 관객도 있고, 우리처럼 차분이 생각하는 가족도 있었다. 딱딱한 나무의자지만 마지막 영상 속의 멋진 나룻배에 걸터앉아 영상을 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어린 왕의 쓸쓸한 죽음, 그리고 생전의 화려한 물건과 무덤들을 돌아본다.     늘 모으고 욕심을 부리며 살고 있는 허망한 내 자신과 우리의 삶은 어떤가. 날마다 무슨 생각을 하며 뭘 하고 살고 있는가. 다른 사람에게 저주를 받을 나쁜 짓이나 거짓된 생활은 하고 있지 않는가. 죽음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며 영생을 믿던 고대 이집트인들.     한국에서는 실물과 만나는 화려한 전시회가 지난해 있었고,  TV방송에서는 다큐멘터리도 방영되었다고 하니 다시 한 번 찾아 공부하고 싶어진다. 최미자 /수필가이 아침에 투탕카멘 소년 고대 이집트인들 시신 투탕카멘 이집트 고대

2023-04-23

[아메리카 편지] 고대 그리스의 두 여성상

고대 그리스의 영웅이라 하면 보통 헤라클레스나 아킬레우스 같은 남성적 인물들을 떠올지만 그리스 신화에는 수많은 여성 영웅들도 등장한다. 그중 대표 격인 헬레나와 페넬로페는 각각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여주인공으로, 상반되는 그리스의 여성상을 상징한다. 제우스신의 딸인 헬레나는 남편인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를 버리고 젊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눈이 맞아 달아난, 말 그대로 ‘나쁜 여자’의 원형이다. 헬레나를 찾아오겠다는 명분으로 일어난 사건이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리스인들은 헬레나를 진실한 영웅으로 추대하고 그의 신적인 아름다움을 숭배했다. 여성의 권리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사회에서 애정과 마음을 따라 행동하는 그의 추진력은 참으로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이타카의 여왕 페넬로페는 한마디로 그리스의 춘향이다. 남편 오디세우스가 10년간 트로이 전쟁에서 싸우고, 또 10년에 걸친 모험적인 귀향을 하는 동안의 긴 세월을 일편단심으로 기다렸다. 페넬로페도 미녀로 유명했고, 영리하다는 명성도 떨쳤다. 비판할 여지도 있다. 그 20년 동안 성년이 된 아들 텔레마코스는 왕의 자리를 이어받지 못했고, 청혼을 빌미로 궁전에 눌러앉은 108명의 구혼자가 왕실의 부를 다 써버리는 걸 방치했으니 무책임한 왕비이기도 했다.   내가 가르치는 ‘그리스의 영웅들’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헬레나와 페넬로페 중 어떤 여성상이 더 이상적인지를 묻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날이 갈수록 여학생들이 페넬로페를 더 지지하는 경향이 보인다. 1970년대 『비행공포』라는 소설로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페미니스트 작가 에리카 종이 근래에 한 불평이 생각났다. “우리 세대의 모토는 섹스와 자유였는데, 우리 딸들은 오히려 아기 낳고 가정을 꾸려 나가기를 원한다.” 그리고 나는 묻는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어느 선상에 있는지를. 김승중 / 고고학자 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그리스 여성상 고대 그리스 그리스 신화 여왕 페넬로페

2023-04-14

[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피라미드, 스핑크스 입이 '쩍~'

이집트는 이스라엘, 요르단, 튀르키예(터키) 등과 함께 대표적 기독교 성지로 손꼽힌다. 그러나 성지순례를 차치하고서라도 이집트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매력적인 여행지임이 분명하다.   '나일강의 선물'이자 인류 최초의 고대 문명을 일군 이집트의 그 찬란한 유적은 오늘날에도 현존한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통하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25만 점 이상의 유적이 보관된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 등 우리가 이집트에 기대하는 대부분의 관광 포인트들은 카이로 주변에 몰려 있다.   사막 한가운데 쿠푸(Khufu) 왕, 카프라(Khafra) 왕, 멘카우라(Menkaura) 왕 시대에 만들어진 피라미드들이 웅장한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흔히 파라오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는데, 왕의 무덤이 아닌 사후세계의 신앙과 관련된 건축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일단 피라미드 앞에 서면 누구나 상상을 뛰어넘는 크기와 위용에 압도당하고 만다.     역대 피라미드 중 최고 높이는 쿠푸왕 피라미드다. 1889년, 파리의 에펠탑이 세워지기 전까지 4000여 년간 지구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밑변 한 변의 길이가 756피트라면 상상이 되시려나? 높이는 481피트로 아파트 50층 높이다. 천문학을 이용해 피라미드 사방을 정확히 동서남북 사방위에 맞췄고, 안에는 왕이 잠든 석실과 부속실, 환기구, 도굴 방지를 위한 가짜길까지 있다. 이 정도 규모의 정밀한 건축물을 세운 것 자체로 경외의 대상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머리와 사자의 몸통을 지닌 스핑크스가 이 3개의 피라미드들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또한 나일강을 따라 고대 유적들과 강변의 자연 경관을 여유롭게 둘러보는 나일 크루즈는 이집트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여행법으로 정평이 나있다. 대개 아스완에서 출발하여 에드푸를 거쳐 룩소까지 운항한다. 특히 일몰이 시작될 즈음 갑판에서 바라보는 황톳빛 사막 너머 서서히 꺼져가는 붉은 태양은 감동 그 자체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제외한 유명 유적들은 룩소에서 만날 수 있다. 해가 뜨는 동쪽의 동안은 산 자들의 땅이라 하여 카르낙 같은 신전이 있고, 서쪽의 서안은 죽은 자들의 땅이라고 해서 왕들의 계곡 등 주로 무덤들이 위치한다. 수호신처럼 마을을 지키는 멤논 거상을 지나면 왕들의 계곡이다. 지하 무덤을 방불케 하는 깊은 골짜기에 투트모스 3세와 세티 1세, 투탕카멘을 비롯한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개인적으로는 람세스 3세의 무덤이 인상적이었는데, 수천 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보존 상태가 압권이다.   아스완은 엄청난 규모의 '아스완댐'으로 유명한 남부 지방 도시다. 과거 '누바족'이라 불리던 흑인의 지배를 받아 여기저기 아프리카의 흔적이 묻어있다. 길이 2마일에 달하는 아스완 하이댐, 1150톤의 무게를 자랑하는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인기 관광지다. 그 외에도 이집트를 대표하는 유적지 람세스 2세대 신전, 사랑과 행복의 여신 하토르와 네페르타리를 모시는 네페르타리 소신전 등 주요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박평식 / US아주투어 대표·동아대 겸임교수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피라미드 스핑크스 피라미드 사방 역대 피라미드 고대 이집트

2022-12-29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루비콘강은 건너지 마요

참을성이 없으면 결국은 일 저지른다. 조금만 견디면 해결 되는 것을 그 시간을 못 참아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넌다. 뜬금없는 일로 죽기살기로 사랑을 맹세했던 사람과 결별하고 도원결의로 우정을 다짐하던 친구와도 등을 돌린다. 손잡고 동고동락하며 함께 내일을 꿈꾸던 그 강을 혼자 건너간다. 루비콘강은 먼저 건너는 사람이 자살골을 넣는다. 루비콘강은 돌아갈 수 없는 강이다. 고대 로마제국 시대 당시 전쟁이나 훈련 등을 마친 장군이나 군사들은 로마로 돌아오는 길에 루비콘강을 건너야 했다.   루비콘강(Rubico/Rubicon)은 이탈리아 북부 아리미눔과 카이세나 사이에서 아드리아해로 흘러드는 작은 강이다. 로마제국은 부흥기에 원로원 중심의 공화제 체제로 통치했는데 로마 이외의 지역은 총독을 임명해 다스리게 했다. 원로원은 막강한 군대를 가진 총독들의 로마 침공을 염려해 법령을 만든다. 총독이 로마에 들어올 때는 로마 밖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소수의 수행원만이 동행하도록 했다. 총독과 군사를 무장해제 시키고 로마에 충성맹세 하도록 한다. 무장을 풀지 않고 루비콘강을 건널 경우 황제에 대한 반역죄로 처단했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루비콘강을 건넌다. 건너지 말아야 하고, 건너서는 안되는 생의 경계를 넘나든다. 넘지 못할 산도 목숨 걸고 정복하고, 건너지 못하는 강, 건너서는 안 되는 위험한 강을 겁도 없이 건넌다.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앞날을 장담하지 못해도 순간의 유혹을 참지 못해 나락의 길로 들어선다.   병 중에 가장 치졸한 병이 섭섭병이다. 원인 규명도 안되고 처방약도 없다. 수년동안 동고동락하며 지역사회에 봉사하던 사람과 파토가 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두달 동안 내 문자와 전화를 씹었다는 것.   처음에는 긴가 민가 했는데 미루어 짐작컨데(이건 완전 내 쪽의 주장이다!) 이젠 내 도움 내지 협력 없이 자립갱생 하겠다는 의지로 간주됐다. 용은 다른 용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동안 이해심 많고 통이 크다는 평가(소문)에 흡족했는데 속이 새끼줄처럼 꼬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만사가 낭패의 길로 들어섰다. 은근슬쩍 문제를 먼저 제기한 건 내 쪽, 무장해제 안 풀고 루비콘강에 발을 담근 셈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참담한 적이 되는 순간이다.   이유 없이 죽은 무덤 없다. 적장도 나름 할 말과 이유가 있다. 어제의 동지가 황야의 무법자로 변해 서로 총을 겨누며 루비콘강의 혈투가 시작될 조짐이다. 전쟁과 평화, 지옥과 천국은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 텃밭의 싱싱한 채소 뽑아다 주던 다정한 손 기억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강구 중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상대편의 처지나 형편에서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이다. 맹자는 이루편에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 즉 처지나 경우를 바꿔도 누구나 하는 행동은 똑같다는 뜻이다. “평생을 지니고 다닐 한 마디는 무엇입니까?”라고 자공이 묻자 공자는 “그것은 서(恕)다”라고 답한다. 서(恕)는 ‘용서하다’, ‘너그럽다’는 뜻이다. 네가 원하지 않는 바는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는 뜻이다.   인생의 갈 길은 멀다. 낡은 꼰대 의식 버리고, 입장 바꿔 문수 다른 남의 신발도 신어보고(Put yourself in someone’s shoes), 겉만 볼 것이 아니라 속사정을 배려하고 이해하면 진퇴양난의 곤혹스런 상황을 피할 수 있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루비콘강 루비콘강의 혈투 고대 로마제국 총독과 군사

2022-06-14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반지성주의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반지성주의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다비드의 그림은 드라마틱하다. 그림 속 인물들의 제스처를 보면 마치 연극의 한 장면 같다. 한손에는 독배를 들고 하늘을 향해 반대쪽 손가락을 치켜든 사람은 소크라테스다. 그가 슬픔에 잠긴 제자들에게 말한다. “검증되지 않은 삶을 사느니 차라리 나는 여기서 죽는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가 법정에 섰다. 시인 멜레토스를 포함한 아테네 시민 3명이 소크라테스를 고발했다.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은 501명. 법정 통로에는 물시계가 있었다. 재판을 저녁식사 전에 끝내야 했기에 발언 시간을 제한할 필요가 있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재판 결과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소크라테스가 처벌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느꼈다. 재판이 시작됐다. 원고를 대표해 멜레토스가 고발 이유를 밝혔다. 소크라테스의 혐의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테네의 국가적 가치를 경멸하도록 젊은이들을 선동하고 타락시켰다는 것, 다른 하나는 아테네가 인정하는 신들을 부정했다는 것이다. 멜레토스의 고발이 끝나자 소크라테스가 물었다.“누가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멜레토스는 ‘법’이라고 대답했다. 어떤 사람을 말하느냐고 다시 묻자 멜레토스는 ‘재판관’이라고 고쳐 말했다. 소크라테스가 원로원까지 들먹이며 젊은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되묻자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만 빼고 어떤 아테네 시민도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가르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배심원들은 소크라테스가 공개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발인들과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재판 시작부터 승소할 생각이 별로 없는 듯 보였다. 생사를 초월한 듯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쓸모 있는 사람이라면, 살고 죽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것이오. 오히려 자신이 옳은 일을 하는지, 잘못을 저지르는지에 대해 고민할 것이오. ‘이른바 현자(賢者)’들이 죽음에 대해 두려워할 뿐이지 ‘진짜 현자’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않소…나는 결코 선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피해가려 하지도 않을 것이오…다시는 젊은이들을 가르치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아 풀어주겠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소. ‘아테네의 시민들이여, 나는 결코 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오.”     소크라테스는 결연했다. 결과는 유죄였다. 배심원 501명 중 280명이 소크라테스의 유죄를 인정했다. 당시 아테네 법정은 형량을 정하는 논의에 피고도 참여할 수 있었다. 형량과 관련해 2차 변론이 시작됐다. 다급해진 제자들은 소크라테스를 설득했다. 소크라테스가 전쟁에 나가 용맹하게 싸운 점 등 그동안 아테네에 기여한 공로를 감안해 유배형이나 금고형을 받을 수 있도록 배심원들을 다독일 것을 스승에게 간곡히 요청했다. 눈 한번 찔끔  눈감아달라는 거였다. 유배형은 정치범이 주로 받는 형벌이었다. 잠시 유배 갔다 수년 뒤 조용해지면 돌아와 제자리를 찾는 게 보통이었기에 큰 부담은 없었다. 금고형 역시 소크라테스가 70세 고령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형식적 처벌에 그칠 공산이 컸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배심원단에게 선처를 부탁하기는커녕 배심원들이 보기에 터무니없는 요구를 서슴지 않았다. 자신이 아테네의 영웅 칭호를 받아야 하고 죽을 때까지 무상으로 식사를 제공받아야 한다는 얘기까지 꺼냈다. 배심원단은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가 법정의 권위를 일부러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의 요구 조건은 아테네 시민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였기 때문이었다. 전쟁 영웅이나 올림픽 우승자가 누리는 보상이었다.  곧이어 형량이 정해졌다. 배심원 가운데 360명이 사형 판결에 동의했다. 1차 판결 때보다 분위기가 더 나빠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그의 목숨을 재촉한 꼴이 됐다. 소크라테스는 재판이 끝나고 곧바로 감옥에 수감됐다. 사형 집행 전날 밤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리톤이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탈옥을 권유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 제안마저 거절했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를 살리려고 갖은 애를 썼으나 소용이 없었다. 대신 소크라테스는 아스클레오피스에게 닭 한 마리 빚진 것이 있는데 꼭 갚아주게”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독배를 마셨다. 소크라테스가 죽음 앞으로 걸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소크라테스는 너무 똑똑했고 사람들은 너무 어리석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어리석었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와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은 청년들 때문에 자신의 무지가 드러났을 때 자신의 지성을 더 갈고 닦을 생각을 하는 대신 소크라테스를 죽였다. 아테네의 반지성주의가 이성을 살해한 것이다. 특히 법정에서 소크라테스가 보여준 당당한 모습과 아테네 시민들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은 재판관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죽음 앞에서도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최고의 품위를 보였다. 죽음을 대하는 소크라테스의  당당한 자세는 인간 존엄의 표상이며, 인간의 지성이 다다를 수 있는 이성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비이성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소크라테스가 21세기에 살고 있었다면 다른 운명을 맞았을까.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타인의 무지를 지적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다. 그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며 인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그는 아무리 불리한 입장에 처해도 죽을지언정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고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사람을 뭐라고 부르는가. 우리 사회는 여전히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을 미워한다. 현대 사회는 소크라테스를 성인이라 칭하고 현자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실제로 소크라테스와 같은 논법을 쓰면 잘난 척 한다고 싫어한다. 불의와 사회의 부당한 압력에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사람을 부적응자라고 손가락질 한다. 반면 불의에 순종하는 모습을 ‘현실’이라는 핑계로 정당화한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이지 않는다. 따위의 케케묵은 말만 한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보여준 고대 아테네의 반지성주의와 어리석음에서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이 나아졌는가.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내세웠다. 그물코처럼 자유가 공정, 민주, 번영, 연대, 박애 등의 가치를 한 줄로 꿰고 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에 따르면, 반지성주의란 과학과 진실을 거부하는 불합리와 소수 의견을 억누르는 다수 폭력이다. 그는 “각자가 보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다”고 했다. 낡은 시대의 감옥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새 대통령의 각오가 엿보인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지성주의’란  맛깔스런 단어에 희망이 묻어난다. 다수라는 것만으로 민주주의일 수는 없다. 반지성주의는 곧 민주주의의 실패다. 자유를 지키려면 반지성주의의 광기를 타파해야 한다.  김지민 기자소크라테스 반지성주 대신 소크라테스 아테네 시민들 고대 아테네

202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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