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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거목’ 조순 별세

한국 경제학의 거목인 조순(사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23일 별세했다. 94세.   의료계에 따르면 조 전 부총리는 서울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치료를 받아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 오전이고 장지는 강릉 선영이다.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6·25 당시 육군 통역 장교와 육군사관학교 교관 등으로 군에 복무하다가 종전 후 도미, 버클리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68년 귀국해 서울대 교수로 강단에 섰다.   그러다 육사 교관 시절 인연이 있는 노태우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1988년 경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은 데 이어 1992년에는 한국은행 총재에 임명되면서 본격적으로 경제 관료의 길을 걷게 된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한 고인은 1997년 민주당의 총재와 대선주자, 한나라당 총재와 명예총재 등을 거치며 화려한 정계 생활을 보냈다.   그러다 지난 2000년 당시 이끌던 민주국민당 당수에서 평당원으로 돌아가면서 사실상 정치 일선에서 퇴장했고, 이후 서울대·명지대 명예교수와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등을 맡으며 원로 노릇을 해왔다. 경제학 거목 경제학 거목 조순 별세 한국 경제학

2022-06-22

[문화계 거목 인터뷰] 피아니스트 서혜경 "긍정의 힘으로 '유방암 말기' 죽음의 사선 넘었죠"

힘겨운 삶을 다스리고 일궈 나가는 ‘아름다운 승리자’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삶의 롤 모델로 그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유방암 말기의 위기를 극복하고, ‘피아노를 포기하라’고 모든 의사들이 손을 내저으며 말리는 극한 상황을 스스로 깨버리고 다시 무대에 우뚝 선 용감하고 아름다운 여인. 그가 지난 14일 월트디즈니 콘서트 홀에서 LA심포니와의 연주회를 통해 그 긍정의 파워를 우리 앞에서 당당하게 보여줬다. 한때 화려한 의상과 정열적 연주로 화제를 몰고 다녔던 피아니스트 서혜경, 그가 생명보다 귀하게 여겼던 예술의 힘으로 삶의 위기를 딛고 일어선 아름다운 용기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LA 심포니와 가진 연주회는 성공적이었어요. 청중들 앞에서 어떤 감흥이 있었습니까? ▶그동안 LA에서 여러번 공연해지만 이번에는 정말 내가 한인들 앞에서 연주하고 있구나 내가 살아나서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한인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피부에 와 닿아 가슴을 울리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어려움을 겪은 후 제 자신도 바뀌어서라도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청중들이 열광적 박수를 보내 주시면 내가 잘했구나 하는 자신감과 뿌듯함이었지만 요즘은 제 연주를 들어주시는 청중들에 대한 감사가 앞서거든요. 특히 멀리 미국에서 한인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으니 감회가 더욱 깊었어요. - 모두들 서혜경씨의 그 놀라운 힘이 어디에서 나는지 궁금해 합니다. ▶원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어려움은 피하려하지 않고 직대면해서 헤쳐나가는 성격이지요. 5살때 피아노를 시작해 프로페셔널로 무대에 서기 까지 죽자사자 피아노만 생각한 억지스러움도 있고요. - 바로 그 성격이 유방암을 극복한 주요 포인트군요. ▶ 제가 유방암 선고를 받은 것은 2006년 10월 이었어요. 그리고 2007년 4월에 수술을 했으니 벌써 3년전의 일이군요. 의사로부터 유방암 3기라는 진단을 받고도 사실 처음에는 믿지 않았어요. 계획돼 있던 연주회나 다 끝내고 치료 하겠다고 했더니 의사들이 웃더군요.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아 모두 7명의 의사에게 진단을 받았는데 5명의 의사가 앞으로 피아노는 포기하라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고 암담해서 울기도 하고 하나님에게 소리치며 항의도 했지요. 그러나 결국 피아니스트는 포기 못하겠다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 오기가 저의 긍정적 힘과 합해져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 걸까요? - 다행히 좋은 의사를 만나셨다지요? ▶노동영 박사님이시지요. 오늘날 제가 이렇게 피아니스트로 재기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은인같으신 분이세요. 특히 제 음악을 좋아하셔서 수술 하실 때도 저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시면서 집도하셨던 분이세요. 모두들 안된다고 했는데 이분은 저를 보자마자 '피아노 칠 수 있지요'하면서 웃으시더라고요. 신경과 근육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초정밀 수술을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결국 해 냈잖아요. - 긍정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줍니다. ▶맞습니다. 노 박사님도 저를 처음 대하고 사실 고민이 많이 되셨을 거예요. 하지만 일단 환자에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아셨던 것이지요.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치료도 만만치 않으셨지요. ▶노 박사님의 말처럼 수술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 저는 우선 키모(항암치료)를 먼저 받아 암세포를 최소화 시키는 쪽을 택했어요. 들어서들 아시겠지만 항암 치료는 세번만 받으면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지요. 저는 모두 8번의 항암 치료를 받고 오른쪽 유방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어요. 워낙 증상이 심해 겨드랑이 까지 깊이 드러냈습니다. 방사선 치료는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대치인 33번을 받았어요. -수술하신 후에도 특유의 긍정과 용기의 힘을 발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대부분 암환자들이 수술하고 일주일은 병원에 머문다는데 저는 사흘 만에 퇴원했어요. 누워서 기다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수술이 제대로 됐는지 피아노를 한번 쳐보고 싶어요. 했더니 선생님도 웃으면서 퇴원하게 해 주시더군요. '반드시 피아노를 쳐야 한다'라고 스스로 주문을 외우면서 나를 일으키기 위해서 이를 악물면서 힘을 냈습니다. - 원래 건강 체질이셨지요? ▶남들에 비해 건강은 자신있다 생각했습니다. 암이 발병하기 전에는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길게 기르고 다녔어요. 삼손처럼 제 힘은 머리칼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었거든요. 아무리 항암 치료를 받아도 저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서혜경도 별 수 없더라구요. 모든 머리칼이 빠지는데 쇼크였어요. -그래도 요즘 연주하시는 것 보고 있으면 언제 암을 앓으신 분인가 의심이 됩니다. ▶겉으로 멀쩡한 것 같지만 아직도 내면에서는 엄청난 싸움을 합니다. 수술 후 33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고 나니 우울증이 아주 심하게 왔어요. 수시로 죽을 것 같은 암담함에 사로잡히는데 죽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연주회 날자를 잡았습니다. 3개월 후에 서울 에술의 전당에 예약을 해 놓고 무조건 연습으로 들어갔습니다. 전화도 받지 않고 피아노 만 쳤습니다. 한번 쳐지기 시작하면 일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늘어지려고 하면 스스로 매를 들어 저를 부추겨 세우지요. 암의 재발도 늘 불안 요소이지만 미래에 일어날 일은 생각 안하려 노력합니다. -복귀 연주회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동시에 연주하신 것도 뉴스였지요? ▶사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은 한곡만 하기에도 힘겨운 곡이거든요. 그런데 이후 좀 더 욕심이 나더군요. 그래서 얼마전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그 심포니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5곡을 한무대에서 연주한 음반을 녹음했습니다. 곧 나올 예정이니 많이들 사랑해 주셨으면 해요. - 앙드레 김이 돌아가시기전 인터뷰 하셨지요? 유작이 된 셈이군요.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너무 갑가지 돌아가셔서 놀랐습니다. 지난 5월 중앙일보에서 새로 제작하는 사람 섹션 '제이'(j)에 '기자 앙드레 김의 특별한 만남'이라는 특집에서 저와 이야기를 나누셨지요. 아주 오래 전부터 저희 부모님(아버지는 성원제강의 서원석 회장)과도 아시는 사이였고 오래전 제 드레스도 디자인 해 주셨는데요. 그 분야에서는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니크 하시고 훌륭한 분이셨는데. 저의 재기도 기뻐하시면서 좋은 자서전 쓰라는 격려도 해주셨지요. 안타깝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음악 많이 들려주시기를 기대합니다. ■피아니스트 서혜경은 1982년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하고 1986년 줄리아드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서혜경은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등 고전과 낭만을 아우르는 피아노 명작의 빼어난 해석가로 이름나 있는 국제적 명성의 피아니스트. 1980년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그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런던 필, 로열 필하모닉, 동격 국립 교향악단, 상하이 필하모닉 등 유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으며 카네기 홀에서 라자르 벨만, 벤 클라이번 등과 함께 스타인웨이 피아노 135주년 기념연주회를 가진 바 있다. 대한민국 문화훈장, 윌리암 퍼첵상, 카네기 홀 올해의 3개 피아니스트 선정을 비롯 화려한 수상 경력이 있다. 경희대학 음악대학 기악과 교수로 재직 중인 서혜경씨는 2006년 유방암 진단후 수술, 성공적으로 재기했으며 현재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이나 문화 전문기자

2010-08-26

[문화계 거장 인터뷰] LA 찾은 소설가 이문열씨

'리투아니아 여인 신문 연재중…다국적 여성 자아·정체성 다뤄 좋아하는 것만으로 한류 해석…잘못 전해지는 부분 경계해야 한국 작가 적극 활동 글로벌화…때론 세계 의식해 역사 왜곡도 100만부 이상 팔린 소설만 5권…독자들에게 과분한 사랑 받아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이번달 초 하루를 함께 지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것도 대통령이 직접 그를 여름 휴가지로 초청했고 하루밤을 같이 보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데 정작 본인은 ‘별 말 안했다’고 답하고 있어 사람들은 더욱 궁금해 한다. 대통령이 정부요직 교체 등 힘겨운 정국 가운데서, 65주년을 맞이하는 8.15 경축 행사를 앞두고 독대했다는 그가 LA에 와 지난주 강연회를 가졌다. 3일동안 열린 강연회에는 예상대로 연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역시 이문열의 파워는 대단했다. 한국 문단의 거두 이문열씨의 문학과 자아 성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신작 집필로 바쁘시다지요. - 7월초부터 한국 중앙일보 토요일(사람섹션 'j')에 '리투아니아 여인'을 쓰고 있습니다. 안중근 열사를 다룬 작품 '불멸'을 출간한 후 처음 쓰는 작품인데 역시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무력감에서 벗어나 활력이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또 어디에 매여 있어 답답한 느낌도 지울 수 없지요. LA 강연을 위해 한 두주 연재를 쉰다 했습니다. 이번 강연회가 잠시 머리를 식히는 계가가 됐군요. ▶어떤 내용입니까. -다국적 여성을 주인공으로 21세기의 정체성을 다룬 소설입니다. 리투아니아(발트해 연안의 소국)출신으로 미국에서 자란 어머니와 한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여성이 주인공인데 1990년대 중반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나게 되면서 이 여성을 모델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게 작품 탄생의 모태지요. 주인공의 할머니는 1940년 리투아니아가 소련에 병합될 때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을 했고 그곳에서 이민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대학에 들어가 민속 음악을 공부하던중 한인 남성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자아와 핏줄 그리고 전통과 문화 삶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집필을 하시기 전 취재를 철저하게 하시는 것으로 유명한데 혹시 리투아니아에도 가보셨는지요? -자료 준비는 철저히 합니다. 물론 현장에도 갑니다. 보통 장편을 쓰기전 자료 수집과 조사만 2-3년 정도 합니다. 조사만 철저히 해 놓으면 장편 한권 쓰는데는 1년이 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리투아니아에는 마음만 앞섰고 가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상당히 재미있을 듯 합니다. 이선생님의 사랑 이야기는 깊이가 있어요. - 일부에서는 이 소설이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이야기들 하는데 사랑을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어갈 요소이고 중심은 자아와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재는 우리가 종래 인식하고 있었던 '정체성'이라는 관념이 변화돼 있습니다. 현재의 정체성은 피와 땅을 통해서 구현되지 않고 있어요. 사랑도 그렇고요. 아직 저 자신도 이런 것이 21세기의 정체성이다 하고 명확하게 규명지을 수 없어 그저 일종의 혼란스러움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지만 하여간 소설 속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규명하고 자아를 형성해 가는지 써 내려갈 겁니다. 지켜봐 주십시요. ▶단일민족을 자랑하던 한국도 혼혈이 흔하잖습니까. -대단합니다. 한국에도 어떤 지역의 경우 어린아이들 중 7명중 한명이 혼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타민족의 유입이 많아졌지요. 이런 다국적 시대에서 '나를 어떻게 지켜내는가'라는 주제는 중요합니다. ▶UC 버클리와 하버드 대학에서 머물며 연구하셨는데 당시 한인 학생들의 정체성을 살피실 기회가 있으셨는지요. - 버클리에서도 하버드에서도 체류 작가로 있었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 한인 학생들과 그들의 생각을 나눌 정도로 함께 하는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나마 만남의 시간이 생기면 이들의 조국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학생들은 문학 이야기만 물으려고 해 살필 겨를이 없었습니다. 아쉬워요. ▶4년전 버클리에 계실 때 LA에 잠시 내려와 한류에 대해 인터뷰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대부분 한인들이 한류에 대해 개념조차 정확하게 인식 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하셨는데 지금은 좀 나아졌는지요? - 세계적으로 한국이 많이 알려졌다는 것 한국의 것을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한류로 풀이해서는 안됩니다. 한국의 역사와 사상 철학과 문화 그리고 전통이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의 사상 속에 깊이 자리를 잡아 이들을 움직여야 합니다. 그나마 요즘은 정통에서 벗어난 지엽적인 것들이 너무나 설쳐 오히려 한류가 오류 속에 파묻혀 있는 느낌입니다. 잘못된 것들이 한국의 것으로 잘못 전해지고 있어요. 우려해야 할 부분이지요. ▶한국인들의 반미 감정은 어떻습니까? -나아지지 않았어요. 말들을 바꿨을 뿐 미국에 대한 적대 감정은 희석되지 않은 듯 합니다. ▶한국 문학은 세계 속에 여전합니까. - 많은 작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또 번역도 많이 돼 글러벌라이즈화 되고 있다는 느낌은 있습니다. 그러나 간혹 작가들이 지나치게 세계를 의식해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아요. 글을 쓴다는 사람들이 사실을 잘 모르고 작품을 쓴다거나 틀린 것을 맞다고 쓰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특히 역사 왜곡은 안됩니다. 작가들은 이름이 알려지는 문제보다 진실을 전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독자를 먼저 의식해야 합니다. ▶내놓는 소설마다 인기를 얻고 있는 비결이라면. - 조금 전 이야기 했듯 독자를 의식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들이 책방 가서 책 한권 살 때는 반드시 무엇인가를 얻겠다는 기대를 합니다. 재미를 얻든 지식이나 정보를 얻고 싶든.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독자들의 이 기대를 만족시켜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제 경우 글을 쓸 때 독자들의 마음을 먼저 염두에 둡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소설을 판매한 작가로 알려졌는데 어느 정도로 추산하십니까? - 100만부 이상 팔린 창작 소설만 5권입니다. 독자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기는 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실 계획인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주제에 천착하지 않습니다. 그때 그때 상황이나 처해진 형편에 따라 문득 주제가 떠오르기도 하고 또한 리투아니아처럼 어떤 특별한 사람을 만났을 때 이 사람을 모델로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요. 어떠한 주제라도 마음을 당기는 것이 있다면 써야지요. 당분간은 '리투아니아 여인'에만 신경을 쓸 계획입니다. ▶예전에 뵈었을 때보다 건강해 보이십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유이나 문화전문 기자

2010-08-19

[문화계 거목 Interview-2] PA 오케스트라 콘서트 매스터 데이빗 김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시즌 정기 무대를 펼치는 주 공연장. 배너의 주인공은 이 오케스트라의 콘서트 매스터 데이빗 김이다. 관람객들은 일단 홀에 들어서면 배너를 보면서 그를 이야기 한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끌어가는 힘’ 이라고. 미국의 주류 음악계에서 회자되는 데이빗 김의 명성은 한인 커뮤니티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크고 대단하다. 음악성뿐 아니라 악장으로서 멤버들을 포용하는 그의 인격이 훌륭해서라고 오케스트라의 뮤직 디렉터 샤를르 듀트와는 강조해 설명한다. 한창 정기 시즌 연주로 바쁘게 지내고 있는 그를 버라이존 홀 뮤지션스 라운지에서 만났다. -악장으로 지낸지 벌써 10년이 됐어요. 악장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입니까? 쉽게 말해 오케스트라의 목소리이자 반장이지요. 대외적으로는 오케스트라의 공보관이 되어야 하고 내부적으로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살펴 그들이 공연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사적 부분까지 체크해야 합니다. 이곳의 단원들은 모두 음악적으로 최고 수준의 뮤지션들이기 때문에 음악적인 부분은 특별히 체크해야 할 일은 없지만 공연과 리허설 일정을 챙기는 일에서부터 부부 관계는 원만한지 등 가족사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합니다. 음악도 가화만사성입니다. 가정이 편안해야 좋은 음악이 나오지요. 또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멤버들 사이의 의사 소통의 교량 역도 해야 합니다. 서로 무슨 불만이 있는지 저에게 털어놓으면 제가 양쪽을 오가며 원만하게 해결해야 하지요. 매년 해외 연주를 갖고 있는데 이때는 책임이 더 막중합니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음악적 성취를 많이 포기해야 될 것 같군요. 맞습니다. 제가 이곳에 악장으로 오기전 아주 심각하게 고민을 했습니다. 악장으로 오면 일단 독주자로의 야망은 버려야 하니까요. 3살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줄리아드에서 공부하고 바이올리니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솔직히 멋있는 독주자가 되겠다는 꿈을 한번도 저버린 적이 없거든요. 그러던 어느날 탐 크루즈가 나온 스포츠 에이전트의 삶을 그린 '제리 매콰이어 '라는 영화를 보면서 큰 깨달음이 왔습니다. '성취의 참된 의미는 남들과의 훌륭한 조화 속에서 얻어진다' 라는 깨달음이었어요. 그날 이후 일단 독주자로의 길을 한발 늦추고 악장이 되기로 결심 했습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명성이 악장 결정에 도움이 됐을까요? 아니라고는 말 할 수 없겠지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역사에 있어서나 음악적 퀄리티에 있어 보스턴 심포니와 함께 미국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이름이 나 있으니까요.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미국의 '빅 파이브'(Big Five) 안에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배제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결정이 얼마나 잘 한 것인지 감사하고 있습니다. 멤버들 모두가 세계 최고 수준의 기관에서 공부했고 또 독주자로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뮤지션들입니다. - 특별히 후진 양성에 힘을 쓰고 있으시지요? 어린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게 그렇게 기쁘고 재미있을 수가 없어요. 1989년에 아내와 로드 아일랜드 대학에서 킹스턴 체임버 뮤직 페스티벌을 창설한 것도 그래서 입니다. 음악은 어린 시절에 재능을 발견하고 그 재능을 성실하게 키워나가야 아름다운 꽃으로 만개시킬 수 있는 예술입니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나이들어 발견해 키우는 것은 힘이 들지요. 음악적 재능이 있는 어린이들에게서는 그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는 것 또 재능이 없는 어린이들에게는 음악을 마음에 심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음악은 마음의 양식이 되거든요. -아직도 뮤직 페스티벌을 계속 하고 있나요? 보람은 있지만 악장 노릇하면서 페스티벌에 힘을 쏟기가 너무 힘이 들어 친구에게 맡기고 요즘은 그저 컨설팅을 하면서 강사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음악도에게 충고하자면 어떤 점을 강조하시고 싶으십니까? 세가지를 말하고 싶군요. 우선 준비된 음악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준비가 되어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도 훌륭한 음악을 선보일 수 있겠지요. 준비란 물론 충분한 연습일테고 또 그외에 삶의 기본적 측면에서 훈련이라는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합니다. 음악인이 되기 전에 훌륭한 인격체가 되어야 하니까요. 두번째는 음악 이외에 삶을 폭넓게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여행도 많이 하고 사람도 많이 사귀고 또 이런 저런 스포츠도 하면서 전인격체로 커야 합니다. 이렇게 되도록 부모님들이 많이 신경쓰셔야 하겠지요. 어떤 부모님은 악기 연습해야 한다며 친구들과 여행도 못가게 하고 놀지도 못하게 하신다고 하더군요. 시야가 넓지 않은 사람은 음악에 천재적 재능을 타고 났어도 좋은 음악인은 되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음악에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이 의미 부여에서는 영적인 면의 충족과 만족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 어떤 바이올리니스트를 가장 좋아하십니까? 사이먼 래틀 등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를 꼽자면 열 손가락이 모자라지요. 하지만 그중 단 한명을 꼽으라면 그리스 출신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를 가장 사랑합니다. 그의 음악은 신비함이 있어요. 음악인에게 신비함은 생명입니다. 같은 음악이라도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것이 중요해요. 신비함이 있어야 자신만의 색을 낼 수 있어요. -좋은 아빠 좋은 남편으로도 소문이 자자합니다. 음악인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일까요. 다행인데요. 저는 늘 부족하게 느끼고 있거든요. 특히 오케스트라 정기 시즌에는 늘 저녁 연주가 있으니까 가족과 저녁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해 늘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독주자로 연주활동을 하게 되면 출타하는 시간이 많지만 그나마 오후 늦게 라도 매일 집에 돌아갈 수 있어 다행이지요. 아내는 대학때 선수 활동을 한 아마추어 골프 선수였지요. 지금은 두 딸 키우고 음악인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자신의 커리어는 접어두고 있어요. 음악인에게 가족은 영감의 원천이고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도 그들이 없다면 음악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군요. ■데이빗 김은= 1963년 일리노이에서 태어나 3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했으며 곧 재능이 발견된 8세부터 줄리아드의 유명 바이올린 교수 도로시 딜레이를 사사하기 시작했다. 줄리아드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86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유일한 미국인으로 입상했으며 1990년 인디아나폴리스 바이올린 경연대회에서 입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9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입단, 악장으로 활동중이며 세계 여러나라에서 독주자로도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정명훈씨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협연했으며 8월말 금호아트홀 체임버뮤직 오케스트라, 부산 필과의 협연이 계획돼 있다. 유이나 문화전문기자 yena@koreadaily.com

2009-08-13

[문화계 거목 Interview-1] 설치미술가 서도호 '생각하게 하는 것···그것이 현대미술'

거목은 이렇듯 끊임없이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곁의 어린 나무들을 보호하고 덮어주며 그들의 올곧은 성장을 돕는다. 훌륭한 인물이 거목으로 불리우는 이유다. 미국 문화계에서 거목으로 불리우며 한인에게 뿌듯함을 주는 아티스트들을 만나 그들의 예술관을 들어본다. 이들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우리가 자랑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LA카운티미술관(LACMA:LA County Museum of Art)에서 개막된 한국현대화가전시회가 프리뷰를 마친 다음날. '농부의 딸'(Farmer's Daughter)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작은 호텔 커피샵에서 만난 서도호씨는 막 체크아웃을 하고 나왔다며 백팩과 아주 작아보이는 가방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미술과 작품 외에는 어떠한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그의 짐 다웠다. 시카고미술대학에서 강의가 있어 곧 떠나야 하기 때문에 LA에 머물 시간이 없다며 아쉬워하는 그와 마주 앉아 현대미술과 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대 미술이란 무엇인가? ▷정의가 된다면 그것은 이미 현대미술이 아니다. 현대미술이란 정의를 내릴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떠한 설명도 해석도 필요가 없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LACMA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현대화가 12인전(Your Bright Future: 12 Contemporary Artists from Korea)을 관람한 분들은 모두 느끼셨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이 작품들 앞에 서서 과연 화가들은 무엇을 표현했으며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하고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현대미술이다. 생각하도록 하는 것. 이를 정의내리는 것은 화가도 평론가도 아니다. 바로 작품 앞에 선 관람객들이 그 작품을 대하고 생각하게 되는 그 느낌이 바로 현대미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국제적 기준으로 한인 화가들의 위상은? ▷현대미술의 관점으로 볼 때 한국 미술의 수준은 상당히 높다. 다만 한국의 작가들이 스스로를 잘 모른다.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확신을 못하고'정말 우리가 잘하고 있는가' 반신반의 하는 듯 하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평론가들이나 뮤지엄 관계자들이 한국에 가면 한인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놀란다. 나 역시 한국에 갈 때마다 좋은 작품들을 볼 수 있어 기쁘고 뿌듯하다. -화가들 스스로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은? ▷주위 영향이 중요하다. 좋은 화랑과 큐레이터 콜렉터 관람객들이 유기적으로 반응해 화가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좋은 작품을 창작하고 있음을 확신시켜야 한다. 갤러리와 콜렉터. 관객의 유기적 관계 없이는 좋은 작가가 탄생할 수 없다. 갤러리들은 화가들이 바르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겠지만 화가들 스스로도 국제적 감각을 키우고 좋은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교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야 스스로 잘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자신을 바르게 직시하지 못하고 칭찬에 길들여지면 오만하게 되지만 올바른 자각은 발전에 도움이 된다. -이제 서도호라는 이름은 국제 미술계에 많이 알려져 있다. 어떤 이들은 제2의 백남준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아 그런가? 아직 잘 모르겠다. 그저 열심히 창작 생활하고 대학에서 강의한다. 명성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 집에 집착하는데 특별한 의미는. ▷나에게 집은 자신의 연장선이다. 말하자면 나는 집에서 자아를 느낀다. 한국에서 살던 한옥 미국에서 살던 아파트먼트등 다양한 주거 공간을 작품으로 만들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또한 집은 우리가 삶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나에게는 중요하다. -21세기는 변화의 세기라는 것이 느껴지는가.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는 것이 변화의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를 기점으로 현재 세계는 더욱 빠른 속도로 변화되고 있다. 인종과 문화라는 관점에서 변화가 수용된다면 모든 분야에서 변화는 이미 궤도에 오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술계에는 어떤 변화가 감지되는가. ▷ 미술계에도 엄청난 변화의 물결이 출렁이고 있다. 서양인들의 동양문화에 대한 관심과 매력으로 요즘은 국제 무대에서 동양문화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다. 그동안 인식되어 온 문화 우위론의 정의가 뒤바뀌고 있다는 것도 요즘 느끼고 있는 변화의 예다. -예술을 포함 한국이 국제무대에 뜨고 있다. ▷중국 덕도 있다고 본다. 중국이 국제적으로 주목받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드나들다 한국을 주시하게 됐고 중국 일본과는 확실하게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 한국에 호기심을 갖게된 것 같다. 이들은 한국의 특징에 대해 상당히 정치적이고 비평적이면서 세련됐다는 평들을 한다. - 각분야에서 한인의 재능이 인정받고 있다. 언제쯤이면 우리가 세계의 선두에 설 수 있을까. ▷박지성씨나 이영표씨가 축구 대표팀 감독이 될 때 쯤이면 우리 한인들이 각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인정받게 될 것 같다. 물론 그 전에 이루어 질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더없이 기쁠 것이다. ■서도호는…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미대 동양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에서 페인팅을 전공했으며 1997년 예일대에서 조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의 서펜타인, 헤이워드 갤러리 등 세계 여러 곳의 미술관과 유명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어오며 삶의 철학적 의미, 근원적 운명 등을 표현한 독창적이고 거대한 규모의 설치미술로 주목을 받아왔다. 뉴욕 현대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LACMA 등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유이나 문화 전문기자 yena@koreadaily.com

200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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