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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남의 말 빌린 생각

봄꽃이 만발한 센트럴파크가 그리웠다. 14년 전 베를린 마라톤을 함께 하였던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했다. 2시간 전에 나와 센트럴파크 한 바퀴를 돌았다. 레이스가 있는 날과 비슷하게 많은 사람이 뛰고 있었다. 잘 가꾸어진 파크에는 수선화, 개나리, 목련, 진달래도 피었다. 수선화는 영양이 풍부하고 햇볕을 받아 꽃송이가 뉴저지에서 본 것보다 크고 싱싱했다. 이 아름다운 곳을 스치면서 이곳에 사는 부유한 사람들은 좋겠다를 연발하면서 2시간을 달렸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을 보면서 즐거웠다. 개인 사정이 있지만 일을 계속하고 있는 친구, 은퇴하고 즐기는 친구, 암 투병으로 고생했는데 건강한 얼굴을 보여준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센트럴파크가 그립고 오늘 만발한 꽃 이야기를 하는데 시큰둥하게 여긴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자기들이 겪은 이야기보다 남들이 하는 말, 또 남들이 했던 오래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읽고 기사를 본다. 아니면 구글에서 검색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계속 느끼고 생각하고 뭔가를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지는 것은 우리의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 자신의 생각인가. 마찬가지로 그렇게 느끼는 것이 본능적인 것으로서의 감정의 내용이란 나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체득한 것인가, 아니면 남들이 그렇다고 말하거나 인터넷에서 떠도는 것인가.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대체로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것이나 표현하는 것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자기의 언어로 말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느낀 것을 그대로 느끼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을 따라 생각하며 그들이 말하는 대로 좇아 말한다. 우리의 감정이나 사고나 언어에서 나를 끌고 가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남이고 세상의 평준화된 소문들이다. 내가 매일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나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으로 채워진다면 그것은 나의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그의 감정과 사고와 언어가 남에게서 오고 남이 한 것을 앵무새처럼 똑같이 조잘거리는 데 그친다면 그의 삶은 허깨비고 거죽이며 껍데기가 아닌가.   한 사람의 삶은 그 자신의 고유한 감정과 사고와 언어로 이뤄진다. 그런데 매일 매 순간 느끼는 것이 남을 따라 한 것이고 생각하는 것이 남의 생각을 베낀 것이라면 빌려온 감정과 사고가 따른 사람의 언어로 채우고 있다면 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살아 있되 남의 삶 허울뿐인 껍데기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나만의 고민과 사연과 곡절이 휘발된 삶이 진실하긴 어렵다. 인간다운 삶은 각자가 마땅히 자기의 삶을 사는 데 있다. 그 삶은 자신의 감정과 사고와 언어를 갖는 데서 시작된다.   암 투병 하는 친구가 커피 한 모금 마시면서 우리를 울렸다. 아들이 결혼하여 같이 살다 새살림을 차렸는데 매일 밤 베개가 흥건히 젖을 만큼 울었다고 했다. 왜 자식이 가정을 가지면 기쁘고 홀가분하던데 뭐가 그리 서럽고 그립고 아쉬워서 울었을까. 그녀는 아들이 남편 겸 아들 겸 친구같이 지냈는데 그게 무너진 것 같았고 금세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아 울었다고 했다. 그래도 엄마를 생각하며 한 달에 2000달러씩 생활비를 현금으로 준다고 해서 모인 친구들이 입을 딱 벌렸다. 남의 말이 아니고 빌린 생각이 아닌 실화를 듣고 우리 모두 감동했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생각 수선화 개나리 베를린 마라톤 2000달러씩 생활비

2024-04-11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우아한 유령(Graceful Ghost)

햇살이 좋은 날 아침이다. 2층 창문 가까이 홍매화도 연분홍 꽃봉오리를 가득 맺고 있다. 쑤욱 쑥 올라오는 새싹들, 나뭇가지마다 맺은 잎눈들로 거리는 온통 봄기운이 가득하다. 이제 막 나지막한 언덕 넘어 얼굴을 내민 해는 긴 햇살을 창문 안으로 길게 뻗고 있다. 창문을 너머 상쾌한 공기. 마음 속까지 연두 봄빛이 적셔온다. 오늘 이렇게 하루가 열리고 있음을 감사한다. 이 벅찬 하루를 날마다 물들이며 맞이하고 싶다.   해가 떴으니 지는 저녁이 찾아올 것이다. 또 밤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내 남은 인생에서 오늘이라는 페이지는 소리 없이 넘겨질 것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 만나고 나누었던 대화들, 함께 걷고 바라보았던 미시간 호수의 파도의 결까지, 아직 앙상한 나뭇가지에 앉아 봄을 기다리는 새들의 노랫소리마저 어제라는 굴레 속으로 켜켜이 간직될 것이다. 따뜻한 손잡음의 기억도, 그윽하고 편안한 얼굴 표정과 발걸음의 즐거움조차 이제는 기억을 되살려 돌아보게 될 어제가 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를 가기 위해 고개를 넘어야 했다. 그 고개는 그리 높지 않아 성큼 고개의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언덕 오른편에 사람이 들어갈만한 커다란 굴이 있었다. 동네 어른들은 굴속에 귀신이 산다고 이야기했다. 그것도 육이오 때 죽은 처녀 귀신이라는 이야기가 흉흉했다. 사랑했던 사람을 찾아다니다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사람이 지나갈 때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운다고 했다. 대낮엔 괜찮지만 어둑해지는 저녁이나 밤에는 사람들이 그 길로 가지 않고 긴 거리를 돌아서 갔다. 어쩔 수 없이 어둑한 그곳을 지날 때에는 빠른 걸음으로 고개를 돌리고 지나가기도 했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바람소리 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도 절대 서거나 뒤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해 고개를 뛰어 내려가기도 했다.   이곳 시카고에서 처음 영화관에서 관람한 데미 무어와 패트릭 스웨이지 주연의 ‘Ghost’란 영화가 떠올랐다. ‘사랑과 영혼’이란 제목으로 한국에 소개된 것으로 알고 있다.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몰리를 뒤에서 안으며 샘은 사랑을 고백한다. 불행하게도 싸움에 연루된 샘은 괴한의 총에 죽음을 맞이한다. 몰리를 떠날 수 없는 샘은 Heaven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Ghost로 슬픔 속에 살아가는 몰리의 곁에 남게 된다. 주제곡인 언체인드 멜로디와 함께 펼쳐지는 가슴 아픈 사랑의 모습, 끝까지 몰리를 지켜주는 샘의 헌신적인 사랑은 전 세계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차를 타고 가다 길 건너 노란 개나리꽃 무덤이 보인다. 차를 길가에 주차하려다 뒤에 따라오는 차들 때문에 아쉽게도 사진에 담지 못했다. 우아한 개나리 풍경에 머릿속이 온통 노랗게 변해버렸다. 오른쪽 창문으로부터 밀려 나가기 시작한 풍경은 뒷창문을 마지막으로 내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소실점을 찍으며 사라진 노란 풍경은 하늘 위에 한 영혼의 기억과 얼굴을 남겨 놓았다.   클래식과 재즈를 섞은 듯한 ‘우아한 유령(Graceful Ghost)’이란 곡을 듣다가 바이올린의 피치카토 소리에 반해버렸다. 이 곡은 작곡가 윌리엄 볼컴이 댄서였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작곡한 피아노 연주곡인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의 특이한 해석으로 우아함과 톡톡 튀는 감성으로 무서운 유령이 아닌 우아한 유령의 춤과 몸짓의 유희를 상상시키고도 남는 매력적인 연주였다. 1시간 연속 듣기로 콧노래로 따라 부를 정도로 친숙해졌다. 피아노 연주로도 들어봤지만 역시 바이올린 선율로 끌어오는 감성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내 유아 시절의 유령에 대한 인식을 ‘Ghost’란 영화로 돌려놓더니 이젠 ‘Graceful Ghost’로 유령에 대한 친밀감과 기대감을 유발시키고 있다. 노란 개나리 꽃무덤이 눈길을 끈 오후 내내 어깨춤을 추며 휘파람으로 ‘우아한 유령’을 따라 부르고 있다. 하늘엔 옅은 눈발도 춤추며 흩날리고 있다. (시인, 화가)   Kevin Rho 기자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ghost 유령 개나리꽃 무덤 개나리 풍경 개나리 꽃무덤

2024-03-25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별난 공식

별난 공식   나 만의 색깔을 갖는다는 것 / 수 천, 수 만의 소문으론 설명될 수 없지 // 꽃의 색이었던가 / 잎의 색이었다가 / 하늘의 색, 바다의 색은 기억날 듯 한데 / 그걸 바라보는 사람의 색들은 / 오랜 시간을 인내한 후 가지게 된다는 / 은근히 풍기게 된다는 // 바라보는 시각을 뒤집어 보면 / 내 색이 아닌 당신 색으로 보여진다는 / 아픔이 반쪽만 보이기 시작한다는 // 시간을 먼 발치 별빛에 묶어두면 /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은 / 슬픔에도 없는 공식이 존재한다는 //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건 실례가 아니랍니다 // 색보다 향기는 오래 남아 / 그 향기는 봄마다 넓고 낮게 퍼져 가고 / 꽃은 바람에 흔들려 색은 떨어지지만 / 향기는 남겨져 색으로 그려진다는// 얼굴이 달아 올랐지 // 슬픔에도 없는 침묵 이라는 / 개나리 꽃가지 바람에 춤추는데 / 이렇게 낯선 하늘이라니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건 실례가 아니랍니다. 나의 감정을 참다 보면 마음의 병을 가지게 되니까요. 이번 주는 무척 바빴답니다. 내 일에 집중할 수 없을만큼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답니다. 돌아서면 중요하지도 않은 일들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기도 했답니다. 살다 보면 만남과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성장하고 커가는 느낌을 가지게 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차라리 만나지 말았어야 좋을법한 경우도 종종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니라 제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사람은 향기로 혹은 색깔로 남겨지는 것 같습니다. 한 순간을 만났든 오랜 세월을 살아왔든 사람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고 자기만이 풍기는 향기가 있답니다. 짧은 시간 만나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고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답니다. 내가 꼭 필요한 시간에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언제나 내 곁에서 분신처럼 날 돕는 사람도 있답니다. 내가 좋은 날엔 내 곁에 있었는데 내가 힘들고 아플 때엔 나를 떠난 사람도 있답니다.     사람의 관계란 우연히 만나 서로의 필요를 채우고 멀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의 관심에 공감하면서 깊어지는 경우도 있답니다. 서로의 관계가 인연이 되고 필연이 되면 다행이지만 서로에게 아픔이 되고 무거운 짐이 된다면 차라리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 되고 맙니다. 얼굴이 먼저 떠오르면 보고 싶은 사람이고 이름이 먼저 떠오르면 잊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어느 시인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외로움은 누군가가 채워줄 수 있지만, 그리움은 그 사람이 아니면 채울 수가 없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반가운 소식에 하루가 빛났습니다. 이렇게 만나 뵐 수 있는 거군요. 오래 전 젊은 날 캠퍼스에서 만나 끓는 피를 나누었던 한 사람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공항엔 못나가지만 그날 저녁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경주에서의 만남과 서울역에서의 고마운 모습은 나의 남은 날 내내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책 출간을 앞두고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는 한 친구는 단 열흘밖에 만나지 못한 그야말로 막 알게 된 도반이지만 깊은 속내를 뒤집어 말해도 웃으며 받아주는 오래된 연인 같답니다.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한 친구는 출판기념회 장소로 고민하는 나에게 선뜻 이곳에서 하라며 시간과 장소를 비워놓겠다는 눈물 핑 도는 말을 보내왔습니다. 한 친구는 하모니카를 불어주겠다고, 몇 몇 시인들은 축사를, 대학동기는 사회를 자청하고 나섰답니다. 누우면 가슴이 저며오는 이름들이, 얼굴들이 있습니다. 오늘 밤하늘엔 유난히 고운 별들이 빛을 발합니다. 반평생을 살아도 낯설은 시카고의 봄은 언제나 오려나요. 비 같은 눈이 주룩주룩 내리는데….(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공식 오늘 밤하늘 시인 화가 개나리 꽃가지

2023-03-27

[우리말 바루기] ‘개나리봇짐’

물건 가운데 특이하게도 ‘개나리’란 이름이 들어간 ‘개나리봇짐’이 있다. 이는 맞는 말일까? 언뜻 개나리 꽃구경을 하면서 짐을 둘러메고 가는 모습을 연상하며 이것이 맞는 말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메고 다니는 가방을 ‘개나리봇짐’이라 부르는 사람이 있다. ‘개나리봇짐’이란 상호도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개나리봇짐’이 아니라 ‘괴나리봇짐’이 맞는 말이다. ‘괴나리’ 발음이 불편하다 보니 ‘개나리’라 발음하면서 ‘개나리봇짐’이란 말이 쓰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괴나리봇짐은 걸어서 먼 길을 떠날 때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메는 짐을 가리킨다. 특히 옛날 과거를 보러 갈 때 이 괴나리봇짐을 메고 다녔다고 한다.   ‘괴나리’의 어원에 대해선 확실하게 밝혀진 바 없다. 어떤 사람은 ‘끈 늘이 봇짐’에서 ‘끈 늘이’가 ‘끈느리’가 되고, 이것이 ‘끠느리’로, ‘긔느리’로 변하면서 최종적으로 ‘괴나리’가 됨으로써 ‘괴나리봇짐’이 된 것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괴나리’의 ‘괴’ 발음이 어려워 ‘개’로 하듯이 비슷하게 잘못 발음하는 것이 적지 않다. 대체로 ‘ㅚ’나 ‘ㅟ’ 발음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대표적인 것이 ‘방귀’를 ‘방구’라 하는 것이다. ‘뼈다귀’를 ‘뼈다구’, ‘아귀’를 ‘아구’라 하는 것도 이런 유형이다. 우리말 바루기 개나리봇짐 개나리 꽃구경 옛날 과거 물건 가운데

2022-08-26

[이 아침에]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

요즘 남가주 주택가나 거리에는 보라색 자카란다꽃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늦은 봄 은은한 향기와 자태를 뽐내는 자카란다는 멀리서 보면 비밀의 성처럼 신비한 모습을 연출한다. 미국에 와서 마주한 자카란다는 생전 처음 보는 것인데다 이름도 어려워 외우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20여년을 보다 보니 이제 무심코 길을 지나다가 자카란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걸 보면 ‘아. 벌써 5월이구나’ 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봄이 끝나가나 싶어질 때쯤 주택가나 거리 골목 어귀에서 보라색 군락을 이루며 피어나는 자카란다는 왠지 우리나라의 철쭉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봄꽃은 남쪽의 매화나 샛노란 산수유부터 시작돼 북상하며 진달래 개나리가 만개하고 벚꽃이 화려한 대미를 장식하며 마무리된다. 여름이 시작되나 싶을 정도의 날씨가 되면 철쭉꽃이 뒤늦은 향연을 펼친다. 조금 높은 산의 산철쭉은 6월경 절정을 이루며 가는 봄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는다.    어렸을 때는 이른 봄 지천으로 피어 있는 진달래 꽃잎을 따먹고 놀기도 했던 터라 좀 늦은 봄에 피어나는 진달래와 비슷한 철쭉꽃을 따 먹었다가 배가 아파 고생한 적도 있다. 그래서 진달래꽃은 참꽃이라 불리지만 철쭉 꽃잎에는 독성이 있어 개꽃이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진달래나 개나리, 벚꽃같이 조금 일찍 피어나 울긋불긋한 아름다움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꽃들과 달리 뒤늦은 시기에 홀로 피어 묵묵히 빛을 발하는 철쭉은 파피꽃이나 유채꽃이 지고 나서 보라색 향연을 펼치는 자카란다와 겹친다. ‘봄꽃’의 화려한 영광은 다른 꽃들에 내어주고 사람들에게 잊혀 갈 때쯤 피어나 은은하고 지순한 아름다움을 발하는 그런 점이 서로 닮았다.    사람들의 삶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이나 조직 사회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승승장구하며 높은 자리에 올랐다가 이른 나이에 사라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빛나지도 않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오래도록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다하는 사람도 있다. 누가 더 성공한 삶을 살았는지는 가치 기준이 다르겠지만, 늦게까지 빛나지 않아도 자기 몫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들의 주위에 많은 이들이 따르는 걸 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한인 이민사회의 교회나 조직에서도 화려한 영광은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남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어느 조직이나 빠짐없이 등장하는 감투싸움이나 이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민사회의 부끄러운 모습과는 다르다. 말은 쉽지만, 사실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나의 노년의 삶을 그려본다. 화려한 영광도 없었던 젊은 시절의 삶이었지만 이제 늙어서라도 자카란다처럼 철쭉꽃처럼 은은하고 묵묵하게 빛을 발하는 그런 남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송훈 / 수필가이 아침에 진달래 개나리 진달래 꽃잎 보라색 향연

2022-05-19

[시로 읽는 삶] 봄이 좋냐?

간절하면 가 닿으리/ 너는 내 생각의 끝에 아슬아슬 서 있으니/ 열렬한 것들은 다 꽃이 되리/ 이 세상을 다 삼키고/ 이 세상 끝에 새로 핀/ 꽃 한 송이   -김용택 시인의 ‘꽃 한 송이’ 전문       한국에 있는 친구가 웃어보라며 노래 하나를 보내 왔다. 10cm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가수의 ‘봄이 좋냐?’라는 노래인데 가락이 산뜻하고 경쾌하다. 그런데 가사를 보니 크크크 웃음이 나면서도 왠지 맘이 짠하다.     “꽃이 언제 피는지 그딴 게 뭐가 중요한데/ 날씨가 언제 풀리는지 그딴 거 알면 뭐할 건데/ 추울 땐 춥다고 붙어 있고/ 더우면 덥다고 니네 진짜 이상해/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 벚꽃이 그렇게도 예쁘디 바보들아/ 결국 꽃잎은 떨어지지 니네도 떨어져라/ 몽땅 망해라”   애인 없는 청춘이 사랑에 취해 봄을 맞고 있는 친구들을 보고 공연히 심사가 뒤틀린 것 같다. 환한 봄날 혼밥을 하고 혼놀을 해야 하다 보니 팔을 끼고 벚꽃 아래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거니는 친구들이 부럽고 질투가 나기도 했나 보다.     혼밥이니 혼놀이니 하는 말들에 익숙하게 된 지도 오래다. 이건 애인 없는 젊은이만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한창 좋은 청춘의 시기에 혼자여야 한다는 건 쓸쓸한 일이다. 모두 애인이 있어 행복해 보이고 환한 꽃 무리를 보니 더 외로워져 봄에다 대고 괜한 몽니를 부리는 것 같다.     봄은 대지의 모공이 열리는 때이다. 피어나는 꽃그늘 아래 앉아 사랑의 환희를 노래하고 불어오는 미풍에 머리칼을 날리며 생명의 충만한 기운을 느끼기도 한다. 봄은 누가 뭐래도 시작의 기쁨이고 밝고 환한 계절이다.   좀체 가슴 뛰는 일이 없는 이즈음 나는 푸석하던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피어나는 꽃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전에 없이 새롭다. 수선화가 옹알이하며 피어날 때, 벚꽃이 만개한 공원, 현기증이 나도록 노래진 개나리 울타리를 지나갈 때 가슴이 후끈하다.   봄이 좋다. 그냥 좋다. 그런데 ‘봄이 좋냐?’라는 노래를 듣다 보니 이 눈부심이, 이 환함이 미워지는 청춘도 있겠구나 생각된다. 모두 들떠 봄을 찬미하고 짝을 지어 다니는데 무슨 이유에서건 혼자인 사람이라면 “아무 문제 없는데 나는 왜 안 생기는 건데/ 봄이 좋냐 이 멍청이들아”라며 푸념을 하게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푸념이라곤 해도 이들에겐 예전 사람들처럼 한이 없다. 아픔도 재치 있게 받아넘기고 상처도 유머로 싸맨다. 이별의 고통도 하나의 다른 장르처럼 산뜻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슬픔도 로맨틱한 리듬이 실리면 가벼워진다. 질투심도 멋진 가락에 맞춰 노래하면 말의 격함이 사라지고 공감도가 높은 소통의 언어가 될 수 있다.   “망해라” 라는 구절을 “잘돼라”는 응원처럼 듣고 싶다. 망하라는 말의 독소를 거둬내면 외로움이 투명하게 보인다. 외로움은 다소 위험한 구석이 있다. 방치하면 외로움의 방에 갇혀 점점 더 고립된다.    봄꽃이 한창이다. 대지가 심장 뛰는 소리로 가득하다. 혼자이거나 둘이거나 모두 행복할 이유가 있다. 사랑을 얻었거나 잃었거나 상관없이 눈부실 권리가 있다. 봄이잖은가.     이 봄 혼자인 당신도 애인이 생겼으면 좋겠다. 간절함이 가 닿았으면 좋겠다. 열렬한 것은 다 꽃이 되듯 당신의 사랑도 꽃 한 송이 곱게 피워냈으면 좋겠다. 조성자 / 시인시로 읽는 삶 모두 애인 개나리 울타리 벚꽃 아래

2022-04-12

[삶의 뜨락에서] 개나리가 활짝 피었습니다

봄이 왔구나 했지요! 그런데 오늘은 햇빛을 뚫고 함박눈이 내리더니 기온까지도 곤두박질치며 화씨 20도를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황금빛보다 환한 개나리는 화사한 노오란 색채를 맘껏 밝히면서 피어주었습니다. 저는 봄이 오면 담장을 풍성히 장식하며 피어주는 눈부시게 화려한 개나리가 좋아서 밖으로 나서곤 합니다. 시국과 계절의 변화를 따라 개나리도 부지런히 활짝 피었습니다.     제가 살던 옛집에 제 손으로 심어 30여 년을 키웠던 개나리 넝쿨이 4월 식목일 전후로 활짝 펴서 동네 골목길에 봄을 환하게 밝혀주던 저의 옛 동네가 그립습니다. 지금은 노인 마을에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하여 내 손이 가지 않아도 뜰을 관리해주는 고마움이 있지요. 그런데 다른 것은 몰라도 초봄에 환하게 흐드러져 피어야 할 개나리 넝쿨을 청년들 상고머리(crew cut)로 이발을 시켜놓는 이곳 정원사들의 심리와 정서가 안타까워 마음마저 서운해집니다. 어쩌자고 저렇게 동그랗게 면도를 해 버리는지요! 그런데 제 심정을 알아주는 사람도 제 주위에 없어 혼자서 정원사가 듣지도 못할 불평을 중얼대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갇혀 삶이 게을러지고 별로 하는 일이 없습니다. 나이는 무엇에 장단을 맞추는지 슬며시 숫자를 보태주고, 이제는 대충 생동감 있는 삶은 내려놓고 오로지 오늘, 여기를 즐기라는 모토가 노인들의 기억력을 돕겠다고 연줄 되풀이해서 들려옵니다. 그런데 왜 제 건강까지 예고 없이 덜컥 내려치는지요? 어쩌라는 건지요? 여름이라도 어서 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차라리 반바지라도 입고 먹을만한 채소라도 몇 개 심어 부지런히 물이라도 주며 그 새싹들이 자라는 자연의 모습이라도 보았으면 하는 여름이 기다려집니다.     바다 건너에 사는 손자가 보고 싶지만 노인네는 더 위험하다는 적신호 때문에 비행기도 탈 수 없는 이 험한 세상이 언제나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려는지 기약 없는 압박감을 느끼게 합니다. 몽당머리 개나리가 수두룩한 이 동네를 둘러보다가 슬그머니 짜증에 우울증까지 보태주었습니다. 쉽사리 나타내지 않는 제 성격에도 우울증이라는 새로운 기생충이 찾아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금 저리도 비참한 전쟁 속에 죄 없는 어린아이들과 가족들의 피난, 그리고 젊은 병사들이 죽어갑니다. 6·25전쟁을 겪었던 우리 세대는 그 비참했던 기억을 돌아보고 싶지 않은 심정을 공감하실 것 같은 지난 날을  더듬게 합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생각하며 여생을 보내고자 노력하며  서로 위로를  주고 받지 않습니까? 문득 의미가 없는 나날을 살고 있다는 이 마음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네가 어떡하겠느냐는 소리도 들립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자유, 평화 말입니다! 하여 개나리꽃도 자유롭게 넓은 땅에서 맘 놓고 봄의 풍성함을 싣고 널널이 피어주었으면 하는 저의 마음입니다. 나이를 자랑하며 멋들어지게 늘어진 연분홍색 수양벚나무가 몽당 개나리를 대신하여 제 마음을 달래줍니다. 이사하며 섭섭한 마음에 한뿌리 뽑아온 어린 개나리가 제 뒤뜰 빈자리에서 꽃을 피워주었습니다. 이 아기 개나리에는 크루 컷 금지령을 내리렵니다. 꽃들도 제자리를 찾아 진정한 본연의 자태로 모습을 보일 때 우리도 꽃들과 함께 정겹고 따뜻한 또 한 해의 삶을 살 수 있는 활력이 되리라 생각하는 오늘이었습니다. 남순자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개나리 몽당머리 개나리 개나리 넝쿨 아기 개나리

2022-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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