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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개나리가 활짝 피었습니다

봄이 왔구나 했지요! 그런데 오늘은 햇빛을 뚫고 함박눈이 내리더니 기온까지도 곤두박질치며 화씨 20도를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황금빛보다 환한 개나리는 화사한 노오란 색채를 맘껏 밝히면서 피어주었습니다. 저는 봄이 오면 담장을 풍성히 장식하며 피어주는 눈부시게 화려한 개나리가 좋아서 밖으로 나서곤 합니다. 시국과 계절의 변화를 따라 개나리도 부지런히 활짝 피었습니다.  
 
제가 살던 옛집에 제 손으로 심어 30여 년을 키웠던 개나리 넝쿨이 4월 식목일 전후로 활짝 펴서 동네 골목길에 봄을 환하게 밝혀주던 저의 옛 동네가 그립습니다. 지금은 노인 마을에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하여 내 손이 가지 않아도 뜰을 관리해주는 고마움이 있지요. 그런데 다른 것은 몰라도 초봄에 환하게 흐드러져 피어야 할 개나리 넝쿨을 청년들 상고머리(crew cut)로 이발을 시켜놓는 이곳 정원사들의 심리와 정서가 안타까워 마음마저 서운해집니다. 어쩌자고 저렇게 동그랗게 면도를 해 버리는지요! 그런데 제 심정을 알아주는 사람도 제 주위에 없어 혼자서 정원사가 듣지도 못할 불평을 중얼대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갇혀 삶이 게을러지고 별로 하는 일이 없습니다. 나이는 무엇에 장단을 맞추는지 슬며시 숫자를 보태주고, 이제는 대충 생동감 있는 삶은 내려놓고 오로지 오늘, 여기를 즐기라는 모토가 노인들의 기억력을 돕겠다고 연줄 되풀이해서 들려옵니다. 그런데 왜 제 건강까지 예고 없이 덜컥 내려치는지요? 어쩌라는 건지요? 여름이라도 어서 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차라리 반바지라도 입고 먹을만한 채소라도 몇 개 심어 부지런히 물이라도 주며 그 새싹들이 자라는 자연의 모습이라도 보았으면 하는 여름이 기다려집니다.  
 
바다 건너에 사는 손자가 보고 싶지만 노인네는 더 위험하다는 적신호 때문에 비행기도 탈 수 없는 이 험한 세상이 언제나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려는지 기약 없는 압박감을 느끼게 합니다. 몽당머리 개나리가 수두룩한 이 동네를 둘러보다가 슬그머니 짜증에 우울증까지 보태주었습니다. 쉽사리 나타내지 않는 제 성격에도 우울증이라는 새로운 기생충이 찾아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금 저리도 비참한 전쟁 속에 죄 없는 어린아이들과 가족들의 피난, 그리고 젊은 병사들이 죽어갑니다. 6·25전쟁을 겪었던 우리 세대는 그 비참했던 기억을 돌아보고 싶지 않은 심정을 공감하실 것 같은 지난 날을  더듬게 합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생각하며 여생을 보내고자 노력하며  서로 위로를  주고 받지 않습니까? 문득 의미가 없는 나날을 살고 있다는 이 마음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네가 어떡하겠느냐는 소리도 들립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자유, 평화 말입니다! 하여 개나리꽃도 자유롭게 넓은 땅에서 맘 놓고 봄의 풍성함을 싣고 널널이 피어주었으면 하는 저의 마음입니다. 나이를 자랑하며 멋들어지게 늘어진 연분홍색 수양벚나무가 몽당 개나리를 대신하여 제 마음을 달래줍니다. 이사하며 섭섭한 마음에 한뿌리 뽑아온 어린 개나리가 제 뒤뜰 빈자리에서 꽃을 피워주었습니다. 이 아기 개나리에는 크루 컷 금지령을 내리렵니다. 꽃들도 제자리를 찾아 진정한 본연의 자태로 모습을 보일 때 우리도 꽃들과 함께 정겹고 따뜻한 또 한 해의 삶을 살 수 있는 활력이 되리라 생각하는 오늘이었습니다.

남순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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