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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과 다문화 조명"…30주년 기념 LA아트쇼

30주년을 기념하는 LA아트쇼가 2025년 2월 19일부터 23일까지 LA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다.     세계 3대 아트쇼로 손꼽히는 LA아트쇼는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의 예술가, 갤러리, 수집가들을 LA로 초대해 현대 미술과 모던 아트의 진화를 반영한 작품을 선보이며 ‘가장 포괄적인 예술 경험’을 제공했다.     카산드라 보이야기스 LA아트쇼 감독은 “LA에서 가장 오래된 아트페어로 30주년을 맞이했다”며 “LA가 예술과 문화의 세계적 중심지로 부상하는 데 있어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다양성은 LA 아트쇼의 강점이다. 30주년을 기념해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의 현대 미술과 모던 아트의 최고 작품을 선보이고 LA의 활기찬 다문화 모습을 반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5 LA아트쇼에는 스위스(LICHT FELD Gallery), 터키(Gama Gallery), 영국(Rebecca Hossack Art Gallery), 벨기에(L.E. Gallery), 파리(K+Y Contemporary Art), 아스펜(Casterline Goodman Gallery), 뉴욕(Arcadia Contemporary), LA(Fabrik Projects)를 포함한 국내 및 국제갤러리 100여곳 이상이 참여한다.     올해도 아트쇼에 한국 갤러리들이 참여해 K아트의 진수를 선보인다. 참여 갤러리는 제이제이아트, 아트인동산, 아트월, 위드갤러리, CXU갤러리, OSJ갤러리, 월드갤러리, KMJ갤러리 등 8개다. 또한 라이언갤러리, 스캇앤제이갤러리, EK갤러리 등 LA에 있는 로컬 갤러리들이 미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LA아트쇼의 비상업적인 전시회로 주목받는 다이버스아트LA는 지난 8년 동안 변혁적인 아트 여정을 반영하는 회고전을 선보인다. 마리사 카이치올로가 큐레이팅을 맡았다.       그 동안 LA카운티뮤지엄(LACMA), 워싱턴DC AMA뮤지엄, 브로드뮤지엄, 제페니즈 아메리칸 내셔널 뮤지엄 등이 참여한 가운데 인종, 성별, 복잡한 현대적 존재에 대한 비판적 대화를 장려해왔다.     전직 풋볼 선수인 그렉 벨이 설립한 스포츠 지원 비영리단체 ALF(Athletes for Life·대표 그렉벨)가 이번에도 LA아트쇼와 협력해 청소년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025 LA아트쇼 티켓은 웹사이트(LAArtShow.com)에서 구매할 수 있다.  이은영 기자la아트쇼 다양성 la아트쇼 감독 라이언갤러리 스캇앤제이갤러리 예술가 갤러리

2024-11-03

[문장으로 읽는 책] 내게는 수많은 실패작들이 있다

실패작들은 히트작이라면 절대 그러지 않을 방식으로 나에게 들러붙는다. 실패작들은 나를 고문한다. 나는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인다. 영화를 다시 재생해본다. 다른 배우들을 캐스팅해본다. 재편집해본다. 시나리오를 다시 써본다. 다시 한번 상영해본다. 무수한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와 무수한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사이에서 방황하게 된다. 비난할 만한 대상을 찾아 헤매게 된다.     노라 애프런 『내게는 수많은 실패작들이 있다』   ‘시그널’ ‘킹덤’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낸 김은희 작가의 남편인 장항준 감독은 한 예능 프로에 나와서 아내에게 “언제든 한번 실패할 때가 온다. 그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고 말해준다”고 했다. 인생과 창작의 동반자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유브 갓 메일’ 등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대표주자이던 노라 애프런 감독의 에세이집이다. 영화만큼이나 유머와 예리함이 넘치는 감성으로, 성공한 영화감독이자 세 번 결혼하고 이제는 70줄에 접어든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하루하루 나이 들어가는 노년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소회도 털어놓는다. 흔히 실패의 장점을 설파하거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웅변하는 글들과 달리 실패에 대한 태도가 담백하다. “내가 보기에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앞으로도 언제든 또 다른 실패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가장 실패 없는 방식이 아닐까. 애프런은 2012년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실패작 장항준 감독 할리우드 로맨틱 김은희 작가

2024-10-16

음모의 시대 어두운 내면을 엿듣는 예리한 귀

현대 영화사의 걸작들인 ‘대부’, ‘대부2’, ‘지옥의 묵시록’ 등을 감독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1974년 ‘대부’의 차기작으로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을 발표했다. 영화는 그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상 작품상,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코폴라의 다른 대작들에 비해 비교적 생소한 이 영화는 ‘대부 1’(1972)과 ‘대부 2’(1974) 사이에 발표됐다. ‘대부’ 시리즈에 비하면 캐스팅, 제작비 면에서 규모가 작은 영화로 보일지 모르지만 무너지는 미국의 도덕에 들이대는 코폴라의 칼날이 예사롭지 않다. 코폴라와 주연 배우 진 해크먼은 추후 이 영화를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밝힌 바 있다.     코폴라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지속적으로 재편집하는 완벽주의자로 정평이 나있다. 오늘날 여러 버전의 ‘대부’ 시리즈와 ‘지옥의 묵시록’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러나 코폴라는 1974년 개봉한 이래 50주년이 되는 오늘까지 이 영화만큼은 손을 대지 않았다. 그 스스로도 완벽한 영화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멀리 떨어진 곳, 방해 전파와 소음 속 낯선 이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이 직업인 도청 전문가 해리 콜(진 해크먼).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거주지를 옮긴 그는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며 고립된 ‘감시자’의 삶을 살고 있다. 수줍은 성격의 해리는 필연적으로 외롭고  우울하다. 뉴욕에서 있었던 불행한 일이 아직도 그의 잠재 심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혼자 아파트에 있을 때만 색소폰을 연주하는 해리의 연락처를 누구도 알지 못한다.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는 여성과의 만남조차도 거리를 유지한 채 절제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해리는 거금의 착수금을 받고 젊은 커플의 일상을 도청하라는 의뢰를 받는다.     샌프란시스코 공원에서 도청한 커플의 대화에는 이들이 불륜 관계이고 ‘그’가 그들을 죽일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해리는 이들의 일상의 대화를 음모로 오인한다. 무고한 사람이 죽어야 했던 뉴욕에서의 일이 되풀이될 것 같은 불안이 그의 심리를 파고든다. (당대의 조연 배우이며 코폴라가 최애했던 로버트 듀발이 크레딧 없이 의뢰인 ‘그’를 연기한다.)   남의 대화를 엿들어야 하는 해리의 심리는 늘 양심과 충돌한다. 비극이 임박해 오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그는 의뢰인에게 테이프를 넘기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그의 ‘음모론’은 더욱 그를 고립시키고 동료,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고통의 당사자는 도청을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청 전문가로 자부해왔던 해리 자신이다.     해리는 결국 도청 테이프를 빼앗기게 되고 젊은 커플이 암살당하기 전 테이프 속에 담긴 그 누군가와 증거를 찾기 위해 호텔로 향한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정반대의 상황에 부딪힌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로 알았던 의뢰인이 피해자가 되어버린 기막힌 상황에 이르자 해리는 이제껏 자신을 지탱해주던 정체성에서 이탈해버린다.     극도의 불안 증세, 무력감과 절망감, 죄의식이 그를 조여온다. 그의 모든 것을 삼켜버린 편집광적 의심은 마침내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광기를 유발하기에 이른다.     해리의 광기는 고독과 단절의 다른 모습이다. 영화는 해리가 누군가 자신을 도청하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미친 듯이 아파트 전체의 바닥을 뜯어내고 허탈감에 빠져 그나마 온전히 남아 있는 색소폰을 연주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컨버세이션’은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의 수사 직전에 발표되었다. 영화가 발표된 1970년대는 베트남 전쟁과 반전운동, 흑인들의 민권운동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차이나타운’(1974),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 ‘마라톤 맨’(1976), ‘블랙 선데이’(1977), ‘브라질에서 온 소년’(1978) 등 음모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이 시기에 쏟아져 나왔다.     코폴라 감독은 해리의 도청과 감시를 관음증의 한 형태로 표현한다. 철저히 단절된 상태에서 남을 엿보는 감시와 도청이 지속되는 동안 해리의 죄의식은 쌓여만 간다. 그 누구도 그를 도와줄 수 없다. 혼자만의 처절한 사투 끝에 반전의 결말은 충격과 고통 그 자체이다.   감독의 예리하고 냉소적인 관찰은 진 해크먼이라는 대배우의 대체불가 연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해크먼은 관음에 대한 죄의식으로 고민하고 방황하는 가운데 나락으로 빠져가는 해리의 어두운 심리를 스릴과 서스펜스로 묘사해낸다.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고 내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해크먼은 자신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이전 작품 ‘프렌치 커넥션’(1971)을 통해 각인시켰던 냉정하고 강직한 캐릭터를 이 영화에 그대로 가져온다. 두 인물 모두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 조용히 무너져 내리는 안티 히어로들이다. 당시 44세의 해크먼은 노년에 접어들어 주연 못지않은 조연 연기로 더욱 그의 진가를 발휘했다. ‘수퍼맨’ 시리즈의 렉스 루터 역은 그가 연기한 대표적 악역이었다.   레인코트를 걸치고 철 지난 뿔테 안경 차림의 내성적인 해리는 사실 외향적인 성격의 해크먼과는 반대되는 인물이어서 연기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엔딩의 색소폰 연주 장면을 위해 해크먼이 색소폰을 배웠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영화에는 메릴 스트립의 연인이었으며 고작 5편의 영화에 출연, 영화 5편이 모두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그중 3편이 작품상을 수상했던 존 카제일(‘대부’에서 마이클의 둘째 형 프레도 역), 젊은 시절의 해리슨 포드, 해크먼에 버금가는 연기파 배우 로버트 듀발 등이 모습을 보인다. 김정 영화평론가내면 음모 그해 칸영화제 현대 영화사 코폴라 감독

2024-09-11

[보험칼럼] OSHA<직업안전보건청> 벌칙금으로부터 사업체 보호

사업을 하는 많은 분이 직업안전보건청(OSHA)에 대해선 생소할 것입니다. 이 기관은 노동부 산하기관으로, 모든 고용주는 법에 따라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장을 제공할 책임이 있습니다. 모든 사업장은 OSHA 감독을 받게 돼 있습니다. 재정적 처벌과 벌금, 사업 정지를 피하려면 OSHA 지침을 이해하고 준수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는 정부 기관인 OSHA는 규정을 엄격하게 준수할 것을 요구합니다. 규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상당한 벌금과 재정적 부담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최근 많은 기업이 OSHA 규정 위반으로 인해 상당한 벌금을 부과받았습니다. 오리건주의 한 지붕 회사는 9만2000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고, 시카고의 한 건설업체는 26만8000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습니다. 뉴욕에 본사를 둔 한 회사는 최대 40만 달러의 벌금이 부과될 위험에 직면해 있습니다. OSHA 규정은 제조나 화학물질 유통과 같은 고위험군 산업체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비즈니스에 적용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사무직 사업체도 예외는 아닙니다. 직원의 안전을 위한 상당한 정도의 OSHA 규정을 준수해야 합니다.   고용주는 신의성실성에 따라 직원의 안전을 우선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포괄적인 교육 제공, 특정 작업 환경에 맞는 서면 안전 프로그램 시행, 개인 보호 안전 방호 장비 제공, 정확한 기록 유지 등이 포함됩니다.   물류 및 통상 관련 비즈니스들의 경우 필수 안전 프로그램에는 자재 취급, 개인 보호 장비, 보행 및 작업 표면 위험, 출구 경로 및 비상조치 계획이 포함됩니다. 또한 제조업체는 기계 보호, 잠금·태그아웃 절차, 혈액 매개 병원체 예방, 위험 커뮤니케이션 표준, 용접, 절단 및 납땜 안전 프로토콜과 같은 추가 프로그램을 실제 준수해야 합니다.   OSHA 표준을 준수한다고 해서 작업장 안의 부상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벌금과 과태료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잠금·태그아웃이나 기계 보호 기준과 같은 서면 안전 프로그램을 마련하면, OSHA 검사 시 상당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안전하지 않은 작업장 환경으로 인해 서면 안전 기준을 이행하지 않은 이력이 있는 회사는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벌금 처벌을 최소화하는 것 외에도 OSHA 안전 기준을 이행하면 직원 안전을 강화하고 보다 긍정적인 업무 환경을 조성해 직원과 고용주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습니다. 위험 관리 전문가와의 컨설팅은 운영을 간소화하고 OSHA 규정을 준수하는 데 필요한 도구와 지침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보험회사도 보험 가입 시에 사전 혹은 사후 위험관리를 평가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보험사도 사고 위험성이 높은 가입자를 걸러내고, OSHA 규정을 잘 준수해 보다 안전한 회사의 보험을 인수하려 합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가입자들의 보험료를 낮추는 효과도 부수적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험회사는 작업장 안전 평가 및 권장 사항을 제공할 수 있지만, OSHA의 복잡한 규제 환경을 완전히 부합하는 데 필요한 포괄적인 지침을 제공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공인 OSHA 전문가와의 컨설팅을 통해 효과적인 규정 준수에 필요한 전문 지식과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제이슨 김 / 커머셜 보험 언더라이터·이코노 에이전시 부사장보험칼럼 직업안전보건청 사업체 osha 규정 보호 안전 osha 감독

2024-08-28

흑인이 보안관? 풍자와 조롱, 파격의 전복적 서부극

1970년대 서부극에 흑인 보안관의 등장이라니, 믿어지는가? 1974년, 미국 영화계에 한 차례 거대한 폭풍이 몰아쳤다. 그 폭풍의 이름은 바로 ‘불타는 안장(Blazing Saddles)’.     멜 브룩스 감독의 이 걸작은 전통적인 서부극 장르를 신랄한 풍자와 파격적인 유머로 재창조하며 당시 관객들의 기대를 완전히 뒤엎었다. 단순한 코미디를 넘어, 인종 문제와 사회적 부조리를 가차 없이 조롱하며 미국 사회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았다.  그의 유머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통쾌하다.     영화는 평화로운 서부의 백인들만 살던 작은 마을 락 리지에 철도가 놓이면서 시작된다. 주 법무장관 헤들리 라마는 철도 사업을 이용해 마을 땅을 헐값에 매입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인종 차별이 만연한 마을 분위기를 이용해 흑인 사형수였던 바트를 보안관으로 임명하는 교묘한 계략을 쓴다. 예상대로 마을 주민들은 바트를 경계하고 적대감을 드러내지만, 극한의 상황 속에서 바트의 용기와 재치에 감화되어 점차 마음을 열게 된다. 라마는 결국 무력으로 마을을 장악하려 하지만, 바트와 마을 주민들의 끈끈한 유대감과 맞서 싸우다 실패하고 만다.   정의로운 보안관이 악당을 물리친다는 내용은 서부극에 잘 사용되는 소재이기는 하나 흑인 보안관을 주인공으로 세운 것은 당시로써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이러한 설정은 단순한 인종적 다양성을 넘어,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다. 또, 백인 영웅 대신 흑인 보안관이 등장하고, 선악이 분명하게 대립하는 단순한 구조 대신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예측불허의 상황을 연출했다.   코미디 영화의 아름다움은 사회의 문제점과 현실의 부조리를 꼬집어 유쾌하게 풀어냄과 동시에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 역시 유머와 풍자를 절묘하게 조화시켰다는 것이다. 서부극 특유의 배경 음악과 영상미를 과장되게 표현해 코믹한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를 통해, 인종차별과 서부극의 전형적인 클리셰를 동시에 풍자하며, 1970년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대표적으로 감독은 KKK 단원과 나치를 비롯한 악당들이 줄지어 등장하는 장면이나 ‘Yes’와 ‘No’를 칠해 놓은 황소, KKK단의 하얀 가운 뒤에 적힌 ‘Have a nice day’, 평원에 등장하는 오케스트라와 같은 시각적인 개그로 작품의 풍자적 깊이를 더했다.     또, 이 영화는 브룩스 감독 특유의 기발한 연출 기법이 돋보이기도 한다. 초현실주의와 슬랩스틱 코미디, 패러디, 당시로써는 파격적일 정도의 저속함이 조화를 이루며,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과장된 총격전, 기상천외한 무기, 슬로우 모션과 속도감의 조화, 극단적인 리액션 등을 통해 서부극의 전형적인 액션 장면을 파격적으로 비틀고 코믹하게 재해석했다.   멜 브룩스 감독이 이 작품에서 사용한 유머는 단순히 시대의 유행을 좇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특성과 사회 구조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한다. 권력 남용,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 인간의 욕망 등 시대를 초월한 주제들을 유쾌하게 다루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고 있다.     1970년대는 미국 사회가 격동기를 겪던 시기였다.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인해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불타는 안장’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권위에 대한 반항,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비판, 인종차별, 새로운 가치관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다.   정하은 기자 chung.haeun@koreadaily.com브룩스 서부극 서부극 장르 서부극 특유 브룩스 감독

2024-08-28

픽션보다 참혹한 난민들의 지옥도, 푸른 장벽

2차 대전의 포연 속, 독일 태생의 유대인 청년이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생의 아이러니를 심도있게 그렸던 1990년 미국의 4개 주요 비평가그룹으로부터 최우수 외국어영화로 선정되었던 ‘유로파 유로파(Europa Europa)’의 아그네츠카 홀랜드 감독의 최근작.   “모든 영화는 정치적이다”라는 그녀의 말대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또한 정치적이다. 폴란드 출신의 거장 홀랜드의 영화들은 대부분 정치적, 역사적 사건에서 위기를 끌어내고 휴머니즘적인 메시지로 결론을 맺는다.   ‘푸른 장벽(Green Border)’은 국경을 넘어 안전한 곳으로 향하는 난민의 이야기다. 유럽의 난민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 역시도 대단히 정치적이다. 홀랜드 감독은 국경의 참혹한 현장을 실제로 폴란드의 정치 현장으로 끌어온다. 영화는 개봉 후 치러진 폴란드 총선에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고 우익의 적대감을 증폭시켰다.     2021년 벨라루스는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흘러들어온 난민들을 폴란드로 보낸다. 숲이 우거진 국경 지대에서 양국의 군인들과 난민들이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난민들은 음식과 물이 떨어지고 신발도 필요하다. 그들을 몰아내려는 국경수비대의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추위와 굶주림에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는 난민들이 늘어 간다.     은밀하게 촬영된 영화는 거의 다큐멘터리 톤으로 진행된다. 홀랜드 감독의 노련한 연출 아래 흑백으로 카메라에 담아낸 장면들은 많은 부분 사실에 기반한다. 시리아 가족이 겪는 곤경과 시련을 근접거리에서 관찰하면서 시작하는 영화는 두 나라 국경수비대의 인권침해를 생생하게 폭로한다. ‘푸른 장벽’은 비정한 현실이 픽션보다 더 참혹할 수 있음을 일깨워 주는 영화다.     억압을 행사해야 하는 위치에 있지만 늘 고심하는 국경수비대원 얀을 비롯, 위기에 휘말린 난민들을 도우려는 인권 운동가, 그들을 경계시하면서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주민들 모두 ‘최소한의 양심’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희미한 선악의 경계 위에 서서 각자의 입장에 따라 정치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난민 문제는 유럽의 심각한 정치적 이슈임이 틀림없다. 모든 정치적 행위는 인간적 삶의 조건을 만들어내는 행위일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있다. 정치성이 강한 영화이지만 영화의 핵심 메시지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인본주의에 있다. 억압과 착취의 건너편에서 다가오는 자비와 인도주의의 손길에 홀랜드 감독의 메시지가 있다. 영화 속 홀랜드의 메시지가 자못 육중하다. 김정 골든글로브 심사위원지옥도 픽션 난민 문제 최우수 외국어영화 홀랜드 감독

2024-06-26

사랑은 차별을 넘을까? 질문은 아직 유효하다

“행복은 항상 달콤하지는 않다.”   1974년 개봉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Ali: Fear Eats the Soul)’에 나오는 대사다.   ‘불안’은 안전하지 않다는 뜻. 어원은 목이 졸려서 숨이 막혀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다. 불안은 힘든 상황이지만 불안을 감수하고 새로운 세계로 발을 디뎠을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 미국이 흑인 노예 해방을 선언한 지 161년, 독일이 히틀러로부터 해방된 지 79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장애 등 다양한 형태의 차별이 만연하다. 해방 뒤에는 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뿐만 아니라 차별로 얼룩진 상흔이 남아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멜로드라마라는 장르를 통해 파시즘의 잔재, 차별, 불관용이라는 시대적 쟁점을 심도 있게 파헤치는 작품이다.     칸영화제에서 비평가상을 받은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빔 벤더스, 알렉산더 클루게 감독 등의 작품과 더불어 뉴 저먼 시네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영화는 15일이라는 짧은 촬영 기간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 미장센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사회의 민족주의적 위선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판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어느 날 밤 아랍 음악이 흘러나오는 한 바에 60대의 에미가 들어온다. 예기치 못한 에미의 등장에 바 안에는 정적이 흐른다. 그러다 우연히 모로코 출신 외국인 노동자 알리와 함께 춤을 춘 것을 계기로 둘은 사랑에 빠진다. 이를 통해 에미와 알리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사랑이라는 강렬한 감정으로 사회적 장벽과 차별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동시에, 사랑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파시즘의 잔재가 녹아있던 시기에 에미의 자식, 이웃, 직장 동료 모두가 그녀를 비난한다. 특히, 에미는 외국인 노동자와 사랑에 빠진 ‘타락한’ 여성으로 사회로부터 배척된다. 영화는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차별과 억압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관객들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파스빈더 감독은 2차대전 이후 파시즘적 반유대주의가 일부 해소됐다고 여겨질 때, 유대인에 대한 증오가 아랍인, 외국인 노동자, 이민자들로 옮겨가고 있는 것을 캐치해냈다.   사랑으로 뭐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뿌리 깊은 편견은 사랑을 집어삼키고 그 속에 싹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고 관계는 위태로운 상황에 빠진다. 사랑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사상과 정치이념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미는 알리를 사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본인도 다른 사람들에게 옮아 파시즘적 물결에 휩쓸려가고 있었다. 한참 후에 서로에 대한 진심을 확인하지만 알리는 병에 걸려있었고 에미가 알리의 병석을 지키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는 결말이 비극인지 희망인지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들이 이 영화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그들의 사랑이 앞으로도 계속될지 위태로울지는 미지수다.     이 작품은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베르톨르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이론(소격이론)’을 영화에 담아냈다. 거리두기 이론이란 관객과 작품 사이의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를 동시에 조절하여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허구라는 것을 인식시켜 극을 비판적으로 보게 하는 것을 뜻한다. 카메라 무빙, 관찰자의 시선 쇼트 삽입, 수평 트래킹 등을 활용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속 장면이 허구임을 일깨우고, 동시에 프레임 밖의 현실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이를 통해 파스빈더 감독은 관객들에게 영화를 통해 현실은 해피 엔딩이 아니라는 것과 아직도 파시즘 잔재가 만연하다는 것을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파스빈더는 감독은 “사랑이란 사회적 억압을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가장 교활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라고 말했다. 양성애자였던 그는 어쩌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의 힘이 편견과 무관용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을 가장 가까이서 느낀 인물일지도 모른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시킬 수 있지만, 오히려 사랑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정하은 기자 chung.haeun@koreadaily.com엔터테인먼트 angst angst essen 감독 불안 라이너 베르너

2024-06-26

비정한 세상·추악한 인간 내면 다룬 누아르 걸작

검은 색을 뜻하는 프랑스어 ‘누아르(Noir)’는 암울한 분위기가 가득한 영화들을 일컫는다. ‘필름 누아르’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하드보일드’는 1차 세계대전 후, 인류에 닥쳐온 절망에서 출발한다. 최고의 이념으로 여겨졌던 자본주의의 모순이 대공황이라는 파멸적 위기로 나타나면서 희망보다는 인간에 대한 불신, 미래에 대한 절망이 인류의 심리 안에 자리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조류에 걸맞은 범죄 영화들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면서 주인공의 캐릭터들이 하드보일드라는 장르를 전형화하기 시작했다.       하드 보일드의 키워드는 ‘비정’과 ‘냉혹’이다. 하드보일드 영화에 등장하는 탐정이나 형사들은 인정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정의감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움직인다. 하나같이 무뚝뚝하고 거칠어, 로맨틱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말보다 주먹과 피스톨이 앞선다.   천재 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1974년 발표한 ‘차이나타운(Chinatown)’은 하드보일드의 한 획을 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고부터 15분 안에 관객을 사로잡지 못하면 실패한다’는 시간 배분 원칙. 그리고 ‘누군가가 무엇을 간절히 이루려 하나 그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줄거리 구성의 원칙. 그 모든 게 적절히 녹아있으면서 기-승-전-결 구도가 완벽하게 짜임새를 이루고 있는 이 영화의 스토리는 많은 영화학과에서 각본 교재로 널리 쓰이고 있을 만큼 탁월했다.     돈만 있으면 법은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치외법권적 비리와 불륜에 얽힌 음모에 관한 스토리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토대로 한 이 영화는 정의와 권선징악에 익숙해 있던 관객들에게 작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영화는 193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댐 건설을 둘러 썬 이익집단 간의 대립과 암투를 배경으로 한다. 댐 건설로 엄청난 이익을 노리는 건설업자들과 댐이 들어서면 생업에 지장을 받게 될  농축업 종사자들 사이의 집단 갈등 속에서 전직 형사로 사설탐정소를 운영하는 제이크 기티스(잭 니컬슨)는 LA수도국 국장 홀리스 멀레이의 아내로부터 남편의 불륜을 조사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러나 멀레이의 진짜 아내 에블린 멀레이(페이 더너웨이)가 나타난다. 얼마 안 가 홀리스가 의문사를 당하면서 그의 파트너였던 백만장자 노아 크로스(존 휴스턴)의 존재가 표면에 떠오른다. 제이크는 정계 거물인 크로스가 에블린의 아버지이며 사건의 배후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패와 악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가운데 오랫동안 은폐되었던 거대한 음모가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LA수도국장 멀레이, 그의 부인 에벌린, 멀레이의 파트너이자 에벌린의 양아버지인 크로스, 멀레이의 연인으로 알려진 캐서린, 이렇게 다섯 명의 인간관계가 미스터리하게 전개된다.   이 영화는 “Forget it Jake, it’s Chinatown”이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겼다. 영화 내내 차이나타운의 실체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지만 차이나타운은 법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혼란스러운 동네, 돈만 있으면 법은 문제가 되지 않는 그들만의 ‘안전지대’를 상징한다.     폴란스키의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 ‘차이나타운’은 관객을 즐겁게 하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의 씁쓸한 뒷맛은 악인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충격적 결말에서 기인한다. 폴란스키는 인간 사회의 곳곳에서 돈과 권력을 이용, 법을 입맛대로 주무르는 권력자들은 언제나 존재해 왔고 우리는 그러한 체제에 너무나 잘 길들어져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다. 폴란스키 감독은 영화의 배경지인 LA라는 도시, 더 나아가 미국 사회의 곳곳에서 재력을 이용, 법을 입맛대로 주무르는 권력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제작 과정에서 폴란스키는 각본을 쓴 로버트 타운과 여러 차례 충돌했다. 특히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하자는 타운과 반대로, 폴란스키는 비극적 결말을 고집했다. 에블린이 죽지 않으면 영화는 용두사미가 된다고 고집한 폴란스키에게 결국 타운이 양보했다. 결과적으론 폴란스키의 말이 맞은 셈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플롯 속에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악의 법칙을 힘있게 연기해낸 것은 노아 크로스 역을 맡은 존 휴스턴이다. 영화의 핵심 주제인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불신은 그의 연기로부터 견인된다. 그가 연기한 노아 크로스는 영화사상 최고 악역 캐릭터 중 하나로 꼽힌다.   휴스턴은 걸작 웨스턴과 필름 누아르를 여러 편 감독한 할리우드의 거장이다. 필름 누아르의 명감독이 다른 감독의 필름 누아르에 출연했다는 것부터 눈길을 끈다. 돈과 권력을 양손에 쥐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노회하고 냉혹한 악인을 소름돋게 연기해냈다.  극중에서 그는 주인공 제이크(잭 니컬슨)에게 “내 딸과 잤나”라고 묻는다. 당시 휴스턴의 딸 안젤리나 휴스턴이 실제 니컬슨과 연애하던 시절이었기에, 의도하지 않은 명장면이 돼버렸다.     ‘차이나타운’은 원래 3부작으로 제작될 요량이었다. 제2편은 1990년 잭 니컬슨이 감독한 ‘투 제이크스(Two Jakes)’. 그러나 기억하는 이가 별로 없을 정도다. 결국 3부 제작 계획도 취소됐다. 1988년엔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혼합한 영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가 제작됐는데, ‘차이나타운’의 스토리 라인을 군데군데 차용했다. 이 영화에 대해선 ‘차이나타운’을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의 이해도가 크게 엇갈린다. 여기에 나오는 유명대사는 “Forget it Eddie, it’s Toontown”. 만화동산과 차이나타운의 이 절묘한 대비 앞에서 관객들은 포복절도한다.       폴란스키는 이 영화에 단역으로 직접 출연한다. 저수지에서 제이크의 코를 나이프로 자르는 깡패를 맡았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제작진 소개 자막엔 ‘나이프를 든 남자’ 역으로 그의 이름이 나온다. 김정 영화평론가누아르 추악 하드보일드 영화 필름 누아르 폴란스키 감독

2024-06-19

"거칠지만 순정의 영화…아직도 볼 때마다 싱싱"

1974년은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이 그어진 해다. 신인 감독이 만든 영화 한 편이 충무로를 뒤흔들었다. 이장호 감독의 데뷔작 ‘별들의 고향’은 당시 서울에서만 무려 46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흥행 신기록이었다. 별들의 고향은 ‘이장호’란 이름을 한국 영화 역사에 각인시킨 작품이다. 충무로의 거장 이 감독이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별들의 고향’ 상영회 참석차 LA를 방문한 그를 지난달 30일 만났다.   50년이 지나서 보는 '별들의 고향'은.   “시간이 날 때 종종 본다. 예전 영화인데, 옛날 영화 같지 않다. 볼 때마다 아직도 싱싱한 느낌이다.”   싱싱하다는 것은.   “원래 뭘 알게 되면 겁이 생기지 않나. 20대 때 만든 작품이었다. 그때는 뭘 모를 때니까 싱싱한 게 막 기어 나왔다.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이 그런 것 아니겠나. 아마 그때 관객들도 그런 감정을 느꼈을 거라 본다.”   어떻게 제작하게 됐나.   “한마디로 ‘운’이라고 말하고 싶다. 친구인 최인호 씨의 소설을 영화화할 기회를 얻게 됐다. 어릴 때라 욕심도 많았다. 그때 신상옥 감독 밑에서 조감독만 8년을 했다. 신 감독에게 작품에 관해 얘기하니까 감독으로 데뷔는 시켜주겠지만, 촬영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자고 하더라. 그렇게 하면 진짜 감독이 될 수 있겠나 싶었다. 그래서 거길 뛰쳐나왔다. 욕심은 있고, 서툰 상태에서 만든 영화다.”   왜 흥행할 수 있었나.   “내가 1945년생이다. 첫 한글 전용 세대인데, 처음으로 미국식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세대다. 1970년대는 우리 세대만의 독특한 문화가 생겨날 때였다. 송창식, 이장희 등 노래도 달라지고, 한글 중심의 한국식 발라드도 나올 때였다. 그런 시대적 맥락에서 ‘별들의 고향’이 나왔다. 그 당시 세대의 감각에 맞았던 것 같다.”   만약 지금 다시 ‘별들의 고향’을 만든다면.   “싱싱하지만 분명 거친 게 있다. 세련되지 못한 부분도 있다. 지금 다시 만든다면… 더 감각적으로, 좀 더 느린 템포로 만들 것 같다.”   오늘날 충무로는 어떤가.   “때가 잔뜩 묻었다. 상업적으로 관객의 비위를 잘 맞춘다. 돈맛을 아는 감독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그 점이 참 아쉽다. 젊은이가 젊은이답게 싱싱한 면이 있어야 하는데 매끄럽고 처세에 밝다. 한국영화가 첫 순정을 잃었구나 싶다.”   요즘은 어떤 작품을 준비 중인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건국의 역사, 구국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작품이다. 그동안 좌파로 살아왔다. 그런데 거기서 벗어나서 폄하했던 것, 왜곡됐던 것을 담아보려 한다. 작품을 위해 공부를 해보니 ‘한국의 역사는 기적이었구나’를 깨닫게 된다.”   반발은 없었나.   “‘드디어 돌았구나’라는 말도 들었다. 아는 후배가 교회를 세웠다.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면서 사회를 바라보니 속 좁게 보았던 부분을 다시 보게 되더라. 불행, 시련, 내리막길… 이런 게 모두 나중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원래는 자유민주주의를 세울 수 없는 국가였는데… 애국가에도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가사가 있지 않나.”   신앙을 가진 후 무엇이 변했나.   “과거에는 죽는 게 두려웠다. 지금은 두렵지 않다. 무섭지가 않다. 인생의 마무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나. 제정신을 찾는 것이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영화도 정신 못 차리고 만들었다. 이제는 정신을 좀 차렸다. 신앙을 통해 정리된 삶을 살고 있다.”   ‘별들의 고향’ 상영회는 어땠나.   “LA CGV와 샌프란시스코 한인회관에서 상영회를 열었다. 양쪽 모두 관객이 너무 많아서 다 못 들어갈 정도였다. 아직도 이 영화를 좋아해 주니까 너무 감사하다.”   ☞이장호 감독은   1974년 영화 ‘별들의 고향’으로 데뷔하며 그해 대종상신인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후 ‘바람불어 좋은 날’, ‘어둠의 자식들’, ‘바보 선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외인 구단’, ‘어우동’, ‘무릎과 무릎 사이’ 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 국내외 각종 영화상을 휩쓸며 당대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 섰다. 장열 기자·jang.yeol@koreadaily.com한국 영화사 이장호 감독 별들의 고향 1974년 충무로 LA 미주중앙일보 로스앤젤레스 장열

2024-06-06

[문화산책] ‘앞바라지’에만 바쁜 부모들

세계적 축구 스타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의 라디오 인터뷰를 찾아 들었다. 부모의 교육철학을 중심으로 한 대화였는데, 정곡을 찌르는 명쾌한 대답에 듣는 내내 신나는 축구경기를 보는 것 이상으로 통쾌했다.   부모의 역할에 대한 손웅정 감독의 신념은 분명하고 정확하고 고집스럽다. 월드 스타를 길러낸 아버지의 교육철학이니 모든 부모가 귀담아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앞바라지’라는 낱말이 신선하게 들렸다. 손 감독은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부모를 ‘자식의 앞바라지를 하는 부모’라고 설명했다.   “큰 부모는 작게 될 자식도 크게 키우고, 작은 부모는 크게 될 자식도 작게 밖에 키우지 못 한다.”   “(앞바라지는) 아이의 재능과 개성보다는 부모로서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고 지금 자기 판단에 돈이 되고 성공을 환호하는 것이다. 아이의 행복도 무시하는 등 그렇게 유도해서 갔을 때 자식이 30~40대 가서 하던 일에 권태기가 오고 번아웃이 온다면, 그 인생을 부모가 대신 살아줄 수 있느냐?”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재능이 뭐고 개성이 뭘까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져서 최고 빠른 시간 안에 아이의 재능과 개성을 찾아서 인생의 스타트 라인에 갖다 놔주는 것이다.”   ‘아들이 용돈은 주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손 감독의 대답은 매우 단호하다. “아니, 제가 벌었어야지! 자식 돈은 자식 돈, 내 돈은 내 돈, 내 성공만이 내 성공이지, 어디 숟가락을 왜 얹느냐! 숟가락 얹으면 안 된다. 앞바라지를 하는 부모들이 자식이 잘됐을 때 숟가락을 얹으려고 하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주도적으로 내 삶을 살아야 한다. 왜 자식 눈치 보면서 내 소중한 인생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확고한 신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끊임없는 독서의 힘이라는 대답이다. 손정웅 감독은 성실한 다독가로 알려져 있다. 얼마 전에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라는 제목의 새 책을 펴냈다. 지난 15년간 쓴 독서 노트를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한 책이다. 삶에서도 운동에서도 평생 치열하게 살아온 손웅정 감독의 인생 수업이라 할 만한 책이다.   “내게 독서란 책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고 말하는 손웅정 감독은 좋은 책을 찾으면 최소 세 번 이상 읽는데, 검정, 파랑, 빨강 볼펜을 사용해 노트에 옮겨 적고, 외울 문장에는 줄을 긋고 사자성어나 새길 단어에는 별 표시를 하고 더 공부할 생각 거리는 메모하며 전투적으로 책을 읽고 노트에 필사한다. 그렇게 다 읽은 책은 미련 없이 버린다고 한다.   “저는 책을 읽기 전보다 책을 읽은 후에 조금은 나아진 사람이 된 것도 같다고 감히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도 같거든요.”   너무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는 이들에게 손 감독은 단호하게 답한다. 시간을 내야만 한다, 성장을 위해 시간을 내는 건 당연한 일 아니냐?   책의 한 구절이 가슴을 때린다. “평생의 꿈이라면 그거 하나예요. 저는 이기기 위한 뻥 축구는 절대로 안 해요. 예의가 살아 있는 축구를 하고 싶은 거예요. 전 다 제쳐두더라도 이 표현을 꼭 한번 듣고 싶은 거예요. 야, 참 아름답게 축구한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게 제대로 사람답게, 참 아름답게 산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끝으로 서글픈 사족 한 마디. 한국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성인 독서율이 역대 최저인 43.0%로 떨어졌다고 한다. 지난해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1년 동안 책이라는 걸 단 한 권도 안 읽었다는 의미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앞바라지 부모 자식 눈치 손정웅 감독 성인 독서율

2024-05-09

박찬욱 이번엔 드라마로 글로벌 2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1인 4역을 맡은 박찬욱 감독의 신작 드라마 ‘동조자’가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으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달 14일 워너 브러더스 디스커버리의 스트리밍 서비스 맥스에서 첫 방영을 시작한 ‘동조자’는 단순한 첩보 스릴러를 넘어 베트남 전쟁의 상흔과 정체성에 대한 고뇌를 다룬 작품으로 시청자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글로벌 OTT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동조자’는 맥스 TV쇼 부문 글로벌 2위에 올랐다. 노르웨이, 폴란드, 스페인 등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온라인 리뷰 집계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는 87%의 높은 신선도 지수를 기록했다.     2016년 퓰리처상을 받은 베트남계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의 동명 장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 미국으로 망명한 북베트남 스파이의 이중생활을 그린 첩보 스릴러 드라마다. 아이언맨으로 유명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샌드라 오 등 정상급 배우들이 참여해 개봉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교수, 영화감독, 중앙정보국(CIA) 요원, 하원의원 등 1인 4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다. 박 감독은 이번 작품의 공동 쇼러너(총괄 프로듀서)로 제작, 각본과 첫 3화의 연출을 맡았다. 정하은 기자박찬욱 드라마 신작 드라마 박찬욱 감독 글로벌 2위

2024-05-01

3시간 내내 꽉 찬 밀도감·몰입감으로 압도

2018년 BBC는 역대 최고의 외국어 영화 1위로 ‘7인의 사무라이(Seven Samurai)’를 선정했다. 1919년 창간된 일본 최고의 영화전문지 ‘키네마 준보’는 1999년 이 영화를 ‘일본영화 올타임 베스트 순위’ 1위에 올려놓았다. ‘7인의 사무라이’는 ‘라쇼몽’과 함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올해로 개봉 70주년을 맞은 ‘7인의 사무라이’는 1954년 개봉 이래 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역대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중 하나로 거론되어 왔다. 간단한 구성, 복잡하지 않은 스토리 전개만으로도 러닝타임 3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 몰입감과 무언가 꽉 차 있는 듯한 밀도감, 그리고 휴머니즘에 바탕한 구로사와 특유의 연출력 때문일 것이다.   일본 영화의 황금기로 꼽히는 195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 특히 원자폭탄과 미국의 점령으로 인해 상처가 가득했던 시대였다. 그러나 또한 모든 분야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본은 미군의 점령기 동안 음악과 영화 등의 분야에서 미국의 강한 영향을 받는다.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와 함께 이 시대에 등장한 3명의 거장 중 한 명이 구로사와 아키라다. 50년대 일본은 서구의 영화를 수입하는 나라였지만 1954년 ‘라쇼몽’의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을 계기로 일본 영화의 힘을 세계에 알리기 시작한다. 1980년 칸영화제에서 구로사와 감독은 그의 또 다른 사무라이 영화 ‘카게무샤’가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감독으로 추앙받게 된다.     구로사와의 영화들은 휴머니즘을 기초로 하지만 늘 일본적인 것들에서 소재를 찾는다. 그는 가부키, 사무라이와 같은 일본 문화의 아이콘들을 자주 차용하고 일본풍의 색채를 가미시켜 완전히 자기만의 스타일로 소화한다.   ‘7인의 사무라이’는 1954년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하며 ‘매그니피션트 세븐(The Magnificent Seven)’이라는 타이틀로 서구권에 소개된다. 위기에 빠진 마을에 영웅들이 나타나고 마을을 도적들로부터 구출한 후, 유유히 떠나는 내용의 ‘7인의 사무라이’는 이후 ‘황야의 7인’(1960), ‘매그니피션트 세븐’(2016, 리메이크)과 같은 대히트 서부영화들의 원작이 될 정도로 후세대 영화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6세기 봉건시대 일본의 작은 마을. 도적떼들의 끊임없는 습격으로 마을 전체가 위기에 처해 있다. 절망에 빠진 주민들은 하루에 밥 세 끼만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사무라이 칸베에에게 보호를 요청한다. 그는 사무라이 여섯 명을 더 데려온다.     사무라이는 마을 사람들을 훈련시켜 군대를 조직하고 방어벽을 구축한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던 계급인 농민과 전성기의 영광을 누렸던 사무라이들은 근본적으로 동화될 수 없는 갈등 관계이지만 농민들의 절박한 삶에 사무라이들은 다소의 책임의식을 느끼며 마을을 지켜 주려 한다.     ‘7인의 사무라이’는 의로운 존재들에 대한 대중들의 갈망과 사무라이에 대한 일본인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구로사와는 농민과 사무라이들의 관계를 통해 일본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개인 또는 집단 간의 갈등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영화에서의 사무라이와 농민들의 모습은 이전 일본 사회가 지니고 있던 농민 계층과 사무라이의 이미지를 깨뜨리는 것이었다. 두 집단 간의 갈등을 묘사하면서도 사무라이의 기사도 정신과 자기희생을 일본 대중에게 새롭게 각인시켰다.     그는 ‘라쇼몽’의 본질적 주제인 휴머니즘을 사무라이들의 서사로 각색하고 차원을 한 단계 더 높이 끌어올렸다. 약탈자로부터 마을을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밖에는 줄 것이 없는 농부들 그리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떠돌이 칼잡이들의 이야기에 서부극, 전쟁 영화, 범죄 드라마의 방식들을 생동감 넘치는 액션과 휴머니즘적 내용으로 조화시켜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끌어냈고 동양적이면서도 남성미 넘치는 그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마지막 장면, 살아남은 사무라이들이 전쟁에서 죽은 동료들이 묻힌 땅에 서 있다. 밭갈이에 열중인 농부들은 이제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칸베에는 “전쟁에서 이긴 것은 사무라이가 아니라 농민이다”라고 말한다. 절대적인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구로사와의 메시지와 함께 영화는 승리한 자들의 씁쓸한 패배감 속에서 막을 내린다.     구로사와의 사무라이들은 도와 명예를 소중히 여긴다. 사무라이의 험한 세계를 버텨온 자들답지 않게 순수하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그들은 정의로운 일에 담대하게 나선다. 잃어버린 대의명분의 가치를 귀하게 여긴다. 정의를 실현하는 존재들이다.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구로사와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무사정신이다.     영화는 한두 명의 주인공에 치중하지 않는다. 대장 격의 사무라이 칸베에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딱히 주인공이라고는 할 수 없다. 구로사와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던 미후네 토시로는 공격적이고 까불거리는 캐릭터, ‘가장 이질적인 사무라이’ 키쿠치요로 출연한다.   1988년 88세를 일기로 사망한 구로사와는 봉준호, 박찬욱, 조지 루커스, 스티븐 스필버그, 뤼크 베송 등 거장들의 존경을 받는 감독이다. 구로사와의 영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힘의 근원은 영화를 통해 보여준 그의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솔직한 고백이었다.     그는 일본적인 삶의 가치들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고 일본 영화의 틀을 넘어 세계를 무대로 활동했다. 오늘날 K무비의 열풍은 74년 전 ‘라쇼몽’을 발표해 일본 영화의 힘을 세계에 과시했던  구로사와의 영향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몰입감 밀도감 사무라이 영화 구로사와 감독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2024-04-17

손흥민 멱살 잡자 이강인 주먹질

64년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다가 4강전서 완패한 한국 축구 클린스만호에는 전술만 없는 게 아니었다. 대표팀의 붉은 유니폼을 향한 선수들의 '로열티'도 부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끈 한국 축구 대표팀은 지난 6일 2023 아시안컵에서 이전까지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던 요르단에 0-2 충격패를 당하며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대회 내내 졸전을 거듭한 데다 요르단과 경기에서는 유효슈팅을 단 하나도 기록하지 못하는 등 무기력한 모습만 보인 클린스만호를 향한 비난 여론이 크게 일었다. 특히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까지 받은 선수들을 데리고 최악의 경기 내용을 보여준 클린스만 감독에 대해서는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런 와중에 영국 대중지 더선이 14일 한국 대표팀 내 심각한 불협화음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보도를 했다.   사건은 요르단전 바로 전날인 현지시간 5일 저녁 식사시간에 일어났다.   대표팀에서 경기 전날 모두가 함께하는 만찬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결전을 앞두고 화합하며 '원팀'임을 확인하는 자리다.   그런데 이날 이강인(파리 생제르맹)과 설영우(울산), 정우영(슈투트가르트) 등 대표팀에서 어린 축에 속하는 선수들 몇몇이 저녁 식사를 별도로 일찍 마쳤다.   그러고는 탁구를 치러 갔다. 이후 살짝 늦게 저녁을 먹기 시작한 선수들이 밥을 먹는데 이강인 등이 시끌벅적하게 탁구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이건 아니다' 싶었던 주장 손흥민(토트넘)이 제지하려 했지만, 이들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화가 난 손흥민이 이강인의 멱살을 잡았다. 이강인은 주먹질로 맞대응했는데 이는 손흥민이 피했다. 다른 선수들이 둘을 떼놓는 과정에서 손흥민의 손가락이 탈구되고 말았다.   이후 고참급 선수들은 클린스만 감독을 찾아가 요르단전에 이강인을 제외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은 이강인을 제외하지 않았다.     요르단전은 이런 심각한 갈등 속에 킥오프했다. 손흥민과 이강인은 앞선 조별리그 3경기, 토너먼트 2경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요르단전에서도 90분 내내 각자 따로 놀았다.   다만, 대표팀 내 갈등이 이강인과 손흥민 사이에만 있었던 건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     대회 내내 선수들은 나이 별로 따로 노는 모습이었다. 훈련장에서 그룹을 지어 훈련할 때 선수들은 같은 무리끼리 어울렸다.   이강인•설영우•정우영•오현규(셀틱)•김지수(브렌트퍼드) 등 어린 선수들, 손흥민•김진수(전북)•김영권(울산)•이재성(마인츠) 등 고참급 선수들, 그리고 황희찬(울버햄프턴)•황인범(즈베즈다)•김민재(뮌헨) 등 1996년생들이 주축이 된 그룹이 각자 자기들끼리만 공을 주고받았다. 조별리그 1차전을 대비한 훈련 때부터 마지막 요르단전 훈련 때까지, 각 그룹의 면면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나이로만 분열된 게 아니다. 해외파, 국내파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   토너먼트 경기를 앞둔 훈련에서 한 해외파 공격수가 자신에게 강하게 몸싸움을 걸어오는 국내파 수비수에게 불만을 품고 공을 강하게 차며 화풀이하는 장면이 취재진에 포착됐다.   지난해 11월 중국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원정 경기를 마친 뒤 손흥민, 김민재, 황희찬, 이강인 등 유럽파 선수들이 한국에 일찍 돌아가기 위해 사비로 전세기를 임대해 귀국하기도 했다. 원정 일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개인행동'을 한 셈이다. 대표팀, 대한축구협회가 '허락'한 일이었다지만, 국내파 선수들로써는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행동이다.   대표팀은 '원팀'으로 뭉치기는커녕, '사분오열'된 채로 아시안컵에 임했다. 64년 만의 우승 목표는 애초 달성이 불가능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클리스만 감독은 '전술 부재'로 비판 받는 와중에 선수단 관리도 제대로 못 한 실책이 명백하게 드러나 버렸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다 보니 선수들 심리 장악에 능하다는 게 클린스만 감독이 그나마 받던 긍정적인 평가였는데, 이 또한 무색해졌다. 사퇴든 경질이든, 한국 축구와 클린스만 감독의 결별은 피할 수 없어진 분위기다.     연합뉴스손흥민 주먹질 클린스만 감독 대표팀 대한축구협회 국내파 선수들

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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