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이 보안관? 풍자와 조롱, 파격의 전복적 서부극
중앙일보 창간 50주년 개봉 50년 명작 시리즈
<10>불타는 안장
70년대 부조리 향한 비판·새 가치관 열망 담아
브룩스 감독 기발한 연출로 전통적 장르 재창조
멜 브룩스 감독의 이 걸작은 전통적인 서부극 장르를 신랄한 풍자와 파격적인 유머로 재창조하며 당시 관객들의 기대를 완전히 뒤엎었다. 단순한 코미디를 넘어, 인종 문제와 사회적 부조리를 가차 없이 조롱하며 미국 사회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았다. 그의 유머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통쾌하다.
영화는 평화로운 서부의 백인들만 살던 작은 마을 락 리지에 철도가 놓이면서 시작된다. 주 법무장관 헤들리 라마는 철도 사업을 이용해 마을 땅을 헐값에 매입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인종 차별이 만연한 마을 분위기를 이용해 흑인 사형수였던 바트를 보안관으로 임명하는 교묘한 계략을 쓴다. 예상대로 마을 주민들은 바트를 경계하고 적대감을 드러내지만, 극한의 상황 속에서 바트의 용기와 재치에 감화되어 점차 마음을 열게 된다. 라마는 결국 무력으로 마을을 장악하려 하지만, 바트와 마을 주민들의 끈끈한 유대감과 맞서 싸우다 실패하고 만다.
정의로운 보안관이 악당을 물리친다는 내용은 서부극에 잘 사용되는 소재이기는 하나 흑인 보안관을 주인공으로 세운 것은 당시로써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이러한 설정은 단순한 인종적 다양성을 넘어,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다. 또, 백인 영웅 대신 흑인 보안관이 등장하고, 선악이 분명하게 대립하는 단순한 구조 대신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예측불허의 상황을 연출했다.
코미디 영화의 아름다움은 사회의 문제점과 현실의 부조리를 꼬집어 유쾌하게 풀어냄과 동시에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 역시 유머와 풍자를 절묘하게 조화시켰다는 것이다. 서부극 특유의 배경 음악과 영상미를 과장되게 표현해 코믹한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를 통해, 인종차별과 서부극의 전형적인 클리셰를 동시에 풍자하며, 1970년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대표적으로 감독은 KKK 단원과 나치를 비롯한 악당들이 줄지어 등장하는 장면이나 ‘Yes’와 ‘No’를 칠해 놓은 황소, KKK단의 하얀 가운 뒤에 적힌 ‘Have a nice day’, 평원에 등장하는 오케스트라와 같은 시각적인 개그로 작품의 풍자적 깊이를 더했다.
또, 이 영화는 브룩스 감독 특유의 기발한 연출 기법이 돋보이기도 한다. 초현실주의와 슬랩스틱 코미디, 패러디, 당시로써는 파격적일 정도의 저속함이 조화를 이루며,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과장된 총격전, 기상천외한 무기, 슬로우 모션과 속도감의 조화, 극단적인 리액션 등을 통해 서부극의 전형적인 액션 장면을 파격적으로 비틀고 코믹하게 재해석했다.
멜 브룩스 감독이 이 작품에서 사용한 유머는 단순히 시대의 유행을 좇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특성과 사회 구조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한다. 권력 남용,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 인간의 욕망 등 시대를 초월한 주제들을 유쾌하게 다루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고 있다.
1970년대는 미국 사회가 격동기를 겪던 시기였다.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인해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불타는 안장’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권위에 대한 반항,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비판, 인종차별, 새로운 가치관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다.
정하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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