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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중앙일보와 나

내가 중앙일보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예닐곱 살 때다. 깡 시골인 우리 동네에 어느 날, 말쑥한 차림새의 남자 두 명이 가가호호 방문했다. ‘중앙일보’ 판촉을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나름 지식층이었지만 시류에 떠밀려 시골에 정착했던 아버지는 세상 정보에 대한 갈증으로 얼른 구독신청서에 도장을 찍었다. 판촉 직원들은 ‘소년중앙’ 한 권을 보너스로 주고 갔다. 읽을거리라고는 교과서밖에 없었던 우리 형제들에게 그 잡지는 너무나도 찬란한 선물이었다. 읽고 또 읽어 겉장이 너덜거릴 정도였다. 나중엔 동네 친구들에게도 10원씩 받고 빌려주기도 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우리 집에 중앙일보는 큰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새벽마다 자전거 멈추는 소리와 함께 털썩하고 신문이 집안으로 떨어지면 우리 집 개 독구가 컹컹 짖어댔다. 그 소리에 온 식구가 눈을 떴다. 아버지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누가 나가서 신문 집어 와라”고 하셨다. 바깥의 신선한 공기와 함께 배달된 중앙일보는 아버지가 제일 먼저 읽고 그다음 순서는 엄마였다. 한자가 반이 넘었지만 나와 동생들도 학교에 다녀오면 광고까지 열심히 읽었다.     텔레비전도 전화도 없던 시절, 중앙일보는 우리 가족이 세상을 내다보는 유일한 통로 같은 존재였다. 희대의 살인마 김대두가 외딴집만을 대상으로 범행하고 있다는 소식도 신문을 통해 접했는데 동네와 조금 떨어져 있던 우리 집에도 오면 어쩌나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   어른의 세계를 훔쳐보는 일도 중앙일보를 통해서였다. 당시 ‘내 마음의 풍차’라는 최인호의 소설이 약간 선정적인 삽화와 함께 중앙일보에 연재되고 있었다. 최인호 특유의 익살이 가미된 내용이었는데 정말로 흥미진진했다. 주인공이 매춘부에게 돈을 주며 자폐아 이복동생의 첫 경험을 주선한 부분에서는 다음 회가 궁금해 잠까지 설쳤다.     그때는 신문 배달부가 매달 수금을 하러 왔다.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궁핍한 살림이었지만 아버지는 신문 대금은 꼬박꼬박 냈다. 멀리까지 신문을 배달해 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러나 불행히도 신문 구독은 반년을 넘기지 못했다. 100호 남짓한 우리 마을에서 신문을 보는 집은 딱 두 집, 이장네와 우리뿐이라 타산이 맞을 턱이 없는 보급소에서 배달을 중단한 까닭이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신문에서 봤는데’라며 새로운 소식을 전파하던 아버지의 기쁨도 사라졌고 온 가족이 침울해졌다. 아버지는 궁리 끝에 시내에 있는 고모 집으로 신문을 배달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학교를 파한 우리 형제들이 당번을 정해 고모네에 들러 신문을 집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모두 중앙일보의 애독자였다.   나는 서울에 독립해 살 때도 중앙일보를 구독했다. 당시 각 신문사의 판촉 경쟁이 치열했다. 신문을 구독하면 자전거를 준다느니, 밥통을 준다느니 했지만 나는 한눈팔지 않았다. 경품이 욕심나긴 했지만 왠지 중앙일보를 배신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미국에 오면서 중앙일보와의 인연도 끝난 줄 알았다. 가족, 친구와의 이별 못지않게 더는 중앙일보를 못 본다는 아쉬움도 컸다. 그런데 미국에도 중앙일보가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인 마켓에서 중앙일보 가판대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바로 구독 신청을 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끝나버린 줄 알았던 중앙일보의 인연이 미국에 와서도 이어졌던 것이다.     인연은 더 깊어졌다. 중앙일보 샌프란시스코 지사에서 기자로 11년 동안 일을한 것이다. 이후 미국직장에 취직하면서 중앙일보를 그만뒀지만 매주 칼럼을 썼다. ‘이계숙의 살며 느끼며’란 타이틀로 500회나 연재했다. 나름대로 인기가 있었던지 조지아주로 이사 간 한 지인이 그쪽 중앙일보에도 내 글이 실린다는 소식을 전해주었고, 뉴욕에서 팬레터가 오기도 했다. 너무너무 신기해 동네방네 자랑했었다.    샌프란시스코 지사가 문을 닫았을 때는 너무나 슬프고 가슴이 아팠다. 너무 큰 상실감에  한동안은 그냥 멍했었다. 고심 중에 LA에서 발행하는 중앙일보를 우편으로 받아 볼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기뻐 당장 구독신청을 했다. 우편이기에 가끔  배달이 지연되기는 하지만 중앙일보를 계속 볼 수 있는 것만으로 어디냐 싶어 마냥 좋기만 하다.   미주중앙일보가 창간  50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함께 한 50년, 함께 할 50년’이란 캐치프레이즈는 정말로 훌륭하다. 그렇다. 나도 중앙일보와 50년 넘게 함께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함께 할 작정이다.  이계숙 / 자유기고가기고 중앙일보 중앙일보 샌프란시스코 중앙일보 가판대 그쪽 중앙일보

2024-10-01

타운 쓰레기 불법투기 '몸살'

  범죄통계 매체 ‘크로스타운’은 민원서비스 ‘MyLA311’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LA시 내 불법 쓰레기 투기 관련 민원은 9만9936건이라고 밝혔다.     한인타운은 총 2339건의 민원이 접수돼 LA시 중에서 8번째로 많았다. 하루 평균 6건의 민원이 접수된 셈이다.     가장 많은 민원이 들어온 곳은 밴나이스로 3387건에 달했다. 또 선밸리(3131건), 노스할리우드(2569건), 파노라마 시티(2457건), 파코이마(2407건) 등이 뒤를 이었다.     매체에 따르면 불법 쓰레기 투기는 주로 폐기물 처리 비용을 피하려는 이들로부터 행해진다.     다운타운 토이 디스트릭에서는 빈 판지 상자가 골목 아무 곳에나 내버려 지기도 하고, 밸리 지역에서는 건설사나 컨트랙터들이 밤에 5번, 118번, 170번 프리웨이 인근에 부서진 콘크리트 또는 기타 자재 더미를 버리고 가기도 한다고 매체는 전했다.     이와 관련해 실제로 지난해 최다 민원을 기록한 4곳 중 3곳이 LA북부 지역을 관할하는 6지구에 집중돼 있었다.   반면, 같은 통계에 따르면 불법 쓰레기 투기와 관련 LA시 전체 민원 수는 최근 2년간 감소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었던 2020년 12만9000건에 이르렀지만 지난해는 22.5% 감소한 9만9936건을 기록했다.     지난해 8월(9310건)부터 매달 하락세를 이어가던 민원 규모는 12월 6428건까지 줄었지만, 올해 들어서 1월 7123건으로 다시 증가했다.     한편, LA시 회계관 론 갤퍼린은 위생국이 이런 무법 행위에 대처할 자원이 부족하다고 지난 2021년 밝힌 바 있다.   그는 당시 ‘팡일링 업’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470스퀘어마일의 대도시 전역에 불법 투기 감시 카메라가 19대뿐”이라며 “이 문제에 접근할 포괄적인 전략이 없기 때문에 법 집행에도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LA시는 지난 2002년 불법 투기 범죄 제보 프로그램을 도입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은 수년째 운영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9월 LA시 관계자들은 해당 신고를 통해 경범죄 혹은 중범죄 유죄 판결로 이어질 경우 최대 1000달러의 보상금을 제보자에게 지급하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   장수아 기자가판대 신문 가판대 양심 한인타운 김상진 기자

2023-02-27

“무료 신문이라도 뭉텅이로 가져가면 도둑질” 상식잃은 일부 업소, 배달용 받침대·포장지 등으로 사용

종이 신문 무단 절취가 도를 넘고 있다. 애틀랜타 한인 밀집지역인 둘루스나 스와니 주요 마켓마다 신문 가판대에서 뭉텅이로 집어가는 사건이 줄어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점심 약속을 위해 둘루스의 한 식당을 방문했던 김영무(가명)씨는 식당 종업원이 신문을 뭉텅이로 쌓아놓고 접고 있는 현장을 발견했다. 배달용 봉투의 받침대로 쓰기 위한 것이었다. 평소 한인신문을 애독하고 있다는 김씨는 “신문을 그렇게 쓰면 되겠느냐”며 항의했지만 식당 종업원은 “지난 신문을 갖다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대답했다. 하지만 김씨는 해당 신문이 당일 신문임을 확인했다며 본사에 사진까지 찍어 제보해 왔다.     지난 8월에는 도라빌의 한인 마켓 가판대에서 미니밴을 타고 온 외국인 남성이 신문을 뭉텅이로 쓸어 담아 가는 현장이 목격되기도 했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본지 배달 직원은 “처음에는 신문을 가지러 왔나보다 생각했는데 중앙일보를 비롯한 여러 한인 신문을 뭉텅이로 싣는 것을 보고 이유를 물었지만 황급히 차를 빼서 가버리는 바람에 차량 번호만 적어두었다”고 말했다.     매일 가판대에서 한인신문을 가져가 읽는다는 스와니 거주 이일영(65)씨는 “종이신문을 뭉텅이로 가져다가 식당이나 포장용으로 쓴다는 이야기는 전에도 많이 들었다”며 “애써 만든 신문을 일부 한인들이 그렇게 훔쳐가는 것은 기본 양심의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씁쓸해 했다.       애틀랜타 조지아 한인상공회의소의 이종원 고문변호사는 “종이 신문이 무가지라 해도 1인 당 한 부씩 가져간다는 전제 하에 배포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상식에 반하여 다량으로 신문을 가져가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종이 신문은 한인 사회 공통의 자산인 만큼 절도니 범죄니 하는 것 이전에 먼저 양식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무가 신문을 뭉텅이로 가져가는 것이 절도죄에 해당된다는 판례가 이미 나와 있다. 2010년 5월 한국 대법원은 생활정보지 25부를 훔친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에 대해 “비록 무료로 배포되는 신문이라도 광고 수익 등 상업적 목적으로 발행됐고, 구독자들에게 한 부씩 골고루 배포될 수 있도록 직원을 두고 관리한 점에 비춰 발행사 쪽이 소유권을 포기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씨의 유죄를 인정해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것이 그것이다.     한편 본지는 끊이지 않는 가판대 신문 다량 절취 사건에 대해 증거자료를 확보, 경찰 제보 및 수사 의뢰를 검토 중이다.    김지민 기자  뭉텅이로 도둑질 평소 한인신문 뭉텅이로 집어가 신문 가판대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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