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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선택이 운명을 좌우한다

빌 게이츠가 대학교 3학년 때 하루는 아버지에게 상의드릴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진지하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니 빌 게이츠 아버지는 약간 긴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빌 게이츠는 아버지에게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이 자기 관심이고 열정이며 이를 위해 대학을 중퇴해야겠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하버드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고 혹시 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으니 그래도 대학교 졸업장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쉽게 승낙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빌 게이츠는 “Now or Never” 지금 아니면 미룰 수가 없고 지금 해야 한다고 말하고 하버드를 3학년을 중퇴하고 그는 우리가 잘 아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듭니다.     우리가 미국에서는 영어로 소통하듯, 컴퓨터를 이용할 때 빌 게이츠가 이때 만든 소프트웨어를 전 세계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1세기 가장 성공적인 기업이 됩니다. 빌 게이츠는 대학을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든 것은 지혜로운 ‘선택’이었습니다.   개인에 있어서나 회사 혹은 국가에 있어서나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사람들이 바른 실행을 하지 못하는 세 가지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대범, 우리 인류가 선(善)이 좋은 줄은 알되 선을 행하지 못하며, 악이 그른 줄 알되 악을 끊지 못하여 평탄한 낙원을 버리고 험악한 고해로 들어가는 까닭은 그 무엇인가. 그것은 일에 대하여 시비를 몰라 실행이 없거나, 설사 시비는 안다 할지라도 불같이 일어나는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거나, 철석같이 굳은 습관에 끌리거나 하여 악은 버리고 선은 취하는 실행이 없는 까닭이니, 우리는 정의어는 기어이 취하고 불의어는 기어이 버리는 실행 공부를 하여, 싫어하는 고해는 피하고 바라는 낙원을 맞아오자는 것이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지혜롭고 바른 취사를 하지 못하는 첫째 이유는 ‘일에 당하여 시비를 몰라서…’ 즉 어떤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옳음과 그름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내 백성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한 선지자 말씀입니다. (호세아 4:6)   원불교 정전 ‘고락의 법문’에서도 낙을 버리고 고로 들어가는 첫째 원인을 “고락의 근원을 알지 못함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에게 유리한 것은 옳은 일, 불리한 것은 그른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즉 자기 이해가 옳고 그른 것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한때 한국에서 한 코미디언이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라는 책을 써서 회자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좋지 않은 음식을 먹는다고 건강이 금방 나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음식이 분명 우리 몸에 영향을 줍니다. 우리의 옳은 혹은 그른 행동은 반드시 어떤 결과를 초래합니다.   한 경찰이 자기와 친분 있는 한 스님께 자기 경험담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분은 경찰로서 도굴꾼을 체포하는 담당이었습니다. “스님, 전 불교 신자는아니지만 부처님의 인과 진리 말씀은 확실히 믿습니다. 과거에 도굴꾼들이 값비싼 유물을 도굴해서 몰래 팔아 큰돈을 버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가지 않아서 잡혀 번 돈을 다 빼앗기고 결국 패가망신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 왔습니다. 그들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식까지 망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심은 데로 거두는 것이 인과의 진리입니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에게 천만가지경전을 다 가르쳐 주고 천만가지 선(善)을 다 장려하는 것이 급한 일이 아니라, 먼저 생멸 없는 진리와 인과보응의 진리를 믿고 깨닫게 하여 주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니라.”   필자의 스승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부처님의 어떠한 법문을 믿지 않아도, 짓는 데로 받는다는 인과 진리 만은 꼭 믿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선택 운명 게이츠 아버지 인과 진리 대종사 말씀하시기

2024-07-18

어린 아들 차량 방치로 8년 복역한 남성, 교도소 옮겨 또 징역살이

10년 전 한여름 불볕더위 속 자녀를 차에 방치해 목숨을 잃게 한 조지아주 아버지가 복역을 끝낸 뒤 또다른 유죄판결 징역형을 살기 위해 교도소를 옮겼다.   18일 AP통신에 따르면 아들 쿠퍼 해리스를 승용차 안에 방치해 2016년 아동학대 및 과실치사 유죄 판결을 받은 저스틴 로스 해리스(사진)는 지난 16일 파더스 데이에  8년형을 마치고 메이컨 주립교도소에서 풀려났다.   그는 10년 전인 2014년 6월, 22개월 된 아들을 출근 후 아침부터 7시간 이상 차에 홀로 내버려둬 사망에 이르게 했다. 당시 애틀랜타 홈디포에서 일하던 그는 자녀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출근한 것으로 착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아내와 범행을 계획한 정황과 외도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 전국적인 공분을 샀다.   당시 캅카운티 검찰이 그를 1급 살인으로 기소해 2016년 가석방 없는 종신형 선고가 내려졌으나 상급심인 조지아주 대법원이 2022년 살인 유죄판결을 뒤집으며 사건을 과실치사로 판단, 8년으로 형량을 줄였다.   다만 그는 미성년자 성착취 관련 혐의로 별도 유죄 판결을 받아 캅카운티 교도소에서 2년의 징역을 더 살아야 한다. 그는 당시 16세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음란물을 배포하는 등의 성범죄를 저질렀다. 감옥 이송 기록에 따르면 그는 메이컨 주립교도소에서 석방된 16일 캅카운티 교도소를 시설을 옮겨 곧바로 다시 수감됐다.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조지아 파더스 조지아 남성 조지아주 아버지 조지아주 대법원

2024-06-18

“그들은 분명 살인을 했다…반드시 책임 물어야” 조나단 정 부친 정정식 선교사

벨가든 지역 바이시클 카지노 주차장에서 보안 요원 5명에 의해 살해된 조나단 정〈본지 6월 14일자 A-1면〉씨는 4대 독자였다. 아버지인 정정식(82) 선교사는 아들만 잃은 게 아니다. 이 사건 때문에 둘째까지 잃었다. 딸(바네사 정)은 오빠의 사망 당시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본 뒤 충격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버지 정씨는 그 동영상을 보지 않았다. 아니 볼 수 없었다. 재판은 17일부터 시작됐다. 이제 법정에서는 그 장면을 봐야 할지도 모른다. 현재 정씨는 치매를 앓는 아내와 함께 재판이 열리는 롱비치 법원 인근 아파트에 잠시 머물고 있다. 지난 15일 재판을 앞둔 정씨를 만나 심정을 들어봤다.   관련기사 정신질환 한인 또 비극…다섯명이 짓눌러 죽였다 귀가하려던 조나단 정 사냥감 몰듯 덮쳤다  -지금 심정은.   “분명한 건 그들이 우리 아들을 죽였다는 점이다.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우크라이나에서 선교 사역 도중에 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이 일을 가슴에 묻으려고 했다. 그런데 딸도, 사위도, 변호사도 모두 소송을 권하더라. 이 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라고 했다. 그래서 협조하기로 했다. 나는 승소가 목적이 아니다. 결국 사회에서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원인, 그게 무엇인지 밝히는 게 더 중요할 뿐이다.”   -아들이 정신질환을 앓았는데.   “조나단은 나중에 정부의 도움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려고 했다. 심리학자였던 동생도 그런 오빠를 심적으로, 의학적으로 정말 열심히 도왔다. 그날 조나단은 그 누구에게도 해를 가하지 않았다.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고 순순히 그들의 말을 따랐다. 그런데도 주차장까지 쫓아가서 그런 식으로 죽인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책임이라는 것은.   “카지노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그들의 규정대로 얼마든지 ‘나가라’고 할 수 있다. 그건 그들의 일이자, 의무 아닌가. 그런데 사람을 죽이는 건 그들의 의무가 아니다. 그 일은 분명한 불법이었고,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그 이후 딸도 잃었는데.   “딸의 죽음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원래 딸은 소아과 의사가 되려고 했다. 그러다가 심리학자가 된 것이다. 오빠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기 오빠에게 굉장히 많은 도움을 줬다. 심리학자로서 오빠를 옆에서 많이 도왔다. 그 누구보다 오빠의 상태를 가장 잘 알았고, 남매가 아주 친밀했다. 그런 아이가 그렇게 죽었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딸이 떠나기 전 남긴 게 있나.   “오빠가 죽고 나서 딸은 힘들다는 얘기를 전혀 안 했다. 그래서 그렇게 힘든 상태였는지 몰랐다. 의사인 사위도 마찬가지였다. 심리학자라 해도 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만큼 충격이고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직도 딸과의 마지막 통화가 선명하다. 딸이 카지노 측 변호사와 길고 긴 데포지션 절차를 마친 뒤 그러더라. 이 소송은 반드시 끝까지 가야 한다고 … 너무 중요하니까 포기하지 말라고 하더라.”   -이 사건 때문에 자녀를 모두 잃게 됐는데.   “죽음이란 건 인간인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딸의 죽음까지 겪으면서 심적으로는 오히려 힘든 걸 다 잊어버렸다. 분명한 건 지금 카지노 측은 인간의 생명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이 사회가 꼭 알아줬으면 한다.” 장열 기자ㆍjang.yeol@koreadaily.com조나단 유가족 유가족 아버지 유가족 인터뷰 아버지 정씨

2024-06-17

[이태리패션타운] 파더스데이 근사한 아버지 양복이 '1+1'

언제나 묵묵히 자식들만 챙겨온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을 위해 '이태리패션타운'에서 특별한 파더스데이 프로모션을 준비했다.     이태리패션타운은 신사의 품격을 완성해 주는 고급 양복을 1+1(바이 원, 겟 원 프리)의 혜택으로 제공하고 있다. 백화점 가격 2600달러를 호가하는 울&캐시미어 150수 이상의 마크 발렌티노 양복은 1399달러에 하나 사면 하나를 공짜 선물로 안겨준다. 또한 100년 전통의 런던 포그(599달러), 한국 양복(299달러)과 한국인 체형에 잘 맞는 울&실크 양복(379달러) 등도 구입 시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임구영 대표는 "한국인의 체형에 제일 잘 맞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우아하게 느껴지는 좋은 양복들이다. 누구나 한두 벌쯤 가지고 있으면 평생 멋스럽게 연출할 수 있다. 이벤트 기간을 활용해 한 벌 값으로 아버지 양복을 두 벌 장만해 드리는 효자 효녀 고객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여름철에 요긴한 콤비 재킷과 여름 잠바, 인견 티셔츠, 발렌티노 슬림핏 셔츠, 제냐 넥타이 등도 특별가에 제공하고 있으며 골라잡아 3장 100달러 코너를 통해서도 다양한 종류의 의류들을 저렴하게 만나볼 수 있다.     이태리패션타운은 LA 윌셔와 웨스트 모어랜드에 위치하며, 월~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영업한다.     ▶문의: (213)382-3311   ▶주소: 3100 Wilshire Blvd,            Los Angeles이태리패션타운 파더스 아버지 아버지 양복 한국 양복 실크 양복

2024-06-06

[이 아침에]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아침저녁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낮에는 등살이 뜨거운 햇살, 참 좋다. 텃밭에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부추를 심어 놓고 매일 그곳으로 향한다. 오늘도 층층이 올려놓은 돌에 걸터앉아 마른 잎들을 다듬으며 부추 한 줌을 딴다.     텃밭에 나와 고개를 돌려보면 여기저기 할 일이 산더미다. 가족들은 몸은 생각하지 않는다며 잔소리가 심하다. 사실 텃밭을 가꾸다 보면 허리도 무릎도 아프지만, 그 순간에는 잡생각이 나지 않고 무아지경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정원 일을 좋아한다. 그리고 가끔은 텃밭 일 중간에 그리움의 고운 구름에 올라타 멍해지기도 한다.     ‘아버지 날’이 다가온다. 새삼 아버지가 그리운 시기다. 어릴 적 나는 부잡스러운 오빠와 동생 때문에 잘못도 없는데 함께 무릎을 꿇고 반성하는 벌을 받곤 했다. 아버지에게 솔직하게 말했으면 그런 억울함은 없었을 터인데, 나름 의리를 지킨다고 그러질 못했다. 어머니는 큰오빠와 작은 오빠 머리에는 늘 혹이 있었다며 아버지 흉을 보시곤 했다. 아버지는 작은 일에도 화를 잘 내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중학교 때 사 주신 영어 사전을 아직 보관하고 있다. 마치 아버지의 유품 같아서다. 사전의 옆면에는 ‘제일 건강, 제이 계속 노력’이라는 아버지 멋진 글씨가 있다. 나는 잔병치레는 하지 않았지만 몸은 약했기 때문이다.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며 아버지가 가꾸던 친정집 꿈을 꾸곤 했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 그네를, 오빠와 동생을 위해 철봉 만들어 준 작은 마당이 그리웠다. 분홍 찔레꽃으로 덥힌 판자 울타리에는 아버지가 분필로 쓴 시들이 있었다. ‘아름다운 꽃을 꺾지 말고 쳐다보자.’   나도 아버지처럼 우리 뜰에서 그렇게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너무 강직한 성격 탓에 어머니와 자식들은 고생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런 아버지의 정신적 유산이 오히려 자랑스럽다. 어버지는 올바르고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했고, 채소를 가꾸고 꽃나무를 심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아버지 기일이 되면 촛불을 켜며 행복한 회고를 하셨다.     ‘불(부처) 효자’라는 영화를 만든 마가 스님의 아버지는 오랜 외도 끝에 늘그막에 본처에게 돌아왔다고 한다. 본처는 그런 그를 용서하며 자녀들이게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폭력을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들 같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모든 아버지께 축복을 보낸다. 최미자 / 수필가이 아침에 아버지 아버지 기일 너희 아버지 사실 텃밭

2024-06-02

왜 자꾸 충혈되고 뻑뻑하지? 혹사당한 눈, 피로야 가라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1초도 쉬지 못하는 눈은 사실 가장 예민한 기관이기도 하다. 햇볕이나 미세먼지에 쉽게 자극을 받을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은 TV, 스마트폰, 컴퓨터, 게임기 등 수많은 전자기기들에 하루 종일 둘러싸여 있는 경우가 많아 눈을 혹사하게 되고 피로와 시력 저하, 충혈, 안구 건조 같은 증상들을 자주 겪기도 한다.     근육의 피로가 쌓이면 근육을 움직이지 않고 충분히 쉬어야 하듯 눈의 피로가 심할 때 눈을 감은 채로 휴식을 취해주면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된다. 특히 눈 주위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만들어주면 눈의 충혈이나 피로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다.     가정용 의료기기 전문기업 '휴비딕'의 'FE-4601 프리미엄 냉/온 눈마사지기'는 따뜻한 온열과 쿨링 마사지로 눈에 포근한 휴식을 선사하는 제품이다. 눈이 피로할 때, 눈이 뻑뻑할 때나 간지러울 때 하루에 15분만 투자하면 피로한 눈에 충분한 휴식을 줄 수 있다.   냉/온 눈마사지기는 인체에 최적화된 공기압과 진동으로 눈의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고 혈액 순환에 도움을 주어 눈의 피로 회복을 돕고, 노폐물과 기름 배출은 물론, 기름샘의 기름을 녹여 눈물샘 관리에 도움을 줘 안구 건조증을 완화해 주며, 눈 다래끼는 물론 충혈에도 도움이 된다. 내장된 마이크로 모터가 분당 7000회의 진동을 일으켜 마사지 효과가 더욱 높다.     또한 별도의 냉각 과정이 없는 자체 쿨링 기능으로 20도(섭씨)의 시원한 냉찜질을 구현해 붓기 제거에도 탁월하다. 최고 온도 42도(섭씨)를 선택하면 인체에 최적화된 따뜻함으로 눈 주변을 풀고 피로회복에도 그만이다. 사용자에 최적화된 7가지 모드를 지원하고 있어 원하는 집중 케어가 가능하며, 블루투스 스피커 연결 기능을 통해 음악을 들으며 마사지를 즐길 수 있다.     미주 최대 한인 온라인 쇼핑몰 중앙일보 '핫딜'에서는 휴비딕 프리미엄 냉/온 눈마사지기를 30달러 할인한 89.99달러에 절찬 판매 중이다.   ▶상품 살펴보기:hotdeal.koreadaily.com   ▶문의:(213)368-2611핫딜 눈마사지기 아버지 세상 아버지들

2024-05-29

"바디캠 영상 남김없이 다 공개해야"

LA경찰국(LAPD) 경관 총격으로 피살된 양용씨 사건 당시 현장 경관의 바디캠 영상이 공개〈본지 5월 17일 A-1면〉됐지만 일부에 그쳐 전체 영상 및 음성녹취 공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관련기사 문 열고 총격까지 단 8초...양용씨 피살사건 바디캠 공개 양용씨 피살 영상 등 본지, 정보공개 청구 본지는 정찬용 변호사와 함께 지난 10일 ‘공공기록 정보 공개(Request for Records under the Public Records Act)’를 청구한 바 있다. 6일 뒤 LAPD는 바디캠 영상을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했다. 영상의 전체 분량은 24분이지만 여러각도의 같은 영상이 포함되어 있어 실제 현장 상황 분량은 13분 정도에 불과하다. 당시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시간부터 총격 후 사건 수습까지는 대략 5시간 정도가 걸렸다.   정 변호사는 “공개되지 않은 총격 이후 양용씨 응급구조 상황 등 앞뒤 영상과 녹취를 모두 봐야 전체 맥락에서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며 “비록 일부 영상은 공개됐지만 당국에 정보 공개 청구는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바디캠 영상을 봤나. “봤다. 유가족과 경찰의 엇갈린 발언으로 불명확했던 부분은 해소됐다. 양씨가 칼을 소지하고 있었고 경관이 ‘수차례 총격(multiple shots)’을 가한 것은 확인됐다. 하지만 영상으로 경찰의 과실 역시 드러났다.”   -어떤 과실인가. “우선 강제적이지 않은 병원 이송을 가족이 희망했고 이에 대해 경찰은 암묵적으로 합의했다는 점이다.”   -경찰은 당시 양씨 아버지에게 필요할 경우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바디캠에서 당시 현장에 있던 책임 경관(수퍼바이저)은 ‘치료를 받도록 가게 하기 위해선 그를 강제로 빼낼 수 없다’고 양씨 아버지 양민씨에게 수차례 언급했다. 그러다가 경찰은 ‘침입(trespassing)’ 혐의로 체포할 수 있는 옵션을 제시하긴 했지만 이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유가족은 하지 않았다. 그럼 유가족은 당연히 경찰이 무력을 사용하여 양씨가 다칠 수 있는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다.”   -또 다른 경찰의 과실은. “가장 큰 문제는 바디캠 공개시 고인의 얼굴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올린 것이다. LAPD가 이례적일 정도로 신속하게 바디캠을 공개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양씨의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모두 공개한 것은 사생활 침해이자 고인에 대한 모독이다.”   -이름이 공개됐으니 얼굴도 공개할 수 있지 않나. “양씨는 범죄자가 아닌 환자였다. 더구나 부모님 집에 있는 상황이었다. 정신질환이 있는 것도 사적인 정보인데 이름은 알려진다고 쳐도 모두가 보는 유튜브에 양씨의 얼굴과 집안의 모습을 공개한 것은 명백한 경찰의 과실이다.”   -양씨 가족은 바디캠 공개 후 ‘아들이 죽는 장면을 수차례봐야 했다’고 성명서를 냈다. “유가족 입장에서 겁에 질린 아들의 표정과 모습이 낱낱이 공개된 것은 모욕적이고 상처가 될 수 있다.”   -그외 경찰 과실이 있나. “복부에 가한 세 번째 총격의 당위성, 비살상무기 소지 경관의 대응 여부, 911에 신고한 클리니션의 진술 등은 추가로 조사해봐야 하는 부분이다.”   -지난 10일 시정부와 LAPD에 청구한 공공기록은 어떤 것들인가. “사건의 전반을 담긴 5월 2일 오전 10시 50분~오후 3시 동안의바디캠 및 차량 내부 카메라 영상 및 녹취록이다. 하지만 지난 16일 공개된 바디캠은 주요 부분만 편집되어 실제 길이보다 짧다.”   -짧지만 중요한 부분은 이미 공개됐다. 더 필요한가. “오가는 차 안에서 경관들이 나눈 대화, 그리고 현장 수습 과정 등 모든 것을 확인해야 한다. 보통 굵직한 것들이 나오면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무시되는 사소한 대화들 속에서 총격을 가한 경관이 선입견이 있었는지 등 중요한 단서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기록을 받아봐야 한다.”   -정보 공개 청구에 대한 LAPD의 답변이 있었나.   “아직받지 못했다. 27일까지 공공기록 정보 공개 청구에 대한 ‘결정서(determination letter)’를 보내지 않으면 민사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장수아 기자정보공개 소송제 경관 총격 공공기록 정보 양씨 아버지

2024-05-21

[문예 마당] 인순이 예찬

  요즘 왕년의 한국 최고 디바 4명이 결성한 ‘골든걸스’라는 그룹이 화제다. 그중 맏언니 격인 인순이는 67세로 70을 바라보고, 나머지 3명도 환갑이 눈앞이다. 하지만 이들의 에너지 넘치는 공연은 탄성을 불러일으킨다. 그 중심의 인순이가 특히 눈길을 끈다.         그래서인지 이곳저곳에서 인순이 인터뷰 내용이 많이 나온다. 얼마 전엔 한 TV프로그램에서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그녀는 가수로 성공한 지금까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살고 있다고 했다. 그 인터뷰를 본 후 인순이에 대해 새로운 평가를 하게 됐다.     인순이는 한국인 어머니와 주한 미군이었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흑인인 아버지는 복무 후 미국으로 돌아갔다. 인순이는 “10살쯤에 아버지가 미국으로 오라는 연락을 했다. 그런데 안 갔다. 왜냐하면, 미국에 아버지 가족이 있을 거고, 내가 가서 그 가정을 흔들기가 싫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또 홀로 남게 될 어머니 걱정도 했다고 덧붙였다. 인순이는 “다름으로 인한 모진 시선을 받았던 딸을 매서운 바람에도 꽃이 필 수 있도록 끝까지 잘 지켜준 어머니,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잘 견뎌준 어머니께 무한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인순이는 남들보다 오랜 사춘기를 겪었다.  어머니는 어머니 나라가 있고 아버지는 아버지 나라가 있다.  그럼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라는 정체성 혼란으로 방황했다고 한다.  사춘기 시절 버스를 탔는데 짓궂은 남학생들이 외모를 놀리며 괴롭혔다. 그때 주위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남학생들이 놀리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결심하고 “그래 너희들 말이 맞다”고 당당하게 맞서니 그들이 할 말이 없는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고 한다.       과거 ‘신정아 게이트’로 한국 예술·문화계가 학력위조 사건으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그때 인순이 이름도 도마에 올랐다. 인순이는 서강대학교에서 자신의 히트곡인 ‘거위의 꿈’을 주제로 연 특별강연에서 ‘대한민국에서 혼혈아로 산다는 것, 혼혈가수로 살면서 어려웠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강연 끝에 “가정 형편상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고 겨우 중학교 졸업장을 받았다”고 밝혔다.     얼마 전 기자로부터 학력을 묻는 전화가 왔길래 날 비껴갔으면 했던 것이 결국 왔구나 생각했단다. 하지만 솔직하게 다 말하고 웃는 사진 넣어주고, 욕을 먹을지언정 동정받지 않게 써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어 “사람들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어 잠시 나도 착각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며 그동안 잘못 기재된 나의 학력을 고칠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야 밝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인순이는 한국 최고의 가수이다. 그녀에게 학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순이는 도전의 아이콘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가수들은 무대를 잃어 설 자리가 없었다. 자신에게 동기부여를 하려고 보디빌딩 대회에 도전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거울 앞에 접착 메모지를 수십장 붙였다. ‘이러다가 잊힌다’ ‘나를 컨트롤 하고 싶다’ ‘나를 이기고 싶다’ 등 3개월 동안 지독하게 운동하고 대회에 나갔다. 등수는 처음부터 안중에 없었다. 막상 무대에 올라가기 20분 전에는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것도 내 인생, 이미 피할 수 없는 일이면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며 무대에 올라섰다고 한다. 지금 여기서 포기하면 난 아무것도 못 한다. 한발 내딛지 않으면 완주도 없다. 차라리 즐기자고 결심했다. 아버지 피부를 닮아 남이 10번 선텐 할 때 3번 아버지 체형을 닮아 궁둥이가 튀어나와 오리 궁둥이라 놀림당하여 감추려 노력했는데 그게 보디빌딩에서는 힘 안 들이고 애플힙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인순이는 2013년 강원도 홍천군에 다문화 대안학교인 해밀학교를 설립해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해밀의 뜻은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이란 순 우리말이다. 여태껏은 자신을 지키고 세우는데도 힘들었지만 이제는 누구에게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 줄 형편이 되었다. 그 아픔을 알기에 상처받고 소외된 아이들이 겪을 아픔을 빨리 털어내도록 그들 옆에 있어 줘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해밀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그녀는 동화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단점인 줄 알았던 자신의 다름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려서 겪었던 일들을 소재로 ‘미운 오리 새끼’ 같은 동화책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인순이를 30여년 전 가까이서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노래하는 무대가 아니라 모 대학 대학원 최고위 과정에서다. 그녀는 남편과 같은 과정이었고 졸업 파티를 할 때 나도 가족으로 참석했었다. 첫인상은 수더분하고 평범한 여성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녀가 입지전적 여성임을 알게 됐다. 편모슬하에서 혼혈아로 자라며 정체성 혼란과 갈등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꿈을 키워 나갔고, 차별과 멸시를 극복하고 가수로 성공한 용기와 노력, 아버지의 부름을 거부하고 어머니를 택한 현명한 결단, 자기의 약점을 감추지 않는 솔직함, 남을 의식하지 않는 도전정신, 대안학교를 세우는 등 사회를 위한 공헌 등….       ‘난 꿈이 있었죠’라는 노랫말로 시작되는 ‘거위의 꿈’이라는 그녀의 히트곡은  본인의  삶을 노래로 표현한 듯하다. 인순이는 학식 높은 사람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 못지않은 VVIP 라는 생각이 든다. ‘골든걸스’에 이어 인순이의 또 다른 도전을 기대해 본다.     배광자 / 수필가문예 마당 인순 예찬 한국인 어머니 아버지 나라 아버지 가족

2024-05-09

다큐 영화 '아버지의 마음' 시사회

    다큐영화 ‘아버지의 마음’이 오늘(13일) 오후3시와 내일(14일) 오후4시, 버지니아 헌던 소재 열린문 장로교회(담임목사 김용훈)에서 상영된다.     김용훈 목사는 “영화를 통해 기독교의 진정한 사랑의 릴레이를 경험하고 나눌수 있기를 소망한다”며 “시사회에 이웃과 가족이 참여해 뜻깊은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는 투치족 대학살 사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메소드’ 르완다 청년과 한국 고아였다가 컴패션을 통해 미국으로 입양돼 선교사가 된 여성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감독이면서 목회자이기도 한 김상철 감독은 ‘제자, 옥한흠’(2014), ‘순교’(2015), ‘중독’(2019), ‘부활: 그 증거’(2020) 등 기독교적 색채가 짙은 영화를 연출해 왔다. 하지만 이번 ‘아버지의 마음’이 그려낸 보편적 사랑은 종교를 초월한 호소력을 갖는다.     빈곤국 어린이를 돕는 하준파파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황태환 씨의 이야기와 '컴패션'을 설립한 스완슨 목사의 사랑이 현재까지도 어떻게 이어지며 전달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영화의 나레이션은 배우 신애라씨가 맡았다.     스완슨 목사가 설립한 자선단체 ‘컴패션’은 미국 후원자와 가난한 국가 어린이들을 1대1로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10만명이 넘는 한국 어린이들이 혜택을 받았다.     한편 열린문 장로교회는 매년 컴패션 주일을 통해 제 3세계 빈곤 아동 후원을 결연하고 있다. 문의: 703-318-8970 (열린문 장로교회)       김윤미 기자 kimyoonmi09@gmail.com아버지 시사회 마음 시사회 다큐 영화 담임목사 김용훈

2024-04-19

다큐 영화 '아버지의 마음' 시사회

      다큐영화 ‘아버지의 마음’이 오늘(13일) 오후3시와 내일(14일) 오후4시, 버지니아 헌던 소재 열린문 장로교회(담임목사 김용훈)에서 상영된다.   김용훈 목사는 “영화를 통해 기독교의 진정한 사랑의 릴레이를 경험하고 나눌수 있기를 소망한다”며 “시사회에 이웃과 가족이 참여해 뜻깊은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는 투치족 대학살 사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메소드’ 르완다 청년과 한국 고아였다가 컴패션을 통해 미국으로 입양돼 선교사가 된 여성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감독이면서 목회자이기도 한 김상철 감독은 ‘제자, 옥한흠’(2014), ‘순교’(2015), ‘중독’(2019), ‘부활: 그 증거’(2020) 등 기독교적 색채가 짙은 영화를 연출해 왔다. 하지만 이번 ‘아버지의 마음’이 그려낸 보편적 사랑은 종교를 초월한 호소력을 갖는다.     빈곤국 어린이를 돕는 하준파파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황태환 씨의 이야기와 '컴패션'을 설립한 스완슨 목사의 사랑이 현재까지도 어떻게 이어지며 전달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영화의 나레이션은 배우 신애라씨가 맡았다.     스완슨 목사가 설립한 자선단체 ‘컴패션’은 미국 후원자와 가난한 국가 어린이들을 1대1로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10만명이 넘는 한국 어린이들이 혜택을 받았다.     한편 열린문 장로교회는 매년 컴패션 주일을 통해 제 3세계 빈곤 아동 후원을 결연하고 있다. 문의: 703-318-8970 (열린문 장로교회)         김윤미 기자 kimyoonmi09@gmail.com아버지 시사회 마음 시사회 다큐 영화 담임목사 김용훈

2024-04-12

[아름다운 우리말] 무엇을 믿기 어려운가?

종교(宗敎)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종교의 장면에 등장하는 ‘난신난해(難信難解)’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말은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종교를 배우다 보면 수많은 난신난해의 장면이 나옵니다.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옆구리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바다를 가르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온갖 기적이 일어나고, 지옥 속에서 고통을 만나게 됩니다. 도대체 믿을 수가 없습니다. 종종은 이런 이야기를 믿는 사람이 오히려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경전에서는 이런 대목에서 믿음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믿음의 장면이라기보다는 표적의 장면이며, 방편의 장면으로 보입니다.   ‘믿음’의 장면은 뜻밖에도 가장 쉬운 언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해도 매우 빠르고 쉽습니다. 다만 믿을 수 없기에 믿지 못하고, 믿지 못하니 이해도 안 되는 겁니다. 이해에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종교의 경전마다 가장 쉽게 쓰인 부분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까요?     불교와 기독교를 살펴보면 금방 이해의 어려움을 깨닫게 됩니다. 불교에서 난신난해라는 말이 나오는 장면은 부처님이 중생에게 부처가 될 거라고 수기(受記)를 주는 장면입니다. 다른 어떤 경전보다도 쉬운 말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불성이 있으니 열심히 수행하면 부처가 된다는 약속입니다. 이 말이 믿기지 않는 겁니다. 부처님 같은 분이 아니라 나 같은 게 부처가 될 거라니 믿기지 않는 것이지요. 당연히 이해도 안 됩니다.   기독교에서도 예수님께서 주신 기도문을 외우지만, 그 내용을 믿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는 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 겁니다. 예수님 정도는 되어야지 어떻게 나같이 수많은 흠결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이겠습니까? 입으로는 기도하고 있지만 기도문의 내용을 믿지 못하는 순간이 계속 찾아오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면서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믿음의 어려움은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내가 부처가 될 것을 믿는 순간 다음 단계가 곧바로 떠오릅니다. 부처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을 말한 것은 그다음 단계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귀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다음 말을 해야 합니다. ‘너도 그렇다.’ 만약 이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 내가 세상에서 귀하다는 말은 거짓이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너도 그렇다.’라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나만 그렇다는 선언은 깨달음이라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깨달음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나 같은 게 부처이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도 믿기 어렵지만, 저런 게 부처이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건 더 믿기 힘듭니다. 기독교의 복음성가 중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저는 이 노래가 가장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노래를 귀엽고, 예쁜 아이들에게 부를 때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 노래는 장애가 있거나, 고통스러운 병에 걸리고, 가난에 찌든 사람에게 부를 때 문제가 됩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며 불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래의 대상이 지독한 범죄자이면 어떨까요? 저렇게 나쁜 놈도 부처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이 드는가요? 믿음이라는 게 이렇게 어렵습니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난신난해라는 말은 고통의 표현이 됩니다.   한편 내가 참으로 귀하다는 말, 내가 부처가 될 거라는 말, 내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말을 들으면 고맙습니다. 나같이 하찮은 존재가, 수많은 죄를 짓고 사는 내가 귀하다는 말씀에 눈물이 흐르기도 합니다. 믿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그 말에 오늘도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눈물이 빛이 됩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천상천하 유아독존 예수님 정도 우리 아버지

2024-03-31

다시 되돌아보는 이승만 대통령의 위업

1. 들어가면서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의 삶과 죽음, 그 속에 담긴 독립운동지도자로서의 면모, 대한민국 건국과 개혁, 6.25 전쟁과 극복, 한미동맹과 경제발전 등 한국 현대사의 구비 구비들을 시계열 방식으로 새롭게 파헤친 김덕영 감독의 다큐 영화 ‘건국전쟁’이 요 즘 한국 영화가에서 뜻밖에도 관객동원에 큰 성공을 보이고 있다.  이 영화가 높은 시청률 을 보이면서 롱런(Long Run)할 전망을 갖게 해주는 것은 감독과 제작진들의 노력의 결과 이다. 하지만 지난 60여 년 동안 역사 속에서 지워졌거나 잊혔던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 사를 우리 삶 속으로 다시 살려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생존 인구의 20%가량을 차지하는 70, 80대의 연령층은 이승만 박사를 다소 아는 분들이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조국 광복과 건국, 6.25 전쟁과 한미동맹 등 한국의 오늘을 있게 만든 역사의 재단사로서의 진실을 제대로 아는 분들은 의외로 적다.   특히 4.19혁명 이후에 태어난 세대(윤석열 대통령도 1960년생)들은 이승만을 부정하는 선전이 압도적인 상황 속에서 생장했다. 또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학력, 경륜, 지성 면에서 자기보다 훨씬 출중한 이승만 박사를 일부러 무시하거나 외면했고 독립운동 지도자들 중에서도 자기와 비교해서 꿀릴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들을 골라 우대했다. 영화 ‘건국전쟁’의 우위성은 한국의 현대를 살면서도 현대사의 진실이 무엇이었던가를 배우지 않았거나 지워져서 잘못 알았거나 바르게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궁금증, 갈증을 채워주고 무엇이 역사의 진실인가를 사실(Facts)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에 관해 왜곡되거나 잘못 알려진 진실을 실증 자료를 통해서 바로 잡아주고 그 의미를 제대로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모처럼 한국의 다큐 영화가 폐가입진(廢假立眞: 가짜를 폐하고 진실을 세운다)의 진실을 증언하는 것 같아 반갑다. 영화를 제작한 김덕영 감독은 시청자가 100만을 넘어서면 비로소 현대사를 보는 국민의 정치의식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2. 김일성의 대남 심리전 이승만 대통령이 역사 속에서 철저히 짓밟혀진 것은 대한민국 역대 정권들의 건국 대통령을 무시, 외면이라는 졸렬한 정책 때문만은 아니었다. 북한의 김일성의 반이승만(反李承晩) 음모가 가장 큰 원인이다. 김일성은 자기 정권이 1948년 8월 15일에 건국된 대한민국보다 2년 앞선 1946년 2월 소련의 괴뢰정권으로 출발,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단시켰고 더 나아가 전 한반도를 초토화시킨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한 전쟁범죄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할 존재였다.   김일성은 이러한 엄청난 범죄의 책임을 모면하고 그가 세운 북한 정권을 한반도의 정통정부로 조작하기 위해 유엔감시하의 자유총선거로 대한민국을 세우고 유엔 등 국제사회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자기 죄과를 덮어씌우고 철저히 부정해야 했다.   또 북한의 남침을 유엔이 합법적으로 세운 정통정부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 유엔군의 힘으로 북한의 남침을 물리친 이승만 대통령의 지도력을 역사 속에서 지워버릴 필요성을 절감했다. 1948년부터 시작된 북한 대남 심리전의 핵심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는 이 심리전 공작을 당시 소련이 운영하는 국제공산주의지휘부인 콤민테른 (Comintern)과 제휴하여 펼쳤다. 당시 북한의 심리전 구호는 “독재자 이승만, 남한만의 단독 정부수립으로 민족을 분열시킨 원흉, 동족상잔의 원인을 제공한 이승만”으로 만들고 이승만을 매도하는 물심양면의 심리전에 총력을 경주했다.   제주 4•3폭동, 여순 반란사건 역시 고강도 심리전의 일환이었다. 유엔감시하의 남북 총선거 방안이 유엔총회에서 통과된 그 순간부터 오늘날까지 북한의 대남 심리전은 이승만 대통령을 매도하고 지우고 부정하는 일을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 북한의 반이승만(反李承晩) 심리전은 1960년 4.19로 이승만이 하야한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들은 자기에 대한 북한의 지명공격이 아니고 이승만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에 이를 맞받아 치지 않고 방관하거나 외면했다.   북한 대남공격의 본질은 자연인 이승만에 대한 공격이 아니고 대한민국 성립의 정당성에 대한 공격이었다. 그런데도 역대 정권들은 북한의 이승만 공격을 빙자한 건국 정당성에 대한 공격을 건성으로 넘기거나 무방비로 방치했다. 역대 정권들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심리전 공세를 주목하지 않는 무방비 상태를 틈타서 북한의 사론에 오염된 국내의 좌파 역사학자들은 김일성이 북한에서 만든 ‘조선통사’(朝鮮通史)를 마치 정설인 양 받아들이는 학문적 모반에 나섰다.   ‘분단시대의 현실인식’(姜萬吉 집필)은 “모든 통일은 옳다”는 논리를 조작, 통일사관을 내세우고 민족을 인권을 가진 개개 성원의 구성체로 보지 않고 ‘개인은 전체의 일부’라는 논리로 민족을 규정하면서 ‘우리민족끼리’라는 허구적 담론(민족사관)을 꺼내 들어 한국 현대사 왜곡에 앞장섰다. 이들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지우고 부정하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역사 반란을 일으켰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조지 오웰 (George Owell)의 ‘1984년’의 좌익 사관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국사학계의 이러한 움직임을 묵인하거나 방관했다. 역사 교과서 문제가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제기되었다. 하지만 전교조 패당들의 반발에 밀려 단호히 대처하지 못했다. 역사교과서 문제를 놓고 정부는 확고한 입장을 세우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다가 문제 자체를 사실상 방기했다. 그러면 역대 정권들의 현대사를 보는 안이한 태도와 철학의 빈곤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3. 주사파 세력의 등장   김일성의 대남 심리전은 1980년에 이르러 한국 대학가에 주사파들이 활개를 치고 등장할 여건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일부 좌파 사학자들이 떠드는 통일사관은 ‘어떤 통일’인지를 묻지 않는다. 통일은 무조건 좋다는 것이다. 공산화 통일도 좋다는 의미다. 공산화 통일을 반대하고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주창한 세력은 하나같이 반통일세력이 되고 민족 분열세력이거나 친일파로 몰았다.   김일성이 민족해방전쟁이라면서 일으킨 6•25남침도 통일을 겨냥한 것이기 때문에 정당하며 유엔감시하의 자유 총선거로 세워지는 대한민국을 반대하기 위해 제주에서 일어난 4•3폭동도 공산통일을 지지한 것이므로 민족통일운동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회고컨대 1980년대는 한국이 제2차 산업혁명에 성공, 대기업이 중심이 되어 수출입국을 통한 비약적인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으로는 빈부격차가 벌어지면서 평등가치의 요구가 부상하였다. 이런 상황을 틈타 북한의 대남공작기구들은 김일성의 이른바 주체사상을 적극 보급, 선전하고, 이에 오염된 주사파 대학생들은 북한의 대남방송을 들으면서 “대한민국을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라는 북한의 대남 심리전에 말려들었다.   대한민국의 우파 세력들은 이러한 상황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철학과 합당한 통치 경륜을 갖추지 못하고 좌파 공세에 밀리다가 급기야는 광우병 파동에 크게 흔들렸고, 뒤이어 튀어나온 탄핵 시위를 표방한 촛불 테러에 걸려 정권을 좌파 수중에 넘겨주고 말았다. 환경이 이러할데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살아날 수 없을 정도로 국민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것이다.   김일성 대남전략은 일단 그 성공의 절정에 도달한 것 같았다. 주사파들의 공세를 업고 집권에 성공한 문재인 정권은 오른쪽 깜박이를 켜고 계속 자동차를 왼쪽으로 몰아가는 해괴한 정치를 펴나갔다. 적폐청산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면서 우파의 경제적 기초를 잠식하고 정권유지를 위한 축재에 광분하는 등 공정과 상식의 척도에 비추어 가히 ‘암흑시대’라고 규정해도 좋을 만큼 불량 실패정권의 길을 걸었다.   한편 국가 주권을 수령이 쥐고 있는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은 모든 수령독재정권들이 당면하는 숙명처럼 북한을 지구 최빈국으로 만들어 지구촌의 누구도 가서 살고 싶지 않은 불량국가(Rogue State)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선동 선전을 앞세워 간신히 선거로 집권에 성공했던 한국의 좌파 정권은 다시 우파 정권에게 정권을 빼앗겼다. 현대사에서 매우 희귀한 사태다. 이어서 윤석열 정권이 탄생했다.       4. 역사 속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재생(再生)   문재인 정권이 퇴진하고 윤석열 정권이 등장하면서 문재인 시대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들이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우선 역사 면에서 나타난 사건은 2023년 3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148주년 탄신일에 각 대학의 4•19 노장 세대들 60여 명이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치된 이승만 대통령 묘소를 참배, 묵념함으로써 그분의 명복을 빌었다. 4•19세대와 이승만 대통령 사이에 놓인 역사적인 아픔의 다리를 건너뛰면서 화해의 역사에 나선 것이다.   이 행사는 국민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었다. 같은 날 오후 서울 종로구 이화장에서 이승만 대통령기념사업회가 주최한 탄신기념행사에 정부를 대표해서 참석한 국가보훈부 박민식 장관은 이승만 박사기념관을 만들 필요성을 역설했다. 뒤이어 윤석열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을 독립유공자로서 보다는 대한민국 초대 건국 대통령으로서 그분의 기념관을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민 성금으로 건립하고 그 분의 공과에 관해서는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공정히 평가하여 역사의 귀감을 삼자고 주창했다.   이에 건국 대통령 이승만 기념관 건립위원회가 민간에서 조직되고 모금운동이 시작되었다. 또 같은 해 9월 1일에는 이승만 박사 양자인 이인수(李仁秀) 박사가 4•19 묘소를 참배, 4•19 유족들과 부상자 가족들에게 유족 대표로 사과하였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이인수 박사가 4•19 묘소를 참배하면서 밝힌 사과 발언에 대해 4•19단체들은 사과의 진정성이 인정된다면서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4•19혁명과 이승만 대통령 사이에 놓여있던 모든 걸림막들은 일거에 걷히고 일단 화해 국면이 펼쳐졌다.   이에 연(沿)하여 이승만 박사를 바라보는 국민적 시각도 새롭게 정향(定向)되는 분위기 속에서 몇 편의 다큐 영화들이 나왔다. 권순도 감독의 영화 ‘기적의 탄생’은 이승만 박사의 생애를 그분의 업적 중심으로 잘 엮었다. 또 이승만 포럼의 인보길, 대표와 김효선 사무총장이 주도한 ‘독립 외교 33년’은 외교 독립노선을 내세운 이승만의 독립외교에 중점을 두고 제작되었다.   그리고 요즘 영화가에서 상승세를 타 조만간 관객이 100만을 넘을 것으로 보이는 김덕영 감독의 ‘건국전쟁’(영문명: 대한민국의 탄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자료화면을 충실히 모아 보여주었고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레이터들을 적절히 배치, 자료화면으로 부족한 부분을 잘 메꿔 나갔다. 전문성이 뛰어난 분들을 잘 배치했으며 특히 외국인 중에서 이승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들을 나레이터에 포함시켜 원어로 발언한 내용을 자막으로 옮겨 설명함으로써 자료의 신빙성도 높였다. 다만 선명치 못한 자막이나 나레이터를 활용해야 할 부분과 자막으로 처리되어야 할 부분이 엇바뀐 부분들은 개선의 여지를 남겼다.   어떻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승만 건국 대통령이 우리 역사 속에서 재평가되고, 다 시 살아난 것은 축하할 일이다. 북한의 김일성 일가가 70여 년을 공들여 성공시켜 온 이승만 지우기, 이승만 죽이기가 한국사에서 다시 뒤집혀 이승만 대통령의 진면목이 역사 속에서 되살아난다면 김일성과 DPRK는 우리 역사 속에서 ‘옛 소련의 앞잡이가 되어 소련의 위성국가가 됨으로써 민족분열, 국토분단, 동족상잔의 모든 책임을 지는 원흉집단’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김정은이 2023년 말 지난 80년 간의 모든 대남공작이 완전 실패였다고 평가하면서 “한국을 교전 중인 적대국가로 규정하고 침공 정복 대상”이라고 말하면서 “남북한은 민족도 같지 않다”고 발언한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적 부활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5. 기억되어야 할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업적   이승만 대통령은 그 업적을 독립노선과 건국 및 호국 노선의 양면에서 살피기로 한다.     가. 독립노선 이승만이 남긴 큰 공헌은 두 가지다.   ⑴ 외교를 통한 독립노선을 시종일관 견지했다. 그는 일본을 상대로 무장투쟁으로 독립을 성취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국제사회가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의 부당성을 인정하고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도록 외교활동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해방은 무장투쟁으로 성취되지 않았다. 3•1 독립운동도 무장투쟁이 아닌 세계 여론을 향한 민족의 독립 의지를 발산한 것이었다. 우리의 해방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한국의 독립을 약속한 카이로선언으로 길이 열렸다. 그는 해외 망명 생활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언론을 통해 한국독립 운동의 대의를 밝히고 연합국 지도층을 상대로 한국의 독립 지지를 호소하는 서신 외교, 독립을 호소하는 강연, 조선의 독립을 호소할 국제회의 참가 시도, 재외동포의 결속과 교육에 헌신했다. 미국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출간한 일본 내막기(Japan Inside Out)는 일본의 미국침공을 예측한 책으로 발간 6개월 후 일본의 진주만 침공이 가시화되자 그의 예측 능력이 평가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노벨문학상 수상자 펄 벅(Pearl Sydenstricker Buck) 여사의 서평으로 한국 사정에 대한 미국사회의 이해를 제고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미국 대통령 특별보좌관이었던 홉킨스(Harry L. Hopkins)가 카이로선언에 한국 독립조항을 포함시키는데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한 학자는 말했다.     ⑵ 이승만의 건국 지정학이다. 그는 미국의 하와이에서 머나먼 조국 하늘을 바라보면서 한반도를 대륙 세력의 꼬리로 간주, 북방의 대륙 세력을 섬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지정학적 숙명론에서 탈피했다. 한반도를 해양 세력의 대륙진출 교두보로 인식하면서 해양 세력들을 한반도로 끌어들일 자유민주체제로 독립 국가를 세울 것을 꿈꾸었다. 그는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강대국들의 신탁통치를 반대했고, 유엔감시하의 자유총선거를 통한 독립 국가건설 노선을 관철시켰다. 오늘날 대륙세력의 꼬리가 된 북한은 지구 최빈국에 머물고 한국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이승만의 건국 지정학의 선견이 탁월했음을 알 수 있다.       나. 건국과 호국노선   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보장한 헌법제정   1948년 5월 10일 유엔감시하의 자유총선거에서 선출된 198명의 의원들과 더불어 이승만은 초대 국회의장으로서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제정하였다. 103개 조의 헌법 초안을 매 개 조마다 투표로서 확정, 민의를 반영한 민주헌법을 제정하였다. 북한이 소련의 위성국가들과 국호와 수도만 다르게 표현하고 내용을 모두 똑같이 한 위성국 헌법을 채택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북한은 지금 주권이 수령에게 있고 한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⑵농지개혁 관철   해방당시 한국농민의 90%가 소작농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유상매입(有償 買入), 유상분배(有償分配)라는 획기적 방식으로 농지개혁법을 마련, 전국의 농민을 자영농민으로 만들었다. 지주가 소유한 3정보를 초과하는 농지를 모두 국가가 지가증권으로 매입한 후 이를 소작농들에게 분배하고 농지를 받은 농민들이 매년 소출의 모두 20%씩을 5년간 상환하면 분배받은 농지를 자기 소유로 전환해주는 농업혁명을 일으켰다. 다른 나라 예컨대, 브라질이나 필리핀은 지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했지만 3,274정보의 농지를 개인이 소유한 한반도 최대 지주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선생이 이승만의 농지개혁을 지지함으로써 사유재산 침해라고 저항할 지주들을 설득, 농지개혁을 완수했다. 이로써 농민들은 6•25동란을 겪으면서도 공산당의 선전, 선동에 넘어가지 않고 자기 토지를 지키는 것처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실히 수호하였다.     ⑶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   이 조약은 이승만 안보외교의 금자탑이다. 외교사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협상을 통해 지구 최약(最弱)국가의 대통령이 지구 최강자인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벼랑 끝 외교를 벌인 끝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였다. 이승만은 이를 ‘한미공수동맹’이라면서 만족해 하였다. 한국은 이 조약을 통해 미군을 지난 70년 이상 한반도에 주둔시켜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유지했고 현재도 주둔이 계속되고 있다. 이 바탕 위에서 한국은 경제발전에 전념, 2차대전 후 신생독립국가 중에서 처음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당시 이런 안전장치 없이 미국의 요구대로 휴전에 동의했더라면 한반도의 휴전도 키신저(Kissinger)가 만든 베트남 평화조약처럼 공산당의 협상전략에 휘둘려 중국과 소련이 포함된 북방 공산세력의 재침을 막지 못하고 베트남처럼 공산화되었을지도 모른다. 한미 방위 조약이 체결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매우 인상적인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는 한미간에 체결된 “이 조약 덕분에 앞으로 우리 후대들까지도 안보의 큰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담화는 아직까지 유효하다. 올해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양국간에 비준된 지 70주년을 맞는다. 앞으로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반도의 평화와 평화통일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 칼럼은 한반도선진화재단이 2월 20일자로 발행한 Hansun Brief 제287호에 게재된 글로, 재단의 허락을 받아 이곳에 옮겨 실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 아버지 이승만 건국 대통령

2024-02-21

[삶의 뜨락에서]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Ennio: the maestro)

그는 리듬과 멜로디로 실타래를 풀어 영혼에 태피스트리 수를 놓는 위대한 음악가였다. 차가운 겨울, 웅장한 오케스트라 배경이 깔린 넬라 판타지아를 들으며 나의 환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마치, 혼이 구름을 타고 이 행성에서 다른 갤럭시로 옮겨 가는 듯한 전율을 느낀다.     오늘은 전설이 되어버린 이탈리아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1946~2020)의 전기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를 보았다. 이 영화는 엔니오의 사운드트랙이 숨결처럼 흘러내리는 우아하고 클래식한 영화 ‘베스트 오퍼’와 역시 엔니오의 부드러운 OST가 노인과 아이의 우정에 스며들어 따뜻한 슬픔의 여운이 깊은 영화 ‘시네마 천국’ 감독 쥬세페 트로나토레가 2021년에 완성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창작자와 음악인으로 만나 함께 오랜 작업으로 신뢰와 우정을 쌓은 쥬세페 감독의 수고와 헌신은, 트럼펫 연주자였던 엔니오 아버지에게 엄격하게 받았던 어린 시절 음악 공부와 그의 성장과 창작의 예술혼으로 점철된 생애와 생전 그와 인연을 맺어왔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존 윌리엄스, 세르지오 레오네, 한스 짐머 등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를 실어 생생함을 전달하였다.     실험 정신이 강한 근면한 천재음악가, 주옥같은 음악 400~500곡을 남긴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의 이해와 업적에 쥬세페 트로나토레 감독은 따뜻한 마침 점을 찍어주었다.     그런데, 그가 남긴 세상의 명성과 업적을 떠나 사뭇 개인적인 감성으로 그는 내게 아주 특별하다. 내게, 음악은 기억을 환원하는 가장 큰 울림통의 매개체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엔니오 모리코네를 떼어놓을 수 없다.     아버지는 영화광이셨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의 뿌리는 영화다. 아버지는 오케이 목장의 결투, 황야의 무법자 같은 서부영화를 좋아하셨다. 저녁노을이 산 중턱에 걸리면, 멀리서 ‘따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 들려온다. 손톱 밑이 까맣게 되어 땅바닥에 주저앉아 친구와 공기놀이하던 조그만 계집아이였던 어린 나는 고무신을 달빛 마당에 날리며 넘어질 듯 미닫이 방문을 연다. 혼이 빨려 들어가는 휘파람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산 능선을 등에 지고 뽀얀 흙먼지를 날리며 나타나는 카우보이, 허리에 찬 쌍권총, 검게 그을린 얼굴에 상대를 녹일 듯 바라보는 눈빛, 입에 삐딱하게 물려 있는 시가. 화면에 몰입하던 나는 숨이 아찔해져 나도 모르게 힐끗 아버지를 바라보면 아버지는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게리 쿠퍼, 존 웨인 같은 배우의 이름을 알려 주셨다.     나는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되어서야 끝없는 나락으로 몰고 가던, 그 음악이 엔니오 모리코네의 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을 빨아들이는 그 야성은 나의 감성을 길렀고 근원을 알 수 없는 몽환의 노스탤지어와 감성을 붙들고 헌책방을 어른거리며 방황하며 나는 성장하였다. 엔니오의 음악은 문학과 예술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한 최초의 불씨였다. 그의 음악은 한 편의 시(詩)였고 그는 나에게 별을 보여준 연금술사였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영화를 보며 한 인간이 다른 누군가에게 남기고 간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영혼의 선물에 감사의 기도로 엎드린다.     이 새벽, 아버지와 엔니오 모리코네를 기린다. 그리고, 지상에 남은 넬라 판타지아! 환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의 발길은 아직, 시리게 푸르다. 곽애리 / 시인삶의 뜨락에서 마에스트로 maestro 엔니오 아버지 엔니오 모리코네 마에스트로 영화

2024-02-02

[기자의 눈] 성공의 열쇠 ‘회복탄력성’

일명 ‘흙수저’로 태어나 포브스지 영향력 있는 인물로 이름을 올린 한인 2세 섀런 박씨의 이야기는 큰 인상을 남겼다.     트럭운전자 아버지와 봉제공장에서 바느질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읜 후 지독한 가난을 맛봤다.     정부지원금과 푸드스탬프로 생활하던 그녀는 친구들 앞에서 저소득 지원 급식을 먹으며 창피함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그녀의 가난은 훗날 그녀의 성공을 더욱 빛나게 할 도구가 된다.     시급 17달러에 불과했던 그녀는 현재 연 매출 2000만 달러에 육박하는 스타트업 ‘인서트 네임 히어(INH)’의 대표다.   세계적인 잡지 ‘마리끌레르’의 인터뷰 기사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역경에 부딪혔을 때 박씨의 태도였다.     그녀의 저소득 가정 출신 배경을 지적하며 사귈 수 없다는 남자친구의 잔인한 말을 듣게 된 후 그녀가 했던 행동은 ‘감사’였다.     박씨는 “그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가족을 위해 해주신 모든 일에 감사하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그리고서는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오기가 생겼다고 전했다.     낙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시켰다.     그녀의 이같은 태도는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관련이 있다.     회복탄력성은 크고 작은 고난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한다.   회복탄력성은 정신적 강인함과 동의어가 아니다. 고난과 역경을 통과하지만 거기서 유연하게 적응하는 동시에 인내심을 갖고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는 능력이다.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은 1989년 심리학자 에이미 워너에 의해 처음 소개됐다. 워너는 1950년대 실업자와 알코올·마약 중독자, 사회부적응자가 넘쳤던 하와이의 카우아이섬에서 태어난 800여명의 신생아를 전수조사해 40년 동안 이들을 추적 조사했다.     결과는 놀라웠는데 대부분 가난과 열악한 환경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약 35% 아이들에게 예외가 생겼다. 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학생회장을 도맡는 등 모범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워너는 이 아이들의 비밀의 근원이 바로 ‘회복탄력성’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 회복탄력성은 오뚝이 같은 선천적인 기질적 특성도 있었지만, 양육 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개발될 수 있음을 워너는 케이스 구분을 통해 보여줬다.   심리학자들은 회복탄력성을 정의하는 5가지 원칙으로 ‘감사’와 ‘수용’, ‘연민’, ‘의미’, ‘용서’를 꼽는다. ▶일상에서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지 ▶타인에게 연민을 갖고 있는지 ▶삶의 의미를 찾고 있는지 ▶용서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 등을 통해 회복탄력성 여부를 보는 것이다.     성공한 수많은 인물을 보며 대부분은 큰 역경과 고난, 불가능에 가까운 어려움을 겪곤 한다. 하지만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스토리는 다르게 쓰였다.      성공한 근성의 상징으로 불리는 커널 샌더스는 65세의 나이에 전 재산 105달러를 가지고 사업파트너를 찾아 1008번을 거절당하고도 1009번째 성공해 기적처럼 세계적인 기업 KFC를 창업했다.     그는 “현실이 슬픈 그림으로 다가올 때면, 그 현실을 보지 말고 멋진 미래를 꿈꿔라.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앞만 보고 달려라. 인생 최대의 난관 뒤에는 인생 최대의 성공이 숨어 있다”는 말을 남겼다.     낙담 되는 현실을 보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직시하되 그 안에서 긍정적인 것들을 찾아 감사하고, 그 시간 안에서 얻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의미를 찾는 ‘회복 탄력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 어두운 시간들은 디딤돌이 되어 나를 한 단계 더 높여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   장수아 / 사회부기자의 눈 회복탄력성 성공 회복탄력성은 정신적 회복탄력성 여부 트럭운전자 아버지

2024-01-28

원자폭탄의 아버지, 시대가 낳았고 시대가 죽였다

“프로메테우스는 신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그 형벌로 그는 바위에 묶여 영원히 고통받았다.”(Prometheus stole fire from the god and gave it to man. For this he was chained to a rock and tortured for eternity.)   ‘다크 나이트’ 3부작, ‘인셉션’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의 열두 번째 작품 ‘오펜하이머’는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를 떠올리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천재 과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세계 최초의 핵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원자폭탄을 개발한 이야기에 놀란 감독은 왜 프로메테우스를 소환했을까.     ‘먼저 생각하는’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접두사 ‘pro~’의 기원일지도 모를, 프로메테우스는 선지자를 뜻한다. 프로메테우스의 계략에 분노한 제우스는 인간을 벌하기 위해 최초의 여자 ‘판도라’를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로 하여금 아내로 맞이하게 한다. 인류는 불을 선물 받았지만 ‘판도라의 상자’라는 재앙을 감수해야 했다.     오펜하이머스가 개발한 핵무기는 전쟁을 끝내고 인류 평화를 위함이 동기였다. 그러나 핵은 오늘 날 인류 평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오펜하이머를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한 감독의 의도가 보인다.     오펜하이머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요 한 과학자의 삶에 대한 전기 영화지만 ‘시간과 사유의 매스터’ 크리스토퍼 놀런의 작품답게 오펜하이머의 삶에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대입, 스토리를 세밀하게 심화한다.     ‘오펜하이머’는 3월 거행될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킬리언 머피), 남우조연상(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여우조연상(에밀리 브런트) 등의 주요 부문에 모두 후보를 낼 것이 확실하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킬러스으브 더 플라워 문’과 작품상, 감독상을 놓고 팽팽한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영화는 세상을 영원히 바꾼 원자폭탄, 폭발 그리고 파괴의 불가분의 관계를 파고 든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위기에 처한 세상을 구하기 위해, 그러나 오히려 세상을 파괴할 지도 모르는 선택을 해야 하는 천재의 고민, 그가 품었던 의구심 그리고 몰락에 관한 탐구적 서사다.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는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착수하여 실험을 이어간다. 숱한 실험을 이어가는 동안 히틀러는 자살했으며 나치는 붕괴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내놔야 한다는 강박에서 시작됐다. 목표인 나치는 사라져버렸다. 대량 살상용 무기의 필요성에 대한 의구심이 그의 마음속에 일어나기 시작한다.     와중에 일본과의 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항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폭탄의 대상이 바뀐다. 실험은 계속되며 드디어 완성된 폭탄은 ‘폭발 실험’으로 이어진다. 치욕의 진주만 공습에 대한 보복과 함께 소련 등 경쟁 강대국에게 이제 누가 세계 최강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장엄하게 22만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그러나 미국이 아닌, 인류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암울한 결과다.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핵폭탄이었지만, 제3차 세계대전에 이르면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수 있음에 오늘날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다. 오펜하이머의 원폭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에 비유될 만큼 인류에게 반갑기만 한 선물은 아니었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2차 대전 승전 영웅이 된 오펜하이머, 자신의 천재성과 명성에 취해있던 그였지만 이후 매카시즘 그리고 그와 대립 관계에 있던 원자력위원회 의장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복수심에 휘말려 고통과 고뇌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그의 삶은 결국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원자폭탄에 이어 더 무서운 수소폭탄이 개발되고, 그와 알력을 빚던 스트로스가 새로운 별로 각광받는다.     불행하게도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다. 별은 영원히 빛날 수 없다. 폭탄은 폭발과 동시에 그 쓰임을 잃는다. 쓰임을 다한 과학자 오펜하이머는 이제 정상에서 내려와야 한다. 추앙의 대상이던 그를 몰아내기 위해 청문회가 시작된다.     영화 속 오펜하이머는 청문회 과정에서 자신을 몰아내려는 세력에 대하여 대응하지 않는다. 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죄책감 때문이다. 자신이 개발한 핵이 인류의 미래에 미칠 결과에 대한 죄책감.   이는 죄책감 따위는 없었던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의 내면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프로메테우스는 3만년 후 헤라클레스에 의해 구출되며 제우스로부터 사면을 받는다. 신화와 달리 오펜하이머와 그의 가족의 삶은 불행하게 막을 내린다. 오펜하이머는 원자력계에서 퇴출당하면서 명예를 잃고 62세에 후두암으로, 그리고 5년 후 아내 키티도 폐색전증으로 사망한다. 딸 또한 아버지로 인한 사회적 연좌제에 시달려 32세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영화 말미, 얘기를 나누고 있는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을 향해 멀리서 스트로스가 다가온다. 그는 또 하나의 중성자다. 이들의 충돌, 분노와 갈등, 혐오가 ‘파괴와 파멸’이라는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갈등의 피로와 감정들이 곳곳에 부유한다. 상처의 부정적 에너지가 주변 사람들에게 전염되고 고통과 비극은 이후 냉전 체제로 이어진다. 감정에서 비롯된 충돌은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는 씨앗으로 남아 지금 이 순간도 성장하고 있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지구 전체의 파멸을 불러일으킬 폭발에 대한 경고다.   김정 영화평론가원자폭탄 아버지 원자폭탄 개발 로버트 오펜하이머 원자폭탄 폭발

2024-01-19

[음악으로 읽는 세상] 오! 사랑하는 아버지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에 나오는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는 제목만 보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담은 노래처럼 보인다. 제목뿐만 아니라 멜로디도 그렇다. 그 서정적인 멜로디를 듣고 있으면 아버지를 존경과 사랑이 담뿍 담긴 눈으로 바라보는 딸의 모습이 연상된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이런 상상과는 거리가 멀다.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 딸이 아버지에게 결혼이 성사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하면서 이 노래를 부르는데, 그 내용이 거의 협박 수준이다. 그녀는 만약 자기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강물에 몸을 던지겠다며 아버지를 위협한다. 그리고는 “저는 죽고 싶어요”라는 말로 다시 한 번 아버지의 놀란 가슴에 쐐기를 박는다.   자기 말에 안절부절 못하는 아버지를 보고 딸은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오! 신이여. 저는 죽고 싶어요”라고 노래할 때는 은근슬쩍 그것을 즐기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마지막에 애원조로 “아빠, 불쌍히 여겨 주세요(Babbo, pieta, pieta)”라고 노래하지만, 사실 베키오 다리에 가서 아르노 강에 몸을 던지겠다는 말을 했을 때부터 이미 결론은 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아버지의 맹목적인 사랑을 담보로 딸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   ‘오! 사랑하는 아버지’에서 “불쌍히 여겨 주세요(pieta)”는 다분히 응석이 섞여 있는 애원이다. 죽겠다는 협박으로 이미 충격에 빠진 아버지에게 살짝 간청의 형식을 갖추기 위한 장치라고나 할까. 단어에 실린 멜로디는 정말로 간절하지만, 오히려 그 간절함에서 과장 연기의 의도가 엿보인다. 그렇게 이 노래는 짐짓 불쌍함을 가장하고 있다. 멜로디는 더 없이 간절하고 서정적이지만, 그 내용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계산적이다. 이런 정서와 내용의 충돌이 웃음을 자아낸다. 정서와 내용은 그 충돌이 크면 클수록 더 큰 웃음을 유발하는 법이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아버지 사랑 자기 사랑 pieta pieta 과장 연기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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