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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무언의 가르침

  오랜만에 신문에서 훈훈한 기사를 읽었다. 경남 양산시 통도사 자장암에 놓인 시주함에 누군가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와 함께 현금 200만원을 넣고 갔다는 내용이었다. 편지에는 27년 전 그 시주함에서 3만원을 훔치려 했던 사람의 고백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어린 소년이 시줏돈을 훔치러 갔다 스님에게 들켰던 모양이다. 모두가 경제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던 IMF 외환위기 시기라 사찰의 시주함이 털리는 일도 많았던 시절이었다.     편지는 “어린 시절 생각이 없었습니다. 27년 전에 여기 자장암에서 시주함을 들고 산으로 가 통에서 돈을 꺼냈습니다. 약 3만원 정도로 기억납니다”로 시작됐다. “그런데 한 스님이 제 어깨를 잡고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고개를 좌우로 저으셨습니다.” 편지는 이렇게 이어졌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남의 것을 탐한 적이 없습니다. 일도 열심히 하고 잘 살고 있습니다.” 글 말미에는 “곧 아기가 태어날 거 같은데 아기에 당당하고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그날 스님 너무 감사했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시주함을 도둑질하다 스님에게 들켰지만 아무 일 없이 집으로 돌아간 그 소년은 그날의 일을 혼자 간직한 채 예비 아빠가 된 것이다. 그리고 27년 후 다시 그곳을 찾아 시주함에 편지와 함께 현금 200만원을 넣은 것이다. 떳떳한 아빠가 되기 위한 다짐이었다.     그때 소년의 어깨를 잡았던 스님은 지금도 자장암에 있는 현문 스님이라는 분이다. 현문 스님은 “그 무렵 IMF로 사람들이 너무 힘든 것을 알았기에 소년을 그냥 보낸 후 그 일을 잊어버렸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날 ‘사건’은 소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듯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남의 것을 탐한 적이 없습니다. 스님이 주문을 넣어서 착해진 것 같습니다”라고 편지에 쓴 걸 보면 스님의 무언의 큰 가르침이 소년의 마음에 깊게 새겨진 것 같다. 만약 스님이 소년을 경찰에 넘겼다면 그는 세상을 원망하며 더 깊은 범죄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현문 스님은 손편지에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인연으로 돌아온 감동적인 사연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불에 등장하는 장발장과 미리엘 신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소설의 주인공 장발장은 굶주리는 일곱명의 조카를 위해 빵을 훔치다 체포돼 19년 감옥살이를 하며 세상을 증오한다. 가석방 후 이리저리 떠돌게 되지만, 전과자인 그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이는 없었다. 마침내 미리엘 주교가 그를 받아들여 숙식을 제공하는데 장발장은 성당의 은식기를 훔쳐 달아나다 병사들에게 붙들린다. 장발장을 끌고 온 병사들에게 주교는 자신이 은식기를 주었다며, 오히려 장발장에게 ‘은촛대는 왜 그냥 두고 갔느냐’고 말했다. 이후 장발장은 선한 삶을 추구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재에는 타임(TIME), 라이프(LIFE),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 같은 영어 잡지와 영어 신문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서울 상대의 전신인 고상 출신인 아버지가 어쩌다 그렇게 영어에 심취하셨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당시 인텔리들은 서구 문물에 큰 관심을 가졌는데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학에 갓 입학해서였다. 아버지는 가끔 나의 영어 실력을 테스트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그랑프리가 영어로 그랜드 프라이즈지?” 라고 물으셨다.  나는 ‘그랑프리’라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다. 그래도 아는 척하며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얼버무렸다. 아버지는 빙그레 미소만 지으셨다. “이상하다. 영어를 잘하시는 아버지가 왜 내게 그것을 물으셨을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얼른 내 방에 들어가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그랑프리가 영어로 그랜드 프라이즈(grand prize) 라는 것을 알고는 무안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아버지의 미소 속에는 확인해 보라는  메시지와 딸의 자존심을 지켜주려는 배려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한 번은 영자 신문을 불쑥 내밀면서 한 기사를 번역해 보라고 하셨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때 나의 영어 실력은 형편없었다. 아버지가 또 나를 테스트하려는 것이라 생각하고 낑낑대며 번역을 해서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내심 잘했다는 칭찬을 기대했지만 그때도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부드러운 미소만 지으셨다.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기사를 다시 꼼꼼히 읽었다.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서 궁색한 여자가 남편 덕에 여왕처럼 호화롭게 사는 여고 동창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가 수모를 당한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답은 바로 그것이었다. 여학생 때는 학교라는 울타리와 동일한 교복으로 인해 친구들 간에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졸업 후에는 각자의 길을 선택하게 되고 그 길이 운명을 좌우하게 된다. 특히 여성은 결혼을 잘하고 못함에 따라 인생행로가 결정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세상물정에 어두운 딸에게 그런 여자의 운명에 대해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무언의 가르침을 통해 삶의 지식과 깨달음을 얻고는 했다.       노자에 나오는 ‘불언지교(不言之敎)’는 말하지 않고도 가르침을 준다는 뜻이다. 소년이 시주함의 돈을 훔치려 했을 때 스님이 소년의 어깨를 잡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좌우로 저어 제어한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너는 지금 잘못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상황 때문인지 그 마음은 다 헤아리고 있다. 그러니 못 본 것으로 해 두마. 그러나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라.”   용서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다. 당시 스님이 베푼 무언의 가르침과 용서가 자칫 빗나갈 뻔한 한 남자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현문 스님도 한번 만나보고 싶다.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가르침 무언 시절 아버지 영어 신문 그날 스님

2024-10-10

부모님께서 주신 유학비만큼 상속받을 재산에서 빼야 한다고요? [ASK미국 유산 상속법-이우리 변호사]

▶문= 한국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3년 동안 5천만 원의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받아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었다. 유학 이후 다행히 미국에서 취업이 잘되어 미국에서 정착하여 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게 되어 장례를 치르고, 한국에 있는 오빠와 아버지 재산을 정리하게 됐다.   그런데 오빠가 본인은 아버지께 따로 받은 돈도 없고, 제가 유학 중에 아버지께 지원받은 것이 있으니, 저는 아버지께서 남긴 재산에서 학비로 받은 만큼 빼고 가져가야 한다고 하더라. 학업 때문에 받은 돈인데 상속재산에서 빼야 한다니 정말 그래야 할까?     ▶답=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질문하신 미국 상속인께서 아버지께 지원받은 학비가 '상속재산을 미리 받은 것'으로 인정된다면,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다른 상속인들과 상속재산을 분할 할 때 그만큼 상속재산을 덜 받게 된다.   한국 상속법에서는 이처럼 상속 재산을 미리 받은 것으로 보는 재산을 '특별 수익'이라고 한다.   물론 부모님께 미리 받거나 유언을 통해 받은 재산이라고 해서 전부 특별수익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특별수익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 상속인의 아버지께서 보유하신 자산이 10억 원이었다면, 3년 동안 5천만 원의 유학비를 지원한 것을 미리 증여한 상속재산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반대로 아버지께서 보유하신 자산이 2억 정도인데 위와 같이 지원했다면 상속 재산을 미리 준 것이라고 평가될 수도 있겠다.   이처럼 증여받은 재산이 특별수익인지 결정하는 기준은 증여 당시 망인과 수증자의 경제력, 증여 경위, 증여 이후 망인의 재산 상황, 증여 재산의 규모 등을 종합하여 고려한다.   실제 판결 사례를 살펴보면, 현재 대한민국 가계의 경제 수준 등을 비추어 봤을 때 자녀의 교육비 등은 재산을 증여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워 특별수익이 아니라는 판례도 있고, 넉넉지 않은 사정의 집안에서 특정 자녀에게 유학비 등으로 상당한 지원을 해주었을 때 해당 유학비가 특별수익으로 인정된 판례도 있다.   결국 특별수익 인정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상황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안 그러면 좋겠지만,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재산을 두고 형제들끼리의 다툼이 일어나곤 한다. 특히 미국 유학 등 해외 생활 때문에 부모님께 특별히 지원받은 미국 상속인이라면, 부모님의 사망 이후 상속재산을 나눌 때 다른 형제들이 형평성을 요구하며, 해당 지원비를 미국 상속인의 특별수익이라 주장할 수 있다.     상속인들 간의 상속재산분할협의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상속재산분할심판이라는 소송을 진행할 수도 있는데, 결국 재판을 통해서 상속재산을 분할하는 것이다.     따라서 협의 또는 재판을 통해 특정 상속인이 지원받은 학비가 특별수익으로 인정된다면 결국 그만큼 상속재산을 덜 받게 된다. 유학비가 모두 특별수익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상속인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했을 상속재산을 미리 포기하지 마시고, 한국 상속법 전문 변호사와의 상담을 먼저 해보시길 바란다.     ▶문의: www.lawts.kr / info@lawts.net  미국 유학비 아버지 재산 유산 상속법 한국 상속법

2024-08-27

“빛바랜 역사책에서 아버지의 항일운동 기록 발견”

제79주년 광복절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뉴욕 맨해튼 어퍼웨스트에 위치한 한 아파트. 이곳에는 1945년 8월 15일, 그날의 함성이 귀에 생생하다는 한 한인이 살고 있다. 바로 조선 왕실의 마지막 왕녀이자 의친왕의 딸인 이해경 씨다.   고종의 손녀이자 의친왕의 5녀로 태어난 이해경 씨에게 8월 15일은 유달리 특별하다.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은 날이기도 하지만, 아버지 의친왕이 세상을 떠나기 전날이기도 하고, 이복 오빠인 ‘이우’ 왕자의 장례식을 치른 날이기도 하기 때문. 이 씨는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자 폭탄에 피폭돼 사망한 이복 오빠의 장례를 운현궁에서 치르고 있는 도중 일본 천황이 광복 방송을 했다”며 “장사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모든 국민이 길거리에서 외치던 만세 함성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고 전했다. 이후 해방 10주년을 맞은 1955년 8월 16일, 의친왕은 딸 이 씨의 곁에서 눈을 감았다.     한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아예 지워 버리려고 노력했을 정도로 아버지를 원망했다던 그는 어쩌다 의친왕의 명예회복 운동을 추진하게 됐을까. 마지막까지 일제에 굽히지 않았던 황실의 독립투사, 의친왕의 항일운동에 대해 해경왕녀에게 물었다.     ◆빛바랜 역사책에서 아버지의 항일운동 기록을 찾다   현재 살아있는 의친왕의 자녀 중 가장 연장자인 이해경 씨. 그가 아버지의 행적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건 의친왕 서거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컬럼비아대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부터다. 이 씨는 “궁의 법도 때문에 아버지에게 먼저 말을 걸 수도 없었고, 내게 아버지는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며 “술과 여자만 탐하던 무책임한 황자라는 평가를 많이 들어서,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컸다”고 전했다. 의친왕이 별세한 다음 해인 1956년 전쟁으로 혼란한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유학 온 이 씨는, 텍사스에서 성악 공부를 마친 뒤 생계를 위해 식당과 보육원에서 일하다가 1969년 뉴욕 컬럼비아대 한국학 도서관 사서로 취직했다. 사서로 일하며 아버지 의친왕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자료를 많이 발굴했고, 은퇴 이후 아버지에 대한 왜곡된 평가를 바로잡기 위해 의친왕의 명예회복 운동을 추진했다.     ◆미국 유학길에서 시작된 김규식, 안창호와의 인연   1877년 고종의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난 의친왕은 1899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버지니아주의 로아노크대학에 다녔다. 그곳에서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을 만나 친분을 쌓았다. 1902년에는 LA를 방문해 김규식을 통해 알게 된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미국에 있는 한인들을 위해 써달라”며 격려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비밀리에 독립운동 지원   귀국한 의친왕은 한일합방 이후 일본의 삼엄한 감시 속에 살았지만, 그 속에서도 비밀리에 독립운동가들과 접촉해 이를 지원했다. 1909년 의친왕은 경남 거창에 한 달간 머물며 이를 장차 의병의 근거지로 삼으려고 일부 땅을 사들이다가 일본 헌병에게 탄로돼 호송되다시피 서울로 돌아갔다. 이후 1911년 손병희(3·1운동의 주역인 민족대표 33인의 일원)와 극비리에 만나 우이동 땅 3만 평을 매입하고 그곳에 봉황각을 세웠다. 이 봉황각에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모의를 하기도, 3·1운동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 씨는 아버지와 가장 오래 함께 산 후실 수인당에게 “의친왕께서 잔치를 벌인다고 기생들을 불러올 때마다 기생을 태운 인력거꾼들이 독립군 밀사였고, 이들은 의친왕과 골방에서 밀담을 나누셨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   “일본의 귀족이 아닌 조국의 평민으로 살겠다”   상해임시정부 망명 시도하다 실패   비밀 독립운동단 ‘대동단’ 총재 추대     ◆상해임시정부 합류 위해 탈출 감행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의친왕은 평화로운 방법으로는 독립을 쟁취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최진동(봉오동전투에서 사령관으로 활약) 장군과 서신을 교류하며 독립운동 전략에 대해 논의했는데, 이때 “일제를 몰아내려면 무력 독립투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3·1운동 직후인 4월, 여러 독립운동 세력들은 뜻을 모아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대동단실기〉에 따르면, 당시 상해 임시정부 내무 총장 안창호는 의친왕을 상해로 망명시키려는 계획을 했다. 의친왕이 임시정부에 합류하면 내부적인 구심점 역할을 해주고, 국내외적으로 큰 효과를 불러일으켜 독립운동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의친왕은 상해임시정부에 “나는 독립된 한국의 평민이 될지언정 일본의 귀족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임시정부에 합류해 독립운동에 몸 바치고자 한다”는 친서를 보내고 망명 결심을 굳혔다. 하지만 의친왕의 망명 시도는 일본 경찰들에게 발각돼 실패로 돌아갔다.     ◆33인의 민족지도자들과 독립선언서에 서명   상해 탈출 시도 이후 의친왕은 사동궁에서 연금 생활을 하게 됐다. 이 씨는 “아버지 방 안에 조그만 유리창이 있어 어머니 의친왕비에게 물었더니, 일본 헌병들이 수시로 방안을 감시하기 위한 장치라는 답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의친왕은 멈추지 않았다. 1919년 3월 결성된 비밀 독립운동단 ‘대동단’의 총재로 추대됐고, 그해 11월 의친왕 등 33인의 명의로 〈대한민족대표 의친왕 등의 독립선언서〉를 공표했다. 여기서 의친왕은 “우리나라가 독립국임을 전 세계에 선언한다”며 “일본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면 최후의 순간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국가 사적지 등재에 숨겨진 노력   나라를 위하는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덕일까. “한국에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던 이해경 씨였지만, 그 역시 조국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역사 바로잡기 운동, 잃어버린 문화유산 찾기 운동 등에 앞장섰다.     그중 하나가 주미대한제국공사관 환수운동이다. 공사관은 고종의 사비로 한국 역사상 최초로 서양 국가에 설치된 외교공관이었으나, 일본의 개입으로 1910년 단돈 5달러에 강제 매입됐다. 이에 이해경 씨는 뉴저지에 거주 중인 재미교포 윤기원 씨와 함께 모금활동을 벌이고 불법매각의 증거를 입수하는 등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준비했다. 그리고 지난 7일, 국립공원관리청(NPS)은 워싱턴DC에 위치한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국립사적지로 지정하는 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다고 밝혔다. 인터뷰 도중 이 소식을 들은 이 씨는 “감개무량하다”며 미소를 보였다.         어릴 적 “내가 죽어야지”라며 장판을 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밤새 들었다는 해경왕녀. 그는 어렵게 얻은 독립의 중요성을 점차 잊어가는 듯한 오늘날 한국의 모습에 “지나간 일은 공부해야 하고, 어떻게 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됐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을 묻는 질문에 그는 “어렵게 되찾은 나라를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지키면서 살 수 있을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윤지혜 기자아버지 항일운동 아버지 의친왕 독립운동가 김규식 항일운동 기록

2024-08-13

엄마의 폭행으로 사망한 8세 딸을 10분 이상 방치한 아버지

엄마의 폭행으로 사망한 8세 딸을 10분 이상 방치한 아버지를 두고 아동학대 혐의 유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배심원단이 만장일치 합의에 실패하면서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귀넷 카운티 수피리어 법원의 카렌 바이어스 판사는 클레디르 바로스(37)의 2급 아동학대 혐의에 대해 지난 9일부터 이어진 배심원 평결심리 결과, 유죄 11명, 무죄 1명으로 나눠지면서 12일 재판 무효(오심)를 선언했다. 재판 무효는 배심원들이 평결 합의에 실패해 재판 자체가 효력을 잃는 것으로, 오는 19일 배심원을 다시 뽑아 증인 신문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한다.   이 재판은 지난 1월 조지아주 귀넷 카운티 베들레햄 시에서 8세 여아가 사망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당시 피해 아동 사이라 바로스는 초등학교 재학 중 절도 등의 행실 문제를 일으켜 지난해 12월 어머니 나티엘라 바로스(34)와의 홈스쿨링을 택했는데, 이날 아침 식사 도중 장난을 쳤다는 이유로 나무 밀대 등으로 체벌을 받았다. 폭행 후 사이라가 정신을 잃자 어머니는 남편에게 딸의 죽음을 알리며 본인도 목숨을 끊을 것이라는 취지로 전화을 걸었고, 급히 귀가한 남편은 딸을 10~20분 방치한 뒤에야 응급구조를 요청했다. 나티엘라는 현재 살인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피의자 변호를 맡은 변호인 중 한 명으로 둘루스 사무실(3296 Summit Ridge Pkwy)을 둔 서조은 변호사는 “피의자는 대형 트럭 운전사로 일주일 중 한 번 꼴로 가족과 만난다”며 “부모가 교육열이 높은 데 반해 아버지가 자녀 양육에 전혀 관여하지 않아 학대 사실을 몰랐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학대 정황을 확인하고도 홈스쿨링을 택해 엄마의 폭력과 감시 하에 아이를 방치한 것은 아동 학대를 방임한 혐의에 해당된다고 맞서고 있다. 다만 처음 검찰이 클레디르에게 제기했던 2급 살인 혐의는 재판 과정에서 기각됐다.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운전사 아버지 아동학대 혐의 아동 학대 트럭 운전사

2024-08-13

[삶과 믿음] 선택이 운명을 좌우한다

빌 게이츠가 대학교 3학년 때 하루는 아버지에게 상의드릴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진지하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니 빌 게이츠 아버지는 약간 긴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빌 게이츠는 아버지에게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이 자기 관심이고 열정이며 이를 위해 대학을 중퇴해야겠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하버드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고 혹시 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으니 그래도 대학교 졸업장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쉽게 승낙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빌 게이츠는 “Now or Never” 지금 아니면 미룰 수가 없고 지금 해야 한다고 말하고 하버드를 3학년을 중퇴하고 그는 우리가 잘 아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듭니다.     우리가 미국에서는 영어로 소통하듯, 컴퓨터를 이용할 때 빌 게이츠가 이때 만든 소프트웨어를 전 세계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1세기 가장 성공적인 기업이 됩니다. 빌 게이츠는 대학을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든 것은 지혜로운 ‘선택’이었습니다.   개인에 있어서나 회사 혹은 국가에 있어서나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사람들이 바른 실행을 하지 못하는 세 가지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대범, 우리 인류가 선(善)이 좋은 줄은 알되 선을 행하지 못하며, 악이 그른 줄 알되 악을 끊지 못하여 평탄한 낙원을 버리고 험악한 고해로 들어가는 까닭은 그 무엇인가. 그것은 일에 대하여 시비를 몰라 실행이 없거나, 설사 시비는 안다 할지라도 불같이 일어나는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거나, 철석같이 굳은 습관에 끌리거나 하여 악은 버리고 선은 취하는 실행이 없는 까닭이니, 우리는 정의어는 기어이 취하고 불의어는 기어이 버리는 실행 공부를 하여, 싫어하는 고해는 피하고 바라는 낙원을 맞아오자는 것이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지혜롭고 바른 취사를 하지 못하는 첫째 이유는 ‘일에 당하여 시비를 몰라서…’ 즉 어떤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옳음과 그름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내 백성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한 선지자 말씀입니다. (호세아 4:6)   원불교 정전 ‘고락의 법문’에서도 낙을 버리고 고로 들어가는 첫째 원인을 “고락의 근원을 알지 못함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에게 유리한 것은 옳은 일, 불리한 것은 그른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즉 자기 이해가 옳고 그른 것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한때 한국에서 한 코미디언이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라는 책을 써서 회자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좋지 않은 음식을 먹는다고 건강이 금방 나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음식이 분명 우리 몸에 영향을 줍니다. 우리의 옳은 혹은 그른 행동은 반드시 어떤 결과를 초래합니다.   한 경찰이 자기와 친분 있는 한 스님께 자기 경험담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분은 경찰로서 도굴꾼을 체포하는 담당이었습니다. “스님, 전 불교 신자는아니지만 부처님의 인과 진리 말씀은 확실히 믿습니다. 과거에 도굴꾼들이 값비싼 유물을 도굴해서 몰래 팔아 큰돈을 버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가지 않아서 잡혀 번 돈을 다 빼앗기고 결국 패가망신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 왔습니다. 그들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식까지 망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심은 데로 거두는 것이 인과의 진리입니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에게 천만가지경전을 다 가르쳐 주고 천만가지 선(善)을 다 장려하는 것이 급한 일이 아니라, 먼저 생멸 없는 진리와 인과보응의 진리를 믿고 깨닫게 하여 주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니라.”   필자의 스승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부처님의 어떠한 법문을 믿지 않아도, 짓는 데로 받는다는 인과 진리 만은 꼭 믿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선택 운명 게이츠 아버지 인과 진리 대종사 말씀하시기

2024-07-18

어린 아들 차량 방치로 8년 복역한 남성, 교도소 옮겨 또 징역살이

10년 전 한여름 불볕더위 속 자녀를 차에 방치해 목숨을 잃게 한 조지아주 아버지가 복역을 끝낸 뒤 또다른 유죄판결 징역형을 살기 위해 교도소를 옮겼다.   18일 AP통신에 따르면 아들 쿠퍼 해리스를 승용차 안에 방치해 2016년 아동학대 및 과실치사 유죄 판결을 받은 저스틴 로스 해리스(사진)는 지난 16일 파더스 데이에  8년형을 마치고 메이컨 주립교도소에서 풀려났다.   그는 10년 전인 2014년 6월, 22개월 된 아들을 출근 후 아침부터 7시간 이상 차에 홀로 내버려둬 사망에 이르게 했다. 당시 애틀랜타 홈디포에서 일하던 그는 자녀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출근한 것으로 착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아내와 범행을 계획한 정황과 외도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 전국적인 공분을 샀다.   당시 캅카운티 검찰이 그를 1급 살인으로 기소해 2016년 가석방 없는 종신형 선고가 내려졌으나 상급심인 조지아주 대법원이 2022년 살인 유죄판결을 뒤집으며 사건을 과실치사로 판단, 8년으로 형량을 줄였다.   다만 그는 미성년자 성착취 관련 혐의로 별도 유죄 판결을 받아 캅카운티 교도소에서 2년의 징역을 더 살아야 한다. 그는 당시 16세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음란물을 배포하는 등의 성범죄를 저질렀다. 감옥 이송 기록에 따르면 그는 메이컨 주립교도소에서 석방된 16일 캅카운티 교도소를 시설을 옮겨 곧바로 다시 수감됐다.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조지아 파더스 조지아 남성 조지아주 아버지 조지아주 대법원

2024-06-18

“그들은 분명 살인을 했다…반드시 책임 물어야” 조나단 정 부친 정정식 선교사

벨가든 지역 바이시클 카지노 주차장에서 보안 요원 5명에 의해 살해된 조나단 정〈본지 6월 14일자 A-1면〉씨는 4대 독자였다. 아버지인 정정식(82) 선교사는 아들만 잃은 게 아니다. 이 사건 때문에 둘째까지 잃었다. 딸(바네사 정)은 오빠의 사망 당시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본 뒤 충격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버지 정씨는 그 동영상을 보지 않았다. 아니 볼 수 없었다. 재판은 17일부터 시작됐다. 이제 법정에서는 그 장면을 봐야 할지도 모른다. 현재 정씨는 치매를 앓는 아내와 함께 재판이 열리는 롱비치 법원 인근 아파트에 잠시 머물고 있다. 지난 15일 재판을 앞둔 정씨를 만나 심정을 들어봤다.   관련기사 정신질환 한인 또 비극…다섯명이 짓눌러 죽였다 귀가하려던 조나단 정 사냥감 몰듯 덮쳤다  -지금 심정은.   “분명한 건 그들이 우리 아들을 죽였다는 점이다.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우크라이나에서 선교 사역 도중에 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이 일을 가슴에 묻으려고 했다. 그런데 딸도, 사위도, 변호사도 모두 소송을 권하더라. 이 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라고 했다. 그래서 협조하기로 했다. 나는 승소가 목적이 아니다. 결국 사회에서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원인, 그게 무엇인지 밝히는 게 더 중요할 뿐이다.”   -아들이 정신질환을 앓았는데.   “조나단은 나중에 정부의 도움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려고 했다. 심리학자였던 동생도 그런 오빠를 심적으로, 의학적으로 정말 열심히 도왔다. 그날 조나단은 그 누구에게도 해를 가하지 않았다.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고 순순히 그들의 말을 따랐다. 그런데도 주차장까지 쫓아가서 그런 식으로 죽인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책임이라는 것은.   “카지노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그들의 규정대로 얼마든지 ‘나가라’고 할 수 있다. 그건 그들의 일이자, 의무 아닌가. 그런데 사람을 죽이는 건 그들의 의무가 아니다. 그 일은 분명한 불법이었고,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그 이후 딸도 잃었는데.   “딸의 죽음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원래 딸은 소아과 의사가 되려고 했다. 그러다가 심리학자가 된 것이다. 오빠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기 오빠에게 굉장히 많은 도움을 줬다. 심리학자로서 오빠를 옆에서 많이 도왔다. 그 누구보다 오빠의 상태를 가장 잘 알았고, 남매가 아주 친밀했다. 그런 아이가 그렇게 죽었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딸이 떠나기 전 남긴 게 있나.   “오빠가 죽고 나서 딸은 힘들다는 얘기를 전혀 안 했다. 그래서 그렇게 힘든 상태였는지 몰랐다. 의사인 사위도 마찬가지였다. 심리학자라 해도 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만큼 충격이고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직도 딸과의 마지막 통화가 선명하다. 딸이 카지노 측 변호사와 길고 긴 데포지션 절차를 마친 뒤 그러더라. 이 소송은 반드시 끝까지 가야 한다고 … 너무 중요하니까 포기하지 말라고 하더라.”   -이 사건 때문에 자녀를 모두 잃게 됐는데.   “죽음이란 건 인간인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딸의 죽음까지 겪으면서 심적으로는 오히려 힘든 걸 다 잊어버렸다. 분명한 건 지금 카지노 측은 인간의 생명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이 사회가 꼭 알아줬으면 한다.” 장열 기자ㆍjang.yeol@koreadaily.com조나단 유가족 유가족 아버지 유가족 인터뷰 아버지 정씨

2024-06-17

[이태리패션타운] 파더스데이 근사한 아버지 양복이 '1+1'

언제나 묵묵히 자식들만 챙겨온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을 위해 '이태리패션타운'에서 특별한 파더스데이 프로모션을 준비했다.     이태리패션타운은 신사의 품격을 완성해 주는 고급 양복을 1+1(바이 원, 겟 원 프리)의 혜택으로 제공하고 있다. 백화점 가격 2600달러를 호가하는 울&캐시미어 150수 이상의 마크 발렌티노 양복은 1399달러에 하나 사면 하나를 공짜 선물로 안겨준다. 또한 100년 전통의 런던 포그(599달러), 한국 양복(299달러)과 한국인 체형에 잘 맞는 울&실크 양복(379달러) 등도 구입 시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임구영 대표는 "한국인의 체형에 제일 잘 맞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우아하게 느껴지는 좋은 양복들이다. 누구나 한두 벌쯤 가지고 있으면 평생 멋스럽게 연출할 수 있다. 이벤트 기간을 활용해 한 벌 값으로 아버지 양복을 두 벌 장만해 드리는 효자 효녀 고객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여름철에 요긴한 콤비 재킷과 여름 잠바, 인견 티셔츠, 발렌티노 슬림핏 셔츠, 제냐 넥타이 등도 특별가에 제공하고 있으며 골라잡아 3장 100달러 코너를 통해서도 다양한 종류의 의류들을 저렴하게 만나볼 수 있다.     이태리패션타운은 LA 윌셔와 웨스트 모어랜드에 위치하며, 월~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영업한다.     ▶문의: (213)382-3311   ▶주소: 3100 Wilshire Blvd,            Los Angeles이태리패션타운 파더스 아버지 아버지 양복 한국 양복 실크 양복

2024-06-06

[이 아침에]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아침저녁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낮에는 등살이 뜨거운 햇살, 참 좋다. 텃밭에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부추를 심어 놓고 매일 그곳으로 향한다. 오늘도 층층이 올려놓은 돌에 걸터앉아 마른 잎들을 다듬으며 부추 한 줌을 딴다.     텃밭에 나와 고개를 돌려보면 여기저기 할 일이 산더미다. 가족들은 몸은 생각하지 않는다며 잔소리가 심하다. 사실 텃밭을 가꾸다 보면 허리도 무릎도 아프지만, 그 순간에는 잡생각이 나지 않고 무아지경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정원 일을 좋아한다. 그리고 가끔은 텃밭 일 중간에 그리움의 고운 구름에 올라타 멍해지기도 한다.     ‘아버지 날’이 다가온다. 새삼 아버지가 그리운 시기다. 어릴 적 나는 부잡스러운 오빠와 동생 때문에 잘못도 없는데 함께 무릎을 꿇고 반성하는 벌을 받곤 했다. 아버지에게 솔직하게 말했으면 그런 억울함은 없었을 터인데, 나름 의리를 지킨다고 그러질 못했다. 어머니는 큰오빠와 작은 오빠 머리에는 늘 혹이 있었다며 아버지 흉을 보시곤 했다. 아버지는 작은 일에도 화를 잘 내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중학교 때 사 주신 영어 사전을 아직 보관하고 있다. 마치 아버지의 유품 같아서다. 사전의 옆면에는 ‘제일 건강, 제이 계속 노력’이라는 아버지 멋진 글씨가 있다. 나는 잔병치레는 하지 않았지만 몸은 약했기 때문이다.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며 아버지가 가꾸던 친정집 꿈을 꾸곤 했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 그네를, 오빠와 동생을 위해 철봉 만들어 준 작은 마당이 그리웠다. 분홍 찔레꽃으로 덥힌 판자 울타리에는 아버지가 분필로 쓴 시들이 있었다. ‘아름다운 꽃을 꺾지 말고 쳐다보자.’   나도 아버지처럼 우리 뜰에서 그렇게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너무 강직한 성격 탓에 어머니와 자식들은 고생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런 아버지의 정신적 유산이 오히려 자랑스럽다. 어버지는 올바르고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했고, 채소를 가꾸고 꽃나무를 심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아버지 기일이 되면 촛불을 켜며 행복한 회고를 하셨다.     ‘불(부처) 효자’라는 영화를 만든 마가 스님의 아버지는 오랜 외도 끝에 늘그막에 본처에게 돌아왔다고 한다. 본처는 그런 그를 용서하며 자녀들이게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폭력을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들 같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모든 아버지께 축복을 보낸다. 최미자 / 수필가이 아침에 아버지 아버지 기일 너희 아버지 사실 텃밭

2024-06-02

왜 자꾸 충혈되고 뻑뻑하지? 혹사당한 눈, 피로야 가라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1초도 쉬지 못하는 눈은 사실 가장 예민한 기관이기도 하다. 햇볕이나 미세먼지에 쉽게 자극을 받을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은 TV, 스마트폰, 컴퓨터, 게임기 등 수많은 전자기기들에 하루 종일 둘러싸여 있는 경우가 많아 눈을 혹사하게 되고 피로와 시력 저하, 충혈, 안구 건조 같은 증상들을 자주 겪기도 한다.     근육의 피로가 쌓이면 근육을 움직이지 않고 충분히 쉬어야 하듯 눈의 피로가 심할 때 눈을 감은 채로 휴식을 취해주면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된다. 특히 눈 주위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만들어주면 눈의 충혈이나 피로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다.     가정용 의료기기 전문기업 '휴비딕'의 'FE-4601 프리미엄 냉/온 눈마사지기'는 따뜻한 온열과 쿨링 마사지로 눈에 포근한 휴식을 선사하는 제품이다. 눈이 피로할 때, 눈이 뻑뻑할 때나 간지러울 때 하루에 15분만 투자하면 피로한 눈에 충분한 휴식을 줄 수 있다.   냉/온 눈마사지기는 인체에 최적화된 공기압과 진동으로 눈의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고 혈액 순환에 도움을 주어 눈의 피로 회복을 돕고, 노폐물과 기름 배출은 물론, 기름샘의 기름을 녹여 눈물샘 관리에 도움을 줘 안구 건조증을 완화해 주며, 눈 다래끼는 물론 충혈에도 도움이 된다. 내장된 마이크로 모터가 분당 7000회의 진동을 일으켜 마사지 효과가 더욱 높다.     또한 별도의 냉각 과정이 없는 자체 쿨링 기능으로 20도(섭씨)의 시원한 냉찜질을 구현해 붓기 제거에도 탁월하다. 최고 온도 42도(섭씨)를 선택하면 인체에 최적화된 따뜻함으로 눈 주변을 풀고 피로회복에도 그만이다. 사용자에 최적화된 7가지 모드를 지원하고 있어 원하는 집중 케어가 가능하며, 블루투스 스피커 연결 기능을 통해 음악을 들으며 마사지를 즐길 수 있다.     미주 최대 한인 온라인 쇼핑몰 중앙일보 '핫딜'에서는 휴비딕 프리미엄 냉/온 눈마사지기를 30달러 할인한 89.99달러에 절찬 판매 중이다.   ▶상품 살펴보기:hotdeal.koreadaily.com   ▶문의:(213)368-2611핫딜 눈마사지기 아버지 세상 아버지들

2024-05-29

"바디캠 영상 남김없이 다 공개해야"

LA경찰국(LAPD) 경관 총격으로 피살된 양용씨 사건 당시 현장 경관의 바디캠 영상이 공개〈본지 5월 17일 A-1면〉됐지만 일부에 그쳐 전체 영상 및 음성녹취 공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관련기사 문 열고 총격까지 단 8초...양용씨 피살사건 바디캠 공개 양용씨 피살 영상 등 본지, 정보공개 청구 본지는 정찬용 변호사와 함께 지난 10일 ‘공공기록 정보 공개(Request for Records under the Public Records Act)’를 청구한 바 있다. 6일 뒤 LAPD는 바디캠 영상을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했다. 영상의 전체 분량은 24분이지만 여러각도의 같은 영상이 포함되어 있어 실제 현장 상황 분량은 13분 정도에 불과하다. 당시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시간부터 총격 후 사건 수습까지는 대략 5시간 정도가 걸렸다.   정 변호사는 “공개되지 않은 총격 이후 양용씨 응급구조 상황 등 앞뒤 영상과 녹취를 모두 봐야 전체 맥락에서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며 “비록 일부 영상은 공개됐지만 당국에 정보 공개 청구는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바디캠 영상을 봤나. “봤다. 유가족과 경찰의 엇갈린 발언으로 불명확했던 부분은 해소됐다. 양씨가 칼을 소지하고 있었고 경관이 ‘수차례 총격(multiple shots)’을 가한 것은 확인됐다. 하지만 영상으로 경찰의 과실 역시 드러났다.”   -어떤 과실인가. “우선 강제적이지 않은 병원 이송을 가족이 희망했고 이에 대해 경찰은 암묵적으로 합의했다는 점이다.”   -경찰은 당시 양씨 아버지에게 필요할 경우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바디캠에서 당시 현장에 있던 책임 경관(수퍼바이저)은 ‘치료를 받도록 가게 하기 위해선 그를 강제로 빼낼 수 없다’고 양씨 아버지 양민씨에게 수차례 언급했다. 그러다가 경찰은 ‘침입(trespassing)’ 혐의로 체포할 수 있는 옵션을 제시하긴 했지만 이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유가족은 하지 않았다. 그럼 유가족은 당연히 경찰이 무력을 사용하여 양씨가 다칠 수 있는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다.”   -또 다른 경찰의 과실은. “가장 큰 문제는 바디캠 공개시 고인의 얼굴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올린 것이다. LAPD가 이례적일 정도로 신속하게 바디캠을 공개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양씨의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모두 공개한 것은 사생활 침해이자 고인에 대한 모독이다.”   -이름이 공개됐으니 얼굴도 공개할 수 있지 않나. “양씨는 범죄자가 아닌 환자였다. 더구나 부모님 집에 있는 상황이었다. 정신질환이 있는 것도 사적인 정보인데 이름은 알려진다고 쳐도 모두가 보는 유튜브에 양씨의 얼굴과 집안의 모습을 공개한 것은 명백한 경찰의 과실이다.”   -양씨 가족은 바디캠 공개 후 ‘아들이 죽는 장면을 수차례봐야 했다’고 성명서를 냈다. “유가족 입장에서 겁에 질린 아들의 표정과 모습이 낱낱이 공개된 것은 모욕적이고 상처가 될 수 있다.”   -그외 경찰 과실이 있나. “복부에 가한 세 번째 총격의 당위성, 비살상무기 소지 경관의 대응 여부, 911에 신고한 클리니션의 진술 등은 추가로 조사해봐야 하는 부분이다.”   -지난 10일 시정부와 LAPD에 청구한 공공기록은 어떤 것들인가. “사건의 전반을 담긴 5월 2일 오전 10시 50분~오후 3시 동안의바디캠 및 차량 내부 카메라 영상 및 녹취록이다. 하지만 지난 16일 공개된 바디캠은 주요 부분만 편집되어 실제 길이보다 짧다.”   -짧지만 중요한 부분은 이미 공개됐다. 더 필요한가. “오가는 차 안에서 경관들이 나눈 대화, 그리고 현장 수습 과정 등 모든 것을 확인해야 한다. 보통 굵직한 것들이 나오면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무시되는 사소한 대화들 속에서 총격을 가한 경관이 선입견이 있었는지 등 중요한 단서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기록을 받아봐야 한다.”   -정보 공개 청구에 대한 LAPD의 답변이 있었나.   “아직받지 못했다. 27일까지 공공기록 정보 공개 청구에 대한 ‘결정서(determination letter)’를 보내지 않으면 민사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장수아 기자정보공개 소송제 경관 총격 공공기록 정보 양씨 아버지

2024-05-21

[문예 마당] 인순이 예찬

  요즘 왕년의 한국 최고 디바 4명이 결성한 ‘골든걸스’라는 그룹이 화제다. 그중 맏언니 격인 인순이는 67세로 70을 바라보고, 나머지 3명도 환갑이 눈앞이다. 하지만 이들의 에너지 넘치는 공연은 탄성을 불러일으킨다. 그 중심의 인순이가 특히 눈길을 끈다.         그래서인지 이곳저곳에서 인순이 인터뷰 내용이 많이 나온다. 얼마 전엔 한 TV프로그램에서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그녀는 가수로 성공한 지금까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살고 있다고 했다. 그 인터뷰를 본 후 인순이에 대해 새로운 평가를 하게 됐다.     인순이는 한국인 어머니와 주한 미군이었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흑인인 아버지는 복무 후 미국으로 돌아갔다. 인순이는 “10살쯤에 아버지가 미국으로 오라는 연락을 했다. 그런데 안 갔다. 왜냐하면, 미국에 아버지 가족이 있을 거고, 내가 가서 그 가정을 흔들기가 싫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또 홀로 남게 될 어머니 걱정도 했다고 덧붙였다. 인순이는 “다름으로 인한 모진 시선을 받았던 딸을 매서운 바람에도 꽃이 필 수 있도록 끝까지 잘 지켜준 어머니,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잘 견뎌준 어머니께 무한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인순이는 남들보다 오랜 사춘기를 겪었다.  어머니는 어머니 나라가 있고 아버지는 아버지 나라가 있다.  그럼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라는 정체성 혼란으로 방황했다고 한다.  사춘기 시절 버스를 탔는데 짓궂은 남학생들이 외모를 놀리며 괴롭혔다. 그때 주위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남학생들이 놀리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결심하고 “그래 너희들 말이 맞다”고 당당하게 맞서니 그들이 할 말이 없는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고 한다.       과거 ‘신정아 게이트’로 한국 예술·문화계가 학력위조 사건으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그때 인순이 이름도 도마에 올랐다. 인순이는 서강대학교에서 자신의 히트곡인 ‘거위의 꿈’을 주제로 연 특별강연에서 ‘대한민국에서 혼혈아로 산다는 것, 혼혈가수로 살면서 어려웠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강연 끝에 “가정 형편상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고 겨우 중학교 졸업장을 받았다”고 밝혔다.     얼마 전 기자로부터 학력을 묻는 전화가 왔길래 날 비껴갔으면 했던 것이 결국 왔구나 생각했단다. 하지만 솔직하게 다 말하고 웃는 사진 넣어주고, 욕을 먹을지언정 동정받지 않게 써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어 “사람들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어 잠시 나도 착각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며 그동안 잘못 기재된 나의 학력을 고칠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야 밝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인순이는 한국 최고의 가수이다. 그녀에게 학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순이는 도전의 아이콘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가수들은 무대를 잃어 설 자리가 없었다. 자신에게 동기부여를 하려고 보디빌딩 대회에 도전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거울 앞에 접착 메모지를 수십장 붙였다. ‘이러다가 잊힌다’ ‘나를 컨트롤 하고 싶다’ ‘나를 이기고 싶다’ 등 3개월 동안 지독하게 운동하고 대회에 나갔다. 등수는 처음부터 안중에 없었다. 막상 무대에 올라가기 20분 전에는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것도 내 인생, 이미 피할 수 없는 일이면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며 무대에 올라섰다고 한다. 지금 여기서 포기하면 난 아무것도 못 한다. 한발 내딛지 않으면 완주도 없다. 차라리 즐기자고 결심했다. 아버지 피부를 닮아 남이 10번 선텐 할 때 3번 아버지 체형을 닮아 궁둥이가 튀어나와 오리 궁둥이라 놀림당하여 감추려 노력했는데 그게 보디빌딩에서는 힘 안 들이고 애플힙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인순이는 2013년 강원도 홍천군에 다문화 대안학교인 해밀학교를 설립해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해밀의 뜻은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이란 순 우리말이다. 여태껏은 자신을 지키고 세우는데도 힘들었지만 이제는 누구에게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 줄 형편이 되었다. 그 아픔을 알기에 상처받고 소외된 아이들이 겪을 아픔을 빨리 털어내도록 그들 옆에 있어 줘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해밀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그녀는 동화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단점인 줄 알았던 자신의 다름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려서 겪었던 일들을 소재로 ‘미운 오리 새끼’ 같은 동화책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인순이를 30여년 전 가까이서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노래하는 무대가 아니라 모 대학 대학원 최고위 과정에서다. 그녀는 남편과 같은 과정이었고 졸업 파티를 할 때 나도 가족으로 참석했었다. 첫인상은 수더분하고 평범한 여성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녀가 입지전적 여성임을 알게 됐다. 편모슬하에서 혼혈아로 자라며 정체성 혼란과 갈등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꿈을 키워 나갔고, 차별과 멸시를 극복하고 가수로 성공한 용기와 노력, 아버지의 부름을 거부하고 어머니를 택한 현명한 결단, 자기의 약점을 감추지 않는 솔직함, 남을 의식하지 않는 도전정신, 대안학교를 세우는 등 사회를 위한 공헌 등….       ‘난 꿈이 있었죠’라는 노랫말로 시작되는 ‘거위의 꿈’이라는 그녀의 히트곡은  본인의  삶을 노래로 표현한 듯하다. 인순이는 학식 높은 사람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 못지않은 VVIP 라는 생각이 든다. ‘골든걸스’에 이어 인순이의 또 다른 도전을 기대해 본다.     배광자 / 수필가문예 마당 인순 예찬 한국인 어머니 아버지 나라 아버지 가족

2024-05-09

다큐 영화 '아버지의 마음' 시사회

    다큐영화 ‘아버지의 마음’이 오늘(13일) 오후3시와 내일(14일) 오후4시, 버지니아 헌던 소재 열린문 장로교회(담임목사 김용훈)에서 상영된다.     김용훈 목사는 “영화를 통해 기독교의 진정한 사랑의 릴레이를 경험하고 나눌수 있기를 소망한다”며 “시사회에 이웃과 가족이 참여해 뜻깊은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는 투치족 대학살 사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메소드’ 르완다 청년과 한국 고아였다가 컴패션을 통해 미국으로 입양돼 선교사가 된 여성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감독이면서 목회자이기도 한 김상철 감독은 ‘제자, 옥한흠’(2014), ‘순교’(2015), ‘중독’(2019), ‘부활: 그 증거’(2020) 등 기독교적 색채가 짙은 영화를 연출해 왔다. 하지만 이번 ‘아버지의 마음’이 그려낸 보편적 사랑은 종교를 초월한 호소력을 갖는다.     빈곤국 어린이를 돕는 하준파파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황태환 씨의 이야기와 '컴패션'을 설립한 스완슨 목사의 사랑이 현재까지도 어떻게 이어지며 전달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영화의 나레이션은 배우 신애라씨가 맡았다.     스완슨 목사가 설립한 자선단체 ‘컴패션’은 미국 후원자와 가난한 국가 어린이들을 1대1로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10만명이 넘는 한국 어린이들이 혜택을 받았다.     한편 열린문 장로교회는 매년 컴패션 주일을 통해 제 3세계 빈곤 아동 후원을 결연하고 있다. 문의: 703-318-8970 (열린문 장로교회)       김윤미 기자 kimyoonmi09@gmail.com아버지 시사회 마음 시사회 다큐 영화 담임목사 김용훈

2024-04-19

다큐 영화 '아버지의 마음' 시사회

      다큐영화 ‘아버지의 마음’이 오늘(13일) 오후3시와 내일(14일) 오후4시, 버지니아 헌던 소재 열린문 장로교회(담임목사 김용훈)에서 상영된다.   김용훈 목사는 “영화를 통해 기독교의 진정한 사랑의 릴레이를 경험하고 나눌수 있기를 소망한다”며 “시사회에 이웃과 가족이 참여해 뜻깊은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는 투치족 대학살 사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메소드’ 르완다 청년과 한국 고아였다가 컴패션을 통해 미국으로 입양돼 선교사가 된 여성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감독이면서 목회자이기도 한 김상철 감독은 ‘제자, 옥한흠’(2014), ‘순교’(2015), ‘중독’(2019), ‘부활: 그 증거’(2020) 등 기독교적 색채가 짙은 영화를 연출해 왔다. 하지만 이번 ‘아버지의 마음’이 그려낸 보편적 사랑은 종교를 초월한 호소력을 갖는다.     빈곤국 어린이를 돕는 하준파파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황태환 씨의 이야기와 '컴패션'을 설립한 스완슨 목사의 사랑이 현재까지도 어떻게 이어지며 전달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영화의 나레이션은 배우 신애라씨가 맡았다.     스완슨 목사가 설립한 자선단체 ‘컴패션’은 미국 후원자와 가난한 국가 어린이들을 1대1로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10만명이 넘는 한국 어린이들이 혜택을 받았다.     한편 열린문 장로교회는 매년 컴패션 주일을 통해 제 3세계 빈곤 아동 후원을 결연하고 있다. 문의: 703-318-8970 (열린문 장로교회)         김윤미 기자 kimyoonmi09@gmail.com아버지 시사회 마음 시사회 다큐 영화 담임목사 김용훈

2024-04-12

[아름다운 우리말] 무엇을 믿기 어려운가?

종교(宗敎)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종교의 장면에 등장하는 ‘난신난해(難信難解)’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말은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종교를 배우다 보면 수많은 난신난해의 장면이 나옵니다.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옆구리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바다를 가르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온갖 기적이 일어나고, 지옥 속에서 고통을 만나게 됩니다. 도대체 믿을 수가 없습니다. 종종은 이런 이야기를 믿는 사람이 오히려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경전에서는 이런 대목에서 믿음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믿음의 장면이라기보다는 표적의 장면이며, 방편의 장면으로 보입니다.   ‘믿음’의 장면은 뜻밖에도 가장 쉬운 언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해도 매우 빠르고 쉽습니다. 다만 믿을 수 없기에 믿지 못하고, 믿지 못하니 이해도 안 되는 겁니다. 이해에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종교의 경전마다 가장 쉽게 쓰인 부분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까요?     불교와 기독교를 살펴보면 금방 이해의 어려움을 깨닫게 됩니다. 불교에서 난신난해라는 말이 나오는 장면은 부처님이 중생에게 부처가 될 거라고 수기(受記)를 주는 장면입니다. 다른 어떤 경전보다도 쉬운 말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불성이 있으니 열심히 수행하면 부처가 된다는 약속입니다. 이 말이 믿기지 않는 겁니다. 부처님 같은 분이 아니라 나 같은 게 부처가 될 거라니 믿기지 않는 것이지요. 당연히 이해도 안 됩니다.   기독교에서도 예수님께서 주신 기도문을 외우지만, 그 내용을 믿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는 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 겁니다. 예수님 정도는 되어야지 어떻게 나같이 수많은 흠결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이겠습니까? 입으로는 기도하고 있지만 기도문의 내용을 믿지 못하는 순간이 계속 찾아오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면서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믿음의 어려움은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내가 부처가 될 것을 믿는 순간 다음 단계가 곧바로 떠오릅니다. 부처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을 말한 것은 그다음 단계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귀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다음 말을 해야 합니다. ‘너도 그렇다.’ 만약 이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 내가 세상에서 귀하다는 말은 거짓이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너도 그렇다.’라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나만 그렇다는 선언은 깨달음이라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깨달음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나 같은 게 부처이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도 믿기 어렵지만, 저런 게 부처이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건 더 믿기 힘듭니다. 기독교의 복음성가 중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저는 이 노래가 가장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노래를 귀엽고, 예쁜 아이들에게 부를 때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 노래는 장애가 있거나, 고통스러운 병에 걸리고, 가난에 찌든 사람에게 부를 때 문제가 됩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며 불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래의 대상이 지독한 범죄자이면 어떨까요? 저렇게 나쁜 놈도 부처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이 드는가요? 믿음이라는 게 이렇게 어렵습니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난신난해라는 말은 고통의 표현이 됩니다.   한편 내가 참으로 귀하다는 말, 내가 부처가 될 거라는 말, 내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말을 들으면 고맙습니다. 나같이 하찮은 존재가, 수많은 죄를 짓고 사는 내가 귀하다는 말씀에 눈물이 흐르기도 합니다. 믿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그 말에 오늘도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눈물이 빛이 됩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천상천하 유아독존 예수님 정도 우리 아버지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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