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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지 2년 반에 접어든 2022년 6월 끝자락. 아직 외식하기가 좀 불안한 세상이다.   군대 시절. 장교와 사병이 식사를 같이하지 않아야 해서 위생병들과 한 자리에서 밥을 안 먹던 기억이 난다. 남녀가 가까워지려고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풍습과 정 반대 경우. 장교와 사병이 친근해지면 위계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의사는 자기 가족을 다른 동료 의사에게 일임한다. 아들 환자가 아버지 의사 말을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아버지 의사는 자칫 감정에 치우치기 쉬운 이유에서다. ‘Familiarity breeds contempt’ ‘친숙은 경멸의 근본’ ‘가까워지면 무례해진다’는 격언. 우리 속담의 ‘오냐오냐했더니 할아비 상투를 틀어잡는다’와 같은 사연이다.   정신질환자와 의사 사이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거리낌 없는 사이에서는 심리치료가 불가능하다. 의사는 환자를 엄격하게 다스려야 할 때가 많다. 의사들이 일반인보다 2배 정도 자살률이 높은데, 특히 정신과 의사들은 6배나 더 높다는 미국 통계를 얼마 전에 읽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해서? 각양각색의 정신질환 영혼 바이러스에 거듭 침범당한 결과는 아닐지.   우리는 친숙한 사람에게 가까이 간다. 친구를 만나고, 친척을 방문하고, 친절한 사람에게 끌리는 속성을 지닌다. 사내들은 ‘불알친구’를 만나서 쌍소리를 나누며 즐거워한다.   2008년에 ‘불알’의 어원이 불(火)과 알(卵)이 합쳐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 고려대 김민수(1926~2018) 교수 編 ‘우리말 어원사전’(1997)에 근거를 둔 주장이었다. 이제 학설을 바꿀까 한다. ‘불’이 ‘fire’가 아니라 순수 우리말 ‘불룩, 불뚝, 불쑥, 불끈’의 ‘불’이라는 각성이 싹튼다. 다음과 같은 사전 해석과 괄호 속 예문들로 당신 눈이 반짝하기를 바란다.   불룩: 물체의 거죽이 크게 두드러지거나 쑥 내밀려 있는 (배가 불룩하다)/ 불뚝: 갑자기 솟아오르는/ (불뚝 선 산봉우리)/ 불쑥: 불룩하게 쑥 나오거나 내밀어진 (불쑥한 주머니)/ 불끈: 물체 따위가 두드러지게 자꾸 치밀거나 솟아오르거나 떠오르는 (힘이 불끈불끈 솟다) 볼록, 발끈 같은 축소어도 있다.   불알은 순수 우리말. 불룩, 불뚝 서기를 잘하고, 불쑥대고 불끈거리는 음경(陰莖)의 씨앗, ‘고환(睾丸)’을 뜻한다. 의태어(擬態語)다. ‘불두덩’도 불타는 두덩이 아니라 불룩 나온 두덩을 일컫는다.   음경을 비속어로 좆이라 한다. 경희대 어원학자 서정범(1926~2009) 교수에 의하면 좆은 씨(種)를 뜻하는 조어(祖語) ‘돋’에서 유래해서 디귿이 지읒으로 구개음화 과정을 겪었다 한다. 돋다: ①해나 달 따위가 솟아오르다 ②입맛이 당기다 ③속에 생긴 것이 겉으로 나오거나 나타나다. ‘나오거나 나타나다’ 부분에 각별히 집중하시라. 나서고 나대면서 설쳐 대는 남근을 상상하면서.   비속어 ‘졸라’는 ‘존나’에서 유래했다. ‘좆이 나오게’(흥분스럽게, 심하게)에서 두 글자만 따온 ‘좆나’가 ‘졸라’로 변한 것이다. ‘나온다’는 아주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자세다.   ‘영탁’의 노래 중 구성지고 친숙한 뽕짝, ‘니가 왜 거기서 나와’를 당신에게 소개한다. 사랑하는 남녀의 수상한 정황을 연상시키는 가사가 흥미롭다. 홍난파 작곡, 윤석중 작사 ‘달맞이’가 떠오른다.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 앵두 따다 입에 물고 목에다 걸고 ♪~?~~”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아버지 의사 정신과 의사들 우리말 어원사전

2022-06-28

시각예술가 투 잉밍 작가 개인전

E2아트 갤러리(관장 최희선)에서 다음 달 15일까지 투투(Tu-2)로 알려진 대만계 미국인 작가 투 잉밍의 전시회 ‘자아 찾아가는 여정(Route to Root: Journey to the Center)’을 개최한다.     투 잉밍(Tu-2) 작가는 그림, 사진, 다큐멘터리 영화에 초점을 맞춘 시각 예술가로 이번 전시회에 유화, 드로잉, 디지털 아트 등 다양한 작품 40여점이 소개된다.     투 잉밍 작가는 대만에서 태어나 대만국립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후 UCLA에서 사진학 석사를 공부하면서 드로잉을 함께 공부했다.     유년시절부터 그림을 잘 그리는 투 잉밍(Tu-2)을 부모님이 지원했지만 13세 때 아버지 사망으로 정신적, 물질적으로 커다란 시련을 겪게 된다.     하지만 그림으로 재개한 투 잉밍의 첫 작품은 아버지 초상화로 예술을 통해 치유를 경험하면서 예술가로서의 여정이 시작됐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미술계에 늦깎이로 출발한 투 잉밍(Tu-2) 작가의 시각예술가로서 진화되는 창의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투 잉밍은 “사람들이 작품을 어떻게 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작품을 통해 자신을 통찰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주소: 1215 W. Washington Blvd. LA   ▶문의: (213)741-0014 이은영 기자시각예술가 개인전 작가 개인전 시각 예술가 아버지 초상화

2022-06-26

[J네트워크] 스포츠 스타와 패밀리 비즈니스

오래전 일이다. 2004 아테네 여름올림픽이 끝나고 몇 달이 지난 뒤였다. 올림픽에 출전했던 A선수 아버지(B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올림픽 전 A선수 인터뷰 때 현장에 나타난 B씨에게 명함을 건넨 게 떠올랐다. 잠깐 안부를 묻더니 곧바로 B씨는 화를 냈다.   “기자님, 다름이 아니라 우리 아이(A선수)가 올림픽 끝나고 국민적으로 인기가 많았잖아요. 우리 아이 덕분에 OO시(당시 A선수는 지방자치단체팀 소속이었다)도 관심을 많이 받았어요. 시장이 뉴스에 몇 번을 나왔는데. 며칠 전 연락이 왔어요. 우리 아이 이름을 딴 체육관을 짓고 싶다고. 그런데 체육관에 달랑 우리 아이 이름 붙여주는 게 전부라네요. 그게 우리한테 무슨 도움이 됩니까. 이름으로 퉁치는 거지. 그래서 내가 말했어요. 체육관에 우리 아이 이름을 붙이려면 나나 아이 이름으로 소유권 등기를 해달라고.”   B씨는 “시에서 그렇게는 못 한다고 한다. 이렇게 ‘날로 먹으려는’ 시장은 지탄받아야 한다”며 고발기사를 써달라는 거였다. 황당한 요구에 어안이 벙벙했다. A선수를 생각해 B씨를 잘 달래 전화를 끊었다. 기사가 나오지 않자 B씨는 두 번 다시 연락해오지 않았다. 얼마 후 A선수는 다른 지자체 팀으로 이적했다. A선수가 뜨면서 B씨에게 새 직업이 생겼다. 바로 ‘A선수 아빠’라는 직업이다. 사실상 선수의 매니저다.    스포츠 스타 가족 중 직업이 ‘누구 아빠(엄마)’ 또는 ‘누구 형(누나)’인 경우가 적지 않다. 골프계에 많았던 골프 대디가 대표적이다. 축구와 야구에도 꽤 있다. 해외 진출 선수의 경우 국내 대리인을 아버지 등 가족이 맡곤 한다. 스포츠 스타의 패밀리 비즈니스다.   성공 사례도 있다. 피겨 김연아다. 그의 매니지먼트사는 어머니가 대표인 패밀리 비즈니스로 출발했다. 김연아를 통해 아마추어 개인종목 선수 육성 노하우가 쌓였다. 그 노하우 덕분에 체조 여서정, 탁구 신유빈, 수영 황선우 등이 세계적 선수로 성장하고 있다. 김연아 매니지먼트의 시행착오가 후배들 성장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최근 새로운 형태의 패밀리 비즈니스가 등장했다. 손흥민의 한 친척이 대표인 패션 브랜드가 론칭했다. 손흥민이 지난달 24일 영국에서 입국할 때 입어 화제가 됐다. 지난 17일 팝업스토어 개장 때는 오픈런까지 벌어졌다. 제품 후기를 보니 대개 긍정적이지만 간간이 부정적인 것도 보인다. 과거 스포츠 스타의 패밀리 비즈니스 고객은 선수 당사자 또는 다른 선수 정도였다. 손흥민의 경우 고객은 불특정 다수의 팬이다. 파급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 부디 잘 되기를 바란다. ‘월드 클래스’ 손흥민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게. 장혜수 / 한국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J네트워크 비즈니스 스포츠 패밀리 비즈니스 스포츠 스타 a선수 아버지

2022-06-26

[카운터어택] 스포츠 스타와 패밀리 비즈니스

오래전 일이다. 2004 아테네 여름 올림픽이 끝나고 몇 달이 지난 뒤였다. 올림픽에 출전했던 A선수 아버지(B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올림픽 전 A선수 인터뷰 때 현장에 나타난 B씨에게 명함을 건넨게 떠올랐다. 잠깐 안부를 묻더니 곧바로 B씨는 화를 냈다.   “기자님, 다름이 아니라 우리 아이(A선수)가 올림픽 끝나고 국민적으로 인기가 많았잖아요. 우리 아이 덕분에 OO시(당시 A선수는 지방자치단체팀 소속이었다)도 관심을 많이 받았어요. 시장이 뉴스에 몇 번을 나왔는데. 며칠 전 연락이 왔어요. 우리 아이 이름을 딴 체육관을 짓고 싶다고. 그런데 체육관에 달랑 우리 아이 이름 붙여주는 게 전부라네요. 그게 우리한테 무슨 도움이 됩니까. 이름으로 퉁치는 거지. 그래서 내가 말했어요. 체육관에 우리 아이 이름을 붙이려면 나나 아이 이름으로 소유권 등기를 해달라고.”   B씨는 “시에서 그렇게는 못 한다고 한다. 이렇게 ‘날로 먹으려는’ 시장은 지탄받아야 한다”며 고발기사를 써달라는 거였다. 황당한 요구에 어안이 벙벙했다. A선수를 생각해 B씨를 잘 달래 전화를 끊었다. 기사가 나오지 않자 B씨는 두 번 다시 연락해오지 않았다. 얼마 후 A선수는 다른 지자체 팀으로 이적했다. A선수가 뜨면서 B씨에게 새 직업이 생겼다. 바로 ‘A선수 아빠’라는 직업이다. 사실상 선수의 매니저다.   스포츠 스타 가족 중 직업이 ‘누구 아빠(엄마)’ 또는 ‘누구 형(누나)’인 경우가 적지 않다. 골프계에 많았던 골프 대디가 대표적이다. 축구와 야구에도 꽤 있다. 해외 진출 선수의 경우 국내 대리인을 아버지 등 가족이 맡곤 한다. 스포츠 스타의 패밀리 비즈니스다.   성공 사례도 있다. 피겨 김연아다. 그의 매니지먼트사는 어머니가 대표인 패밀리 비즈니스로 출발했다. 김연아를 통해 아마추어 개인종목 선수 육성 노하우가 쌓였다. 그 노하우 덕분에 체조 여서정, 탁구 신유빈, 수영 황선우 등이 세계적 선수로 성장하고 있다. 김연아 매니지먼트의 시행착오가 후배들 성장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최근 새로운 형태의 패밀리 비즈니스가 등장했다. 손흥민의 한 친척이 대표인 패션 브랜드가 론칭했다. 손흥민이 지난달 24일 영국에서 입국할 때 입어 화제가 됐다. 지난 17일 팝업스토어 개장 때는 오픈런까지 벌어졌다. 제품 후기를 보니 대개 긍정적이지만 간간이 부정적인 것도 보인다. 과거 스포츠 스타의 패밀리 비즈니스 고객은 선수 당사자 또는 다른 선수 정도였다. 손흥민의 경우 고객은 불특정 다수의 팬이다. 파급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 부디 잘 되기를 바란다. ‘월드 클래스’ 손흥민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게. 장혜수 / 한국 콘텐트제작에디터카운터어택 비즈니스 스포츠 패밀리 비즈니스 스포츠 스타 a선수 아버지

2022-06-24

[문화 산책] 파더스데이 유감

지난 19일은 ‘아버지의 날(파더스데이)’이다.   아버지날이라? 이런 생뚱맞은 날이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날이 갈수록 처량하게 쪼그라드는 아버지의 신세를 위로하자는 날인가. 어머니날만 요란스럽게 떠드는 것이 미안해서 아버지날도 만들어주자는 갸륵한 생각인가. 그래서 적어도 이날 하루만은 아버지의 존재를 인정하고 대접하겠다는 뜻인가.   하긴 미국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날, 장인·장모의 날 등 무슨 날이 많기는 하다. 이렇게 많은 무슨 날들이 혹시 업자들의 농간으로 만들어진 건 아닌가 하는 심술궂은 생각도 든다. 제대로라면 1년 365일 모두가 어머니날, 아버지날, 어린이날, 부부의 날이어야 맞는 거 아닐까.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   사실 아버지의 신세는 어지간히 처량하다. 죽어라 일해서 돈 벌고도, 아내에게 홀대 받고, 자식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산다’는 구호가 좋은 증거다. 그런 구호가 등장하는 세상은 이미 망가진 세상이다. 아비 신세를 비아냥거리는 유머는 또 얼마나 많은가. 외롭고 처량한 아버지들… 중년의 아버지일수록 더 심하다. 자식들은 저 혼자 다 큰 것처럼 제멋대로고 걸핏하면 유창한 본토 영어로 총알처럼 말 대답해대고, 아내는 측은한 눈길로 내려다보며 따따부따 잔소리 쏴대고, 어디 그뿐인가, 하루가 다르게 기운은 떨어지고, 사회에서는 변두리로 밀려나고, 집안에서는 편안하게 엉덩이 붙일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그렇다고 사랑이라도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니 문제다.   그러니 풀밭에 나가 쇠몽둥이 휘두르고, 술에 취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노래나 흥얼거리고…. 화를 풀기 위해 죄 없는 공을 마구 후려치니 제대로 맞을 리도 없다. 골프공도 자존심이 있지, 그런 마음으로 난폭하게 휘두르는 몽둥이에 곱게 맞을 까닭이 없다. 나는 한국 남자들이 골프에 미치는 이유가 외로움과 관계가 깊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들의 진단에 따르면 한국 특유의 가부장주의 가정에서 아버지가 외로운 건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감정이나 사랑 표현에 대단히 서툰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거야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거 아니냐고 우기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표현 안 하면 모를 미묘한 감정의 흐름이 너무도 많은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 아닌가.   아버지와 자식들이 자상하게 정을 나누지 못하고 데면데면 살다가, 돌아가신 뒤에야 뒤늦게 후회하며 ‘걸걸타령’을 늘어놓는 것이 고작이다. 더 잘해 드릴 걸, 사랑한다고 말할 걸, 이랬으면 좋았을 걸… 아버지 미안해요, 용서하세요, 사랑해요!   “아버지가 마시는 술의 절반은 눈물”이라는 유명한 시 구절도 있다. 김현승 시인이 쓴 ‘아버지의 마음’ 중의 한 구절이다. 생각해보면 처절한 이야기다.   오래전 한국에서는 ‘울고 싶은 남자들’이라는 책이 나왔는데 그 책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아들아. 나는 너 때문에 울고 싶다. 남자로 산다는 것… 참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힘겨운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산다는 말에다 “사랑이 있어야 아버지가 바로 선다”는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이상으로 궁상맞은 글 끝! (아, 오해 마시기를 나는 아이들로부터 존경받는 행복한 아버지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파더스 유감 어머니날 아버지날 할아버지 할머니날 사실 아버지

2022-06-22

[열린 광장]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날(파더스데이)’은 어떻게 제정됐을까. 파더스데이는 소노라 도드라는 여성이 자신과 다섯 형제를 두고 먼저 간 어머니 대신 그간 홀로 자녀를 길러준 아버지의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 제안했다고 한다.     자녀가 중환자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아버지의 슬픔 표현 방식은 어머니와 다른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의 마음을 잘 가늠하지 못할 수 있다.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차이는 슬픔 대처 패턴 때문이다. 슬픔의 정도가 깊고 얕은 것이라기 보다는 표현 방법이 다른 것이다.     어머니는 사랑과 희생이다. 투병 기간 어머니는 밤낮으로 자녀 옆에서 떠나지 않고 돌보며 병실을 지킨다. 한편 아버지는 사랑과 아픔이다. 창밖 하늘만 바라보며 자녀의 손을 잡은 채 슬픔을 삭인다.     요즘 수년 전 떠나 가신 내 아버지를 그린다. 무심한 듯 말이 별로 없고 자녀 돌봄에  애타지 않은 듯했다. 오직 선교사역에만 열중한 듯 보여 그 분의 속마음을 깊이 몰랐다. 내가 아버지로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아내는 가끔 우리 집을 방문하는 딸이 애처로워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딸이 그 마음을 다 몰라주어 아내는 서운해하기도 한다. 나는 그나마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창밖 뒤뜰만 바라본다.     슬픔이 닥쳤을 때 보이는 반응은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르다. 이런 연구를 적용하면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을 이해하고 극복에 도움을 줄 수가 있다. 크게 4가지로 감성파(Feeler), 이성파(Thinker), 몽상파(Dreamer), 활동파 (Doer)로 나눈다.     자녀의 슬픔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어머니는 감성적인 요소가 앞선다. 어머니는 병상의 자식을 돌보고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     반면 아버지는 활동적인 요소가 먼저다. 자녀의 입원과 관련된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대비를 생각한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면 슬픔에 반응하는 방식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아버지는 외적 업무에만 치우친 듯 보였으나 이제 나이 든 안목으로 돌이켜보면 그는 소명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하려고 애쓴 것 같다.     자식 사랑도 스타일이 각각 다르다. 아내는 희생을 마다 않고 자식 일에 전적으로 치중하는 사랑을 보인다. 나는 자식에게 멘토처럼 다가가고 있어 사랑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이 내일(19일) 행복한 파더스데이를 맞이하기를 기원한다.  김효남 / HCMA 채플린 본부 디렉터열린 광장 아버지 마음 아버지 마음 소명과 아버지 반면 아버지

2022-06-17

[문화 산책] 파더스데이 유감

미국에서는 6월 세번째 일요일이 ‘아버지의 날(파더스데이)’이다.   아버지날이라? 이런 생뚱맞은 날이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날이 갈수록 처량하게 쪼그라드는 아버지의 신세를 위로하자는 날인가. 어머니날만 요란스럽게 떠드는 것이 미안해서 아버지날도 만들어주자는 갸륵한 생각인가. 그래서 적어도 이날 하루만은 아버지의 존재를 인정하고 대접하겠다는 뜻인가.   하긴 미국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날, 장인·장모의 날 등 무슨 날이 많기는 하다. 이렇게 많은 무슨 날들이 혹시 업자들의 농간으로 만들어진 건 아닌가 하는 심술궂은 생각도 든다. 제대로라면 1년 365일 모두가 어머니날, 아버지날, 어린이날, 부부의 날이어야 맞는 거 아닐까.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   사실 아버지의 신세는 어지간히 처량하다. 죽어라 일해서 돈 벌고도, 아내에게 홀대 받고, 자식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산다’는 구호가 좋은 증거다. 그런 구호가 등장하는 세상은 이미 망가진 세상이다. 아비 신세를 비아냥거리는 유머는 또 얼마나 많은가. 외롭고 처량한 아버지들… 중년의 아버지일수록 더 심하다. 자식들은 저 혼자 다 큰 것처럼 제멋대로고 걸핏하면 유창한 본토 영어로 총알처럼 말 대답해대고, 아내는 측은한 눈길로 내려다보며 따따부따 잔소리 쏴대고,   어디 그뿐인가, 하루가 다르게 기운은 떨어지고, 사회에서는 변두리로 밀려나고, 집안에서는 편안하게 엉덩이 붙일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그렇다고 사랑이라도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니 문제다.   그러니 풀밭에 나가 쇠몽둥이 휘두르고, 술에 취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노래나 흥얼거리고…. 화를 풀기 위해 죄 없는 공을 마구 후려치니 제대로 맞을 리도 없다. 골프공도 자존심이 있지, 그런 마음으로 난폭하게 휘두르는 몽둥이에 곱게 맞을 까닭이 없다. 나는 한국 남자들이 골프에 미치는 이유가 외로움과 관계가 깊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들의 진단에 따르면 한국 특유의 가부장주의 가정에서 아버지가 외로운 건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감정이나 사랑 표현에 대단히 서툰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거야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거 아니냐고 우기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표현 안 하면 모를 미묘한 감정의 흐름이 너무도 많은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 아닌가.   아버지와 자식들이 자상하게 정을 나누지 못하고 데면데면 살다가, 돌아가신 뒤에야 뒤늦게 후회하며 ‘걸걸타령’을 늘어놓는 것이 고작이다. 더 잘해 드릴 걸, 사랑한다고 말할 걸, 이랬으면 좋았을 걸… 아버지 미안해요, 용서하세요, 사랑해요!   “아버지가 마시는 술의 절반은 눈물”이라는 유명한 시 구절도 있다. 김현승 시인이 쓴 ‘아버지의 마음’ 중의 한 구절이다. 생각해보면 처절한 이야기다.   오래전 한국에서는 ‘울고 싶은 남자들’이라는 책이 나왔는데 그 책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아들아. 나는 너 때문에 울고 싶다. 남자로 산다는 것… 참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힘겨운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산다는 말에다 “사랑이 있어야 아버지가 바로 선다”는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이상으로 궁상맞은 글 끝! (아, 오해 마시기를 나는 아이들로부터 존경받는 행복한 아버지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파더스 유감 어머니날 아버지날 할아버지 할머니날 사실 아버지

2022-06-16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아버지와 노예 해방

올해 6월 19일은 “아버지의 날”과 “노예 해방의 날”로 겹경사인 날이다. 아버지의 날이야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정식으로 6월 셋째 일요일을 국가 공휴일로 제정해 오래된 역사가 있지만, 노예 해방의 날은 많은 주에서는 자체적으로 그동안 오랫동안 지켜온 반면 일리노이 주에서는 다소 생소한 날이다. 연방 공휴일로 제정된 것은 작년에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후 6월 17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비롯되었다. 그러나 나는 작년도에 첫 공휴일인 토요일이 금요일로 대체되었다지만 기억이 별로 없다. 무엇보다 코로나가 극심한 시기로 직장과 상가가 모두 문을 닫고 숨죽이며 살 때라 인생의 맛이 갔을 때였다. 살기 바쁠 때에는 그냥 엎드려 죽는 게 부활이다.   이날은 텍사스 주의 흑인 노예 해방 기념일인 6월 19일 “준틴스”(Juneteenth)가 기원이다. 6월(June)과 19일(nineteenth)을 합쳐 “준틴스”라 불리는 이날은 156년 전 텍사스에 있던 마지막 흑인 노예가 해방된 날이다. Juneteenth는 흔히 합성어로 비문법적이라고 여겨지는 “Black English”(흑인 영어)에 해당하는 단어지만 그대로 굳어져 이제는 공식 명칭이 되었다. Day고 뭐고 그냥 빼버리고 그냥 흑인이 편하게 부르는 날로 정해졌다.     따라서 미국인은 독립기념일을 7월 4일로 기억하지만 많은 흑인은 그들의 독립기념일을 6월 19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미국식답다. 유럽 아니 한국 같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6월 19일은 남북 전쟁 당시 북군 소장인 고든 그레인저가 1865년 이날 군대를 이끌고 텍사스주 갤버스턴에 도착해서 링컨이 이미 1863년에 노예제를 폐지했다는 소식을 전한 날이다. 군대를 이끌고 와서 이를 선포한 바람에 노예제 폐지를 인정하지 않고 있던 농장주들도 더는 버틸 수 없었다고 한다. 텍사스주의 흑인들이 노예 해방이 선언된 1월 1일이 아닌 6월 19일을 기념하게 된 기원이다.   그러나 남북 전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일설에 따르면 링컨 대통령의 목적은 서부로의 계속적인 영토 확장에 있었으며 그 지역에는 노예를 허용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노예제도는 궁극적으로 미국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북부인들의 생각에 새롭게 확장되는 영토에서도 노예가 허용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남부 주들은 각자 주가 소유한 노예에 대해 그건 자기네들이 알아서 차차 정치적, 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자 노예를 해방해야 할 도덕적 명분 외에도 실질적인 이유가 생겼다. 남부인들이 자신들이 부리는 노예를 전쟁에 동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링컨은 전쟁 발발 이듬해인 1862년에 1차 경고를 한다. “반란을 멈추지 않으면 내년(1863) 1월 1일을 기점으로 노예를 해방하겠다”라는 것이었다.   당시 유럽의 강대국들에 대통령제라는 과격한 민주주의를 실행에 옮긴 미국은 경계의 대상이었다. 미국의 급진적인 제도가 유럽에 퍼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미국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나라가 분열되는 것은 유럽 국가들이 은근히 원하는 결과였다. 하지만 링컨이 노예 해방을 선언하자 이 전쟁은 명목적으로도 노예 해방 전쟁으로 바뀌었고, 그렇게까지 선언했는데 남군을 도우려는 유럽 국가들이 있다면 그 나라들은 노예제도에 찬성하는 게 된다. 그럴 경우 미국 남부의 독립을 돕기 위한 파병은 국내적으로도 큰 정치적인 부담이기 때문에 결국 남군 원조를 포기하였다.   하여튼 이날 아버지와 노예 해방이라는 단어는 나 같은 늙은이에게는 어쩐지 연계성이 느껴져 더욱 기쁘기 짝이 없는 날이다.(hanhongki45@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아버지 노예 노예 해방 노예제 폐지 이날 아버지

2022-06-16

[독자 마당] 그리운 아버지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시골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본 유학을 갔으나 갑작스러운 할아버지 사망으로 집안이 기울었다. 아버지의 어깨에 8명의 동생과 홀로 된 할머니까지 있었다. 학업을 중단하고 직장을 얻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와 동생들을 모두 일본으로 부르셨다.     그때부터 가장으로 가족과 동생을 돌보며 20여년을 일본에서 살다가 해방을 맞아 귀국하셨다. 고향에 가서 할아버지 옆에 묻히고 싶다는 할머니의 간청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간청에 못 이겨 이미 결혼한 동생들과 대가족을 이끌고 한국으로 돌아오셨다. 그때가 해방 이듬해였다.     귀국한 지 4년 만에 6·25전쟁이 일어났다. 집과 재산은 모두 잿더미가 됐다. 그때 나는 국민학교 5학년이었다.     그 후부터 아버지의 고생은 시작됐다. 빈털터리가 된 아버지는 밑천 한 푼 없어 난전 장사밖에 못할 처지였지만 장사는 부끄러워 못 하겠고, 힘든 일은 해본 적이 없어 힘이 부쳤다. 겨우 취직한 것이 시청 사무직이었다. 당시 공무원의 월급은 박봉 중의 박봉이었다.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두 살 터울인 남매가 고등학교에 다녀 학비 대기가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물질이 풍족하지 못한 대신 자식 남매를 기르는데 온갖 정성을 다하셨다. 겨울에는 몸이 약한 어머니보다 먼저 일어나 큰 솥에 물을 데워 놓고 나를 깨우셨다. 아궁이 불을 화로에 담아 방 안에 들여놓고 우리 운동화를 데워, 따뜻한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갈 수 있게 하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따뜻한 밥상 한 번 차려 드리지 못했다. 세월은 자꾸 흘러 이제는 아버지보다 더 나이 많은 노년의 할머니가 됐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어린 딸이 되어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사랑합니다. 생전에 한 번도 못한 고백을 지금 합니다.  노영자·풋힐랜치독자 마당 아버지 할아버지 사망 난전 장사 시골 부농

2022-06-14

[시조가 있는 아침] 웃을대로 웃어라 -효종(1619∼1659)

청강(淸江)에 비 듣는 소리   긔 무엇이 우습관데 만산(滿山) 홍록(紅綠)이   휘두르며 웃는고야 두어라 춘풍(春風)이   몇날이리 웃을대로 웃어라   -병와가곡집   전쟁과 시의 응전력   ‘맑은 강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그 무엇이 우습다고/ 산에 가득한 꽃과 풀들이 휘두르면서 웃는구나/ 두어라, 봄바람이 이제 며칠이나 남았으리 웃고 싶은 대로 웃어라.’   5월을 보내며, 가는 봄을 아쉬워하는 시조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병자국치 후 소현세자와 함께 청에 볼모로 잡혀가던 봉림대군이 당시에 읊은 것으로 추정된다. 자기가 청나라에 끌려가는 것은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는 정도의 소란스러움인데 그것을 보며 온산의 꽃과 풀들이 몸을 휘두르며 웃는다는 것이다. 이때 만산홍록은 청군에 비유된다. 봄바람이 며칠이나 가겠는가? 웃을 대로 웃어보라는 강한 복수 의지가 나타난다.   봉림대군은 9년간 온갖 고초를 겪고 돌아와, 형의 돌연한 죽음으로 아버지 인조에 이어 조선의 제17대 왕에 올랐다. 즉위 이후 송시열과 이완 등을 기용해 북벌을 준비했으나 재위 10년 만에 붕어하여 수포로 돌아갔다. 이런 상황은 현대라 해서 다르지 않다. 러시아와의 전쟁에 대한 우크라이나 시인 타라스 셰우첸코의 ‘유언’이나, 6·25 때 시인들의 숱한 항전시들이 시의 응전력을 보여주고 있다. 유자효 / 한국시인협회장시조가 있는 아침 효종 우크라이나 시인 아버지 인조 복수 의지

2022-06-01

[시조가 있는 아침] 웃을대로 웃어라 -효종(1619∼1659)

청강(淸江)에 비 듣는 소리 긔 무엇이 우습관데 만산(滿山) 홍록(紅綠)이 휘두르며 웃는고야 두어라 춘풍(春風)이 몇날이리 웃을대로 웃어라   -병와가곡집   전쟁과 시의 응전력   ‘맑은 강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그 무엇이 우습다고/ 산에 가득한 꽃과 풀들이 휘두르면서 웃는구나/ 두어라, 봄바람이 이제 며칠이나 남았으리 웃고 싶은 대로 웃어라.’   5월을 보내며, 가는 봄을 아쉬워하는 시조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병자국치 후 소현세자와 함께 청(淸)에 볼모로 잡혀가던 봉림대군(鳳林大君)이 당시에 읊은 것으로 추정된다. 자기가 청나라에 끌려가는 것은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는 정도의 소란스러움인데 그것을 보며 온산의 꽃과 풀들이 몸을 휘두르며 웃는다는 것이다. 이때 만산홍록은 청군에 비유된다. 봄바람이 며칠이나 가겠는가? 웃을 대로 웃어보라는 강한 복수 의지가 나타난다.   봉림대군은 9년간 온갖 고초를 겪고 돌아와, 형의 돌연한 죽음으로 아버지 인조에 이어 조선의 제17대 왕에 올랐다. 즉위 이후 송시열과 이완 등을 기용해 북벌을 준비했으나 재위 10년 만에 붕어하여 수포로 돌아갔다. 시조가 있는 아침 효종 아버지 인조 복수 의지 즉위 이후

2022-05-30

‘아버지의 귤나무’ 출간…선우미디어 수필선집 시리즈

선우미디어가 이정아(사진) 작가 수필선 ‘아버지의 귤나무’(사진)를 출간했다.     ‘아버지의 귤나무’는 수필등단 20년 경력에 단행본을 3권 이상 펴낸 작가 중 선정한 44번째 수필선집이다.  선우미디어는 이 작가가 지난 30여 년 동안 써온 250여 편의 작품 중에서 45편의 작품을 선정해 수록했다.     작가의 말에서 이 작가는 “수필과 신문 칼럼 연재를 통해 디아스포라 수필가라고 불릴 정도로 이민의 삶과 이민자의 생각을 오랫동안 써왔다”며 “선우 명수필선에 44번째로 선정돼 글을 고르며 나를 들여다볼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정아 작가는 한국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미국으로 이민 온 후 1997년 한국수필에 등단했다.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장, 이사장, 한국수필작가회, 국제 펜클럽 이사를 역임했다. 해외 한국수필 문학상, 미주 펜문학상, 조경희 문학상, 국제 펜 문학상 등 다수 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낯선 숲을 지나며’, ‘선물’, ‘자카란다 꽃잎이 날리는 날’, ‘불량품’ 등 4권의 수필 단행본, 5인 동인집 ‘참 좋다’가 있다. 이은영 기자선우미디어 아버지 한국수필작가회 국제 해외 한국수필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장

2022-05-08

[이 아침에] 아버지의 고향으로 가는 길

밤 11시59분, 기차는 서울역을 출발했다. 새 천년을 맞아 온 세상이 떠들썩하던 그 해 춘삼월 구례행 관광열차였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불현듯 그리워, 아버지 고향 마을인 하동을 무박 2일 여행으로 꽃놀이 겸 다녀오기로 했다. 꽃구경이라는 구실로 혼자 떠난 건 철들고 처음이었다.     열차에 오르니 모두들 짝 지어 오거나 삼삼오오 단체 관광객이었다. 나는 꾸어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깜깜한 차창 밖만 바라보았다. 기차는 온밤을 달려 새벽 다섯시 구례에 도착했다. 밤새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입심으로 기차가 내달린 듯했다. 어둑어둑한 역 앞에 관광버스가 늘어서서 승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열차번호와 맞는 버스를 찾아 옮겨 타고 섬진강을 따라 광양으로 들어섰다.       새벽 안개에 싸인 섬진강변은 하얗게 피어난 매화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아버지 고향 하동 땅이 지척이었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바로 그 곳이었다. 아침 식사 전 솔밭을 거닐었다. 잘 자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고운 백사장을 거닐며 오래전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이곳에서 어떤 꿈을 꾸셨을까. 도회지로 공부하러 떠났다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던 중, 할아버지를 만나면 길 위에서도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노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매화 마을에서 아침을 먹고 매실 장아찌 한 병 사서 배낭에 넣었다. 2000여 개 장독대가 인상적이었다. 기업으로 일군 매실 명인이 작은 거인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길 건너엔 섬진강 물결이 햇빛에 반짝이고 매화가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건너편 강기슭 어디쯤 내가 좋아하는 수달들이 정답게 뛰놀고 있을 것만 같았다. 넉넉한 지리산 자락에서 내려온 계곡물이 섬진강에서 머리 단을 푸는 걸까. 유유한 섬진강이 의젓했다. 거꾸로 잠긴 파란 하늘에 반짝이는 물결과 하얀 백사장을 보니 ‘엄마야 누나야’ 노래가 절로 나왔다.     쌍계사 십리 벚꽃 길에 꽃비가 내렸다. 입구까지 걸어 들어가는데 그 사이 간간이 대화를 나누는 길동무도 생겼다. 탑전을 돌면서 그 해 전쟁 같은 큰 시험을 앞둔 남동생의 무운을 빌고 또 빌었다. 절을 내려오면서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하는 나옹 화상의 시구가 그려진 찻잔 받침 한 세트를 꾸려 넣었다.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다는 화개장터에 들렀다. 가는 날이 장날이 아니어서인지 노점상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엿장수와 약장수를 기대했던가. 팔을 한껏 휘저으며 부르던 가수의 ‘화개장터’ 노래를 생각하며 슬며시 웃었다.     바람에 꽃잎이 흩날렸다. 지상의 모든 꽃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담고 핀다는데 저리 일찍 떨어지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돌아오는 길에는 무언가 충만함이 있었다. 도시의 각박함으로 한껏 날이 서 있던 나의 모난 심사가 어느새 둥그스름하게 마모돼 부드럽게 변한 모양이었다. 벌써 20여년이 지난 옛 이야기가 되었다. 이영미 / 수필가이 아침에 아버지 고향 아버지 고향 오래전 아버지 아버지 모습

2022-04-20

[열린 광장] 뒷모습에 담긴 세월의 흔적

‘여보 사랑해요’ ‘아버지 천국에서 만나요’ ‘천국에서 안식하소서’ 얼마 전 참석했던 장례식장은 고인을 추모하는 글귀가 담긴 꽃들로 가득했다. 그 꽃들 사이에 온화한 표정의 한 남자가 누워 있었다. 동료 목사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를 잃은 동료 목사를 위로하기 위해 조문객으로 참석한 장례식이 영 어색했다. 목사이기에 조문객으로 장례식장을 찾기보다는 집례나 다른 순서를 맡을 때가 많았다.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예배를 인도하기에 장례식 내내 긴장하며 서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조문객으로 참석한 장례식의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두리번대던 눈길이 장례식장 전면에 붙어 있는 큼지막한 TV에 멈춰 섰다. 찬송가 악보도 보여주고, 고인이 살아계실 때의 행적이 담긴 슬라이드 쇼도 나오는 TV였다.  TV 화면은 집례자와 함께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뒷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맨 앞줄에 앉은 유가족이 울음을 애써 참느라 들썩대는 어깨의 흔들림이 TV 화면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유가족들 바로 뒷줄에 앉아 있는 조문객들의 뒷모습도 TV로 보였다. 그중에 한 중년 사내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흰머리가 듬성듬성 섞인 사내의 뒤통수가 이리저리로 움직였다. 그것도 내가 고개를 돌리는 대로 따라다녔다. ‘설마 저게 나겠어?’ 하면서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데, 그 사내의 머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가 움직이는 대로 까딱거렸다.     내 뒤통수를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인지 TV 화면에 비친 내 뒤통수가 낯설기만 했다. 저게 남들이 보는 내 뒷모습일 텐데 나만 못 보고 살아왔다는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TV 화면으로 보이는 흰머리가 듬성듬성 섞인 내 뒤통수에는 세월의 흔적이 담겨 있었다.     가만 보니 내 머리만 하얀 것이 아니었다. 내 앞에 앉은 이의 머리도 하얗고, 그 옆에 있는 이의 머리는 가운데가 횅했다. 앞모습만 바라보느라 놓쳐버린 세월의 흔적이 오랜만에 만나는 뒷모습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담긴 것은 뒷모습만이 아닐 것이다. 내가 걸어왔던 길에도 그 흔적이 쌓여 있을 것이다. TV 화면을 통해 비치는 뒷모습을 보면서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인생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날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을 떠나는 동료 목사의 아버지도 결국은 뒷모습만을 남기고 갔다. 아내에게는 자상한 남편이요, 아들들에게는 하늘 같은 아버지였다. 손주들에게는 한없이 따듯한 할아버지였고, 아름다운 믿음의 본을 보인 신앙인이었다. 그가 남긴 뒷모습이 멋지고, 그가 걸어왔던 길이 아름다웠던 만큼 떠나보내는 이의 마음이 더 아쉬웠을 것이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이 남을 뿐이다. 그날 장례식장에서 만난 내 뒤통수를 보면서 이제는 뒷모습을 잘 관리할 때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길을 걸어갈 때도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야 할 때다. 내가 밟고 지나온 길이 누군가에게는 따라가야 할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서 TV 화면에 비친 한 중년 사내의 뒤통수는 세월의 흔적을 잘 쌓으며 살라고 하면서 오늘도 하얗게 변해간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열린 광장 뒷모습 세월 장례식장 전면 그날 장례식장 아버지 천국

2022-04-13

[이 아침에] 아버지의 고향으로 가는 길

밤 11시59분, 기차는 서울역을 출발했다. 새 천년을 맞아 온 세상이 떠들썩하던 그 해 춘삼월 구례행 관광열차였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불현듯 그리워, 아버지 고향 마을인 하동을 무박 2일 여행으로 꽃놀이 겸 다녀오기로 했다. 꽃구경이라는 구실로 혼자 떠난 건 철들고 처음이었다.     열차에 오르니 모두들 짝 지어 오거나 삼삼오오 단체 관광객이었다. 나는 꾸어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깜깜한 차창 밖만 바라보았다. 기차는 온밤을 달려 새벽 다섯시 구례에 도착했다. 밤새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입심으로 기차가 내달린 듯했다. 어둑어둑한 역 앞에 관광버스가 늘어서서 승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열차번호와 맞는 버스를 찾아 옮겨 타고 섬진강을 따라 광양으로 들어섰다.       새벽 안개에 싸인 섬진강변은 하얗게 피어난 매화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아버지 고향 하동 땅이 지척이었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바로 그 곳이었다. 아침 식사 전 솔밭을 거닐었다. 잘 자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고운 백사장을 거닐며 오래전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이곳에서 어떤 꿈을 꾸셨을까. 도회지로 공부하러 떠났다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던 중, 할아버지를 만나면 길 위에서도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노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매화 마을에서 아침을 먹고 매실 장아찌 한 병 사서 배낭에 넣었다. 2000여 개 장독대가 인상적이었다. 기업으로 일군 매실 명인이 작은 거인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길 건너엔 섬진강 물결이 햇빛에 반짝이고 매화가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건너편 강기슭 어디쯤 내가 좋아하는 수달들이 정답게 뛰놀고 있을 것만 같았다. 넉넉한 지리산 자락에서 내려온 계곡물이 섬진강에서 머리 단을 푸는 걸까. 유유한 섬진강이 의젓했다. 거꾸로 잠긴 파란 하늘에 반짝이는 물결과 하얀 백사장을 보니 ‘엄마야 누나야’ 노래가 절로 나왔다.     쌍계사 십리 벚꽃 길에 꽃비가 내렸다. 입구까지 걸어 들어가는데 그 사이 간간이 대화를 나누는 길동무도 생겼다. 탑전을 돌면서 그 해 전쟁 같은 큰 시험을 앞둔 남동생의 무운을 빌고 또 빌었다. 절을 내려오면서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하는 나옹 화상의 시구가 그려진 찻잔 받침 한 세트를 꾸려 넣었다.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다는 화개장터에 들렀다. 가는 날이 장날이 아니어서인지 노점상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엿장수와 약장수를 기대했던가. 팔을 한껏 휘저으며 부르던 가수의 ‘화개장터’노래를 생각하며 슬며시 웃었다.     바람에 꽃잎이 흩날렸다. 지상의 모든 꽃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담고 핀다는데 저리 일찍 떨어지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돌아오는 길에는 무언가 충만함이 있었다. 도시의 각박함으로 한껏 날이 서 있던 나의 모난 심사가 어느새 둥그스름하게 마모돼 부드럽게 변한 모양이었다. 벌써 20여년이 지난 옛 이야기가 되었다.   이영미 / 수필가이 아침에 아버지 고향 아버지 고향 오래전 아버지 아버지 모습

2022-03-31

[이 아침에] 꽃이 피고, 꽃이 지고…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왔다. 봄은 꽃으로 시작한다. 매일 다니는 길에도 여기저기 꽃잔치가 벌어졌다. 우리 집 뒷동산은 작년 가을 마른풀을 모두 제거해 새로 자란 풀 사이로 들꽃이 한창이다. 노란꽃, 흰꽃, 보라색 꽃들이 키재기를 하며 매일 피어난다. 복숭아나무의 꽃은 이미 지고 벌써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감나무에는 새로 잎에 빼곡히 났는데,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얼마 후에는 꽃도 필 것이다.     5년 일기를 쓴 지 2년이 되었다. 작년 이맘때 쓴 글을 보니, 온통 코로나 예방접종 이야기다. 차례가 빨리 오지 않아 발을 구르고, 막상 자격이 되었지만 예약을 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작년 3월 일기에도 비와 꽃과 봄이 함께하는 일상이 들어 있었다. 1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우리가 다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짧게 느껴질 뿐이다. 365일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작년 봄, 미국이 코로나로 몸살을 앓는 동안 철저한 방역으로 잘 지내던 한국이 지금 코로나 사태로 정신이 없다. 2022년, 세계는 코로나 대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소식으로 봄을 맞고 있다.     오늘 신문에는 한국의 꽃 이야기가 실렸다. 부산에는 3월 24일, 서울에는 28일에 벚꽃이 필 것이라고 한다. 60년쯤 된 기억이다. 아버지 품에 안겨 창경원으로 벚꽃 구경을 갔었다. 고종황제가 탔다는 자동차를 보았던 일을 기억한다.     어머니가 꽃을 좋아하셨던 모양이다. 집에는 늘 화단이 있었다. 어머니는 화단에 채송화도 심고, 분꽃, 나팔꽃, 장미를 심었다. 누나와 나는 그런 꽃잎들을 주워 책갈피에 넣어 말리곤 했다. 물기가 많은 꽃잎은 종이에 물을 들여 책을 망가트리기도 했다.     미국에 오기 전에 동생들과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진해로 벚꽃놀이 여행을 갔었다. 눈처럼 떨어지는 꽃잎 사이로 버스를 타고 지나갔던 일이 기억난다. 그 시절 철없던 우리들의 머리에는 이제 흰머리가 꽃을 피우고 있다.     아버지 장례식에는 사업하는 동생 덕에 화환이 많이 들어왔었다. 장지에서는 하관 후 그 꽃들을 모두 산소 곁에 두었다. 사흘 후, 가족들이 다시 산소를 찾았는데, 먼저 온 작은아버지가 아직 싱싱한 꽃들을 골라 아버지 누운 자리를 장식해 놓았다. 형님을 그리는 작은아버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작은 아버지가 지금은 병석에 계시다.     잠시 피었다 사라지는 꽃처럼 이런 세월들은 모두 사라졌다. 이제는 내 기억의 앨범에 한 장의 추억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조화보다 시들어 떨어지는 생화가 아름다운 까닭은 그 유한함 때문이다. 없어지고 사라질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그 마음이 더 절절하다. 그리고 사라진 후에도 그리움으로 남는다.     뒷동산 꽃이 지고 난 자리에는 풀이 날 것이며, 마당에 자라는 복숭아, 감나무의 꽃이 지고 나면 열매가 달릴 것이다. 잠시 지나가는 시간이 소중하게 생각되는 나이가 되었다. 늦게나마 이 유한한 생의 소중함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불에 타고 피에 젖은 땅에도 비가 내리고 햇살이 따스해지면 꽃이 피어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봄에도 꽃과 함께 평화가 피어나기를 기원한다.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코로나 예방접종 코로나 사태 아버지 장례식

2022-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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