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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최미자 수필가

최미자 수필가

아침저녁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낮에는 등살이 뜨거운 햇살, 참 좋다. 텃밭에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부추를 심어 놓고 매일 그곳으로 향한다. 오늘도 층층이 올려놓은 돌에 걸터앉아 마른 잎들을 다듬으며 부추 한 줌을 딴다.  
 
텃밭에 나와 고개를 돌려보면 여기저기 할 일이 산더미다. 가족들은 몸은 생각하지 않는다며 잔소리가 심하다. 사실 텃밭을 가꾸다 보면 허리도 무릎도 아프지만, 그 순간에는 잡생각이 나지 않고 무아지경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정원 일을 좋아한다. 그리고 가끔은 텃밭 일 중간에 그리움의 고운 구름에 올라타 멍해지기도 한다.  
 
‘아버지 날’이 다가온다. 새삼 아버지가 그리운 시기다. 어릴 적 나는 부잡스러운 오빠와 동생 때문에 잘못도 없는데 함께 무릎을 꿇고 반성하는 벌을 받곤 했다. 아버지에게 솔직하게 말했으면 그런 억울함은 없었을 터인데, 나름 의리를 지킨다고 그러질 못했다. 어머니는 큰오빠와 작은 오빠 머리에는 늘 혹이 있었다며 아버지 흉을 보시곤 했다. 아버지는 작은 일에도 화를 잘 내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중학교 때 사 주신 영어 사전을 아직 보관하고 있다. 마치 아버지의 유품 같아서다. 사전의 옆면에는 ‘제일 건강, 제이 계속 노력’이라는 아버지 멋진 글씨가 있다. 나는 잔병치레는 하지 않았지만 몸은 약했기 때문이다.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며 아버지가 가꾸던 친정집 꿈을 꾸곤 했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 그네를, 오빠와 동생을 위해 철봉 만들어 준 작은 마당이 그리웠다. 분홍 찔레꽃으로 덥힌 판자 울타리에는 아버지가 분필로 쓴 시들이 있었다. ‘아름다운 꽃을 꺾지 말고 쳐다보자.’
 
나도 아버지처럼 우리 뜰에서 그렇게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너무 강직한 성격 탓에 어머니와 자식들은 고생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런 아버지의 정신적 유산이 오히려 자랑스럽다. 어버지는 올바르고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했고, 채소를 가꾸고 꽃나무를 심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아버지 기일이 되면 촛불을 켜며 행복한 회고를 하셨다.  
 
‘불(부처) 효자’라는 영화를 만든 마가 스님의 아버지는 오랜 외도 끝에 늘그막에 본처에게 돌아왔다고 한다. 본처는 그런 그를 용서하며 자녀들이게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폭력을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들 같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모든 아버지께 축복을 보낸다.

최미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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