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인 언론, 나아갈 길은?
텍사스대 한국학 학회지에 본사 발행인 기고문 실려
세대교체와 시장 변화로 한국어 신문 수요 감소
한인만의 특화된 뉴스 공급하는 영어 매체로 승부
변화가 성공 보장하지 않지만 시도할 희망은 존재
그는 ‘현장의 소리: 기로에 선 한인 신문(Voice from the Field: Korean Ethnic Newspapers at a Crossroads)’이란 제목의 기고문에서 미국 내 한인 언론이 처한 어려움을 통계 및 사례로 설명하면서 한인 언론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변화하는 시대와 문화에 발맞춰 한인 언론도 변화할 수 있다면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우선 노스웨스턴대의 메딜 언론대학의 자료를 인용, 미국 내 지역(로컬) 신문이 크게 감소하는 추세라는 점을 소개했다. 2005년 1,472개였던 지역 신문이 2023년에는 1,213개로 줄었고 이는 매년 13개 신문이 폐간됐다는 뜻이다. 2023년에만 17개의 지역 신문이 폐간했는데, 이는 3주에 신문사 하나가 문을 닫는 셈이다.
그는 미주중앙일보가 올해 창간 50주년을 맞이하는데, 이민자의 모국어로 발행되는 신문이 반세기 동안 발행돼 온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했다. 다만 지역 언론 중에서도 특히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문들의 경영이 크게 악화되고 있으며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성장하는 한인 사회, 약화되는 한인 언론
그는 이런 초점을 바탕으로 한인 언론의 편집 방향도 특화됐다고 설명했다. 한인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뉴스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그는 편집회의가 진행되면 사건 및 사고 관련 뉴스가 있을 때, ‘당사자가 한인인지 확인하라’는 지시사항이 빠지지 않고 하달된다 점을 소개했다.
그러나 한인사회는 최근 들어 아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성공한 한인 사업체들은 한인 사회뿐만이 아닌 미국 주류 사회를 대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려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과정에서 한인을 대상으로 해 크게 성장한 한인 마트 및 가전제품 마켓, 식당 등은 이제 한인이 아닌 타인종을 대상으로 외연을 확대해 나가고 있으며 광고나 홍보 역시 한인 매체가 아닌 주류 언론을 통해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국 대기업들이 수천 달러 수준인 한인 언론의 전면 광고는 하지 않지만 1초당 20만 달러가 넘는 슈퍼볼 광고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인 경제의 성장은 좋은 일이지만 한인 사회가 성장함에 따라 한인 언론은 작아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줄어드는 한국어 사용자에 따른 수요 감소
그는 또 하나의 큰 변화로는 한인 사회의 세대교체를 꼽았다. 이민 1세대의 수는 줄어들고 있으나, 늘어나는 한인 2세대와 3세대 가운데에는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적어지는 상황이다. 한국어로 쓴 신문 기사를 그들이 읽도록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LA 한인 사회 주요 인사의 장례식에서 경험한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거의 대부분의 장례식의 경우 한인 2세 자녀들은 추모사를 한국어로 하지 못해 영어로 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언어 장벽이 무너져가며 한인 사회 역시 더욱 미국화되고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주류사회로 편입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한인 식당 등 사업체를 방문하면 한국어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해당 매장을 관리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어로 발행되는 신문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며 “”최근 선거를 비롯한 정치 문제, 한국의 문화 등에서 비롯된 긍정적인 신호 역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선 미국 정치권에 대한 한인 사회의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한인 정치인은 물론, 다른 미국 정치인까지 한인들을 중요한 유권자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한인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한인 정치인들은 최근 주요 선거에서 여럿 당선되기도 했다.
그는 “한인 언론이 특정 후보에 대한 한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결집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며 “한인이 아닌 정치인들이 한인 언론의 공식 지지를 받고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주중앙일보가 2020년 한인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특정 후보자들에 대한 공식 지지를 밝힌 점을 상기시켰다.
한인 정치인뿐만 아닌 다른 인종의 후보에 대한 지지 역시 밝힌 바 있는데 이런 이유에서 2024년 선거를 앞두고 여러 후보가 미주중앙일보의 공식 지지 발표를 원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분야가 한인 언론이 모색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만 쓸 수 있는 특화된 영어 기사
그는 한국의 문화, 즉 이른바 K-컬쳐 역시 한인 언론의 확장성을 이뤄낼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는 한국의 영화, 드라마, 음악, 음식 등 다양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미국 주류 매체들이 이런 현상을 보도하기는 하지만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깊이 있는 심층 보도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영화 ‘기생충’에 나온 ‘짜파구리’,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나온 ‘달고나’ 등에 대해 알고 싶은 미국인들이 많지만 이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매체는 사실상 한인 언론뿐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주류 언론이 이런 현상의 역사와 배경 등을 정확하게 소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설명한 뒤, 현재 한인 매체는 중요한 기로에 놓여 있다고 했다. 그는 과거의 성장 동력에서 벗어나 빠르게 변하는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발맞춰 새로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인 사회가 아닌 외부로부터 발생하는 수요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지체 없이 낡고 협소한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주중앙일보가 내린 결론은 영어 매체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인 시장을 완전히 포기하거나 미국 주류 언론과 경쟁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영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틈새시장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주류 언론이 잘 다루지 못하는 한인 지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영어로 보도하는 매체를 구축하는 것이 그의 계획이라고 했다. 젊은 한인뿐 아닌 다른 인종들을 독자로 만들어 한국의 문화와 한인 사회를 알리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변화가 성공으로 꼭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고 했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또 다른 도전과제에 부딪힐지 모른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과거에 머무는 것은 옵션이 아니다”라며 “물이 끓는 줄도 모른 채 천천히 죽어가는 ‘끓는 물 속의 개구리’가 돼서는 안 된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성장의 핵심”이라고 했다.
김영남 기자 [kim.youngnam@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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