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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신성한 땅, 시간을 초월한 서사시, 큰 바위 얼굴

와이오밍주의 광활한 초원을 지나면 사우스다코타주 남서부와 와이오밍주 경계에 위치한 블랙 힐스(Black Hills) 산지에 다다른다. 블랙 힐스는 무려 400여 년간 계속된 전쟁에도 이 땅의 주인이었던 수(Sioux)족 등 용맹한 부족들이 목숨처럼 지키고자 했던 신성한 땅이다. 1868년, 블랙 힐스를 온전한 인디언의 땅으로 인정하고 침범하지 않겠다는 조약을 맺었지만 애석하게도 이곳에서 금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 조약은 휴지 조각이 되고 만다.   오늘날 전 세계 여행자들이 블랙 힐스를 찾는 이유는 러시모어산(Mt. Rushmore) 정상에 자리한 '큰 바위 얼굴' 대통령 조각상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러시모어산에 아로새겨진 인물은 미국을 빛낸 4명의 전직 대통령들. 자연의 위풍과 인간의 집념이 결합되어 미국 역사의 상징적인 페이지들이 거대한 바위산에 새겨져 있다. 모두가 숱하게 본 모습이지만 현장에서 직접 마주하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과 깨달음이 따라오는 법이다. 그러니 이러한 불멸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라면 멀리까지 가는 수고가 전혀 아깝지 않다.   '큰 바위 얼굴'은 미국의 조각가 거츤 보글럼(Gutzon Borglum)을 위시하여 무려 400명의 조각가들에 의해 완성됐다. 이들이 드릴과 정으로 쪼아 빚어낸 큰바위얼굴은 얼굴 크기가 자그마치 건물 6층 높이에 달하는데 표정 묘사도 실물처럼 매우 섬세하다.     정면에서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볼 때 왼쪽부터 차례로 초기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1대, 1732~1799),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3대, 1743~1826), 미국의 지위를 올려놓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26대, 1858~1919) 세 사람이 있고 약간 떨어져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에이브러햄 링컨(16대, 1809~1865)이 자리한다.   그러나 인디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단히 침략적인 조형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 러시모어에서도 일했던 폴란드 출신 조각가 코작 지올코브스키는 1948년, 러시모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선더헤드산(Mt. Thunderhead)에서 라코타의 영웅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의 전신상 건설에 착수했다. '큰 바위 얼굴'과 17마일 떨어진 거리에 연전연승을 거둔 수족의 크레이지 호스 기마상이 용맹하게 서게 된 것이다.   여전히 건설이 진행 중인 크레이지 호스는 두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말을 타고 달리는 형상의 이 기마상은 높이 563피트, 길이 641피트에 내어 뻗은 팔 길이만 263피트에 이른다.   크레이지 호스의 전신상에는 과연 전사의 정기가 서려 있다. "나의 땅은 내가 죽어 묻힌 곳이다"라고 말한 크레이지 호스의 우뢰와 같은 음성이 마치 바위산을 뚫고 들리는 듯하다. 블랙 힐스에서는 덤으로 베드랜드 국립공원도 관광할 수 있는데 협곡과 봉우리로 이뤄진 경치가 절경 속 절경이다. 박평식 / US아주투어 대표·동아대 겸임교수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서사시 신성 바위 얼굴 크레이지 호스 얼굴 크기

2024-06-20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크레이지 호스 추장(3)

매년 6월이면 기념관 측은 일반인을 상대로 일년에 단 한번 산에 올라 일부 완공된 추장 얼굴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걷기 대회를 주최하는데, 최근에는 1만5,000명까지 늘어났다. 수 많은 장비는 회사들로부터 기증된다. 그러나 조각에 들어가는 노임비는 방문객 입장료로 충당되는데, 매년 100만명 이상이 찾는다. 방문객 센터 단지의 특징은 산에서 발파된 커다란 바위들을 다듬어 만들었는데, 방문객은 이 돌들을 약간의 기부금을 내고 가져가기도 한다.   2006년에는 전국적인 기금 모집이 시작되었는데 목표 액수는 1650만달러이다. 첫번째 계획은 기념 사업장에서 일할 40명의 미국인 인디안의 숙소 비용을 짓는 140만달러가 목표였다. 요즘도 발파 행사는 주기적으로 있으며 이때에는 전국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인다. 그 사람들이 발파 시간에 맞춰 동시에 같이 카운트 다운하면 수많은 바위가 굴러 떨어지고 먼지가 자욱해지는데 그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수 많은 군중들이 이 돌들을 하나씩 집고 아낌없이 헌금을 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 기념 사업에 부정적인 견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크레이지 호스 추장은 평소 사진 찍히는 것을 거부하였고, 그의 무덤이 발견되지 않는 곳에 묻혔다.     지올코브스키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크레이지 호스 추장의 정신을 나타내는 은유적인 상징물로 이 조각상을 상상해낸 것이다. 크레이지 호스는 필경 “내가 묻힐 저 곳이 나의 땅이다”라고 말하였을 것이고, 조각상은 그 의미를 크게 부각시켜서 조각하게 된 것이다.   당초 라코타의 추장 “서있는 곰 헨리”의 동기는 순수했지만, 많은 라코타 족들과 원주민들은 이 조각상에 반대를 하였다. 라코타 족으로 배우이자 정치, 사회에 영향력을 가졌던 러셀 민스(Russell Means)는 “크리스쳔이건, 유대인이건, 무슬림이건 이스라엘의 신성한 땅에 가서 기념한다고 시온 산을 조각한다는 생각을 해 보아라. 이것은 우리 자체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일 뿐이다”고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라코타의 주술사였던 램 디어(Lame Deer)는 1972년 자서전에서 “결국 아름다운 산에 대한 환경적 공해일 뿐, 크레이지 추장의 정신과는 위배된다”고 일갈했다.    많은 아메리칸 원주민들 역시 조각상이 가리키는 지점 역시 역사적인 것과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한다. 비영어권 지역에서 서로 다른 언어 소통으로 인한 문화 차이를 연구하는 노던 애리조나 대학의 바바라 제인 칼리슬(Barbara Jane Carlisle)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었다. “멕시코에서 턱을 가리키는 것은 아메리카 인디안에게는 입술을 가리키는 것과 같다”. 즉, 지올코브스키가 처음부터 너무 과대하게 생각한 게 아니냐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도전은 인간의 정신을 능력으로 표현하고 싶어하는 데는 그 한계성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진정한 “무한 도전”인 셈이다 (hanprise@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크레이지 호스 크레이지 추장 크레이지 호스 추장 얼굴

2022-02-17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크레이지 호스 추장 - 2

크레이지 호스 추장(Chief Crazy Horse)의 기념관은 사우스 다코다 주의 블랙 힐(South Dakota, Black Hill)에서, 수우족 오그라라 라코다(Oglala Lakota)의 전사(戰士)였던 크레이지 호스가 말을 타고 저 멀리 손가락을 가리키는 형상으로 현재 건설 중이다. 이 기념관은 3개로 구성돼 건설 중인데 산 전체를 조각하는 조각상과, 북 아메리카 인디안 기념관 그리고 원주민 문화 센터이다. 이 조각상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희생을 기리는 지역으로, 커스터 시(Custer)와 힐 시티(Hill City) 사이에 있으며, 대통령의 얼굴들이 조각되어 있는 러시모어 산(Mount Rushmore)으로부터는 13Km 떨어진 곳에 약간 붉은 색을 띤 바위산 전체를 깎아 조각하고 있다.   조각상이 완성되면 폭 195m, 높이 172m이며 추장의 얼굴 높이는 27m인데 러시모어 산의 네분 대통령의 얼굴 높이는 18m이다. 조각상 작업은 62년 전 시작되었으며 끝나는 시기는 언제인지 알 수가 없다. 완성이 된다면 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조각상이 될 것이다.   산 조각은 거대 조각물 제작으로 유명한 구존 보그럼(Gutzon Borglum)과 함께 1924년 러시모어 산 대통령 얼굴 조각에 참여했던 조각가 코자크 지올코브스키(Korczak Ziółkowski)에 의해 1948년에 시작됐다. 1939년 지올코브스키는 “Henry Standing Bear”(서있는 곰 헨리) 추장으로부터 “나의 용맹한 추장 친구에 대해 백인들 역시 홍인(紅人)들도 과거 거룩한 영웅을 가졌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받았다.   조각상 제작은 비영리 사업으로, 연방 정부 혹은 주 정부로부터도 어떠한 자금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지올코브스키는 2번에 걸쳐 연방 정부로부터 천만 달러의 자금 지원을 제안 받은 적이 있었지만 그는 모두 거절했다. 지올코브스키는 이 프로젝트가 산을 단순히 조각한다는 개념보다 그 이상의 정신을 원했는데, 연방 정부의 개입이 이 기념 사업의 문화적 가치와 교육적인 개념을 널리 알리는데 그 목적이 변질 될까 봐 걱정을 하였던 것이다.     지올코브스키는 1982년 사망하였으며, 그의 아내 루스(Ruth)와 10명의 자녀들이 그의 유지를 받들어 “크레이지 호스 기념재단”을 설립하고 이 끝없는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결과 거대한 추장의 얼굴만 1998년에 완성되었다. 이 기념관은 거대한 교육 문화 사업의 아이콘으로 남을 예정인데, 북 아메리카 인디안을 위한 대학과 의료 전문인 양성 센터 및 인디안 박물관을 운영하게 될 것이다. 그 중심 지역은 현재의 방문객 센터가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설립 후원자들은 원주민 문화 사업과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계속)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크레이지 호스 크레이지 호스 조각상 제작 조각상 작업

2022-02-10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크레이지 호스 추장 - 1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 추장은 오래 전 여행 중 생각지도 않게 만났다. 워낙 자동차 드라이브를 좋아해 시카고에서 옐로스톤 공원으로 가는 도중 중간 지점인 사우스 다코타 주의 래피드 시티(Rapid City)까지 쉬지 않고 14시간을 달려 투숙한 후 아침에 근처의 러시모어 산(Rushmore Mountain)에 대통령 얼굴이 조각된 거대한 바위를 구경하고, 인근에 볼만한 게 무엇이 더 있나 알아 보던 중 커스터 공원(Custer State Park)과 크레이지 호스 추장을 추천하는 사람이 많아 하루를 더 묵게 되었다.   커스터 공원은 마치 한국의 설악산과 오대산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놓은 형상에 그 밑에 동물 생태계까지 관찰 할 수 있는 드넓은 사파리(Safari)까지 있어 옐로스톤보다는 다시 한번 더 가보고 싶은 아름다운 공원이었고, 크레이지 호스 추장 조각상은 그 앞에 섰을 때, 아니 먼발치에서 구경할 수밖에 없었지만, 한마디로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이러한 인간의 집념도 있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러시모어 산의 4명의 대통령 바위 얼굴은 마치 이 크레이지 호스 추장의 얼굴을 조각하기 위해 습작을 한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니 실제로 같은 조각가가 대통령 바위 얼굴이 끝나고 곧 이어서 이 “미친 말” 추장 얼굴에 죽을 때까지 계속 매달려 있었으니 그 집념도 대단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그렇게 끝난 것이 아니었으며 그 아내와 10명의 자녀들이 그의 유지를 받들어 이 작업을 앞으로도 100년은 더해야 한다니 기가 찰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런 것이 지난 70여년 간 작업을 해왔는데 이제 겨우 추장의 얼굴 윤곽만 나왔을 뿐 몸 전체와 타고 있는 말의 형상까지 조각한다면 100년은 커녕 자손 몇 대를 거쳐야 끝날 일일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크레이지 호스 추장은 누구이며, 몇 백년에 걸쳐 이 무지막지한 조각상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 추장의 얼굴이 네 분의 대통령 얼굴을 합친 것보다는 더 커 보이는데, 하필 그가 한바탕 싸운 바 있는 유명한 인디안 사냥꾼인 커스터 장군(Lt. Colonel George Armstrong Custer)을 기리는 국립공원과 미국의 초대 워싱톤 대통령을 비롯해 유명한 대통령들을 모신 신성한 가까운 곳에 큰 붉은 암산(岩山) 하나를 완전히 털어 내어 또 하나의 세계 불가사의에 해당할 추장의 용맹스런 모습을 재현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미국은 땅도 넓지만 하여튼 별 희한한 일도 많아 심심치는 않은 편이다.(계속)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크레이지 호스 크레이지 호스 추장 얼굴 대통령 얼굴

202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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