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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처분 최적기는 노동절 직후

지금 타고 있는 차를 처분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일까.   중고차를 판매 또는 트레이드인할 경우 가장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날은 노동절 연휴 직후인 것으로 밝혀졌다.   중고차 거래 플랫폼 카그루스에 따르면 새차 구매를 고려 중인 경우 노동절 연휴에 여행가기보다는 보유한 중고차가 최곳값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USA투데이가 30일 보도했다.   카그루스가 2021년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최근 7년간 판매된 중고차 가격과 인벤토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노동절인 9월 첫째 월요일이 지난 직후 중고차 리스팅 가격이 다른 때보다 평균 3.2% 또는 1000달러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은 1년 중 36번째 주간의 중고차 매물 리스팅 건수가 평균보다 6%가 적은 것으로 나타나 매물 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이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됐다.   전통적으로 매년 4월이 중고차 처분하기가 가장 유리한 달로 알려져 왔으나 팬데믹 이후 노동절 직후로 변경된 것으로 전해졌다.   카그루스의 업계전망분석 디렉터 케빈 로버트는 “차를 처분할 생각이 있다면 서둘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중고차 평균 리스팅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며 올해 안으로 추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지난 6월 기준 3개월간 중고차 평균 가격은 2만9472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4.6%가 하락했다.   한편, 중고차 구매에 가장 유리한 시기도 팬데믹 이후 변경됐다. 이전에는 각 딜러가 최신 모델을 들여오기 위해 재고를 소진하는 1월 초였으나 최근에는 프레지던트데이 세일이 있는 2월 중순이 가장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낙희 기자 [email protected]중고차 중고차 처분하기 중고차 매물 중고차 구매 노동절 프레지던트데이 트레이드인 Auto News

2023-08-30

[프레지던트데이 특집2]위대한 동맹 이끌어낸 워싱턴의 친구 '라파예트'

프레지던트데이인 17일 오전 9시 워싱턴DC 백악관 앞 라파예트 스퀘어. 단체 견학 학생들과 가족 단위로 방문한 사람들이 백악관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촬영을 마친 뒤 라파예트 동상 앞에 선 가족들. 백악관을 바라보며 서있는 라파예트 동상 아래서, 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라파예트 장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DC 라파예트 스퀘어 등 미 전역에 존재하는 수십 개의 라파예트 이름을 딴 도시와 대학, 기념비 등은 라파예트가 초대 대통령 조지워싱턴과 미국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말해준다. 조지워싱턴은 “전쟁동안 쓴 권총은 라파예트에게 줄 것”이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라파예트는 1757년 프랑스 남부에서 태어났다. 2살 때 프랑스군 장교였던 아버지는 7년전쟁에서 전사했고, 13살 때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가문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그는 14세 때 군사학교에 들어갔다. 라파예트가 조지워싱턴을 만난 것은 20살 때다. 프랑스에서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간 청년 라파예트는 1777년 7월 조지워싱턴을 만난다. 영어도 서툴고 경력도 적었지만 열정적이고 겸손한 청년 라파예트에 워싱턴은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 12월 워싱턴은 라파예트에게 장군 지위를 부여한다. 라파예트는 워싱턴과 함께 영국군에 맞서 싸우면서 전투 지휘 능력을 키워나간다. 1779년, 라파예트는 프랑스로 돌아간다. 더 많은 군인과 함대, 보급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라파예트를 직접 만나 미국 이야기를 즐겨 들었고, 라파예트는 프랑스 최정예부대원 6000명을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1780년, 라파예트는 원정군을 이끌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라파예트는 워싱턴과 함께 영국군을 물리치기 시작한다. 독립전쟁 최후의 전투인 요크타운 공방전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는 라파예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워싱턴DC 라파예트 스퀘어=심재훈 기자

2020-02-18

[프레지던트데이 특집1]위대한 대통령, 그 뒤엔...조지 워싱턴의 흔적을 찾아서

14일 도착한 마운트 버넌. 세찬 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미국 초대 대통령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끌어내고, 연임 대통령직을 지낸 조지 워싱턴. 그는 3선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고 은퇴 후 고향인 마운트 버넌에 돌아갔다. 마운트 버넌은 방문객들로 늘 북적였다. 조지 워싱턴은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방문객들에게 무료로 따뜻한 숙소와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며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부인이 당대 최고의 부자였음에도, 전직 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농장을 돌볼 자금을 은행에서 빌릴 정도였다. 14일 오후 마운트 버넌의 해설사도 따뜻하게 방문객을 맞았다. “조지 워싱턴 뿐만 아니라 토머스 제퍼슨 등 손님들도 모두 이 계단을 거쳐 올라갔어요. 그 분들의 DNA를 느끼고 싶으면 이 층계를 만져보세요 (웃음)” 해설사가 장난스럽게 건넨 말이었지만 실제로 그곳에는 200년도 더 된 그 시절의 숨결이 남아있었다. 벽난로, 층계, 바닥, 집 기둥 등 대부분의 것들이 그 시절의 모습 그대로였다. 식사가 이뤄졌던 다이닝룸은 1735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사진1) ▷워싱턴의 숨결이 가장 많이 담긴 곳, 서재 조지 워싱턴은 일생동안 2만통의 편지를 썼다. 그는 마운트 버넌에서 생활하는 동안 서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조지 워싱턴의 서재는 그의 초대 없이는 출입이 불가했다. 오롯이 워싱턴 혼자만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워싱턴은 아침 먹기 전 서재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저녁 식사 뒤에도 그곳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보냈다. 저녁 식사 뒤 노예들은 보통 워싱턴의 차와 다과를 서재로 갖다주곤 했다. ▷“나 죽거든 노예를 풀어주오”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왕이 되어달라는 국민의 성원에도 그는 과감히 욕심을 접고 그가 살던 마운트 버넌으로 돌아왔다. 워싱턴은 운영했던 농장 규모, 일 년에 몇 백명씩 찾아오는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서 많은 노예를 부릴 수 밖에 없었다. 결혼할 당시 50여 명이었던 노예가 그의 사망 직전에는 316명으로 늘어났다. 노예는 요리사, 정원사, 구두 수리공 등 각 분야별로 있었다. 노예 전용 숙소가 따로 마련돼있었다. 노예들은 각자의 하루 업무가 끝나면 숙소로 돌아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워싱턴은 1799년 자필로 42페이지에 달하는 긴 유언장을 작성했다. 유언장의 내용에는 ‘개인 시중을 든 윌리엄을 노예 신분에서 즉각 해방하고 그에게 연금 30달러를 줄 것이며, 아내가 죽으면 나머지 노예들도 해방시켜달라’는 항목이 포함돼있었다. 1799년 12월 12일, 추운 날씨에 말을 타고 돌아다니던 워싱턴은 갑자기 목이 붓고 심한 고통을 느꼈다. 다음날 아침 부인인 마사에게 숨쉬기 고통스럽다고 말하면서도 그녀가 감기에 옮을까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당대 최고의 의료진이 그의 치료를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그는 향년 67세의 나이로 1799년 12월 14일 소천했다. ▷보이지 않는 내조의 여왕, 마르다 워싱턴 워싱턴은 1759년 당대 미국 최대 갑부 중 한 명인 마르다 커스티스(Martha Custis)와 결혼했다. 마르다는 당시 3천명이 넘는 노예와 1만7000 에이커의 토지를 가지고 있는 부자였다. 매우 지적이고 우아한 태도를 지녔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워싱턴과 마르다가 진정한 사랑이 아닌 ‘우정’의 관계라고 평하지만 마운트 버논에서 느낀 그들 관계는 사뭇 달랐다. 마운트 버넌에서 요리 업무를 맡은 노예들은 하루 평균 16시간을 주방에서 보냈다. 7시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 4시부터 요리를 시작했다. 아침 식사 뒤에는 바로 점심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워싱턴 가족은 오후 3시에 저녁식사를 했기 때문에 쉴 틈도 없이 바로 저녁 식사도 준비해야했다. 저녁식사 뒤에는 다음날 먹을 음식에 대한 대비를 해야 했다. 워싱턴의 부인인 마르다도 하루에 4번 주방에 드나들며 식사를 점검했다. 아침 6시 반에는 아침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나 확인했다. 아침 식사 후인 오전 8시에는 노예들과 저녁 메뉴를 상의하며 저녁 때 먹을 터키를 골랐다. 저녁 식사 1시간 전인 오후 2시에는 식사 준비가 잘 돼가나 확인했다. 저녁 식사 뒤인 오후 7시에는 다음날 먹을 음식이 충분한지 점검했다. 당대 최고의 부자였지만 마운트 버넌에서는 세심하게 남편을 내조하는 그녀였다. 마르다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남편과 함께 사용하던 침실을 더이상 사용하지 않고 3층 침실을 썼다. 또한 괜한 뒷말이 나오는 것을 방지하고자 조지 워싱턴과 생전 주고받았던 편지들도 모두 불태워버렸다. 오늘날까지 기억되는 워싱턴이 남긴 대부분의 것들은 마운트 버넌 기념관에 전시돼있다. 역사 속 수많은 권력자들은 제도를 무시하고 장기 집권을 획책했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기존 제도들을 강제로 바꾸어 가면서 최고 권좌를 탐해왔다. 거의 동시대인 나폴레옹이 그랬으며, 로마의 카이사르가 그러했다. 그렇기에 조지 워싱턴이 최고의 권자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것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운트 버넌=김효선 기자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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