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지던트데이 특집2]위대한 동맹 이끌어낸 워싱턴의 친구 '라파예트'
백악관 바라보는 라파예트
워싱턴, 외국 청년에 장군직 부여
라파예트, 프랑스 지원 끌어당겨
DC 라파예트 스퀘어 등 미 전역에 존재하는 수십 개의 라파예트 이름을 딴 도시와 대학, 기념비 등은 라파예트가 초대 대통령 조지워싱턴과 미국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말해준다. 조지워싱턴은 “전쟁동안 쓴 권총은 라파예트에게 줄 것”이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라파예트는 1757년 프랑스 남부에서 태어났다. 2살 때 프랑스군 장교였던 아버지는 7년전쟁에서 전사했고, 13살 때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가문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그는 14세 때 군사학교에 들어갔다.
라파예트가 조지워싱턴을 만난 것은 20살 때다. 프랑스에서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간 청년 라파예트는 1777년 7월 조지워싱턴을 만난다. 영어도 서툴고 경력도 적었지만 열정적이고 겸손한 청년 라파예트에 워싱턴은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 12월 워싱턴은 라파예트에게 장군 지위를 부여한다.
라파예트는 워싱턴과 함께 영국군에 맞서 싸우면서 전투 지휘 능력을 키워나간다. 1779년, 라파예트는 프랑스로 돌아간다. 더 많은 군인과 함대, 보급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라파예트를 직접 만나 미국 이야기를 즐겨 들었고, 라파예트는 프랑스 최정예부대원 6000명을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1780년, 라파예트는 원정군을 이끌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라파예트는 워싱턴과 함께 영국군을 물리치기 시작한다. 독립전쟁 최후의 전투인 요크타운 공방전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는 라파예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워싱턴DC 라파예트 스퀘어=심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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