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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 전당대회 이틀째 표정] 경선 경쟁자도 총출동 "단합" "승리"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회 첫날인 15일 7시(서부시간)가 넘어 청중석에 자리하고 당원들에게 얼굴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오른쪽 귀에 반창고를 붙인 트럼프는 시종 진중한 제스처와 미소로 환호에 화답했다.     16일 저녁 프라임 타임인 5시(서부시간) 이후에는 대선 후보급들이 대거 등장했다. 당내 경선에 참여했던 비벡 람스와미, 테드 크루즈 텍사스 상원의원, 론 디센티스 플로리다 주자사 등이 연설에 나섰으며 경선 최종까지 트럼프와 각을 세웠던 니키 헤일리 전 대사가 트럼프 지지 연설을 내놓았다. 이외에도 에릭 슈미트 미주리주 상원의원, 세라 허커비 샌더스 아칸소 주지사가 백악관 경험을 살려 트럼프 승리를 역설했으며 마크 루비오 플로리다 상원의원의 연설을 마지막으로 이틀째 일정이 마무리됐다.     일부 연설자들은 교대로 바이든 행정부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내세웠지만 암살 총격 이후의 분위기는 시종 당내 결속과 평화를 위한 공감대 등을 내세워 눈길을 끌었다.     ▶미국을 다시 안전하게   ‘Make America ~(~ 미국을 만들자)’ 식으로 행사 주제를 공개해온 공화당 측은 ‘Safe Again’(다시 안전하게)을 내세워 불법 이민과 이로 인한 범죄 창궐을 주로 다뤘다. 론 디센티스 주지사는 현재 이민 옹호 정책을 펴온 민주당의 실정을 부각하며 트럼프의 일관된 국경 강화는 4년의 공백을 지나 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사들은 불법 이민자들의 범람으로 팬타닐을 비롯해 각종 마약 범죄와 중독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란이 암살 배후’ 해프닝   한때 이란이 트럼프 암살 배후일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당국이 이를 부인하면서 해프닝이 됐다. 16일 오전 뉴스전문 케이블 CNN은 정부 관계 부처 측근들을 익명으로 인용해 “연방 당국이 이란이 트럼프 암살에 나설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던 것을 알려졌다”며 “이를 근거로 보안과 경호를 더욱 높은 수준으로 유지했지만 20세 용의자가 저격 지점을 확보하고 실행에 옮기는 믿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국가정보국(NSC)은 해당 첩보의 유무 여부를 떠나 이란과 용의자와의 관계는 확인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암살 용의자가 트럼프 연설 도중 지붕에 장총을 들고 오르는 모습이 집회 참석자의 전화기 영상으로 공개되면서 펜실베이니아 지역 경찰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해당 건물 안에서는 경찰과 저격수들이 대기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카시 “당 화합 민주당 압도”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옹립하는 전당대회를 조직했던 케빈 매카시(가주) 전 하원의장은 공화당의 화합력은 민주당을 앞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하원 의장 역할을 하다 퇴진하고 의원직을 사퇴한 그는 전당대회장에서 가진 NBC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원 30% 이상이 바이든의 낙마를 주장하고 있어 사분오열 상태이지만 공화당은 트럼프 후보를 중심으로 뭉쳐 2016년의 영광을 되찾아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론 디센티스 주지사 등 경선 후보들이 모두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어 승리를 약속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최인성 기자 ichoi@koreadaily.com공화 전당대회 이틀째 표정 경쟁자 총출동 트럼프 승리 당내 경선 도널드 트럼프

2024-07-16

[문예 마당] 가끔 쉬어 가라고

  아침에 일어나 침상을 정리하다 허리를 끔뻑했다. 일 년이면 한 두어 번 이런 일을 겪어 고생을 톡톡히 하는데 오늘 또 기어이 일을 당하고 말았다. 허리를 다치면 그만 펼 수도 구부릴 수도 없어 그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앞으로 얼마 동안 꼬박 불편하게 지내게 될 것이다. 허리가 부자연스러우니 자연 행동도 굼떠 앉은 자리에서 한 번 일어서려면 보통 때보다 서너 배 시간이 소요된다. 일어섰다고 해도 또 걷기가 쉽지 않아 모든 움직임이 슬로비디오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행동이 느리니 마음도 따라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어차피 빨리빨리 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 마음이 재빠르게 적응을 한 것인지 마음이 느긋해지니 시간 또한 느리게 가고, 생각이라는 것도 해본다.   흔히 몸에 이상이 생기는 이유는 힘이 드니 쉬어 가겠다고 하는 신호다. 이 정직한 고백에 우리는 쉽게 귀 기울이지 않아 상태를 악화시키거나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곤란함으로 내몰리게 된다. 옛말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라는 말이 있듯 미리 단속하면 쉽게 해결이 날 일도 그 시기를 놓치게 되면 큰 낭패를 보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내 허리의 증세도 얼마 전부터 조짐이 있었다. 일어서거나 앉을 때 그 동작의 시작에서 척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주춤했다 다시 곧추세워 일어나곤 했는데. 그런 미세한 증상을 감지하고 있었으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이유는 ‘조금 참으면 낫겠지’하는 안이 함이었다. 편안하고 쉽게 생각하는 것, 그것이 함정이었던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도 이런 안이함이 곳곳에 포박하고 있다. 몸에 이상이 생겨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인간관계에도 신호가 있다. 조금만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만 더 따뜻하다면 더 나은 관계로 우리들의 삶은 윤택해질 일이다.   좀처럼 화를 잘 내지 않는 남편은 유독 배고픈 것을 못 참는 사람이다. 하여 배가 고프면 화를 내는데, 예를 들어 “아직 식사 준비 멀었나?”하고 물으면 조금 참을 만한 것이고 “아직 식사 준비 멀었어요?”하고 물으면 이때는 진짜 배가 많이 고픈 것이라 화내기 일보 직전이다. 남편이 화가 났을 때 붙이는 “~요?” 자는 자신의 화를 누구려 보려고 짐짓 느리게 붙여보는 말인데, 이미 나는 그의 신호를 알아챈다. 가끔 내가 먼저 선수를 칠 때도 있다. 그의 표정을 읽고, 아직 식사 준비가 멀었으니 조금만 참아 달라고 하면 남편도 어느 정도 내 신호에 호응한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신호가 말이나 표정, 몸짓으로 표현되어 전달되면 얼마나 좋으랴. 정작 우리가 제때 알아채고 제때 반응해야 하는 신호는 복잡하고 미묘하여 늘 미로 속에서 헤맨다.   예전, 나는 이 미묘하고도 복잡한 신호에 소홀하여 사람을 잃을 뻔한 경험이 있다. 신호를 보내는 사람의 마음을 읽고도 적당한 대응을 못 했었다. 이때도 ‘시간이 지나면 오해가 풀리겠지’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기다리다 일이 커졌다. 그 후 내가 얻은 교훈은 아무리 친한 관계라 해도 즉시, 또는 같은 방법으로 신호를 보냈어야 했다는 것이다. 관계의 오류는 지극히 상대적이므로 우리는 끊임없는 소통으로 관계 유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 이는 이웃이나 친구뿐만 아니라 가장 가깝다고 하는 친인척에게도 소용되는 말이 될 것이다. 혼자서는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누군가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하고 따뜻한 일이겠는가! 아무리 바빠도 신호등을 보고 규율을 지켜야 안전하듯이, 다급하다고 신호를 무시하면 거기에 대응하는 대가가 피눈물 나게 아프다.     이제 또 한 해를 마무리할 때다. 한 해 동안 내게 사랑을 베풀어 주신 분들을 떠올리며 감사의 마음을 가져본다. 또한, 한 해 동안 나로 인해 상처받은 분들은 없었는지 주변을 꼼꼼하게 돌아본다. 이 모든 생각이 움직일 수 없어 가만히 누워서 해보는 생각이다. 얼마나 기막힌 타이밍인가? 만약 허리 통증 없이 그저 온전하게 보내게 되었다면 바쁘다는 핑계로 이 모든 일을 떠올려 보지도 못한 채 그냥 한 해를 보내고 말았을 것이다.   몸이 아플 때는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휴식의 시간이다. 편안해서 함부로 대했던 사람은 없었나? 뒤돌아본다. 분명한 신호를 듣고도 소홀히 대했던 적은 없었나 뒤돌아본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곤란함으로 내몰리기 전, 아주 작은 신호에도 즉각 반응하여 “미안합니다” 하며 손 내밀어 보기로 한다.   가끔 쉬어 가라고… 몸이 아프면 마음이 익어 간다. 고옥 수필가문예 마당 수필 허리 통증 관계 유지 표정 몸짓

2024-05-23

[문화산책] 아름답고 따스한 손의 표정

한동안 예술가의 손을 집중적으로 관찰한 적이 있다.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살펴보니 보면 볼수록 풍부하고 아름다운 손의 표정에 감탄하게 된다. 손이 말을 하고 음악을 만들고 춤을 춘다. 말이 안 통하면 손짓 발짓으로 소통한다. 수화의 세계는 한층 깊다.   젊은 시절 연극에 미쳐 지낼 때도 손의 다채로운 표정이 보여주는 표현력과 설득력에 감탄하며 소중하게 여겼지만,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손이 건네는 말과 표정은 정말 넓고 깊고 그윽하다.   예술세계에서는 거의 절대적이다. 음악가의 손은 아름답고 신비롭다. 오케스트라를 통솔하여 조화로운 음을 만들어내는 지휘자의 손도, 악기를 애무하는 연주자들의 손도, 가수의 손놀림도 깊고 그윽하다. 황제 카라얀의 손짓은 철학적이고,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손은 음악과 하나로 어우러지며 춤춘다. 지휘자마다 추구하듯 음향이 다르듯 손짓도 그렇게 다르다.   피아니스트의 현란한 손놀림, 바이올린 연주자의 섬세한 손 움직임, 하프 어루만지는 우아한 손길, 기타 고수의 현란한 손길…. 가야금 튕기는 손, 대금 연주자의 운지, 타악기 두드리는 신명의 손….   미술작품에 그려진 손들도 다양한 표정으로 많은 말을 한다. 볼수록 정겹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신과 인간이 서로 마주하며 소통하는 손, 알프레드 뒤러의 기도하는 손, 로댕이 조각한 손… 그 수많은 명작…. 명화에서 손 부분만을 따로 떼어서 감상해도 감동적이다. 정말 많은 것을 속삭여준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손, 도자기를 빚는 도공의 흙 묻은 손, 붓을 잡은 서예가의 손, 허공을 가르는 춤꾼의 손짓….   예술작품에서만이 아니다. 우리 삶에서도 손은 아름답다. 돈벌이를 위해 마지못해 컴퓨터 자판 위를 정처 없이 헤매는 손, 습관적으로 무표정하게 휴대전화를 두드리는 손, 돈을 세는 손…. 그런 고달픈 손 말고 아름다운 손이 많다. 열심히 일하다가 구슬땀 닦는 손, 책장을 넘기는 손, 정성껏 손글씨로 편지 쓰는 손, 화초에 물 주는 손, 아내의 젖은 손 같은 고맙고 거룩한 손…. 그중 으뜸은 아무래도 어머니의 거칠어진 손일 것이다.   우리 인간이 두 발로 걷는 직립보행의 삶을 시작하면서 손은 신체에서 가장 요긴한 부분으로 진화했다. 문명 발전의 가장 효율적 연장으로 아름답고 편리하게 진화했다. 그렇게 진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더러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은 ‘손’전화(휴대폰)의 시대다. 그러다 보니, 영화 ET의 손가락처럼 이상하게 변해버린 손도 점점 많아진다.   안타깝게도 우리네 현실에는 나쁜 손, 더러운 손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매우 어지럽고 아슬아슬하다. 무섭다. 방아쇠를 당기는 피 묻은 손, 아무 의미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허공을 찔러대는 정치가의 검은 손,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기에 바빠서 정의라는 말조차 잊어버린 기자의 창백한 손, 같은 반 친구의 인생을 폭력으로 뭉개버리는 젊은 청춘의 잔인한 손, 무슨 판결문이라는 걸 읽으며 공허하게 방망이 두드리는 손, 똑같은 말을 꼭 세 번씩 되풀이하며 내 질러대는 시위대의 손, 훔치는 손, 걸핏하면 파이팅 외치며 흔들어대는 주먹손, 때려 부수는 파괴의 손….   이렇게 부정적이고 어두운 손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아름다운 손, 착한 손이 건네는 다정한 말이 그리워진다. 손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사랑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나는 엄마의 손맛, 엄마손은 약손 같은 근원적 사랑의 손길, 진정성과 체온이 그득 담긴 예술가의 손길, 인공지능에는 없는….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표정 손길 인공지능 손길 진정성 대금 연주자

2023-05-18

[문화산책] 아름답고 따스한 손의 표정

한동안 예술가의 손을 집중적으로 관찰한 적이 있다.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살펴보니 보면 볼수록 풍부하고 아름다운 손의 표정에 감탄하게 된다. 손이 말을 하고 음악을 만들고 춤을 춘다. 말이 안 통하면 손짓 발짓으로 소통한다. 수화의 세계는 한층 깊다.   젊은 시절 연극에 미쳐 지낼 때도 손의 다채로운 표정이 보여주는 표현력과 설득력에 감탄하며 소중하게 여겼지만,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손이 건네는 말과 표정은 정말 넓고 깊고 그윽하다.   예술세계에서는 거의 절대적이다. 음악가의 손은 아름답고 신비롭다. 오케스트라를 통솔하여 조화로운 음을 만들어내는 지휘자의 손도, 악기를 애무하는 연주자들의 손도, 가수의 손놀림도 깊고 그윽하다. 황제 카라얀의 손짓은 철학적이고,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손은 음악과 하나로 어우러지며 춤춘다. 지휘자마다 추구하듯 음향이 다르듯 손짓도 그렇게 다르다.   피아니스트의 현란한 손놀림, 바이올린 연주자의 섬세한 손 움직임, 하프 어루만지는 우아한 손길, 기타 고수의 현란한 손길…. 가야금 튕기는 손, 대금 연주자의 운지, 타악기 두드리는 신명의 손….   미술작품에 그려진 손들도 다양한 표정으로 많은 말을 한다. 볼수록 정겹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신과 인간이 서로 마주하며 소통하는 손, 알프레드 뒤러의 기도하는 손, 로댕이 조각한 손… 그 수많은 명작…. 명화에서 손 부분만을 따로 떼어서 감상해도 감동적이다. 정말 많은 것을 속삭여준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손, 도자기를 빚는 도공의 흙 묻은 손, 붓을 잡은 서예가의 손, 허공을 가르는 춤꾼의 손짓….   예술작품에서만이 아니다. 우리 삶에서도 손은 아름답다. 돈벌이를 위해 마지못해 컴퓨터 자판 위를 정처 없이 헤매는 손, 습관적으로 무표정하게 휴대전화를 두드리는 손, 돈을 세는 손…. 그런 고달픈 손 말고 아름다운 손이 많다. 열심히 일하다가 구슬땀 닦는 손, 책장을 넘기는 손, 정성껏 손글씨로 편지 쓰는 손, 화초에 물 주는 손, 아내의 젖은 손 같은 고맙고 거룩한 손…. 그중 으뜸은 아무래도 어머니의 거칠어진 손일 것이다.   우리 인간이 두 발로 걷는 직립보행의 삶을 시작하면서 손은 신체에서 가장 요긴한 부분으로 진화했다. 문명 발전의 가장 효율적 연장으로 아름답고 편리하게 진화했다. 그렇게 진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더러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은 ‘손’전화(휴대폰)의 시대다. 그러다 보니, 영화 ET의 손가락처럼 이상하게 변해버린 손도 점점 많아진다.   안타깝게도 우리네 현실에는 나쁜 손, 더러운 손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매우 어지럽고 아슬아슬하다. 무섭다. 방아쇠를 당기는 피 묻은 손, 아무 의미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허공을 찔러대는 정치가의 검은 손,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기에 바빠서 정의라는 말조차 잊어버린 기자의 창백한 손, 같은 반 친구의 인생을 폭력으로 뭉개버리는 젊은 청춘의 잔인한 손, 무슨 판결문이라는 걸 읽으며 공허하게 방망이 두드리는 손, 똑같은 말을 꼭 세 번씩 되풀이하며 내 질러대는 시위대의 손, 훔치는 손, 걸핏하면 파이팅 외치며 흔들어대는 주먹손, 때려 부수는 파괴의 손….   이렇게 부정적이고 어두운 손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아름다운 손, 착한 손이 건네는 다정한 말이 그리워진다. 손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사랑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나는 엄마의 손맛, 엄마손은 약손 같은 근원적 사랑의 손길, 진정성과 체온이 그득 담긴 예술가의 손길, 인공지능에는 없는….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표정 손길 인공지능 손길 진정성 대금 연주자

2023-05-11

[수필] 조지아의 순박한 눈물

여행이다. 개인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다. 관광회사에 얹혀 따라가는 개성 상실한 모양새도 아닌, 이름도 거창한 미주한국문인협회 주관이다. 게다가 문학 강의차 한국에서 모셔오신 강사 세 분이 함께하는 격조 높은 여름 문학축제 뒤풀이 관광 여행이다.   요즘 확실하게 내가 느끼는 것, 세대차이란 제목이다. 보기엔 확실한 내 나이가 드러나지 않아, 어영부영 잘 놀아주는 글쟁이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지만 그들의 보살핌, 봉사 정신, 확실한 일 처리, 불평불만 없이 깔끔하고 배려 넘치는 진행 모습에 감명 받아, 에너지 떨어진 나를 안타깝게 내가 보게 된다.   단체 여행이지만 따로 신경 쓸 일 전혀 없으니 편하다. 얼굴 구길 일 없고 마냥 즐겁다. 천성이 밝은 베이스에 좋은 환경이 받쳐주니 누구에게나, 어디를 가나 항상 행복한 나의 표정이다. 그래서 조지아가 나를 귀하게 보아 준 모양이다.   그랜드캐년으로 이동 중 여행자들의 필요에 따라 화장실 타임에 잠깐 들린, 작은 도시의 수수한 가게. 평상시 표정으로 여럿이 함께 들어갔는데 유독 내게 눈길을 준 점원이 말을 건다. 염색에서 자유로워 진 백발이 눈에 띄었던 걸까? 노인답지 않은 활달한 걸음걸이에 역시 늙은이 특유의 몸매가 아님에 슬며시 찬사를 건네온다.     더 놀라게 해줄까? 내 나이 세븐티 식스! 완전 깜놀한 표정에 이어지는, 나보다 20년 아래인 자신과 남편의 건강상태를 느리게 알리며 부러움에 꽉 찬 표정이다. 우선 남편의 건강 문제는 하늘에 올려드리고 맡기자. 우울하게 걱정한다고 우리가 뭐 하나 결정타를 날릴 수 있는 재주가 없지 않으냐. 열심히 기도하며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다 보면 더 좋은 날이 오게 되어 있으니 나도 함께 기도할게. 행복하자. 이야기 나눈 정표로 물건 하나 팔아줬다. 냉장고에 붙이는, 엄지손가락보다 작은 곰돌이 두 개 사서 곁에 있던 오래된 문우에게, 볼 때마다 내 생각하라며 하나 건넸다.   조지아는 그렇게 곧 잊었다. 우리들의 상큼 발랄한 여행은 계속되고, 낯설고 교감 없던, 타주에서 참석한 새로운 문우들과 조금씩 거리를 좁히면서 단체여행의 진미를 잘근잘근 씹는다. 2박 3일의 여행은 그렇게 미련 없이 끝나가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린 조지아의 일터. 여전히 들어서는 내게 함박웃음을 보내며 반가워한다. 난 왠지 가슴이 쿵 하며 당장에라도 썸타고 싶은 남자를 만난 듯한 착각이 들었다. 물론 조지아는 나이보다 훨 늙어 보이는 할머니다.     그의 일터는 바쁘다. 그의 환영에 감동먹은 내가 툭 뱉은 한 마디. 네게 뭔가 하나 사 주고 싶은데 원하는 것 있니? 주저하는 틈새도 없이 훅 들어오는 말, 나를 놀라게 해 봐. 와아, 제대로 연애 모드로 돌입하는 청춘남녀의 대화로 들리며 내 가슴이 살짝 설레고 있다. 뭐가 좋을까? 잠시 비켜서며 주위를 살피다 후딱 눈에 들어오는 드림캐처. 내가 한 번도 사고 싶단 마음 가져보지 않던 물건인데 순간 아, 이거다. 조지아의 신앙 정도라면 드림캐처와의 교감이 생길 것 같은 기대가 생긴다.   아주 깜찍하게 자그마한 것이 눈에 띈다. 아, 너무 약소하다. 좀 비싼 거로 해 주고 싶다. 진열된 모든 드림캐처 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골랐다. 계산이 끝나고 이내 카운터 밖으로 뛰어나온다. 어느새 젖은 눈에선 물방울이 반짝인다. 묵직한 덩치로 나를 끌어안는다.     이렇게 짧은 순간이지만 누군가에게 행복을 느끼게 했다면 이게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의 삶이란 생각에 나도 조지아 못지않게 행복하다. 오래오래 이 기쁨이 조지아에서 내게, 나에게서 조지아에게로 오고 갈 것이다. 박기제 / 수필가수필 조지아 순박 평상시 표정 나이 세븐티 여름 문학축제

2022-09-29

[삶의 뜨락에서] 웃는 마음 웃는 얼굴

 웃는 얼굴을 만들 때는 언제일까. 사진사가 “자 웃으세요” 말할 때 우리는 웃는 얼굴이 된다. 가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어 뚱한 표정을 풀지 않기도 하지만 대체로 사진에 고정되는 내 표정이 웃는 얼굴이기를 바라면서 웃음 짓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또 언제일까. 내 어린아이가 함빡 웃으며 달려들 때 그 웃음에 지지 않는 그런 웃음으로 화답하며 따뜻한 풍경을 그려낸다. 이때 웃는 얼굴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 시절에 아이들이 부모에게 가장 효도하는 때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사진사의 말대로 만드는 웃음이나 경쟁사회 속에서 끌어내는 웃음이나 다른 속셈으로 지어내는 웃음들이 걸려 있는 얼굴은 웃음과 그 뒤가 같지 않은 경우가 많아 웃는 얼굴을 보는 표정도 앞뒤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많아지는 세상이다.   무엇을 만나면 웃는 얼굴이 되는가. 어떤 이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살아서 웃을 일이 뭐 있나. 그러면서 웃음기를 얼굴에서 걷어내고 표정 없음이나 못마땅하거나 슬픈 얼굴을 드리운다. 그렇게 혼자 세상 고민을 다 끌어안는 심각한 표정에 때로는 오히려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살아가면서 웃는 얼굴이 되게 하는 것들도 적지 않게 만나게 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글이 가을에 바싹 곁에 와서 앉으며 쓸쓸함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라는 글을 한번 써보면 그 또한 적지 않게 많으며 그렇게 웃는 얼굴을 유지하게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웃으면 건강해진다고 하며 그냥 웃어보면 저절로 진짜 웃음을 담은 얼굴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건강을 만나면 웃는 얼굴이 된다. 건강하여도 우는 얼굴이면 그 건강을 아마도 가짜 건강일 확률이 높다.     내가 웃어도 웃는 게 아니야. 이렇게 말하는 웃는 얼굴을 가끔 본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울고 싶다는 하소연으로 들린다. 어떤 사정일까. 내 속을깊이 감추고 남에게 보여주는 얼굴에 잘 만든 웃음을 걸어놓고 나는 지금 웃고 있습니다 중얼거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잘 알고 있다.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을. 우는 마음이 드러내는 웃는 얼굴이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눈치채고 있다. 그와는 반대로 속으로 웃으며 겉에 무표정 또한 사람들을 속일 수는 없다. 억만금 복권에 당첨되었거나 금광에서 커다란 금덩이를 발견한 사람이 속에 감추고 겉으로 무표정 지어내도 사람들은 무표정 바로 뒤에 있는 웃는 얼굴을 알아내고 만다. 어려운 세상을 사는 보통사람들에게 위대한 스승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요즘 흔한 전화기 속에 크게 웃는 동그란 얼굴이 아니어도 어느 쪽인가 할 때 분명 웃는 얼굴이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인물들의 속사람은 미소가 있거나 웃는 마음이라고 여겨지는 까닭이다.   사람들의 소박한 소원은 웃는 얼굴로 살아가는 것이다. 삶이라는 이름의 사진사가 “자 웃으세요”라고 말할 때 가짜 웃음이 아니고 진짜 웃음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겉과 속이 다른 표정을 가질 때 사람들은 피곤해진다. 살기 어려운 세상 속에서 산다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내 속을 함부로 드러내 보이면 손해 보는 일이 많을지라도 웃는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웃는 마음이 되고 난 후에야 억지로 웃는 얼굴 만들지 않아도 저절로 보기 좋은 얼굴이 피어오른다. 물질로 모든 것이 판단되는 세상이 되었지만 참된 지혜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어도 포도나무에 포도송이가 열리지 않았어도 과일나무가 소출을 내지 않아도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그런 것들을 능히 이기는 귀한 것이 내게 있으니 나는 즐거워하겠다. 이렇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자리 잡으면 누구도 뺏을 수 없는 아름다운 얼굴이 그곳에 나타난다. 소박하지만 대단한 소원이 이루어진다. 안성남 / 수필가

202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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