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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조지아의 순박한 눈물

여행이다. 개인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다. 관광회사에 얹혀 따라가는 개성 상실한 모양새도 아닌, 이름도 거창한 미주한국문인협회 주관이다. 게다가 문학 강의차 한국에서 모셔오신 강사 세 분이 함께하는 격조 높은 여름 문학축제 뒤풀이 관광 여행이다.
 
요즘 확실하게 내가 느끼는 것, 세대차이란 제목이다. 보기엔 확실한 내 나이가 드러나지 않아, 어영부영 잘 놀아주는 글쟁이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지만 그들의 보살핌, 봉사 정신, 확실한 일 처리, 불평불만 없이 깔끔하고 배려 넘치는 진행 모습에 감명 받아, 에너지 떨어진 나를 안타깝게 내가 보게 된다.
 
단체 여행이지만 따로 신경 쓸 일 전혀 없으니 편하다. 얼굴 구길 일 없고 마냥 즐겁다. 천성이 밝은 베이스에 좋은 환경이 받쳐주니 누구에게나, 어디를 가나 항상 행복한 나의 표정이다. 그래서 조지아가 나를 귀하게 보아 준 모양이다.
 
그랜드캐년으로 이동 중 여행자들의 필요에 따라 화장실 타임에 잠깐 들린, 작은 도시의 수수한 가게. 평상시 표정으로 여럿이 함께 들어갔는데 유독 내게 눈길을 준 점원이 말을 건다. 염색에서 자유로워 진 백발이 눈에 띄었던 걸까? 노인답지 않은 활달한 걸음걸이에 역시 늙은이 특유의 몸매가 아님에 슬며시 찬사를 건네온다.  
 
더 놀라게 해줄까? 내 나이 세븐티 식스! 완전 깜놀한 표정에 이어지는, 나보다 20년 아래인 자신과 남편의 건강상태를 느리게 알리며 부러움에 꽉 찬 표정이다. 우선 남편의 건강 문제는 하늘에 올려드리고 맡기자. 우울하게 걱정한다고 우리가 뭐 하나 결정타를 날릴 수 있는 재주가 없지 않으냐. 열심히 기도하며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다 보면 더 좋은 날이 오게 되어 있으니 나도 함께 기도할게. 행복하자. 이야기 나눈 정표로 물건 하나 팔아줬다. 냉장고에 붙이는, 엄지손가락보다 작은 곰돌이 두 개 사서 곁에 있던 오래된 문우에게, 볼 때마다 내 생각하라며 하나 건넸다.
 
조지아는 그렇게 곧 잊었다. 우리들의 상큼 발랄한 여행은 계속되고, 낯설고 교감 없던, 타주에서 참석한 새로운 문우들과 조금씩 거리를 좁히면서 단체여행의 진미를 잘근잘근 씹는다. 2박 3일의 여행은 그렇게 미련 없이 끝나가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린 조지아의 일터. 여전히 들어서는 내게 함박웃음을 보내며 반가워한다. 난 왠지 가슴이 쿵 하며 당장에라도 썸타고 싶은 남자를 만난 듯한 착각이 들었다. 물론 조지아는 나이보다 훨 늙어 보이는 할머니다.  
 
그의 일터는 바쁘다. 그의 환영에 감동먹은 내가 툭 뱉은 한 마디. 네게 뭔가 하나 사 주고 싶은데 원하는 것 있니? 주저하는 틈새도 없이 훅 들어오는 말, 나를 놀라게 해 봐. 와아, 제대로 연애 모드로 돌입하는 청춘남녀의 대화로 들리며 내 가슴이 살짝 설레고 있다. 뭐가 좋을까? 잠시 비켜서며 주위를 살피다 후딱 눈에 들어오는 드림캐처. 내가 한 번도 사고 싶단 마음 가져보지 않던 물건인데 순간 아, 이거다. 조지아의 신앙 정도라면 드림캐처와의 교감이 생길 것 같은 기대가 생긴다.
 
아주 깜찍하게 자그마한 것이 눈에 띈다. 아, 너무 약소하다. 좀 비싼 거로 해 주고 싶다. 진열된 모든 드림캐처 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골랐다. 계산이 끝나고 이내 카운터 밖으로 뛰어나온다. 어느새 젖은 눈에선 물방울이 반짝인다. 묵직한 덩치로 나를 끌어안는다.  
 
이렇게 짧은 순간이지만 누군가에게 행복을 느끼게 했다면 이게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의 삶이란 생각에 나도 조지아 못지않게 행복하다. 오래오래 이 기쁨이 조지아에서 내게, 나에게서 조지아에게로 오고 갈 것이다.

박기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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