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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서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 관람하던 시민들 '집단 난투극'

14일 밤 LA의 한 지역에서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을 관람하는 행사가 열린 가운데, 과음 등의 이유로 폭력사태가 발생, 여러 명이 병원에 이송되는 일이 발생했다.     KTLA 방송에 따르면 이날 사건은 피코 유니언 지역에 위치한 콜롬비아 식당 인근 주차장에서 일어났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등 수백 명의 팬들이 대회 결승전인 콜롬비아와 아르헨티나의 경기를 보기 위해 모인 상황이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경기가 끝난 후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한 목격자는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며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셨고 결국 폭력사태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현재까지의 보도에 따르면 유리병이 던져졌고 최소 한 명이 칼에 찔렸다. LA 경찰국(LAPD)은 자상 환자를 포함한 여러 명이 병원에 이송됐고 여러 건의 폭행 신고가 접수됐다고 설명했다.     15일 오전 7시 현재까지 해당 사건으로 체포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날 결승전에서는 아르헨티나가 연장 승부 끝에 콜롬비아를 1대 0으로 꺾었다. 아르헨티나는 통산 16번째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15번 우승한 우루과이를 제치고 코파 아메리카 최다 우승 국가가 됐다. 김영남 기자 [kim.youngnam@koreadaily.com]아메리카 폭력사태 코파 아메리카 콜롬비아 식당 우승 국가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결승전

2024-07-15

[보석상의 보석이야기] 머니 런드리 콜롬비아를 흔들다

 친구야! 이런 얘긴 내 안의 허물을 보이는 거라 누구에게나 쉽게 할 수 있는 얘긴 아니야. 하지만 너한텐 말하고 싶다. 지난 얘기라도 부끄럽지만 당당하기도 해. 들어봐.   내가 콜롬비아에서 에메랄드 사업을 한창 할 때야. 너는 콜롬비아 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니? '마약과 마피아?', '커피?', '미녀?', 아니면 아마도 '에메랄드?' 한국에서 IMF 사태가 터지기 전, 90년대 중반의 일이야. 그때는 한국이 올림픽 이후 막 성장할 시기라 돈이 좀 있는 여자들이라면 보석을 하나씩 장만하고 싶어 했었지. 그때만 해도 원산지 콜롬비아에서 에메랄드를 하는 한국인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어. 경쟁도 없고, 그저 내가 물건 주기만 손꼽아 기다리는 바이어들만 줄을 섰으니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였지. 그 바람에 한국에 나가면 난 그들의 VIP였어. 내가 다른 바이어와 거래라도 틀까 봐 전전긍긍하며 내 비위 맞추기 바빴지. 그 덕분에 자고 일어나면 은행 계좌에 0이 하나 더 찍히더라. 그러면서 은근히 걱정되더라 이러다 돈벼락 맞는 거 아닌가 하고….   그렇게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어느 날 내 콜롬비아 친구가 나에게 이것보다 수십 배 많이 벌 수 있는 달콤한 사업을 제안하는 거야. 내가 너니까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말할게. 다름 아닌 '돈세탁'이야. 고상하게 영어론 '머니 런드리'라고 하지. 넌 이런 범죄 패턴에 대해 무지하니까 내가 간단하게 요약해서 설명해 줄게. 마약을 팔면 돈이 생기지 그런데 마약은 불법이다 보니 판매대금을 정식으로 은행 계좌를 통해 콜롬비아로 송금할 수 없겠지. 하지만 난 그 당시 콜롬비아에서 정식 면허를 가진 에메랄드 중계회사를 했기 때문에 에메랄드 수출 대금을 은행을 통해 합법적으로 받을 수가 있었어. 이들의 제안은 간단해. 내가 수출하는 물량에 매달 400만 달러를 더해 허위로 수출액을 부풀려서 은행을 통해 돈을 받으면 400만 달러에 대한 15%의 커미션을 내게 주겠다는 거였어. 한마디로 한 달에 60만 달러 1년이면 720만 달러의 불로소득이 생기는 거지.    너 같으면 고민이 되니 안 되니? 하지만 난 고민 안 했다. 내 대답은 바로 'NO'였지. 나름 내가 한국에 있을 땐 뼈대 있는 안동 김씨 가문에 종손 아니겠니. 그런 내가 이런 양아치들과 돈벼락 한번 맞겠다고 그 일을 할 순 없지.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지만 에메랄드 하나만 갖고도 먹고살 만했거든, 그런데 더 솔직히 말하면 돈은 탐이 났는데 겁이 너무 나서 못 하겠더라. 원래 내가 새가슴이거든….   그러다 시간이 흘러 한국에 IMF 사태가 터진 거야. 1달러에800원 하던 환율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더니 급기야는 1800:1이 되니, 그때부터 손님들이 돈 지급을 미루더니 결국에는 배 째라고 나오는 거야. 그래서 나는 돈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아갔지만 이전의 한국은 나에게 더 이상 없더라. 공항에서부터 마중 나오고, 최고급 식사에 몇백만 원씩 하는 강남 유흥접대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30대 중반인 나에게 꼬박꼬박 '김 사장님' 하며 존대를 해주던 나의 50대 바이어들은 "어이 미스터 김! 오는데 고생 많았지" 하면서 소주에 순댓국 하나 사 주더라. 결국 여기저기서 뜯기고, 매출은 제로가 되는 사면초가에 몰리게 되니, 양반집 종손이고 나발이고 다 소용없더라.    다급함에 나는 콜롬비아 친구에게 예전의 그 양아치(마피아)를 다시 찾아 달라 부탁했지만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고, 내가 간절해지니 연락이 안 되더구나. 결국 나는 한순간 마음속에 품었던 크리미널 마인드를 타의에 의해 포기해야 했고, 본의 아니게 열심히 일해서 IMF를 극복했지.    그래서 지금도 난 당당하다.     해리 김 K&K Fine Jewelry  보석상의 보석이야기 콜롬비아 런드리 런드리 콜롬비아 콜롬비아 친구 원산지 콜롬비아 안동김씨 에메랄드

2023-11-30

모퉁이로 내밀린 아시안(2) 보는 이 없는 기록물…낡은 벽이 이민사 전시장

흔적은 오랜 세월을 내포한다. 역사는 흔적 너머의 사실이다.     론 퍼 묘지의 ‘블록 14’ 보존〈본지 10월 30일자 A-1면〉 은 이민자의 발자취가 지워져선 안 된다는 아시안 커뮤니티의 열망에서 비롯했다. 근저에는 지워짐에 대한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지난 21일 오후 2시, 포틀랜드 번사이드 스트리트와 4가 앞 차이나타운. 론 퍼 묘지에서 서쪽으로 불과 2마일 떨어진 곳이다. 높이 38피트의 거대한 중국식 게이트웨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차이나타운임을 알리는 표식이다.   추모 정원 건립의 기대감이 가득했던 ‘블록 14’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북적대야 할 주말임에도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차이나타운 내 3가와 카우치 스트리트에서 올드타운 그로서리 델리를 운영하는 김영자씨는 이곳에서 20년째 가족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이곳이 포틀랜드에서 가장 번화가였다고 한다. 관광객도 많았고 주말이면 각종 이벤트가 펼쳐졌던 지역이었다. 김씨는 “지금은 차이나타운이라 불리는 게 무색할 정도로 사람들이 없다”고 말했다.     색바랜 낡은 한자 간판들은 희미해진 차이나타운을 보여준다. 그 앞의 거리는 마약에 취한 노숙자들이 점령하고 있다. 입구에 묵직하게 자리잡은 청동 사자상의 위엄이 무색하다.   포틀랜드리패밀리협회마커스 리(70) 이사는 “지금 차이나타운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며 “중국인 이민자들은 중국의 흔적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낮인데도 문을 연 식당은 찾아볼 수 없다. 영업 중단 표지와 자물쇠로 굳게 닫힌 업소뿐이다.   3가에서 미니마트를 운영 중인 중국계 쑤 슈 사장은 “건너편 중국 식당 몇 곳만 빼고 모두 이곳을 떠났다”며 “이런 현상이 10여년 전부터 본격화됐는데 차이나타운의 옛 모습이 사라지면서 대신 노숙자가 몰려들었다”고 말했다.   차이나타운 복판을 향해 걸었다. 사람은 드물고, 이민자의 흔적만 곳곳에 남아 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한 낡은 건물 앞이다. 더는 사람이 살지 않는 듯했다. 유리 벽면 너머로 한 중국계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물이 보인다.     유리 벽면에 가까이 눈을 대고 글을 읽었다. 우리 한인들의 이야기와 닮은 데가 있다. 1930년대부터 이곳에 자리 잡고 세탁소를 운영했던 유 이(You Yee) 가족의 이민사다.     한의사였던 남편(카이 영 웡)을 일찍 여의고 홀로 세탁소를 운영하며 자식들을 키운 한 어머니의 일생이다. 고객이 수선을 요구한 부분 외에도 약해진 다른 솔기까지 꿰맬 정도로 근면하게 일했다는 내용도 있다.   글은 “이 건물은 여러 세대에 걸쳐 중국계 이민자들의 인내와 이 사회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끝을 맺는다.   이들의 이야기는 메아리를 잃은 지 오래다. 오가는 이가 없으니, 보는 이도 없다.     이곳에는 오리건중국인통합자선협회(CCBA)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연방 내무부가 국가 유적지로 지정한 건물이다. 1911년부터 이민자가 드나들었다.   이젠 중국계 이민자들도 예전처럼 차이나타운에 몰려 살지 않는다. 이곳저곳으로 점점 흩어지는 추세다.     CCBA 닐 리 회장은 “그만큼 이민 역사를 보존하는 것 역시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에 역사 자료를 이곳에 그대로 보관해두고 있으며 ‘블록 14’도 그러한 마음으로 지켜냈다”고 말했다.   빈 건물의 벽면은 마치 이민 역사의 전시장과 같다. 오리건주의 태동은 캘리포니아와 마찬가지로 금광을 찾기 위한 ‘골드러시’에서 비롯됐다.   한 벽면에는 “1851년은 골드러시와 맞물려 중국인 100여명이 처음으로 도착한 해”라는 기록물이 내걸려 있다. 변발의 중국인 이민자가 포틀랜드 콜롬비아 강가에서 낚시하는 모습, 철도 위 노동자들, 중국 전통 의상을 입은 남성이 표지에 등장한 1890년의 잡지 등 사진 자료도 여럿 보인다.     주정부 기관인 메트로의 한나 에릭슨 마케팅 담당자는 “중국계 이민자들은 철도 부설 외에 도로와 강둑까지 건설했다”며 “그들의 노동력, 전문성, 추진력이 없었다면 오리건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디선가 중국 전통 악기인 ‘얼후(erhu)’ 소리가 들려왔다. 가락이 흘러나온 곳은 작은 상점 크기의 포틀랜드 차이나타운 박물관이다.    유리창 너머로 중국인 노인 서너 명이 연주를 하고 있다. 얼후 소리가 텅 빈 이곳의 분위기와 맞물린다. 주름진 그들의 얼굴은 차이나타운의 오늘이다.   시들어가는 이곳엔 아름다운 정원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 수저우시와 포틀랜드시가 손잡고 지난 2000년에 개장한 ‘란 수(LanSu)’ 중국 정원이다. 정원 투어는 물론 차, 서예, 문학 등 중국 문화를 알리는 이벤트도 매일 열린다.   중국계미국인시민연합(CACA) 헬렌 잉 회장은 “우리는 계속해서 이민 역사를 유지하기 위해 이곳에 각종 표식과 구조물 등을 남기고 있다”며 “란 수 정원 인근 부지에 중국 문화 유산센터도 짓는 중”이라고 말했다.   론 퍼 묘지의 ‘블록 14’ 보존은 절실함의 산물이다. 희미해진 차이나타운은 이를 더 부각한다.    관련기사 지워질 뻔한 묫자리…굴곡의 땅 지켜낸 이민자 포틀랜드=장열 기자ㆍ사진 김상진 기자 jang.yeol@koreadaily.com포틀랜드 이민사 포틀랜드 차이나타운 이민사 전시장 포틀랜드 콜롬비아

2023-10-30

[글마당] 나일 수도 있다

리버사이드 공원을 따라 콜롬비아 대학까지 걸어 올라가서 브로드웨이를 따라 내려온다. 대학생들의 젊고 발랄함을 느끼고 싶어서다. 힘든 학업에 시달린 피곤한 모습이긴 해도 싱싱하다.     “아버지 여기는 너무 애들이 많아요. 다른 데로 가요.”   내가 젊은 사람들 모이는 곳을 즐겨 찾는 친정아버지에게 말하면 아버지는 “젊은 사람들 틈에 끼어 싱싱한 에너지를 받아야지. 들어가 차 한잔 마시고 잠깐 앉아 있다가 나오자.”   친정아버지는 비원의 한적한 뜰도 즐겨 가셨지만, 나이 든 사람이 많은 곳엔 가기를 꺼리셨다. 나도 그런 연유에서인지 대학가를 거닐면 젊어진 듯 발걸음에 힘이 들어간다.   콜롬비아 대학가를 지나 다운타운 쪽으로 걷다 보면 빈 가게가 눈에 띄게 하나둘씩 늘어난다. 팬데믹으로 온라인 쇼핑이 성행하자 급격하게 늘었다. 빈 가게 숫자가 얼마나 늘어났나를 하나둘 세면서 남의 일이 아닌 듯 씁쓸한 심정으로 힘 빠진 다리를 옮긴다. 빈 가게 앞, 바람에 날려 쌓인 너저분해진 귀퉁이에 홈리스가 적선하라며 앉아있다. 크레딧 카드를 사용하는 요즈음 그들도 예전만큼 수입이 없겠다. 내 주머니 역시 현찰도 없고 동전 만져 본지가 한참 됐다.     여행지에서 만난 한국 여자가 말한 ‘It could be me.’ (나일 수도 있다)가 생각났다. 그녀는 배에서 서브하는 사람들에게 무척 친절했다. 팁도 많이 챙겨주며 말했다.     “내가 만약 미국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남편에게 얻어터지고 있을지도 몰라요. 친정이 가난해서 교육도 많이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남자와는 결혼하기 힘들었거든요, 다행히 기회의 나라 미국에 와서 온갖 고생 하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이렇게 여행하며 삶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 나도 어디에서 어떤 험한 일을 하고 있겠지요. 힘든 일하는 사람들 보면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친절하지 않을 수 없어요.”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멈춰진 차 때문에 트래픽으로 열난 남편이 “집에 처박혀 있지 않고 왜 똥차를 끌고 나와서는~.” 길게 말하려다가 멈추고 죄지은 표정으로 나를 힐끗 쳐다본다.     “우리는 저런 차도 없었잖아. 간신히 마련한 덜덜거리는 차를 타고 가다가 바퀴가 떨어져 나가 저만치 굴러가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것 잊었어. 그때 교통사고 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 남의 일이 아니야. 우리도 저런 상황과 맞닥뜨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요.”   요즈음 굴지의 기업에서 레이오프를 많이 한다. 모아 놓은 돈도 없고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끊겼다. 집에서 놀면 나갈 돈은 더 많아진다. 홈리스 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순식간에 일어난다. 남의 일이 아닌 듯 빈 가게를, 홈리스를 그냥 스쳐 지나칠 수가 없다. 하루가 다르게 점점 빈 가게와 홈리스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아직 느끼지는 않지만, 그들만의 상황이 아니다. 그와 같은 현상이 확산하면 나에게도 영향이 올 수밖에 없다. 내가 그들처럼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비가 쏟아질 것 같은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It could be me.’ (나일 수도 있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콜롬비아 대학가 가게 숫자 리버사이드 공원

2023-03-10

사우스캐롤라이나 그린빌 한인회 15년만에 부활

지난 15년간 활동이 전무했던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 한인회의 부활을 알리며 한태동 회장이 지난 11일 11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린빌 한인회는 2007년부터 한인회 회장 및 회원이 없어 활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 6년간은 가까운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애쉬빌 한인회가 그린빌 지역을 담당했다.     이번에 취임한 한태동 회장은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롯에 20년간 거주할 당시 한인회 활동에 참여하고 동남부 태권도협회 수석 부회장을 맡은 바 있으며, 그린빌로 이주한 지 10년차다.     한 회장은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인회는 한인들이 어렵고 힘들 때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고 생각한다"며 지금껏 그린빌 한인회의 부재로 인근 한인들이 어려움을 호소할 곳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그린빌에 한인 600~1000명 정도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취임 후 더 정확한 통계를 위해 한인 주소록 발간하고, 체육대회 개최, 장학금 수여 등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11일 개최한 취임식에는 그린빌 주민들부터 이경철 미주한인상공회의소 수석부회장, 하도수 동남부 한인회 연합회 수석부회장과 콜롬비아 한인회, 캐롤라이나 한인회연합회 등에서 300여명의 한인이 참석해 그린빌 한인회의 새출발을 축하했다.     한 회장에 따르면 이날 약 80명이 새롭게 부활하는 한인회에 가입했으며, 그린빌에 거주하는 한인 대학생 두 명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윤지아 기자그린빌 한인회 그린빌 한인회의 한인회 회장 콜롬비아 한인회

2022-12-12

죽을 날 받아놓자 되찾은 웃음…콜롬비아 여성에 안락사 재허가

죽을 날 받아놓자 되찾은 웃음…콜롬비아 여성에 안락사 재허가 루게릭병 앓는 50대…콜롬비아서 말기 환자 아닌 안락사 첫 사례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난치병을 앓고 있는 콜롬비아 50대 여성이 두 번의 투쟁 끝에 존엄하게 생을 마무리할 권리를 얻어냈다. 28일(현지시간) 일간 엘티엠포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전날 콜롬비아 법원은 마르타 세풀베다(51)에 대한 안락사 절차를 진행하라고 명령했다. 법원은 관계기관에 48시간 이내에 세풀베다와 안락사 일시를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사실 세풀베다가 안락사 허가를 받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근위축성측색경화증을 앓고 있는 세풀베다는 지난 8월 안락사를 요청해 허가를 받았다. 콜롬비아는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말기 환자의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세풀베다의 경우 콜롬비아에서 말기 환자가 아님에도 안락사를 허가받은 첫 사례였다. 지난 7월 헌법재판소는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가 아니더라도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수반하는 심각한 난치병 환자도 안락사 허용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운동신경세포가 파괴되는 루게릭병은 서서히 몸이 마비되면서 사망에까지 이르는 퇴행성 질환으로, 세풀베다는 2018년 첫 진단을 받았다.   지난 10일로 안락사 날짜를 받아놨던 세풀베다는 죽음을 앞두고 언론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환한 웃음을 보여줬다. 그는 현지 카라콜TV에서 "내가 겁쟁이일 수도 있지만 더는 고통받고 싶지 않다. 지쳤다"며 "안락사 허가를 받은 후에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더 잘 웃고 잠도 잘 잔다"고 말했다. 세풀베다의 아들도 "어머니가 행복해하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정된 안락사를 불과 36시간 앞두고 의료당국이 안락사를 진행하지 않겠다며 결정을 뒤집었다. 인터뷰에서 보인 세풀베다의 상태가 안락사 허가 결정 당시에 알고 있던 것보다 좋아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세풀베다는 반발하며 안락사 결정을 얻어내기 위해 계속 투쟁하겠다고 했다. 아들도 "어머니가 전처럼 절망적이고 슬픈 상태가 되셨다"며 "어머니의 존엄성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이번 법원 결정으로 세풀베다는 곧 두 번째 안락사 날짜를 받게 된다. 콜롬비아에선 1997년 안락사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으며 2015년 안락사가 법제화된 뒤 지금까지 157명이 당국의 허가를 받아 생을 마감했다. 콜롬비아 외에 캐나다,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 등에서 안락사가 허용되고 있다. mihy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콜롬비아 안락사 안락사 재허가루게릭병 콜롬비아 여성 안락사 허가

202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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