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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나일 수도 있다

리버사이드 공원을 따라 콜롬비아 대학까지 걸어 올라가서 브로드웨이를 따라 내려온다. 대학생들의 젊고 발랄함을 느끼고 싶어서다. 힘든 학업에 시달린 피곤한 모습이긴 해도 싱싱하다.  
 
“아버지 여기는 너무 애들이 많아요. 다른 데로 가요.”
 
내가 젊은 사람들 모이는 곳을 즐겨 찾는 친정아버지에게 말하면 아버지는 “젊은 사람들 틈에 끼어 싱싱한 에너지를 받아야지. 들어가 차 한잔 마시고 잠깐 앉아 있다가 나오자.”
 
친정아버지는 비원의 한적한 뜰도 즐겨 가셨지만, 나이 든 사람이 많은 곳엔 가기를 꺼리셨다. 나도 그런 연유에서인지 대학가를 거닐면 젊어진 듯 발걸음에 힘이 들어간다.
 


콜롬비아 대학가를 지나 다운타운 쪽으로 걷다 보면 빈 가게가 눈에 띄게 하나둘씩 늘어난다. 팬데믹으로 온라인 쇼핑이 성행하자 급격하게 늘었다. 빈 가게 숫자가 얼마나 늘어났나를 하나둘 세면서 남의 일이 아닌 듯 씁쓸한 심정으로 힘 빠진 다리를 옮긴다. 빈 가게 앞, 바람에 날려 쌓인 너저분해진 귀퉁이에 홈리스가 적선하라며 앉아있다. 크레딧 카드를 사용하는 요즈음 그들도 예전만큼 수입이 없겠다. 내 주머니 역시 현찰도 없고 동전 만져 본지가 한참 됐다.  
 
여행지에서 만난 한국 여자가 말한 ‘It could be me.’ (나일 수도 있다)가 생각났다. 그녀는 배에서 서브하는 사람들에게 무척 친절했다. 팁도 많이 챙겨주며 말했다.  
 
“내가 만약 미국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남편에게 얻어터지고 있을지도 몰라요. 친정이 가난해서 교육도 많이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남자와는 결혼하기 힘들었거든요, 다행히 기회의 나라 미국에 와서 온갖 고생 하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이렇게 여행하며 삶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 나도 어디에서 어떤 험한 일을 하고 있겠지요. 힘든 일하는 사람들 보면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친절하지 않을 수 없어요.”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멈춰진 차 때문에 트래픽으로 열난 남편이 “집에 처박혀 있지 않고 왜 똥차를 끌고 나와서는~.” 길게 말하려다가 멈추고 죄지은 표정으로 나를 힐끗 쳐다본다.  
 
“우리는 저런 차도 없었잖아. 간신히 마련한 덜덜거리는 차를 타고 가다가 바퀴가 떨어져 나가 저만치 굴러가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것 잊었어. 그때 교통사고 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 남의 일이 아니야. 우리도 저런 상황과 맞닥뜨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요.”
 
요즈음 굴지의 기업에서 레이오프를 많이 한다. 모아 놓은 돈도 없고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끊겼다. 집에서 놀면 나갈 돈은 더 많아진다. 홈리스 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순식간에 일어난다. 남의 일이 아닌 듯 빈 가게를, 홈리스를 그냥 스쳐 지나칠 수가 없다. 하루가 다르게 점점 빈 가게와 홈리스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아직 느끼지는 않지만, 그들만의 상황이 아니다. 그와 같은 현상이 확산하면 나에게도 영향이 올 수밖에 없다. 내가 그들처럼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비가 쏟아질 것 같은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It could be me.’ (나일 수도 있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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