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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상의 보석이야기] 머니 런드리 콜롬비아를 흔들다

 친구야! 이런 얘긴 내 안의 허물을 보이는 거라 누구에게나 쉽게 할 수 있는 얘긴 아니야. 하지만 너한텐 말하고 싶다. 지난 얘기라도 부끄럽지만 당당하기도 해. 들어봐.
 
내가 콜롬비아에서 에메랄드 사업을 한창 할 때야. 너는 콜롬비아 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니? '마약과 마피아?', '커피?', '미녀?', 아니면 아마도 '에메랄드?' 한국에서 IMF 사태가 터지기 전, 90년대 중반의 일이야. 그때는 한국이 올림픽 이후 막 성장할 시기라 돈이 좀 있는 여자들이라면 보석을 하나씩 장만하고 싶어 했었지. 그때만 해도 원산지 콜롬비아에서 에메랄드를 하는 한국인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어. 경쟁도 없고, 그저 내가 물건 주기만 손꼽아 기다리는 바이어들만 줄을 섰으니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였지. 그 바람에 한국에 나가면 난 그들의 VIP였어. 내가 다른 바이어와 거래라도 틀까 봐 전전긍긍하며 내 비위 맞추기 바빴지. 그 덕분에 자고 일어나면 은행 계좌에 0이 하나 더 찍히더라. 그러면서 은근히 걱정되더라 이러다 돈벼락 맞는 거 아닌가 하고….
 
그렇게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어느 날 내 콜롬비아 친구가 나에게 이것보다 수십 배 많이 벌 수 있는 달콤한 사업을 제안하는 거야. 내가 너니까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말할게. 다름 아닌 '돈세탁'이야. 고상하게 영어론 '머니 런드리'라고 하지. 넌 이런 범죄 패턴에 대해 무지하니까 내가 간단하게 요약해서 설명해 줄게. 마약을 팔면 돈이 생기지 그런데 마약은 불법이다 보니 판매대금을 정식으로 은행 계좌를 통해 콜롬비아로 송금할 수 없겠지. 하지만 난 그 당시 콜롬비아에서 정식 면허를 가진 에메랄드 중계회사를 했기 때문에 에메랄드 수출 대금을 은행을 통해 합법적으로 받을 수가 있었어. 이들의 제안은 간단해. 내가 수출하는 물량에 매달 400만 달러를 더해 허위로 수출액을 부풀려서 은행을 통해 돈을 받으면 400만 달러에 대한 15%의 커미션을 내게 주겠다는 거였어. 한마디로 한 달에 60만 달러 1년이면 720만 달러의 불로소득이 생기는 거지. 
 
너 같으면 고민이 되니 안 되니? 하지만 난 고민 안 했다. 내 대답은 바로 'NO'였지. 나름 내가 한국에 있을 땐 뼈대 있는 안동 김씨 가문에 종손 아니겠니. 그런 내가 이런 양아치들과 돈벼락 한번 맞겠다고 그 일을 할 순 없지.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지만 에메랄드 하나만 갖고도 먹고살 만했거든, 그런데 더 솔직히 말하면 돈은 탐이 났는데 겁이 너무 나서 못 하겠더라. 원래 내가 새가슴이거든….
 


그러다 시간이 흘러 한국에 IMF 사태가 터진 거야. 1달러에800원 하던 환율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더니 급기야는 1800:1이 되니, 그때부터 손님들이 돈 지급을 미루더니 결국에는 배 째라고 나오는 거야. 그래서 나는 돈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아갔지만 이전의 한국은 나에게 더 이상 없더라. 공항에서부터 마중 나오고, 최고급 식사에 몇백만 원씩 하는 강남 유흥접대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30대 중반인 나에게 꼬박꼬박 '김 사장님' 하며 존대를 해주던 나의 50대 바이어들은 "어이 미스터 김! 오는데 고생 많았지" 하면서 소주에 순댓국 하나 사 주더라. 결국 여기저기서 뜯기고, 매출은 제로가 되는 사면초가에 몰리게 되니, 양반집 종손이고 나발이고 다 소용없더라. 
 
다급함에 나는 콜롬비아 친구에게 예전의 그 양아치(마피아)를 다시 찾아 달라 부탁했지만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고, 내가 간절해지니 연락이 안 되더구나. 결국 나는 한순간 마음속에 품었던 크리미널 마인드를 타의에 의해 포기해야 했고, 본의 아니게 열심히 일해서 IMF를 극복했지. 
 
그래서 지금도 난 당당하다.  
 
해리 김
K&K Fine Jewel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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