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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어택] 파리올림픽을 보내며

지난달 26일 개막한 2024 파리올림픽이 지난 주말 폐막했다. 폐막식은 프랑스 현지시각으로 일요일인 11일 밤에 열렸다. 이번 대회를 되짚어 봤다. 지켜봤던 경기 장면 중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한국 여자핸드볼의 예선 첫 경기다. 한국의 유일한 단체구기 종목. 독일전 1점 차 승리의 짜릿함이 되살아난다. 사격 10m 공기소총 혼성전의 한국 첫 메달과 펜싱 사브르 남자 개인전의 한국 첫 금메달도 빼놓을 수 없다.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 ‘아차’ 머릿속 필름을 되감는다.   최고의 감동 순간을 건너뛸 뻔했다. 라우브의 노래처럼 ‘비 내리는 파리’의 밤. 에펠탑 중간에 놓인 그랜드피아노, 그 옆에서 노래하던 수척해진 턱선과 하얀 드레스의 셀린 디옹. 근육이 굳는 희소병(SPC)과 싸우는 중인데도 ‘사랑의 찬가(L’hymne a l‘amour)’를 부르는 목소리는 전성기 못지않다. “푸른 하늘이 우리들 위로 무너진다 해도, 모든 대지가 허물어진다 해도, (…) 만약 당신이 원하신다면, 조국도 버리고 친구도 버리겠어요.” 노래 속 ‘당신’은 복싱선수 마르셀 세르당이다. 원곡 가수이자 가사를 쓴 에디트 피아프를 만나러 가다 비행기 사고로 죽은 남자. 노래 어디에서도 올림픽과 맞닿은 데를 찾을 수가 없는 데, 묘하게도 울림이 컸다.   당초 금메달 5개로 기대를 낮췄던 때문일까. 펜싱·사격·양궁에서 쏟아진 금메달과 그 덕분에 메달 집계표 위에 자리한 ‘대한민국’ 네 글자. 어깨가 슬며시 올라간다. 메달이 결정되던 순간과 그 주인공 얼굴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또 한 번 미소를 짓다가, 재차 ‘아차’ 싶어 얼마전 우리 곁을 떠난 남자를 떠올린다. 고 김민기. 그는 올 초 공개된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노래에 얽힌 사연을 소개했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송지나(드라마 ‘모래시계’ 작가)가 찾아와 입봉(메인PD나 작가로 데뷔하는 것) 프로그램으로 1984 LA올림픽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며 조언을 구해 ‘대부분 금메달을 다룰 테니 너는 떨어진 선수를 해보라’고 했다. 며칠 뒤 주제곡까지 해달래서 만든 곡이다.” LA 올림픽 폐막 2주 뒤인 1984년 8월 26일 방송된 다큐멘터리 ‘내일을 향해 달려라’에 이 노래 ‘봉우리’가 흘렀다.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올림픽과 얽힌 사연을 알고 들으니 이 시점에 울림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이 가사다.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땄든 못 땄든, 아니 올림픽에 나갔든 못 나갔든. 올림픽을 향해 뛰었던 모든 선수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장혜수 / 한국 콘텐트제작에디터카운터어택 파리올림픽 la올림픽 관련 대부분 금메달 당초 금메달

2024-08-11

[카운터어택] 경험하지 말고 증명하라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와 브렌트포드의 2023~2024시즌 1라운드 경기가 지난 13일 브렌트포드의 홈인 영국 런던 지테크 커뮤니티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이 경기는 손흥민의 토트넘 주장 데뷔전이었다. 토트넘 선수들은 경기 전 경기장 한쪽의 원정 응원석 앞으로 가 스크럼을 짜고 선전을 다짐했다. 그 전까지는 대개 센터서클 근처에서 했던 일이다. 원정 응원석의 토트넘 팬들은 바로 앞까지 찾아와준 선수들을 보며 크게 환호했다.   영국 ‘풋볼 런던’은 토트넘 부주장인 제임스 메디슨의 인터뷰 기사에서 스크럼 위치를 옮긴 사연을 공개했다. 메디슨은 “어제(12일) 쏘니(손흥민)가 아이디어가 있다며 메시지를 보냈다. 경기장 가운데 대신 관중석으로 가는 아이디어였다. 우리(선수들과 팬)가 모두 함께한다는 걸 보여줘 기뻐했다고 생각한다. 팬들은 우리 스크럼을 높게 평가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축구에서 주장의 역할과 그 중요성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막상 경기에서 보이는 주장의 일이라는 게 선공과 진영을 정하는 동전 던지기에 참여하거나 팀의 대표로서 주심에게 항의하고, 틈틈이 선수들을 독려하는 정도다. 손흥민은 주장에 선임된 직후 인터뷰에서 수차례 “온더피치, 오프더피치” 즉 “경기장 안에서, 경기장 밖에서”라고 말했다. 주장 역할은 어쩌면 오프더피치, 즉 눈에 띄지 않는 경기장 밖에서 더 중요하다 하겠다. 손흥민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주장은 선수들을 대표해 구단과 코칭스태프를 상대한다. 동료의 신뢰를 얻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다. 또 엔제 포스테코글루 토트넘 감독이 손흥민을 주장으로 지명하면서 말한 것처럼 “오랜 경험을 통해 성공으로 나아가는 방향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기에 그 경험을 후배들과 나누고 실행으로 옮기는 것도 주장 몫이다. 팬들에게 무엇을 주고 어떻게 함께할지를 고민하는 것도 주장의 숙제다. 그런 면에서 원정 응원석 앞으로 스크럼 위치를 옮긴 건 주장 손흥민의 첫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제 남은 건 손흥민이 늘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승점 3점을 얻는 일”, 즉 이기는 일이다. 브렌트포드와 2대2로 비긴 토트넘은 19일 홈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홍명보 당시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선수들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좋은 경험을 했다”고 말하자, 당시 방송사 해설위원이었던 이영표가 “월드컵은 경험하러 나오는 자리가 아니다. 실력을 증명하는 무대다”라고 지적했다. 주장도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실력을 증명하는 무대다. 장혜수 / 한국 콘텐트제작에디터카운터어택 경험 증명 토트넘 주장 토트넘 선수들 경기장 한쪽

2023-08-18

[카운터어택] 두 줄 부고의 행간

‘홍인자씨 별세, 김소영(전 서울시의원·전 체조 국가대표)씨 모친상=11일, 서울성모장례식장(...)’.   최근 신문에서 우연히 만난 부고 하나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딱 두 줄인데, 생각이 그 행간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전 체조 국가대표 김소영. 기자가 되기 훨씬 전부터 들어 알고는 있던 이름이다. 하지만 스포츠 기자, 더구나 체조 담당 기자를 할 때도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가 한때 ‘체조 요정’으로 불렸고,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됐고, 불굴의 의지로 새로운 길을 걸어갔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개막(9월 20일)이 한 달도 남지 않은 그해 8월 28일. 체조 국가대표이자 메달 유망주인 청주여고 1학년 김소영은 서울 올림픽공원 체육관에서 훈련 중이었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국제종합대회.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쏠린 기대는 무거운 압박감이었다. 김소영은 이단평행봉 훈련 도중 떨어져 목뼈를 심하게 다쳤다. 그렇게 수술대에 오른 김소영은 아시안게임이 아니라, 1988년 서울올림픽이 다 끝난 그해 12월 16일에야 재활치료를 마치고 퇴원했다. 그사이 전해진 소식은 대통령이, 총리가, 장관이 ‘격려금을 전달하고 위로했다’는 정도였다.   김소영에게 다시 세상 시선이 쏠린 건 그로부터 5년 뒤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가 비교적 이른 51세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딸의 사고로 인해 아버지는 크게 상심했다고 한다. 굳이 듣지 않아도 짐작할 만했다. 김소영의 새로운 꿈이 된 미국 유학을 위해 아버지가 노력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한 종교단체 후원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에서 유학한 그는 학위를 마치고 귀국했다. 이후 ‘인간 승리’의 상징으로 살았다. 그 ‘승리’ 뒤에는 아버지 별세 뒤로 지난한 세월을 보냈을 어머니가 있었을 거다. 이젠 중년인 딸을 두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김소영의 ‘승리’에는 대개 주변의 ‘선의’가 함께했다. 많은 운동선수가 ‘국가’의 부름을 받아 훈련장이나 경기장에서, ‘국가’의 이름을 걸고 뛰다가 부상하거나 심지어 생명을 잃는다. 전장·병영에서 또는 사건·사고 현장에서 부상하거나 생명을 잃는 군인·경찰 등과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얼마 전까지 선수와 그 가족은 국가의 ‘책임’ 대신 주변의 ‘선의’에 기대어 스스로 앞길을 헤쳐가야 했다.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으로 2015년부터 부상 또는 사망한 국가대표 체육유공자에 대한 보상이 이뤄진 건 다행이었다. 김소영의 경우 사고 29년 만의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장혜수 / 한국 콘텐트제작에디터카운터어택 부고 행간 체조 국가대표 국가대표 선수들 국가대표 체육유공자

2023-01-25

[카운터어택] ‘라스트 댄스’ 타령은 그만

2022 카타르월드컵 축구대회가 끝난 지 벌써 13일이 넘었다. 손에 땀을 쥐게 했던 승부차기에서 실축 선수가 누구였더라. 가물가물하다. 이렇게 장면들은 하나둘 잊힌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 것 같은 게 있다. ‘라스트 댄스’라는 용어다. 졸업무도회(프롬)도 아닌데, 어찌나 갖다 붙이던지.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폴란드), 루카 모드리치(크로아티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등 30대 중반 선수만 나오면 죄다 ‘라스트 댄스’다.   언제부터 ‘라스트 댄스’였나. 샤론 스톤 주연의 영화(1996년)나 귄터 그라스의 소설(2004년) 정도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피겨퀸’ 김연아가 은퇴 무대였던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 출전했을 당시 ‘라스트 댄스’ 사용이 늘었다. 그 후 한동안 잠잠하다가 2020년 넷플릭스가 방영한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다큐멘터리 제목으로 재등장하면서 다시 득세했다.     사실 조던보다 소속팀인 미국 프로농구(NBA) 시카고 불스와 필 잭슨 감독에게 더 잘 어울리는 용어였다. ‘시카고 왕조’의 몰락을 예감한 잭슨 감독이 1997~98시즌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나눠줬던 다이어리 제목이 ‘더 라스트 댄스’였다. 시카고의 두 차례 NBA 파이널 3연패 중 마지막이 된 그 시즌을 상징하는 최적의 용어였다.   ‘라스트 댄스’에 대한 전 세계 미디어의 집착은 카타르월드컵에서 자기모순까지 낳았다. 명색이 ‘라스트’ 댄스인데, ‘또 본다’ ‘이어진다’ ‘계속된다’라더니, 급기야 수식어로 ‘마지막’까지 등장했다. ‘마지막 라스트 댄스’라니. 선수 본인들도 ‘라스트 댄스’라고 생각했을까. 월드컵 우승 직후 메시의 한마디는 모두를 머쓱하게 했다. “축구와 내 일을 사랑한다. 챔피언으로서 몇 경기 더 국가대표팀에서 뛰고 싶다.” 아니 뭐야, 결승전이 메시의 ‘라스트 댄스’가 아니었잖아.   간혹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는 선수가 있다. 대개 “후배에게 기회를 열어주려고” 등의 이유를 댄다. 그러면서도 선수 생활은 이어간다. 메시도 2016년 코파아메리카 직후 국가대표 은퇴를 발표했다가 번복했다. 그런 선수를 볼 때마다 이동국을 생각하게 된다. 2018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그의 국가대표 발탁이 관심사였다. 당시 38살이었던 그에게 누군가는 “노욕”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선수 생활을 은퇴하기 전까지는 국가대표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실력이 안 되면 대표팀에 못 들어가는 게 당연한 거다. 굳이 은퇴한다고 해서 안 들어가는 건 조금 비겁한 변명이다.” 그렇지, ‘라스트 댄스’는 모름지기 예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야 더 멋지고 값진 거지. 장혜수 / 한국 콘텐트제작에디터카운터어택 라스트 댄스 라스트 댄스 마지막 라스트 국가대표 은퇴

2023-01-02

[카운터어택] 1승1무1패에 대한 고찰

2022 카타르월드컵에 출전했던 한국 축구대표팀이 지난 7일 금의환향했다. 8강전과 준결승전, 결승전이 아직 남았다. 하지만 한국이 대회를 마친 만큼 아드레날린을 뿜으며 경기를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목표였던 16강 진출을 축하한다. 혼신의 노력을 다한 한국 선수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자, 잔치가 끝났으니 차분하게 계산서를 한 번 뽑아보자.   현 월드컵처럼 조별리그 네 팀 중 상위 두 팀이 16강에 오르는 경우, 2무1패(승점 2점)여도 올라갈 수 있다. 한 팀이 3승을 거두고 나머지 세 팀이 서로 비길 때다. 3승 팀에 가장 적은 점수 차로 진 팀이 올라간다.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월드컵 실제 사례는 없다. 반대로 2승1패(승점 6점)도 떨어진다. 한 팀이 3패를 하고, 나머지 세 팀이 물고 물리는 경우다. 1982 스페인월드컵에서 알제리가 2승1패로 떨어졌다. 그렇다면 조별리그를 통과한 2무1패와 탈락한 2승1패 중 누가 더 잘한 걸까.   한국은 이번 조별리그에서 1승1무1패(승점 4점)였다. 1차전에서 우루과이와 0-0 무승부, 2차전에서 가나에 2-3 패배, 3차전에서 포르투갈에 2-1 승리를 기록했다. 한국은 2006 독일월드컵에서도,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도, 조별리그에서 1승1무1패였다. 2006년에는 울었고, 2010년과 이번에는 웃었다. 물론 숫자가 모든 걸 말하지는 못한다. 과거 월드컵에서 한국은 대개 상대에 밀리다가 한두 번 기회를 살려 이기거나 비겼다. 반면 이번에는 주도권을 잡고 경기를 풀어갔다. 분명히 후한 점수를 줄 부분이다.   월드컵 개막 전까지 파울루 벤투 감독은 꽤 비판을 받았다. 세계적 강팀을 상대로 그의 전술이 통할까 의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우루과이와 포르투갈에는 통했고, 16강전 상대인 브라질에는 통하지 않았다. 상상하기 싫지만, 만약 조별리그 3차전에서 0-2로 뒤지던 가나가 우루과이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했다면 한국의 16강은 꿈으로 끝났다.     30년도 더 지난 고교 시절 일이다. 하루는 사회 선생님이 교탁 바로 앞 친구 머리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만약에 말입니다. 이 학생이 훗날 대통령이 됐다고 칩시다. 누군가 제게 ‘대통령은 학생 시절 어떤 분이었나’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눈빛과 후광이 눈부셔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학생이 훗날 연쇄 살인마가 됐다고 칩시다. 같은 질문에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눈을 마주치기 싫었다. 눈빛에 어둠의 기운이 흘렀다.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했다’고 말입니다. 음하하.” 장혜수 / 한국 콘텐트제작에디터카운터어택 고찰 한국 축구대표팀 한국 선수들 조별리그 3차전

2022-12-11

[카운터어택] 월드컵에 나간다는 건

요즘 전 세계 최고 축구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킬리앙 음바페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를 생각할지도, 근래 축구 좀 안 봤다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리오넬 메시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이번(2022~2023) 시즌 축구 좀 봤다면 당연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시티의 엘링 홀란을 꼽을 거다. 현재(16일 기준) EPL 6경기에서 10골, 유럽 챔피언스리그 2경기에서 3골을 터뜨렸다. 1m94㎝ 큰 키와 순간 최고 초속 10.01m(100m를 9.99초에 뛰는 속도)의 스피드를 가진 그야말로 ‘득점 기계’다.   전 세계 축구 팬은 개막이 60여 일 앞으로 다가온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홀란을 볼 수 없다. 아마도 홀란은 카타르가 아닌 어딘가에서 TV로 월드컵을 지켜볼 거다. 월드컵 유럽예선에서 홀란의 노르웨이는 6개 팀이 겨룬 G조 3위에 그쳐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G조에서는 1위 네덜란드만 카타르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노르웨이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끝으로 24년째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고 선수가 월드컵 한 번 못 나가고 은퇴한 경우는 드물지 않다. 웨일스의 라이언 긱스와 라이베리아의 조지 웨아가 대표적이다. 우크라이나의 안드리 셰우첸코(셉첸코)도 번번이 월드컵 본선행에 실패하다가, 30세인 2006년 독일월드컵 때 비로소 본선 무대를 밟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1953년생 차범근도 유럽을 호령한 불세출의 골잡이였지만, 하마터면 월드컵 한 번 못 나가보고 은퇴할 뻔했다. 다행히 33세인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했다.     지난 13일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9월 국가대표 평가전에 나설 선수 26명 명단을 공개했다. 이들은 카타르 월드컵 전 마지막 평가전인 코스타리카전(23일)과 카메룬전(27일)에 출전한다. 부상 등 변수가 없는 한 마지막 평가전 멤버가 대개 월드컵 최종엔트리(26명)로 이어진다. 마지막 시험대에 오를 선수들이 곰곰이 생각했으면 한다. 월드컵에 나간다는 것의 의미를, 곧 밟게 될 그 무대가 어떤 곳인지 말이다.   참, 대한축구협회가 정한 한국 축구대표팀의 이번 월드컵 목표가 16강 진출이라고 한다. 물론 과거 1승이 목표였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4강)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16강) 등 두 차례나 16강에 올랐는데, 고장난 전축처럼 월드컵 하면 만날 16강 타령이다. 본선 같은 조에 속한 팀들 전력을 객관적으로 따져 정한 거라 할지 모르겠다. 조 편성 전에도 16강이었다. 협회도, 벤투 감독도 타성에서 벗어나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바란다. 월드컵에 나간다는 것의 의미를 말이다. 장혜수 / 한국 콘텐트제작에디터카운터어택 월드컵 월드컵 본선행 월드컵 유럽예선 카타르 월드컵

2022-09-18

[카운터어택] 우생순·오잘공은 그만

나이 마흔을 넘겨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10여년 전 해외연수 때다. 당시 살던 동네에 시립골프장이 두 곳 있었다. 이곳을 이용할 수 있는 연간회원권이 950달러였다. 예약 없이 언제든 칠 수 있고, 추가 비용도 없었다. 열에 아홉 번은 혼자 쳤다. 티샷도, 퍼트도, 마음에 들 때까지 반복했다. 혼자인데 뭐. 나 홀로 골프에는 맹점이 있었다. 어울려 쳐야 배울 수 있는 걸 배우지 못한다.   귀국 뒤 처음 국내 골프장에 갔을 때다. 티샷 순서를 정하려고 쇠젓가락을 뽑는 것부터 신기했다. 가장 신기한 건 골프장 은어였다. “첫 홀은 일파만파지.” 이건 무슨 뜻일까. 일행 중 한 사람에게 물었다. “첫 홀은 그냥 다 파(par)로 적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몇 홀 지나 모처럼 티샷이 똑바로 뻗어 나갔다. 일행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오잘공.” 이건 또 뭘까. 또 물었다. “오늘 제일 잘 친 공”이라고 했다.   일행 중 다른 한 사람이 정색했다. “오잘공이라니, 이런 실례가 어딨어. 다음에 더 잘 치면 어쩌려고. 그냥 지잘공이지.” 이건 또 뭐야.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넘겨짚었다. 지랄 맞게 잘 친 공쯤 아닐까. 검색하니 ‘O잘공’ 시리즈가 있었다. 지잘공(지금까지), 해잘공(해방이래), 단잘공(단군 이래) 등등.   원래 골프장이란 데가 입에 발린 칭찬이 난무하는 곳 아닌가. 오잘공이든, 지잘공이든, 다 거기서 거기인 칭찬인 듯싶다. 문득 궁금해졌다. 오잘공이란 말이 있는데, 큰 차이 없어 보이는 지잘공이란 말은 왜 굳이 만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니 두 말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지잘공과 달리 오잘공은 행위자의 한계를 규정하는 동시에 행위자를 낮춰보는 뉘앙스다. 그 후로 골프장에 가면 “오잘공”은 삼가고, “지잘공”을 외쳤다.   같은 맥락에서 개인적으로 피하는 스포츠 쪽 관용 표현이 있다. 한국이 지난 11일 막을 내린 세계여자청소년핸드볼선수권대회(18세 이하)에서 우승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제히 이번 우승을 ‘리틀 우생순’으로 불렀다. 우생순은 한국 여자핸드볼의 감격스러운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은메달 획득을 모티브로 만든 임순례 감독의 영화 제목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줄인 말이다.   이 영화 이후로 여자핸드볼이 조금만 좋은 성적을 내면 무조건 우생순이다. ‘생애’의 사전적 의미는 ‘살아 있는 한평생의 기간’이다. 결국 우생순은 오잘공이다. 은퇴를 앞둔 선수라면 우생순이라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앞날이 창창한 18세 선수들에게 이번 우승이 우생순이면 안 된다. 그들의 우생순은 아직 오직 않았다. 우생순을 향해 가는 동안 수많은 ‘우지순’(우리 지금까지 최고의순간)을 경험하길 바란다. 장혜수 / 한국 콘텐트제작에디터카운터어택 우생순 우생순은 한국 리틀 우생순 티샷 순서

2022-08-28

[카운터어택] 스포츠 스타와 패밀리 비즈니스

오래전 일이다. 2004 아테네 여름 올림픽이 끝나고 몇 달이 지난 뒤였다. 올림픽에 출전했던 A선수 아버지(B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올림픽 전 A선수 인터뷰 때 현장에 나타난 B씨에게 명함을 건넨게 떠올랐다. 잠깐 안부를 묻더니 곧바로 B씨는 화를 냈다.   “기자님, 다름이 아니라 우리 아이(A선수)가 올림픽 끝나고 국민적으로 인기가 많았잖아요. 우리 아이 덕분에 OO시(당시 A선수는 지방자치단체팀 소속이었다)도 관심을 많이 받았어요. 시장이 뉴스에 몇 번을 나왔는데. 며칠 전 연락이 왔어요. 우리 아이 이름을 딴 체육관을 짓고 싶다고. 그런데 체육관에 달랑 우리 아이 이름 붙여주는 게 전부라네요. 그게 우리한테 무슨 도움이 됩니까. 이름으로 퉁치는 거지. 그래서 내가 말했어요. 체육관에 우리 아이 이름을 붙이려면 나나 아이 이름으로 소유권 등기를 해달라고.”   B씨는 “시에서 그렇게는 못 한다고 한다. 이렇게 ‘날로 먹으려는’ 시장은 지탄받아야 한다”며 고발기사를 써달라는 거였다. 황당한 요구에 어안이 벙벙했다. A선수를 생각해 B씨를 잘 달래 전화를 끊었다. 기사가 나오지 않자 B씨는 두 번 다시 연락해오지 않았다. 얼마 후 A선수는 다른 지자체 팀으로 이적했다. A선수가 뜨면서 B씨에게 새 직업이 생겼다. 바로 ‘A선수 아빠’라는 직업이다. 사실상 선수의 매니저다.   스포츠 스타 가족 중 직업이 ‘누구 아빠(엄마)’ 또는 ‘누구 형(누나)’인 경우가 적지 않다. 골프계에 많았던 골프 대디가 대표적이다. 축구와 야구에도 꽤 있다. 해외 진출 선수의 경우 국내 대리인을 아버지 등 가족이 맡곤 한다. 스포츠 스타의 패밀리 비즈니스다.   성공 사례도 있다. 피겨 김연아다. 그의 매니지먼트사는 어머니가 대표인 패밀리 비즈니스로 출발했다. 김연아를 통해 아마추어 개인종목 선수 육성 노하우가 쌓였다. 그 노하우 덕분에 체조 여서정, 탁구 신유빈, 수영 황선우 등이 세계적 선수로 성장하고 있다. 김연아 매니지먼트의 시행착오가 후배들 성장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최근 새로운 형태의 패밀리 비즈니스가 등장했다. 손흥민의 한 친척이 대표인 패션 브랜드가 론칭했다. 손흥민이 지난달 24일 영국에서 입국할 때 입어 화제가 됐다. 지난 17일 팝업스토어 개장 때는 오픈런까지 벌어졌다. 제품 후기를 보니 대개 긍정적이지만 간간이 부정적인 것도 보인다. 과거 스포츠 스타의 패밀리 비즈니스 고객은 선수 당사자 또는 다른 선수 정도였다. 손흥민의 경우 고객은 불특정 다수의 팬이다. 파급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 부디 잘 되기를 바란다. ‘월드 클래스’ 손흥민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게. 장혜수 / 한국 콘텐트제작에디터카운터어택 비즈니스 스포츠 패밀리 비즈니스 스포츠 스타 a선수 아버지

2022-06-24

[카운터어택] 병역법, 이번엔 꼭 고치자

지금은 ‘병역법’에 통폐합된 ‘병역의무특례규제에 관한 법’, 일명 ‘병특법’이 처음 제정된 건 1973년이다. 법 1조에 나오듯 ‘군 소요 인원의 충원에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국가 발전에 필요한 인력을 지원하기 위하여’ 만든 법이다. 국가 발전에 필요한 인력을 ▶한국과학원(현 카이스트) 학생 ▶군수산업 종사자 ▶기간산업체 종사자, 그리고 학술·예술·체능의 특기를 가진 자로 정했다. 기술·재능을 가진 젊은이를 해당 분야에서 활용하려고 ‘군대를 빼주는’ 법이다.  제정 당시 군복무 기간은 33개월(육군). 정말 ‘군대 3년’이던 시절이다. 국가 발전이라는 ‘목적’을 위해 병역특례라는 ‘수단’을 쓴 거다.   중국 내 코로나19 확산으로 9월 개막 예정이던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연기됐다. 뒤따라 나오는 관심사는 온통 선수, 특히 축구·야구선수 병역 면제 차질 얘기다. 두 종목이 특히 주목받는 건 연령 제한 때문이다. 아시안게임의 경우 축구는 올림픽처럼 23세 이하, 야구는 24세 또는 프로 3년 차 이하 선수만 출전한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올해 열렸다면 출전했을 일부 선수가 내년에는 출전할 수 없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도 관심은 온통 손흥민의 금메달 획득 여부에만 쏠렸다. 1992년생 손흥민이 더는 입대를 미룰 수 없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방탄소년단(BTS) 뉴스는 온통 군대 얘기뿐이다. 문화체육관광부까지 발 벗고 나서 “(BTS가) 병역 의무 이행으로 인해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이는 분명한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총대를 멨다. BTS 소속사 하이브 역시 대놓고는 아니지만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분위기다. 병역 문제에서 대중예술이 순수예술(클래식·발레·무용·국악 등)에 비해 차별받는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멤버 맏형인 1992년생 진(김석진)이 더는 병역을 미룰 수 없게 된 게 논의를 촉발했다.   현재 병역법 2조 10의 3항은 ‘예술·체육요원이란 예술·체육 분야의 특기를 가진 사람으로서 문화창달과 국위선양을 위한 예술·체육 분야의 업무에 복무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자격 기준과 복무 형식은 시행령과 규칙으로 정하는데, 어디에서도 법의 ‘목적’은 찾을 수 없다. 사실상 이들에게 병역 면제 혜택을 주는 ‘수단’으로 전락한 형국이다. 요즘 군복무 기간은 18개월(육군 기준). 군 복무로 인한 경력 단절을 말하기에 긴 시간도 아니다. ‘병특법’이 처음 생긴 50년 전과 비교해 모든 게 변했다. 더는 예술·체육요원의 군 복무가 그들의 업적보다 더 큰 관심사여선 안 된다. 병역법, 이번에는 꼭 고치자. 장혜수 / 한국 콘텐트제작에디터카운터어택 병역법 현재 병역법 야구선수 병역 항저우 아시안게임

2022-05-22

[카운터어택] 더 퀸 오브 바스켓볼

 루시아 해리스. 영화 팬에겐 낯선 이름 하나가 지난달 27일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등장했다. 낯설 수밖에 없는 게, 그는 1970년대 활약했던 미국 농구선수, 그것도 흑인 여자 선수다.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 ‘더 퀸 오브 바스켓볼(The Queen of Basketball)’이 아카데미 단편 다큐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인터뷰 형식인 다큐는 해리스가 대학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소속팀인 미시시피주 델타주립대는 여자 대학농구팀인데도 전국적 인기와 관심의 주인공이 된다. 지역 리그에서도 보잘것없던 팀이었는데, 그가 2학년이던 1975년 전국대회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은 여자 대학농구 최초로 메이저 방송사가 미국 전역에 중계했다. 델타주립대는 우승했고, 그는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3학년인 1976년에도, 4학년인 1977년에도 팀은 우승했고, 그는 MVP가 됐다. 특히 1977년 결승전은 여자 농구경기로는 처음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렸다. 당연히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여자농구가 처음 정식종목이 된 대회다. 해리스가 활약한 미국은 은메달을 차지했다.   해리스 농구 인생 하이라이트는 1977년 미국 프로농구(NBA) 신인 드래프트다. 뉴올리언스 재즈(현 유타)가 7라운드(전체 137순위)에서 그를 뽑았다. 해리스는 NBA 구단이 뽑고 사무국이 승인한 최초이자 유일한 여자 선수로 역사에 남았다. 하지만 해리스는 NBA 코트를 밟지는 못했다. 여자 선수는 대학 졸업 후 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는 결혼을 선택했고 임신 중이었다. 그는 모교 농구팀 코치를 거쳐 고교 체육교사로 평생 살았다. 다큐에서 그는 이 모든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냈다.   수많은 여자 스포츠 선수들이 빼어난 실력에도 더는 뛸 곳이 없어 운동을 그만두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물론 최근에는 올림픽이 혼성 종목을 늘리고 각종 대회가 남녀 상금 차를 없애는 등 성차별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아카데미가 이 다큐에 상을 준 이유 중 하나도 그런 노력에 대한 평가일 거라 생각한다. 뒷얘기가 좀 있다. 이 다큐는 뉴욕타임스(NYT) 오피니언 섹션(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됐다. NYT는 자신들의 첫 아카데미상이라고 환호했다. 신문사도 아카데미상을 받는 시대다. 또 NBA 전·현직 스타인 샤킬 오닐과 스태픈 커리가 제작자로 참여했다. 두 사람에게도 첫 아카데미상이다. 해리스는 아카데미 시상식 두 달 전인 올해 1월 6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장혜수 / 한국 콘텐트제작에디터카운터어택 바스켓볼 여자 대학농구 오브 바스켓볼 여자 선수

2022-04-06

[카운터어택] 그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올림픽은 한때 아마추어의 잔치였다. 대부분의 종목이 프로선수 출전을 금지했다. 올림픽 상업화의 효시인 1984년 LA올림픽부터 프로선수 출전 제한이 완화됐다. 그런가 하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부터는 남자축구에 출전 선수 나이 제한(23세 이하)이 생겼다. 이런 이유로 1988년 서울올림픽은 남자축구에서 나이 및 프로선수 출전 제한이 없었던 유일한 대회다. 그렇기에 대회 출전국과 선수의 면면이 월드컵과 맞먹을 정도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축구에는 16개국이 출전했다. 조별 리그에서 한국은 미국·소련·아르헨티나와 함께 C조에 속했다. 한국은 2무 1패, 조 3위로 탈락했다. 금메달은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2-1로 꺾은 소련이 차지했다. 당시 소련팀을 이끈 지도자가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이다. 외국인 최초로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올라 한국이 세계 축구에 눈뜨게 한 그 감독이다. 그는 1943년 키이우에서 태어난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선수 시절에도 우크라이나 명문클럽 FC 디나모 키이우에서 활약했다.   소련 축구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올레흐 블로힌과 이호르 벨라노우(러시아 발음 이고리 벨라노프)다. 두 선수도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블로힌은 1952년 키이우, 벨라노우는 1960년 오데사에서 각각 태어났다. 둘 다 선수 시절 디나모 키이우에서 활약했다. 이들은 2000년대 초반 ‘득점 기계’로 불린 안드리 셰우첸코와 함께 ‘발롱도르’를 수상한 세 명의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이들 외에 발롱도르를 받은 소련(러시아 포함) 선수는 ‘거미손’ 레프 야신뿐이다.   여자체조의 전설 라리사 라티니나는 1956년 멜버른, 60년 로마, 64년 도쿄올림픽에 걸쳐 금 9개, 은 5개, 동 4개 등 모두 18개의 메달을 따냈다. 그는 1934년 헤르손에서 태어났고 키이우에서 자란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세르히(러시아 발음 세르게이) 붑카는 장대높이뛰기에서 인간 최초로 6m를 넘었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소련에 금메달을 안겼다. 붑카는 1963년 루한시크에서 태어난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현재 이들 중 일부는 우크라이나인으로, 일부는 러시아인으로 살고 있다. 한때 이들은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출신 동료와 한 팀을 이뤄 호흡을 맞췄다.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지난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이들의 후예인 수많은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자신들이 뛰던 경기장을 떠나 총을 들고 전선으로 향했다. 그중 일부는 안타까운 전사 소식까지 전해졌다. 하루빨리 이 미친 전쟁을 끝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보내야 한다. 그곳이 바로 그들 자리다. 장혜수 / 한국 콘텐트제작에디터카운터어택 경기장 우크라이나 선수들 우크라이나 출신 서울올림픽 남자축구

2022-03-13

[카운터어택] 발부터 떼고 뛰어보자

 길거리농구 코트에 공 하나가 굴러간다. 한 남자가 발로 공을 튕겨 잡더니 드리블한다. 공중에 솟구쳐 공을 림에 꽂는다. 그리고는 한마디 외친다.   “인간이 날 수 없다고 한 게 누구야(Who said man was not meant to fly).”   1985년 나온 나이키의 ‘에어 조던 1’ 농구화 광고다. 광고 속 남자는 물론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다. 스포츠 선수 중 맨몸으로 가장 오래 날았던(부양했던) 게 아마 그일 거다. 어떤 이는 점프 동영상을 분석해 3초 가까이 공중에 떠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역학 법칙을 적용해 계산하면 1초에도 못 미친다.   조던이 날았는지에 왜 집착할까. 중력을 거스르는 건 스포츠의 본질 중 하나인 ‘한계 넘어서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Citius, Altius, Fortius(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 바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모토에 ‘더 높이’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또 한 번 ‘더 높이’ 오르려는 경쟁이 시작된다. 프리스타일 스키나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스키점프 등이 공중에 솟구쳐 기량을 겨루는 겨울올림픽 종목이다. 그래도 인간의 두 다리로만 뛰어오르는 종목이라면 역시 피겨스케이팅이다.   오늘날 피겨는 ‘더 높이 더 오래’ 뛰려는 선수들의 점프 경연장이다. 베이징올림픽에서 두 선수를 주목한다.   우선 여자 싱글의 카밀라 발리에바(러시아). 그는 남자도 어려워하는 쿼드러플(4회전) 점프를 밥 먹듯 뛴다. 그리고 남자 싱글의 하뉴 유즈루(일본). 그는 쿼드러플 악셀 점프에 도전한다. 악셀은 뒤를 향해 뛰고 반 바퀴 더 돌아 앞을 보며 착지한다. 쿼드러플이라지만 사실 4.5회전 점프다. 아직 실전에서 성공한 선수가 없다.   참고로 피겨에는 6가지 점프가 있다. 그중 살코·러츠·악셀은 그 점프를 맨 처음 성공한 사람 이름을 땄다. 악셀 폴센(노르웨이)이 악셀 점프를 처음 성공한 게 가장 이른 1882년이다. 당시는 싱글(1회전) 점프였다. 이후 더블(2회전), 트리플을 거쳐, 이젠 악셀을 뺀 모든 점프가 쿼드러플이다.   퀸튜플(5회전) 점프 시대도 올까. 한 외국 연구에 따르면 5회전에 필요한 시간(0.72초 이상)이 선수의 체공시간(0.6~0.7초)보다 길어 불가능하다고 한다.     스포츠에서 우리는 넘을 수 없을 거라며 선을 그은 뒤에 그걸 ‘마(魔)의 벽’이라고 부르곤 한다. 하지만 결국은 그 벽을 허물었고 넘어섰다. 우리의 삶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벽을 허물고 넘어서려면. 우선 발부터 떼자. 그리고 뛰어보자, 힘껏. 장혜수 / 한국 콘텐트제작에디터카운터어택 악셀 점프 쿼드러플 악셀 점프 동영상

202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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