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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어택] 우생순·오잘공은 그만

나이 마흔을 넘겨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10여년 전 해외연수 때다. 당시 살던 동네에 시립골프장이 두 곳 있었다. 이곳을 이용할 수 있는 연간회원권이 950달러였다. 예약 없이 언제든 칠 수 있고, 추가 비용도 없었다. 열에 아홉 번은 혼자 쳤다. 티샷도, 퍼트도, 마음에 들 때까지 반복했다. 혼자인데 뭐. 나 홀로 골프에는 맹점이 있었다. 어울려 쳐야 배울 수 있는 걸 배우지 못한다.
 
귀국 뒤 처음 국내 골프장에 갔을 때다. 티샷 순서를 정하려고 쇠젓가락을 뽑는 것부터 신기했다. 가장 신기한 건 골프장 은어였다. “첫 홀은 일파만파지.” 이건 무슨 뜻일까. 일행 중 한 사람에게 물었다. “첫 홀은 그냥 다 파(par)로 적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몇 홀 지나 모처럼 티샷이 똑바로 뻗어 나갔다. 일행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오잘공.” 이건 또 뭘까. 또 물었다. “오늘 제일 잘 친 공”이라고 했다.
 
일행 중 다른 한 사람이 정색했다. “오잘공이라니, 이런 실례가 어딨어. 다음에 더 잘 치면 어쩌려고. 그냥 지잘공이지.” 이건 또 뭐야.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넘겨짚었다. 지랄 맞게 잘 친 공쯤 아닐까. 검색하니 ‘O잘공’ 시리즈가 있었다. 지잘공(지금까지), 해잘공(해방이래), 단잘공(단군 이래) 등등.
 
원래 골프장이란 데가 입에 발린 칭찬이 난무하는 곳 아닌가. 오잘공이든, 지잘공이든, 다 거기서 거기인 칭찬인 듯싶다. 문득 궁금해졌다. 오잘공이란 말이 있는데, 큰 차이 없어 보이는 지잘공이란 말은 왜 굳이 만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니 두 말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지잘공과 달리 오잘공은 행위자의 한계를 규정하는 동시에 행위자를 낮춰보는 뉘앙스다. 그 후로 골프장에 가면 “오잘공”은 삼가고, “지잘공”을 외쳤다.
 
같은 맥락에서 개인적으로 피하는 스포츠 쪽 관용 표현이 있다. 한국이 지난 11일 막을 내린 세계여자청소년핸드볼선수권대회(18세 이하)에서 우승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제히 이번 우승을 ‘리틀 우생순’으로 불렀다. 우생순은 한국 여자핸드볼의 감격스러운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은메달 획득을 모티브로 만든 임순례 감독의 영화 제목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줄인 말이다.
 
이 영화 이후로 여자핸드볼이 조금만 좋은 성적을 내면 무조건 우생순이다. ‘생애’의 사전적 의미는 ‘살아 있는 한평생의 기간’이다. 결국 우생순은 오잘공이다. 은퇴를 앞둔 선수라면 우생순이라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앞날이 창창한 18세 선수들에게 이번 우승이 우생순이면 안 된다. 그들의 우생순은 아직 오직 않았다. 우생순을 향해 가는 동안 수많은 ‘우지순’(우리 지금까지 최고의순간)을 경험하길 바란다.

장혜수 / 한국 콘텐트제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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