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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포커스] 손편지에 담긴 사연

오피니언 면 제작 담당자로 자리를 옮긴 후 기다리는 것이 한 가지 생겼다. 매주 한두 번 ‘오피니언면 담당자 앞’으로 배달되는 손편지다. 처음에는 좀 놀라기도 했다. 지금 시대에 손편지라니.... 이메일이 일상화된 후 손편지는 기억 저편의 유물이 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손편지를 주고받았던 게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까마득하다. 요즘 우편함은 각종 공과금 고지서와 광고 메일로 채워질 뿐 손편지는 보기 어렵다. 편리함에 밀려 아날로그 방식의 정겨운 소통 수단 한 가지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손편지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발신자는 주로 오피니언 면에 게재되는 ‘독자마당’의 기고자들이다. 처음에는 타이핑을 다시 해야 하는 번거로움 탓에 넌지시 이메일을 권했다. 그랬더니 이메일 사용이 익숙지 않다며 양해를 구했다. 대부분 연령대가 높은 분들이라 이해도 됐다. 분량 또한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어서 그 정도 수고는 감내키로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잘한 생각이었다. 손편지를 받았을 때의 느낌은 컴퓨터에서 이메일을 열어 볼 때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백지에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사연은 다양하다. 자녀와 배우자 등 가족에 관한 이야기, 한국 여행을 다녀온 소감, 인생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 때로는 잘못된 사회현상에 대한 지적, 정치인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꾹꾹 눌러쓴 손글씨를 보면 어렴풋이 모습이 그려지는 분도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생각을 정리해야 하고,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정 과정도 있었을 법한데 필자가 받아보는 편지들은 깔끔하다. 이들의 수고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편지봉투에 주소를 쓰고,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어야 비로소 기고가 마무리된다. 여간 정성이 아닌 셈이다.     이런 수고를 마다치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본인의 생각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하고 싶은 얘기, 전하고 싶은 사연을 마음속에만 담아 둘 수 없어서다. 아마도 기고하는 분들에게는 ‘독자마당’이 또 하나의 소통 창구가 되어주고 있는 듯하다.     비록 군데군데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틀리고 표현이나 문장이 어색한 곳도 있지만 이들의 글에서는 진심이 느껴진다.  그리고 세상살이의 연륜과 진한 사람 냄새도 배어 있다. 서운함을 토로하면서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비판을 하다가도 “오죽하면 그랬겠어”하는 식으로 마무리가 되기도 한다. 이들이 보내주는 손편지는 잊고 있었던 추억 한 가지는 물론 사람의 따스함도 소환해 주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편지가 뜸해지면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건강은 괜찮은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타이핑 무료 봉사는 얼마든지 할 테니 앞으로도 왕성한 기고 활동이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피니언 면은 신문이라는 매체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물론 검증 과정은 거치지만 각계의 다양한 주장과 의견이 제기되는 공론의 장 역할을 한다. 본지의 오피니언 지면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독자마당’의 기고자들뿐만 아니라 변호사,교수,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 수필가·시인 등 문인, 그리고 전직 공무원, 전직 교사, 사회단체 관계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정기 기고자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의 치열한 고민과 수고가 있었기에 지면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었다. 다만 어렵게 보내준 내용 모두를 지면에 소개하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란다. 지나치게 개인적인 내용이라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고 판단되거나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 특정인이나 단체를 이유 없이 비방하는 글, 또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는 내용 등은 활자화되지 못했다.     올 한 해 오피니언 면을 빛내주신 기고자들의 수고에 감사를 드린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손편지 사연 오피니언면 담당자 오피니언 지면 이메일 사용

2022-12-22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꽃잎은 네 장. 노랗고 가느다란 수술, 암술에 작은 벌들이 바쁘게 날개를 움직인다. 활짝 피면 엄지 마디보다 조금 크게 핀다. 높이는 15인치 안팎으로 함께 기대어 피면 노란 벨벳을 깔아 놓은 듯 화려하다. 새끼 손가락만큼의 잎사귀 뒷면은 작은 솜털 같은 돌기가 있고 줄기에는 눈에 보일만큼 하얀 솜털이 무성하다. 꽃 대궁에는 다섯, 여섯의 꽃봉오리가 맺히는데 색갈이 붉어 혹 빨간 꽃봉오리가 올라오려나 의심이 들 정도이다. 한달 남짓 피었다가 저버리는 짧은 기간이 아쉽기는 하지만 황금빛이 도는 노란색이 가히 환상적이다. 한낮엔 태양빛 같이 강렬하고 한밤은 달빛처럼 그윽하다. 해가 지면 꽃잎이 오무라지고 햇볕이 나면 다시 활짝 피어난다. 왜 해맞이꽃이라 안하고 달맞이꽃이라 명했을까?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사람들처럼 밤하늘 달을 향해 꽃잎을 접어서일까?   지인의 집에서 한 부삽 분양 받아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심었는데 해가 지날수록 잘 자라주어 이젠 뒤란의 구석구석 노란 자태를 뽐내고 있다. 달을 맞이하는 꽃, 달맞이꽃. 달빛을 받아 진한 황금 노랑으로 꽃피게 해달라고 밤하늘 달을 향해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꽃. 그 기도가 효험이 되어 새날이 밝으면 밤새 오무렸던 꽃잎을 활짝 펴 다시 새날을 맞으며 환하게 얼굴을 드는 꽃. 꽃말 그대로 그리움의 한 밤을 달빛 아래 머물다 행복해지고 잠든 뒤란에 고요하게 내리는 달빛을 머금고 더 밝게 주위를 비추어 주는 꽃. 짧게 허락된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짧은 그 시간동안 밝고 빛나는 꽃을 피우고 또 피우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    목적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시위를 떠난 화살은 빠르게 날아가는데 순간순간 그 시간을 얼마나 내 삶에 적용했던가? 계절이 지나가듯, 밤이 오고 아침이 오듯, 직선적이고 객관적인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을 자신의 삶으로 경험하고 채워나가는 주관적인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을 기도에 담아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꽃. 우린 달맞이꽃처럼 살았던가? 누구도 흐르는 시간을 되돌리거나 붙잡아둘 수는 없다. 다만 강물처럼 흐르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나만의 시간으로 삶에 꽃을 피우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새날은 우리에게 날마다 다가오고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우리의 몫이다.   올해 네 분의 지인들에게 달맞이 꽃을 분양했다. 몇 주가 지났는데 벌써 꽃이 피었다고 사진을 보내오셨다. 심지 않으면 꽃은 피지 않는다. 꽃은 피었다 시들지만 죽은 것은 아니다. 강렬한 태양빛과 깊은 달빛에 숙성해 가는 중이다. (시인, 화가)     달맞이꽃     이른 봄 피어나던 꽃들이 다 시들고 / 활짝 핀 이 꽃도 시들어 가겠지 / 노란 꽃잎이 말리고 더 이상 펼쳐지지 않는 날이 오겠지 / 눈물처럼 뚝 떨어져 버리고 말겠지 / 이내 마르고 부서져 흩어져 버리겠지 / 발 길 끊어진 그곳엔 바람 불고 고요할거야 // 썩어진다는 것과 숙성해진다는 것의 차이/ 꽃잎 떨어진 자리마다 다시 잉태된다는 / 썩지 않고 발효되고 있다는 반가운 바람의 소식 / 수 백 수 천의 꿈이 까맣게 익어가는 중 이라는// 부패는 썩는 것이고 발효는 익는 것 / 발효의 과정으로 나도 익어가는 중 / 구름을 담고, 바람을 숨쉬며 / 시가 영글어가는 시간 / 창틀에 앉은 바람도 쉬어가는 시간 / 강렬한 태양빛, 그리운 달빛을 담아 노랗게 익어가는 시간 / 기도하는 달맞이꽃의 시간 / 그윽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달의 시간 / 땅도 하늘도 달맞이꽃도 쪼그려 앉은 나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달구어지고 / 사람이 가는 길 알 수 없지만 / 노오란 달맞이꽃의 기도 하늘에 닿았다 / 우리 모두는 익어가는 중이다 / 노랗게 여물어가는 중이다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시간 카이로스 지면 꽃잎 달빛 아래

2022-06-21

[전익환 골프 교실] <435> 셋업 유지ㆍ경사각 따라 스윙

경사진 라이에 있는 볼을 칠 경우 즉 볼 보다 낮은 위치에서 샷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바로 셋업이다.   이때 볼은 경사진 방향 그대로 휘어서 굴러간다는 점을 기억하면 유용한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내리막 라이면 볼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어 굴러갈 것이다.   볼보다 낮은 위치에서 샷을 하면 보통 평평하게 스윙하는 바람에 청크샷을 하기가 쉽다. 우선 명심할 점은 클럽을 평소보다 길게 잡으라는 것이다.     볼이 높이 있을수록 그립은 짧게 클럽은 길게 잡아 거리의 손실을 보충해야 한다. 아울러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휘어지는 점을 감안하여 오른쪽을 향해 샷을 해야한다. 볼이 정확히 맞도록 샷이 끝날 때까지 머리 높이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 볼보다 높은 위치에서 샷 할 때는 자세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볼을 제대로 맞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샷을 하든 샷 하는 동안 셋업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볼보다 높은 위치에서 샷하면 오른손잡이의 경우 볼은 보통 오른쪽으로 휘어지므로 왼쪽을 겨냥하여 샷을 해야한다. 경사가 높을수록 더  왼쪽을 향해 볼을 쳐야한다.   스탠스는 넓게 서서 볼의 높이에도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고 샷 하는 동안 자세유지에도 도움이 되도록 한다. 스윙시 자세를 최대한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하며 머리 높이 또한 계속 아래쪽으로 유지한다.     스윙시 볼 바로 앞에 디봇을 만들겠다고 생각하면서 스윙하면 편리하다. 이렇게 하면 머리도 계속 아래쪽을 향할 것이며 목표지점까지 파워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다.   한편 오르막 라이는 볼을 띄우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평평하지 않는 모든 라이 중에서 샷 하기 가장 쉽다.     내리치는 스윙으로 볼을 때리는 개념을 이해하지못하는 골퍼는 약간 오르막 라이에서 샷 연습을 해야한다. 어드레스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점은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과 스윙의 가장 낮은 지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몸의 중심은 최대한 볼의 위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하며, 어드레스 자세에서는 어깨의 각도가 지면의 경사와 같아야한다. 또한, 그립을 짧게 잡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가장 고려해야 할 점은 지면의 경사각을 따라 스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르막 라이가 클럽의 로프트를 높여서 높이 뜨고 비거리가 짧아진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한다.   반면 내리막 라이는 오르막 라이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하다. 클럽의 로프트가 작아지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오르막 라이의 샷과 정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어드레스 자세에서는 어깨가 경사각과 같아야한다.     내리막 라이샷의 열쇠는 최대한 지면의 경사각을 따라 스윙하는 것이다. 안 그러면 볼이 얇게 맞기 십상이다. 내리막 라이에서는 클럽의 로프트가 낮아져서 탄도가 낮아진다는 것도 계산해야 한다.   PGA Professional·샌드캐년CC 디렉터     (818)731-2378  전익환 골프 교실 경사각 셋업 스윙시 자세 오르막 라이 최대한 지면

2022-06-16

[열린 광장] 백조의 노래

그리스 신화에 ‘백조의 노래(Swan Song)’라는 것이 있다. 죽기 전이나 혹은 은퇴 전의 마지막 제스처 또는 공연을 일컫는 은유적 표현이다. 백조는 평소에 노래를 모르고 지내다가 죽음에 직면하여 아름다운(또는 슬픈) 노래로 스스로의 장송곡을 장식한다는 내용이다.     기원전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신화의 줄거리는 서양의 여러 문예작품에 소재로 쓰이면서 면면히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은 ‘죽어가는 백조(The Dying Swan)’라는 시에서, 백조의 마지막 노래를 실감 있게 묘사한다. 이 시는 많은 영감을 남기며 후에 발레로도 공연됐다 한다. 필자는 언젠가 그의 시를 읽은 적은 있으나, 발레 공연은 유감스럽게도 접할 기회가 없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백조와 거위’ 이야기이다. 어떤 부자가 백조와 거위를 사왔다. 거위는 식용으로 쓰고 백조는 노래를 듣기 위해서였다. 하루는 거위를 잡아 요리를 하기 위해서 뒤뜰에 나갔다가 실수로 그만 백조를 잡았다. 목숨을 잃게 된 백조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자 주인이 백조를 풀어주어 목숨을 건지게 됐다.   죽기 직전에 노래를 부른다는 백조의 이야기는 서양의 문학작품이나 음악을 통해 많이 인용돼 왔다. ‘백조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슬픔에 잠긴 노래를 부른다고 소크라테스가 말했다.’(플라톤) ‘백조는 자기의 죽음을 아름다운 노래로 마무리 한다.’(레오나르도 다빈치) ‘그가 선택을 하는 동안 음악을 틀어라. 만약 그가 지면 백조와 같은 마지막을 장식하도록 하라.’(셰익스피어 작품 ‘베니스의 상인’의 재판장)   슈베르트의 작품 중 ‘백조의 노래’는 그가 명명한 것이 아니고 출판인이 그의 생전 작품들을 모아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백조의 노래’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애써 왔으며, 더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은퇴나 죽기 전의 마지막 흥행을 일컫는 ‘백조의 노래’는 여러 분야에서 볼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은 그 자체가 훌륭한 ‘스완 송’이지 않을까 싶다. 코비 브라이언은 마지막 고별 경기에서 소속팀인 레이커즈에 60점을 선사하면서 NBA 농구생활을 결산하는 신화를 남겼다. 역설적이게도 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에 유례 없는 비극을 남긴 히틀러의 마지막 ‘파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는지. 황혼의 제스처는 무엇이 됐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생 ‘스완 송’이 되게 마련이 아닐까.     백조와 같이 청초하고 우아함을 간직한 글을 쓰고 싶다. 저녁 녘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 낙조를 가슴에 안고 해변가를 맨발로 산책하는 것은, 지금은 유감스럽게도 더 이상 못하고 있지만 나의 ‘백조의 노래’의 서곡이었을까. 나는 ‘스완 송’의 진수를 가곡 부르기에서 찾는다. 좋아하는 가곡과 함께 하는 시간은 황혼의 삶을 더없이 풍요롭게 감싸준다. 격조 높은 서정시를 배경으로 흐르는 주옥같은 멜로디는 매마른 정서에 안식을 선사한다. 라만섭 / 전 회계사열린 광장 백조 노래 지면 백조 마지막 노래 셰익스피어 작품

2022-06-08

[열린 광장] 백조의 노래

그리스 신화에 ‘백조의 노래(Swan Song)’라는 것이 있다. 죽기 전이나 혹은 은퇴 전의 마지막 제스처 또는 공연을 일컫는 은유적 표현이다. 백조는 평소에 노래를 모르고 지내다가 죽음에 직면하여 아름다운(또는 슬픈) 노래로 스스로의 장송곡을 장식한다는 내용이다.     기원전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신화의 줄거리는 서양의 여러 문예작품에 소재로 쓰이면서 면면히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은 ‘죽어가는 백조(The Dying Swan)’라는 시에서, 백조의 마지막 노래를 실감 있게 묘사한다. 이 시는 많은 영감을 남기며 후에 발레로도 공연됐다 한다. 필자는 언젠가 그의 시를 읽은 적은 있으나, 발레 공연은 유감스럽게도 접할 기회가 없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백조와 거위’ 이야기이다. 어떤 부자가 백조와 거위를 사왔다. 거위는 식용으로 쓰고 백조는 노래를 듣기 위해서였다. 하루는 거위를 잡아 요리를 하기 위해서 뒤뜰에 나갔다가 실수로 그만 백조를 잡았다. 목숨을 잃게 된 백조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자 주인이 백조를 풀어주어 목숨을 건지게 됐다.   죽기 직전에 노래를 부른다는 백조의 이야기는 서양의 문학작품이나 음악을 통해 많이 인용돼 왔다. ‘백조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슬픔에 잠긴 노래를 부른다고 소크라테스가 말했다.’(플라톤) ‘백조는 자기의 죽음을 아름다운 노래로 마무리 한다.’(레오나르도 다빈치) ‘그가 선택을 하는 동안 음악을 틀어라. 만약 그가 지면 백조와 같은 마지막을 장식하도록 하라.’(셰익스피어 작품 ‘베니스의 상인’의 재판장)   슈베르트의 작품 중 ‘백조의 노래’는 그가 명명한 것이 아니고 출판인이 그의 생전 작품들을 모아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백조의 노래’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애써 왔으며, 더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은퇴나 죽기 전의 마지막 흥행을 일컫는 ‘백조의 노래’는 여러 분야에서 볼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은 그 자체가 훌륭한 ‘스완 송’이지 않을까 싶다. 코비 브라이언은 마지막 고별 경기에서 소속팀인 레이커즈에 60점을 선사하면서 NBA 농구생활을 결산하는 신화를 남겼다. 역설적이게도 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에 유례 없는 비극을 남긴 히틀러의 마지막 ‘파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는지. 황혼의 제스처는 무엇이 됐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생 ‘스완 송’이 되게 마련이 아닐까.     백조와 같이 청초하고 우아함을 간직한 글을 쓰고 싶다. 저녁 녘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 낙조를 가슴에 안고 해변가를 맨발로 산책하는 것은, 지금은 유감스럽게도 더 이상 못하고 있지만 나의 ‘백조의 노래’의 서곡이었을까. 나는 ‘스완 송’의 진수를 가곡 부르기에서 찾는다. 좋아하는 가곡과 함께 하는 시간은 황혼의 삶을 더없이 풍요롭게 감싸준다. 격조 높은 서정시를 배경으로 흐르는 주옥같은 멜로디는 매마른 정서에 안식을 선사한다.   라만섭 / 전 회계사열린 광장 백조 노래 지면 백조 마지막 노래 셰익스피어 작품

2022-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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