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랑하기 더 사랑하기

‘쇠잔이란 얼마나 평화로운 체념인가. 젊음의 열정과 과욕이 씻기어 나간 평화. 그리고 쇠잔은 또 얼마나 사람을 조그마하게 만드는가. 나는 아주 작아져서 엄지의 엄지가 되어 그의 등에 업혀 잠들고 싶다’-老부인의 수기 ‘내 사랑 엄지 중에서.     ‘엄지’는 노부인이 속마음으로 부르는 며느리 애칭이다. 나는 이 글을 오늘에야 차분히 읽었다. 이메일 받은 날은 2015년 4월 10일 밤. 메일이 도착한지 7년이 지났다. 잘 지낼 때나 슬플 때나 행복하거나 불행에 빠졌을 때 등 두드려주는 응원자가 있다는 것은 잘 데펴진 구들목에 발을 넣을 때처럼 얼마나 따스한가. 이국 땅에 살면서 한국말이나 정서에 뒤쳐질까 ‘팔할이 바람’ 선생님은 좋은 글이나 아름다운 문장이 있으면 보내주신다.   화랑 운영하고 애 셋 키우는 일은 촉각을 다투는 일이다. 제목만 대강 훑어 보고 나중에 읽을 요량으로 이메일 폴드에 넣어두었는데 컴퓨터 청소하다 발견했다.   수기를 쓴 분은 2015년 기준으로 80-81세 전후로 추정된다.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를 며느리로 받아들일 때까지의 고뇌와 사랑을 진솔하게 고백한 글이다.   아들에게 소개받은 아가씨는 키 작고 외모가 가련하며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오빠 세 식구의 가장 노릇을 하며 고학으로 학비를 충당하는 여자였다.   성실하고 훌륭한 아가씨지만 맏며느리감이나 장손(長孫)의 아내로서 합당한 상대가 못 된다는 말이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결혼은 이상이 아닌 현실이며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자, 인생에서의 최후, 최선의 투자여야 한다는 영악한 계산을 엉큼하게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고 자책한다. 거기에다 그녀는 과도한 아르바이트와 선천적 위 기능 부전으로 음식물을 잘 삼키지 못해 결국 쓰러져 결핵 2기 판정을 받는다.     “어머니, 전 그 애를 사랑해요.”라는 아들의 말에 충격을 받은 부인은 입원을 지시하고 언덕길을 내려오며 한치도 흔들림이 없는 눈빛에서 아들의 결심을 확인한다. 그녀 가족도 부인 자신도 희망을 잃었지만, 연인을 완치시키겠다는 아들의 신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모습은 너무 아름다왔고 참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부인에게 깨우쳐 주는 계기가 된다.   투병생활 2년 8개월 만에 결핵은 완치되었고 5월의 신부가 된 엄지는 두 남매의 어머니로 순수 수학과 전산학의 석사학위도 땄고, 박사과정을 이수하며 살림살이 육아 학문에도 다섯 손가락 중 으뜸이 돼 자랑스런 ‘내 사랑 엄지’가 된다. ‘그 작고 약한 몸 속 어딘가에 활화산 같은 용암이 분출되는 경이로움은, 사랑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아닐는지…’라고 적고 있다.   사랑은 포기가 아니라 극복이다. 어떤 난관과 고통도 견딜 수 있는 수단이고 방법이며 용기다. 사랑은 결단이다. 가슴과 맥박이 뛰는 곳을 향해 생의 좌표를 찍는 용기다. 사랑은 타협이 안 된다. 사랑은 한쪽으로 기우는 저울이다.   부모는 자식이 사랑하는 사람과는 게임이 안 된다. 초장부터 두 손 들고 포기각서 쓰고 인간답게 축복해주는 것이 평화와 공생의 지름길이다. 계절은 거꾸로 오지 않는다. 그때 그 사랑은 지나갔다. 뒤죽박죽 폭죽 터트리며 사랑은 다시 온다. 사랑과 축복의 계절이다. 꽃이 피듯 사랑이 품속으로 나비처럼 날아든다. 마음 먹기 따라 사랑이 지기도 하고 피기도 한다.     한겨울 입술 다물고 있던 매화가 새각시처럼 진홍빛 꽃망울 터트릴 때, 돌아서지 않고 사랑하고 더 사랑하리라.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랑 사랑 엄지 이메일 폴드 작고 외모

2022-03-22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가장 작고 소중한 것들

‘펄력여도 찢기지는 마라.’ 내가 나에게 하는 새해 당부다. 잘났다고 앞서 갈 생각 말고 힘들다고 뒤쳐지지도 말자. 눈에 뵈는 것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잘 보일려고 누구에게도 아부하지 말자. 거울 속 비친 내 얼굴이 예전 같지 않아도 실망하지 말고 세월이 부대끼며 살아온 흔적 품고 견뎌내자. 행복의 열쇠 찿아 허둥대며 두리번거리지 말고 잃어버렸다 해도 열쇠는 다시 만들면 된다. 너무 알려고 애쓰지 말고 모르는 건 그냥 넘어가고 까탈부리지 말고 의연하게 살기로 다짐한다.   사랑이 떠나갔다고 허전해 하지 말자. 사랑은 떠나가도 그 빈자리에 새로 사랑이 둥지 튼다. 작은 성냥불 불씨 하나 가슴 속에 남아있으면 사랑은 다시 불타오른다. 출발은 시작이다. 몰아 쉬던 가쁜 숨 잠시 멈추고 생의 방향과 각도를 바꾸면 풍요로운 내일이 펼쳐진다. 지금 이 시간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기다림의 시간은 아름답다. 시작은 멈출 수 없는 발걸음이다. 상황을 바꿀 수는 없지만 멋진 생을 만드는 힘은 내 속에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모두를 위한, 그 누구도 위한 것이 아닌’이란 부제가 붙은 ‘짜라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다. 은둔자로 10년간 산중 명상을 마친 차라투스트라는 현란한 어휘와 매몰찬 독설로 삶과 예술, 사상 등에 대해 장쾌하고 시적인 언어로 군중에게 설파한다. 인간 내면에 있는 ‘사막’을 목격하고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인간을 위한 새로운 원칙을 제시한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이라는 제목 아래 제1부 방랑자 차라투스트라의 출발, 2부 미래의 인간인 ‘초인’을 찾아가는 여정, 3부 ‘영원 회귀’의 오솔길을 거니는 차라투스트라의 고난, 4부 걷고 뛰고 춤추는 독자로 구성되어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기존의 절대적 가치였던 선이 무너졌다는 의미로 ‘신은 죽었다’고 말한다. ‘신이 죽었다’는 말은 신의 지위가 박탈되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니체는 신이 죽어서 사람들이 느끼는 허무주의를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가르치려 했다.   미켈란젤로는 1501년부터 1504년까지 3년 동안 한 덩어리의 대리석으로 거대한 다비드상을 조각했다. 골리앗과 싸우기 직전 망태를 메고 적군을 강렬하게 응시하면서 돌을 쥐고 막 던지려는 순간의 모습이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부수지 않으면 새로 만들지 못하고 버리지 않으면 채울 수 없다. 불필요한 부분을 망치로 칼로 도려내야 진실로 아름다운 불멸의 형상을 창조할 수 있다.   지난 날을 후회하지 말자. 후회와 연민은 독이다. 연민은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는 연민은 비극의 지름길이다. 잘못 살았던 어제를 후회하고 절망하지 말자. 행복이던 불행이던 인생은 나 홀로 가는 길이다. 동행이 있으면 좋겠지만 혼자라도 행복해지는 비결을 찿아나선다.   타인에게 말 걸기 하듯 스스로에게 말 걸고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말고 살아갈 목표를 점검하며 새해를 맞는다. 욕망과 집착, 후회가 생을 망가트린다. 사랑도 명예도 재물도 집착의 굴렁쇠다. 무의미한 하루에서 의미를 찿으며 다시 유년의 꿈을 담은 연을 하늘 높이 날려 보낸다. ‘가장 작은 것, 가장 조용한 것, 가장 가벼운 것, 바스락거리는 도마뱀 몸짓, 숨결 하나, 휙 하는 소리, 한 순간. 작은 게 최상의 행복을 만든다’는 니체의 어록으로 새해를 맞는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작고 방랑자 차라투스트라 집착 후회 프리드리히 니체

2022-01-11

[삶의 뜨락에서] 작고 좋은 것

 살면서 누구나 깊은 슬픔에 빠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미국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A small, good thing(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외아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젊은 부부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부부는 외아들의 생일을 앞두고 생일 케이크를 빵집에 주문한다. 그러나 아이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혼수상태에 빠져 결국은 죽게 된다. 이를 알 리 없는 빵집 주인은 밤마다 케이크를 찾아가라고 독촉 전화를 걸었다.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찬 부부는 빵집 주인을 찾아가 화를 마구 퍼붓는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빵집 주인은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소. 내가 얼마나 미안한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거요. 나는 빵장수일 뿐이라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 일의 변명이 될 순 없겠지요. 그러나 진심으로 미안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본의 아닌 실수로 커다란 상처를 준 낯선 부부에게 미안함과 연민을 갖게 된 빵장수는 부산하게 오븐에서 빵을 끄집어내며 그가 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방식으로 도움을 주려 애쓰고 있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된다오. ” 그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갑자기 당한 지독한 슬픔으로 허기를 느끼지도 못하고 있던 부부는 갓 구운 따뜻한 빵 냄새를 맡고 한입 가득 베어 문다. 상가 전체가 시커먼 어둠에 휩싸인 가운데 홀로 불을 밝힌 작은 빵집에서 이제 막 지독한 슬픔을 맛본 부부를 향해, 처음부터 슬프게 살아왔던 빵집 주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부부는 자신들의 삶에 들이닥친 불가해함에 위로를 받는다.     레이먼드 카버의 짧은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우리가 서로를 진정으로 알거나 우리의 삶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시도는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작고 좋은 것’일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의 영혼도 따스해지고 있었다.   몇달 전 뉴스에 나온 이야기이다. 아내가 사망한 후 깊은 우울증에 빠져있었던 82세의 단(Dan)은 어느 날 동네 슈퍼마켓에서 만난 4살짜리 소녀, 노라로 그의 모든 삶이 바뀐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장을 보고 있던 그에게 다가온 노라는 “안녕, 까다로운 늙은이, 오늘이 바로 내 생일이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과감하게 그에게 포옹을 요구했다 한다. 엄마에게 새 친구와 함께 사진을 한장 찍어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이렇게 행복한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말하는 그의 입술은 떨렸고 주름진 얼굴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4살짜리 노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살리는 일을 했던 것이다.     레이먼드 카버는 멍청하게 보일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작가라면 가끔은 소박한 경이로움 앞에 멈춰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보여주는 삶의 단면들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 그의 제안은 우리가 모두 우리의 작은 것, 통제할 수 없는 것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작고 좋은 것”이라 한다.   하늘은 뿌옇게 흐렸고 눈이 펄펄 날리는 크리스마스 이틀 전, 뉴욕에 첫발을 내디뎠던 오십 년 전의 일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낯선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막막한 나에게 아파트 창문마다 빨간 포인세티아가 장식되어 있고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나에게 “힘을 내요”라고 격려해주는 것 같았다. 크고 위대한 것에만 익숙해진 우리에게 레이먼드 카버는 ‘←A small, good thing’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달, 평소에는 당연하다고만 생각하고 무심하게 스쳤던 사소한 일들이 주는 긍정적 힘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본다. 이춘희 / 시인삶의 뜨락에서 작고 생일 케이크 작가 레이먼드 빵집 주인

2021-12-15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