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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작고 좋은 것

 살면서 누구나 깊은 슬픔에 빠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미국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A small, good thing(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외아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젊은 부부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부부는 외아들의 생일을 앞두고 생일 케이크를 빵집에 주문한다. 그러나 아이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혼수상태에 빠져 결국은 죽게 된다. 이를 알 리 없는 빵집 주인은 밤마다 케이크를 찾아가라고 독촉 전화를 걸었다.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찬 부부는 빵집 주인을 찾아가 화를 마구 퍼붓는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빵집 주인은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소. 내가 얼마나 미안한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거요. 나는 빵장수일 뿐이라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 일의 변명이 될 순 없겠지요. 그러나 진심으로 미안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본의 아닌 실수로 커다란 상처를 준 낯선 부부에게 미안함과 연민을 갖게 된 빵장수는 부산하게 오븐에서 빵을 끄집어내며 그가 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방식으로 도움을 주려 애쓰고 있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된다오. ” 그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갑자기 당한 지독한 슬픔으로 허기를 느끼지도 못하고 있던 부부는 갓 구운 따뜻한 빵 냄새를 맡고 한입 가득 베어 문다. 상가 전체가 시커먼 어둠에 휩싸인 가운데 홀로 불을 밝힌 작은 빵집에서 이제 막 지독한 슬픔을 맛본 부부를 향해, 처음부터 슬프게 살아왔던 빵집 주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부부는 자신들의 삶에 들이닥친 불가해함에 위로를 받는다.  
 
레이먼드 카버의 짧은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우리가 서로를 진정으로 알거나 우리의 삶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시도는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작고 좋은 것’일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의 영혼도 따스해지고 있었다.
 


몇달 전 뉴스에 나온 이야기이다. 아내가 사망한 후 깊은 우울증에 빠져있었던 82세의 단(Dan)은 어느 날 동네 슈퍼마켓에서 만난 4살짜리 소녀, 노라로 그의 모든 삶이 바뀐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장을 보고 있던 그에게 다가온 노라는 “안녕, 까다로운 늙은이, 오늘이 바로 내 생일이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과감하게 그에게 포옹을 요구했다 한다. 엄마에게 새 친구와 함께 사진을 한장 찍어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이렇게 행복한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말하는 그의 입술은 떨렸고 주름진 얼굴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4살짜리 노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살리는 일을 했던 것이다.  
 
레이먼드 카버는 멍청하게 보일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작가라면 가끔은 소박한 경이로움 앞에 멈춰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보여주는 삶의 단면들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 그의 제안은 우리가 모두 우리의 작은 것, 통제할 수 없는 것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작고 좋은 것”이라 한다.
 
하늘은 뿌옇게 흐렸고 눈이 펄펄 날리는 크리스마스 이틀 전, 뉴욕에 첫발을 내디뎠던 오십 년 전의 일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낯선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막막한 나에게 아파트 창문마다 빨간 포인세티아가 장식되어 있고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나에게 “힘을 내요”라고 격려해주는 것 같았다. 크고 위대한 것에만 익숙해진 우리에게 레이먼드 카버는 ‘←A small, good thing’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달, 평소에는 당연하다고만 생각하고 무심하게 스쳤던 사소한 일들이 주는 긍정적 힘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본다.

이춘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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