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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우연찮다’, ‘우연하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동창을 길거리에서 만났다. “여기저기 수소문해도 연락처를 알 수 없더니 이렇게 우연찮게 만나게 돼 신기하고 반갑다.” “나도 우연히 만나리라고 생각도 못했어.” 둘 다 우연히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한 명은 ‘우연찮다’를, 다른 한 명은 ‘우연하다’를 사용하고 있다.   ‘우연찮다’가 ‘우연하다+아니하다’의 준말이라는 것을 떠올려 보면 ‘우연찮게’를 쓴 게 잘못된 표현같이 생각되기도 한다. ‘시원찮다’ ‘만만찮다’ 같은 준말이 ‘시원하다’ ‘만만하다’의 반대말로 쓰이는 것을 보면 ‘우연하다+아니하다’를 줄여 쓴 ‘우연찮다’는 ‘우연이 아니다’는 뜻으로 써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단어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면 반대의 뜻으로 쓰여야 할 것 같은데 ‘우연하다’와 ‘우연찮다’는 둘 다 실제로 ‘뜻하지 않게’라는 의미로 별 차이 없이 쓰이고 있다. 처음엔 ‘우연찮다’가 ‘우연하지 아니하다’는 어원에 따라 ‘필연적’이라는 의미로 쓰였겠지만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우연도 아니고 필연도 아닌 그 중간 정도에 이 말을 사용하다 보니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를 받아들여 변화된 의미를 인정했다.   ‘주책’과 ‘주책없다’도 비슷한 경우다. 우리말 바루기 우연 형성 과정 오랫동안 연락

2023-03-05

우연에 도전하라

고도의 기술이 만들어가는 오늘날의 세상은 철저하다. 모든 것이 데이터로 기록되고 정량화되며 슈퍼컴퓨터의 적중률은 날로 높아지고 병원에서는 연명 기간과 임종 시간까지 컨트롤할 수 있다. 상상 초월의 연산속도를 자랑하는 양자컴퓨터가 몰고올 미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것을 보니 AI 로봇인간과 함께 섞여 살게 된 근미래를 그린 영국 드라마 ‘휴먼스(Humans)’가 떠오른다. 모든 것이 빈틈없는 로봇인간 때문에 좌절감을 느끼는 드라마 속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예컨대 의사가 되려면 7년 동안 죽을 듯이 공부해야 하지만 결국 로봇인간들이 수술실 자리를 꿰차게 될 것이고, 방향과 거리, 풍향까지 자동계산해 족족 홀인원을 치는 로봇인간들을 무슨 수로 이기냐며 한탄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드라마처럼 숨 막히게 완벽한 미래에 저항한다. 그래서 밑도 끝도 없는 악마 이야기나 좀비에 열광하고 초자연적 현상과 괴이한 힘에 흥분한다. 어디까지가 인간의 영역이고 어디부터가 신의 영역일까.   2009년 금융위기 당시 실직자가 쏟아져 나오던 미국에서 현대자동차는 만약 차를 구입한 후 1년 안에 실직하게 되면 구입했던 차를 다시 사준다는 어슈어런스(Assuarance)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고객들의 상황을 감성적으로 이해해 준 뜻밖의 제안은 큰 감동을 주었다. 이 파격적인 소비자 보상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빅히트를 쳤고 미국 내 판매량을 크게 끌어올렸다. 고객에게 우선 공감하고 뜻밖의 행운을 안겨주는 것, 탁월한 고객 경험이 아닐 수 없다.   팍팍한 현실에 지쳐가면서도 경쟁하듯 소비하는 고객들에게 마치 신의 영역처럼, 미지의 힘처럼 느껴지게 하는 ‘우연의 힘’이 필요하다. 짜인 대로, 예측한 대로, 계획한 대로 하는 것보다 뜬금없고 생뚱맞고 기이한 경험들이 훨씬 임팩트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 신기했던 경험을 주변에 이야기하고, 놀랐던 혹은 의아했던 감정을 떠올리며 그 순간을 복기한다.   ‘우연’이 맥락과 전혀 맞지 않아 갑작스럽고 엉뚱하다 느낄 때 우리는 ‘뜬금없다’는 표현을 쓴다. 과거 장이 서면 쌀 가격이 그날그날 시세에 따라 정해졌는데, 이때 정해지는 가격을 뜬금이라 했다. 즉 금(金)은 가격이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동적이라 하여 뜬금이라 한 것인데 이 뜬금이 없이는 곡물이 거래될 수 없으니 맥락이나 기준에 맞지 않는 갑작스러운 때 ‘뜬금없다’는 표현을 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시세를 가늠할 수 없는 뜬금없는 일이 세기의 발견이 되기도 한다.   강력접착제를 만들다가 우연히 고안된 포스트잇의 사례는 유명하다. 그뿐인가. 한 요구르트 회사에서 요구르트 생산에 활용되는 유산균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떼죽음하는 걸 막기 위해 연구하다 우연히 발견한 유전체 편집기술은 무려 인류의 혁명적 기술이라 일컫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다. 이처럼 뜬금없는 일들은 우리를 즐겁게도 놀랍게도 생산적이게도 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이는 고객들에게 다가가는 전략이기도 하며, 신사업을 만드는 접근법이기도 하다. 적어도 전력의 20%는 틀에 박힌 것, 늘 하던 것이 아닌 맥락을 벗어난 뜬금없는 일을 벌이는 데 써야 한다. 자고 일어나면 판도가 바뀌고 요동치는 경제 상황이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국제정세 등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카오스의 물결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새롭고 발칙한 시도를 해야만 한다. 비즈니스 모델의 융합도, 전혀 시도해보지 않았던 도전도, 잘할 수 없을 것 같은 분야에도 덤벼보아야 하며, 손해 보는 장사 같아도 해보아야 한다. 발견의 축적은 미래를 빚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기에 이러한 시도는 원래 하던 것 역시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만들어 줄 것이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도 ‘우연의 일치 현상은 우주의 인과적 원리이고 인간의 의식을 성장시키는 법칙’이라고 했다.   우연은 기적의 씨앗이다. 사랑하는 사람도 우연히 만나고, 운명적인 길고양이 구조도 우연찮은 발견으로 시작되며,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하다가 목욕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부력의 원리를 깨달았다. 예고 없이 우연히 일어나는 뜻밖의 즐거움,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지금 이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안식이자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진솔한 소통전략이다. 이향은 / LG전자 고객경험혁신담당 상무우연 도전 고객 경험 요구르트 생산 유전체 편집기술

2022-07-08

[아름다운 우리말] 인사말의 위로

인사(人事)는 사람끼리 하는 일입니다. 한자의 뜻이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인사를 제대로 안 하면 사람이 아닙니다. 인사의 중요성을 인사라는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사를 형식적으로 합니다. 때로는 인사를 했다는 말이 뇌물을 바치는 행위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인사의 타락입니다. 인사는 사람의 일이기에 어떻게 인사를 하는 게 좋은지 늘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말은 다른 언어에 비해서 인사말이 적은 언어입니다. 아침, 점심, 저녁, 밤 등 시간에 따라 인사말이 달라지는 언어가 많습니다만 우리말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말 인사의 종류는 만났을 때와 헤어질 때가 대표적일 겁니다. 물론 생사고락(生死苦樂)의 수많은 장면에서도 인사는 필요합니다. 축하의 말이나 위로의 말도 모두 인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축하의 말이나 위로의 말이야말로 참다운 인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말의 인사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인사말의 시작은 ‘우연찮게’입니다. 우연찮게는 참 재미있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연찮게’를 ‘우연히’라는 의미로 쓰지만 사실 이 말은 ‘우연’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연하지 않게’가 줄어든 말입니다. 우리는 우연찮게 사람을 만나고, 우연찮게 어느 곳을 방문합니다. 그야말로 우연찮게 투성이입니다. 우리 삶은 모두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느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필연이라고 생각하면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그러기에 더욱 귀한 나날들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만나는 일이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우리가 모두 귀한 인연임을 확인하는 순간인 것입니다.      ‘반갑습니다’라는 말은 처음 만나거나 여러 번 만나거나 쓸 수 있는 말입니다. 다만 ‘만나서’라는 말이 앞에 붙으면 주로 첫 만남입니다. ‘반갑다’라는 말은 다른 언어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표현이어서 번역도 어렵습니다. 아마 반갑다를 한 단어로 번역할 수 있는 언어는 거의 없을 겁니다. 반갑다의 의미나 어원을 설명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저는 반갑다라는 말의 실마리를 ‘반’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은 빛이라는 말과 연결됩니다. ‘반짝, 번쩍, 반디, 번개’는 모두 빛을 담은 어휘입니다. 따라서 반갑다는 말은 우리가 서로 만날 때 얼굴에 빛이 난다는 뜻입니다. 빛은 웃을 때 더 환하게 나타납니다. 얼굴은 미소를 띠면 더 밝아집니다. 얼굴도 펴집니다. 그래서 반갑다는 말을 제대로 하려면 서로 밝게 웃으며 인사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말의 진짜 인사는 ‘밥은 먹었나, 어디 가나’라는 말에 있다고 봅니다. 별걸 다 궁금해 한다고 핀잔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 이제 굶는 사람도 없는데, 밥을 먹었는지가 왜 궁금하냐는 말일 것입니다. 어디 가는지 묻는 것은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밥은 먹었냐고 묻고 어디 가느냐고 묻습니다. 인사말처럼 말입니다.    밥을 제대로 먹고 다니느냐는 질문은 많은 것을 내포합니다. 건강한지, 걱정거리는 없는지 묻는 것입니다. 물론 경제적인 질문도 될 겁니다. 밥만 잘 먹고 다녀도 걱정이 없습니다. 어디 가냐는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험한 곳을 가는 것은 아닌지, 내가 같이 가주어야 하는 곳은 아닌지 궁금한 게 많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목적지를 아는 것은 안심하는 마음을 줍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밥을 안 먹었어도 먹었다고 대답하기도 하고, 어디 가냐고 물으면 ‘그냥 어디 좀’이라고 부정확하게 대답하기도 합니다. 부정확하지만 서로 이해하는 대화이기도 합니다. 인사는 사람의 일입니다. 그래서 정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를 위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있어야 인사인 겁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인사말 우리말 인사 진짜 인사 모두 우연

2022-07-04

[삶의 뜨락에서] 우연이 아니야

우리가 좋아하는 유행가에 ‘만남’이 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바람이었지.”   존 스타인벡 소설 ‘분노의 포도’에 이런 스토리가 있다. 자드 가족이 타고 캘리포니아로 가던 트럭이 하이웨이에서 고장이 났다. 베어링이 나가 부속이 필요했다. 그들은 한 폐차장을 찾아 차종에 맞는 부속을 구했다. 한 애꾸눈 남자가 야근 중이었다. 그는 주인 욕을 하면서 마음대로 뒤져 필요한 부품을 가져가라고 했다. 운 좋게 찾던 부속품을 구한 그들은 앉아서 잠깐 술을 마시며 담소했다. 애꾸는 기분이 좋아선지 이런 말을 했다. 얼마 전 이 동네를 배회하는 한쪽 다리가 없는 여자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외눈박이 남자와 외족 여인의 밀애,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보통 인연이 아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에 나오는 이야기. 동네에 걸인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다리 밑에서 자고 가끔 남의 울타리를 뛰어넘기도 했지만 물건을 훔치는 등 나쁜 짓을 하지 않아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어느 날 사내 몇 명이 술에 취해 다리 밑에 있는 그녀를 찾아갔다. 그로부터 몇 달 후 거지 여인의 배가 불러왔다. 사람들은 누가 임신을 시켰느냐고 수군거렸다. 그녀는 남자아이를 낳았고, 카라마조프 아버지가 이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 소년은 엄마를 닮아 정직하고 주인을 섬기었다. 이것 역시 완전한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안나는 당시 세인트피터즈버그 사교계의 뛰어난 미인이었다. 안나는 어렸을 때 나이 많은 귀족과 애정없는 결혼을 했다. 그녀는 어느 날 모스크바 기차 정거장에서 매력적인 한 젊은 장교를 만난 후 단숨에 사랑에 빠진다. 그녀가 꿈에서 찾던 바로 그 남자였다. 안나는 남편과 아들까지 버렸고, 남자는 출세를 보장하는 장교를 포기하고 두 사람은 이탈리아로 애정행각을 떠났다가 레닌그라드로 돌아온다. 얼마 후 이곳 유명한 극장에서 공연이 있었다. 안나는 남자에게 같이 가지고 한다. 남자는 “수많은 사람이 우리를 보고 수군거릴 텐데 어떻게 같이 가는가”하고 망설였다. 여인은 단호했다. “그렇게 자신이 없어요. 그러면 친구랑 가겠어요.”안나는 특석에 앉았다. 사교계 여인들이 쑥덕거렸다. 남자들은 안나의 미모에 넋을 잃었다. 안나는 중얼거린다. 여기 나보다 잘 생긴 여자가 있으면 나와 봐라. 내 애인보다 매력 있는 남자가 있으면 나와라. 안나는 당당했다. 그녀는 그들의 만남을 우연으로 믿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의 오랜 꿈이었다.   너새니얼 호손 소설 ‘주홍글씨’에 나오는 헤스터프린과 아서 딤스데일 목사의 만남도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랑 없이 나이 많은 의사와 결혼한 헤스터는 진정한 사랑을 갈구해 왔을 것이다. 그녀는 목사와 간통해 아이를 낳은 죄로 가슴에 A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옷을 입어야 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것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라기보다그들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소설은 허구이다. 그러나 허무맹랑한 스토리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다. 위에 소개한 책들은 모두 시대상을 묘사한 소설이다.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다.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시대가 그들을 만나게 했다. 우리가 고국을 떠나 여기서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우연 애꾸눈 남자 외눈박이 남자 톨스토이 소설

2022-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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