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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에 도전하라

고도의 기술이 만들어가는 오늘날의 세상은 철저하다. 모든 것이 데이터로 기록되고 정량화되며 슈퍼컴퓨터의 적중률은 날로 높아지고 병원에서는 연명 기간과 임종 시간까지 컨트롤할 수 있다. 상상 초월의 연산속도를 자랑하는 양자컴퓨터가 몰고올 미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것을 보니 AI 로봇인간과 함께 섞여 살게 된 근미래를 그린 영국 드라마 ‘휴먼스(Humans)’가 떠오른다. 모든 것이 빈틈없는 로봇인간 때문에 좌절감을 느끼는 드라마 속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예컨대 의사가 되려면 7년 동안 죽을 듯이 공부해야 하지만 결국 로봇인간들이 수술실 자리를 꿰차게 될 것이고, 방향과 거리, 풍향까지 자동계산해 족족 홀인원을 치는 로봇인간들을 무슨 수로 이기냐며 한탄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드라마처럼 숨 막히게 완벽한 미래에 저항한다. 그래서 밑도 끝도 없는 악마 이야기나 좀비에 열광하고 초자연적 현상과 괴이한 힘에 흥분한다. 어디까지가 인간의 영역이고 어디부터가 신의 영역일까.
 
2009년 금융위기 당시 실직자가 쏟아져 나오던 미국에서 현대자동차는 만약 차를 구입한 후 1년 안에 실직하게 되면 구입했던 차를 다시 사준다는 어슈어런스(Assuarance)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고객들의 상황을 감성적으로 이해해 준 뜻밖의 제안은 큰 감동을 주었다. 이 파격적인 소비자 보상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빅히트를 쳤고 미국 내 판매량을 크게 끌어올렸다. 고객에게 우선 공감하고 뜻밖의 행운을 안겨주는 것, 탁월한 고객 경험이 아닐 수 없다.

 
팍팍한 현실에 지쳐가면서도 경쟁하듯 소비하는 고객들에게 마치 신의 영역처럼, 미지의 힘처럼 느껴지게 하는 ‘우연의 힘’이 필요하다. 짜인 대로, 예측한 대로, 계획한 대로 하는 것보다 뜬금없고 생뚱맞고 기이한 경험들이 훨씬 임팩트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 신기했던 경험을 주변에 이야기하고, 놀랐던 혹은 의아했던 감정을 떠올리며 그 순간을 복기한다.
 
‘우연’이 맥락과 전혀 맞지 않아 갑작스럽고 엉뚱하다 느낄 때 우리는 ‘뜬금없다’는 표현을 쓴다. 과거 장이 서면 쌀 가격이 그날그날 시세에 따라 정해졌는데, 이때 정해지는 가격을 뜬금이라 했다. 즉 금(金)은 가격이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동적이라 하여 뜬금이라 한 것인데 이 뜬금이 없이는 곡물이 거래될 수 없으니 맥락이나 기준에 맞지 않는 갑작스러운 때 ‘뜬금없다’는 표현을 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시세를 가늠할 수 없는 뜬금없는 일이 세기의 발견이 되기도 한다.
 
강력접착제를 만들다가 우연히 고안된 포스트잇의 사례는 유명하다. 그뿐인가. 한 요구르트 회사에서 요구르트 생산에 활용되는 유산균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떼죽음하는 걸 막기 위해 연구하다 우연히 발견한 유전체 편집기술은 무려 인류의 혁명적 기술이라 일컫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다. 이처럼 뜬금없는 일들은 우리를 즐겁게도 놀랍게도 생산적이게도 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이는 고객들에게 다가가는 전략이기도 하며, 신사업을 만드는 접근법이기도 하다. 적어도 전력의 20%는 틀에 박힌 것, 늘 하던 것이 아닌 맥락을 벗어난 뜬금없는 일을 벌이는 데 써야 한다. 자고 일어나면 판도가 바뀌고 요동치는 경제 상황이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국제정세 등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카오스의 물결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새롭고 발칙한 시도를 해야만 한다. 비즈니스 모델의 융합도, 전혀 시도해보지 않았던 도전도, 잘할 수 없을 것 같은 분야에도 덤벼보아야 하며, 손해 보는 장사 같아도 해보아야 한다. 발견의 축적은 미래를 빚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기에 이러한 시도는 원래 하던 것 역시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만들어 줄 것이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도 ‘우연의 일치 현상은 우주의 인과적 원리이고 인간의 의식을 성장시키는 법칙’이라고 했다.
 
우연은 기적의 씨앗이다. 사랑하는 사람도 우연히 만나고, 운명적인 길고양이 구조도 우연찮은 발견으로 시작되며,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하다가 목욕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부력의 원리를 깨달았다. 예고 없이 우연히 일어나는 뜻밖의 즐거움,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지금 이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안식이자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진솔한 소통전략이다.

이향은 / LG전자 고객경험혁신담당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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