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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펜하이머’와 시카고

2차 세계대전 당시 핵폭탄을 개발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오펜하이머'에는 시카고대학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대부분의 스토리는 핵폭탄을 개발했던 뉴 멕시코주의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에서 진행되지만 시카고대학 캠퍼스에서 주요 과학자들이 출연하는 장면도 나온다.     시카고대학은 핵폭탄 개발에서 중요한 장소다. 이 대학에서 연구를 하던 이탈리아 출신의 엔리코 페르미 교수가 1942년 12월 2일 인류 최초의 핵 연쇄반응 실험을 성공했다. 당시 실험은 현재 시카고대학 도서관이 위치한 당시 스태그 필드의 실험실에서 이뤄졌다.     스태그 필드는 시카고대학 풋볼팀의 홈구장이었지만 1939년 로버트 메이나드 허친슨 총장이 스포츠 팀을 모두 해산시키며 1956년 철거됐다. 현재 당시 스태그 필드 실험실이 위치한 인근에 핵연쇄 반응 실험의 성공을 기념하는 헨리 무어의 조각품이 세워져 있다.       페르미를 비롯한 시카고대 핵 과학자들이 사용하던 에크하트 홀은 원래 수학과 건물이었다. 그러다 1937년 파시스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미국으로 망명 온 페르미 교수가 이 건물에 연구소를 마련했다.     이 건물 209호에서 영화 오펜하이머의 한 장면이 나온다. 맷 데이먼이 연기한 레슬리 그로브 준장이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함께 나와 핵실험 연구 시설 설치와 관련한 대사를 하기도 한다. 209호에는 어니스트 윌킨스 주니어 교수의 기념사진이 걸려져 있다. 윌킨스 주니어 교수는 13세의 나이에 시카고대학에 입학한 수학 천재로 맨하탄 프로젝트에 참여한 12명의 흑인 연구진 중 한 명이다.     5747번지 사우스 엘리스길에 위치한 조지 허버트 존스 연구소는 글렌 시보그 화학과 교수가 1942년 8월 플루토늄을 분리하고 측정하는데 성공한 장소다. 이 공로로 시보그 교수는 노벨상을 수상했고 플루토늄은 최초 원자폭탄 세 개 중 두 개의 폭탄에 장착된다. 이 중 하나는 나가사키에 투하되고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우라늄이 장착됐다. 조지 허버트 존스 연구소의 405호는 이런 연구를 기념하기 위해 연방 정부가 주요 사적지로 지정하기도 했다.     5537번지 사우드 우드론에는 페르미 교수의 저택이 위치해 있다. 이 곳에서 페르미 교수는 부인과 두 명의 자녀가 함께 살았다. 1155번지 이스트 57번가에 위치한 궈드랭글 클럽에서는 레오 슬리자드 교수가 핵폭탄을 투하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영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슬리자드 교수의 예언처럼 핵폭탄으로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현재까지도 핵폭탄은 인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     한편 영화 ‘오펜하이머’는 올해 아카데미상 13개 부분에 후보작으로 지명됐다. 올해 아카데미상 수상식은 오는 10일 열린다.     Nathan Park 기자오펜하이머 시카고 영화 오펜하이머 시카고대학 장면 시카고대학 풋볼팀

2024-03-05

원자폭탄의 아버지, 시대가 낳았고 시대가 죽였다

“프로메테우스는 신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그 형벌로 그는 바위에 묶여 영원히 고통받았다.”(Prometheus stole fire from the god and gave it to man. For this he was chained to a rock and tortured for eternity.)   ‘다크 나이트’ 3부작, ‘인셉션’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의 열두 번째 작품 ‘오펜하이머’는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를 떠올리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천재 과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세계 최초의 핵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원자폭탄을 개발한 이야기에 놀란 감독은 왜 프로메테우스를 소환했을까.     ‘먼저 생각하는’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접두사 ‘pro~’의 기원일지도 모를, 프로메테우스는 선지자를 뜻한다. 프로메테우스의 계략에 분노한 제우스는 인간을 벌하기 위해 최초의 여자 ‘판도라’를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로 하여금 아내로 맞이하게 한다. 인류는 불을 선물 받았지만 ‘판도라의 상자’라는 재앙을 감수해야 했다.     오펜하이머스가 개발한 핵무기는 전쟁을 끝내고 인류 평화를 위함이 동기였다. 그러나 핵은 오늘 날 인류 평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오펜하이머를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한 감독의 의도가 보인다.     오펜하이머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요 한 과학자의 삶에 대한 전기 영화지만 ‘시간과 사유의 매스터’ 크리스토퍼 놀런의 작품답게 오펜하이머의 삶에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대입, 스토리를 세밀하게 심화한다.     ‘오펜하이머’는 3월 거행될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킬리언 머피), 남우조연상(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여우조연상(에밀리 브런트) 등의 주요 부문에 모두 후보를 낼 것이 확실하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킬러스으브 더 플라워 문’과 작품상, 감독상을 놓고 팽팽한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영화는 세상을 영원히 바꾼 원자폭탄, 폭발 그리고 파괴의 불가분의 관계를 파고 든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위기에 처한 세상을 구하기 위해, 그러나 오히려 세상을 파괴할 지도 모르는 선택을 해야 하는 천재의 고민, 그가 품었던 의구심 그리고 몰락에 관한 탐구적 서사다.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는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착수하여 실험을 이어간다. 숱한 실험을 이어가는 동안 히틀러는 자살했으며 나치는 붕괴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내놔야 한다는 강박에서 시작됐다. 목표인 나치는 사라져버렸다. 대량 살상용 무기의 필요성에 대한 의구심이 그의 마음속에 일어나기 시작한다.     와중에 일본과의 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항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폭탄의 대상이 바뀐다. 실험은 계속되며 드디어 완성된 폭탄은 ‘폭발 실험’으로 이어진다. 치욕의 진주만 공습에 대한 보복과 함께 소련 등 경쟁 강대국에게 이제 누가 세계 최강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장엄하게 22만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그러나 미국이 아닌, 인류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암울한 결과다.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핵폭탄이었지만, 제3차 세계대전에 이르면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수 있음에 오늘날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다. 오펜하이머의 원폭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에 비유될 만큼 인류에게 반갑기만 한 선물은 아니었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2차 대전 승전 영웅이 된 오펜하이머, 자신의 천재성과 명성에 취해있던 그였지만 이후 매카시즘 그리고 그와 대립 관계에 있던 원자력위원회 의장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복수심에 휘말려 고통과 고뇌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그의 삶은 결국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원자폭탄에 이어 더 무서운 수소폭탄이 개발되고, 그와 알력을 빚던 스트로스가 새로운 별로 각광받는다.     불행하게도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다. 별은 영원히 빛날 수 없다. 폭탄은 폭발과 동시에 그 쓰임을 잃는다. 쓰임을 다한 과학자 오펜하이머는 이제 정상에서 내려와야 한다. 추앙의 대상이던 그를 몰아내기 위해 청문회가 시작된다.     영화 속 오펜하이머는 청문회 과정에서 자신을 몰아내려는 세력에 대하여 대응하지 않는다. 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죄책감 때문이다. 자신이 개발한 핵이 인류의 미래에 미칠 결과에 대한 죄책감.   이는 죄책감 따위는 없었던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의 내면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프로메테우스는 3만년 후 헤라클레스에 의해 구출되며 제우스로부터 사면을 받는다. 신화와 달리 오펜하이머와 그의 가족의 삶은 불행하게 막을 내린다. 오펜하이머는 원자력계에서 퇴출당하면서 명예를 잃고 62세에 후두암으로, 그리고 5년 후 아내 키티도 폐색전증으로 사망한다. 딸 또한 아버지로 인한 사회적 연좌제에 시달려 32세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영화 말미, 얘기를 나누고 있는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을 향해 멀리서 스트로스가 다가온다. 그는 또 하나의 중성자다. 이들의 충돌, 분노와 갈등, 혐오가 ‘파괴와 파멸’이라는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갈등의 피로와 감정들이 곳곳에 부유한다. 상처의 부정적 에너지가 주변 사람들에게 전염되고 고통과 비극은 이후 냉전 체제로 이어진다. 감정에서 비롯된 충돌은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는 씨앗으로 남아 지금 이 순간도 성장하고 있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지구 전체의 파멸을 불러일으킬 폭발에 대한 경고다.   김정 영화평론가원자폭탄 아버지 원자폭탄 개발 로버트 오펜하이머 원자폭탄 폭발

2024-01-19

[수필]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

지난 8월 한국서 압도적 흥행 1위의 영화 ‘오펜하이머’를 봤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라는 책을 바탕으로 천재 물리학자 오펜하이머를 다룬 전기 영화다. 오펜하이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한 인물이다.   물리학 지식이 없어 3시간 내내 긴장을 하며 봤다. 유명한 실존 인물들이 많이 나와서 누가 누구인지 스토리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스크린에 터지는 폭탄과 같은 영상과 음향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얼마 후 오펜하이머 신드롬으로 관련 내용이 쏟아져  “아! 그게 그런 것이었구나” 했다.  또한 가까운 친구 남편에게 핵분열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친구의 남편은 미국 브라운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고려대 교수로 있다가 퇴임 후 현재는 학술원 회원이다. 그 후 다시 한번 그 영화를 보니 이해하기 쉬워서 즐기면서 봤다.     오펜하이머는 하버드 대학에서 천재 소리를 들으며 화학을 전공했으나 물리학이 자신에게 더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실험 물리학의 성지인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곳에서 실험 물리학에 서툴러 지도교수에게 낙제생 취급을 받고 자존심이 상한다. 사과에 독성 물질을 넣어 그를 죽이려는 시도까지 한다. 지독한 향수병과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는 정신질환으로 인정받아 정학처분만 받는다.     운이 좋았는지 이때 케임브리지 대학을 방문한 독일의 저명한 이론 물리학자를 만나 이론 물리학의 본산인 독일의 괴팅겐 대학에 편입한다. 그곳에서 박사 하위를 받고 젊은 엘리트 물리학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미국으로 귀국한다. 패서디나에 있는 캘텍과 UC버클리 교수로 임명되고 그것이 훗날 맨해튼 프로젝트와 연결된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독일보다 먼저 핵폭탄을 개발하려고 ‘맨해튼 프로젝트’를 승인한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핵실험의 성공을 3개월 앞두고 갑자기 서거하고 트루먼 부통령이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다.) 오펜하이머는 그 프로젝트의 과학총괄책임자가 된다. 그는 뉴멕시코주의 사막 로스앨러모스에 거대한 연구단지를 건설하고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을 영입한다.  그곳에 모여든 대부분의 과학자는 자신의 임무가 원자탄 제조의 일부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이런 불확실성과 혼돈의 현장을 통합으로 이끈 사람이 바로 오펜하이머다. 프로젝트의 총괄 사령관인 레슬리 그로보스 장군은 자신이 가장 잘한 결정이 오펜하이머를 로스앨러모스의 연구소장으로 발탁한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1945년 7월 16일,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한다. 작전명은 ‘트리니티 테스트’다.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지 않고 재현한 이 테스트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원자폭탄의 위력이 입증된 후 오펜하이머는 힌두교의 경전 ‘바가바드기타’에 나오는 말을 떠올린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그는 6개국어에 능통했던 언어의 천재였으며 취미로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독일을 목표로 핵폭탄을 개발했으나 히틀러가 자살하고 독일이 항복했기 때문에 끝까지 저항한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한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린다. 미국인들은 그의 애칭 ‘오피’를 연호하며 열광한다. 하지만 그 엄청난 영광과 환희는 오래가지 못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오피를 백악관에 초청하여 축하한다. 오피는 “내 손에는 피가 묻어 있다”고 말한다. 트루먼은 손수건을 내주며 핵폭탄을 개발한 건 당신이지만 사용을 명령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보인다.  2차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시작된다.  트루먼은 수소폭탄 개발을 원한다. 그러나 오피는 수소폭탄 개발에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그로 인해 군부와 정치인들에게 미움과 의심을 사게 된다.   미국의 예상과 달리 소련이 얼마 후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을 개발하자 오피는 소련의 간첩이라는 혐의를 받고 AEC(원자력 위원회) 청문회가 열린다. 오피가 한때 공산당 단체에 기부한 사실과 그의 친동생, 아내, 애인이 공산주의 사상에 빠졌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 초반에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이 잠깐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AEC 의장이었던 스트로스는 오펜하이머가 아인슈타인과 자기를 이간시킨다는 오해를 한다. 그 원한으로 스트로스가 그에게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씌운다.     게다가 청문회에서 애인과의 불륜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그는 배신자가 된다. 1954년에 오피는 비밀취급 인가를 박탈당하며 정부의 핵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한다. 그가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을 선사하고도 공산주의자로 몰린 건 1950년대 미국의 거대한 매카시즘 광풍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명예 실추와 함께 공직에서 쫓겨난 오펜하이머에게 린든 존슨 대통령은  1963년, AEC 최고 상인 엔리코 페르미상을 수여한다. 그의 명예가 회복되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정치적인 면에서 약화된 상태다.     AEC가 1954년의 결정을 완전히 취소한 건 그의 사망 55년 후인 2022년 바이든 정부에 의해서다. 그는 68년 만에 소련의 간첩이라는 혐의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는 스트로스가 오해했던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실제 대화 내용이 나온다.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 완료 후 아인슈타인에게 원자폭탄으로 인한 내적 갈등과 딜레마를 논의한다. 다른 국가들이 더 위험한 폭탄을 만들까 봐 두려워한다.     오펜하이머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의미심장한 말도 나온다. “자네가 버클리에서 나를 위해 리셉션을 열고 상을 준 일이 있지. 그런데 그건 날 위한 게 아니라 자네들 모두를 위한 것이었지. 이제 자네 차례야. 자네가 넉넉히 유명해지고, 벌을 받고 난 후에 세상은 자네에게 연어와 감자 샐러드를 대접하고 메달도 줄 거야. 모든 걸 용서했다고 말할 테지. 하지만 그건 자네를 위한 게 아니라, 그들 자신을 위한 거야.”   영화는 수없이 많은 핵무기가 온 세상을 뒤덮는 환영을 보고 오펜하이머가 두 눈을 질끈 감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에서는 주로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한 오펜하이머의 천재적이며 정치적인 과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 초반부에 그가 미술관에 가서 본 피카소의 그림이 스크린 가득히 나온다. 스트라빈스키 음악을 들으며 T.S. 엘리엇의 황무지를 읽고 힌두교와 인도 문학에도 심취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도 보여준다. 그가 다방면에 조예가 깊다는 것을 말해 준다.   세계 2차 대전 중에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 여러 나라가 노력했다. 실제로 독일의 핵무기 개발 시도는 미국보다 몇 년 앞섰다. 그런데 유독 미국만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펜하이머라는 걸출한 인물의 리더십과 그가 막힘없이 일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해 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배광자 / 수필가수필 오펜하이머 원자폭탄 오펜하이머 신드롬 원자폭탄 개발 천재 물리학자

2023-10-05

[중앙시평] 왜 이제 와서 ‘오펜하이머 신드롬’인가

세계적 오펜하이머 신드롬에다 1980년대부터 과학사 강의를 했던 터라 간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흑백과 천연색의 비선형적 스토리 전개에서 휙휙 바뀌는 화면을 따라잡느라 3시간 내내 긴장했다.   과학사에서 고전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넘어가던 전환기, 정치·경제적으로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며 파시즘에 대항할 이데올로기로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에 젖었던 격동기, 그 시대를 산 비범한 과학자가 제2차 세계대전의 신무기 개발 주역으로 이룩한 성취, 이후 세상의 파멸에 대한 공포 때문에 냉전시대 마녀사냥에 희생된 비극의 역정은 인간성의 이중성과 과학기술문명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각본의 원작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2006년 퓰리처상)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역사상 가장 모험적인 산학연군관 프로젝트로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 ‘원자도시’를 비롯해 테네시주 오크리지 우라늄235 생산시설, 워싱턴주 핸포드 플루토늄 생산 원자로와 분리공장, 전국 각지의 대학에서 60만 명이 참여했다. 원자도시에 모여든 6000여 명 중 90%는 자신의 임무가 원자탄 제조의 일부인지도 모르는 채 수수께끼 풀이에 몰두했다. 투입 예산은 22억 달러(현재 가치 330억 달러)였다.   개발 과정은 고전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과학기술계는 자율성을 중시하고, 군은 보안 위주의 관료주의를 고수했다. 기업의 경영진과 기술진, 과학자와 엔지니어 간의 긴장도 증폭됐다. 불확실성과 혼돈의 현장을 통합으로 이끈 ‘진정한 지도자’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오피)였다. 프로젝트의 총책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은 자신이 가장 잘한 결정이 오피를 과학 총괄의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장으로 발탁한 것이라 했다.   영화는 1954년 오피의 안보 청문회와 1959년 루이스 스트로스 상무장관 후보의 청문회를 긴박하게 오간다. 관련 인물의 성격과 신념 차이, 수소폭탄 개발을 둘러싼 이견, FBI 기밀문서 등 정치 상황이 얽혀 모두 패자가 된다. 오피는 공산주의와 엮인 배신자로 망가졌고, 스트로스는 상원 표결에서 46대 49로 상무장관 대행으로 그쳤다. 부결표를 던진 케네디 상원의원은 1963년 4월 대통령으로 오피에게 미국 과학자 최고의 영예인 페르미상을 수여하기로 서명한다. 그러나 그는 암살되고 2주일 뒤 존슨 대통령이 시상한다.   1944년 연합군이 독일 원자탄 개발이 초보 단계임을 확인하게 되자, 과학계의 핵무기 반대 움직임이 가시화한다. 그때 로스앨러모스를 떠난 과학자는 영국의 조셉 로트블랫경 한 명이었다. 닐스 보어는 원자탄 개발 이후의 세계의 분열상을 경고하며 원자력의 국제적 관리를 주장했다. 1939년 아인슈타인을 찾아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신에 서명을 받았던 시카고 그룹의 레오 실라르드도 원자탄 투하 반대에 나섰다. 그러나 투하 결정은 군부와 트루먼 대통령의 몫이었다.   프로젝트 초기에 제기된 질문 중 하나는 원자폭탄 폭발이 대기 중에서 계속 연쇄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었다. 영화에는 오피가 그 계산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은 아인슈타인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픽션으로 실제로 만난 것은 시카고 그룹의 아서 H 콤프턴이었다. 놀런 감독은 일부러 관중이 잘 아는 아인슈타인을 택했다고 했다.   2022년 12월 제니퍼 그랜홀름 미 에너지부 장관은 “오펜하이머에 대한 편견과 불공정의 증거가 밝혀졌고, 그의 애국심을 확인해 스파이 혐의를 철회한다”고 했다. 핵무기 과학사학자 알렉스 웰러스타인은 이제 와서 정부가 스스로 과실을 인정하는 게 놀랍다고 했다. 이전에 출간된 책들도 다시 화제다. 냉전시대 핵무기 경쟁까지 다룬 리처드 로즈의 『원자폭탄 만들기』(1988년 퓰리처상),  맨해튼 프로젝트 이후 미국이 과학으로 세계 강국이 되는 정치·사회적 배경까지 그린 데이비드 캐시디의 『J. R. 오펜하이머와 미국의 세기』(2004년) 등이다.   전쟁의 조기 종식을 위한 애국심으로 원자탄 개발을 지휘했으되 수소폭탄 개발과 핵확산을 반대했던 오피, 그가 두려워했던 것은 ‘의도치 않게’ 대량살상무기 개발 경쟁이 세상을 파멸시키는 연쇄반응, 핵 홀로코스트였다. 힌두교와 인도문학에도 심취했던 그는 1965년 NBC 인터뷰에서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에 나오는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됐다”를 인용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술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언급되고, 가장 빈곤한 국가에 속하는 북한이, 오피의 예측대로, 개발 비용이 낮아진 핵무기를 소유하게 된 상황은 그의 공포를 긴박하게 현실화하고 있다. 1962년 케네디와 흐루쇼프는 핵전쟁 종말의 공포를 경험한 세대라서 핵전쟁을 피해갔다. 그 역사적 기억은 날로 흐려지고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진화가 어디까지 가서 ‘의도치 않은 결과’를 빚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 그 잠재적 공포가 오펜하이머 신드롬의 배경이란 생각이 든다. 김명자 / 카이스트 이사장·전 환경부장관중앙시평 오펜하이머 신드롬 세계적 오펜하이머 맨해튼 프로젝트 산학연군관 프로젝트

2023-09-08

[발언대] 오펜하이머의 심적 고통과 핵무장론

‘오펜하이머’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는 세계 최초로 핵무기를 개발한 물리학자 오펜하이머의 생애와 핵무기 사용 후 그가 겪는 심적인 고통, 그리고 매카시즘의 광풍으로 인해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히며 곤경에 처하는 모습을 3시간 동안 깊이있게 다루었다. 부유한 독일계 유대인 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1922년 하버드대에서 학사과정을 3년 만에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러나 재학 중 그 극심한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걸려 학업을 중단했다. 1926년 그는 독일 괴팅겐 대학교로 옮김 후 양자역학을 공부해 9개월 만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이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할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 미국 정부는 1942년 맨해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때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계획에 열성적으로 참여해서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그러나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개발한 원자폭탄으로 인해 수십만 명의 사람이 사망한 것에 대해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고, 훗날 자신의 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엄청난 살상력을 지닌 수소폭탄 제조는 강력히 반대했다.     이로 인해 미국 정부는 오펜하이머를 매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생전에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그의 절친한 친구가 미국 공산당의 당원이었고, 그의 첫사랑인 진 태트록도 공산주의에 공감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관계로 그는 여러 해 동안 공산주의 관련 단체들의 모임에 참석하며 기부를 했다. 소련이 1949년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 후 수소폭탄 개발에도 성공하자, 오펜하이머는 공산주의자 및 소련의 스파이로 몰려 모든 공직에서 쫓겨났다. 그는 힌두교의 바가바드 기타를 인용하며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라며 한탄했다.     그 당시, 아인슈타인 박사는 인류공존의 문제에 대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서신에서 “국가를 무장시킴으로써 안보를 이룩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현재의 군사기술 상태로 볼 때 비참한 결과를 초래시키는 환상일 뿐”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같은 환상은 미국이 최초로 원자폭탄 제조에 성공했다는 사실 때문에 조장되어온 것이며, 이러한 개발의 무시무시한 특성은 그 개발이 분명히 자제할 수 없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는 자신의 신념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아인슈타인 박사는 국가들의 평화스러운 공존을 위해 첫 번째, 상호간의 두려움과 불신을 제거하기 위해 대량 파괴 수단을 포기할 것, 두 번째, 초국가적인 사법 및 행정기구를 설립하여 각국 안보에 관한 당면 문제들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할 것, 세 번째, 모든 형태의 평화적인 협력은 우선 상호 간의 신뢰에 바탕을 둘 것을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한반도에는 북한의 계속된 도발로 인해 여전히 핵무기가 공포스러운 현실로 남아 있다. 더군다나 정치권의 일부 인사들은 보수적 여론을 결집하기 위한 목적으로 ‘독자적 핵무장론’까지 제기하며 핵무장 방법을 찾겠다고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가 독자적 핵기술을 개발하려면 북한처럼 핵확산방지조약(NPT)부터 탈퇴해야 한다. 그러려면 미국과 등질 각오도 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도 한국의 핵무장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즉각적인 무역보복에 나설 것이다.     그렇다. 핵무장론은 한반도를 넘어서는 매우 복잡한 국제정치적 사안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펜하이머 박사가 겪었던 크나큰 심적 고통과 아인슈타인 박사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평화스러운 공존을 위한 제안’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라번대학 겸임교수발언대 오펜하이머 핵무장론 물리학자 오펜하이머 이때 오펜하이머 심적인 고통

2023-08-27

[노트북을 열며] 김정은과 오펜하이머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며 떠오른 사진 한 장. 2016년 3월 9일 북한 노동신문이 공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사진이다. 자신만만한 표정의 김정은 위원장이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건 동그란 공 모양 물체. 북한의 주장이 맞는다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에 탑재해 미국 본토까지 타격 가능한 작고 가벼운 내폭형 핵 기폭장치다. ‘오펜하이머’에서 맨해튼 프로젝트의 물리학자들이 오각형과 육각형의 고폭렌즈를 끼워 구(球) 모양으로 조립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자랑한 내폭장치의 선배 격이다.   ‘오펜하이머’의 과학자들이 고폭렌즈 32개를 조립해 만든 핵폭탄의 이름은 ‘팻맨(fat man)’. 일본 나가사키(長崎)를 초토화했다. 2016년 북한이 공개한 내폭장치는, 그 주장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약 72개의 고폭렌즈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오펜하이머’를 누구보다도 달뜬 마음으로 보지 않았을까.   ‘오펜하이머’는 적어도 한반도 38선 이남에 태어나 살아가는 우리에겐 단순한 블록버스터 영화일 수 없다. 미국의 핵으로 1945년의 광복은 앞당겨졌지만, 북한의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고 있는 게 2023년 현재 우리의 현실이다. 현실이 무섭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더 무섭다.   2016년 이후, 분명히 늘어난 건 북한의 핵물질과 핵능력밖엔 없지 않을까. 한국은 일관된 대북 정책 없이 정권에 따라 진자 운동과 정쟁만을 되풀이해왔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도 심각하지만, 정작 북핵 위협과 북한 인권 문제엔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이들이 상당수다. 그사이 김정은은 열 살로 추정되는 딸 주애의 손을 잡고 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에 나타나고, 사실상 미사일을 ‘군사정찰 위성’이라며 정상국가 코스프레중이다.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는 원폭 실험에 성공한 뒤,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다음 구절을 되뇌며 자책했다고 한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됐다.” 21세기의 파괴자를 꿈꾸며 독재 정권의 수명 연장을 꿈꾸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오펜하이머가 했다는 다음 말을 전한다. “(핵폭탄을) 갖게되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고 평화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635쪽). 북핵 문제는 이미 요단강과 삼도천을 건넌 듯한 절망의 영역으로 치부되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평양의 프로메테우스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의 끈은 놓지 말아야 할 터다. 전수진 / 한국 투데이·피플팀장노트북을 열며 김정은 오펜하이머 북핵 문제 로버트 오펜하이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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