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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장수 비결, 산삼 서너 뿌리 통째로!

보통 수천만원대를 호가하고 정말 귀한 삼은 억 소리까지 난다는 산삼. 조선시대 때 최고로 장수한 왕인 영조의 장수 비결 역시, 산삼이다. 80세의 영조는 병술년(영조 42년) 이후로 복용한 삼이 100근이나 되어 국가 재정에 대한 염려가 영조 49년 승정원일기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산삼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동의보감〉에서 산삼은 정신을 안정시켜 놀란 가슴이 뛰는 것을 멈추게 하고, 두뇌활동을 활발하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고 본초강목〉에는 오장을 보호하고, 정신을 안정시켜 놀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세를 멈추게 하며, 눈을 밝게 하고, 머리를 지혜롭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산삼은 120여 종의 진세노사이드 성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약리 활성 성분으로 면역력 증강과 항암 효과를 보이는 산성 다당체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진세노사이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포닌 성분이다. 사포닌은 기력 회복과 피로 해소에 도움을 주며 에너지 생성에 관여하는 호르몬을 조절하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주기 때문에 신진대사를 도와주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 증가를 억제한다. 또, 사포닌은 장에서 서식하는 '프레보텔라 오리스'라는 균과 만나 생기는 대사 물질이 암을 예방하는 작용을 해 암세포의 증식과 진행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또한 치매 원인물질 제거와 기억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세틸콜린 분비를 유도해 치매 예방 효과는 물론, 당뇨에 도움을 주는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켜 혈당조절에도 도움을 준다.   흔히들 이러한 좋은 성분이 삼 뿌리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들어 산삼의 열매가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아인슈타인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삼의 열매는 유해한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 작용을 비롯해, 노화 유전자의 활동을 억제하고 황노화 유전자를 활성화시킨다고 밝혔다. 또 시카고의대 연구진은 항당뇨, 항비만, 항콜레스테롤 효과를 입증했다.     농촌진흥청이 삼 열매 성분을 분석한 결과, 사포닌의 함량이 뿌리의 2배에 달하며 사포니의 일종으로 간기능 개선, 당뇨 예방 효능이 있는 진세노사이드-Re성분은 뿌리의 30배에 달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억 소리가 나는 이러한 산삼이 대체 얼마나 몸에 좋을지 궁금하지만, 가격 때문에 쉽사리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포닌 최적기인 7년근 산양산삼을 뿌리부터 열매까지 통째로, 다른 첨가물 없이 한 병에 100% 농축해 담은 산삼진액을 지금 중앙일보 '핫딜'에서 63% 할인한 259.95달러에 무료배송으로 판매 중이다. 해당 제품은 HACCP인증과 ISO국제 인증, FDA에 등록된 업체에서 제조하여 믿고 구매할 수 있다.    ▶문의:(213)368-2611   ▶상품 살펴보기: hotdeal.koreadaily.com핫딜 산삼순백 영조 장수 비결

2023-11-26

[시조가 있는 아침] 샛별 지자 종달이 떴다 -이재(1678~1746)

샛별 지자 종달이 떴다   호미 메고 사립나니 긴 수풀 찬 이슬에   베잠방이 다 젖겄다 두어라 시절이 좋을손   옷이 젖다 관계하랴   -병와가곡집     성군의 시대   농경시대에는 봄이 오면 농사를 준비했다. 샛별이 지고 종달새가 지저귀면 호미 들고 사립문을 나선다. 긴 수풀에 맺혀 있는 이슬에 베로 만든 가랑이가 짧은 홑바지가 다 젖는다. 아, 시절이 좋다면 옷이 젖는 것이 뭐가 불편할까?   이 시조는 조선 영조 36년에 영주군수를 지낸 이재의 작품으로 전해온다. 농사에 전념하면서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백성의 염원이 간절하다. 나라님이 누구인지 알 필요도 없다. 천하가 태평하여 자신의 생업에 전념할 수 있는 세상이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중국의 전설적인 성군인 요임금이 민심을 살피기 위해 평복 차림으로 미행을 나섰을 때 손으로 배를 두드리고 발로 땅을 구르며 흥겹게 노래 부르는 한 노인을 보았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네/ 밭을 갈아 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니/ 내가 배부르고 즐거운데/ 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요임금은 자신이 꿈꾸던 이상향이 이루어졌음을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국민이 위태위태한 나라를 염려하여 속을 태우는 세상이라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더 이상 국민이 나랏일에 노심초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유자효 / 시인샛별 이재 지저귀면 호미 조선 영조 이상 국민

2022-03-16

[독자 기고] 오(조)봉완 사도 세자의 죽음

지난 달에 중앙일보에 쓴 ‘옷소매 붉은 끝동을 보고’는 정조의 연모가 주제였다. 정조를 언급하면서 어떻게 그의 부친 사도세자에 대하여 묵인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쓴다.     조선(1392-1910) 역사 중, 명성 황후(1851-1895) 시해 사건 외 제일 애절하게 생각하는 일이 사도세자의 죽음이다. 정조대왕(명, 산; 1752-1800; 통치, 1776-1800)은 11살 때 아버지(사도세자; 장조; 명, 선; 1735-1762)가 잔인한 죽음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존경하며 애총 받던 할아버지 영조대왕(1694-1776)의 어명에 의해서 아버지가 죽게 되었으니, 어린 아이가 어떻게 이해했으며 그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가끔 생각한다. 그 아이는 모든 것을 다 기억하나 원인은 모를 수 있겠다고도 짐작한다.     그는 부친이 타계한 직후 11살짜리의 친필로 부친에게 효도할 것을 맹세한다. 성인이 되어 즉위한 후, 어렸을 때의 맹세를 수행한다. 조선조 역사상 드문 대공사로 수원에 거대한 화성을 짖고 한강에 80척의 배를 이어 임시 다리를 놓고, 아버지의 유골을 이장한다. 이것은 유명한 능행도로 역력히 보여 주고 있다. 세손인 이산은 “죄인의 아들”이라고 모욕을 당하며, 그의 정통성에 협박 당하고, 즉위 가능성에도 도전 당한다. 하나, 젊은 세손은 아버지를 옹호하며, 자기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서슴치 않고 공개한다.     사도세자는 영조 대왕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둘째 아들로 영조가 42세인 1735년에 창경궁에서 부왕이 친히 출산 장면을 지켜보던 중 태어났다. 영조의 장자인 효장세자가 일찍 사망하였으므로 영조는 둘째 아들을 많이 기다렸었다. 선이라 이름 짓고, 생후 1년 만에 원자로 책봉했으며 그의 영특함을 기뻐하고 총애했다. 영조 25년(1749)에는 15살인 선을 대리청정까지 시켰으나, 영조의 아들에 대한 호감은 지속되지 못했다.     전통적 세자 교육이 깊어 가면서, 선의 재능은 전통적 유교 정전과 조선조 경전 외에 있었다. 그는 어쩌면, 시대에 앞선 사람인지 모른다. 그의 생각은 경화된 기존 사상 밖에 치중했다. 경전 공부보다는, 불법인 서민 작의 언문으로 쓰인 책을 모아 서고를 마련하고 일반인에게 빌려주는 일을 스스로 했고, 그림 그리는 것에 몰두해, 부친 영조의 분노와 책망이 끝이지 않았다. 당시 득세 했던 노론 정치인들은 왕세자를 비판하고 폐위시키려는 노력에 몰두했다. 성숙 과정에 있던 세자는 자기의 분노를 억누르다 견디지 못하면 폭발하고 살인을 포함한 폭행을 자주 범한다. 이로 인하여 세자가 광증에 걸렸다는 소문이 난다. 그의 부인이며, 정조의 모친인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도 이것을 인정한다.     영조의 의심을 심각하게 한 것은 왕세자 선은 무기 향상에 관심이 있었다. 무예도보통지라는 책을 엮었다. 후에 그의 아들 정조대왕에게 도움이 됐다는 책인데 문과에 치중한 부친 영조의 호감을 사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선의 무기에 대한 관심은 노론 정치인의 왜곡으로 왕에게 보고돼 의심을 사고, 역모로 간주된다. 부자 관계는 악화되어 영조의 아들에 대한 학대는 심해지고, 아들의 부친에 대한 공포는 늘어 나 두 사람은 대면을 안 한다.     결국, 왕세자 이선은 극도의 광증, 부자 관계의 악화, 당쟁의 격화 등 여러 가지 상황의 종합으로 1762에 27세라는 젊은 나이로 부친의 명으로 뒤주에 갇히게 된다. 영조는 왕족의 피를 흘리게 하면 안 된다는 전통을 지키려고 질식하여 죽이는 방법을 강구한 것이다. 그는 8일 후, 7월 12일 삼복 여름에 뒤주 안에서 죽는다. 11살의 그의 아들, 세손 산은 몇 번이나, 아버지에게 몰래 물을 가지고 가나, 들키고 금지 당한다. 그 아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하염없이 울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사학 박사, 조지타운대학 명예교수(은퇴)]     오(조)봉완독자 기고 사도 세자 부친 사도세자 할아버지 영조대왕 부친 영조

2022-02-18

조선 21대 임금 영조가 80세 넘게 장수한 비결

   동의보감에는 녹용이 소모된 몸의 기운을 북돋워 재생력과 면역력을 강화하고 생성된 기운을 끌어올려 힘이 나게 하는 한약 재료라고 기록됐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민간요법에는 원기 회복과 허약 체질 특히 폐가 약한 환자들을 위해 특효의 보양약으로 약탕기에 끓여 복용시켰다고도 전한다. 한마디로 녹용은 원기 회복에 있어 더할 나위 없는 한약재로 잘 알려졌 있다. 이런 효능 때문에  임금의 장수 비결 약재로도 쓰였는데 조선 21대 임금인 영조는 녹용을 장복하면서 평균 수명이 50세가 되지 않던 당시에 80세를 넘기며 살 정도로 녹용 복용을 즐겼다고 한다.   녹용의 대표적인 유효 성분은 강글리오사이드인데 뇌세포 발달과 혈행 개선, 면역력 향상에 매우 효과를 낸다. 특히 조골세포 등 성장 촉진에 관여하는 판토크린 성분도 녹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효 성분이다. 녹용은 1년에 단 한번 밖에 자라지 않는데 2개월에서 6개월 동안 자란 녹용이 가장 좋다고 한다. 녹용은 분골,상대,중대,하대로 구분되는데 분골에 강글리오사이드와 판토크린이 제일 많다. 고가로 거래되는 부위가 분골이다.그 다음이 상대인데 조직이 촘촘하고 부드러우며 녹용의 효력을 그대로 담고 있다. 중대는 일단 색깔이 갈색빛을 띄는데 단단함이 느껴지면 최상의 품질로 여겨진다.하대는 각질화가 진행되어 구멍이 보일 수 있지만 뼈 건강에 효능을 발휘한다. 녹용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좋은 보양식의 대명사다.   대한민국에서 녹용과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건강식품이며 한약재는바로 홍삼이다. 홍삼은 인삼을 찌고 말리는 과정에서 수분이 완전히 날라가고 붉게 변한 삼을 일컫는다. 홍삼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최고의 면역력 강화 건강식품이다.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홍삼의 면역력 강화 효능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6년근 인삼을 수증기로 져내면 사포닌과 홍삼다당체,아미노당,미네랄등이 나오는데 이 성분들이 에너지 생성 호르몬을 촉진해 피로를 해소하고 면역력을 증진시킨다. 특히 사포닌 성분의 진세노사이드는 독감이나 바이러스와 같은 질병에 맞서는 면역력을 증진시키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대한민국 대표 한의사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이경제 한의사가 직접 배합 설계해 탄생시킨 ‘황제녹용단’은 국내에서만 3천억 판매 신화를 기록한 국민보약이다. 황제녹용단은 녹용의 영양상태가 가장 좋다는 60일경에 절각한 뉴질랜드 녹용의 상대,중대,하대,분골과 국내산 홍삼이 주성분이다. 여기에 영지버섯,복령,천궁,당귀,갈근 등 29가지의 약재가 첨가되며 최적 배합의 프리미엄 건강기능식품으로 출시됐다. 윈기회복과 면역력 강화는 물론이거니와 건강관리와 체력유지에 으뜸이다. 미주 한인커뮤니티 최대 온라인 쇼핑몰 핫딜은 이경제 ‘황제녹용단’ 독점 온라인 판매를 기념하며 정가 600달러의 1개월분(30환)은 35% 할인된 400달러에 판매하며 치매 예방에 좋은 공빛단은 정가 400달러 1개월분(60환)을 25% 할인된 300달러에 판매한다.     ▶상품판매 바로가기 ▶문의 : 213)368-2611 hotdeal.koreadaily.com    영조가 조선 장수 비결 면역력 강화 임금인 영조

2022-02-11

[독자 기고] 오(조)봉완 옷소매 붉은 끝동(정조의 이야기)을 보고

MBC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이 시청률 17.4%로 지난 1일 막을 내렸다. 2021년 11월 12일부터 2022년 1월 1일까지 17부작이였던 이 드라마는 원작부터, 연출 감독까지 여자 작가와 예술가의 작품으로,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는 반 여성 분위기와 대조 되는 작품이다. 원작소설은 강미강 작, 극본은 정해리, 제작진은 김호영, 정지인, 송연화이며, 연출 감독은 정지인이다. 드라마 여주인공(이세영 역)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의 독립성을 내세우고 자신의 자유로운 생활을 중요시 하여, 그의 마지막 왕(이준호 역)에 대한 유언이 다음 세상에서 만나면 아는 척 하지 말고 옷만 스쳤으면 좋겠다 하여 왕을 섬찟하게 했다.    그는 제 일품 빈이 되는 것보다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을 더 원했다. 현대 여성의 진지한 페니미스트(feminist) 이념이다. 아들 우선주의의 부모와 사회의 억압하는 규율을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구애 없는 생활을 하는 것. 이것을 현대 한국의 남자들은 못 마땅하게 여겨 데모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돌려 “남존여비”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반여성 데모를 하는 청년들의 생각이라 믿는다. 최근 최상훈 기자가 뉴욕 타임스에 보도 한 바에 의하면 자본주의 국가 중 남녀 차별이 제일 심한 곳이 한국이라고 한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정조대왕(1752년 생, 1777-1800 통치)의 주로 연모의 이야기다.   조선 518년에는 모두 27대의 왕이 있었다. 그 중 22대 정조 대왕(이름, 산, 또는 성)을 세종대왕 다음으로 좋아할뿐 아니라, 한국 역사에 지식 있는 사람들의 공통되는 의견이다. 현대 한국인의 정조에 대한 호기심과 호감은 수개의 극과 드라마를 연출했다. 잘 알려진 드라마로는 77부작의 “이산”이라는 제목으로, 정조 역에 이서진이 출연했고, “한성 별곡” 제목하에 안내상이 정조 역으로 나온 것도 있다.   세종대왕은 엄청난 거인으로 존경하나, 정조대왕이 된 이산은, 외람하나, 나의 아들같이 애틋하게 느껴진다. 산은 11세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쌀 뒤주에 갇혀 삼복 여름에 질식해서 숨지는 것을 보았다. 이로 인하여 산은 죄인의 자식이라는 낙인 하에 즉위 하는 과정에서 여러 난관을 경험했으나, 학자들 의견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슬기로운 조정과 할아버지 영조(1725-1777) 의 각별한 총애, 자신의 총명과 인품으로 인하여 세손으로 책봉되었다(1759). 영조 대왕이 타계 하기 1년 전(1775)부터 국정을 다스렸으며, 다음해에 즉위하여 총 25년 간 조선의 임금으로, 기울어져가는 조선의 재생에 헌신했다. 정조의 명성은 그의 아버지에 대한 효도이다. 이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수원에 화성을 짖고 한강에 임시 다리를 놓아 아버지의 유골을 모셨다. 한국 역사에서 능행도는 유명한 그림이다.   정조의 통치 시대를 역사가들은 조선의 르네상스(Renaissance) 시기라 한다. 조선 왕국에 마지막 서광이 비치고 희망이 보였던 때라 한다. 이 시기에 조선의 문화가 활발했다. 우리에게 알려진 문학, 한글로 쓰여진 소설, 광해군(1608-1623) 시절의 홍길동전의 재현, 민속화의 인기, 언문(한글)의 보편화를 후세들은 알게 된다. 그러나, 정조의 아쉬운 갑작스런 죽음(암살 소문)으로, 조선 왕조는 겉잡을 수 없이 쇠락한다. 어려서 수난을 겪어 그런지 정조는 관대하고 인정이 풍부 하였으나 결단성도 부족하지 않아, 자기 통치나 정책에 반대하여 위험을 주는 관료들은 서슴치 않고 처분했다.    그러나, 정조는 무엇보다 탕평책(당파를 없애기)을 기도하여 관료들의 상호 협조를 장려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려 노력했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 눈에 떠오른다. 한 노인이 선비 차림을 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자기 일생 처음으로 태평 성대를 맞아 노년의 생활이 편안하다”고 실토한다. 그 선비는 정조였다.       ‘옷소매 붉은 끝동’의 인기 이유는 많다. 역사상 정조의 인기가 첫번째 이유다. 주역(이세영, 이준호)들의 뛰어난 연기, 여주인공의 미모, 남 주역의 남성스러움 등을 지적할 수 있다. 그 두 사람이 잘 어울리고, 유머가 있고 서로 존경하는 분위기도 드라마의 인기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사학 박사, 조지타운대학 명예교수)   오(조)봉완독자 기고 옷소매 끝동 현대 한국인 드라마 여주인공 할아버지 영조

2022-01-07

[역지사지(歷知思志)] 금주령

 조선시대에는 수차례 걸쳐 금주령이 내려졌는데, 영조 때가 가장 강력했다. “술을 빚은 자는 섬으로 유배를 보내고, 술을 사서 마신 자는 영원히 노비로 소속시킬 것이며, 선비 중 이름을 알린 자는 멀리 귀양 보내라” (『영조실록』)   농업국가인 조선에서 금주령이 잦았던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흉년으로 식량이 부족하게 되면 곡물을 보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조 32년 내려진 금주령은 10년간 이어졌다. 이전의 금주령은 1~2년에 불과했다. 10년은 흉년 같은 이유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기간이다. 영조 개인의 도덕관이 개입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는 조선에서 술을 근절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조는 근검절약에 솔선수범한 왕이다. 83세에 사망한 그는 장수비결을 ‘채식과 소식’이라고 꼽기도 했다. 이처럼 모범을 보이고 도덕을 앞세운 것은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의 모친은 신분이 낮은 궁녀였다.   그러나 영조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음주는 근절되지 않았다. 한양에서 밀주를 파는 공간이 곳곳에 나타났다. 관리들은 돈을 받고 뒤를 봐주거나 심지어 이들과 결탁해 뒷돈을 챙겼다. 결국 영조는 10년 뒤에 슬그머니 규제를 풀었다. 인간의 욕구나 시장을 법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정자들이 흔히 범하는 착각이다. 명분만 믿고 밀어붙였다가 이전보다 악화한 결과로 되돌아오기 일쑤다. 그래도 늘 반복된다. 유성운 / 한국 문화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금주령 영조 개인 농업국가인 조선 채식과 소식

202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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